아닙니다. 좋은 책에서 많이 배울 기회가 있어 제가 감사드리죠. 김대중에 대한 좋은 연구서가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위에서 드린 말씀을 약간만 보족하자면 선생님께서는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맥락에서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위치시키다보니 대중경제론의 핵심이자 그것이 구현하고자 하는 기본 목적을 "복지"에 두고 계신데 저는 그것은 물론 중요한 맥락이고, 이 책에서 대중경제론을 다루는 부분이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온전히 분석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는 그 기원적 탐구를 행하고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소급해서 독해하는 것 자체에 동의 못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역시나 대중경제론은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과의 대결 속에서 나온 내포적 공업화 전략으로 보아야 하며, 복지는 그 내포적 공업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공업화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독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부분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김대중이 1960~70년대에 대중경제론으로 수렴되는 경제적 지향을 제시한 맥락과 1998년 집권 이후의 경제 상황에서의 그의 지향점을 별다른 구별 없이 등치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봅니다.
예컨대 저는 김대중의 1960~70년대 수출주의와의 대결 혹은 비판은 외자도입에 기초한 수출주의, 즉 한미일 삼각안보 - 무역체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도출된 거시적 관점이었다면 1998년 이후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론은 기존의 삼각무역구조가 해체되는 상황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개선 등을 꾀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제분업관계의 재구성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질적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전자가 한국 경제가 미일 중심의 세계시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한 입장이라면, 후자는 한국 경제가 놓인 국제분업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고민한 입장인 것이라 봐요. 이 맥락 위에서 보아야 남북관계개선뿐만 아니라 동북아공동체론에 대한 선생님의 강조도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봅니다.
경제학사의 맥락에서도 1950년대 이후의 후진국 개발론의 입장을 좀더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 보신 게 박태균 선생이 정리하신 1950년대 경제개발론 연구들 같은데 중요한 연구임은 분명하지만 이 일련의 연구들은 말씀하신 정치세력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사, 혹은 정책사적 맥락의 성격이 강합니다. 국제적으로나 한국의 경제학 수준에서나 당대의 후진국 개발론은 라울 프레비쉬(Raul Prebisch)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에서 도출된 넓은 의미의 수입대체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박현채 등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민족경제론자들까지도 외자도입이나 시장경제의 활용을 거부하는 이는 없습니다. 수입대체화와 수출주도형 간의 차이를 내자동원 대 외자동원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보는 것은 김일영, 이영훈 등의 보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김일영은 이 맥락에서 김대중의 정책이 무책임한 이상론에 불과했으며 그의 낙선이 한국 경제의 차원에서는 축복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 비판하시는 김대중=신자유주의론을 주장하는 진보학자들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뉴라이트 식의 논리로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진영의 김대중=신자유주의론에 대한 핵심적 반론은 당대의 한국 경제가 김대중이 비판했던 것과 같은 관치경제, 권위주의적인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의 폐해로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자유화 하는 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자유화와 구조개선 과정 속에서 한국 경제가 고도화 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당대의 상황에서 관치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유화 외에는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그것에 너무 의식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봅니다.
반대로 저는 김대중과 박현채는 신자유주의론과 내자동원형 경제개발론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을 논파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의 핵심적 논지는 외자도입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김대중이 경부고속도로 반대를 위해 건설현장에서 누웠다는 식의 거짓이 퍼지는 것처럼 박현채의 주장도 그런 식으로 곡해되고는 하는데요, 박현채의 주장의 핵심은 한국경제가 "외국자본의 재생산"의 한 부분으로 포섭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의 수요, 민중의 요구 등이 아니라 외국 자본의 축적욕망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수불가결했다고 인식하는 지점에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김대중의 민주주의론과 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민족자본, 한국인의 자본에 기초해서 경제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경제개발의 성과가 민주주의를 통해 향유되지 못하고 외국 자본의 재생산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는데 김대중과 박현채의 박정희 비판이 의의를 지니게 된다고 봅니다. 즉 만약 김대중의 입장을 1960~70년대로 소급할 수 있다면 그는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둘의 긴밀한 연결이야말로 경제개발의 참뜻을 구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김대중의 복지국가론을 단순히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선취한 것으로만 보기 어렵게 합니다. 김대중의 복지국가론은 단순히 생산적 복지론을 넘어서서 민주주의야말로 민중의 욕구를 드러내는, 경제개발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적 발전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시장경제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김대중이 깊이 통찰하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지, 김대중이 단순히 한국형 복지국가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그의 독창성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독창성의 차원에서 박현채가 초기에 기여한 지점이 크다는 것 또한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자한테 문자 가르친다고 김대중 연구자이신 선생님께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게 건방지지만 읽고 느낀 바가 많이 이리 길게 적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