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알라딘: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법 묻고 담정 답하다

알라딘: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법 묻고 담정 답하다  
도법, 신상환 (지은이) 비(도서출판b) 2021-12-15

269쪽
152*223mm (A5신)
416g


책소개

한국 실천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실상사 도법 스님과 중관학자인 담정 신상환이 2019년 봄부터 2020년 가을까지 10여 차례 만나서 중과 중도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실천불교와 교학불교를 각각 대표할 수 있는 두 지성의 대담이다. 그 결과물을 묶은 것이 이 책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편성되었다. 제1부는 중도로 부처님 생애에 대해서, 제2부에서는 중도로 불교와 중관사상의 기본 교리를, 제3부는 중도로 한국 불교를 논한다. 그리고 책 뒤에는 중과 중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 자료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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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ㅣ서문ㅣ
도법 스님: 친구 따라 강남 간다 9
담정 신상환: 강남 땅값이 비싸 강을 건너기로 했다 17

제1부 중도로 부처님 생애를 논하다
인도 사상의 근간인 업과 윤회 23
부처님의 가르침은 응병여약, 표월지지 33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 36
부처님의 상가 운영과 중도의 실천 38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한 해석 43

제2부 중도로 불교 교리를 논한다

1. 부처님의 반열반 이후의 불교 53
역사 해석의 공시성과 통시성 53
경론의 형성과정 55
대승불교의 출발점 57
교학의 체계화는 무아이론에서부터 60

2. 중도로 중도를 논하다 83
중도와 여실지견 89
‘중도’라는 개념의 위치 100
전통에 따른 중도의 역사적 해석과 차이 108
다시 부처님의 재세 시로 134
본래법인 연기법? 139
십이연기와 삼세양중인과 147

3. ��중론��과 이제론 151
부처님과 14난 151
용수와 부처님, 그리고 시대 상황 156
용수의 사유와 ��중론�� 160
이제론 171

제3부 중도로 한국 불교를 논하다
선의 과잉 문제 197
한역 경전권 불교의 변화 선종과 교종 199
선종 이전의 중국 불교 200
21세기 불심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206
ㅣ참고자료ㅣ 중과 중도에 관하여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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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94
담정: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스님의 중도의 실천행이 아니다. 스님께서 중도를 여실지견이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이론적인 문제는 이론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지금 스님은 연기 실상의 세계와 언설(言說)의 세계의 경계를 흩뜨리고 있다. 중도를 여실지견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보가 아닌 후퇴다!

P.97
도법: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중도적으로 접근하면 복잡하지 않게 진실을 잘 드러냄으로써 문제를 잘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을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여실이라는 말은 내가 만든 개념이 아니고, 경전에 있는 개념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의 뜻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P.118
도법: 중도는 가야 할 길이고, ‘중’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 여실지견을 중도행의 하나로 보면, 여기서 보는 것은 행위이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연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붓다 생애의 맥락과도 잘 맞는다고 여겨진다.

P.119
담정: 그것은 그야말로 스님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스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추적해왔던 중과 중도의 차이를 다시 뭉뚱그리고 있다. 중과 중도는 다른 것이다!
중도는 딱 하나다. 팔정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것이 중도가 경전에 등장하는 유일무이한 장면이다.

P.181
담정: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 또는 사성제를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수 보살 이후, 중기 중관파를 지나면서 이제론은 사성제보다 더욱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P.182~183
도법: 나는 이제로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 표월지지라고 본다. 달은 진제, 손가락은 속제인 것이다. …… 담정이 21세기 ��중론��을 저술했으면 한다. 그러면 좀 더 명료해질 것 같다. 우리는 불교를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가르침이라 한다. 담정에게 논파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논파도 바로 이 파사현정을 위한 것 같다.

P.183
담정: 그렇다. 스님 말씀처럼 ��중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파’라는 말보다는 먼저 ‘고통에서 벗어남’이라는 부처님의 뜻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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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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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종교와 평화>,<내가 본 부처> … 총 26종 (모두보기)
1949년 제주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가했다. 66년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69년 해인사 강원을 거치고, 이후 13년 동안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선수행을 했다. 87년엔 금산사 부주지를 맡았고, 90년엔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개혁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었다. 95년부터 실상사 주지를 맡아 인간화 생명살림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98년 실상사 소유의 땅 3만 평을 내놓고 귀농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기존의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로 나뉘어 다툴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분규를 마무리짓고 미련없이 실상사로 내려갔다. 99년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하면서 귀농운동 차원을 넘어 생활협동조합?대안교육?생명평화운동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2004년 실상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후,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을 떠났다. 이후 5년 동안 3만 리를 걸으며 8만 명의 사람을 만나 생명평화의 가치를 전했다. 2010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 본부장 등 종단 소임을 맡아 다툼없고 평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내다 2018년 실상사로 내려와 다시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현재 지리산 실상사 회주이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과 생명의 질서》 《길 그리고 길》 《화엄의 길, 생명의 길》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내가 본 부처》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지금 당장》 등이 있다.

1968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 순천고등학교(1986),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1993)를 졸업하고,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파키스탄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간 후 인도?티벳?중국 등을 여행하였다(1993~1998).
티벳 불교를 공부하기 위하여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인도의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티벳학과에서 티벳학 석사 및 같은 학교에서 산스끄리뜨어 준석사 등을 마쳤으며 캘커타 대학의 빠알리어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99-2008).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티벳학과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귀국하여 함양 안의 고반재에서 중관학당을 열어 용수의 중관사상과 불교사상사, 티벳불교 등을 연구하는 가운데 티벳 경전 한글 번역 등 역경(譯經)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의 대승불교와 중관사상, 팔불중도 등의 집필자이기도 한 역자의 주요 저서로는 2011년 상반기 문광부 우수학술 도서로 선정되었던 산스끄리뜨어.티벳어.한역 ≪중론≫을 비교 분석한 ≪용수의 사유≫, 티벳?타클라마칸 사막.고비 사막의 자전거 여행 기록인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리≫ 등이 있고, 역서로는 티벳 운문학의 정수인 싸꺄 빤디따의 ≪선설보장론≫의 해제본인 ≪풀어 쓴 티벳 현자의 말씀≫, 용수의 ≪권계왕송≫의 완역본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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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실천불교와 교학불교의
중中과 중도中道에 대한 대담”


한국 실천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실상사 도법 스님과 중관학자인 담정 신상환이 2019년 봄부터 2020년 가을까지 10여 차례 만나서 중(中)과 중도(中道)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실천불교와 교학불교를 각각 대표할 수 있는 두 지성의 대담이다. 그 결과물을 묶은 것이 이 책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편성되었다. 제1부는 중도로 부처님 생애에 대해서, 제2부에서는 중도로 불교와 중관사상의 기본 교리를, 제3부는 중도로 한국 불교를 논한다. 그리고 책 뒤에는 중과 중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 자료를 덧붙였다.

이 책에서 도법 스님은 불교적 실천을 중도행이라 부르고 있다. 1970년대 선방에서 비롯된 깨달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1990년대부터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생명 평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살아 있는 불교의 필요성에 강조의 방점을 찍는다. 이와 달리 신상환은 중도라는 그 이름마저도 방편교설로 가설적인 것, 희론(戱論)이라 부르는 중관학파의 태도로 일관한다.

연기법의 핵심이 중도라고 주장하는 도법 스님과 연기실상의 체화와 언어의 한계를 강조하는 신상환은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실천 불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고 있다. 실천불교를 위해서 명확한 개념 정리를 바탕으로 한 교학불교를 강조하는 신상환과 달리 도법 스님은 그것이 현실 속에서 대중들에게 쉽고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대담자는 실천의 중요성, 삶의 변화에 유용한 불교를 강조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는 다르다. 최소한 이 둘이 주고받는 대담 속에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경론의 다양한 해석, 그리고 ‘중과 중도’가 다른 것임을 경론을 통해 보여주는 ‘참고 자료’ 등은 한국 불교의 발전을 위한 대담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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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도법 스님·신상환 대담
도서출판 b / 269쪽 / 1만6000원

스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리산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과 중관학자 신상환 박사가 2019년부터 2020년 가을까지 10여차례 만나 불교교리와 실천 등을 주제로 나눈 대담집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됐으며, 중도의 관점에서 ‘부처님 생애’ ‘중관사상의 기본교리’ ‘한국불교’를 각각 논한다.

도법 스님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창립해 귀농운동, 환경운동 등을 펼치고, 생명평화를 주제로 5년간 전국을 탁발순례하며 8만명을 만난 한국불교 실천불교의 상징이다. 신 박사도 여느 학자들과는 다르다.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1993년 인도로 떠나 그곳에서 불교학자로 변신해 용수보살의 중관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3년 귀국한 후 대학이 아닌 곡성에 중관학당을 열어 경전번역과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서로 다른 듯 비슷한 대담자들은 중도와 연기법 등 교학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한다. 실천불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상대 의견에 적극 공감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는 미묘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도법 스님과 신 박사의 대담에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철저한 탐구와 경론의 다양한 해석은 참신하고 뜻깊다. 또 ‘중’과 ‘중도’가 다른 것임을 경론을 통해 보여주는 뒷부분의 참고 자료도 주목할 만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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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호 군자(君子)의 현대적 의미는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공자의 군자(君子)론을 앞으로 몇차례 연재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공자가 이야기하는 ‘군자’에 대한 깊은 오해가 오랫동안 있어 왔다.
첫째는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대립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 다름을 인간
의식의 진화 방향에서 서술할 뿐 당위(當爲)로 강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미
치지 못함을 토로할 정도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했다. 
둘째는 군자(君子)는 한자의 뜻이 의미하는 것처럼 신분계급제 사회에서 군주(君主)의 아들
즉, 귀족이나 관료 등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공자는 이 말의 내용을 혁명적으로
그러나 조용하게 바꿨다.
즉 신분의 귀천이 아니라, 그의 인격의 성숙이 군자의 조건이라고 바꿈으로서 신분계급을
넘어서는 사상적(제도까지 바꾸는 것은 그 시대에는 엄두를 못냈지만) 지평을 열었다.
나 스스로 진보적인 인문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10여 년 전 어떤 자리에서
‘진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려고 한다.
“오랫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헌신해 오신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그 동안 1년 반여
인문학 강좌라는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어온 여러분들과 함께 ‘진보의 미래’라는 주제로  오
붓한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된 것은 4.11 총선을 치루면서 나타난 이른바 ‘진보정당의 위
기’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상이나 목전의 대선을 앞둔 진보 정
치 세력의 전략 전술적 목표를 넘어서 꼭 한번 다루어 보고 싶은 테마였습니다.
왜냐하면 요즘의 이런 실태들은 오래 전부터 객관적인 정세의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의 이데올로기와  행동양식(문화) 속에 이미 ‘쇠퇴나 위기’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맞지 않는 신념체계(이데올로기)와 그에 바탕을 둔 낡은 정서 및 행동양식, 인류의식
의 일반적 진보에도 못 미치는 권력지향적 의식 및 헤게모니를 둘러싼 진영 싸움 등은 엄밀
하게 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와는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사회적 부정의나 불평등, 착취나 독재와 싸워온 한국 진보세
력의 역할을 깎아내리거나 경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런 역사적 과제들을
자랑스럽게 수행해온 사람들과 조직들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실사구시하지 못하고, 낡은
시민제보~~!!!!
땅은 정해져 있고 인구는 계속 빠져…
답답하다 공동묘지처럼 죽은 골목…
어떤점이 억지일까 교통지옥을 당해…
억지 기사네
안해줘도 욕 해줘도 지랄 ~~
대중들에게 줄것이 있어야. 서로에…
소통신문을 빛내는 좋은 글들을 쓰…
그냥 내버려두세요.어차피 익산시 …
스물 몇 살에 문화재 문제를 깔끔하…
소통신문 외부 기고가 참 좋네요. …
바다 소리
가족, 그 영원한 이름
딩크족으로 산다는 것!
오고싶은 도시의 경쟁력, ‘익산…
이데올로기와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전위적 역할을 하
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충정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진보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잘못 쓰이고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진보는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수 없이 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는 ‘자유 확대’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유는 ‘자연계의
제약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물질적 자유’ ‘억압과 착취,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는 사회적 자
유’ ‘의식을 가진 고등생명체인 인간만이 갖는 관념의 부자유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는 관념
계의 자유’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인류는 진보의 길을 걸어 왔다고 대긍정하는 입장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과거의 좌우나 진보·보수로 나누어진 진영논리에서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種)
의 입장에서 의식(意識), 생활양식, 사회구조의 일대 변혁이 없으면 어쩌면 종(種) 자체가 소
멸하거나 문명 이전의 혼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동안의 자유를 위한 인류의 오래된 여정,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특성에 기인하
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오래된 진영논리로 이야기
하는 ‘진보의 위기’는 사실의 세계와는 맞지 않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파의 위기를
진보의 위기로 혼동하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진보의 출발점이 될지 모르
겠습니다.
지금의 진정한 위기라면 그것은 과거의 진영 논리가 아닌, 인류 전체의 보편적 진화에 대한
위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위기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금까지의 진보세력이 먼저 스스로를 대전환함으로
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라는 이름표를 붙일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겠지요.”
“새로운 시대의 진보는 독재를 낳게 되어 있는 ‘민주집중제’의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날 뿐 아
니라, 지금과 같이 편을 갈라 결국 다수가 지배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방식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 진보가 선두에 서야 합니다.
비록 소수당이라도 ‘조화의 정치’를 선도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가 무슨 ‘조화’나 ‘상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굴종이나 예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래 사회의 주체라는 주인의식으로 약자의식이나 피해자의식을 넘어서
는 것이 진보정당의 도덕적 힘이 되어야하고, 그것이 결국 진보정치의 가장 큰 자산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계급투쟁론을 비롯한 낡은 사상 이론의 주술(呪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계급 발생을 비롯한 계급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급이 있고, 투쟁이 있습니다. 또 그 사회의 계급구조나 제도가 사람들의 의식(意
識)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계급투쟁의 과정이라거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
은 일면적인 사실을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斷定)하는 것으로 인간과 사회의 실
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온갖 이익에 집착하고 노동의 양극화를 낳고 있으면서도 ‘투쟁’과 ‘연대’의 빛바랜
기치를 들고 있는 일부 현실을 보면서 실사구시해야 합니다.
저는 ‘계급조화론’이 지금의 현실에서는 맞다고 봅니다.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실 분들도 많겠지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는 계급적 모순
을 호도하여 투쟁을 약화시키고 지배계급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음모에서 나왔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라면 자본가까지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지향과 도덕적 힘을 가지고 계급조화론을 당당하게 선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거의 진보가 사회적·물적·제도적 진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
를 확대하는 바탕이었다면, 지금처럼 물질적 수준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고, 자유민주주
의가 절차나 제도로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사회에서는 ‘인간 자체의 진보’ 즉 ‘의식·문화
의 진보’가 사회적 진보를 견인하는 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슨 ‘의식(마음)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류(流)의 사고방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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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패스워드
다.
다만 그 상대적 비중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사구시적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성현(聖賢)보다도 공자의 사상은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상력과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