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9

동사섭 – DocuHut

동사섭 – DocuHut


동사섭

dongsasub.org

 

마음알기, 마음 다루기, 마음 나누기

 

사슬 중 왕초 사슬은 ‘나는 사장이다’라거나

‘나는 교사다’라거나 ‘나는 어른이다’ 등의

‘나는 ~이다’

사슬입니다.

‘~이다’ 라며 자신을 옥죄고 있는 사슬을 던져버리십시오.

 

딸기, 노을, 달님······. 자기가 새로 지은 생소한 이름표에, 처음 만난 사람들, 충남 논산 삼동원에서 동사섭 법회에 참가한 이들은 반별 모임에서도 서먹서먹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울님(용타 스님) 반의 덕유산도, 흐름도, 별님도 자신의 껍질을 깨려 하지 않았다.

동사섭(同事欇)이란 스스로 실천을 통해 선업을 쌓는 보살의 수행으로 권장하는 불교의 사섭법(四攝法) 가운데 하나로, 고통 받는 중생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사섭법에는 중생이 바라는 바를 베푸는 보시섭(布施欇),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하는 애어섭(愛語欇),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이행섭(利行欇), 그리고 중생의 고통을 아파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동사섭이 있다.

먼저 ‘마음 나누기’ 시간이었다. 10여 명씩 조를 나눠 각 방에 빙 둘러 앉았다. 용타 스님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게 했다. 다른 이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이어받은 사람은 앞사람이 한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그의 말에 공감을 표한 뒤 자신의 의견을 낸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가로채거나, 급히 자신의 주장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대화 습관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용타 스님이 제시하는 대화법에 적응하지 못해 금세 얼굴이 일그러지곤 했다. 더구나 용타 스님은 말을 할 때 단지 인지한 사실만을 얘기하지 말고 가슴속의 느낌까지 표현하라고 독려했다. 예를 들어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 ‘오셨어요’라며 ‘사실’만을 얘기할 게 아니라 ‘아버지가 오셔서 기분 좋아요. 얼마나 보고싶었는데요’라며 마음속 느낌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마음 나누기가 된다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고딩’과 초등학교 교사인 ‘바다새’는 속내를 드러내고 마음을 나누기가 얼마나 거북했던지 중간에 이곳을 떠나려고까지 했다.

“처음 만난 분들과 얘기하려니 쑥스럽군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얘기하려니 쑥스러우시다고요. 그러시겠지요. 그런데도 처음 본 사람들도 친근하게 느낄 만큼 따뜻하신 것 같아서 제 마음이 포근해요.”

참가자들은 서서히 어색함을 털어내고 상대방의 말에 일단 공감한 뒤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하나둘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변화가 감지됐다. 자기 말을 끝까지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는 상대에게 눈빛을 반짝이며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쁩니다.”

솔직한 감정 표현이 가져다주는 훈훈한 분위기에 도취되면서 참가자들은 부부간에 ‘사랑한다’ 는 말도 한 번 하지 못하고, 가족 간에도 자신의 속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못한 채 냉랭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마음이나 말은 전혀 살피지 못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자기주장만 했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특히 권위주의적 습성에 젖어 자신의 미세한 정서를 표현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추고 부끄러워하느라 잔잔한 삶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상대방도 살뜰하게 대하지 못한 걸 절감했다. 처음엔 미세한 느낌까지 표현한다는 것이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런 기분까지 숨김 없이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비밀이 사라지고, 한이 풀리고, 생리적 부자유에서 해방되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자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사 명상’ 시간이 주어졌다. 잠시 불만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내용을 작성해보는 것이다. 이들은 감사의 목록을 하나하나 작성해봄으로써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도 사실은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지 깨달으며,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에 따라 주위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을 사과하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용서를 빌었다.

“다른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상대방의 에고(이기심)를 성취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랑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것입니다. 상대의 좋은 점에 대해 ‘당신은 이런 점이 좋아요’라고 아낌 없이 칭찬하십시오.”

처음엔 칭찬하는 것과 칭찬받는 것에 몹시 어색해했지만, 안내자의 지도에 따라 돌아가며 지명한 상대에게 자신이 느낀 점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큰바람님, 점잔만 빼는 대개의 여성들과 달리 정말 그 닉네임처럼 바람같이 걸림 없이 활수한 모습을 보여주니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아가님은 매사에 적극적이어서 어두운 구석을 밝게 변화시키는 것 같아 보는 사람도 기분이 밝아집니다.”

‘칭찬’이 계속 되는 사이, 방 안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밝아지고 있었다. 칭찬의 마력이었다. 칭찬은 마음을 여는 열쇠였다. 이들은 ‘마치 마약을 먹은 기분’이라며, 그 황홀함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동안 쭈뼛쭈뼛하며 마음을 열지 않던 사람들도 모두가 자신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자 처음의 쑥스러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칭찬 명상’을 계기로 그때까지 어색했던 분위기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먹했던 감정을 극복하고 불과 이틀을 함께 보낸 다른참가자들과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마치 백년지기처럼 마음을 열고 깊은 속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하루 한나절씩 진행되는 용타 스님의 강의도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삶의 목적은 행복입니다.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자기 마음을 잘 알고, 잘 다루고, 다른 사람과 그 마음을 잘 나눌 수 있으면 지고한 행복을 얻습니다. 그러면 명예와 권력과 건강과 돈은 부수적으로 얻어집니다.”

그는 행복을 얻는 방법으로 마음 알기와 마음 다루기, 마음 나누기를 제시했다.

“운명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사슬로 자기 자신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사슬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운명을 방해하는 사슬들은 무엇입니까? 목에 깁스를 한 경화 사슬, 온갖 사념의 사슬,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음시각 사슬,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 사슬, 남의 표정만 살피는 눈치 사슬, 자신을 떳떳이 보여주지 못하는 은폐 사슬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과감히 저질러야 합니다. 과거는 제치고, 미래는 저지르십시오.”

사슬을 끊는 시범을 보인 이는 놀랍게도 용타 스님 자신이었다.

“왜 촐랑대지 못합니까.”

용타 스님은 그날 밤 참가자들이 빙 둘러앉은 법당에서 ‘이곳을 중앙시장으로 생각하라’며 중앙시장 장사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골라,골라,골라.”

남대문 시장의 좌판 상인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스님 체면일랑 훌훌 벗어던진 채 손과 다리를 맞부딪치며 ‘골라,골라’를 연발했다.

조별로 목에 깁스를 한 듯 가장 ‘촐랑대지’ 못할 것 같은 이들을 조원들이 직접 뽑았다. 과연 뽑힌 이들이 용타 스님처럼 ‘촐랑댈’ 수 있을까? 대부분 회의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의외였다. 승복을 입은 용타 스님이 장사치를 흉내 내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틀에 갇혀 남의 눈치만 살피던 사슬을 끊어버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골라, 골라.”

드디어 그토록 자신을 옥죄던 깁스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고정된 틀에서 탈피하고 있었다. 참가자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슬 중 왕초 사슬은 ‘나는 사장이다’, ‘나는 교사다’, ‘나는 어른이다’ 등의 ‘나는 ~이다’ 사슬입니다. ‘~이다’라며 자신을 옥죄고 있는 사슬을 던져 버리십시오. 화내고 싶을 때 화내지 못하게 하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게 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사슬입니다.”

용타 스님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든 사슬을 벗어나라고 독려했다. 더욱 과감한 행동 명상이 시작되었다. 무릎을 꿇고 둘씩 맞붙어 싸우는 개싸움이었다.

행동 명상이 가열되자 숨소리들이 거칠어지고, 맞부딪치는 고함소리가 커졌다. 수십 년 동안 잠재해 있던 분노와 한이 폭발하는 듯했다. 거친 숨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한 맺힌 울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울음이 나오면 마음껏 우세요. 울음을 막는 사슬도 끊어버리십시오.” 또 다른 진행자인 대화 스님의 위로에 참가자들은 사슬에 묶인 목을 놓아버렸다. 큰 강당은 온전히 울음과 하나가 되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참가자들이 가슴속에 있는 것을 남김없이 쏟아내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때 강당 중앙으로 걸어 나온 이는 이혼녀의 딸로 자란 삼십대 주부, 호수였다.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개싸움을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낸 그였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했습니다. 아빠가 없어 항상 외로웠습니다. 엄마가 미웠습니다. 스무 살 때 남편과 결혼을 했고, 남편은 내 안에 든 흑진주를 꺼내겠다며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엄마처럼 버림받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조차 잘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날 포장해왔답니다.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혼녀로 살아가는 삼십대 중반 여성인 큰바람이 앞으로 나왔다.

“저도 불가피하게 이혼했답니다. 제 딸도 훗날 여러분처럼 이렇게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이 자리에서 저를 원망할까요? 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동안 먹고사느라 딸이 재롱 떠는 모습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답니다. 편모에 대한 편견이 이토록 무서운 사회에서 편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 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그런 상황에서도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보듬고 살아온 엄마의 입장을 헤아려본 적이 있나요. 그런 엄마를 이해해주고 용서해줄 수는 없나요.”

큰바람의 호소에 강당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긴 침묵이 지나고, ‘사랑하게 된다면’이란 닉네임을 가진 이십대 후반 청년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이젠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촉망받는 수재였지만, 6·25 때 할아버지가 월북한 뒤 빨갱이 자식으로 내몰리며 평생 폐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개월씩 가출하더니, 마침내 절로 출가해버렸습니다. 새어머니가 들어왔다가는 나가고, 또 다른 여자가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집안을 돌보는 사람이 없을 때 제가 동생들까지 돌보아야 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는 여전히 원한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한 번만이라도 어리광을 피워보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전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게 된다면’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가 또 있었다. 갓난아이 때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한 뒤 어머니마저 떠나버리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덕유산이었다. 민주화운동 때도 수사과정에서 늘 빨갱이임을 자백하라며 고문을 당했던 덕유산은 ‘사랑하게 된다면’과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그의 아픔을 보듬었다.

평소엔 과거나 상처를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용감한 척 살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은 이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뼛속 깊은 아픔들을 보며, 모두 껴안을 수밖에 없는 아픈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갑자기 용타 스님이 일어나 건너편의 처녀 햇살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스님의 돌연한 행동에 햇살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스님의 정성스런 절은 중단되지 않았다. 마치 부처님께 올리는 듯한 지극정성의 삼배에 햇살은 눈물을 짓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된 ‘절 명상’은 각자가 모든 사람에게 삼배씩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삼배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자신을 위해선 생선 한 토막 구워먹어본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을 방치한 채 살면서 자신의 가치마저 상실해 버린 큰바람은 쉰 살이 넘는 덕유산 등의 극진한 삼배를 받으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가치 있는 존재야······.”

이처럼 존귀한 대우를 받아본 적도 없고, 자신이 존귀하다고 여겨본 적도 없었던 그는 마치 자기 안의 보물을 드디어 발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사랑하게 된다면’의 눈물샘이 고장 난 것은 그때였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던 그는 지극정성으로 자신에게 삼배를 올린 한 참가자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그의 가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절을 하는 이도, 받는 이도 없었다. 부처만이 남았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루어놓은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채 끝없이 새로운 욕망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한번 확인해봅시다.”

안내자의 말에 따라 ‘지족(知足) 명상’이 시작됐다. 이루지 못해서 불만이었던 것을 놓아버리고, 이미 이루어지고, 채워지고, 완전한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나는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신비한 초차원적 존재입니다.”

“나는 천재 예술가 천만 명이 동원해도 빚어낼 수 없는 대예술품인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에겐 나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

“난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갖고 있거나 이룬 것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잃어버렸던 재산을 다시 발견한 듯 이들은 마음의 부자가 되어갔다.

용타 스님은 직접 개발한 ‘나지사 명상’을 통해 참가자들이 불쾌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마음을 다루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제시했다. 나지사는 ‘구나’와 ‘겠지’ , ‘감사’의 끝 글자를 합친 말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랬구나’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 다음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며 상황을 이해하고, 그나마 더 상황이 나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밤늦게 들어오면서 문을 ‘쾅’하고 닫았을 때 남편은 아내에게 즉각 화를 내기 일쑤다. 그때가 나지사 명상이 필요한 순간이다.

일단 “아내가 문을 ‘쾅’ 닫고 들어오는구나”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 그리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친구를 만난다고 했는데, 잘 사는 친구들이 잘난 체를 해서 속이 상했겠지”, “기분 나쁜 일이 있겠지” 등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어 “기분이 나빴을 텐데 밖에서 싸우지 않고, 잘 참고 이렇게 들어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화가 나서 앞도 잘 보지 않고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잘 들어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며 “그만하니 감사하다”라는 마음을 내면 불처럼 일어났던 화가 가라앉는다. 참가자들은 이런 상황을 설정해 노트에 작성하거나 조원들과 얘기를 해봄으로써 실제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용타 스님은 이제 만족스러움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욕구마저도 넘어서라고 했다.

“사람은 욕구 덩어리로 태어납니다. 욕구가 좌절됐다고 생각하면 불행을 체험하고, 욕구가 성취됐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체험합니다. 이미 성취한 것만 생각해도 행복해지지만, 욕구 자체를 놔버리면 해탈이 됩니다.”

욕구도 놓고, 사고도 놓고, 개념조차 놓고 사물을 무심하게 대하는 ‘무심 명상’의 시간이었다.

“사물을 볼 때 개념화하는 실체 사고가 무너지면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다. 실체 사고의 핵심은 ‘나’입니다. ‘나’가 만들어지면 ‘너’가 만들어지고, ‘너’가 만들어지면 ‘그’가 만들어지고, 모든 것에 꼬리표를 붙이게 됩니다.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것이다’라는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삼동원의 주변 경관을 무심하게 바라보도록 했지만, 말처럼 무심 명상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물을 보는 순간 ‘저건 무엇이다’라고 개념화하고, ‘예쁘다’라거나 ‘이상하게 생겼다’라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법당에 앉아 모두 눈을 감았다. 용타 스님은 자기 앞에 한잔만 마시면 곧바로 죽음에 이르는 독배가 놓여 있다 여기고, 마음으로 독배를 마시라고 했다. ‘독배 명상’이었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마시는 독배였지만, 참가자들은 쉽게 독배를 들이키지 못했다. 걸리는 게 많았던 것이다.

“무엇 하나 해놓은 게 없어 억울해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딸이 가장 걸렸습니다.”

이들은 독배를 마실 수 없게 한 집착이 무엇이었는지 살핀 다음 그런 집착조차 놓고 독배를 마셨다. 그리고 우주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서 우주만큼 커졌다. 감각조차 놓아버리고 무심하게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옴나 명상’이고 ‘무아 명상’이었다.

“이 명상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줍니다. 우주만큼 커진 내게 고통은 무한대분의 1이므로 고통은 0이 됩니다. 자신의 고통은 0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고통은 무한대로 보아야 합니다.”

긴 항해의 마지막 밤, 모두가 빙 둘러앉은 가운데 용타 스님은 큰 물통 안에 물이 든 컵 하나를 넣어두고 이채로운 시연을 했다. 미국 에미서리 공동체의 대표적 긍정 명상인 ‘물컵 명상’이었다.

“물컵 속에 담긴 물은 오염되기 전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온갖 교육이 시작됩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 , ‘여자가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등 온갖 것이 주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잉크를 찍어 물에 타면서 맑은 물이 오염되는 모습을 시연했다. 물은 완전히 잉크색이 되어버렸다.

“그럼 이 물을 어떻게 하면 맑은 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용타 스님이 잉크를 끄집어내기 위해 족집게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미 경계가 사라진 맑은 물과 잉크를 구분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족집게로 잉크를 집어내려 했지만 그렇게 해서 물이 다시 깨끗해질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절감할 즈음 그가 갑자기 옆에 놓여 있던 주전자를 들었다. 그리고는 컵 위에 맑은 물을 콸콸 부었다. 컵 속의 잉크 물은 넘쳐버렸고, 컵 속엔 순식간에 맑은 물이 들어차 있었다.

“아~하.”

모두에게 말 없는 깨우침.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몰아낼 수 없고, 어두움은 긍정과 칭찬과 밝음과 맑은 물로만 없앨 수 있다는 깨침이었다. 새로운 깨침으로 한숨 곤히 잤고 났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밝아지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간다는 것을 다시금 가르쳐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