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과 성 경
제 2 문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사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습니까?
답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1) 어떻게 우리가 그를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2)
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딤후 3:16).
2)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드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실 터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에서 무엇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그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 (계 22:18,19) I. 인간 스스로 알 수 없는 놀라운 세계
이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상하게도 주님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란 무엇을 말하나요? 그것은 참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참 진리를 진정 알아야 할 지성인들이 사실상 그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인간의 지성이 하나님의 참 진리를 자동적으로 알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그 지식의 교만으로 참 지식을 보는 눈을 잃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예수님의 말씀은 동시에 교육도 잘 받지 못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지라도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참 진리를 아는 참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노력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미지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풍선을 불면 불수록 사방으로 팽창되듯이 인간의 학식도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경이스럽고 끝없는 신비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별의 신비를 연구하기 위해서 새롭고, 보다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발명했다고 합시다.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아마도 인간이 또 다시 연구해야 될 수백만의 새로운 별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이론은 부단히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발견하면 할수록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결국 만족하지 못하며, 또한 어떤 것도 온전하게는 알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학 뿐 아니라 철학, 의학, 인문학, 수학 등 모든 경지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 자력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참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도 죄로 인하여 마음이 부패하고 희미하여 짐으로 인하여 다 잃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II.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지식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시며, 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확실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분을 하나님이라 부를 수가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이 지식은 태초부터 두 가지 방법으로 인간에게 왔습니다.
1) 자연계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첫번째 방법은 흔히 말하는 자연계시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말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즉 모든 만물, 그의 피조물 세계에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을 계시하셨습니다. 자신의 위대함, 자신의 섬세함, 자신의 능력과 사랑, 그리고 창조주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인간이 범한 죄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과 양심은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은 죽은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이 자연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 보는 인간의 시력이 더 이상 사실을 바로 볼 수 없는 상태로 떨어졌다는 것이지요.
2) 특별계시
결국 하나님으 인간에게 특수한 방법으로 자신과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시라고 해서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두 번째 방법은 특별계시입니다.
하나님은 낙원에서도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피조물들과 어울러 그의 말씀도 가졌습니다. 아담은 자연을 봄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무에서 과일을 따먹는 것 같은 아주 간단한 일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아담은 “하나님 말씀의 빛 아래서” 자연의 현상들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아담이 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그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식하고 행동을 결정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뱀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지식을 근거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하나님을 거슬러 범죄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도 거절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때에 어떤 것이 옳은가를 말해 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행동 하였습니다.
대신에 그는 진리를 발견하려는 소위 “과학적 방법”, 즉 시행 착오의 방법을 시도하려고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담과 모든 그의 후손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자들 외에는 흑암 속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불완전하여 어떤 “어둠”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은 아직도 그가 만드신 만물에 밝게 비치고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 죄 없는 아담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없이는 자연의 “빛”을 이해할 수 없었을진대 하물며 오늘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범죄한 후의 우리 인간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니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특별히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경에만 계시되어 있습니다.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을 그 상태대로 버려 둔다 해서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자연 계시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도록 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특별계시인 성경에서만이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 받기 위해서는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III. 무오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이 특별계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록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구약은 선지자를 통하여, 신약은 여러 사도들을 통하여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격과 성격, 삶의 배경을 전혀 무시하지 않고 활용하시면서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가능케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딤후 3:16).
40여명이 넘는 저자들이 1600년에 걸쳐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무식자, 유식자, 농부, 어부, 군인, 왕, 학자, 의사 등 참으로 다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 같음을 느낍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저자가 한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하심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합리주의를 근거로 이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지만 기적과 같은 것은 받아 들일 수 없는 신화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말을 통하여 정리하자면 성경에서 남는 것은 도덕적인 교훈 몇가지와 성경 껍데기만 남습니다. 왜나햐면 성경은 처음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위 신정통주의자, 또는 바르트주의라고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성경이 인간이 기록한 것이고 오류가 당연히 많지만, 우리 마음 속에 감동으로 다가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일 된다(to become)"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사람들이 이 인간의 말인 성경을 읽을 그때, 하나님은 이 인간의 말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의 말인 성경을 아무튼 사용하신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임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갑에게는 성경의 한 부분만이 말씀하고, 을에게는 성경의 저 부분만이 말씀으로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드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실 터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에서 무엇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그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라"(계 22:18,19)
우리가 믿는 견해를 개혁주의적 견해라고 하는 데, 그것은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므로 우리가 이해를 지금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낱말 하나까지 무오한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말씀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증거를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설령 설령 불신자가 성경을 읽는다 하더라도, 또는 우리가 일시적으로 그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모든 성경은 그대로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IV. 하나님의 믿음과 삶의 유일한 규칙으로서의 하나님 말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유일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한 전적이고 무한한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신뢰를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 우리는 성경이 무오(無誤)함(Infallibility)을 믿습니다.
이 말은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문맥이나 말들의 상황을 떠나서 성경의 모든 진술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시편 53:1에는 “하나님이 없다.”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단지 진술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 말만 꺼내어서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직입니다. 성경이 무오하다는 것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 부분은 진리이다라는 말입니다.
그 진술의 모두를 읽자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입니다.
성경 전체를 읽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 할 때 우리는 성경의 모든 진술이 무오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경은 명료(Clarity)하다.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적 훈련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직접 말씀하십니다.(엡 6:1-3).
어떤 교회는 이것을 부인하면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자들은 사제나 학자들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알반 사람들에게 성경을 마음대로 읽는 것을 금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많은 것이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박식한 학자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님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아주 분명히 이해하도록 인도하실 수 있고, 또 인도하십니다.
구원의 길을 보일 뿐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3) 성경은 충족(Sufficiency)하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위해 알아야 될 바를 알기 위해서 성경 외에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강조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가 이것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많은 그릇된 혼합주의적 종교가 이것을 부인합니다. 성경외에도 다른 계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로마 카토릭에서는 성경을 믿지만, 마찬가지로 교회의 전통과 교황의 공적 말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성경과 아울러 ‘과학의 발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계 22:18-20).
성경은 스스로 말하기를 성경을 가진 자들은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하다.”고 말합니다.(딤후 3:15-17).
그러면 신조나 신앙 고백, 개혁주의 교회의 교리서 등은 어떻게 생각하여야 합니까?
당연히 우리는 이것들이 성경보다 훨씬 아래에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경과 동등시 되어서는 안 되며, 또 되려고 의도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서 편리한 요약으로 사용 할 뿐이며, 주석과 같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리 문답만을 믿는다.”고 말한다거나 그것에 결코 만족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은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교리 문답의 가르침이 올바르다고 입증됨을 항상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은 인정될 수 있고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 문]
1) 교육을 많이 받은 현자는 교육을 받지 않은 범인, 즉 보통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데 더 나은가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자연계시와 특별계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왜 우리에게 특별계시가 필요한지를 함께 설명하여 주세요.
3)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서 사물을 판단하였던 인간이 이제 실험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4) 자유주의 와 신정통주의, 그리고 개혁주의 성경관에 대하여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하여 보세요.
5) “성경이 무오하다.” “성경이 명료하다.” “성경이 충족하다.”란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보세요. 그리고 누가 이것을 부인하는지 말해 보세요.
6) 성경이 충족성을 가졌다면 왜 교리 문답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