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2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증오와 전쟁의 되풀이, 이제는 끝내야 한다”

등록 :2021-11-21 18:56수정 :2021-11-22 09:39
조현 기자 사진
조현 기자

【짬】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송강호’(63)란 인물은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가 지난달 28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지난해 3월 구럼비 바위 발파 8주기를 맞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안에 남아 있는 구럼비 바위 출입을 군이 거부하자 철조망을 끊고 들어갔다가 2년형을 선고받고 1년7개월 옥살이를 했다. 제주 강정마을만이 아니라 지구의 가장 골치 아픈 분쟁지역으로 달려가 평화활동을 해온 평화운동단체 ‘개척자들’의 씨앗을 심은 그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11년부터 제주 강정마을에서 ‘개척자들’ 소속 사역자 4명과 함께 처음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2016년 해군기지가 완공된 뒤엔 평화적으로 용도를 전환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독일교회 지원으로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실천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개척자들 누리집 갈무리

그는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왜 아직도 거친 현장을 떠돌까. 그것도 장신대 동기인 부인과 함께 말이다. 출발은 1994년 아프리카의 르완다 내전 지역에서였다. 장신대에 다니며 서울 용산 보광중앙교회 교육전도사를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앙의 의미를 잃던 청년들과 함께 재난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천재보다 인간이 만든 인재로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으니, 다음엔 분쟁지역에 직접 가보자’는 말을 했다. 그 말을 기억한 청년 3명이 르완다 내전이 터지자 ‘함께 가자’며 독일까지 찾아온 것이다.


“현장에 가보니, 부족들 싸움에 제삼자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중단시켜야 하는데 선교사들은 선교할 수 없다며 다 떠나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방치된 난민 5만 명을 유엔 직원 10여 명이 돌보느라 과로사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밤새 노래를 불렀다. 박진감이 넘쳤다. 우리의 쾌지나칭칭 같은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내용을 물어보니, ‘후투족의 눈을 뽑아 잘근잘근 씹어먹세, 귀를 잘라 씹어먹세’ 같은 잔인한 보복을 다짐하는 노래였다.” 아이들 마음에 스며든 증오에 당황했다고 한다.



분쟁지 평화단체 ‘개척자들’ 만들어
2011년부터 강정마을에서 활동
지난해 철조망 끊고 해군기지 진입
1년7개월 옥살이 뒤 지난달 가석방



최근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 펴내
“강정에서 한·중·일 평화일꾼 키울터”



사진 개척자들 누리집 갈무리

개척자들은 분쟁과 재난 지역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아이티, 후쿠시마, 동티모르, 아체로 달려가 고통받는 이들을 도왔다. 분쟁지역마다 공통점도 발견했다.

“유럽국가들은 식민지를 다른 부족에게 악역을 맡겨 지배했다. 현지인들은 오히려 유럽인들은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직접 자신을 탄압한 다른 부족들을 원수로 생각한다.” 그가 갈등과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유다. 이런 갈등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유럽의 청년들까지도 참여해 가해자와 피해자, 제삼자가 함께하는 평화캠프를 열어 생각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개척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에서 15년간 평화학교를 지속해서 운영한 것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과 아체에서도 평화캠프를 열었다.

“선교사들은 제국의 하수인이 되어 침략을 돕고 노예무역까지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이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한국인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을 떠올리듯 경직돼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무고한 아이들까지 학살한 원한이 아이들 가슴에까지 박혀있는데, 한국교회는 그곳에 가서 선교한다며 ‘땅 밟기’를 했다. 네덜란드가 1945년까지 식민지화한 인도네시아도 북부 일부 지역은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보다 더 많았는데 지금은 이슬람교도가 90%까지 늘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네덜란드의 개’로 불린다.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도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불교국가인 미얀마 지배에 이용하면서 생긴 것이다. 세계전도라는 구호에 앞서 그들의 아픈 역사에 어떻게 정직하게 응답하느냐가 더 시급하다.”




한국 개신교에서 보수적인 예장합동교단 소속 교회에 다녔던 그도 근본주의적 신앙관을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더 배타적이 되고, 주변을 악마화하며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일까. 예수님의 이웃사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그 의문으로 출발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분쟁지역의 아픈 역사를 실감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의 이웃사랑과 평화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의 현주소도 자각했다. 그는 감옥에서 이런 깨달음으로 ‘평화를 위한 순종’이란 부제를 달아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대장간)란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남들은 다 불타는 지옥으로 가고 자신들만 최상의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해도, 그가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불교든 외피에 상관없이 힘과 권력을 숭상하며 싸우는 이기주의자들은 모두 하나”라며 “이기적 본능에서 해방돼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희생할 수 있는 이타적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 베푸신 삶의 기적이자 구원”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녀사냥을 하고 노예무역을 했던 이들과 천국의 식탁에서 함께할 수는 없으며,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천국에 못 들어올 자들도 많고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도 천국에 들어올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역비로 월 30만원을 받는 평화활동가 부부의 아들로 가난하게 자라 지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는 아들도 분쟁지역에 봉사하러 가겠다고 한단다. 감옥살이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강정마을로 향하는 송 박사도 소망을 보탰다.

“강정마을에서 평화대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한·중·일 청년들이 함께 평화훈련을 해 평화일꾼이 되도록 돕겠다. 강대국들의 군사 기지화되는 오키나와, 대만과 제주의 연대를 강화해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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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20182.html?fbclid=IwAR0VZZ9_o2tX4oX23ZbeWxfBG5RyefBSRcSFPjBGUwsFs0xVDz7yKhgesG0#csidxf677e596d891a6991200d480a802e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