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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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면의 빛’ 따라 평화를 증언한다"
기자명 경동현 기자
입력 2025.10.23 

[인터뷰] 퀘이커 신학자 에스더 몸보


"모든 사람은 하느님과 직접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체험이 곧 성사입니다."

지난 17일, 퀘이커 신학자 에스더 몸보 박사에게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소 낯선 퀘이커 신앙의 핵심과, 오늘날 세상 속에 던지는 메시지를 들었다.

퀘이커는 17세기, 창시자 조지 폭스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너희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떨라(quake)"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 말을 조롱하던 이들이 폭스와 그의 공동체를 '퀘이커'(떠는 사람)라 불렀고, 이후 이 이름은 '하느님 앞에서 떨며 사는 사람들', 곧 '내면의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뜻하게 됐다.

숫자는 적을지라도, 세상의 불의에 맞서 비폭력적으로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평화를 증언하는 퀘이커들의 목소리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라는 풍부한 복음적 가르침이 있지만, 많은 신자가 이를 '선택 사항'으로 여기며 성당 안의 신앙생활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퀘이커들이 보여 주는 일상 속 평화 운동과 신앙의 단단한 연결은, 가톨릭교회가 추구해야 할 복음적 사회 참여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전 세계 퀘이커(종교친우회) 신자 70여 명이 모임과 세계협의회(FWCC)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모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등 다섯 대륙의 대표들이 각 지역의 평화 운동과 공동체 현안을 나눈 이 자리에서, 케냐 출신 퀘이커 신학자이자 FWCC 총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스더 몸보(Esther Mombo) 박사를 만났다.

그의 영적 뿌리는 1900년대 초 케냐에 들어온 미국 퀘이커 선교사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할머니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글을 배우며 퀘이커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는 할머니에게서 퀘이커리즘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키웠다.

몸보 박사는 현재 전 세계 퀘이커 공동체의 연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리무르 세인트 폴 대학교에서 교회일치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퀘이커 신학자 에스더 몸보 박사. (사진 제공 = 에스더 몸보)

퀘이커 신앙의 핵심: 제도 너머의 직접적 하느님 체험
모두가 사제, 함께 기다리고 누구든 침묵 깰 수 있어

<지금여기> : 가톨릭 신자들에게 퀘이커리즘과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에스더 몸보 : 퀘이커리즘은 17세기 영국에서 조지 폭스가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독교 제도와 전통에 반대하며 형성된, 급진적인 종교개혁 운동의 한 흐름 속에서 생겨난 신앙입니다. 퀘이커들은 모든 사람이 사제나 교회를 거치지 않고 하느님과 직접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여기> : '내면의 빛'이 가톨릭의 '성령'이나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이해와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퀘이커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요?

에스더 몸보 : 퀘이커 신앙의 핵심은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자연스럽게 평화, 진실성(Integrity), 평등, 공동체, 청지기 정신이라는 가치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가치를 살아내는 것이 곧 신앙 실천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퀘이커리즘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는 세례나 성찬례 같은 외적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에스더 몸보 : 퀘이커는 전통적인 성찬례나 세례 예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곧 성사이기 때문에, 특정한 의식을 통해 성사를 기념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성만찬과 세례는 본래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 체험을 목적으로 하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 본래 의미를 잊은 것 같습니다. 퀘이커는 이러한 영적 체험 자체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의 '침묵 예배'에서 신자들은 무엇을 체험하고,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는지 궁금합니다.

에스더 몸보 : 퀘이커는 예배를 처음부터 둥글게 모여 앉아 침묵 속에서 드립니다. 사제나 목사가 “무엇을 하라”고 인도하지 않고, 신자들은 침묵 속에서 각자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다 누군가 하느님에게서 말씀을 받으면, 그 사람이 일어나 공동체와 나눕니다.
퀘이커 신앙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제이기에, 누구든 침묵을 깰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나 더 높은 영적 권위를 가진 사람도, 신성하게 구별된 장소는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듣기 위해 기다릴 뿐입니다.
10월 서울 합정동에서 열린 퀘이커(종교친우회) 세계 모임에서 침묵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들. ©경동현 기자

<지금여기> : 퀘이커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에스더 몸보 : 전 세계 대부분의 퀘이커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앙의 중심으로 여깁니다. 특히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퀘이커가 ‘평화 증언(Peace Testimony)’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퀘이커에게는 하느님을 직접 경험하는 ‘직접적 계시’가 성서 말씀보다 더 중요합니다. 개인의 경험이 참된 것인지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분별합니다. 누군가 “하느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 공동체 전체가 그것이 진정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집단적으로 묻고 시험하며, 만장일치로 결정합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의 침묵 영성은 가톨릭의 '관상 기도' 전통과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에스더 몸보 : 그렇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퀘이커를 신비주의 계통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다만 가톨릭 신비주의자는 미사에 참여하거나 사제의 말씀을 듣는 등 매개체가 있지만, 퀘이커는 오직 하느님께 직접 귀를 기울이는 것 외에 다른 매개체가 필요 없습니다. 이 점에서 퀘이커의 침묵 영성은 ‘전적인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 퀘이커 : 비폭력으로 사회 정의 실현
당연한 성평등,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만장일치로 뜻 모아


<지금여기> : 퀘이커는 오래전부터 '평화 증언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현대 사회의 갈등 속에서 퀘이커의 평화주의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습니까?

에스더 몸보 : 퀘이커는 비폭력과 평화 운동으로 인해 ‘평화 교회’라고도 불립니다.
퀘이커에게 평화는 단순히 전쟁 반대를 뜻하지 않습니다. 기후 정의, 인종차별 반대(Black Lives Matter)와 같은 다양한 사회 정의 문제와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는 시위에 참여하고, 의원들을 설득하며, 때로는 전쟁에 쓰일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평화 운동에 참여합니다. 이 모든 활동의 기반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영적 동기가 있습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 공동체가 오늘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과제는 무엇인가요?

에스더 몸보 : 모든 퀘이커가 동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퀘이커는 불평등, 노예제, 여성 차별과 같은 문제에 맞서 싸워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불평등 문제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주된 관심을 갖고 행동합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 입장에서 현대 가톨릭교회가 배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에스더 몸보 :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퀘이커는 역사적으로 식민주의, 전쟁, 무기 사용을 반대하며, 대화를 통해 비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통을 쌓아 왔습니다.
또한 퀘이커 입장에서는, 가톨릭에 여성 주교나 사제가 없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녀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이러한 점들은 가톨릭교회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하시는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역시, 위계질서 없이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퀘이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여기> : 퀘이커의 비폭력 평화 운동이 일반 시민 사회의 운동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언인가요?

에스더 몸보 : 가장 큰 차이는 뿌리에 있습니다. 시민단체(NGO)들이 활동의 ‘열매’에 집중한다면, 퀘이커는 ‘정의’라는 깊은 영적 뿌리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믿음과 예수님의 평화 가르침이 모든 활동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과정의 정의로움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만장일치로 뜻을 모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의 증언입니다.

에스더 몸보 박사는 퀘이커의 정체성이 단순히 제도나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내면의 빛'을 따라 평등과 정의, 평화를 살아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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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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