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알라딘: 무교-권력이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2009, 2024 개정판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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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들통문24-01]

 1. <무교-권력이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최준식 지음)은 2009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 기타 한국의 군소종교 어느 것을 막론하고, 한국인의 심층에는 '무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론을 펴는 책입니다. 그리고 무속(巫俗)이 아니라 당당하게 '무교(巫敎)'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펴고 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지 15주년을 맞으며,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 현 정권 출범을 전후하여 '무당'은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무당-친화 정권은 말도 안 돼!"라는 강력한 사회적 공론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불관언' '마이동풍' '마이웨이' 하는 이 정권은 '무속'에 의존, 의지하고 있다는 혐의를 짙게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교일치'가 아닌 '정교분리'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이므로, 국정 책임자가 특정종교(무교)에 의존하고 의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암암리에 실행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겠지요. '무교'가 '모진 놈'을 만나서 고생하는 셈입니다. 
3. "무교는 죄가 없다"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곡되고 오염된 부분이 많지만, 그렇게 따지면 한국의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는 오죽한가요? 게다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서든 '절박한 심정에서'든 무교 사제(무당)을 찾는 것이 한국인의 현실입니다. 이제 한국인의 무교 사랑은 해외 유튜브들에게도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되고 있습니다. 
4. 실상, 한 사람이 하나의 종교(교단)에만 속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 서구종교구 들어오면서 보편화(?)한 '짧은 생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인의 심층의식을 가장(?) 잘 대변하는 무속의 복권은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권력에 밀린"에서 '권력'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겠지요. 
5. 무교의 복권은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생각됩니다. 곧 나올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개정판)을 기대해 주세요. 



알라딘: 무교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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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쪽



책소개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 종교의 기본 코드는 표층의 유교(儒敎)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무교라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종교 전반을 일별한다.

책은 결론적으로 “종교로서의 무교”를 제자리에 복권시킴으로써, 정신세계의 실제(무교)와 현상(외래종교, 기성종교) 사이의 괴리로부터 빚어지는 한국사회 정신문화, 종교문화의 부조리와 파행을 치유하고 무교의 문화적 자산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목차


Ⅰ.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는 미신인가?

- 무교는 어떤 종교?
무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 / 무교의 기본 구조/ 무당은 순전한 사제 / 무당이 되려면? / 후post 내림굿 이야기

- 굿은 어떻게 하나
굿이란 언제 그리고 왜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의 무교
굿의 종류에 대해 / 전형적인 문화영웅, 바리공주 이야기 / 무교의 신령은 잡령?

Ⅱ.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 한국 무교 약사
무교는 한국인의 근본 종교 / 한국 무교 약사略史와 그 전개 양상 / 신라 금관 이야기 / 신라 이후의 무교 이야기

- 무교의 현재
무교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를 찾아 / 조선 이후의 무교 / 현재의 무교 / 한국인의 근본 종교는 분명 무교!

Ⅲ.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 세계

-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행信行 구조 / 그리스도교의 경우 / 불교의 경우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월적인 존재와 정말로 소통하는 것일까? / 맹신 혹은 유치한 신앙의 폐해
- 종교 신앙은 일반적으로 다 똑같다
고등종교와 기층 종교의 차이란? / 그저 권력으로 판가름 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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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저자 및 역자소개
최준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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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79년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8년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졸업
1989년 종교문화연구원 설립
1992년~2021년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역임
2005년 한국죽음학회 설립
2021년~ 이화여대 명예교수

저서
『죽음, 또 하나의 세계』, 『종교를 넘어선 종교』,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1, 2, 3』, 『길은 없지만 가야할 길』, 『죽음의 미래』, 『전생이야기』,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 『사자와의 통신』, 『한국 사자의 서』, 『종교, 그 지독한 오해와 편견』, 『죽음학 개론』, 『사후생』(역서), 최준식의 메타 종교로 가는 마지막 춤 시리즈 등 접기

최근작 :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다>,<아는 듯 몰랐던 한국 문화>,<종교분쟁, 무엇이 문제일까?> … 총 13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무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생활필수품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우주로 로케트가 날아가는 21세기, 그리고 기독교를 비롯한 ‘고등종교’가 엄청난 교세를 확장시켜가는 현대사회에, 무속이나 점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사양산업이 되었어야 마땅할 터.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무속인(무당)의 숫자는,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고 있으며, 골목과 산기슭을 배회하던 점집이나 귀신이야기는 TV를 넘어 인터넷 속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이는 ‘무속’의 이면에 간단히 치부하거나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깊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저자는 무교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일의 자생적 전통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교를 무속으로 비하하고, 그 속성에 대해 오해하거나 편견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무교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동안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당한 민중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달래 왔던 핵심적인 종교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기성종교의 신앙행태조차 무교의 속성을 차용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현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성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기실 무교가 ‘무속’으로 전락한 것은 순전히 무교가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무교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 필요
무교의 복원 내지 복권이 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잃어버린, 혹은 유폐시킨 종교적 정체성을 양지로 드러내서,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인 성숙을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지금껏 겪고 있는 온갖 파행적 사회문화의 치유와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교의 문화 속에 대단한 문화적 자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즉흥 연극판이라 할 수 있는 굿판에서 연주되는 음악, 춤, 음식, 복식 등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다. 이렇듯 무교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외국인도 우리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셋째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서 남북 통일이나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등을 앞에 두고, 한국 정신의 원형을 오롯이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이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갖든지 기본적으로 무교적인 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떤 신앙을 갖든지 그 숭배하는 대상이 명목상으로만 다를 뿐 실제의 신앙 구조와 내용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무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복권시키는 데 나름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무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신문화세계는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접기

평점
분포

7.6






종교학자가 쓴 무교에 대한 책
더불어 모든 종교의 근원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정리가 속시원하다.
thecodeb 2023-08-2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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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짜 전통이자 종교-신앙은 바로 무교이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은 유교와 기독교-서양 문명에 젖어 무교를 배척하지만, 사실은 원초적인 마음 속에서 여전히 무교를 숭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진짜 자화상이다.
가람 2013-08-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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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우리 신앙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해

민족 고유의 종교로서 중국에 도교가 있고, 일본에 신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엇인 있을까? 바로 ‘무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교나 일본의 신도가 그 나라의 민중 종교로써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무교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이 책 안에는 놀랍게도 현재 무당의 수가 대략 20~30만 명 정도라고 쓰여 있다. 대비하여 신도의 수가 가장 많다는 기독교의 목사가 10만 명이 못된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수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제일의 종교는 무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무교’는 어엿한 하나의 종교이며, ‘무당’은 신도가 신령과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어엿한 사제이며, ‘굿’은 엄정한 체계를 갖춘 엄연한 종교의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무당이 되는 과정, 굿의 종류와 내용,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령들에 관한 얘기들이 매우 재밌고 흥미롭게 쓰여 있다.


저자는 ‘한국은 무교의 나라’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극성스런 기독교도가 들으면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주장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는 반드시 그 지역의 토속 신앙과 습합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오리지날’을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와 한국의 불교와 일본의 불교가 부처를 신앙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토속 신앙과 외래 종교가 섞인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외래 종교 역시 우리 토속신앙인 무교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종교의 이름이라는 외피를 벗겨보면 내용물은 오히려 ‘무교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거의가 무교의 신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무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것은 ‘주술적인 기복신앙’이라는 점인데, 우리나라의 불교나 기독교를 보면 현세 기복적 특징을 전혀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무교적이다.



우리나라이 기독교는 ‘유독 열광적인 기도와 방언이 중시되는 부흥회 같은 집회를 좋아하는데’(p.140), 여기에서 무교의 굿과 같은 열성과 무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 책에서는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라면 거의가 한다는 새벽기도가 사실은 옛날부터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를 떠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풍속에서 연유한 것인데, 이 또한 무교적인 것은 아닌가?








우리는 보통 무교를 ‘무속’이라고 하여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비교하여 원시적이고 저급하며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긴다. 종교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는 그 종류와 관계없이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이나 자비 등 인간 윤리의 보편성을 교리로 하는 종교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 전파할 수 있고, 여기에 교리를 일관되게 체계화하고, 다시 권력과 결탁할 때 이른바 ‘고등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종교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말고 무교를 우리의 근본 신앙으로 인정해 우리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쓰자는 것’(p.6)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책 말미에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종교적인 정체성을 찾아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 성숙을 달성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가타부타하기는 어렵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모색(摸索)으로써 돌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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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 2009-11-0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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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저자: 최준식
쪽수: 208쪽
가격: 10000원
출판사: 모시는사람들
초판1쇄: 2009년 10월 25일
참조: 일반 대중이 무속에 대해 접하기에는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군요. 특별한 필요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이 정도에서 그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몰라도 되는 지식입니다.

제 견해로는 무속은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흥미를 가지고 파고드는 일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당을 가리켜 '신이 내린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한 번 무병에 걸리게 되면 거의 대부분(사실상 전부) 무당이 되지 않는 한 낫지 않습니다. 또한 무언가에 씌이는 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효력도 가지지 못하는 오랜 풍속이 현대까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즉 '무속'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태도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렇듯 학문적인 주제와 얽히면 신중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이 글도 좀 그런 면이 있군요. 또한 얼추 부합된다 싶은 근거만으로 '무속을 종교로서 복권시켜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속은 결국 자신에게서 기원한 신앙이 아니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와 같은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비해 위험한 편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대로 어느 종교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면 굳이 위험을 내포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단순히 한반도에 기원을 둔 자연종교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살리기 위해 무교를 믿어야 한다는 논리는 '국산제품이니까 써야 한다'는 애국심에서 발로한 기업광고와 같습니다. 한국인의 근간이 무교에 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무교는 한국적인 것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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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竹 2010-03-2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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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무교

무교와는 무관하게 굉장히 무식한 책이다. 쓰레기. 자료도 빈약하고 주장의 논거도 엉터리다.불공평하게 하대받는 무교를 대변하고자 쓴 책이라면 더 조심해야 할 것인데, 이 책으로 인해 무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 마저 정이 떨어질 정도다. 심각하다. 책을 읽다읽다 더는 못 참겠다. 과학적 사고의 부재가 이런 총체적 무식함을 부른다. 인문학이 잉여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런 무식한 책 덕분이다. 과학 교육이 필요한 근거이다.
분노의휘갈김 2015-04-2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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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사람들은 흔히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인생사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을때 '굿이라도 해야하나' 혹은 '점이라도 보러가야겠다' 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물론 나 역시 농담처럼 쉽게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문학이나 문화를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 종종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자연스레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부분이 유교적인 관습과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가 크게 번성하여 중,의, 예, 효 를 중시하였고 현대 역시 그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의 동네 골목 골목 마다 찾을 수 있는 점집이나 무당집, 험한 산을 오르고 올라 치성 내지는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볼 수가 있는데 아주 오래전 부터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 흔히 무속신앙이라 불리는 무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책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의 부당을 설명하는데 무속의 속 자가 저속하다라는 의미가 짙기때문에 무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신이라 천대하고 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속이라는 단어의 저속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람들과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친근한 종교라 불교에서도 일반 사회를 일컫는 말인 속세(俗世)라는 말 처럼 친근한 종교라 무속이라 불리었고 불리어 왔다고 믿고싶은 마음이다.



무교에대한 오해와 천대가 한국인들의 근본에 깔려있는 무교를 향한 믿음을 저속하고 촌스러운 것, 무시되는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무교란 범위가 워낙에 광범위하고 쉽사리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왜곡이 더욱 심화되었고 저자가 지적 하는 것 처럼 자생 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자체적으로 통합의 어려움이 있기에 지금껏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러기에 한국인들의 근본신앙임에도 무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미신이라 비하를 받은것이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무교에는 많은 문화적 자산이 안겨져 있기에 무교를 복원하여 사회적인 통합과 사회적 성숙을 위한 기틀 아래에에 서게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교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다른 종교를 빗대어 비하하거나 혹은 저것도 그러한데 이것이 이러한 것 쯤이야 어떻겠느냐 식의 뉘앙스가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주장하는 말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너희 나라는 원숭이 골에 달팽이에 무엇 무엇도 먹지 않느냐'

'그럼 우리가 개고기 먹는게 뭐 어때?'하는식의 빈약한 주장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개고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원숭이 골이나 달팽이를 트집잡아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에 우리에게 개고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사가 있으며 어떤 개고기 문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외려 더 자연스레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까말이다.

무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폐혜를 가지고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조금 더 세밀하고 농도 짙은 무교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 보다는 무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궁금증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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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2009-11-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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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주변에서 쉽게 점을 본다니, 사주팔자가 어떻다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호기심이 막 쏟구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이~ 그냥 미신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가곤 했다. 그것을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무교라는 종교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보통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하여
왔던 무당, 굿, 점 이런 것을 무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념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보면 호기심을 일게 만들었다.
정말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인의 가장
뿌리깊은 신앙은 무교와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에도 기독교나 불교신자이면서도 정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 찾는것은
어렵지 않다. 평소에는 미신이야 미신 하면서 조금
낮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마지막에 찾는 곳은 바로
그런 곳들이다.
정말 억압되어 표현은 못하지만 뿌리깊은 마음속에는
그런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종교의 개념으로 다시 한번
이런 분야를 새롭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앞으로 단순히 미신이야 이런
말은 잘 안하게 될 것 같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기독교나 불교 처럼 엄연한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인정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친숙한..!
- 접기
fw6kies 2009-12-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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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Namgok Lee - ‘연찬(硏鑽)’ - 확증편향을 내려놓는 것

Namgok Lee - 오늘 완주에서 야마기시 특강(7박8일)을 경험한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지난 번 실현지... | Facebook

Namgok Lee
20240509
  · 
야마기시  ‘연찬(硏鑽)’ - 확증편향을 내려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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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완주에서 야마기시 특강(7박8일)을 경험한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지난 번 실현지 40주년 기념 연찬을 하면서 후속 모임으로 이루어졌다.
나도 초대 받아서 함께 한다.
기대도 있지만 우려도 있어서 담담한 심정으로 참석하려 한다.
우려는 지나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는 많은 경험들 때문이다.
7박8일의 압축된 연찬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기간의 연찬 경험이 강고한 기존의 관념이나 생활양식을 바꿀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많은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감동들을 받는다.
그러나 그 효과는 몇 달을 못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약발’이 다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는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다니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야마기시 특강은 두 방향의 목표를 함께 검토한다.
하나는 인간의 마음이고, 하나는 인간의 사회다.

이 둘을 검토하는 방식이 ‘연찬(硏鑽)’이라는 것이 야마기시 특강의 특징이다.

‘연찬(硏鑽)’은 무지(無知)의 자각을 바탕으로 
서로 마주보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소통과 탐구의 장(場)이다.
스스로 확증편향에 지배되고 있지 않는가하는 자각과 성찰이 그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정치·문명은 일대 전환의 시점에 와 있다.
문명 자체가 기로에 서 있다. 절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인간의 역사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상 최대의 분기점이다.
이 전환의 분기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진정한 연찬(硏鑽) 태도가 아닌가 한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신앙적 확증편향을 내려놓는 것이 그 출발이다.
개인적 충돌에서 대량학살의 전쟁까지 그 원인이 바로 확증편향 간의 대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자기와 다른 정치적 견해나 자기와 다른 종교적 관점이나 자기와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면 아무리 연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출발부터가 진정한 연찬과는 거리가 멀다.

특강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다양하다.
이 다양한 삶 속에서 마음의 세계와 현실의 사회생활을 영위한다.
각자가 자기의 삶과 사회적 활동의 분야에서 연찬 태도를 스스로 견지하면서 그것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공통의 이상(理想)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연찬의 테마가 ‘연찬(硏鑽)’인 것 같다.
아마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첫 만남의 인상들이 좋기를 바란다.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연찬 태도를 더 깊게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熱情)은 확증편향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각자가 서 있는 여러 분야에서 이 연찬이 어떻게 삶과 실천 속에서 연습되고 실천되고 있는지를 함께 풀어놓고 검토함으로서 시너지를 내는 모임으로 발전한다면 좋을 것이다.
날씨가 좋다.
날씨처럼 쾌청한 만남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