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4

곽희 Guo Xi - Wikipedia " (Linquan Gaozhi 林泉高致)

Guo Xi - Wikipedia

Guo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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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 Mountain by Guo Xi, collection of the Shanghai Museum. Guo was a representative painter of landscape painting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has been well known for depicting mountains, rivers and forests in winter. This piece shows a scene of deep and serene mountain valley covered with snow and several old trees struggling to survive on precipitous cliffs. It is a masterpiece of Guo Xi by using light ink and magnificent composition to express his open and high artistic conception.
Autumn in the River Valley

Guo Xi (Chinese郭熙pinyinGuō XīWade–GilesKuo Hsi) (c. 1020 – c. 1090)[1] was a Chinese landscape painter from Henan Province[2] who lived during the Northern Song dynasty. One text entitled "The Lofty Message of Forest and Streams" (Linquan Gaozhi 林泉高致) is attributed to him. The work covers a variety of themes centered on the appropriate way of painting a landscape. He was a court professional, a literatus, well-educated painter who developed an incredibly detailed system of idiomatic brushstrokes which became important for later painters. One of his most famous works is Early Spring, dated 1072. The work demonstrates his innovative techniques for producing multiple perspectives which he called "the angle of totality." This type of visual representation is also called "Floating Perspective", a technique which displaces the static eye of the viewer and highlights the differences between Chinese and Western modes of spatial representation.

The following is an excerpt from his treatise, "mountains and waters":

The clouds and the vapours of real landscapes are not the same at the four seasons. In spring they are light and diffused, in summer rich and dense, in autumn scattered and thin, in winter dark and solitary. When such effects can be seen in pictures, the clouds and vapours have an air of life. The mist around the mountains is not the same at the four seasons. The mountains in spring are light and seductive as if smiling: the mountains in summer have a blue-green colour which seems to be spread over them; the mountains in autumn are bright and tidy as if freshly painted; the mountains in winter are sad and tranquil as if sleeping.[3]

Guo Xi was often referred to as a "Northern Song master" when it came to painting. His work inspired many later artists and he even had landscapes dedicated to him. His lesser-known "Deep Valley" scroll painting depicts a serene mountain valley covered with snow and several trees struggling to survive on precipitous cliffs. The ink washes and amorphous brush strokes are employed to model surfaces that suggest the veiling effects of the atmosphere. One of Guo Xi’s techniques was to layer ink washes to build up forms and his "Deep Valley" is a masterpiece of the use of light ink and magnificent composition.[4]

His son later described how Guo Xi approached his work: "On days when he was going to paint, he would seat himself at a clean table, by a bright window, burning incense to right and left. He would choose the finest brushes, the most exquisite ink; wash his hands, and clean the ink-stone, as though he were expecting a visitor of rank. He waited until his mind was calm and undisturbed, and then began."[5]

See also[edit]

Notes[edit]

  1. ^ Barnhart: Page 372. Guo Xi's style name was Chunfu (淳夫)
  2. ^ Ci hai: Page 452
  3. ^ The Rise and splendour of the chinese empire, rene grousset, p. 195
  4. ^ Hearn, Maxwell K. Cultivated Landscapes: Chinese Paintings from the Collection of Marie-Hélène and Guy Weill.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Yale University Press, 2002.
  5. ^ Quoted by Arthur Waley in "Chinese Philosophy of Art-IV" in Burlington Magazine, vol. xxxviii, No. ccxviii, p. 247 in Jenyns, Soame. A Background to Chinese Painting. New York: Schocken Books, 1966, p. 134

References[edit]

  • Barnhart, R. M. et al. (1997). Three thousand years of Chinese painting.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ISBN 0-300-07013-6
  • Ci hai bian ji wei yuan hui (辞海编辑委员会). Ci hai (辞海). Shanghai: Shanghai ci shu chu ban she (上海辞书出版社), 1979.
  • Guo Xi's Early Spring


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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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
Guo Xi - Early Spring (large).jpg
예술가 정보
출생1020년
원현
사망1090년
카이펑시
직업화가작가
자녀곽사
주요 작품
영향

곽희(郭熙, 1023년~1085년)는 중국 북송(北宋)의 화가이다. 자(字)는 순부(淳夫), 허난성 원 현 출신이다.

북송 초기, 각지에서 성립한 3인의 화풍 사이에는 상호간의 영향관계는 인지될 수 없으나 이성(李成), 범관(范寬)의 북방계(北方系) 산수화의 이념과 양식은 신종 시대의 화원 화가 곽희에 의해 통일, 집대성되었다. 평원(平遠=水平視)·고원(高遠=仰視)·심원(深遠=俯瞰視) 등의 갖가지 시점에서 포착한 자연을 동일화면에 설정하는 3원법(三遠法)을 위시하여 아침(朝), 저녁(暮), 맑음(晴), 비(雨)의 광선이나 연무(煙霧), 4계의 구별까지도 표현을 가능케 한 기법의 완성자로서 높이 평가되었다.

작품[편집]







郭煕(카쿠키, 1023-1085 )  북송  산수화  글자 는 아츠오.

약력 편집 ]

효주 온현 출신. 노년이 될 때까지의 경력은 거의 모른다. 신종 시기 초반에 등용된다. 미야나카에 올라가면 , 산지의 소금철 부사인 우충 의 명령 으로  과 궁전·사원의 벽화와 대병풍을 많이 제작했다. 곽희의 참신한 대화면의 화풍은 혁신의 뜻에 불타는 젊은 황제를 감동시켜, 얼마 지나지 않아 어서원의 예학 포스트에 오르고, 수년 후에는 서화 담당기관의 최고위인 대기예로 승진했다. 곽희가 속한 어서원은 함림 학사원 의 하부조직으로 같은 함림원의 하위기관으로 통상 궁정화가가 소속하는 함림도화원 과는 다른 부국이다. 화가에게 서기관의 직을 준 것은 인습적이 되기 쉬운 화원에 구속되지 않고 곽희가 그 천분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신종 스스로의 배려라고 한다.

신종사후 활동기록은 적다. 지지자를 잃고, 기교주의적인 곽희의 그림은 사대부 들의 미의식과는 맞지 않게 되었다이미 휘종 시기에는 잊혀지려고 하고 있으며, 동백 이 저술한 '화계'에는 곽희의 벽화와 병풍은 궁전에서 철거되어 폐품으로 취급된 일화가 보인다.

화풍과 그 영향 편집 ]

곽희는 산수화에 길고, 깊고 자연스럽게 통하여, 「질유기간, 역력라열 동흉중(자연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스스로 이 산에 놀아 관찰하는 것이다. 산수의 모습이 있어 가슴 속에 전개한다)」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 있다 [1] . 운두봉 · 게 손톱수 라고 불리는 특수한 화법으로 산수화를 그려 그 산수는 소소·황정견 · 왕안석 등  높은 평가를 얻었다. 중국 산수화 사상 가장 중요한 산수화가로 꼽힌다. 후세 이성 이라고 병칭하여 '이곽'이라고도 불리며, 그 독특한 산수양식은 ' 이곽파 '라고도 불리며 이원 · 거연 한 '동거풍격'과 나란히 중국산수화를 대표하는 두 2개의 작풍으로 여겨진다.

그 가장 중요한 작품에 ' 조춘도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가 있다. 또, 그 산수화의 화론에, 아이의 곽사가 편찬한 「림천 고치집」(  )이 있어, 그 후의 중국 화론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참고 자료 편집 ]

각주 편집 ]

  1. ^ 郭煕『林泉高地』의「山水訓」으로 보이는 말. 번역은 “아오키 마사아 전집:6”(춘추사, 1969) 참조

관련 항목 편집 ]

삼원법(三遠法) 동양에도 원근법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 스마트K



    [화론 4] 삼원법
    9473     
    삼원법(三遠法)
    동양에도 원근법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11세기에 활약한 북송의 궁중화가 곽희(郭熙 약1023-약1085)가 산수화의 입체적 표현을 위해 제시한 중국식 원근법이 바로 삼원법입니다.
    그는 산의 실체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일 뿐만 아니라 비, 안개, 구름에 의해서도 모습이 바뀌므로 산의 실체적 모습을 입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도 다시점(多視點)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원은 평원(平遠), 고원(高遠), 심원(深遠)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원은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보통 수평선상으로 나타나는 산으로 눈높이를 화면의 중앙에 두고 자연스럽게 앞을 바라다보았을 때 그린 모습입니다. 자연의 광활함이나 아득한 수평의 산수화를 그리기에 적합합니다.








    >최북 <금강산 표훈사> 종이에 수묵담채 38.5x57.5cm 개인




    고원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말합니다. 앙각, Low angle과 비슷하여 눈높이를 화면의 아래에 두고 산 밑에서 산의 정상을 올려다 본 것처럼 그리며, 위압감이나 웅대한 느낌을 줍니다.






    김홍도 <산수도> 《단원화첩檀園畵帖》삼성리움미술관 보물 782호

    심원이란 산 앞에서 산 뒤를 굽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높이를 화면의 위쪽에 두고 아래를 내려다 보는 상태에서 그린 것으로, 멀리 겹겹이 쌓인 느낌을 주며 자연의 무한한 깊이를 나타낼 때 주로 쓰입니다.




    심사정 <강상야박도> 1747

    그림 하나에 하나의 기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화면에서 다시점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다시점을 통해 산을 바라보면 1) 평원은 아득해서 산이 밝으면서도 어둡게 보이며 2) 고원은 우뚝 솟아 청명하게 보이며, 3) 심원은 중첩되어 어둡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곽희가 삼원법을 통해 표현하려한 것은 단지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만 산을 표현하고자 한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시기가 되면 산은 그림의 대상인 동시에 그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그려진 자연 속으로 몰입, 즉 감정이입 되는 대상으로 승격됩니다. 따라서 산은 단순히 그려진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보고 즐기고 누려보고자 한 실제적 대상으로 파악했습니다.


    곽희의 삼원법은 그가 저술한 책 『임천고치(林泉高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삼원법이 역사상 최초로 모두 실현된 사례로 그의 대표작 <조춘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곽희 <조춘도> 북송. 1072년. 비단에 색. 158.3×108.1㎝, 타이페이고궁박물원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2.12.0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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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고치의 공간관

AustE's InterMeDiatE WorlD



임천고치의 공간관

http://auste.egloos.com/2633612

곽희 『임천고치(林泉高致)』산수훈(山水訓)에 나타난 공간관에 대하여






사실 이 글에서 참고한 판본은 이게 아니고 더 옛날 거지만 이미지가 없어서-3-;


들어가며


동양 삼국 중 가운데 나라에 태어났으면서도 자기 나라의 전통회화를 가리켜 ‘동양화’라 떼어 부르고, 영어로 쓰인 어려운 책은 술술 읽으면서도 고궁 대문 앞에서는 현판 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해 갸웃거려야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나름대로 예술이론을 전공한다는 나 역시 별 나을 게 없었다. 동양미술사 시간에 접한 여러 작품들은 서양 고전 회화에 비해 오히려 이국적으로 보였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뒤적인 책들은 한자에 뒤덮여 접근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펴든, 자기네들 이론의 틀에 맞춰 동양화를 재단하는 서양 학자들의 저술이 심정적으로는 불쾌했지만, 이해하기에는 훨씬 편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학기에는 동양화론을 들어 보기로 했지만, 쉽게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양식 예술론에 익숙한 내게 미술을 인격 도야와 백성 교화의 도구로 보는 유학자들의 태도는 순수예술의 굴욕으로 느껴졌고, 품등을 나누고 종파를 가르는 짓거리는 한갓 세력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짜 예술이란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은가? 내가 서양식 사고방식에 완전히 절어 버린 건지, 아니면 동양화론에 정말 그만한 가치가 없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웠고,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느꼈다.





이런 책을 보고 하는 말임ㅇㅇㅇㅇ


그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이 곽희(郭熙)의 글이었다.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드러나는 그의 화론은 고식이나 정신적인 요소 못지않게 순수한 관찰을 중요시하고, 방대한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놀랍도록 세세하고 실전적인 기법을 제안한다. 특히 원근법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내게 곽희가 제시하는 산수 관찰법과 공간 표현법은 동시대 서양의 논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면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임천고치 중 ‘산수훈(山水訓)’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곽희가 보여주는 공간 인식의 특성을 밝히고, 이를 서양 근대 회화의 투시원근법과 비교하면서 동양화론이 보여주는 과학적인 면을 부각하려 한다.



산수훈에 드러난 곽희의 사상적 입장



산수훈의 첫머리에서 곽희는 산수화의 목적을 세속에 머물면서 자연을 대신 즐기기 위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오래 전 제시된 종병(宗炳)의 와유(臥遊)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곽희의 글에서는 더 미묘한 사상적 갈등이 드러나 있다. 초야에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면서도 언젠가는 현세에 출사하며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려는 뜻을 품는, 즉 자연을 일종의 도피처로 삼는 유가(儒家)적 자연관과, 현실을 아예 초월하여 자연에 머물며 유유자적하는 도가(道家)적인 자연관 사이의 갈등이 그것인데, 두 태도는 자연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궁극적인 이상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도가에 심취했던 곽희는 자연을 즐기는 삶을 이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도교적이지만, 스스로 고관의 자리에 오르고 아들의 과거 합격을 기뻐하는 등 속세의 입신양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다분히 유교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러한 자기모순을 “어진 사람으로서 자기 한 몸을 깨끗이 하려고 속세를 벗어나는 짓은 사람 된 도리로서 진퇴와 절의에 벗어난다.”고 함으로써 정당화하고, 산수화를 속세에 머물면서도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곽희의 이러한 사상적 입장을 유교의 도덕주의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도교의 해의반박(解衣盤儁)식 무규범에 빠지지도 않고 자신만의 자연주의를 추구할 수 있었던 기반으로 본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는 당대 회화의 천편일률적인 전통 모방 일색을 비판하며 다양한 화가(畵家)를 모두 취하여 일가(一家)에 얽매이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태도 역시 고식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신즉산천이취지(身卽山川而取之)’, 곧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순수한 눈과 감각에 의존하여 자연을 관찰하게 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화론은 객관적인 재현을 추구한 근대 서양 회화론과 비교해 고찰할 여지를 남긴다.



곽희의 산수 관찰법 - 서양 투시원근법과의 비교



곽희는 산수훈에서 계절과 시간, 날씨,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산수의 양상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하나의 산이지만 수십 수백 산의 형상을 겸하고 있”으니 화가의 관찰점과 관찰 각도가 다르면 산수가 나타내는 심미 형상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지한 관찰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서양 근대 회화에서 시점(視點, vantage point) 개념과 통한다고 할 수 있으나, 서양 회화가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광학의 도움을 받아 시점에 들어오는 빛의 상을 기계적으로 정확히 포착하는 투시원근법에 집중한 데 비해 곽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곽희가 산수훈에서 산천 관찰을 설명하기에 앞서 언급하는 정물 관찰법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관조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기서 그림자를 관찰하라고 설명하는 대나무의 경우는 빛의 직진성을 활용해 실루엣을 얻는 방법으로 서양식 투시법과 일치하지만, 꽃은 구덩이에 넣고 위에서 내려다봐야 꽃의 사면을 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다양한 시점에서의 파악을 강조하고 있다. 즉 곽희는 시점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점에서 관조하여 대상의 본질을 파악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된 한 시점에서 포착 가능한 풍경을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모사하는 서양의 투시원근법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곽희의 산수화론은 정답이 명확한 투시원근법에 비해 화가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다양한 시점과 환경에서 관조한 상을 모아 한 장의 그림 속에 구성해내는 것은 전적으로 화가의 주관과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포유어간(飽遊飫看)’, 곧 여러 산을 많이 보고 산천의 여러 가지 자태를 익숙히 알며 여러 가지 산수 임천을 느끼는 것을 강조하며 다양한 예를 통해 산수의 바람직한 형태를 제시한다. 특히 화결(畵訣) 부분에서는 집의 입지를 정할 때 수해(水害)의 위험성을 따지고 나무의 크기를 정할 때 흙의 깊이를 따지는 등 단순히 시각적인 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풍경의 현실적인 타당성까지 고려하는데, 이는 결국 산수훈에 제시된 ‘경치의 경지를 벗어난 뜻(景外意)’을 포착해 감상자가 그러한 산수 속에 자신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나아가 ‘뜻의 경지를 벗어난 묘(意外妙)’를 통해 실제로 바로 그곳으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을 주게 하기 위함이다.

즉 곽희의 화론은 화가가 체험한 자연을 그림을 통해 감상자에게 다시 체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체험에는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반면 서양의 투시원근법은 마찬가지로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화면을 구성하지만 이때의 관찰은 순수하게 한 순간에 포착된 빛의 형태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범관 <계산행려도> 축. 11세기 초.



삼원법(三遠法)에 드러난 곽희의 공간관


다양한 환경과 시점에서의 체험을 화폭에 옮겨놓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곽희가 제시하는 것이 유명한 삼원법이다. 서양식 투시원근법의 기준으로 곽희의 삼원법을 분석해 보면, 고원(高遠)은 올려다보는 시점(仰視)이고, 심원(深遠)은 내려다보는 시점(俯瞰視), 평원은 지면에 평행하게 바라보는 시점(平視)이 된다. 투시원근법에서는 오직 한 가지 시점과 각도만을 취할 수 있으며, 특히 올려다보는 시점과 내려다보는 시점을 동시에 한 화면에 그리는 것은 서양 근대 회화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다양한 렌즈 기법이 도입된 현대 회화에서는 넓은 시야를 묘사하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전통적인 서양 회화에서는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시점을 포함하는 삼점투시법도 찾아보기 힘들다. 삼원법으로 치면 평원법만이 쓰이는 셈인데, 서양회화의 시점이 이렇듯 제한되는 이유는 다양한 시점을 평면에 옮겨놓게 되면 반드시 수학적인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엄밀한 수학을 전제하지 않고 체험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 곽희의 삼원법은 화가의 단련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다시점 구도의 구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현대의 감상자가 화북산수(華北山水)를 볼 때 느끼는 사실감, 분명 실제 같기는 하나 사진의 기계적인 재현과는 다른 묘한 사실감은 이런 차이에서 기원한다. 곽희가 산수훈 첫 부분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산수는 큰 물체이다. 이미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눈을 굴리며 한참 돌아다니지 않고는 산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서양식 풍경화는 고정된 위치와 각도로 단 한번 찍은 사진과 같아서, 한 시점에서 제한된 화각에 들어온 상만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나, 삼원법을 사용한 곽희의 <조춘도(早春圖)>는 웅장하게 곧추선 주봉우리의 당당함이나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본 폭포의 아찔함, 왼쪽으로 멀어지는 모래언덕들의 유연한 굴곡을 모두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점이 한 평면에 병렬되는 데서 오는 모순은 화가의 오랜 경험과 탁월한 기량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라져 하나로 연결된다. 이러한 화면구성은 서양에서는 팔백 년 이상이 흘러 입체주의가 등장한 후에야 가능했다.







나오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곽희의 『임천고치』중 산수훈 부분에서 드러난 공간관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연 관찰 태도에 근거하였고, 이는 다시 현세에 머무르는 속인에게 자연의 극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얼핏 탁상공론에 불과해 보였던 동양화론도 실제 작품 창작에 절실히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에는 명확한 근거와 합목적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흥을 전달하려는 예술가의 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치열한 것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특히 삼원법을 통해 구현된 다시점 공간은 풍경의 전달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에 있어 서양의 투시원근법보다 우수한 점이 있음을 알았고, 동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곽희와 영향을 주고받은 화론을 중심으로 더 공부해 나간다면 처음 접했을 때 납득하기 어려웠던 다른 화론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은 귀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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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학기 동양화론 시간에 서평 쓰래서 썼던 건데… 저저 이거저거 많이 찾아봤어여 점수 좀 주세여 하는 느낌이 좔좔 흘러나는 레포트 말투라 좀 오글거리긴 합니다만-3-;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림 몇 개 추가해 올려봅니다. 각주 몇 개 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아 생략-3-; 주로 참고한 책은

곽희, 곽사, 허영환 편역, 『林泉高致: 郭熙, 郭思의 山水畵論』, 서울: 열화당, 1989.
黃琪源, 「『林泉高致』에 나타난 郭熙의 自然觀」, 『環境論叢』, 30 (1992).
양창석, 『동양 회화의 意境에 관한 연구: 산수화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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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의 임천고치 
곽희,곽사 (지은이),신영주 (옮긴이)문자향2003-03-25원제 : 林泉高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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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관함 +
- 절판 확인일 : 2017-03-09

224쪽

책소개

<임천고치>는 중국의 북송 시대 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곽희와 그의 아들 곽사가 저술한 본격적인 산수화(山水畵) 이론서이다. 선배 화가들의 화풍을 수용, 발전시킨 화가이자 북송대의 문예적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있던 이론가인 곽희의 <임천고치>는 사대부 감상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산수화를 재생산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만들어진 회화 이론서였다.

동양 산수화의 한 전범으로 불리우는 원근법인 '삼원(三遠 - 고원高遠, 심원深遠, 평원平遠)'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동아시아 산수화의 완성기라 할 수 있는 오대.북송 시기 화가들의 깊은 고뇌도 함께 읽어낼 수 있도록 해준다.

참고로 전문연구자를 위하여 이본 대조를 통한 교감 사항을 추가하였고, <임천고치>와 관련한 역대 저술들을 발췌.번역하였고 원문 영인본도 실었다.


목차

곽씨임천고치집원서(郭氏林泉高致集原序)
1. 산수훈(山水訓)
2. 화의(畵意)
3. 화결(畵訣)
4. 화제(畵題)
5. 화격습유(畵格拾遺)
6. 화기(畵記)
허광응의 발문(許光凝跋)

부록附錄
산수결山水訣 - 당 왕유 지음
산수부山水賦 - 당 형호 지음
산수결山水訣 - 당 이성 지음
용 그리는 법(畵龍緝議) - 북송 동우 지음

임천고치 관련 자료
『사고전서총목제요』
진진손, 『직재서록해제』
여소송, 『서화서록해제』
유검화, 『중국화론유편』
곽약허, 『도화견문지』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곽희 (郭熙) (지은이) 
중국 북송 시대의 산수화가.
최근작 : <곽희의 임천고치> … 총 19종 (모두보기)

곽사 (郭思) (지은이) 
중국 북송 시대의 산수화가인 곽희의 아들로, 아버지의 글을 모아 <임천고치>를 집필하였다.
최근작 : <곽희의 임천고치> … 총 4종 (모두보기)


신영주 (옮긴이)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및 동대학원 한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위원으로 활동하고, 현재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번역서로 《곽의의 임천고치》, 《동기창의 화선실수필》, 《북송 휘종의 회화인물사, 선화화보》 등이 있다.
최근작 : <목릉시대 문인들의 일탈 체험과 문예 취>,<조선시대 송사소설 연구> … 총 5종 (모두보기)

『임천고치』(林泉高致)가 유가를 구현하는 방식

『임천고치』(林泉高致)가 유가를 구현하는 방식:

『임천고치』(林泉高致)가 유가를 구현하는 방식

『임천고치』(林泉高致)가 유가를 구현하는 방식
Linquan gaozhi for Confucian Scholar officials
美學(미학)

약어 : 미학

2017, vol.83, no.1, pp. 1-31 (31 pages)
발행기관 : 한국미학회
정혜인 /Herin Jung 1  1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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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대 등장한 『임천고치』는 중국을 대표하는 화론 중 하나이지만 여느 잘 알려진 화론들과 달리 기운, 전신, 육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큼 저자 곽희는 오히려 화면 속 형상에 집중했다. 

곽희가 제시한 산수화면은 경물의 물리적 형상과 도덕적 미적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 
물리적 형상은 보편, 특수, 개별 세 층차의 속성, 그리고 항상적/가변적 속성의 다층적 이미지 복합체이다. 
이 개별 형상들은 다시 천인동구론, 상호 비례적 크기를 기준으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삼원법, 그리고 군자/소인, 왕/관료라는 화면 내 가장 큰 규범의 지배를 받는다. 

물론 이 화면은 제작하는 화가는 유종원의 문장학습론을 모델로 화학 과정을 거친 후 「악기」 속 수양된 군자의 인품을 갖추어야 했다. 
그만큼 곽희는 은자나 개인으로서의 문인이 아닌 관료로서의 문인, 유가자를 대상으로 한 산수화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으며, 곽희의 관심사는 동시대 개인, 주체를 중심으로 회화에 관심을 보였던 주변의 문인들과는 방향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Linquan gaozhi 林泉高致(The lofty message of forests and streams) is remarkable work on landscape paintings by Guo Xi 郭熙(b. after 1000, d. ca. 1090) in Northern Song Dynasty. 

Though called representative of the history of Chinese painting theory, it is remarkable that the text had mentioned neither qi yun 氣韻(strong and graceful vital energy) nor liu fa 六法(six principles on paintings) which had been regarded as axioms since Six Dynasty. 

From the fact, we may suppose that Guo Xi had special goal different from other writers on paintings. 
Firstly, he focused on forms constructing elaborate schemata derived from with experience materials of general, special and particular simultaneously also of eternal and variable levels of attributes. 
Secondly he explained the relation among object-forms with naive ontology that insists tian ren tong gou lun 天人同構論(nature and human have same vital structure) instead of theory of qi yun, and composition of pictures with as king and his officials, gentleman and petty man conforming Confucian political ideology. 

And more Guo Xi asked painters to train themselves pursuing gentlemen's personality described by late Tang literary men liu zong yuan 柳宗元 and charge on one of Confucian canons, Li zhi 禮記, which changed painters' ideal personality based Taoism since late Tang dynasty. The book is for landscape paintings for literati officials not for literati in se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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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의 문화(文化) :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 나타난 “원(遠)”의 의경(意境)에 관한 연구(硏究)
하영준
Published 2013
Linguistics

곽희는 중국 북송대의 저명한 산수화가이자 이론가로 중국 산수화 발전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산수화풍과 화론서인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중국 고대회화와 미학사상 연구에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동양철학에서의 ‘원(遠)’의 의미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곽희의 창작이론의 근거인 ‘원’ 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원’에서 일어난 심미관조(審美觀照) 방식인 ‘신유원관(神遊遠觀)’을 장자의 사상과 초나라의 문화를 예로 들어 고증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관조방식에 드러나 있는 ‘상평원(尙平遠)’ 사상을 우주의 정체성을 표현한 평담한 생명정신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원’에 나타난 ‘심령(心靈)의 안돈(安頓)’이라는 의경(意境)을 살펴보았다. 곽희의 회화사상은 동양 회화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의 화론 가운데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가 제시한 ‘삼원설’이다. ‘원’의 개념에 대해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논하고, 자신의 작품 안에서 대담하게 새롭게 실천한 것은 이전 사람들이 하지 못했던 일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원’ 사상을 작품을 창작할 때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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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郭熙)의 『림천고치(林泉高致)』에 나타난 신유학 예술관
The Artistic Viewpoint of Neo Confucianism in Guo Xi`s Linquan Gaozhi
박현숙 ( Hyunsook Park )
발행기관 : 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 : 동양예술 31권0호
간행물구분 : 연속간행물
발행년월 : 2016년 05월
페이지 : 156-180(25pages)
동양예술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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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 임천고치 신유학 예술관 산수훈 Guo Xi Linquan Gaozhi Artistic Viewpoint of Neo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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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 오대의 혼란을 제패한 북송시기에 과거를 통해 등용된 사대부가 문화의 주인공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들은 이전시기 사상을 주도했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새롭게 유학을 부흥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신유학이 탄생하게 된다. 곽희는 궁정화가로서 이들 신유학자들과의 사상적 공유를 통하여 신유학이 추구하는 세계 질서를 산수화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은 우선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제시하며 자연질서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사회질서와 그 위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곽희는 거대한 산수화를 통하여 우주의 질서와 생성 변화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자연과 사회의 통일된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이 중시한 격물 공부란 하나하나의 개별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는데서 보편적인 천리를 아는데 까지 상승해 나가는 것이다. 곽희는 산수화론인 『임천고치』에서 자연에 대한 세심하고 치밀한 관찰을 통한 ‘격물(格物)’ 방법을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곽희가 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수양한 것을 확충하고(所養欲擴充), 본 것을 충분히 익히며(所람欲淳熟), 여러 곳을 많이 경험하고(所經之衆多), 마지막으로 정수를 취하는 것(所取之精粹)이다. 이 과정은 바로 신유학자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하여 천리를 깨닫는 과정과 같다. 산수화 감상에서도 도가적, 불교적 감상방법인 ‘와유(臥遊)’ 대신 반듯하게 앉아 신독(愼獨)하며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좌경(坐窮)’으로 대체된다. 신유학자들은 정신이 집중되고 어떠한 잡념도 없는 ‘경(敬)’의 상태가 곧 성인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수양법이 『임천고치』에서는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통일시키고, 엄격하고 철저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注精以一之’, ‘神與구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로 나타나며 이는 모두 신유학의 ‘거경(居敬)’의 수양론이 반영된 것이다.

In Northern Song Dynasty when the confusion of the late Tang and the Five Dynasties had been ended, the new culture leader, the scholar-officials, began its existence, who had been appointed by passing the imperial examinations. They wanted to revive Confucianism again against Buddhism and Daoism which were the leading idea of earlier times. This made them create Neo-Confucianism. Guo Xi (郭熙), who was the court painter, tried to embody the new view of the world pursed by Neo-Confucianism into his landscapes by sharing ideas with Neo-Confucians. Suggesting the metaphysical cosmology, Neo-Confucianism explained the order of nature and moreover through this attempted to explain the social hierarchy. Throughout the paintings, Guo Xi intended to express not only the order of universe and the changes of creation, but also unified order and harmony between nature and society. ‘Investigation of things (格物)’, which was emphasized by Neo-Confucianism, means improving from pursuing reasons of every object to realizing universal truths. In Guo Xi’s art of landscape, he introduced methods of ‘investigation of things’ in phases, through making close observation about nature. These are processes for Guo Xi to draw the landscapes: expand what you have been educated (所養欲擴充), thoroughly master what you have seen (所?欲淳熟), experience many places (所經之衆多), take the essence of it (所取之精粹). These processes are equal to how Neo-Confucians realize natural principles through ‘investigation of things’. In addition, the methods of appreciation of landscape were also replaced by ‘exploring reasons of every object while sitting up straight (坐窮)’ instead of ‘aimlessly wandering while lying down (臥遊)’ which was the methods of Buddhism and Daoism. Neo-Confucians considered the ‘reverence (Jing, 敬)’ as the way of becoming a sage. These cultivation methods of mind were mentioned in Linquan Gaozhi (『林泉高致』) as concentrating of thoughts, being strict to yourself, and putting great efforts with modesty (‘注精以一之’, ‘神 與?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 which were all reflected by ‘reverence’ of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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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 임천고치: 산수화론의 교과서
강판권 교수 조회수: 4,814 
등록일: 20.07.10 
 

 

산수화는 자연 생태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담고 있다. 중국 북송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산수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숲과 샘을 의미하는 ‘임천’은 물러나 거주하는 곳, 은자가 사는 곳,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을 뜻한다. 곽희의 산수화 이론서인 『임천고치』는 이후 중국과 한국 산수화의 교본이었다. 『임천고치』 중 권 1의 ‘산수훈(山水訓)’은 작품의 핵심이다. 군자가 산수를 아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곽희에 따르면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항상 마음이 두는 것은 언덕 동산에서 인간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고, 늘 즐기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인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니는 것이고, 늘 힘쓰는 것은 고기 잡고 땔 나무하며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이고, 늘 가까이하는 것은 우짖는 원숭이와 하늘 나는 학이다.  

내가 곽희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산수 보존이 인간의 삶에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는 곧 인간의 본성이고, 산수는 인간 본성의 어머니다. 인간이 산수를 훼손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본질을 허무는 것과 같다. 누구나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는 숲과 계곡이 곧 자신의 원초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근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 이유는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이 방역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숲과 계곡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숲이 울창한 우리나라의 산은 코로나19 시대에 매우 중요한 방역 자산이다. 문제는 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다. 

『임천고치』에는 산수에 대한 관점, 즉 ‘삼원설(三遠說)’을 소개하고 있다. 삼원은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바라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엿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이다. 삼원은 산수를 그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이론이다. 산을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산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임천고치』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는 화면상의 산(山)·목(木)·인(人)의 크기에 대해 상대적 관계를 설명한 ‘3대(三大)’다. ‘삼대’는 산수와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이 같은 인식은 생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은 물을 혈맥으로 삼고, 초목을 모발로 삼으며, 안개와 구름을 신묘한 수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산은 물을 얻어야 활기가 있고, 초목을 얻어야 화려하며, 안개와 구름을 얻어야 빼어나게 곱다. 물은 산을 얼굴로 삼고, 정자를 눈썹과 눈으로 삼고, 고기 잡고 낚시하는 장면을 정신으로 삼는다.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곧 생태다. 인간이 위기를 맞는다는 것은 언제나 유기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만들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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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熙의 『林泉高致』에 나타난 신유학 예술관
The Artistic Viewpoint of Neo Confucianism in Guo Xi’s Linquan Gaozhi
곽희의 『임천고치』에 나타난 신유학 예술관

발행기관한국동양예술학회
간행물동양예술 KCI 등재 바로가기
통권제31호 (2016.05)바로가기
페이지pp.156-180
저자박현숙
언어한국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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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Northern Song Dynasty when the confusion of the late Tang and the Five Dynasties had been ended, the new culture leader, the scholar- officials, began its existence, who had been appointed by passing the imperial examinations. They wanted to revive Confucianism again against Buddhism and Daoism which were the leading idea of earlier times. This made them create Neo-Confucianism. Guo Xi (郭熙), who was the court painter, tried to embody the new view of the world pursed by Neo-Confucianism into his landscapes by sharing ideas with Neo-Confucians. Suggesting the metaphysical cosmology, Neo-Confucianism explained the order of nature and moreover through this attempted to explain the social hierarchy. Throughout the paintings, Guo Xi intended to express not only the order of universe and the changes of creation, but also unified order and harmony between nature and society. ‘Investigation of things (格物)’, which was emphasized by Neo-Confucianism, means improving from pursuing reasons of every object to realizing universal truths. In Guo Xi’s art of landscape, he introduced methods of ‘investigation of things’ in phases, through making close observation about nature. These are processes for Guo Xi to draw the landscapes: expand what you have been educated (所養欲擴充), thoroughly master what you have seen (所覧欲淳熟), experience many places (所經之衆多), take the essence of it (所取之精粹). These processes are equal to how Neo-Confucians realize natural principles through ‘investigation of things’. In addition, the methods of appreciation of landscape were also replaced by ‘exploring reasons of every object while sitting up straight (坐窮)’ instead of ‘aimlessly wandering while lying down (臥遊)’ which was the methods of Buddhism and Daoism. Neo-Confucians considered the ‘reverence (Jing, 敬)’ as the way of becoming a sage. These cultivation methods of mind were mentioned in Linquan Gaozhi (『林泉高致』) as concentrating of thoughts, being strict to yourself, and putting great efforts with modesty (‘注精以一之’, ‘神 與倶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 which were all reflected by ‘reverence’ of Neo-Confucianism.

한국어
당말 오대의 혼란을 제패한 북송시기에 과거를 통해 등용된 사대부가 문화의 주 인공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들은 이전시기 사상을 주도했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새롭 게 유학을 부흥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신유학이 탄생하게 된다. 곽희는 궁정화가로서 이들 신유학자들과의 사상적 공유를 통하여 신유학이 추구 하는 세계 질서를 산수화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은 우선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제시하며 자연질서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사회질서와 그 위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곽희는 거대한 산수화를 통하여 우주의 질서와 생성 변화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자연 과 사회의 통일된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이 중시한 격물 공부란 하 나하나의 개별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는데서 보편적인 천리를 아는데 까지 상승해 나가 는 것이다. 곽희는 산수화론인 『임천고치』에서 자연에 대한 세심하고 치밀한 관찰을 통한 ‘격물(格物)’ 방법을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곽희가 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수양한 것을 확충하고(所養欲擴充), 본 것을 충분히 익히며(所覧欲淳熟), 여러 곳을 많이 경험하고(所經之衆多), 마지막으로 정수를 취하는 것(所取之精粹)이다. 이 과정 은 바로 신유학자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하여 천리를 깨닫는 과정과 같다. 산수화 감상에서도 도가적, 불교적 감상방법인 ‘와유(臥遊)’ 대신 반듯하게 앉아 신독(愼獨)하며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좌경(坐窮)’으로 대체된다. 신유학자들은 정 신이 집중되고 어떠한 잡념도 없는 ‘경(敬)’의 상태가 곧 성인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수양법이 『임천고치』에서는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통일시키고, 엄격하고 철저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注精以一之’, ‘神與 倶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로 나타나며 이는 모두 신유학의 ‘거경(居敬)’의 수양론이 반영된 것이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林泉高致』의 사상적 배경으로서의 북송대 신유학
 Ⅲ. 『林泉高致』의 예술관
  1. 유기체적 자연
  2. 자연에 대한 정밀한 관찰
  3. ‘와유(臥遊)’에서 ‘좌궁(坐窮)’으로
  4. ‘거경(居敬)’의 수양
  5. 도가적 해석의 한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곽희 임천고치 신유학 예술관 산수훈 Guo Xi Linquan Gaozhi Artistic Viewpoint of Neo Confucianism
저자
박현숙 [ Park, Hyunsook | 성균관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