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다가 던져버렸던 이유는 그는 한국인들이 '도덕지향적'인 이유는 본래 그랬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행동원리>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다시 말해서 '주자학'이라는 "이질적인 사유양식"이 조선왕조 하의 한반도에 유입되어 정착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그의 주장에는 빠져 있다. 중국에서 배태된 사유양식이 어찌하여 중국도, 일본도, 베트남도 아닌 한국에서만 유독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가?
오구라 기조는 이질적인 문화의 접합 양식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하기보다는 한국인들이 '본래적'으로 리理 지향적이라고 하거나 지정학적인 조건을 내걸어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으로부터 항시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힘으로 대항하기보다는 도덕적 언술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차라리 한국의 무속신앙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하여 무속적 문화지반과 주자학적 이념체계 간의 ‘선택적 친화성(selective affinity)’을 논하는 게 차라리 '과학적'인 분석일테다.
오구라의 주장대로라면 세계사에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도덕지향적'이게 된 민족이 한둘인가? 일본 근대사 100년은 아시아에 대해서는 대외침략사였지만 서방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굴종의 역사였다.
지정학적 위기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일본인들이 도덕지향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또 어떤가? 그들은 19세기 비스마르크가 통일을 이룩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서 양측으로부터의 침략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에 얽매여 살았다.
또한 고려왕조 때에 북방 이민족에 거듭해서 저항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기, 상황 등에 따라 쉴새없이 변화하는 지정학적 조건을 갖고 민족성을 설명하려 드는데서 나는 기함하게 된다.
조선왕조 500년을 놓고 2천년의 민족사를 설명하며 더군다나 그것을 현대까지 확대적용하여 설명하려는
이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자들이 더 문제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