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5

대만·오키나와의 ‘상처’도 함께 미술로 재해석 - 경향신문

대만·오키나와의 ‘상처’도 함께 미술로 재해석 - 경향신문



대만·오키나와의 ‘상처’도 함께 미술로 재해석
2014.04.14 21:26
도재기 선임기자·사진 서성일 기자


20주년 맞는 ‘제주 4·3 미술제’ 김종길 예술감독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 대만은 공통적으로 뼈아픈 역사적 상처가 있다. 제주도는 1947~1954년 정부와 미군정에 의해 양민이 희생당한 4·3사건을 겪었고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민간인 10만명이 죽었다. 대만에선 1947년 2월28일 중화민국 통치에 맞선 본토인들의 항쟁으로 3만여명이 희생당한 ‘2·28사태’가 일어났다.


비극의 역사와 상처를 미술언어로 해석하며 저항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 미술을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3개 지역 예술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오는 20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주4·3미술제’다.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란 주제의 전시에는 갖은 핍박을 견디며 20년간 어렵게 4·3미술제를 이끌어온 강요배 등 탐라미술인협회 작가들 외에 홍성담·조습·이윤엽·이샛별·믹스라이스·무늬만커뮤니티 등 국내와 일본, 대만 작가 40명이 출품했다.





▲ 세 섬 모두 주민들 희생 비극… 미술제의 정신 아시아로 확대
한·일·대만 작가 40명 출품
“망각을 강요당한 현대사를 불러내 시대적 가치 부여”


이번 미술제는 4·3미술제의 정신과 취지가 제주를 넘어 아시아로 확산된 첫 행사다. 제주, 대만, 오키나와 등 세 섬을 연결한 전시는 각 지역 예술가들의 연대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내용과 규모에서 예년과 달라진 4·3미술제의 김종길 예술감독(46·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을 지난 10일 만났다. 평론가이기도 한 김 감독은 최근 2000년대 현장미술, 작가들에 대한 비평집 <포스트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삶창)도 펴냈다.


그는 4·3미술제가 한국 미술계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망각을 강요당한 현대사를 20년간 끈질기게 예술로 불러내 기억 투쟁, 상징 투쟁을 한 것”이라며 “많은 역사적 사건들, 동시대 사건들이 예술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채 잊혀지는 데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4·3미술제에 오키나와, 대만 작가까지 참여하면서 앞으로 이들의 연대가 국내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개의 섬 예술가들이 공통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역사는 물론 시대정신, 세 섬 서로의 문제를 예술이 가진 힘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제주 4·3을 넘어 아시아의 예술적 연대를 이룬다는 의미이지요. 이 연대는 제주 4·3과 오키나와, 2·28사태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풀어내 시대적 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홍성담의 ‘제주4·3고’, 캔버스에 아크릴릭, 400×195㎝

그가 최근 펴낸 비평집 <포스트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도 현장미술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500여쪽의 책에는 대추리, 강정마을, 용산참사, 부평 콜트콜텍, 4월혁명 50주년 아카이브전, 분단미술전, 비정규직을 다룬 전시회 등의 비평과 홍성담, 최병수, 배인석, 이부록+안지미, 이윤엽 작가론이 포함돼 있다.


그는 1980년대 민중미술 이후의 포스트민중미술을 ‘샤먼/리얼리즘’ 개념으로 풀어낸다.


“근래 현장미술은 1980년대 민중미술과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1980년대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중심으로 현실 그 자체를 직접적 미술언어로 재현했다면, 2000년대는 현실의 재현보다 국가폭력·권력·자본 등 현실의 이면, 후경을 보려 하고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차이점이죠. 이면, 후경을 보는 것은 곧 샤먼의 시각이에요. 그래서 포스트민중미술, 현장미술을 읽어내는 데 샤먼과 리얼리즘이란 개념을 제안해본 것입니다.”


김 감독은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2000년 말부터 민중미술을 이끈 당대의 소집단 활동과 의미를 정리해오고 있다. 소집단 활동 연구가 축적되면 한국 민중미술사가 정립될 것으로 믿는다. 그는 비평가, 전시기획자로서 사회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예술작품에 관심이 높다.


“한국 미술은 작품 비평도 나오기 전에 아트페어에서 높은 값으로 거래되면 좋은 작품,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내려집니다. 돈이 작품 평가의 기준이고 자본·시장가치가 예술가치를 뒤엎은 상황이죠. 그래도 예술가치를 중요시하는 작가들이 있기에 한국 미술의 희망인 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려 합니다.”


김 감독은 모란미술관·경기도미술관 등의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김복진미술이론상, 한국박물관협회 올해의 큐레이터상,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