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4

강남순 박원순 다큐 “첫 변론”: 나는 왜,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가

(1) Facebook

강남순 is at Texas, USA. 230804

retndSspoo1hff6605a0g7h1l8mfhh2483fh90i722ihggt74481ut2g4fm8 · Dallas, TX, United States ·



< 박원순 다큐 “첫 변론”: 나는 왜, 어떻게 인터뷰를 했는가
>

1. 2023년 5월 17일 서울에서, 나는 박원순 전 시장 다큐멘터리 필름 <첫 변론 (The First Defense)>에 나올 인터뷰를 했다. 오래 전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과 애도에 관한 페북 포스팅을 한 후, 소위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페절(unfriend)’을 당했고, 나의 포스팅은 ‘가해자 편을 드는 사람’이라며 조리돌림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적이 있다. 내가 한 지인에게 다큐멘터리 필름에 들어갈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고 말하자, 그는 “이제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겠군요, 또 사서 고생하시네요”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가.
2. 내가 <첫 변론>에 들어가는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은 단순하지는 않았다. 지난 2023년 봄학기의 마지막 달인 4월 10일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부터 나와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 제안을 받고서 여러 가지 생각한 후에 거절하는 회신을 보냈다.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무엇보다도 인터뷰에 응하기 위해서는 여러 자료를 리서치하고 읽고 정리해야 하는데, 학기 말에 그런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둘째, 이 다큐 제작을 후원하고 있는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이름이 내가 함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인터뷰에 응한다면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질문을 ‘2차 가해’라고 차단하면서 그에게 쏟아지는 일방적 비난과 정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첫 요청을 거절했었다.
3. 그런데 봄학기를 끝내고 5월 5일 한국에 왔는데, 5월 9일 다시 인터뷰 제안이 왔다. 나는 이미 한번 거절했던 사람에게 다시 인터뷰 부탁을 하는 것이 지닌 그 함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박원순 전 시장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 계속 주시해 왔고 관련 자료들을 읽어오면서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확산되고 있음을 우려해왔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사회에서의 오해와 왜곡을 귀퉁이에서라도 바로잡기 위해서 연속강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21년 3월 13일~5월 8일에 <이론 그룹>의 1학기를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이라는 주제로 열게 된 배경이다. 페미니즘을 복합적으로 조명하는 그 첫 학기에 118명이 등록해서 5주간 함께 공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8월 26일 곧 8학기를 맞이하게 되는 <사유하는 시민 아카데미: 이론 그룹>의 탄생은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불씨를 댕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이러한 것들을 회상하면서 나는 인터뷰 요청을 재고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에 응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자 하는지 우선 인터뷰 질문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요청’을 하는 나에게 Daehyun Kim 김대현 감독님께서 7개의 인터뷰 질문을 보내셨다. 질문을 보면서, 내 마음이 움직였다. 나의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책들을 섭렵하셨다는 것, 그리고 일방적 ‘편들기’의 입장에서 다큐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규명의 의미로 다큐를 진행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5월 11일에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그리고 다큐 제작 시간이 촉박하였기에 바로 스케줄을 잡았다. 5월 17일 오전 11시였다. 한 시간 조금 넘는 다큐에 들어간 내용보다 들어가지 않은 내용이 훨씬 많다. 7가지 질문 이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의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5. 내가 미국에 있어서 한국에서 하는 시사회에 가지 못하기에 제작진에서 다큐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다큐를 보니 상영시간 1시간 조금 넘는 <첫 변론>에 나의 인터뷰가 10여차례 나온다. 제한된 필름에서 실제 인터뷰에서 오고 간 내용들이 많이 누락되었지만, 중요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이 다큐가 예정대로 8월에 개봉된 후에, 나는 내가 인터뷰에서 다룬 주제를 가지고 연속강좌를 열 것에 대한 생각을 고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인터뷰에서 전하고자 했던 주제의 내용은 ‘박원순’이라는 특정 인물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보다 큰 맥락에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 짧은 길이의 장면들이지만 열 차례에 걸쳐 나온 나의 인터뷰에 등장한 주제들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단체 이름이 지닐 수 있는 한계를 조명하면서): 2) 존중받아야 하는 삶이란 ‘누구의 삶’인가 (미투 운동을 포함해서 여타의 문제들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의 중요성 ): 3) ‘미투 운동’의 명암. <고소에 의한 죄: #미투 시대의 무죄 입증의 어려움>의 예 (Guilt by Accusation: The Challenge of Proving Innocence in the Age of #MeToo>): 4)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변화 5) 대변의 정치학 (politics of representation)의 의미, 동질성의 연대의 위험성: 6) 특정한 ‘의견’에 대하여 동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표지 붙이기의 문제점: 7) 인간은 왜 자살하는가. ‘자살-일반’이란 존재하는가: 8)‘2차 가해’란 무엇인가. ‘1차 가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을 때 ‘2차 가해’가 가능한가. ‘2차 가해의 남용’의 위험성: 9)-10) 자살은 ‘가해 인정’인가
7. 나는 “페미니즘”을 다룬 책을 영어와 한국어로 총 7권 썼다. 1993년의 첫 책 출판 이후에 나온 책들의 개정판까지 포함하면 10권이다. 한국어로 쓴 페미니즘 관련 책 중 2권이 “세종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동녘, 2019)> & < 페미니즘 앞에선 그대에게 (한길사, 2020)>). 1993년 이후 페미니즘에 대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고, 세계 19개가 넘는 나라에서 강연해 왔다. 그러나,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하여 나는 아는 것 보다 모르는 영역이 훨씬 많다. 새로운 문제와 주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그것에 대한 연구들이 치열하게 이루어지면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논문과 책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사적 영역과 공적영역은 물론,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걸쳐서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며 운동이다.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적인 문제들과 연결해서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이들이 지속해서 포괄적인 학습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8.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왜 하는가 (Why am I doing what I am doing?).” 내가 강의에서 비판적 사유가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강조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나에게 돌린다면, 나 강남순은 박원순 다큐 <첫 변론>에서 왜 인터뷰를 했는가. 많은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누군가가 ‘부탁’했다고 해서 내가 행동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 이 일을 왜 하는가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9.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김잔디”씨와 함께 이 다큐의 상영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또한 여성단체들도 개봉 취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다른 단체들도 상영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런 뉴스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보면 얼마나 왜곡된 해석을 ‘진실’처럼 재현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10. <첫 변론>의 상영은 “또 다른 2차 가해,” “변론 아니라 변명,” “변론은 끝났다, 가해를 멈춰라,” “첫 변론 개봉, 득보다 실이 크다” 등의 헤드라인을 보면, 오히려 이 다큐 상영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득’과 ‘실’은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또한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는가.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해보면 이러한 기사 제목이 지닌 문제점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인터뷰에 임했다. 이 다큐 제작에 힘쓰고 지지하는 분들 역시 이득과 실리를 따라서가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 험난한 여정에 함께 하실 것이다.
11. 민주사회에서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변혁운동은 “올바른 질문하기”를 통해서 전개되고, 확산되고, 성숙한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사회의 교육이 개별인들의 질문을 그 중심에 놓는 “소크라테스적 방식 (Socratic Method)”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한국이 “정신적 후진국”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여타의 ‘비판적 질문’을 봉쇄하여 ‘토론’을 차단하고, 질문자를 불온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정죄하고 표지 (label)을 붙이는 “질문빈곤사회”의 모습을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한 이유다. 사건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 자체를 ‘2차가해’라고 봉쇄하는 한,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을 포함 여타의 사회개혁운동의 미래는 암담하다. 그 운동은 또 다른 종류의 권력과 이권 에의 욕구의 자리로만 위치하기 때문이다.
12. 페미니즘과 여성운동 역시 모두가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왜 그런 것인가(Why it is what it is?)”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그 불씨가 지펴졌다. 19세기에 소수의 여성은 다수가 묻지 않는 질문들, ‘왜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는가,’ 또는 ‘왜 여성들은 대학 입학이 금지되어 있는가’ 등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참정권과 교육권이 여성들에게도 주어졌다.
13.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사회변혁운동은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치열한 질문하기와 대화하기를 통해서 서로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도전받을 개방성을 지니고, 서로를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동’과 ‘정죄적 비난’이 아니라, 합리적 설득과 설명을 통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질문과 관점을 주고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식적 오류”와 인식의 사각지대를 수정되기도 하고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기도 한다. 여성운동은 물론이고 사회변혁운동의 성숙성은 질문을 통한 토론, 서로에 대한 존중을 지켜내면서 인내심있는 대화를 통한 인식확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4. 나는 누군가를 무작정 지지하는 소위 “00빠”라는 한국 특유의 표지를 별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도, 내가 누군가의 “빠”를 자처한 일도 없다. ‘인간은 누구인가’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이해를 다양한 측면에서 읽고 연구하면서 나는 그 어떤 인간도 흑백논리식의 단순한 “좋은 사람-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복합성(complexity of human nature)’을 늘 인지하면서 한 사건에 대한 입장을 형성해야 하는 이유다.
15. 나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복합화하라!(Complexify!)”다. 학생들이 어떤 사안에 대하여 확신에 찬 결론에 이르렀을 때, 소크라테스적 질문하기를 통해서 나는 그가 미처 보지 못했던 측면들을 스스로 인지할 때까지 계속 질문을 한다. ‘취조의 질문하기’이 아니라, ‘인식확장의 예식으로서의 질문하기’다. 이러한 비판적이고 복합적인 ‘질문하기’는 나의 교수법에 매우 중요한 도구다. 그래서 나 역시 더욱 어느 특정 사건에 대한 입장을 가질 때에, 복합적인 질문과 조명을 통해서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16. 소위 박원순 사건이 터지면서 나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자료들과 성명서들을 읽어왔다. 박원순 시장에 관한 글만이 아니라, 피해 호소인에 대하여 한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이문제와 관련하여 자료들을 읽고 조명해 왔었다. 그런데 그러한 무수한 주장들과 자료들을 살펴본 후에도, 박원순 전 시장이 신문 기사의 표제어들처럼 위압에 의한 “성폭력”이나 또는 국가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론’처럼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을 했다는 것에 나는 ‘설득’되기 어려웠다. (박원순 고소인의 주장, 국가 인권위의 판단과 그 증거”에 대한 상세한 팩트 체크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 http://www.trustwonsoon.com/bbs/bbsView/40/6233127)
17. 내가 다양한 사실들과 정황을 담을 자료들을 점검하면서 그 가해 주장에 설득되지 않았기에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즉, 내가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은 내가 ‘박원순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건이 ‘미투 운동’의 부정적 측면의 전형적인 예라고 보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권’ 즉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인간의 권리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 설사 살인 현장에서 체포된 ‘자명한 범죄자’에게도,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그 유죄가 확정될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18.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매듭지었다는 것이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쉽사리 결론 내리는 것은, 인간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이해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무수한 생명을 살상하고, 무수한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인권 유린한 사람, 모두가 다 아는 고도의 위조, 사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 이들이 자살하지 않고 버젓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무죄’라는 증거인가. “복합화하기 (complexify!)”가 요청되는 이유다.
19. 8월 6일로 예정된 서울 시사회 신청자가 많아서 상영관을 2개에서 3개로 늘렸음에도 바로 매진되어서, 시사회 신청 구글폼을 닫아야 했다고 한다. 한국 시각으로 8월 4일 12시<박원순 다큐를 지지하는 시민 모임>에는 “첫 변론” 상영을 지지하는 사람들, 4,463명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https://docs.google.com/.../1FAIpQLSfikmF7HyH.../viewform...).
20. 나는 다양한 입장을 지닌 많은 분이 이 다큐를 보기를 바란다. 박원순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합적인 판단을 주체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한 사건에 대한 누군가의 ‘선동’과 ‘일방적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비판적 사유하기와 비판적 질문하기, 그리고 비판적 판단하기를 통해서 스스로 이 사건이 지닌 미시적 의미, 한국 사회에서의 거시적 의미,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두’의 인권을 지켜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우리의 과제를 상기하는 기회가 되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21. 나는 2020년 7월 23일 “박원순 이후, 5가지 책임적 과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25844). 지금도 나는 이 ‘책임적 과제’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논쟁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일 수록, 각기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더욱 치열하게 질문하고, 논의하고, 또한 각자의 상이한 입장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미투'를 ‘가짜 미투’로부터 보호하게 될 것이다.
22. 2023년 <고소에 의한 죄: #미투 시대의 무죄 입증의 어려움>이라는 책을 쓴 하버드 법대 교수였던 저자의 경험이 드러내듯이, 인간은 갖가지 거짓과 왜곡으로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또한 반대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투하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악마화’ 또는 ‘이상화’가 아니라, 인간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각자가 지닌 인식의 사각지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만이,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의 미래는 물론 보다 한국 사회를 만들어 가는 초석을 놓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중요한 과제다.
23. 왜 나는 이렇게 긴 단상을 나누는가. 우선 나의 삶의 자취를, 내가 개입하고 있는 일의 의미 부여를, 그리고 나의 동료 인간들과 나의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따로따로’ 모든 이들이 인간으로 존중받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발걸음을 떼는 의미를 지닌다.
24. 마지막으로, 아렌트가 내게 상기시키는 것을 여러분과 나눈다:
“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한 ‘의견 조작들 (manipulations of opinion)’은, 특히 이 의견 조작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득에 의해서 규정된 것일 때, 지극히 제한된 목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조작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일 때, 그 의견조작의 영향력은 더 이상 그 의견조작들의 통제하에 두지 못하며, 의도하지 않았거나 또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쉽게 초래할 수 있다.”
<첫 변론>이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사건에 대하여 특정한 집단의 “의견 조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비판적 검증을 통해서 조명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통로가 되기 바란다.
All reactions:
Paul Dongwon Goh, Haesook Kim and 556 others
45 comments
128 shares
Like
Share

Comments

  • Woomok Jeong
    아 저도 진심으로 보고 싶네요..
    3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Imha Yoo
    선생님의 판단과 성찰과 실천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3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이재운
    감사합니다 🧡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Yoona Kim
    선생님 깊게 공명하며 읽었습니다. 공유하겠습나다. _()_
    2
    Yoona Kim replied
     
    2 replies
    3 h
  • 방제선
    맘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Keun Reu 
    Follow
    존경합니다.
    5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한영수
    교수님의 지식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용기 존경합니다. 첫변론 꼭 보고 전파 하겠습니다. 깊게 응원합니다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Kim Sang Soo 
    Follow
    너무나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시고 있습니다. 인류 사고의 원론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이란 사회의 중층적인 과거 현재의 “복합성”, 특히 정치와 언론의 반지성의 문제, 지적 이해 인식의 얕은 지층, 지성의 결핍, 반이성과 비논리의 만연한 폭력성, 다각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계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1
    Kim Sang Soo replied
     
    2 replies
    2 h
  • 한경희
    이성적이고 반듯한 사유 잘 읽었습니다.
    저도 상영 지지서명 했습니다.
    공유합니다.
    3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Chang Ki lee
    짧지않은 글에 담긴 교수님의 고민과 생각, 천천히 찬찬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지희경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그야말로 답답해서 숨쉬기 어려운 지경...ㅠ 줌으로나마 교수님 강의에 함께할 수 있는, 시원한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강영희
    교수님의 글로 깨어있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상영이 꼭 되어야 합니다.
    텍스트복사로 공유해요.
    교수님과의 8월의 데이트를 기다리며.....
    2
    강남순 replied
     
    1 reply
    3 h
  • EH Joo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상영을 지지합니다.
    2
  • Young Ok Park
    고맙습니다.
    공유합니다.
  • 이선희
    교수님의 처음 접하는 글이 저게는 선뜩 읽히지는 않았지만 한글자도 빼지않고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교수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반성하고 내일은 오늘의 반복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이성적인사고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 송요훈 
    Follow
    질문 없는 사회, 눈먼 자들의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Complexfy, 복합화하라. 받아쓰기가 체질이 된 한국의 기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3
  • 신창기
    선생님의 치열한 사유의 흔적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 Jinyee Choi
    늘 사유의 과정을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나눠주심에 항상 감사합니다.
  • 석락희
    사유하기와 올바른 질문하기, 평가하기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유하겠습니다
  • Hanseop Cheong
    교수님의 글은 매번 우리사회와 저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네요. 감사합니다.
  • 김진하
    모든 사건에 있어서 정치적 입장이 실제성에 앞서 작동하는, 이미지의 절대적 악마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 글이 그런 입장에서의 치열한 사유를 보여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 Mi Sha
    잘 읽었습니다. 다 그렇지만 특히 18번. 자살을 유죄추정의 근거로 쉽게 대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네요.
  • 신경하
    참 고맙습니다. 꼭 상영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샬롬
  • 우희종
    공유합니다
  • 정남관
    고맙습니다.
    교수님 글을 통해 많은 배움과 사유를 할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공유합니다^^
  • Paul Dongwon Goh
    교수님의 “복잡화한” 글과 많은 분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진실을 향한 용기와 희망의 빛을 봅니다.
  • Young Hong
    선생님의 글을 통해 좀더 깊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Felix Hwang
    정치인 박원순이 아닌 사회운동 기획자 박원순이기를 늘 소망했던 사람으로서 #미투 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계속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불어 교수님과 함께 하는 <사유하는 시민 아카데미: 이론 그룹>을 통해서 제 '인식확장의 예식으로서 질문하기'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계속 확장시켜 나감에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최근 자주 접하게 되는 니체와 카뮈의 문구를 다시 한번 들여다 봅니다. "자살을 생각하면 대단한 위안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며 수없이 괴로운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으니까"(니체), “자살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철학적 주제다.” 카뮈가 그의 <시지프스의 신화>의 문을 여는 말.
  • Wan Jun Kim
    너무나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에 적극 동의합니다.
  • 신동현
    언젠부턴가 한국 사회에 비판적 성찰과 합리적 사유는 사라지고, 선동과 비난만이 넘쳐 나는 것 같습니다.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들도 거기에 편승해서 목소리를 높일 뿐 사회적 성찰과 변화를 만드는 일에는 무관심한 듯하네요. 저부터도 그러했던 듯합니다. "누군가가 ‘부탁’했다고 해서 내가 행동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많은 부탁, 지시, 역할에 의해서 이해되지 않은 일이어도 일에 떠밀려 일하고 있는 '현재의 나'인 듯하여, 교수님의 글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왜 하는가? (Why am I doing what I am doing?)" 자문해보고 답을 찾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좋은 글 공유합니다!
  • 김명희
    아! 긴 글,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에 실명이 한 번 언급되었던데 괜찮은가요? 괜히 걱정됩니다.
    단 한 번 만남이 있었을 뿐인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