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7

Hyun Ju Kim [파격하는 여인들]

(15) Facebook
Hyun Ju Kim
49tSm3uf4mp5o27umo2r01eha2  · 
[파격하는 여인들]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인이 자기 아내가 되자, 그는 그 여인과 동침하였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늘 기리어지기를 바랍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룻기 4장 13-17절]

구약과 신약이 만나는 지점은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학자들의 해석에 앞서 역사적 예수의 혈통이 담긴 족보에 있다. 족보에는 유대인들이 익히 들어 온 조상들의 이름이 있다. 우리도 족보가 있지 않은가! 유대인은 경전에 적힌 족보를 읽으며 ‘거기에 나도 있다!’라고 느끼겠지. 친구 이름, 아버지 이름, 내 이름을 따온 그 이름들이 거기 있잖아. 외국인 중에 존, 피터, 마크, 죠슈아, 아브라함, 제이콥... 같은 아이들은 성경을 읽을 때 왠지 자신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성경은 족보라는 틀에 이야기를 담는 형식으로 경전과 공동체 사이의 경계를 낮춘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기라성같은 구약의 영웅들이 도열한 예수의 족보가 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족보는 혈통과 무관하다. 마태복음은 우선 아브라함에서 시작한다.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천명하고 유전자가 전달되는 과정을 전향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아브라함의 유전자는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에게 전달되고 예수는 도리어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온다. 이렇게 마태복음 족보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자손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누가복음 족보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메시아로 데뷔하는 장면에 이어,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요셉의 아들이었다’라는 겸연쩍은 말로 시작한다. 사실은 아버지 없는 아이였지만 요셉이 아들로 삼았으니까,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아니라도 요셉의 아들로 치자며 족보를 적기 시작하여 마침내 하나님까지 끌어올린다. 사실은 가짜라면서 진짜 같은 서사를 이어붙인다. 막판에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낯설다.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낳았다니, 낳는다는 말은 내가 아는 그런 뜻이 아닌가? 성경에서 나오는 아들과 아버지라는 말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뜻도 있는가 보다. 
오벳은 독특한 위치에 있는 아이다. 오벳의 아버지는 보아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의 족보에서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이자 이새의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서 역사적 예수에게까지 흘려보낸 유전자는 없다. 아마도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낳는 것과 같은 추상적인 출산이 틈을 메웠을 것이다.
한편 오벳의 어머니는 룻이다. 룻은 모압 사람이다. 모압은 아버지를 역강간한 롯의 큰딸이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만큼 대단한 부족은 아니어도, 모압과 암몬은 역사에 남았다. 아버지를 범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남기고자 주체적으로 행동한 여성들은 수동적인 아버지 대신 이름을 남겼다. 신명기 저자는 모압과 암몬을 구속사에서 배제하지만(신 23:3-6), 룻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다윗의 파란만장한 출세기와 마침내 메시아의 족보에서도 모압은 면면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룻기 마지막에서 오벳의 모계는 어머니 룻이 아니라 외할머니 나오미로 연결된다. 나오미는 죽은 남편과 아들을 대신하여 룻이 보아스에게서 낳은 아들 오벳을 받아 그의 어머니 노릇을 한다. 여기서 보아스는 정자공여자처럼 보인다. 이를 확인하듯 이웃 여인들이 와서 아들을 낳은 나오미를 축복한다. 그렇다면 룻은 자궁대여자잖아. 오벳은 나오미의 아들이 되어서, 보아스의 아들이자 이새의 할아버지, 다윗의 증조할아버지이지만, 동시에 룻에게는 아들 겸 시동생이 되었다.

콩가루... 복잡해... 여기서 내가 얼마나 부정(父精)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족보는 원칙적으로 부계를 기록하지만 의미 있는 사건은 모혈(母血)이 끼어드는 파격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오벳의 복잡한 가계도를 그려보노라면 족보의 초점은 부정이나 모혈에 있지 않고 상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요약하면, 성경의 족보는 기업을 잇는 일을 혈통에만 맡기지 않고 입양이나 불륜이나 근친도 사양하지 않는다. 
자손을 낳아 흔적을 남기고 싶은 동물적 본능을 충족하는 일에 여성보다 열등한 남성은 반수체인 정자가 온전한 씨앗이라는 오개념을 가지고 여성을 자궁이라는 도구를 가진 존재로 전락시키는 남성 중심적 질서를 구축했다. 남성을 위해 남성에 의해 기록된 예수의 족보는 여성을 끼워 넣는 파격으로 남성 중심의 질서를 깬다. 성령의 저술이라고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점에 신의 아이를 낳은 처녀가 있다. 참 생명이 태어나는 일에 씨앗은 필요가 없다. 여인의 정신과 몸이 전통을 파격하면 새로운 족보가 기록된다. 그래서 오벳은 룻의 아들이면서 나오미의 아들일 수 있었다. 
이 마을 남성들은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고 나오미 가문의 땅을 보아스가 대신 상속하는 일에 재정증인이 된다. 젊은 아내를 맞은 보아스에게 샘이 났는지 “다말과 유다 사이에서 태어는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리 나이 차이가 컸나? 아들이며 동시에 손주였던 부끄러운 쌍둥이처럼 되라고?  

그리고 이웃 여인들은 룻이 아들을 낳자 나오미의 아들이라고 축하하며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나오미가 룻이 낳은 아들을 데려다가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엘리멜렉의 재산을 오벳에게 물려준다는 이유가 가장 컸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굳이 여인들이 축하하고 여인들이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서술은 이 장면에서 여성들의 연대가 작동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룻이 둘째를 낳았다는 말은 없지만 한참 성욕이 왕성한 나이에 부자 남편 보아스와 둘째 셋째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지. 더군다나 오벳은 나오미가 맡았으니. 하물며 보아스에게 다른 아내들과 자식들이 없었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보아스는 오벳의 아버지로 기록되었다. 그래야 이새가 나오고 다윗이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부자지간이다. 거기에 보아스가 오벳을 낳는 생물학적인 출산과 나오미가 오벳을 낳는 사회적인 출산이 겹쳐 있다. 이 이상한 사건에 룻과 나오미는 물론 그들과 함께 한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고 그 끝에 그리스도가 있다. 나는 이 콩가루 같은 족보 이야기를 들여다보느라 진이 좀 빠졌다.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