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개정판
김영서 (지은이)이매진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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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9년의 성폭력, 아빠라는 이름의 가해자와 사회라는 이름의 공모자가 만든 지옥에서 탈출했고, 그 시간을 한 자 한 자 기록해 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고.
2012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써 내려간 반짝반짝 빛나는 치유와 생존의 기록은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달아야 했다. '은수연'과 '김영서'가 함께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모자이크를 치워버리고 생존자로 당당히 세상에 나서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2020년, 출간 뒤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저자 본명을 밝히고, '다시 쓰는 프롤로그'를 더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제 '은수연'은 '김영서'라는 이름을 찾아 새롭게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낸 삶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보드라운 개척자'로 사람들에게 손 내미려 한다.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로 말하려 한다.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목차
다시 쓰는 프롤로그 출발하는 김영서
초판 추천 글 수연의 힘과 용기, 세상을 바꾸다
프롤로그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
1장 문이 닫힙니다
2장 다시 지옥으로
3장 ‘아빠’라는 사람의 끝
4장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5장 생일잔치
6장 초경통
7장 그 속에서 살아남기
8장 발광 속에서 발광하다
9장 그때 그 사람들
10장 산 1-1번지
11장 수능 전야 1
12장 수능 전야 2
13장 아빠, 수치심 종합 선물 세트를 돌려드립니다
14장 첫 번째 처방전 - 노출
15장 두 번째 처방전 - 표출
16장 세 번째 처방전 - 투자
17장 힘과 용기의 차이
에필로그 여행길에 만난 용서
아빠에게 보낸 편지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막내야, 누나 장 보다 빠트린 거 있거든. 금방 사올게."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를 사람이 매사 조심하고 의심하는 게 성폭력 예방이 아니다. 성폭력 예방 주사는 사회 구성원 모두 맞아야 하는 게아닐까? 내 아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내가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가 또한 이 사회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바꿔서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에 관해 좀더 쉽게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사회를 만드는 것,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키우는성교육을 하는 것. 아이들과 여성들이 혼날까 두렵거나 부끄러워 말하지못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이 겪어내고 극복한 일을 영웅담처럼 시원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진짜 예방 주사가 되지않을까? 접기
내가 뭔가 잘못한 듯 간직하던 비밀, 그런 부당한 느낌을 갖게 한아빠라는 사람의 짓거리들 용서하고 나니 아무것도 더는 나를 그 속에가둬두지 못했다.
나 이제 정말 문을 열고 나간다. - 유지은
˝선생님, 애들이 00반 담임 선생님 저질이라고 하던데요, 저질이 무슨 뜻이에요?˝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졌다.
˝수연아,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선생님한테. 앉아.˝ - 유지은
그러나 겁먹지 말자. 아픈 기억으로 만들어진 상처가 언젠가는 만져도 아프지 않고, 그때 여기에 상처가 있었지 하는 분홍빛 새살이 되듯,
그럴 날이 올 테니까. 그래서 내 팔뚝에 흉터가 남아도 내가 싫지 않고,
밉지 않고 그 흉터까지 예뻐하며 같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새살이 돋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 유지은
여기서도 나는 잔뜩 배가 부른 행복하게 보이는 아주머니들 틈에 생뚱맞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꼭 엄마 따라 온 것처럼, 내가 산부인과환자는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어김없이 내 이름은불렸고, 나는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이미 이전 병원 의사의 소견서와초음파 사진 등을 보고 다 알아서 다른 궁금한 것도 없는 듯했다. 일단오늘 당장 시술부터 하자고 했다. 태아가 너무 자란 상태여서 그냥 수술이 안 되고, 약물을 넣어 돌려서 태아를 낳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접기
전 지구에 내 문제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 문제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못하는 벙어리가 돼서 사는 외로움. 그런 와중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학교 생활을 즐기고, 우정을 나눴다. 그래, 아빠라는 사람이 나를 아무리 감시해도 내게는 나만의 탈출구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의 싹이 내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 유지은
나는 쉽사리 용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욕할 만큼 하고, 미워할 만큼미워하고, 죽이고 싶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속이 풀릴 때까지 원 없이 욕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설프게 미워하고, 대충욕하지 말고, 완벽하게, 철저하게 온 마음을 다 실어서 더는 미워할 힘이남지 않을 때까지 미워하라. 욕하고, 욕하다 더는... 더보기
-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
- 나는 어느 순간에도 자포자기 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때면 이게 끝이 아니다는 생각을 강하게 붙잡았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게 아니니 악쓰고 버텨냈다.
- 타인의 투자는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는 것도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신뢰가 없던 난 나를 진심 사랑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타인을 조금씩 신뢰하게 됐다. 사랑으로 채워야할 공간은 오직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 같다.
의외로 많은 사람을이 당신을 위해 각자가 줄 수 있는 것들을 내어놓을지 모른다.
당신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접기
P. 153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 더보기
P. 126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를 사람이 매사 조심하고 의심하는 게 성록 력 예방이 아니다. 성폭력 예방 주사는 사회 구성원 모두 맞아야 하는 게아닐까? 내 아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내가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못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이 겪어내고 극복한 일을 영웅담처럼 시다. 그런 우리가 또한 이 사회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바꿔서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에 관해 좀더 쉽게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사회를 만드는 것.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키우는성교육을 하는 것. 아이들과 여성들이 혼날까 두렵거나 부끄러워 말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이 겪어내고 극복한 일을 영웅담처럼 시원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진짜 예방 주사가 되지 않을까? 접기
P. 159 ˝오늘이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죠, 지금 수능 시험장을 향하는 학생들과 함께 계신 부모님들께서는 어깨도 토닥여주시고, 너무 긴장하지 않고 시험 잘 보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그때의 라디오 방송 멘트, 택시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진행자의 말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불쌍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주체할 수 없었다. 차창을 바라보며 고개를들어올렸다. 울고 있는 것을 들키면 갑자기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할까봐 걱정됐다. 접기
P. 186 이런 경우 말하고 난 뒤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하더라도 움츠러들지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안전장치 없이 내가 말하고 싶은 대상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때 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낸 느낌이었다. - 알6047
P. 188 ˝자기 상처의 깊이에 갇혀 ‘뭐 저걸 가지고 힘들다고 난리야?‘ 그런생각을 넘어설 때 너는 진짜 멋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거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상처로 아프고 힘든 것이다. 네가 가장 힘든 건 아니다.˝ - 알6047
P. 188 상대방의 반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고 난 뒤의 내 반응이었다.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내가 괜찮으면 괜찮다.
중요한 것은 ‘노출 뒤 내 마음은 어떤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시원하고, 내가 편안한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노출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자신을 두는 게 좋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 알6047
P. 201 꼭 타인과 벌이는 싸움만은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자신하고도 처절하게싸우고, 이겨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이 다가오면 피하지 말기를 바란다. 싸울 때는 상대가 타인이든 나 자신이든 열심히, 끝까지 싸우는 게중요하다. 시작했다가 물러서거나 참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되고, 점점 위축될 수 있다. - 알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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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신문 2020년 3월 13일 성과 문화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김영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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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에서 ‘지진’을 경험하는 듯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지났다. 세상에 홀로 나와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개인의 재수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동안 혼자 겪은 친족 성폭력을 글로 써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냈다. 10년 전, ‘은수연’으로 세상에 내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10년 동안, ‘은수연’과 ‘김영서’가 함께 사람들을 만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영서’로 새롭게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낸 삶으로.
최근작 : <질문하는 사람>,<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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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과학 소설>,<사회의학>,<나라는 사람>등 총 113종
대표분야 : 여성학/젠더 12위 (브랜드 지수 33,756점), 환경/생태문제 21위 (브랜드 지수 6,74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평범하고, 부드럽고, 그래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럼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9년의 성폭력, 아빠라는 이름의 가해자, 사회라는 이름의 공모자,
그 지옥에서 탈출해 써내려간 반짝반짝 빛나는 생존과 치유의 기록!
‘은수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 ― 친족 성폭력 생존자 ‘은수연’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 ‘김영서’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9년의 성폭력, 아빠라는 이름의 가해자와 사회라는 이름의 공모자가 만든 지옥에서 탈출했고, 그 시간을 한 자 한 자 기록해 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고.
2012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가족과 성폭력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 써 내려간 반짝반짝 빛나는 치유와 생존의 기록은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달아야 했다. ‘은수연’과 ‘김영서’가 함께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모자이크를 치워버리고 생존자로 당당히 세상에 나서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악이 사라짐.” 2019년, 아빠라는 악이 사라졌다. 그 뒤 1년 정도 지난 지금에서야 김영서는 은수연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짜 이름 영서로 세상에 나서기로 했다. 아빠라는 악은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더 많은 악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은수연이던 김영서는 작고 평범한 사람이다. 은수연이라는 보호막이 걷힌 뒤에는 단골 카페나 슈퍼에 편하게 갈 수 있을까 염려하고, 지하철을 마음놓고 탈 수 있을까 아직도 걱정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건네면서 조금씩 단단해진 김영서는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 은수연하고 작별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보드라운 개척자’로 살아가려 한다. ‘미투조차 어려운 친족 성폭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말하는 사람들 모임’(공폐단단)으로 모인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활동에 힘을 보탤 참이다.
2020년, 출간 뒤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가 저자 본명을 밝히고, 〈다시 쓰는 프롤로그〉를 더한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제 ‘은수연’은 ‘김영서’라는 이름을 찾아 새롭게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 담담하게 살아낸 삶으로.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보드라운 개척자’로 사람들에게 손 내미려 한다. 다시, 출발하는 김영서로 말하려 한다. 견뎌내지 못할 아픔은 없고,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침묵을 깬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생생한 자기 고백
‘친족 성폭력.’ 더는 낯설지 않은 이 단어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먼저 다가온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분노한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냐면서 ‘인생 망친’ 피해자를 동정하고, 정상적인 우리 가족의 삶에 안도한다.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말이다. 신문 지면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피해자는 그저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일을 당한 낯설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이 침묵을 깨고 피해자, 아니 ‘생존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성폭력 전담 상담 기관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4년 넘게 연재된 글을 엮고 다듬은 이 책에서 김영서 저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9년 동안 아버지의 성폭력을 견디다가 마침내 탈출할 때까지 자기가 겪은 경험을 가감 없이 증언한다. 그리고 탈출과 가해자 처벌에서 끝나지 않은 ‘생존자’의 이야기,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처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해자와 가해자를 두둔하고 방치한 사회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힘겨운 삶을 살아낸 자기만의 비법을 전수해준다.
생존을 넘어 치유로 ― 9년에 걸친 오지 탐험 다큐멘터리
“아저씨, 저 납치됐어요.” 수화기를 들고 여관 주인에게 구조 요청을 보낸 영서는 문이 열리자마자 정신없이 달려 경찰서로 도망쳤다. 여러 행운과 좋은 사람들이 건넨 도움 덕에 가해자는 중형을 받았다. 끝까지 ‘좋은 아빠’인 척하는 가해자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영서는 9년 동안 이어진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냈다. 끝은 아니었다. 9년 동안 이어진 폭력이 남긴 흔적과 상처는 해결되지 않은 채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고, 영서는 긴 세월을 여기에 맞서 싸워야 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성폭력의 흔적과 상처를 글로 풀어내며 다독여온 여정인 동시에, 성폭력에 맞서 싸워온 치열한 분노와 고발의 기록이다. 목사 행세를 하며 먹고사는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저질러온 성폭력, 가정 폭력, 폭언과 폭행, 초경통하고 함께 겪어낸 원하지 않은 임신과 임신 중단, 탈출하고 다시 잡혀 오기를 거듭하는 동안 피해 사실을 눈감은 채 피해자를 가해자에게 돌려보낸 주변 사람들. 초판 프롤로그에서 일러두듯 이 책에 기록된 시간들을 읽는 경험은 ‘보기만 해도 힘든 오지 탐험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 같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결코 입을 열지 않을 테니 힘들어도 자기가 나서서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은 영서는, 다시 떠올리기도 힘들 폭력의 기억들을 용감하게 마주보고, 찬찬히 되새기고, 낱낱이 고발한다.
‘생존자’로서 저자 김영서가 지닌 생명력과 힘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함께 아픔을 견뎌낼 수 있게 도와준다. 때로는 마음껏 욕하고, 때로는 수치심이나 버거움을 숨기지 않은 채 털어놓으면서, 상처 안에 홀로 선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며 살아남은 힘겨운 과정을 거침없이 펼쳐 보여준다.
각 장 뒤에 실린 ‘영서의 한마디’는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성폭력 문제 자체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이끈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팁을 제시하기도 하고, 성폭력, 특히 친족 성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친족 성폭력 문제가 지니는 특수성을 차근차근 짚어주기도 하며,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피해자의 권리를 역설하기도 한다. 책 말미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체험에서 우러난 세 가지 ‘처방전’을 건네는 일도 잊지 않는다. 상처를 ‘노출’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자기 치유에 ‘투자’하라는 처방을 제시하며 오랜 세월 치유의 길을 걸어온 자기만의 풍부한 경험을 들려준다.
김영서는 ‘여행길에 만난 용서’를 마지막으로 책을 끝맺는다.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남반구로 날아간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계기를 통해 용서하는 길을 찾았고, 그곳에서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용서의 편지를 띄운다. 용서의 편지하고 함께 자기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자기의 몸과 마음을 붙잡아온 수치심까지 한꺼번에 날려 보낸다. 언제나 용서해야만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성폭력 생존자마다 각자 걸어야 할 자기만의 치유의 거리와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논-픽션 ― 빛을 만나 반짝이는 눈물에 담긴 희망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써 내려간 치유의 비망록이다. 예외적인 비극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미담도 아니고, 눈물만 강요하는 자기 위안을 위한 장치도 아니다. 《안네의 일기》나 《죽음의 수용소에서》처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산 순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 친족 성폭력 생존자 김영서가 쓴 글은 그만큼 큰 울림을 전해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단지 몇 줄에 그치는 건조한 사실 확인으로 끝날 수 없는 친족 성폭력의 이면을 가해자의 말 한마디까지 고스란히 담아 낱낱이 폭로하며, 한편으로는 생존자가 나름대로 피해 상황에 대처하면서 버텨내고 살아남아온 힘과 에너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아픈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일 수 있다. 피해자 보호를 가장 우선하며 사건 처리를 맡아준 형사, 상처를 보여준 때 힘이 돼준 친구들과 동료들, 자기가 흘린 눈물을 반짝이게 해준 그 빛들에 저자 김영서는 고마움을 전한다. 전자 발찌나 화학적 거세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 앞에 놓인 삶이라는 긴 여정을 오롯이 걸어갈 수 있게 도운 주변 사람들이 그런 빛들이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 담긴 뼈아픈 고백은 ‘예외’이고 ‘비정상’인 한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 커다란 과제를 우리 앞에 던진다. 이제 당신 차례다. 남모르는 아픔에 힘겨워하는 많은 생존자들에게 빛이 돼야 할 시간이다.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나는 친족성폭력이 뭔지 몰랐다. 이 글을 읽고 같이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불가사의不可思議 2023-10-17 공감 (2) 댓글 (0)
읽는 내내 정말 힘들었던 책, 진짜 많이 울었다.. 어느 부분은 읽다가 토할 거 같고 쌍욕이 나왔다...
^-^ㅑ
ㅇ
용기 있는 저자👏👏👏
쌩惡 그 자체; 끔찍..;
내가 가장 궁금한 거는 우리나라의 논리;
그 오지랖 넓으신 사람들,, 쓸 데 없는거는 다 간섭하면서
왜왜왜왜 도대체 왜....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아동 학대에는 관대한가..하는 거다
같은 행동도 길가는 사람에게 저지르면 감방가는데... 왜 더 소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가중처벌해야지!!!!!!!!!!!!!!!!!!!!!!!!!!.
가해자 중심의 처벌방식
가해자가 초범이건, 똑똑하건, 장래가 밝건, 취했건, 그럴 의도가 없어보이던(그렇지 않던) 간에 사건은 변함없고 피해자의 아픔은 단 1도 변함이 없다는것이다..
왜 이 끔찍한 사건에 징역 몇년에 그친지 모르겠다..
째재 2020-12-04 공감 (6) 댓글 (0)
살아줘서 고맙다.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는 시구가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큰 용기를 냈다. 아니 그 지옥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실하게 배웠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불쑥 분노와 두려움이 몰려오겠지만 그때마다 용기와 저자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도와주시기를 빈다.
좋음 2020-11-23 공감 (6) 댓글 (0)
평점분포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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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당당히 선. 생존자 영서님의 미투,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line 2020-03-08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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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연에서 김영서로. 또 한번의 걸음을 응원하며!
sidestory 2020-03-08 공감 (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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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고......또 응원합니다.......
goodyj3 2020-11-08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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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즈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울고 가슴을 치면서 읽었습니다... 부디 영서님 가시는 길에 꽃과 따스함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박joybora 2020-09-16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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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읽고 싶은데...읽을 용기가 필요한 책이네요....
김영서씨 삶을 응원합니다~
bumsu0125 2020-08-14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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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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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책을 읽는 동안 우울했다. 읽다가 덮고, 다시 펼쳐서 읽다가 덮고를 반복하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9년동안이나 아빠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당한 지은이는 얼마나 힘이들고 외로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되는대로 살지 않고 잘 버티며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생존자로,마침내는 승리자가 된 지은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까지도 사회에서는 성폭력를 당하면 가해자보다도 피해자가 더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죄책감과수치심은 피해자가 느끼는게 아니라 가해자가 느껴야하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 접기
벨리나 2020-07-10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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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살아줘서 고맙다.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는 시구가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저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큰 용기를 냈다. 아니 그 지옥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실하게 배웠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불쑥 분노와 두려움이 몰려오겠지만 그때마다 용기와 저자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도와주시기를 빈다.
좋음 2020-11-23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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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읽는 내내 정말 힘들었던 책, 진짜 많이 울었다.. 어느 부분은 읽다가 토할 거 같고 쌍욕이 나왔다...
^-^ㅑ
ㅇ
용기 있는 저자👏👏👏
쌩惡 그 자체; 끔찍..;
내가 가장 궁금한 거는 우리나라의 논리;
그 오지랖 넓으신 사람들,, 쓸 데 없는거는 다 간섭하면서
왜왜왜왜 도대체 왜....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아동 학대에는 관대한가..하는 거다
같은 행동도 길가는 사람에게 저지르면 감방가는데... 왜 더 소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가중처벌해야지!!!!!!!!!!!!!!!!!!!!!!!!!!.
가해자 중심의 처벌방식
가해자가 초범이건, 똑똑하건, 장래가 밝건, 취했건, 그럴 의도가 없어보이던(그렇지 않던) 간에 사건은 변함없고 피해자의 아픔은 단 1도 변함이 없다는것이다..
왜 이 끔찍한 사건에 징역 몇년에 그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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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재 2020-12-04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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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로 가치있는 분, 가치있는 책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먼저 말씀하시고 담담하게 하지만 힘있게 이야기를 이어가셨죠.
작가님께 힘이 되고 싶어서 책을 구입했습니다.
읽는 동안 작가님이 서두에 쓰신것처럼 구토도 나올것 같았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왔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제가 힘을 얻고있었습니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위로의 글보다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대가 되어주고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어둠의 상황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기는 커녕 더 빛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고 다시 힘을 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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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gggi 2020-11-13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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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일기
한 페미니즘 책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라는 소제목을 단 책이 있다는 걸.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페미니즘 책에서는 신체적 우위를 통한 폭력을 설명하며 해당 책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잠시 망설였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너무 여운이 오래남지 않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봅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일단 이 프롤로그부터 읽어본 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p.16)”고 독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저는 고민했지만, 분명 힘들 수 있지만,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릭했고, 구매했고, 손에 들어 완독하기까지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으로 임신하게 하고, 낙태까지 경험하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수능 전날 밤 호텔에서 성폭력 하려다 말을 안 듣는다고 밤새 때린 것을 용서합니다. 하루는 기절할 때까지 나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다음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중략) 내가 기침 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는 데 그 짓거리 하겠다며 내 위에 올라타서는 계속 기침한다고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내리치던 것을 용서합니다. (p.249)
책은 목사였던 아빠로부터 저자 김영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당한 성적 학대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힘내라, 이겨내라 따위의 어줍잖은 말은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감히 누가 저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것은 꼭 말하고 싶습니다. 책 안에서 저자 김영서는 살아 숨쉽니다. 자신의 과거에 징 밖혀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이 아닙니다. 필명 '은수연'을 벗어내고 사람 '김영서'가 되었듯이, 자신의 삶을 기도하고 응원하며 힘차게 나아가도록 독려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을, 현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이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만 조금 바뀐다면, 자기가 겪은 일을 스스로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편해질 수 있을 텐데 싶다. (중략) 그냥 치료가 필요한 상처로 봐주면 좋겠다. 칼자국은 그저 상처일 뿐, 다른 생각은 말아주시기를. (p.26)
저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도움으로 치유를 시작했고, 문집에 글을 싣다가 책을 펴냈다고 합니다. 2012년 필명으로 책을 펴냈고, 8년이 지난 올해 실명으로 개정판을 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상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그녀의 경험에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요. 지옥같던 집에서 도망쳐나와 쉼터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들었다는, 힘이 많이 됐다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저자에게 건내고 싶습니다.
+
그녀의 인터뷰를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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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엔지니어 2020-04-2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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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68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하는 김영서 상담사
이은혜입력 2020.03.30 17:00
수정 2020.03.3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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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사 아버지의 성폭력 고발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개정판 내며 실명 공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나 이거 못 읽겠어." 제목만 보고 책을 가져간 엄마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눈과 코가 발개져 돌아왔다. 온라인에는 엄마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가 많다. 힘들게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중도 포기했다거나, 읽다 울기를 반복하며 여러 번에 걸쳐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한국 사회에 내놓은 첫 수기집이다.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9년간 성적 학대와 각종 폭력에 시달려 온 저자는, 대학교 1학년이 된 1994년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도움을 받아 치유 과정을 시작해 약 10년에 걸쳐 피해 사실을 글에 담았고, 이를 묶어 2012년 세상에 내놓았다.
초판 발행 8년 만에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개정판이 나왔다. 가장 큰 변화는 저자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판에서 가명을 택한 과거의 '은수연'은 개정판에서 '김영서'라는 실명을 공개했다.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또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상담하며 살아가는 김영서 상담사를 3월 1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부터 개정판을 발행하기까지, 그동안 다양하게 고민했던 결을 나눴다. 유사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과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하게 된 이야기와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던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밝힌 김영서 상담사는 인터뷰 도중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여러 차례 눈물이 차오르며 목소리가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담담함과 쾌활함을 오가며 인터뷰에 임했다. 재밌고 수다스럽지만 사려 깊은,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를 만난 듯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김영서 상담사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김영서 상담가는 오랜 고민 끝에 실명을 공개하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폭력 피해에서 살아남아
다른 피해자 돕는 생존자 '김영서'
"2012년에 이 책을 낸 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 '은수연'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꼬리표 없이 '김영서'로 살겠습니다." (8쪽)
- 첫 출간 후 8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먼저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본명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건 1년 넘게 고민하던 일이에요. '큰일이야 나겠어'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도 들어 망설이고 있었죠. 제가 하도 걱정하니까 "너무 걱정되면 그냥 하지 말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차피 이 책은 상담자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 피해 생존자가 많이 보는 책이니 염려하지 마라"고 얘기해 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고민이 쉽게 끝나지 않더라고요.
복합적인 이유로 실명을 공개하게 됐는데요. 우선은 제가 하는 일과 관련 있어요. 현재 디지털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을 상담하고 있는데, 10~20대가 특히 많아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은, 어찌 됐든 자신이 영상을 찍는 데 동의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 힘들어해요. 하지만 동의했든 안 했든 그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집을 탈출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았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기도 하고요. 만나는 피해자들에게, (영상 촬영)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찍고, 돌려 보고, 판매한 사람이 문제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요. 피해 생존자들 수치심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거죠.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 안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본명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폭력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폭력 예방 강사로 강의하러 가기도 해요. 그동안 강의하면서 강사 프로필에 책 이름을 함께 적었어요. 따로 내용을 소개하거나 하지는 않고요. 경찰, 공공 기관,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했는데, 강사로서 제 실명과 '은수연'이 썼다는 책을 동시에 언급해도 별일 안 일어나더라고요.(웃음)
먼저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젊은 층은 제 책을 읽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해요. 한번은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는데, 어떤 학생이 저에게 달려오더니 "선생님 제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때마다 이 책을 읽었어요. 읽으면서 작가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정말 기뻐요"라며 펑펑 울더라고요. 책을 써 줘서 고맙다면서요. 어느 대학원에서 강의할 때도 한 대학원생이 와서 "선생님 책 잘 읽었어요"라고 조용히 언급하고 가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스스로도 조금 더 편안해지면서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러던 차, 지난해 아버지가 죽었어요. 그 사람의 죽음이 실명 공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에요. 이제 아빠라는 사람이 더 이상 나를 물리적으로 괴롭힐 수 없게 됐잖아요.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그 존재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압박을 주는지 몰랐는데, 그가 죽고 나니까 확 느껴지더라고요.
'은수연'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글을 연재할 때 쓴 '수'라는 필명에 살을 붙인 거예요. 여린 것 같기도 하고 가상의 인물 같은 느낌도 있었죠. 하지만 김영서는 달라요. 영서는 실제로 일하고 교회도 다니는, 우리 곁에 쉽게 있을 법한 존재예요. 책에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연의 한마디'라고 적은 게 있는데요. 이제 그게 '영서의 한마디'가 되었어요. 이전보다 더 살아 있는 말처럼 느껴져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른 피해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성폭력 피해를 향한 이상한 시선이 사라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실명을 공개하게 됐어요.
가해자는 아빠이자 목사
"나중에 하나님 만났을 때
고통의 의미 깨달을 수 있었으면"
- 가해자는 아버지이자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더욱 경악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신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르다고 늘 선을 그었어요. 가해자가 설교할 때는 그 앞에 앉아 부러 듣지 않고 성경을 읽었죠. 그래서 몇 번 맞기도 했어요. 저에게 하나님은 생존과 직결되는 하나님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마주한 이 악한 상황을 바꿔 주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 거죠. 책에도 썼지만, 어린애가 백일기도를 17번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100일씩 17번을 세면서 한 기도는 똑같았어요. 이 상황을 바꿔 달라는 것.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지만, 기도 덕분에 제 삶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영서 상담가는 100일 기도를 17번 연달아 하며 이를 빠지지 않고 셌다. 그는 그 기도 덕분에 삶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제가 하나님한테 고분고분하게만 기도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하나님에게 욕도 해요.(웃음) 원색적으로 "내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을 알고는 있어요?"라거나, "아 XX 지금 보고는 있는 거야? 내 기도 듣고는 있는 거야?" 이러기도 하죠.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건 언제 건 하나님에게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 상처 가운데 있을 때도 "하나님, 이 악한 시간이 끝나긴 하는 거죠?"라고 많이 물었으니까.
여전히 교회 다닌다고 하면 제가 뭔가 신앙적으로 단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여전히 제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며 사는 것 같아요.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답을 들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언제라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아하' 이러면서 내가 왜 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 냈어야만 했는지 깨달아지면 좋겠어요. 그걸 바라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거고요. 그분이라면 답을 주실 수도 있지 않겠어요?
책에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썼지만, 사람들에게는 "용서는 매일 다시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때그때 미운 마음이 되살아나면 갱신하고 다시 결단해요. 용서의 편지 한번 썼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매일을 살면서 새로운 감정이 계속 생성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하죠. 그래서 성경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했나 봐요. 그 말씀의 의미가 생생하게 와닿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저는 지금 예수님 믿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잖아요. 하나님에게 항상 제 삶의 의미를 물어야만 했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버텨 온 것 같아요.
- 한동안 교회에 다니지 않다가 다시 교회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지금의 교회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 사정을 당시 교회 안에서 편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어요. 교회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글쓰기 치유 모임 등이 더 편했죠. 교회에서 왜 이야기 꺼내기가 쉽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교회는 '성 = 음란한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성폭력은 그것과 별개 문제인데도 '성'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인식한 거죠. 또 하나는, 교회는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 낼 수 있는 사람들만 다니는 축복받은 공동체여야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아웃사이더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전 교회는 대학에 가야 대학부고, 나이가 차면 결혼해서 여선교회 부서 활동도 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결혼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드는 곳이었어요.
다행히 지금 다니는 교회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여성 목사님이 있어서 그런지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는 공동체예요. 이 교회로 옮기면서 제 상황을 설명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해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여성 목사님에게 영성 지도를 받는데, 목사님은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 불편해하는 지점을 다 들어 주세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 교회는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을 이야기해도 되는, 어느 정도 안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지금 목사님을 만나면서는 아빠라는 사람이 교회랍시고 하던 그곳에서 알던 예수와 다른 예수를 알게 됐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 차원에서 한국교회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목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교인 중 여성 비율이 높은데, 그들을 치리하는 목사 대부분은 가부장적으로 사고하는 남성이잖아요. 이 시스템을 깨려는 시도 없이 교회의 변화가 가능할까 생각도 들어요.
피해자성 매몰되지 않기 위해
과거 상처와 직면해 온 지난날
"친족 성폭력은 '평범한' 가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사람은 죽어도 죄는 남아
가족 악용했으니 가중처벌해야"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피해자들을 힘들게 하는 편견과 오해를 없애는 활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 작은 목소리에 힘을 보내려 합니다. 저는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김영서'라는 본명으로 바꾸고 저를 이 세상에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이제부터 있는 힘껏 말하고 다닐 작정입니다." (10쪽)
- 친족 성폭력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면 좋겠습니다. 책날개에 보면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개인의 재수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쓰셨는데요. 깨달음을 얻기까지 가장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나요.
(곰곰이 생각한 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집을 막 탈출했을 때는, 나에게 굉장히 재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죠. 그때는 나한테 일어난 일에 붙일 이름도 없었어요. 이름 없는 범죄는 피해자를 애매하게 만들고 개인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합니다. 분명 재수 없는 일을 겪고 있기는 한데 뭔지는 모르겠으니, 나라는 존재를 삭제해야만 문제를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집을 나와서 보니 그 일로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이 명백했어요. 가해자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나를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면서 입을 틀어막았겠죠.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친족 성폭력이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의 잘못이 아니다"였어요. 솔직히 그때는 그 말의 뜻이 가슴까지 와닿지는 않았어요. '그래 내 잘못이 아니래' 이러면서 다짐하듯이 머리에 새겼죠.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데, 저는 한 20년 가까이 걸린 것 같아요. 피해를 겪은 시간(9년)의 두 배수는 넘게 걸렸네요. 그사이 상담 쪽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누구보다 이해가 가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어요.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면, 제가 겪었던 일도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간 저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했어요.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느끼는지, 나를 통찰하려고 노력했죠. 여러 관계에서 혹시 내가 나를 피해자로 상정하고 이해받거나 배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지 부러 예민하게 돌아봤어요. 괜히 내 경험 때문에 눈앞에 놓인 현상을 삐딱하게 보는 건 아닌지 항상 점검했고요. 혹시라도 내가 감정에 얽혀 있지는 않은지, 상담하면서 내담자의 경험을 다시 나의 경험에 대입해 생각하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상담사에게 끊임없이 감독을 받았어요. 과거 기억을 계속 직면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대충 넘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상담받고 있는데요. 덕분에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그 시간을 호락호락하게 보내지 않았기에 진짜 제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나를 아꼈기 때문에 더 나에게 집중한 것일 수도 있어요.
- 얼마 전 SBS '그것이알고싶다'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를 다뤘습니다. 피해 생존자들이 이에 문제 제기하며 거리 플래시몹까지 했습니다. 왜 그들은 방송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건가요.
지상파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친족 성폭력을 다룬다고 해서 다들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너무 이상한 방식으로 다룬 거예요.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진행자 김상중 씨가 계속 "여전히 믿기 힘드실 겁니다", "끔찍하실 수도 있습니다", "채널을 돌리고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친족 성폭력은 '끔찍한', '충격적'인 단어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평범한' 가족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고 그 '평범함'이 친족 성폭력을 은폐하죠. 겉으로 보이는 '평범한' 가정의 틀만 유지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우리 가정만 해도 그랬어요. 아빠가 목사인데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부터 성폭행했어요. 다른 가족이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가 아프다가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엄마도 딸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좀 비겁했어요. 밖에서 볼 때 우리 집은 그냥 평범한 교회 목사님 가정이었어요. 나는 그냥 교회 집 딸내미, 엄마는 교회 집 아픈 사모. 밖에서 볼 때 아주 평범한 이 집을 계속 유지하는 건 가해자예요.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들키지 않게 교묘하게 사람을 때릴 수 있으니까요. 아빠는 엄마 얼굴은 절대 안 때렸어요. 밖에서 들키면 안 되니까. 누구는 가족들이 동조했기 때문에 이 폭력이 반복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동조라기보다 폭군 같은 가해자의 협박 아래서 어쩔 수 없이 노예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디지털 성범죄도 마찬가지예요. 디지털 성범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상에 나오는 여성들이 왜 피해자인지 이해하지 못해요. 자기들이 직접 찍어서 업로드했는데 그게 왜 피해냐고 하는데요. 가해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노예화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에요.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방법도 바뀌었어요. 피해 양상이 달라졌어도, 사람을 노예화하면서 외부로는 평범함을 유지하는 방식은 같다고 봐요.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학교에서도 별문제 없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어요. 좀 조용하고 말 없고 혼자 앉아 있는 학생 정도. 가해자는 늘 "어디 가서 말하면 죽여 버릴 거다"라는 말로 저를 세뇌했어요. 그러니 지금처럼 학교에 상담 선생님이 상주해도 아마 털어놓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뭘 잘하든 잘못하든 상관없이 맞고 성폭행당하고, 그런 비정상적인 삶이 반복되면 사람이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가 없어요. 그냥 매일 지옥 같은 현실이 반복되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시점은 그 현실을 벗어난 후예요. 깨달았다고 해도 피해를 바로 증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해리성 장애가 와서 기억이 안 나고, 기억이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참 상담받은 후에야 그동안 겪은 일이 다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요.
친족 성폭력은 이렇게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인데, 언론은 이를 너무 자극적인 방법으로만 소비해요. 보는 사람들은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대" 이러면서 지나가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외면하거나 그 안의 진짜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것이알고싶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는 사람들 모임 - 공폐단단'이 모여 서울 시내에서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는 이름으로 행동하게 됐어요.
김영서 상담가는 또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 시내 곳곳을 돌며 친족 성폭력이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렸다. 사진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혜영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어도 가족 관계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제게 새겨진 폭력의 기억은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 사람은 죽은지 몰라도,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악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1쪽)
-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는 사람들 모임 - 공폐단단'은 어떤 모임인가요.
친족 성폭력에 공소시효라는 걸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죽어도 관계는 끝나지 않거든요. 저도 아빠가 죽었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제 아빠예요. 솔직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 몰랐어요. 그런데 아빠가 죽고 나니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개정판 서문에도 썼지만, 그날을 '악이 사라짐'이라고 표현했어요. 독자들은 제가 책에 용서의 편지를 넣었다고 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용서했다고 해서 과거 일이 다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거지, 절대 가해자를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상담하면서 그렇게 얘기해요. 용서는 그 사람의 자유로움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닌 온전히 저를 위해 한 거거든요. 누구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데, 저에게는 그런 일에 쓸 에너지도 없었어요.
죽고 나서도 영원히 아빠, 오빠, 삼촌인 사람들이 저지른 성폭력에 누가 감히 공소시효를 말하는 건가요. 공소시효라는 게, 이 같은 친족 성폭력 특성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제도예요. 친족 성폭력이 '심각하다', '끔찍하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그렇게 심각한 범죄라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심각하다고 이해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만약 13세 전에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가정해 봐요. 13세면 초등학생이에요.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소할 용기를 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서, 늦게서야 고소하려고 날짜를 세 보면 공소시효가 몇 개월 지난 상태예요. 그래서 신고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경우만 봐도, 성인이 되어도 가해자는 여전히 아빠라는 관계로 남거든요.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의식불명이 되어서 중환자실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그를 보러 간 적 있어요. 그는 이미 의식도 없고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을 정도로 연약한 상태인데도 제 몸이 무서워하더라고요. 몸이 덜덜 떨리고 경직되고. 현실적으로 저는 그 사람보다 더 건장한 게 분명한데도 몸의 반응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제가 성인이 되어도 어릴 때 기절할 때까지 맞던 그 아이는 여전히 제 안에 살고 있죠. 산소마스크를 떼려고 마음만 먹으면 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연약한 상황인데도 제 몸이 얼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친족 성폭력은 관계가 변하지 않기에 다른 성폭력과 다르게 다뤄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가족 관계는 '천륜'이라 끊을 수 없다면서, 왜 공소시효는 마음대로 정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 관계는 어떻게든 안 끊어지니까 오히려 더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해자가 징역 7년을 받았는데, 저는 너무 적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9년 동안 당했는데, 가해자가 그 배수는 감옥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보다 적은 형을 받았으니까요. 1994년 당시 상황에서는 중형이라는 분석이 많긴 했어도, 저는 그 7년이 너무 무서웠어요.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고…. 언제든 가해자가 나타나 제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도할 때도 항상 구석진 곳에 가서 등을 대고 기도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제 등을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김영서 상담가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 또 다른 피해 생존자를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이나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떤 성폭력 피해인지 상관없이, 피해 생존자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숨는 게 아닌 가해자가 숨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이 체포되거나 신상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회가 된다면, 피해자들은 굳이 숨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성폭력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한목소리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되었으면 해요.
친족 성폭력 피해는 지금까지도 저에게 현재진행형이에요. 그런데도 은수연이 아닌 '김영서'를 택한 건, 이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김영서라는 이름은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 아니고, 집을 탈출하고 몇 년 후 제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에요. '영원한 서약'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어떤 방식일지는 몰라도, 내가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니까 그걸 흘려 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요. 책에도 썼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담담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쓴 책을 보면서 많이 울어요. 눈물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욕하고 우는데, 그런 게 사회에 자정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에 같이 분노할 수 있는 것도 큰 힘이에요. 함께 읽으면서 친족 성폭력을 끔찍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수치스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느끼고 깨달으면 좋겠습니다.이은혜 eunlee@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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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68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하는 김영서 상담사
이은혜입력 2020.03.30 17:00
수정 2020.03.3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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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사 아버지의 성폭력 고발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개정판 내며 실명 공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나 이거 못 읽겠어." 제목만 보고 책을 가져간 엄마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눈과 코가 발개져 돌아왔다. 온라인에는 엄마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남긴 후기가 많다. 힘들게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중도 포기했다거나, 읽다 울기를 반복하며 여러 번에 걸쳐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가 한국 사회에 내놓은 첫 수기집이다.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9년간 성적 학대와 각종 폭력에 시달려 온 저자는, 대학교 1학년이 된 1994년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도움을 받아 치유 과정을 시작해 약 10년에 걸쳐 피해 사실을 글에 담았고, 이를 묶어 2012년 세상에 내놓았다.
초판 발행 8년 만에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개정판이 나왔다. 가장 큰 변화는 저자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판에서 가명을 택한 과거의 '은수연'은 개정판에서 '김영서'라는 실명을 공개했다.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또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상담하며 살아가는 김영서 상담사를 3월 1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부터 개정판을 발행하기까지, 그동안 다양하게 고민했던 결을 나눴다. 유사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과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하게 된 이야기와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던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밝힌 김영서 상담사는 인터뷰 도중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여러 차례 눈물이 차오르며 목소리가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담담함과 쾌활함을 오가며 인터뷰에 임했다. 재밌고 수다스럽지만 사려 깊은,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를 만난 듯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김영서 상담사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김영서 상담가는 오랜 고민 끝에 실명을 공개하게 됐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성폭력 피해에서 살아남아
다른 피해자 돕는 생존자 '김영서'
"2012년에 이 책을 낸 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 '은수연'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꼬리표 없이 '김영서'로 살겠습니다." (8쪽)
- 첫 출간 후 8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먼저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본명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건 1년 넘게 고민하던 일이에요. '큰일이야 나겠어'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도 들어 망설이고 있었죠. 제가 하도 걱정하니까 "너무 걱정되면 그냥 하지 말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차피 이 책은 상담자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 피해 생존자가 많이 보는 책이니 염려하지 마라"고 얘기해 주는 친구도 있었어요. 고민이 쉽게 끝나지 않더라고요.
복합적인 이유로 실명을 공개하게 됐는데요. 우선은 제가 하는 일과 관련 있어요. 현재 디지털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을 상담하고 있는데, 10~20대가 특히 많아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은, 어찌 됐든 자신이 영상을 찍는 데 동의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더 힘들어해요. 하지만 동의했든 안 했든 그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집을 탈출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았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기도 하고요. 만나는 피해자들에게, (영상 촬영)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찍고, 돌려 보고, 판매한 사람이 문제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요. 피해 생존자들 수치심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거죠.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 안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본명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폭력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폭력 예방 강사로 강의하러 가기도 해요. 그동안 강의하면서 강사 프로필에 책 이름을 함께 적었어요. 따로 내용을 소개하거나 하지는 않고요. 경찰, 공공 기관,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했는데, 강사로서 제 실명과 '은수연'이 썼다는 책을 동시에 언급해도 별일 안 일어나더라고요.(웃음)
먼저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젊은 층은 제 책을 읽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해요. 한번은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는데, 어떤 학생이 저에게 달려오더니 "선생님 제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때마다 이 책을 읽었어요. 읽으면서 작가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정말 기뻐요"라며 펑펑 울더라고요. 책을 써 줘서 고맙다면서요. 어느 대학원에서 강의할 때도 한 대학원생이 와서 "선생님 책 잘 읽었어요"라고 조용히 언급하고 가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스스로도 조금 더 편안해지면서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
그러던 차, 지난해 아버지가 죽었어요. 그 사람의 죽음이 실명 공개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에요. 이제 아빠라는 사람이 더 이상 나를 물리적으로 괴롭힐 수 없게 됐잖아요.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그 존재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압박을 주는지 몰랐는데, 그가 죽고 나니까 확 느껴지더라고요.
'은수연'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에 글을 연재할 때 쓴 '수'라는 필명에 살을 붙인 거예요. 여린 것 같기도 하고 가상의 인물 같은 느낌도 있었죠. 하지만 김영서는 달라요. 영서는 실제로 일하고 교회도 다니는, 우리 곁에 쉽게 있을 법한 존재예요. 책에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연의 한마디'라고 적은 게 있는데요. 이제 그게 '영서의 한마디'가 되었어요. 이전보다 더 살아 있는 말처럼 느껴져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른 피해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성폭력 피해를 향한 이상한 시선이 사라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실명을 공개하게 됐어요.
가해자는 아빠이자 목사
"나중에 하나님 만났을 때
고통의 의미 깨달을 수 있었으면"
- 가해자는 아버지이자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더욱 경악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신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르다고 늘 선을 그었어요. 가해자가 설교할 때는 그 앞에 앉아 부러 듣지 않고 성경을 읽었죠. 그래서 몇 번 맞기도 했어요. 저에게 하나님은 생존과 직결되는 하나님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마주한 이 악한 상황을 바꿔 주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 거죠. 책에도 썼지만, 어린애가 백일기도를 17번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100일씩 17번을 세면서 한 기도는 똑같았어요. 이 상황을 바꿔 달라는 것.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지만, 기도 덕분에 제 삶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김영서 상담가는 100일 기도를 17번 연달아 하며 이를 빠지지 않고 셌다. 그는 그 기도 덕분에 삶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사실 제가 하나님한테 고분고분하게만 기도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하나님에게 욕도 해요.(웃음) 원색적으로 "내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을 알고는 있어요?"라거나, "아 XX 지금 보고는 있는 거야? 내 기도 듣고는 있는 거야?" 이러기도 하죠.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건 언제 건 하나님에게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 상처 가운데 있을 때도 "하나님, 이 악한 시간이 끝나긴 하는 거죠?"라고 많이 물었으니까.
여전히 교회 다닌다고 하면 제가 뭔가 신앙적으로 단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여전히 제 믿음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며 사는 것 같아요.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답을 들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언제라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아하' 이러면서 내가 왜 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 냈어야만 했는지 깨달아지면 좋겠어요. 그걸 바라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거고요. 그분이라면 답을 주실 수도 있지 않겠어요?
책에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썼지만, 사람들에게는 "용서는 매일 다시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때그때 미운 마음이 되살아나면 갱신하고 다시 결단해요. 용서의 편지 한번 썼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매일을 살면서 새로운 감정이 계속 생성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하죠. 그래서 성경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했나 봐요. 그 말씀의 의미가 생생하게 와닿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저는 지금 예수님 믿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잖아요. 하나님에게 항상 제 삶의 의미를 물어야만 했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버텨 온 것 같아요.
- 한동안 교회에 다니지 않다가 다시 교회에 다닌다고 들었어요. 지금의 교회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 사정을 당시 교회 안에서 편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어요. 교회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글쓰기 치유 모임 등이 더 편했죠. 교회에서 왜 이야기 꺼내기가 쉽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교회는 '성 = 음란한 것'으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요. 성폭력은 그것과 별개 문제인데도 '성'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인식한 거죠. 또 하나는, 교회는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 낼 수 있는 사람들만 다니는 축복받은 공동체여야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아웃사이더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전 교회는 대학에 가야 대학부고, 나이가 차면 결혼해서 여선교회 부서 활동도 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결혼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드는 곳이었어요.
다행히 지금 다니는 교회는 그렇지는 않았어요. 여성 목사님이 있어서 그런지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는 공동체예요. 이 교회로 옮기면서 제 상황을 설명하고 신앙생활을 다시 해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여성 목사님에게 영성 지도를 받는데, 목사님은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 불편해하는 지점을 다 들어 주세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 교회는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을 이야기해도 되는, 어느 정도 안전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지금 목사님을 만나면서는 아빠라는 사람이 교회랍시고 하던 그곳에서 알던 예수와 다른 예수를 알게 됐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 차원에서 한국교회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목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교인 중 여성 비율이 높은데, 그들을 치리하는 목사 대부분은 가부장적으로 사고하는 남성이잖아요. 이 시스템을 깨려는 시도 없이 교회의 변화가 가능할까 생각도 들어요.
피해자성 매몰되지 않기 위해
과거 상처와 직면해 온 지난날
"친족 성폭력은 '평범한' 가정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사람은 죽어도 죄는 남아
가족 악용했으니 가중처벌해야"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피해자들을 힘들게 하는 편견과 오해를 없애는 활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 작은 목소리에 힘을 보내려 합니다. 저는 '은수연'이라는 필명을 '김영서'라는 본명으로 바꾸고 저를 이 세상에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이제부터 있는 힘껏 말하고 다닐 작정입니다." (10쪽)
- 친족 성폭력 이야기를 좀 더 해 보면 좋겠습니다. 책날개에 보면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개인의 재수 없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쓰셨는데요. 깨달음을 얻기까지 가장 도움이 된 건 무엇이었나요.
(곰곰이 생각한 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집을 막 탈출했을 때는, 나에게 굉장히 재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죠. 그때는 나한테 일어난 일에 붙일 이름도 없었어요. 이름 없는 범죄는 피해자를 애매하게 만들고 개인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합니다. 분명 재수 없는 일을 겪고 있기는 한데 뭔지는 모르겠으니, 나라는 존재를 삭제해야만 문제를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집을 나와서 보니 그 일로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이 명백했어요. 가해자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나를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면서 입을 틀어막았겠죠.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친족 성폭력이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고 했다.한국성폭력상담소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너의 잘못이 아니다"였어요. 솔직히 그때는 그 말의 뜻이 가슴까지 와닿지는 않았어요. '그래 내 잘못이 아니래' 이러면서 다짐하듯이 머리에 새겼죠.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데, 저는 한 20년 가까이 걸린 것 같아요. 피해를 겪은 시간(9년)의 두 배수는 넘게 걸렸네요. 그사이 상담 쪽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누구보다 이해가 가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어요. 성범죄 피해 생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려면, 제가 겪었던 일도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간 저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했어요.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느끼는지, 나를 통찰하려고 노력했죠. 여러 관계에서 혹시 내가 나를 피해자로 상정하고 이해받거나 배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지 부러 예민하게 돌아봤어요. 괜히 내 경험 때문에 눈앞에 놓인 현상을 삐딱하게 보는 건 아닌지 항상 점검했고요. 혹시라도 내가 감정에 얽혀 있지는 않은지, 상담하면서 내담자의 경험을 다시 나의 경험에 대입해 생각하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상담사에게 끊임없이 감독을 받았어요. 과거 기억을 계속 직면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대충 넘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계속 상담받고 있는데요. 덕분에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그 시간을 호락호락하게 보내지 않았기에 진짜 제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나를 아꼈기 때문에 더 나에게 집중한 것일 수도 있어요.
- 얼마 전 SBS '그것이알고싶다'에서 친족 성폭력 문제를 다뤘습니다. 피해 생존자들이 이에 문제 제기하며 거리 플래시몹까지 했습니다. 왜 그들은 방송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건가요.
지상파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친족 성폭력을 다룬다고 해서 다들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너무 이상한 방식으로 다룬 거예요.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진행자 김상중 씨가 계속 "여전히 믿기 힘드실 겁니다", "끔찍하실 수도 있습니다", "채널을 돌리고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요. 친족 성폭력은 '끔찍한', '충격적'인 단어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평범한' 가족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고 그 '평범함'이 친족 성폭력을 은폐하죠. 겉으로 보이는 '평범한' 가정의 틀만 유지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우리 가정만 해도 그랬어요. 아빠가 목사인데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부터 성폭행했어요. 다른 가족이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가 아프다가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엄마도 딸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좀 비겁했어요. 밖에서 볼 때 우리 집은 그냥 평범한 교회 목사님 가정이었어요. 나는 그냥 교회 집 딸내미, 엄마는 교회 집 아픈 사모. 밖에서 볼 때 아주 평범한 이 집을 계속 유지하는 건 가해자예요.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들키지 않게 교묘하게 사람을 때릴 수 있으니까요. 아빠는 엄마 얼굴은 절대 안 때렸어요. 밖에서 들키면 안 되니까. 누구는 가족들이 동조했기 때문에 이 폭력이 반복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동조라기보다 폭군 같은 가해자의 협박 아래서 어쩔 수 없이 노예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디지털 성범죄도 마찬가지예요. 디지털 성범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상에 나오는 여성들이 왜 피해자인지 이해하지 못해요. 자기들이 직접 찍어서 업로드했는데 그게 왜 피해냐고 하는데요. 가해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노예화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에요.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방법도 바뀌었어요. 피해 양상이 달라졌어도, 사람을 노예화하면서 외부로는 평범함을 유지하는 방식은 같다고 봐요.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학교에서도 별문제 없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어요. 좀 조용하고 말 없고 혼자 앉아 있는 학생 정도. 가해자는 늘 "어디 가서 말하면 죽여 버릴 거다"라는 말로 저를 세뇌했어요. 그러니 지금처럼 학교에 상담 선생님이 상주해도 아마 털어놓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뭘 잘하든 잘못하든 상관없이 맞고 성폭행당하고, 그런 비정상적인 삶이 반복되면 사람이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가 없어요. 그냥 매일 지옥 같은 현실이 반복되는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시점은 그 현실을 벗어난 후예요. 깨달았다고 해도 피해를 바로 증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해리성 장애가 와서 기억이 안 나고, 기억이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참 상담받은 후에야 그동안 겪은 일이 다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요.
친족 성폭력은 이렇게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인데, 언론은 이를 너무 자극적인 방법으로만 소비해요. 보는 사람들은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를 수가 있대" 이러면서 지나가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외면하거나 그 안의 진짜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것이알고싶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는 사람들 모임 - 공폐단단'이 모여 서울 시내에서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는 이름으로 행동하게 됐어요.
김영서 상담가는 또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서울 시내 곳곳을 돌며 친족 성폭력이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렸다. 사진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혜영"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어도 가족 관계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제게 새겨진 폭력의 기억은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 사람은 죽은지 몰라도,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악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1쪽)
-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는 사람들 모임 - 공폐단단'은 어떤 모임인가요.
친족 성폭력에 공소시효라는 걸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죽어도 관계는 끝나지 않거든요. 저도 아빠가 죽었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제 아빠예요. 솔직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 몰랐어요. 그런데 아빠가 죽고 나니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개정판 서문에도 썼지만, 그날을 '악이 사라짐'이라고 표현했어요. 독자들은 제가 책에 용서의 편지를 넣었다고 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용서했다고 해서 과거 일이 다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거지, 절대 가해자를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상담하면서 그렇게 얘기해요. 용서는 그 사람의 자유로움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닌 온전히 저를 위해 한 거거든요. 누구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데, 저에게는 그런 일에 쓸 에너지도 없었어요.
죽고 나서도 영원히 아빠, 오빠, 삼촌인 사람들이 저지른 성폭력에 누가 감히 공소시효를 말하는 건가요. 공소시효라는 게, 이 같은 친족 성폭력 특성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제도예요. 친족 성폭력이 '심각하다', '끔찍하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그렇게 심각한 범죄라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심각하다고 이해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만약 13세 전에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가정해 봐요. 13세면 초등학생이에요.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소할 용기를 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서, 늦게서야 고소하려고 날짜를 세 보면 공소시효가 몇 개월 지난 상태예요. 그래서 신고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경우만 봐도, 성인이 되어도 가해자는 여전히 아빠라는 관계로 남거든요.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의식불명이 되어서 중환자실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그를 보러 간 적 있어요. 그는 이미 의식도 없고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을 정도로 연약한 상태인데도 제 몸이 무서워하더라고요. 몸이 덜덜 떨리고 경직되고. 현실적으로 저는 그 사람보다 더 건장한 게 분명한데도 몸의 반응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제가 성인이 되어도 어릴 때 기절할 때까지 맞던 그 아이는 여전히 제 안에 살고 있죠. 산소마스크를 떼려고 마음만 먹으면 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연약한 상황인데도 제 몸이 얼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친족 성폭력은 관계가 변하지 않기에 다른 성폭력과 다르게 다뤄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가족 관계는 '천륜'이라 끊을 수 없다면서, 왜 공소시효는 마음대로 정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 관계는 어떻게든 안 끊어지니까 오히려 더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해자가 징역 7년을 받았는데, 저는 너무 적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9년 동안 당했는데, 가해자가 그 배수는 감옥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보다 적은 형을 받았으니까요. 1994년 당시 상황에서는 중형이라는 분석이 많긴 했어도, 저는 그 7년이 너무 무서웠어요.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고…. 언제든 가해자가 나타나 제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도할 때도 항상 구석진 곳에 가서 등을 대고 기도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제 등을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김영서 상담가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 또 다른 피해 생존자를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이나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떤 성폭력 피해인지 상관없이, 피해 생존자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숨는 게 아닌 가해자가 숨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들이 체포되거나 신상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회가 된다면, 피해자들은 굳이 숨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성폭력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한목소리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되었으면 해요.
친족 성폭력 피해는 지금까지도 저에게 현재진행형이에요. 그런데도 은수연이 아닌 '김영서'를 택한 건, 이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김영서라는 이름은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 아니고, 집을 탈출하고 몇 년 후 제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에요. '영원한 서약'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어떤 방식일지는 몰라도, 내가 사랑을 충분히 받았으니까 그걸 흘려 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요. 책에도 썼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담담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쓴 책을 보면서 많이 울어요. 눈물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욕하고 우는데, 그런 게 사회에 자정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에 같이 분노할 수 있는 것도 큰 힘이에요. 함께 읽으면서 친족 성폭력을 끔찍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면 좋겠어요. '피해자가 수치스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느끼고 깨달으면 좋겠습니다.이은혜 eunlee@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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