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실크로드 순례 다녀와 1/
'2026년 지구행성 생태영성 순례'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 5일부터 6월 15일까지 열흘간, 상하이를 거쳐 가욕관, 둔황, 산산, 투루판, 우루무치 등 신장 위구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의 주요 구간을 다녀왔다.
이번 순례에 함께한 일행은 실무를 맡아 준 지구여행학교 새길님을 포함하여 모두 열세 사람이었다. 그렇게 꾸려진 순례단 가운데 새롭게 인연을 맺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와 한두 번 이상 순례를 함께했거나 평소에도 허물없이 지내는 이들로, 모두 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순례 때마다 그날그날 보고 느낀 것을 순례 일지 삼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함께 나누어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와 인연한 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내 순례의 경험을 전하여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순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형태의 글이나 사진은 간신히 전하거나 잠시 볼 수는 있었지만, 긴 글을 올리거나 제대로 소통하기는 어려웠다. 때로는 순례단에게 보내는 내부 공지조차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그 덕분(?)에 지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와 사진을 고르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이미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해도 될 만큼 잘 알려져 있는 까닭에, 내가 새삼 무엇을 보고 느꼈다고 하는 것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귀찮다는 핑계로 느낀 것을 메모조차 하지 않았더니, 돌아온 지금은 제대로 기억나는 것조차 많지 않다. 이번 순례기는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는 몇 가지 기억만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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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는 노신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들렀고, 상하이의 유명한 야경도 다시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감숙성 가욕관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인 가욕관 성루에 올라, 중국 한족(漢族)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서역의 이민족들을 두려움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생각했다.
만리장성, 그 성 너머는 끝없는 모래사막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 두려움도 없는 거친 질주 앞에서, 가지고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이라 할까.
실크로드의 꽃이라고도 하는 둔황의 막고굴(莫高窟)에 들러 4세기 무렵부터 약 천 년에 걸쳐 조성되었다는 불상과 벽화들을 보았다.
'미소 석굴'이라고도 불린다는 그 석굴에서 나는 모든 불보살의 얼굴에 새겨진 천 년의 미소를 보았다. 그 미소는 세월을 초월하여 지금도 환하게 살아 있었다.
이 석굴 불보살들의 미소가 석굴암 천년의 미소와 하나로 느껴진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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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어떤 믿음이 이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에 천 년에 걸쳐 이런 석굴을 파게 하고, 불보살상을 조성하게 하고, 값비싼 염료로 벽화를 그리게 했을까.
(2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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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순례 다녀와 2>
-사막의 생명줄, 카레즈(坎兒井)/
감숙성 만리장성 바깥 지역인 신장 위구르 지역은 말 그대로 황량한 사막 지역이었다. 서역의 이민족, 오랑캐의 땅으로 불렸던 이 지역은 자연 풍토도, 종족도, 언어도, 역사와 문화와 풍속도 한족 중심의 중국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런 곳이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나라 이름 아래 묶여 있다.
쿠무타거 사막에 올라 천산산맥 너머로 지는 해넘이를 보고, 따뜻한 모래 위에 등을 기대고 누워 사막 위로 떠오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저 천산산맥 너머로 저무는 오늘의 일몰은 지금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오늘 이른 아침의 해돋이로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모래 위에 등을 대고 바라보는 저 별들 가운데 어디에선가 이 지구를 바라본다면, 푸르게 떨고 있는 별빛 하나가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타클라마칸 사막 북단에 위치한 투루판의 화염산(火焰山)은 현장법사와 손오공의 이야기로 유명한 "서유기"의 중심 무대다. 여름철 관측 최고 기온이 89도에 이르렀다고 하며, 해발 0미터라는 표지가 세워져 있는 붉게 타오르는 용 같은 지형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때가 오전이었는데도 이미 기온은 45도에 이르고 있었다. 아마 오후에는 50도를 훌쩍 넘으리라 싶었다.
그런데도 화염산 일대에는 넓은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지하수로를 이용해 물을 공급함으로써 포도 농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물들은 모두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라고 한다.
그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이곳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다.
어떻게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을 이런 사막 한가운데까지 끌어올 수 있었을까.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에 있는 카레즈(坎兒井)는 중국의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고대의 위대한 3대 토목 유산으로 평가받는 수로 시스템이다. 투루판 지역의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로, 천산산맥의 녹은 눈과 지하수를 끌어들여 지하 터널을 통해 오아시스와 농경지로 보내는 시설이다.
지하 수로와 연결 수갱(竪坑)을 모두 합한 총길이는 약 5,272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에서 인도 뉴델리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지하 수로와 수갱을 모두 사람의 손으로 파냈다는 사실이다. 몸을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따라 수천 킬로미터의 물길을 만들었다고 하니, 인간이라는 존재의 힘과 생명력에 대해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힘과 생명력이 위대한 문명을 이루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계를 죽임의 길로 몰아넣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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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s post
<실크로드 순례 다녀와 3>
-천산 천지에서 고천제를 올리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 생명이 깃들 수 있는 것은 천산산맥이 있고, 거기에 쌓인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물이 없이는 풀 한 포기도, 사람 한 명도 살아갈 수 없다.
'천지부모'라는 말을 이곳에서는 '천산부모'라 해도 좋으리라 싶다.
그 천산에 있는 천지(天池)에 올라 천제를 모셨다.
중국에는 두 개의 천지가 있다. 우리가 백두산이라 부르는 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하는데, 그 장백산의 천지와 이곳 천산천지(天山天池)가 그것이다.
천산산맥의 주요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박격달봉(博格達峰, 해발 5,445미터) 기슭에 자리 잡은 이 호수는 약 200만 년 전에 형성된 빙하호라고 한다. 말 그대로 '하늘 산'의 '하늘 연못'이다.
한라산 백록담 높이 정도의 고도(1910m)에 자리한 이 호수는 수면 면적이 여의도의 1.7배 정도이며 길이는 거의 4,km에 이르고 최고 수심이 100m가 넘는 큰 고산 호수인데,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침엽수림과 박격달봉의 만년설이 비취색 호수와 어우러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이 호수는 도교 설화 속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예로부터 도가 사상과 신선 사상에서 신비로운 영지(靈地)로 여겨져 온 곳이라고 한다.
그 신령하고 순수한 호숫가에 순례단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가져간 쑥향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향을 피우며 한지에 정성으로 쓴 고천문을 아뢰는 천제를 올렸다.
비록 천산천지에서 목욕재계를 하지 못했고, 격식을 제대로 갖춘 천제는 아니었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향한 저마다의 소원을 소지문에 적어 아뢰고, 순례단 모두의 이름을 담아 고천문을 함께 올렸다.
우리의 고천제(告天祭)는 특정한 종교 의식이 아니다.
우리가 생태영성순례라는 이름으로 찾아가는 신령하게 느껴지는 장소에서, 순례단의 이름으로 마음을 모아 하늘과 땅, 천지만물에게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아뢰는 의식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히말라야와 바이칼 순례를 비롯해 지금까지의 순례마다 천제를 모셔 왔다.
이번 순례의 고천문(告天文)을 함께 나눈다.
<실크로드 생태영성순례 천제 고천문>
하늘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땅을 딛고 하늘을 품은 이들이
오늘 실크로드의 길 위에서
삼가 마음 모아 아뢰나이다.
동과 서가 만나고,
사람과 문명이 오가던 이 길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지금 세상은
기후붕괴와 생태계 멸종,
인공지능과 전쟁의 먹구름,
문명 전환의 대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나라는 나라를 두려워하며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하늘이시여.
우리의 무지와 탐욕을 굽어 살피소서.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땅을 소유하려 하며
하늘의 뜻을 잊고 살아온
우리의 부끄러움을 받아주소서.
이제 이 길 위에서
다시 새 길을 묻게 하소서.
이기는 길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빼앗는 길이 아니라
나누는 길을,
지배하는 길이 아니라
모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
모래바람 속에서도
풀 한 포기가 제 길을 찾듯이,
낯선 땅의 별빛 아래서도
사람의 마음속 하늘이 꺼지지 않듯이,
우리 안의 오래된 생명의 감각을
다시 깨워주소서.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
인간과 뭇 생명이
본래 한 몸임을 알게 하소서.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분열의 시대에 화쟁을,
절망의 시대에 생명의 길을
우리 몸과 마음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이 순례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낡은 문명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되게 하소서.
여기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생명을 모시는 사람,
평화를 짓는 사람,
새 문명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하늘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이 간절한 마음을 굽어 살피소서.
실크로드의 하늘 아래
생태영성순례단
삼가 마음 올립니다.
2026년 6월 13일
실크로드 생태영성순례단
(자명, 자우, 새길, 모정, 청야, 자천, 심천, 애슐리, 경원, 잎새, 정원, 영원, 여류)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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