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4

7. 새로운 사상의 대두 <-- 제6장 인도불교사

7. 새로운 사상의 대두




정해(正解) 불교학 총정리/제6장 인도불교사
7. 새로운 사상의 대두
moksha 2017. 4. 26. 22:54


7. 새로운 사상의 대두



(1) 바라문과 사문



1) 바라문 사회의 생활형태 4단계 [사주기(四住期, 바라문의 4가지 수행시기) 아스라마(āśrama)]


범행기

(梵行期)



가주기

(家住期)



임서기

(林棲期)



유행기

(遊行期)







①범행기(梵行期)[브라흐마짜린ⓢ Brahmacārin, ⓟBrahmacariya] : 학생으로서 베다(Veda)를 공부하며

순결한 삶을 사는 시기이며 학습기(學習期)라고도 한다.

②가주기(家住期)[그리하스타ⓢ Gṛhastha, ⓟGārhasthya] : 가정에서 결혼하여 생활하는 시기

③임서기(林棲期)[와나쁘라스타ⓢⓟ Vānaprastha] : 숲속에서 수행하는 시기

④유행기(遊行期)[상니야신ⓢⓟ Saṃnyāsin] : 유행하며 돌아다니는 시기



2) 사문(沙門)ㆍ사문나(沙門那) : ⓢśramaṇa, ⓟSamaṇa)

① 바라문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불교의 초기경전, 아쇼카왕의 비문(碑文) 등에서 추정

② 이 시대의 혁신적 사상가들의 총칭이다.

③ 한곳에 머물지 않고 두루 편력하면서 숲속에서 수행하고, 시골이나 도시로 가서 가르침을 설하며, 설법의 보수로 보시(布施)된 음식물로 생활(乞食)

④ 사문 각자는 승가[僧伽:상가(Saṅgha) = 종교적 생활 공동체]의 지도자이며 교단의 지도자였다.

⑤ 사문 공동체는 계급신분을 묻지 않고 그 출가를 인정하였다.

⑥ 불교나 자이나교의 개조(開祖)인 니간타나타풋타(혹은 마하비라)가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⑦신흥도시들이 성장한 갠지즈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종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⑧석가모니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 육사외도(六師外道)



장부경전(長部經典)의 사문과경(沙門果經)에는 붓다 재세(在世) 당시 여섯 명의 사상가가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땐 이단의 사상가이므로 (육사외도)라 칭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상가는 여섯 명만이 아니다. 당시 62견(見)이나 363종의 논쟁가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많은 사상가가 배출되고 여러 주장들이 난무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육사(六師)

사상 및 설명


푸라나 카삿파

(Pūraṇa  Kassapa)

도덕부정론(道德否定論) -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a)


푸라나는 가장 격렬한 유물론자로서 도덕적인 선악의 행위가 각각의 선악의 과보를 낳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현실주의의 도덕부정론 즉 무도덕론을 주장한다.


막칼리 고살라

(Makkhali  Gosāla)

숙명론(宿命論)ㆍ결정론(決定論) -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a)


막칼리는 사명외도(邪命外道 Ājīvika)의 대표자로서 모든 생류(生類)의 구성요소로 영혼(靈魂)ㆍ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허공(虛空)ㆍ득(得)ㆍ실(失)ㆍ고(苦)ㆍ락(樂)ㆍ생(生)・사(死) 등의 12가지를 상정하고 이를 궁극적 실체로 보고 있다. 또 업에 의한 윤회를 부정하는 무인론(無因論)을 주장한다.



아지타 케사캄발린

(Ajita  Kesakambalin)

유물론(唯物論) -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a)


아지타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요소설을 주장하는데, 인간은 이들로 구성되어 신체의 파멸과 함께 소멸한다고 설한다. 그 속에 영혼과 같은 정신적 존재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은 감각적 유물론으로 순세파(順世派:세간의 탐욕과 쾌락을 따르는 무리)의 선구로 보인다.


파쿠다 캇차야나

(Pakudha

Kaccāyana)

칠요소론(七要素論)


파쿠다는 지(地)・수(水)・화(火)・풍(風)・고(苦)・락(樂)・명(命)의 7요소를 주장한다. 여기서 명(命, Jīva)는 물질적인 것으로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들은 무력하고, 자재(自在)하지 못하고, 억울하여 원수질 일도 없다. 운명속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에 이 생애에서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산자야 벨랏티풋타

(Sañjaya

Belaṭṭhiputta)

회의론(懷疑論)ㆍ불가지론(不可知論)


원래 회의론을 나타내는 아마라빅케빠바다(amarāvikkhepavāda)는‘뱀장어를 잡는 듯이 혼란스러운 이론’을 말한다. 산자야는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을 부정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 amarāvikkhepikā-vāda)을 주장한다.


니간타 나타풋타

(Nigaṇṭha

Nātaputta)

자이나교ㆍ5종의 유취(有聚)


니간타는 이원론적(二元論的) 우주론을 제시하였으며 그는 세계는 영혼(jīva)과 비영혼(ajīva)의 법(法:Dharma:운동의 조건)ㆍ비법(非法:adharma:정지의 조건)ㆍ허공(虛空, ākāshia)ㆍ시간(時間, kāla)ㆍ물질(物質, pudgala)이라는 6개의 실재(dravya)를 주장하며 영혼(jīva)의 본성이 미세한 물질인 업 때문에 윤회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ātaputta)

자이나교의 교조로 바르다마나(Vadhamana)를 불교도가 부르는 명칭이며 나타풋타는 나타(Natha)족 출신을 의미한다. 그는 마하비라(Mahavira)또는 지나(jina)라고도 불려지며, 이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을 자이나(Jaina)라고 한다. 그는 붓다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그로부터 200~250년 정도 전에 실재했다고 생각되는 파르스바(Parsva)의 가르침을 개혁하여 불살생(不殺生)・불망어(不妄語)・이불여취(離不與取)・불사음(不邪淫)・무소득(無所得) 등의 5대 서원(誓願)을 세웠다.

‘힌두교의 윤회’와 ‘불교의 윤회’는 어떻게 다른가 > 마성스님, 월간고경

‘힌두교의 윤회’와 ‘불교의 윤회’는 어떻게 다른가 > 월간고경 | 백련불교문화재단

‘힌두교의 윤회’와 ‘불교의 윤회’는 어떻게 다른가11:48 / 조회4,531회 

법수法數 10 / 무아와 윤회 ②

힌두교의 윤회와 불교의 윤회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윤회를 나타낼 때에는 transmigration(이주移住)이나 reincarnation(환생還生)으로 번역한다. 이 말은 윤회의 주체로서의 영혼이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를 나타낼 때에는 rebirth(재생再生)로 번역한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고 심상속心相續(citta-santāna) 이론으로 윤회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윤회의 의미



붓다 생존 시 윤회사상은 갠지스 지역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당시 육사외도六師外道 중에서도 자이나교의 개조開祖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 등은 윤회사상을 알고 있었다. 특히 니간타 나따뿟따는 업과 윤회를 자신의 중심 교의로 삼았다. 붓다도 정각을 이루기 전에 이미 윤회사상을 믿고 있었다. “비구들이여, 내가 깨닫기 전, 아직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수행자)이었을 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참으로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하구나.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SN.Ⅱ.10) <증일아함경> 제23권 제1경에는 “이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다. 저기서 죽어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죽어 저기서 태어난 인연의 처음과 끝을 모두 밝게 알게 되었다.”(T2, 666b)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경전의 근거를 통해 붓다는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이미 윤회사상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윤회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선과 악의 업도 없고 그 과보도 없으며,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없다.”(T1, 437c)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견해[邪見]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붓다의 모든 교설은 윤회설 위에 건립되어 있다. 만일 불교에서 업과 윤회를 부정하게 되면 붓다의 전체 교리체계가 무너져 버린다. 붓다는 처음부터 윤회를 전제로 자신의 가르침을 펼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윤회라고 하면 ‘생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 세상에서 죽으면 저 세상에 태어나고, 저 세상에서 죽으면 다시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윤회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따라 삼계三界와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생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삼계・육도의 의미

삼계・육도는 중생들이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윤회를 펼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삼계・육도는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 그 내용은 동일하다. 불교의 윤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계・육도의 개념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삼계・육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윤회를 이해하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세계를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으로 구분한다. 세간은 윤회의 세계를 말하고, 출세간은 윤회를 초탈한 열반의 세계를 말한다. 세간을 삼계三界라고도 한다. 삼계란 욕계欲界(kāmaloka)・색계色界(rūpaloka)・무색계無色界(arūpaloka)이다. 불교에서 세계를 삼계로 분류한 것은 오도五道와 사생四生을 세계에 배치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중생을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네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즉 사생四生(catasso yoniyo)이 그것이다. 사생이란 태생胎生(jalābujā)・난생卵生(aṇḍajā)・습생濕生(saṃsedajā)・화생化生(opapātikā)이다. 태생이란 사람이나 짐승처럼 모태母胎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난생이란 새처럼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하며, 습생이란 모기처럼 습지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화생이란 천계天界 또는 지옥처럼 앞의 세 가지 생生 이외에 자연스럽게 화생하는 것을 말한다.(MN.Ⅰ.73)

오도와 사생을 세계에 배치한 삼계는 다음과 같다. 욕계란 욕망이 성행하는 곳으로, 지옥에서부터 천天의 일부까지 포함하며, 사생은 모두 욕계에 속한다. 색계와 무색계란 순전히 천계天界인 동시에 모두 화생化生에 속하며, 둘 다 선정력禪定力이 뛰어난 곳이지만, 색계에는 아직 물질적(신체적) 활동이 남아 있고, 무색계에는 그런 활동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을 따로 구분한 것이다.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삼계는 수메루(Sumeru, 須彌山)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위치하고 있다. 욕계는 수메루의 아랫부분에, 색계는 중간 부분에, 그리고 무색계는 그 정상에 있다. 그런데 부파불교에서는 삼계를 실제로 생물이 살고 있는 세계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삼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실존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그 수행의 정도에 따라 스물여덟 단계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붓다는 삼계를 실존의 세계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불교의 삼계설은 불교 성립 이전부터 있었던 베다 시대의 천天・공空・지地라는 삼계의 개념을 채용하여 업보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붓다시대에도 삼계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로서 이야기한 것이었다기보다 오히려 정신적인 세계를 의미한 것이었다. 즉 인간의 정신 상태 중에서, 감관의 욕구가 많은 경우를 욕계라고 하고, 초선初禪에서 제4선까지의 선정의 상태를 색계라고 하고, 더욱 정적한 정신 통일의 상태를 무색계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출세간이라고 하는 성자의 세계가 삼계 밖에 있다고 하는 것도 성자의 정신 상태로서의 깨달음의 세계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부파불교에 이르러 삼계를 생물이 존재하는 구체적인 세계라고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삼계를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로 보면, 무색계는 물질이 없는 세계라는 뜻인데, 물질이 없는 정신만의 세계라든가 정신만을 가진 생물이라든가 하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구체적인 존재 현상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 가운데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이 없는 세계는 공간적 연장선을 갖지 않는 세계인데, 공간성을 갖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는 생각될 수 없다. 따라서 무색계천과 같은 세계나 생물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水野弘元, <原始佛敎>, p.81)

흔히 사람이 죽으면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초기경전에서는 대부분 아수라阿修羅(asura)가 빠진 ‘다섯 가지 태어날 곳’, 즉 오취五趣(pañcagati)로 나타난다. 부파불교에서는 육도를 삼계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세계라고 믿었다. 그러나 육도는 삼계와 마찬가지로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다. 육도 중에서 인간과 축생을 제외하고 모두 신화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붓다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윤회계의 한 현상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즉 “변화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계속되는 것이 바로 무한의 윤회이고, 더욱이 그 변화를 규정해 나가는 경과가 바로 인과라고 말하는 것인 바, 이것이 곧 불교의 진제적眞諦的 견지라는 것이다.”(木村泰賢, <原始佛敎思想論>, p.164)

기무라 다이켄木村泰賢에 의하면, 불교의 윤회론은 문자 그대로의 윤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윤회설이란 영혼이 공간을 떠돌다가 다양한 신분을 취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에 의하면 변화의 당체가 곧 윤회이고 공간을 떠도는 영혼과 같은 것이 없다. 마치 유충이 변하여 번데기와 나방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명도 그 당체를 변화한 것이 바로 말[馬]이거나 소[牛]이고 지옥이거나 천당이라는 것이다. 즉 업業 자신이 스스로 이것을 변화시켜 지어 내는 것을 이름하여 윤회라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木村泰賢, 위의 책, pp.164-165)

<증일아함경> 제43권 제2경에서 “잘못된 견해의 과보 때문에, 자연히 팔대지옥八大地獄이 생긴다.”(T2, 781a)라고 했다. 즉 주어진 것으로서 지옥이나 천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업業이 자기의 경계로서 이것을 창조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나가서 말[馬]의 태胎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업이 그 변화의 경과에 있어서 인간을 이루는 오온五蘊 대신 말[馬]을 이루는 오온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붓다의 윤회론이 간직한 진의眞意는 실로 여기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육도도 삼계와 마찬가지로 ‘번뇌 때문에 괴로운 생존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 생애 동안에도 수없이 육도를 드나들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도 수만 번 죽었다 태어난다[一日一夜 萬死萬生].”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사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으로 윤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기경전에서는 윤회한다는 사실보다는 어떻게 하면 윤회에서 벗어난 경지, 또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로히땃사-숫따Rohitassa-sutta」(SN2:26)에서 붓다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SN.Ⅰ.63)라고 했다. 이 대목은 윤회에 대한 붓다의 본회本懷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윤회의 종식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윤회를 강조하는 것은 금생에서 윤회를 종식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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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에서 학사와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샤카무니 붓다』, 『잡아함경 강의』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 - 오마이뉴스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 - 오마이뉴스

육사외문(六師外門)과 불교의 등장올바른 사찰답사를 위하여(8)
06.09.17 
김성후(intar)

변화의 시대

다시 복습하는 기분으로 시작합니다. 석가모니가 출생하기 이전부터 인도는 카스트제도에 의해 사람의 신분과 계급이 정해졌습니다. 카스트는 ①지식계급이자 사제계급인 바라문(brahman), ②정치적 지도자이자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③일반인들이자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hya), ④육체노동자들이자 노예계층인 슈드라(shudra)라는 4개의 계급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과는 상관없이 오직 부모의 카스트에 의해 자신의 카스트가 결정되며 음식이나 옷, 종교, 직업, 결혼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카스트가 결정하였습니다.




▲ 보물 제295호. 관룡사 반야용선대 석가모니불.(위치는 적당히 넣어주세요.)

ⓒ 김성후
그러나 철기시대가 도래, 상공업과 도시의 발전, 강력한 군주국가의 등장, 새로운 종교의 등장 등으로 인도의 사회에는 바라문의 지위를 뒤흔드는 새로운 변화의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아리아인들은 갠지즈강 동쪽으로 점차 거주지를 넓혀가면서 쇠를 이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짓자 자연히 생산물도 많아집니다. 생계에 필요한 것 이외의 생산물, 즉 잉여생산물을 사고파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도시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상업을 주도하는 상인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한 세력을 형성하여 바라문 중심의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하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농업과 씨족의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를 관장하던 바라문의 지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만 상업과 도시의 발달로 경제력을 획득한 바이샤 등의 하층계급이 바라문의 권위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마가다(Magadha)국이나 코살라(Kosala)국 같은 강력한 군주국가가 등장하여 주위의 자그마한 부족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자 정치적·사회적으로 대혼란이 생길 뿐만 아니라 아리아인들과 원주민의 혼혈도 생겨 순수 혈통을 강조하던 카스트제도의 권위는 점점 약화됩니다.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 상인들은 베다의 권위 및 카스트의 속박을 대신할 개인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를 지지해줄 새로운 사상에 대하여 물질적으로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불교나 자이나교 및 육사외도는 이렇게 격변하는 시대에 발생한 자유사상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자유사상 운동과 육사외문

자유사상 운동을 펼친 사람들을 보통 사문(沙門, sramana)이라 칭하는데 바라문들과는 달리 새로운 수행 방식으로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라문과 다른 사상을 가진 스승을 중심으로 모여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이나 도시를 떠돌면서 밥을 얻어먹고 수행을 하였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런 수행 공동체를 승가(samgha)라고 하는데 승가는 사회나 계급 등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는 개방적인 모임이었습니다.

모시는 스승에 따라 승가가 만들어지다 많은 종류의 승가가 탄생하였고 또한 승가들마다 그 성격과 가르침은 달랐지만 도덕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지키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지키고자 한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비폭력, 진리 추구, 성적 금욕, 재산의 포기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순결과 청빈을 지켜 육체적 욕망이나 가정과 가족 그리고 사회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지는 제약과 구속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자유사상 운동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6명의 스승을 일컬어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부릅니다. 외도(外道)라 함은 인도의 정통적인 가르침인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부정하고 가르침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육사외도의 첫 번째는 푸라나 카사퍄(Purana kassapa)로 사람들이 지켜야할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합니다. 그는 윤회와 인과응보를 믿지 않아 윤리나 도덕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래서 어떤 사람이 착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파쿠다 카챠야나(Pakudha Kaccayana)입니다. 파쿠다 카챠야나는 사람이나 사물 등 존재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은 영원불멸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생명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기 때문에 죽이는 자도 없고 죽는 자도 없으며, 가르치는 자도 없고 가르침을 받는 자도 없다고 하였답니다.

세 번째는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으로 환생이나 윤회설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육체를 이루던 네 가지 요소들이 단지 원래 위치인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를 드는데 이 사람은 운명이 모든 것을 좌우하며 그 누구도 냉혹한 운명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숙명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취하여 사람의 삶에는 인연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죠.

다섯째는 산자야 벨라티풋다(Sanjaya Belattiputta)입니다. 그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을 펼칩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피하고, 판단을 보류하고, 진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로 자이나교의 지도자입니다. 절제된 행동 특히 금욕생활에 의해서 과거에 지은 업(業)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감각의 억제, 욕망으로부터의 해방, 세상으로부터의 초연함, 재산의 포기나 고행 등과 같은 수행으로의 몰입을 강조했습니다.

불교의 등장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또한 육사외도처럼 시대적 요청에 의해 새로운 가르침을 펼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석가모니는 앞서 말한 것처럼 베다나 우파니샤드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반발하여 새로운 사상을 주장합니다. 형식과 절차에 따른 제사를 통해 해탈이 가능하다는 베다를 거부하였으며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베다나 우파니샤드 등 과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삼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였습니다. 석가모니의 불교가 육사외도(六師外道)와 달리 세계를 대표하는 종교가 된 까닭은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전통의 윤회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끊임없는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라는 사상을 수용합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유사상 운동의 큰 흐름이었던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종교적 삶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당신을 가장 특징짓는 가르침은 바로 육체적 고통의 거부와 함께 감각적 욕구 충족도 거부하는 중도(中道)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석가모니와 불교의 역사적인 탄생 배경과 당시 가르침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절의 답사는 쉬워질 것입니다. 이후로 석가모니의 생애, 근본적인 가르침, 그리고 불교가 인도에서 탄생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많은 세월 속에서 사상의 흐름과 변화를 차례차례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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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left: Mahakashyapa meets an Ajivika and learns of the Parinirvana[1]
Personal
ReligionFounder of Ajivika
The views of six śramaṇa in the Pāli Canon
(based on the Buddhist text Sāmaññaphala Sutta1)
Śramaṇaview (diṭṭhi)1
Pūraṇa
Kassapa
Amoralism: denies any reward or
punishment for either good or bad deeds.
Makkhali
Gośāla

(Ājīvika)
Niyativāda (Fatalism): we are powerless;
suffering is pre-destined.
Ajita
Kesakambalī

(Lokāyata)
Materialism: live happily;
with death, all is annihilated.
Pakudha
Kaccāyana
Sassatavāda (Eternalism):
Matter, pleasure, pain and the soul are eternal and
do not interact.
Nigaṇṭha
Nātaputta

(Jainism)
Restraint: be endowed with, cleansed by
and suffused with the avoidance of all evil.2
Sañjaya
Belaṭṭhiputta

(Ajñana)
Agnosticism: "I don't think so. I don't think in that
way or otherwise. I don't think not or not not."
Suspension of judgement.
Notes:1. DN 2 (Thanissaro, 1997; Walshe, 1995, pp. 91-109).
2. DN-a (Ñāṇamoli & Bodhi, 1995, pp. 1258-59, n. 585).
 

Makkhali Gosala (PāliBHS: Maskarin Gośāla; Jain Prakrit sources: Gosala Mankhaliputta) or Manthaliputra Goshalak (b. about 523 BCE) was an ascetic ajivika teacher of ancient India. He was a contemporary of Gautama Buddha, the founder of Buddhism, and of Mahavira, the last and 24th Tirthankara of Jainism.

Sources[edit]

















Details about Gosala's life are sparse. All of the available information about Gosala and about the Ājīvika movement generally comes from Buddhist and Jain sources. As Gosala's teachings appear to have been rivals of those of the Buddhist and Jain leaders of his day, this information is regarded by most scholars as being overtly influenced and coloured by sectarian hostilities.

Two primary sources describe Gosala's life and teaching: the Jain Bhagavati Sutra, and Buddhaghosa's commentary on the Buddhist Sammannaphala Sutta.[2]: 35  The Bhagavati Sutra goes into detail about the career of Makkhali Gosala and his relationship with Mahavira; the Sammannaphala Sutra itself mentions Makkhali in passing as one of six leading teachers of philosophy of the Buddha's day, and Buddhaghosa's commentary provides additional details about his life and teaching.

With regards to his early years, it is related in the Bhagavati[3] that he was born in the settlement Saravana, in the vicinity apparently of the city of Savatthi.(Shravasti, Uttar Pradesh)[4] He came of low parentage. His father was a Mankhali, i . e., a mendicant who earned his livelihood by showing a picture which he carried in his hand. Once on his wanderings Mankhali came to Saravana and failing to obtain any other shelter, he took refuge for the rainy season in the cowshed(Gosala) of a wealthy Brahman Gobahula, where his wife Bhadda brought forth a son who became famous as Gosala Mankhaliputta. When grown up, he adopted the profession of his father, that is, of a Mankhali. In his wanderings, Gosala happened to meet the young ascetic Mahavira in Nalanda.

The name 'Gosala' literally means 'cow shed', and both the Bhagavati Sutra and Buddhaghosa claim that Gosala was so named because he was born in a cow shed, his parents being unable to find more suitable lodgings in the village of Saravana.[2]: 36  The Bhagavati Sutra reports that Gosala went on to follow his father's profession, becoming a mankha. Meanwhile, Buddhaghosa claims that Gosala was born into slavery, and became a naked ascetic after fleeing from his irate master, who managed to grab hold of Gosala's garment and disrobe him as he fled.[2]: 37  While it is possible that the broad outlines of Gosala's birth story or early life are correct—that he was born into poverty in a cowshed—it may be equally likely that these versions of his early life were concocted by Buddhist and Jain partisans to bring a rival teacher into disrepute.[2]: 38 

The philosopher's true name seems to have been Maskarin, the Jaina Prakrit form of which is Mankhali and the Pāli form Makkhali. "Maskarin" is explained by Pāninī (VI.i.154) as "one who carries a bamboo staff" (maskara). A Maskarin is also known as Ekadandin. According to Patañjali (Mahābhāsya iii.96), the name indicates a School of Wanderers who were called Maskarins, not so much because they carried a bamboo staff as because they taught "Don't perform actions, don't perform actions, quietism (alone) is desirable to you". The Maskarins were thus fatalists or determinists.[5]

Makkhali Gosala and Mahavira[edit]

A diorama in Jain Museum, Madhuban, Giridih, depicting Gosala attacking Mahavira and his disciples

The Bhagavati Sutra states that Gosala became Mahavira's disciple three years after the start of Mahavira's asceticism, and travelled with him for the next six years.[6][2]: 40  

A commentary to the Jain Avasyaka Sutra provides details of these six years of association, many of them reflecting poorly on Gosala- another likely indication of sectarian bias.[2]: 41–45  Several incidents in the narrative show Mahavira making predictions that then come true, despite Gosala's repeated attempts to foil them. These incidents were likely included in the narrative to provide motivation for Gosala's later belief in the inevitability of fate.[2]: 40  Some of these incidents may in fact have been adapted from Ajivika sources but recast by Jaina chroniclers.[2]: 46 

Another possible adaptation of an Ajivika story is found in Mahavira's explanation of the end of the association between himself and Gosala, recorded in the Bhagavati Sutra.[2]: 48–49  On coming to a plant by the roadside, Gosala asked Mahavira what the fate of the plant and its seeds would be. Mahavira stated that the plant would grow to fruition, and the seed pods would grow into new plants. Determined to foil his master's prediction, Gosala returned to the plant at night and uprooted it. Later, a sudden rain shower caused the plant to revive and re-root itself. Upon approaching the plant again later, Gosala claimed to Mahavira that he would find his prophecy to have been foiled. Instead, it was found that the plant and its seeds had developed exactly as predicted by Mahavira. Gosala was so impressed by the reanimation of the plant that he became convinced that all living things were capable of such reanimation. The terms used in the story of the Bhagavati Sutra for reanimation mimic a technical term for reanimation of the dead that is also found elsewhere in Ajivika doctrine.[2]: 48–49  Mahavira disagreed with this thesis, and this seems to have been the cause of the separation of the two ascetics. Mahavira is, however, later depicted as having rescued Gosala from an attack by an enraged renunciant using magical powers acquired through the practice of austerities; this is claimed to motivate Gosala's pursuit of the same sort of magical powers.[2]: 49–50 

Death[edit]

A. L. Basham dates the death of Gosala in 484 BCE on the basis of Mahavamsa.[7]

In literature[edit]

Gosala appears briefly as a "cameo" character in the 1981 Gore Vidal novel Creation, a fictional account of the Persian Wars of the 5th century BCE, told from the perspective of a widely travelled Persian diplomat, Cyrus Spitama, who is depicted as the grandson of Zoroaster and boyhood friend of Xerxes I. In early adulthood, thanks to his facility with languages, Cyrus is appointed by King Darius I as the Persian ambassador to the kingdoms of India. While travelling across the Subcontinent, Cyrus stops at the city of Mathura, where he is accosted by the Jain sage, who lectures Cyrus about his views on the inevitability of fate, and his disagreements with Mahavira.[8]

'Khanti Kikatia' is a novel focused on the life of Makkhali Gosala, written by Ashwini Kumar Pankaj in the Magahi language.[9]

References[edit]

Citations[edit]

  1. ^ Marianne Yaldiz, Herbert Härtel, Along the Ancient Silk Routes: Central Asian Art from the West Berlin State Museums; an Exhibition Lent by the Museum Für Indische Kunst, Staatliche Museen Preussischer Kulturbesitz, Berlin,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82 p. 78
  2. Jump up to:a b c d e f g h i j k Basham, A.L. (2002). History and Doctrines of the Ājīvikas. Delhi, India: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ISBN 81-208-1204-2.
  3. ^ https://www.jainfoundation.in/JAINLIBRARY/books/agam_05_ang_05_bhagvati_vyakhya_prajnapti_sutra_part01_002130_hr.pdf
  4. ^ https://www.rarebooksocietyofindia.org/book_archive/196174216674_10153031903361675.pdf
  5. ^ Barua 1920, p. 12.
  6. ^ Dundas 2002, p. 29.
  7. ^ Kailash Chand Jain 1991, p. 75.
  8. ^ Gore Vidal, Creation: A Novel (Random House, 1981), pp.189-192
  9. ^ Ashwini Kumar Pankaj, Khanti Kikatia: A Novel based on life and thought of Makkhali Goasala (Pyara Kerketta Foundation, 2018)

Sources[edit]

External link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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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ッカリ・ゴーサー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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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칼리 고사라


파리 경전 에 등장하는 사문 [ 1 ] ( 육사 외도 )
사문 [1] 이론 ( 사상 ) [2]
  • 풀라나 카사파 무도덕론, 도덕부정론: 선행도 악행도 없고, 선악 어떠한 보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 맥칼리 고사라 ( 아지비카교 ) 운명 결정론 (숙명론): 자기의 의지에 의한 행위는 없고, 일체는 미리 결정되어 있어 정해진 기간 유전하는 정이다.
  • 아지타 케이사 캄버린 ( 순세파 ) 유물론 , 감각론 , 쾌락주의 : 사람은 4대로 이루어져 죽으면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선악 어떠한 행위의 보상도 없다고 해, 현세의 쾌락·향악만을 설명한다.
  • 박다 카차야나 ( 상주론자 ) 요소 집합설 : 사람은 땅·물·화·바람의 4원소와 고·락·생명(영혼)의 7개의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불변 부동으로 상호의 영향은 없다.
  • 마하빌라 ( 자이나교 ) 상대주의, 고행주의, 요소 실재설 : 영혼은 영원불멸의 실체이며, 거지·고행생활에서 업의 더러움을 떨어뜨리고 涅槃를 목표로 한다.
  • 산자야 베라티푸타 - 불가지론 , 회의론 : 진리를 그대로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판단의 유보.
  • 표이야기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