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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9

修德, 修道, 修行-어휘의 지혜 < 21세기 대안 < 들소리신문

修德, 修道, 修行-어휘의 지혜 < 21세기 대안 < 논설 < 기사본문 - 들소리신문


修德, 修道, 修行-어휘의 지혜
기자명 無然 조효근   입력 2018.09.18 16:5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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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修德)은 주로 道家(노자의 문하)에서 사용하고, 
수도(修道)는 노자, 공자 가문은 물론 주로 한국의 전시대 선비들이 사용하는가 싶고, 
수행(修行)은 佛家에서 사용하는 구도를 완성해가는 전 과정을 통해서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수행은 분명히 구분되지만 수덕과 수도는 불분명하다. 
필자가 대강 구분하고 있는 어휘다. 세 가지 모두 거의 동일한 어휘이지만 “수행”은 좀 구분된다. 몸동작을 구체적으로 가다듬는 행위절차이다. 마음으로, 추상과 관념 상태의 교훈일 뿐이고 몸이 뒤따르지 않으면 대개 “위선”으로 마감된다.

그러나 부처 집의 “수행”은 다르고 또 엄격하다. 동작 하나, 또 하나의 몸짓을 통해서 인간을 만들어간다. 기독교의 육화(肉化) 또는 성육신(成肉身)과 가까운 어휘이다.

예수께서 날더러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나무는 모름지기 그 열매로 구분한다는 뜻의 말씀을 주셨으나 기독교 신자들은 성령을 받았다, 충만한 성령께서 내 몸 가득히 계시며 나를 지배하신다, 고 말은 하면서도 그 몸이 따르지 않으니 위선이 되고 만다. 아마, 위선자가 많기로는 기독교가 어느 계층과 비교해도 더 많지 않을까 한다.

성경말씀과 구원의 교리를 안다고 해서 내가 예수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을 예수께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몸을 주께 내놓지 않았기에 기독교의 구세주는 아직도 이 땅 위에 오시지 못하고 계시다는 논리 앞에 기독교 사람들은 정직한 답을 해야 한다.

불교 집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이 있다. 자기 몸을 태워서까지 수행의 과정에서 탈락하고 싶지 않은 구도자의 결단이다. 소신공양을 말하면 입방정 기독교 신자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자기 몸을 불사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그러나 입으로만 중얼거리고, 자기 몸이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가 필요할 때 나(너)를 사용할 수 없는 위선자보다는 소신공양을 해서라도 믿음의 경지를 확보해야 한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하나님은 그 음성이 너무나 세미(細微)해서 땅바닥에다 귀를 바짝 붙이고 들어야만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배운지라 나이 70살이 넘었을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들어야 할 때는 땅바닥에 엎드려 귀를 지표면에 바싹 붙이고 들으려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겸손하고, 무릎 꿇을 줄 아는 자가 은밀한 가운데서 들을 수 있다는 교훈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요즘보다 철이 든 기독교 신자가 그리운 때가 어디 있었나? 오늘을 사는 신자들아, 정신차리고 지금 내 몸을 예수께서 편안히, 그리고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가를 살피고 서둘러서 내 몸을 다스리고, 다듬어서 하나님 앞에 예물(제물)로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예수의 사람들아….

 無然 조효근 dsr123@daum.net

2021/04/18

알라딘: 의식 혁명 Power vs. Force, David R. Hawkins 1995, 2006, 2011,

알라딘: 의식 혁명
의식 혁명 - 힘과 위력, 인간 행동의 숨은 결정자  |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은이),
백영미 (옮긴이)판미동2011-09-02
원제 : Power vs. Force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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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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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 - 의식은 어떻게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기는가

놓아 버림 -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

의식 혁명 - 힘과 위력, 인간 행동의 숨은 결정자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총 9권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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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의식 지도 - 과학과 종교 너머 올바른 앎을 향하여

치유와 회복 - 의식은 어떻게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기는가

나의 눈 -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여는 법

놓아 버림 -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

의식 혁명 - 힘과 위력, 인간 행동의 숨은 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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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의식 지도’의 창시자 데이비드 호킨스의 첫 저작을 백영미 역자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새롭게 소개한다. 우리 삶이 고통에 잠겨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늘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잣대가 없었고 영적 진실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왔다. 호킨스 박사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시당해 온 영적 진실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호킨스 박사는 우리의 몸이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즉각 약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후 ‘근육테스트법’으로 발전한 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우리 몸은 생명을 지지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호킨스 박사는 20년에 걸쳐, 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영적 진실의 과학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을 알린 ‘의식 지도’였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힘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위력을 따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위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폭력, 전쟁,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즉, 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인 것이다.

목차
편집자의 말
서문
서론

1부 _ 도구
1장 지식의 임계적 발전
2장 역사와 방법론
3장 테스트 결과와 해석
4장 인간 의식의 수준들
5장 의식 수준의 사회적 분포
6장 연구의 새로운 지평
7장 일상적 임계점 분석
8장 힘의 근원

2부 _ 힘 대 위력
9장 인간 태도에서 힘의 패턴
10장 정치에서의 힘
11장 시장에서의 힘
12장 힘과 스포츠
13장 사회적 힘과 인간 영
14장 예술 속의 힘
15장 천재와 창조성
16장 성공에서 살아남기
17장 신체적 건강과 힘
18장 건강과 질병 과정

3부 _ 의미
19장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20장 의식의 진화
21장 순수의식 연구
22장 영적 투쟁
23장 진실의 탐구
24장 결론

4부 _ 부록
부록 A 장별 진실 수준 측정
부록 B 근육테스트에 관하여
부록 C 용어 해설
부록 D 주석
부록 E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접기
책속에서
자부심의 그늘은 오만함과 부정이다. 이런 특징은 성장을 가로막는다. 자부심 안에서는 중독에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자부심은 감정상의 문제나 성격 결함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정의 문제 전체가 자부심의 문제다. 그래서 자부심은 진짜 힘의 획득을 가로막는 육중한 장애물인데, 진짜 힘은 진정한 위상과 위신으로 자부심을 대체한다.  접기 - revoman
진실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 쯤 ˝난 항상 그걸 알고 있었어!˝라고 크킨다면, 이 책은 성공한 것입니다. - 꿈과현실
P. 27
그들이 세상과 세상의 외관을 초월한 어떤 수준에서 치유를 경험했다는 얘기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 안에 존재했던 내적 평화는, 시간과 정체 너머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나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은 신이 아니라 오직 에고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환자들의 마음으로 말없이 전해준 진실이었지요.  접기 - dadokdadok
P. 26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일이 무수히 많은 환자들에게 일어났습니다. 일부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회복되었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지만, 임상적 회복이 일어났는지 여부는 환자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고뇌는 끝났습니다. 자신이 사랑받고있음을 느끼며 내면이 평화로워질 때 고통은 그쳤습니다. 그러한현상은 현존의 연민이 환자 개개인의 실상을 재맥락화하여,  접기 - dadokdadok
추천글
호킨스 박스의 저작은 신성하과 아름다운 선물과 같다. 읽는 동안 기쁨과 사랑, 열정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 마더 데레사 (노벨 평화상 수상) 
지난 10년간 읽은 책 중에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책이다. - 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의도의 힘>의 저자. 심리학 교수) 
우리가 좀 더 높은 상태의 의식을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 무한한 능력과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과학적’ 발견은 사람이 곧 경쟁력인 이 시대에 아주 큰 의미가 될 것이다. - 윤태익 (《나답게》의 저자)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 받고 처음엔 어려워 몇 번을 포기했다. 2010년 어느 날 다시 펼쳐 본 『의식 혁명』은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조혜련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이 책을 만나고 빛을 발하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조혜련 (코미디언,『조혜련의 미래 일기』 저자) 


저자 및 역자소개
데이비드 호킨스 (David R. Hawkins) (지은이) 


마더 테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는 1952년부터 정신과 의사로 일했으며, 미국 정신과 학회의 평생회원이었다. 1973년 노벨상 수상자 라
이너스 폴링과 함께 펴낸 『분자교정 정신의학』은 이후 수많은 정신과학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기념비적 저서가 되었다.
수많은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 온 것을 관찰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신체운동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을 시작으로 『나의 눈』, 『호모 스피리투스』, 『진실 대 거짓』, 『의식 수준을 넘어서』,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치유와 회복』, 『놓아 버림』 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과 옥스퍼드 포럼 및 캘리포니아 의대 등에서 강연을 했고, 「바바라 월터스 쇼」를 비롯한 다수의 TV 방송에 출연했다. 인간 경험을 의식 진화의 관점에서 재맥락화하고 마음과 영, 양자에 대한 이해를 생명과 존재의 기층이자 지속적 근원인 내재적 신성의 표현들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강연 활동과 저술활동을 펼쳤다.
2012년 9월 19일 호킨스 박사는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있는 자택에서 향년 85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접기
최근작 : <현대인의 의식 지도>,<치유와 회복>,<나의 눈> … 총 109종 (모두보기)


백영미 (옮긴이)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책으로 『황금 두루마리의 비밀』,『죽음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는가』,『타이타닉의 수수께끼』,『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6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데이비드 호킨스는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의식 지도’의 창시자 데이비드 호킨스의 첫 저작을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만나다

마더 테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대표작이자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등 이후 저작들의 출발이 된 첫 저서이기도 한 『의식 혁명』(원제: Power vs. Force, 초판 1995, 개정판 2002)이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수많은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 온 것을 관찰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했다.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은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출발점으로써 그 가치를인정받고 있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나의 눈The Eye of I』(2001) 『호모 스피리투스I: Reality and Subjectivity』(2003) 『진실 대 거짓Truth vs. Falshood』(2005)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2006) 『의식 수준을 넘어서nscending the Levels of Consciousness』(2006) 등의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판미동에서는 『의식 혁명』 『호모 스피리투스』와 함께 호킨스 박사의 ‘초기 3부작’으로 불리는 『나의 눈』과 2009년 최신간이자 화제작인 『치유와 회복Healing and Recovery』을 2012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_ 영적 진실을 측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탄생, 의식 지도

우리 삶이 고통에 잠겨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늘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가 종교를 찾고 영성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잣대가 없었고 영적 진실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왔다. 호킨스 박사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무시당해 온 영적 진실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호킨스 박사는 우리의 몸이 해로운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즉각 약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후 ‘근육테스트법’으로 발전한 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우리 몸은 생명을 지지하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호킨스 박사는 20년에 걸쳐, 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영적 진실의 과학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을 알린 의식 지도였다.

● 인간의 의식 수준을 총망라하다
_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인간 의식 수준

이 책의 1부에는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단계별 특성을 담고 있다.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측정치로 표현하여, 그것을 다시 17단계로 나누었다. 가장 낮은 수준인 수치심(의식 수준 20)으로부터 인간 의식의 정점인 깨달음(700~1,000)까지의 17단계를 중 호킨스 박사는 특히 용기에 해당하는 200 수준을 눈여겨보았다. 200은 생명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과 부정적 영향력을 구별해 주는 임계선으로, 온전성 및 용기와 결합된 수준을 나타낸다. 이 수준을 기준으로 그 이하의 모든 태도, 생각, 느낌, 단체, 실체, 역사적 인물은 사람을 약하게 한다. 그 이상으로 측정되는 것은 피험자를 강하게 한다. 결과만 두고 보자면 200 이하의 수준은 모두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박사는 우리가 흔히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슬픔(의식 수준 70)이나 분노(의식 수준 150)와 같은 수준을 색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가령, 아무런 의지도, 동기부여도 없는 절망만 가득한 무감정보다는 슬픔을 드러냄으로써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슬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분노에 대해서 역시 역사적으로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함에서 발생한 분노로 사회변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에너지 수준 20: 수치심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하리만큼 죽음에 가깝다. 죽음은 수치심으로 인해 의식적 자살로서 선택될 수도 있고, 혹은 삶을 연장하기 위한 조처의 불이행으로 보다 미묘하게 결정될 수도 있다.

에너지 수준 50: 무감정
이 수준의 특징은 가난, 절망, 희망 없음이다. 세계와 미래는 황량해 보이고 비애가 삶의 주제다. 무감정은 무력함의 상태다. 모든 면에서 결핍되어 있는 무감정의 희생자들은 자원뿐 아니라 이용 가능한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다.

에너지 수준 75: 슬픔
이것은 비애, 상실, 낙담의 수준이다. (…) 비록 슬픔은 삶의 무덤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무감정에 비하면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무감정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가 좋아지리라는 것을 안다. 일단 울기 시작하면, 그는 다시 먹을 것이다.

에너지 수준 100: 두려움
두려움은 인격의 성장을 제한하고 억압으로 인도한다.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억눌린 자는 도움 없이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두려움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게 해 줄, 두려움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강한 지도자를 구한다.

에너지 수준 150: 분노
비록 분노는 살인과 전쟁으로 인도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에너지 수준으로서의 분노는 그 밑에 있는 것들에 비해 죽음에서 훨씬 멀어져 있다. 분노는 건설적 행위에도 혹은 파괴적 행위에도 이를 수 있다. (…)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비롯되므로, 분노의 바탕에는 그 밑의 에너지 장이 있다.

에너지 수준 175: 자부심
자부심의 그늘은 오만함과 부정이다. 이런 특징은 성장을 가로막는다. 자부심 안에서는 중독에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자부심은 감정상의 문제나 성격 결함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정의 문제 전체가 자부심의 문제다. 그래서 자부심은 진짜 힘의 획득을 가로막는 육중한 장애물인데, 진짜 힘은 진정한 위상과 위신으로 자부심을 대체한다.

에너지 수준 200: 용기
200 수준에서 처음으로 힘이 나타난다. (…) 용기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는 그리고 삶의 변화와 도전에 대치하려는 자발성을 의미한다. (…) 이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만큼의 에너지를 세상에 돌려준다.

의식 지도상에는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부분이 200 이하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 한 예가 자부심(의식 수준 175)인데, 호킨스 박사는 방어적이고 오만한 자부심으로 인해 인간은 상처를 받기 쉽다고 했으며 그것이 변질되어 나타난 극단적 민족주의를 예로 들었다. 200 이상의 중립, 자발성, 수용, 사랑, 기쁨, 평화에 이르는 수준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이다. 이들 수준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의식 성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상태를 생명 자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 주로 우리가 영적 스승으로 일컫는 이들이 이들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며, 깨달음의 단계에 해당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크리슈나, 붓다처럼 신과 연결된 지고의 존재들이다.
이처럼 인간 연구의 미답 영역이 갖는 범위와 그 지형을 묘사한 의식 지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잠재적 지식 분야들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 또한 가장 앞선 이론적 탐구에 적용할 수 있는 만큼이나 사회문제, 제품 개발, 과학 연구, 의학, 산업 등 가장 일상적인 실용적 질문들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호킨스 박사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 위력은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_ 참된 힘과 위력

의식 수준 200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구분해 주는 임계점이라는 점 외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용기를 나타내는 바로 이 수준은 힘이 부여되는 지점으로, 우리는 힘으로 인해 삶의 기회에 대응할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위력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자신이 아무런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 힘에 지배당하지만 힘은 노력이 필요 없는 까닭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오해로 인해 사람들은 의식의 도약을 이루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위력과 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호킨스 박사는 의식 지도를 통해 위력force과 참된 힘power을 구별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 책의 2부에서 호킨스 박사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건강 분야를 아우르는 실제 우리 삶에서 위력과 힘이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힘을 발휘할 때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상태로 도약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위력이 작용했을 때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위력과 힘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우리 삶에 작용하는 위력과 힘의 영향력을 살펴보면 우리가 왜 위력에서 벗어나 힘을 따라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 위력에서 벗어나 힘을 따르라
_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숨은 결정자, 힘과 위력

호킨스 박사가 예로 든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은 어떨까. 호킨스 박사는 간디가 대영제국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이긴 것은 그의 위치가 훨씬 더 큰 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간디가 바란 것은 평화(의식 수준 600)였던 반면, 대영제국의 식민주의는 자만심의 수준인 175로 측정된다. 이것이 바로 자만심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발생한 극단적 민족주의 결말이었다. 이번에 끝난 대구육상대회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를 떠올려보자. 호킨스 박사에 의하면 관중들은 인간 한계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수준을 성취하는 데 요구되는 영웅적 분투를 직관적으로 인지할 때 활기를 띤다. 인간 한계라고 생각했던 100미터 9초대를 돌파한 선수나 그 기록을 넘어서고자 분투하는 선수들을 볼 때면,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관중들은 열광한다. 3시간을 넘겨 마라톤 결승선을 끊는 선수를 끝까지 응원하는 것도 선수들이 조국이나 그 경기 자체의 명예를 생각하고 뛰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반면 선수들이 본인 스스로의 자부심을 드높이고자 경기에 임할 경우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다.
호킨스 박사는 또한 위력과 힘을 구분함으로써 본인의 이익에 영합하고자 하는 정치인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의 의식 수준을 끌어내리는 예술 작품과 보기만 해도 의식 수준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예술 작품을 구분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며 아주 큰 가치를 부여하는 건강 문제 역시 힘과 위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긍정적 태도에 따라오는 반면, 분개, 시기, 적의, 자기연민, 두려움, 불안 등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각종 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의 근원 역시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어떤 이에게는 이혼이 절망이 되는 반면, 어떤 이에게는 평화를 주기도 하듯이.
참된 힘은 생명을 지지하고 영적인 것과 연결되는 반면, 위력은 곧 약함을 나타내고 죽음과 연결된다. 힘과 연결되어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은 큰 힘의 통로가 되며 그들의 가르침은 길게는 몇 천 년이 넘는 시간에 거쳐 영향을 미친다.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지난 2천 년간 인간 역사의 중심에 있었듯이. 이처럼 힘을 나타내는 측정치 가운데 가장 높은 측정치는 한결같이, 역사 속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과 결합되어 있다.

● 우리 안에는 위대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_ 절망을 벗어나 평화에 이르게 하는 힘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힘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위력을 따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위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폭력, 전쟁,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즉, 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인 것이다.
위력에 따라 행동하느냐, 힘을 따르느냐에 대한 결과는 우리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위력에 작용을 받아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했다고 생각해 보라. 호킨스 박사는 우리 개인의 의식의 나아가 우주 전체에 파문을 일으켜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단지 신비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주 속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이론 물리학의 기본 교의다. 이 책에서 진행된 연구는 우리 안에 진실(힘과 정렬하는 것)과 거짓(위력과 정렬하는 것)의 차이를 알아볼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호킨스 박사는 우리 모두는 내면에 천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의식 수준이 높은 에너지와 자신의 목표와 추구하는 가치를 일치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다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위력에 휘둘리며, 삶의 긴 시간을 그런 사실에 대한 절망 속에서 보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생각의 에너지가 부정적 생각이 갖는 에너지보다 엄청나게 더 강하다는 단순한 사실에 따르면, 우리는 사랑을 선택하는 것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우리의 본질 안에 내재한 그 힘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그럴 때 우리를 둘러싼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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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한 느낌이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군. 고수를 찾아 재번역을 맡겨야 할 듯.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구매
이렇게좋은날 2013-08-05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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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번역기를 돌린것같은 문체를 ˝역자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란 말로 미화하고 동작의 정신을 흐리게하고 한글로 써져있음에도 영문을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구매
pharmacy0 2012-09-08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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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에 쏟아낸 설교는 대부분 도그마에 불과하다. 때로 통찰력으로 반짝이는 문장도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는 깨진 소주병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주장을 강요하면 사이비가 된다.  구매
다자인(Dasein) 2011-12-1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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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너무 어렵게 한듯해요..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많습니다.
여러번 읽어야 이해할듯..  구매
인어공주 2011-11-10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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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의 강의 듣고 사는건데 사람들이 좋다네용 ㅎㅎㅎㅎ 그래서 저도 사봤더니 진짜 음 .. 뭐랄까 첫번째로 읽으면 뭔가 이해가 안되는데 두번 세번 읽다 보면 이해가 잘되기도 하고 해서 집에 소장하려고 합니  구매
ˇ。영˚ 2011-10-3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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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입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저도 다른 분들과 같이 조혜련씨 강심장을 보고 구입하였는데요

대체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었으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다른 여러분 들과 같이 시크릿부터 시작하여 꿈다방

 치즈옮기는거 생각버리는거 아침일찍일어나는거 자기혁명하는거 자기를 와칭하라눈거

 청춘이니까 아픈거 절대인간인거 법륜스님말씀하신거등등등등....

너무 많은 자기계발서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아마 시중에 나온 자기계발서는 90%이상 읽은 것같습니다)

(한 번 자기계발서에 빠지면 그 외 인문서적이나 소설은 당췌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말입죠)

그래서

지금

호킨스 박사님 저서 3번째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중간부분 이제 들어갔습니다.

 

결론은

이건 아주 제 사적인 의견입니다만

모든 자기계발서를 통합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좋은 생각을 해야하는지

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용서해야하는지

왜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않는 것의 그림자라 했는지

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게 자신에게도 행복한건지

 

이 책은

자신이 행복해지기위해 무엇을 해라 따위의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냥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주파수를 맞추고

그림을 그리고

이미 되어버린 모습을 상상하라는

내 위주의 책이라면

너무 좋겠는데요

 

내맡기라네요

나쁜마음 슬픔 두려움미움절망 등은 쉬운데요

정말 맡겨버리고 어디 삼청동같은데 놀러가고싶은데요

어떤일들의 내의견 그들과 나의 잘잘못 그들과 관련된 나의 옳고 그름 내 심정 내 판단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나의 기호

그리고 어떻게 되고싶다는 욕망을요 ㅠㅠㅠㅠ

 

차라리 노력하라가 훨씬 조으다요

 

참 나 는

깨달음은

노력해서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이미 있는

그래서 활성화되어지길 기다리고 있다는 박사님의 말씀...

 

아 이런 모든것들 내맡기는 거 왜 이리 힘드는것일까요

(의식수준200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하지만정말 200이상인삶을살아보고싶다굽니다)

 


왜 그런 건지 왜 이렇게 살고있는건지 원리가 무엇인지

나는 우리는 누구인지 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인간이 세상이 종교가 역사가 사회가 우주가 말입니다요)

 

시간개념은 없습니다

고로 인과관계는 허구랍니다

 

아 저는 왜 이리 문장력도 딸리고 이해력은 더욱더 부족하고

믿음은 쥐콩만큼도 없는걸까요

 

 

아마 저는 더 이상의 자기계발서는 읽지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엉망진창인 저를

아니

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야

내가 이책을 보게 될테니까

그래서 였던걸까요?

그리고 이 리뷰를 누가 보기라도 할까요?

 

아뭏든

저는 지금 공사중이지만

 

다시 새로짓는 저의호텔은

참나가 많이 참여하길바랍니다

 

그니깐

이 책이 저에겐

저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겁니다

제 인생의 no.1책입니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자신 스스로 읽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지 모를 이 황당한 리뷰를 읽은 분들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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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nnystar 2012-03-11 공감(7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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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옷을 입은 불경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저자는 어렸을 때 신비체험을 했고 높은 수준의 영적 단계에 도달 후 - 저자에 의하면 깨달은 자들은 날 때 부터 그 영적 수준이 정해진다고 하니, '도달' 보다는 태생적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발현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환자 개개인의 치료에 한계를 느끼고, 모든 깨달은 자들이 그러하듯, 무지로 인해 고통받는 대중을 깨우치고자 결심한다.

 

이 책은 인간과 우주와 진실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정확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임상적으로 설명할 것인가 고뇌한 끝에, 근육테스트 기법과 끌개장, 카오스 이론등을 통해, 이 세상 모든 것들의 진실 수준을 측량하여 수치화 하는데 성공한 일련의 과정과 결과물이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이 정설이니, 진실 혹은 영의 단계를 수치화한다는 서구식 발상이 웃기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시도와 방식 자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근육 테스트라는 것이 알고보니 오링 테스트와 같은 원리인데, 수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여러 번 실험해도 동일한 결과치를 얻었다 하니, 만약 있다 하더라도 실험상의 오류를 끄집어낼 판단 능력 부족 문제로, 일단 옳다고 믿는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참이라는 가정하에, 저자가 들려주는 진실과 세상과 인간과 영혼에 관한 직관과 통찰들은 지극히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마치 불교 경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많지 않지만 관련 분야 책들을 쭉 읽어본 결과, 모든 저자들이 예외없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이는 진실은 하나이며 단지 그 시대의 언어로 달리 표현될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굳히며, 믿음을 강하게 만든다.

 

이 모든 전제하에, 이 한 권의 책 안에, 도로지 영적 수준 200 혹은 그 이하를 맴돌지도 모르는 나의 영적 수준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우주의 신비, 존재의 기원, 삶의 의미 등등에 대한 질문에 대한 정답 - 정답이 아니라면 적어도 힌트 정도는 되겠지 - 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불교 경전이다. 심오하다.

 

* 책 접기

 

'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위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드러나 있지 않은 근원에서 나온, 자신이 아무런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 힘에 지배당합니다. 힘은 노력이 필요 없는 까닭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게 움직입니다. 위력은 감각을 통해 경험되지만, 힘은 내적 앎을 통해서만 인지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동시킨 엄청나게 강력한 끌개 에너지 패턴과 정렬함으로써 현 상태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은 순간순간 위력의 에너지에는 구속당하고 힘의 에너지에는 추진되면서, 현재의 진화 상태에서 부유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가는 열쇠는 사신의 생명을 포함하는 전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친절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연민이라고 한다.'

 

'즉 용서하는 것은 용서받는 것이다. 반복해서 관찰한 것처럼,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우주에서 우연한 사건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주를 벗어나 있는 것은 없다. 원인의 힘은 보이지 않고 결과의 나타남만 관찰할 수 있으므로 우연한 사건이라는 환상이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건은 두서없게 보이고 또한 관찰 가능한 원인들과는 무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연구를 통해 그것의 실제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인과는 연쇄라기 보다는 동시성으로 일어난다.......두 사건 사이의 연결은 오직 관찰자의 의식 속에서만 일어난다. 관찰자는 연결을 보고, 어떤 관계를 가정하면서 두 사건의 결합에 관해 묘사한다. 관계는 관찰자의 마음 안에 있는 개념이다.'

 

'그 때, 시간은 이미 완전한 상태로 있는 홀로그램과 흡사하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이동하는 어떤 관점의 주관적 감각 효과다. 홀로그램에는 시작이나 끝이 없고, 그것은 이미 어디에나 완전하게 있다....접혀진 우주와 펼쳐진 우주는 없으며, 오직 되어가는 앎이 있을 뿐이다......세계는 무한한 차원들을 갖는 홀로그램 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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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2012-02-05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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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의식 혁명 새창으로 보기 구매
크리스천인 나로서는 이 책을 보기 전 감수해야하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께서 불가지론자이기 때문이었다 ~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싶었다, 순수하고 한결 같은 영적인 힘이 무언지.
애초에 예수님이 계실 때 함께한 베드로도 그렇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며, 많은 제자들이 문제가 꽤나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며 전해진 현재의 기독교 종교생활 안에서는,
예수님의 그 인성과 신성을 내가 조금이라도 더 근접하게 알아갈 수 있을지, 한계점을 느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 있어, 한 7개 월 전에 사놓은 이 책을 보는데 있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영적 성장을 이루고, 성령님 임재 속에 분별력이 있어야지만, 이 책을 보면서, 신비적 사상에 빠지지 않고, 또는 이원적 사고를 하지 않고, 좋은 건 흡수하고 아닌 건 건너뛰며, 또는 저자의 입장과 내 위치의 간격을 따로 분리시키며 주님이 주시는 시선으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었다.

이 책을 다 보고 난 나는, 마음의 창에 묻은 티끌을 더 닦아낸 것만 같다.
이쯤이면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된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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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2017-12-0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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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식)에 용기를 얻고 푼 분들에게 추천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은 읽으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주제부분이 감성적 인지 부분이다 보니 논리적으로 잡기도 철학적으로 구분하기도 애매합니다. 우선 심리나 철학, 또는 이성과 관련된 인문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주제의 심도가 약할 것 같습니다. 학부생 정도는 심리적 자극제가 될 수 있으나 전공하시는 분들에게는 아마도 어디 책의, 아니면 누구의 논리를 사용했구나가 군데군데 보일 것 같은 책입니다. 마음에 용기를 잠깐 얻고 싶다면, 추천입니다.
sorekara 2011-10-0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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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은이),
이종수 (옮긴이)한문화2006-04-22
원제 : Power vs. Force
[구판절판] Power vs. Force (Paperback, Revised)
--


책소개'신성이나 불성이 인간에게 이미 깃들여 있다'는 색다른 명제에서 시작하는 책. 저자는 근육 반응 시험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얼마든지 표면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결국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 시험을 활용해 줄 것을 제안한다.
목차
1. 앎의 도약
2. 역사의 방법론
3. 의식수준의 사회적 분포
4. 삶의 자세와 잠재력의 패턴
5. 사회의 잠재력과 삶이라는 경우
6.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7. 순수 의식탐구

추천글
물리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 눈에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 외적인 힘과 내적인 힘의 존재와 작용을 놀라운 만큼 간단한 시험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이 책은 새로운 지성의 시대를 알리는 지평을 제시해 준다. - 김용운 (수학자) - 김용운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이 알 수 없는 힘이란 무엇일까? 현대인들의 소외와 비극의 원인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에 충실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힘에만 급급한 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힘의 회복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해답을 이 책은 합리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 김정일 (정신과 의사) - 김정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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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 그건 사랑이었네 (푸른숲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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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킨스 (David R. Hawkin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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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가 상찬한 세계적인 영적 스승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는 1952년부터 정신과 의사로 일했으며, 미국 정신과 학회의 평생회원이었다. 1973년 노벨상 수상자 라
이너스 폴링과 함께 펴낸 『분자교정 정신의학』은 이후 수많은 정신과학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기념비적 저서가 되었다.
수많은 영적 진실이 설명의 부족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오해받아 온 것을 관찰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수준을 1부터 1000까... 더보기
최근작 : <현대인의 의식 지도>,<치유와 회복>,<나의 눈> … 총 109종 (모두보기)
이종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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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연세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조지아 의과대학 특별 연구원으로서 연수를 마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 베들레헴에서 부인과 개업중이다. 각 개인의 의식 진화 수준을 말해 주고 있는 호킨스 박사의 책을 읽고 영의 성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는 믿음이 생겨 이 책의 번역, 소개를 결심했다.
최근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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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나의 학교 분투기>,<지혜로운 부모는 어떻게 말하는가>,<움직임에 중력을 더하라>등 총 116종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7위 (브랜드 지수 56,570점) 

평점 분포     8.5

일생 동안 노력해야 할 부분이 '가지기 위해'가 아닌 어떤사람이 될 것인가에 있다  구매
호빵슈프림 2008-02-0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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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렵습니다. 그러나 너무 좋습니다.  구매
제우스 2008-07-0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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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을 읽기전에 봐야 할 책.  구매
햇잎 2008-08-1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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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식 지수는 얼마일까?

이 책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20여년간 인간 의식에 대한 연구를 수치로 측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육체는 건전하지 못한 감정이나 태도, 정신적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순간적으로 약해진다는 다이아몬드 박사의 근육 실험 기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의식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나타내었다. 가장 낮은 수치심의 에너지 수준은 20에서부터  가장 높은 깨달음의 단계인 1000에 이르기 까지 의식의 단계와 근력의 힘을 단계별로 잘 나타내어 놓았다.
이 책을 읽을 즈음에 김선일씨의 참수 사건이 있었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비통하였으며 이라크뿐 아니라 사건의 발단이 된 미국도 참을 수 없었
다. 또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잘못된 적대감과 방향
감각을 상실한 복수심에 들뜨게 만드는 언론의 행태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점점 마음이 가라앉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낮은 의식 수준이 불러온, 우리가 만든
결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부정적인 일에 나 하나만이라도 에너지를 보태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 마음속으로 그 분의 영혼이 안정을 찾기를 기원했다.
어두움을 없애기 위해 어둠과 싸우는 짓은 무모한 짓이다.
그냥 불을 켜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연일 방송되는 참혹하고 안타까운 뉴스들이 결국은 우리 의식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영향
력을 행사하고, 또한 그로인해 더 참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 교육자들, 정치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어두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개인개인이 되었으면
한다.
"지옥이란 신의 판결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결과"라
는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지옥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의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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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6-30 공감(1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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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 그리고 삶의 전환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은 항상 나라는 주체와 대상인 객체와의 사이에서 주체의 앎의 영역을 넓혀 보고자 발버둥치고 있던 나의 존재에 대해 '너란 도대체 누구인가' 라고 하는 화두를 던져 주었다. 사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높은 경지의 의식을 내가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그것은 과거에 내가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던 어떤 지식의 고정관념이라는 조그마한 호수에 던져진 하나의 조약돌과도 같았다.

인간의식의 단계가 존재하고 그것은 200이라는 숫자를 기점으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뉜다는 사실과 200이상의 높은 의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교훈들은 마치 내가 앎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열망과도 닿아 있으며, 또한 내가 열망하는 그 이상의 끝보다 더욱 큰 깨달음의 차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어느 역사적인 개인에 대한 의식의 평가가 나에게 어떤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인간의식은, 나의 의식은 세계의식(절대의식)과 닿아 있다는 큰 깨우침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200이하의 여러 의식들, 수치심과 죄의식과 무기력과 슬픔, 두려움, 욕망, 분노, 자존심 등의 감정과 관련한 것들에 나는 얼마나 많이 지배당하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생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내가 억제하고 다스릴 수 없는 나쁜 충동들과 감정의 물결을 어떻게 다스리고 자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동안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물음이었던 것이다. 대상과 그 대상에서 느끼는 나의 감각을 통한 느낌은 나에게 어떠한 좋고 싫음의 감정이나 선과 악의 구분도 주지 않으며 그것을 구분짓는 것은 단지 나의 마음이요 의식이라는 깨달음이, 마치 힘겨운 노동 속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듯이 그렇게 나의 의식을 꿰뚫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다.

저자의 말대로 나의 의식의 고양 그 자체가 세계로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 메시지에 의해 전세계의 의식의 고양에 도움이 된다면 내가 가야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깊은 깨달음을 통한 의식의 확산'이야말로 우리가 이 혼탁하고 욕망과 죄악으로 얼룩진 세상에 보내는 정화의 메시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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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2-02-11 공감(3)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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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기도하고 어렵기도하고... 새창으로 보기 구매
선배님의 권유로 서슴없이 사서 읽게 되었고 아직도 다 읽지 못하였다.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음미하고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여러번 읽어도 이해하는 만큼씩 다가오게 된다는 선배님 말씀대로이다 어떤 부분은 매우 재미있고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안간다 그런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읽어 보리라는 희망으로 가벼이 넘어간다 역시 선배님의 권유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소중한 한권으로 내 서가를 빛낼 책이다
올리브 2008-02-0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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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보다도... 새창으로 보기
지금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너무 많았었던 것 같다. 보통 10년전에 읽었 던 책에 다시 이렇게 흥미를 갖게 되는 책은 드물 것이다. 나는 그때 보다 더, 밑줄과 형광펜, 붉은색 펜까지 동원하며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전에 이현주 목사님(번역하신 책들에는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쓰심)께서  좋은 책에서는 에너지가 나온다라고 말씀 하신것에 공감이 갔다.
wha2692 2007-01-2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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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새창으로 보기
지인께서 추천을 해주신 책이다. 그 분께 감사를... 이책은 어느분 서평대로 서문에 거의 모든 것이 요약되어있다. 책이 조금 지루한 면도 있고 재미가 없는 부분도 많다.(내가 이쪽 분야에 좀 많이 약해서..) 그렇지만 놀라운 사실 아닌가?

우리 몸은 무엇이 나쁘고 좋은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그리고 다른 장에서는 여러부분들을 다루면서 이 우리몸의 신비를 사회현상들의 문제점 해결과 결부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실험방법도 간단하다. 한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기쁘게 살고,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런 나쁜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 몸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근육의 힘이 약해진단다.)

무서운 사실이기도 하다. 항상 좋은 생각만 하도록 하자. 긍정적이고 밝게.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내가 아는 지인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중간부분까지는 정독, 나머지 부분은 대충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던 책이였다. 메세지는 명확히 뽑아서 흡수했다고 생각한다.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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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ker 2002-09-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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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정신분석 1-2 성경과 정신분석 이론 : 크리스천투데이

기독교와 정신분석 ① 정신분석이란

기독교와 정신분석 ① 정신분석이란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8925
| 입력 : 2021.03.23 20:08

1. 서론

기독교와 정신분석(psychoanalysis)은 모두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전통기독교와는 다른 세계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에 영항을 미치는 강력한 무의식과 감정의 힘을 발견함으로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였고, 인간 이성의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된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 –1939)의 정신분석이 처음 세상에 등장하였을 때 기독교는 이에 대해 반기독교적이라고 의심하며 적대적이기까지 하였다. 프로이트가 무신론자였을 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소아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투사한 이미지”라고 했다는 점, 그리고
순진한 어린 아이들에게 성욕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는 그를 악마적이라 비난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 당시 정신분석을 따르는 기독교 목사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루터교 목사였던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1873~1956)는 정신분석을 기독교와 통합하려 했던 일반인 정신분석가였다. 그는 스위스 루터교 목사로서 일반인 정신분석가이다. 그는 취리히 대학과 바젤 대학에서 신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어 취리히 근교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1909년부터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에 이르기까지 프로이트와 교류하며 정신분석을 공부하였다. 그는 1919년 스위스 정신분석학회를 창설하였다. 그는 프로이트를 옹호하며 정신분석 이론(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공포, 유아성욕론 등)을 신학과 교육학에 적용하였다.


2. 정신분석이란


정신분석은 애초 노이로제(히스테리)를 위한 치료법으로 개발되었으며, 이제 역동정신치료로 진화하여 널리 정신장애 치료에 응용된다. 이제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에 대한 이론인 동시에, 연구방법이기도 하다.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 마음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서 기본적으로,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하고(마음의 구조적 이론), 자아, 초자아,이드로 설명하고(마음의 지형적 이론), 인격은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으로 성숙 발달하고(정신성발달이론), 현재 행동의 기원이 과거에 있다고 보고(정신결정론), 과거와 무의식(이드와 과거) 및 사회의 자극으로부터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 자신을 방어하고자 (마음의 경제적 이론) 한다고 본다. 정신분석의 가장 유명한 공헌은 무의식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무의식에는 의식적 마음이 용납할 수 없는, 성욕(리비도)과 공격적 충동과 감정 및 기억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인간 행동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우리는 무의식을 기본적으로 알 수 없으나, 그 파생물,즉 꿈, 실수로 하는 언동, 그리고 정신과적 증상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이론은 정신결정론(psychic determinism)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후 성인의 건강한 또는 병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나이별로 구분하여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사춘기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쾌락을 경험하는 방식과 그것이 성인의 행동이나 정신장애(노이로제)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화하였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에서의 쾌락추구를 소아성욕론이라 한다.


정통정신분석은 주로 성욕(리비도)과 공격성(타나토스)의 본능이론,정신성 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 갈등과 불안이론 등을 강조한다. 또한 무의식의 충동은 방어기제를 통해 조정되어 사회적 적응행동으로 표현된다는 것, 인격의 발달 수준에 따라 선택되는 방어기제의 성숙도가 다르다는 것, 스트레스 상황에서 미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수준(소아수준)으로 퇴행하게 되면, 정신장애가 나타난다는 것 등을 말한다. 치료에서도 철저한 자유연상과 꿈 분석을 강조한다. 따라서 무의식과 과거를 깨닫게 함(통찰)으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노이로제에서 해방된다고 본다. 그 과거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와 그에 관련된 부정적 감정으로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무의식과 과거의 진실을 알게 하는 기법은 “대화”이다. 즉 대화로 하는 치료(talk therapy)이다. 구체적 방법은 자유연
상(free association), 꿈의 해석, 전이와 저항의 해석이다.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이란 환자가 편안한 가운데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억제하지 않고 모두 진술하는 것이다. 꿈의 해석도 기억하는 꿈 내용에 대해 자유연상에 기초하며, 꿈에 나타난 상징들을 해석한다. 또한 치료적 대화 중에 발생하는 전이(transference-환자가 분석가를 과거의 중요한 인물처럼 생각하게 됨으로 무의식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방해된다)와 저항(resistance-무의식을 밝히는 것에 저항하는 것으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거나 침묵하거나 치료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을 해석(interpretation)하는 것이다. 이로서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을 통찰(insight)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성으로 내면(무의식)의 진실을 통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정통 정신분석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으며, 힘든 과정이어서, 끝내 분석이 성공하려면 피분석자가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


프로이트 이후 여러 제자들에 의해 여러 형태의 정신분석이 분화,발전하였다. 학파에 따라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와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중요한 선구자 중에 속한다. 아들러는 성(sex)이 아니라 열등의식이 인간행동과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핵심요소라는 것과, 열등감 또는 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 등의 이론을 제시하면서, 프로이트와 결별하였다. 그는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창설하였다. 매우 실제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융 분석은 성욕으로서의 리비도 개념을 삶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무의식도 개인 무의식과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으로 구분하였다. 융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와 달리, 무의식에 이미 자기(the Self)라는 원형(archetype)이 있어 이를 발견하는 것을 치료목표로 삼았다. 즉 무의식을 발견하여 이를 의식과 통합하여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을 소위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이라 하였다. 융은 이 과정을 모든 종교적 구원의 과정과 공통적이라 하였다. 그러나 융정신분석이 기독교적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정신분석의 분파들이 있다. 성욕보다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는 분파도 있고, 대인관계에 초점을 두는 분파도 있고, 무의식보다 자아를 강조하는 분파도 있고, 인간실존을 강조하는 분파도 있다.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소아정신분석도 있는데, 대화보다 주로 놀이(play)의 기법을 사용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정신성발달단계에 기초하여 사회적 발달과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에릭슨은 이러한 기본적 모자 관계가 만족스러우면 이후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적 신뢰(basic trust)라는 덕목을 획득하는데, 만족스럽지 못하면 성장한 후 모든 인간 관계에서 기본적 불신(basic mistrust)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기본적 불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인간 개인에 대한 사랑으로 대신 죽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알렉산더(F. Alexander)는 통찰을 통한 변화보다 치료자-환자의 관계를 통해 교정적인 감정을 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함으로써 감정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어릴 때 환자의 부모가 너무 엄하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면, 치료자가
그와 반대로 따뜻하며 융통성 있는 비권위적 태도 그리고 때에 따라 단호하고 한계를 짓는 태도를 보인다면 환자는 이러한 새로운 부모상에 적응하고 치료자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를 치료적 닮기(therapeutic modeling)라고도 한다.


이 모든 학파들은 모두 이후 정신의학뿐 아니라 정신치료, 상담,교육 나아가 사회학, 종교 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1) 역동이론


정신분석 이론에 근거한 현대 정신의학을 역동정신의학(dynamic psychiatry)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심리학적 정신의학인데, 뇌과학에 근거한 생물학적 정신의학(신경정신의학)에 대비된다. 역동정신의학에서 의 정신치료(psychotherapy)는 정통 정신분석과 기타 발전한 정신분석
의 분파들의 이론을 포괄적으로 종합하여 환자에게 가능한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통찰을 얻게 하려 한다. 통찰 능력이 부족하거나 통찰이 오히려 위협이 되는 사람에게는 지지적 정신치료(supportive psychotherapy)를 통해 환자를 분석해 주기보다 지지해주고 기존의 방어기제 중 건강한 부분을 강화해 준다(지지적이라 하더라도 치료는 정신분석적 이해에 근거한다).


(2) 가장 최근의 발달은 정신화 기법이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정신화(精神化 mentalizing)는 포나기(Peter Fonagy, 1952~ )가 말하는 기법으로, 암묵적으로 또는 표현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지각하고 해석하여, 내적 정신강태(욕구, 동기, 느낌, 신념 등)와 연결, 통합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능력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공감, 사회적 지능, 감정지능, 등이 있다. 이는 정통 정신분석과 정신분석가 John Bowlby의 애착이론, 그리고 인지이론도 다소 포함한 이론으로 어떤 종류의 정신치료를 하든 간에 정신병리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유용한 이론이다(반면 “마음챙김”으로 번역되고 있는 mindfulness라는 개념은 자타의 “현재”의 정신 상태에 주의를 준다는 의미이다. 정신화는 자서전적 이야기 (narrative)에 기반 한다는 점에서 마음챙김과 다르다). 정신화 능력은 아기엄마간의 애착(attachment)에서 발달한다. (계속)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기독교와 정신분석 ② 성경과 정신분석 이론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기독교와 정신분석 ② 성경과 정신분석 이론
| 입력 : 2021.04.01 13:36

예술, 종교, 일상 행동 등이 정신분석과 만나는 상황은 매우 흥미를 끄는 일이다. 정신분석이 가려져 있는 “이면”에 있는 뜻밖의 양상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방법”이므로, 신의 개념과 종교적 인간관 그리고 신앙의 의미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신분석은 신학에서 다루는 인간의 근본 문제, 의미, 삶의 목적 등에서 관심의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정신분석 이론과 기법은 목회상담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융 정신분석은 기독교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여러 종교들과 대화의 폭이 넓다. 그러나 융 정신분석이론은 엄밀히 말하면 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심리적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에 관련하여서는 정통 정신분석 이론은 기독교의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 성적 본능과 공격성과 쾌락, 투사, 대치, 억압, 등등 인간 마음의 정신역동(psychodynamic)의 이론이 여기저기에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분석과 기독교가 대화한다면, 그런 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필자가 신학자가 아니어서, 평신도 수준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고자 한다. 무의식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굳이 마음으로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라는 말씀은 의식적 자아(ego)는 원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신도 미처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도 모르는 육체적 내지 생물학적 본능(성욕, 식욕, 공격본능 등)의 힘이 너무 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의식이며, 이드(id)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은 그런 이드의 속성은 죄와 악으로 보는 것 같다(갈라디아서 5:16~23). 여기서 육체의 일, 육체의 소욕 또는 육체의 욕심은 무의식과 이드의 힘이다. 자아(ego)는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마음의 부분으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아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로마서 1:2).




초자아(superego)는 양심, 완전함, 죄의식의 장소, 이상(ideal)을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를 자각하는 마음, 양심, 그리고 “너희는 완전하라”(창세기 17:10)는 말씀과 유사하다. 프로이트는 초자아가 부모/사회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였으나, 기독교인은 도덕,양심, 완전함 등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가족이 네 원수니라”는 말씀(마태복음 10:34~37)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어릴 때의 가족(부모)과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이 이후 어른이 되었을 때 갈등과 노이로제의 원인(즉 죄를 짓는 원인)이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고, 부모의 배척은 자식을 분노하고 반항하게 만들 수 있다. 두 가지다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이라는 말씀은 정신분석적으로도 옳다. 본능적 욕망을 자아가 통제하지 못하면 계속 갈등하게 되고 우울증이 오거나 스트레스로당뇨병이나 고협압이 생길 수 있으며, 그 결과 자살이든 병사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는 말씀(고린도전서 1:11)은 인격발달의 의미와 일치한다. 정신분석에서, 어른이 어릴 때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은 노이로제에 해당된다. 즉 의존심,자기애(narcissism), 본능의 표현 등은 대인관계나 사회관계에서 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프로이트는 자기애에 대한 이해를 엄청나게 넓혔다). 한편,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마태복음 18:2)의 “어린 아이” 마음이란 노이로제(갈등과 괴로움) 이전의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창세기 2:18)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제안은 남녀의 결합, 즉 결혼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창세기 2장23-24)은 정신분석적 교훈과 일치한다. 이는 정신성발달과 성 기능의 발달과, 독립, 성 정체성, 건강한 남녀간 성교와 오르가즘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부모와 같이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이기도 하고, 부모와의 이차적 탯줄을 끊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 사람의 완전한 독립된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릴 때의 일을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노이로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노이로제가 있으면, 사랑에서 완전한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자타의 경계가 없어지는 진정한 오르가즘을 경험하기 어렵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요한복음 8:32)은 정신분석적으로는 내면의 감추어진 마음, 억압된 욕망, 잊혀진 과거 등을 알게 되면(통찰하면) 노이로제로부터 벗어난다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성경적으로는 여기서의 진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통적인 예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는 성경이나 정신분석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고통과 병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단지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다. 정신분석은 노이로제를 치료하고 정신건강을 획득하는 것이고, 기독교 신앙은 구원과 영원한 행복과 영생을 지향한다.



유아 성욕론도 오해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 입술과 혀와 구강의 점막의 느낌이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는행복감을 느끼는데, 이는 결코 성적 쾌락이 아니다. 그런데 이 생명유지의 행복감이 성인이 된 후 남녀가 키스로 경험하면 에로틱하게 느껴 진다. 프로이트는 어릴 때 무슨 이유로 엄마-아기 간의 젖 빠는 쾌감이 거부된 아이는 커서도 여성과의 성 관계가 원만하지 않게 된다는 임상적 관찰을 했다. 그래서 유아성욕론과 정신성발달이론이 나온 것이다. 정신분석 이론뿐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남에게 감추기 위해서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인간은 남을 비판하고, 자선을 베풀고, 성취하려 한다. 이런 행동은 투사, 대치, 보상, 등 방어기제를 통하여서이다. 아예 죄가 없다고 하는 행동에는 죄의식 없음, 순진성, 기억하지 못함 등이 있고, 그 방어기제는 억압, 부인 등이다.


정신분석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가능한 경지는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다(불교에서 말하는 열반(nirvana)과 유사하다고 하는 학자가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으로는 이 땅 위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 성경의 교훈과 다른 정신분석 이론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성경)와 정신분석은 공통적이지 않다. 예를 들면 “진리와 자유”에서 진리는 마음속의 비밀이 아니라 또한 학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자유는 “억압”의 제거가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이론적으로는 정신분석의 최고 목표이기는 하나 실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이트 그 자신 노이로제가 있었고 그 자신의 노이로제와 꿈의 분석으로 정신분석 이론 구성에 기여하였다. 그가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마음에 자유함과 평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환자들이 신을 말할 때 그 신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의 환상(illusion)이었음을 간파하였다. 그는 이 통찰을 확대 적용하여, <환상의 미래>라는 저술에서 “신이라는 것은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실재하는 초월적 존재도 아니며 이성의 최종 결과로 나온 산물도 아닌, 가장 오래되고 간절한 인류의 소원이 투사된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신론 역시 프로이트 자신의 환상이다. 프로이트 같은 천재들은 신을 인정하기 어렵다. 인본주의(humanism)는 인간들의 자기애(narcissism)같아 보인다. 또한 정신분석의 “이론”은 개개 환자의 “치료”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한 환자의 내면을 드러내어 환자에게 보여주는 치료기법일 뿐이다. 정신분석이라는 기술 자체가 종교의 정당성을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어떤 환자가 이혼하고 싶지만 하나님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겠다고 할 때 정신분석가는 “그 환자가 말하는 하나님”이 과거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하였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닌지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혼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즉 프로이트의 무신론은 실제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다. 신의 존재가 정신분석으로 입증되거나 부정될 일도 아니다. 그래도 정신분석가들에게 남는 문제는 왜 인간은 그런 신에 의한 구원의 소원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생존 때문이라면, 생명의 기원과 죽음 이후의 일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정신분석은 우리의 과거 경험이 현재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과 다르다(정신분석적 결정론은 또한 기독교의 예정론과도 다르다고 보는데, 필자는 신학자가 아니어서 말하기에 한계가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로서 그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변화한다고 말씀하신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무의식(이드)을 의식화, 즉 본인이 알게 함으로써(통찰) 완료된다. 이후 그 발견된 바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해서는 정신분석의 교훈은 별로 없다. 프로이트는 내면을 알게 되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문제가 해결된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내면을 통찰함으로써(진실을 알게 되어) 더 괴로워질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정신분석을 하지않도록 말리거나(그래서 3회 정도 진단적 분석을 하고 정신분석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그만 두든지 계속하든지 한다), 환자 수준에 따라 내면을 드러내기보다 감추어 주는 쪽으로 정신치료 할 수 있다(이럴 경우를 지지적 정신치료 또는 억압적 정신치료라 한다). 충분히 자아가 강건한 사람은 정신분석을 통해 발견된 내면의 고통스러운 비밀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분석이 끝난 후의 훈습(work-through)이라 이름하였다. 그래서 훈습까지 포함하면 정신분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프로이트의 충고 중 하나는 인간의 이성으로 무의식의 힘을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sublimation)를 통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정도였다. 예를 들어 성적 욕망은 문학이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공격본능(타나토스)은 스포츠나 경쟁이나 투쟁에 의한 사회적 성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가혹한 초자아에 대해 유머(humor)라는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꿈은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의 표현으로 보지만 기독교에서는 꿈을 계시로 볼 때가 있다. 치료에서 자유연상은 하나의 고전적인 정화작용(catharsis)이 될 수있고, 기독교의 회개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자유연상은 특별한 의도가 없는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이고, 회개는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하나님께 말하는(고백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독교와 정신분석은 이론과 방법에서 모두 다르다. 정신분석은 삶의 문제를 정신병리라고 본다. 임상적으로는 “노이로제”이다. 기독교는 삶의 문제를 “죄”로 본다. 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은 노이로제를 치료하려 한다. 기독교의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건강이고, 기독교의 목표는 구원이다.


정신분석은 세속적 휴머니즘과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상의 이상은, 인간은 창조된 바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의 영원함이다. 휴머니즘에서의 인간의 목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개인의 잠재력으로 성취하는, 인간의 자기-개선이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자유사상에 기초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은 하나님 말씀의 충분함을 부인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하시었다.


민성길 한국성과학연구협회 회장(연세의대 명예교수)



2021/04/15

"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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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디" - 오강남의 함석헌 이야기


나눔회원 1:1 채팅

함석헌

-생명평화민주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한국의 간디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우리 마음속에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들어가며


다석 류영모 선생이 가장 아끼던 제자가 함석헌 선생이었고함석헌 선생이 가장 존경하던 스승이 류영모 선생이었다함석헌 선생은 다석의 1주기에 다석 선생의 제자들이 다석 선생의 집에 모였을 때 내가 부족하지만 이만큼 된 것도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두 분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이었다우선 11살의 차이였지만 생몰 일자가 거의 같다똑같이 3월 13일에 출생하고 돌아가신 날도 류영모 선생님은 2월 3일 저녁함석헌 선생님은 2월 4일 새벽으로 몇 시간 차이일 뿐이다그야말로 의미 있는 우연이라고 할까두 분 모두 흰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고수염을 기르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분의 근본 사상이 여러 면에서 같았다는 사실이다두 분 모두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소개되었다필자로서는 류영모 선생을 뵙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면함석헌 선생은 여러 번 뵙고, 1979년 캐나다 에드먼튼에 살 때 필자의 집에 유하시면서 필자가 근무하던 알버타 대학교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시고 종교학과 교수들과 대담도 하실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더 없는 영광이라 생각된다.


대조적인 점은 류영모 선생에 비해 함석헌 선생은 키도 크시고 외모도 출중하셨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류영모 선생이 생의 후반에서 비교적 은둔적이고 금욕적인 면이 강했던 데 비해 함석헌 선생은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한국 민주화에 직접 참여하시는 등 사회 개혁에도 힘을 많이 쓰셨던 점이라고 볼 수 있다신비주의 전통에서 즐겨 쓰는 용어를 빌리면 함석헌 선생은 행동하는 신비주의자라 할 수 있다.


마침 함석헌 선생이 나는 왜 퀘이커교도가 되었는가하는 제목의 자서전적인 글을 쓰셨는데그것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본다.


그의 삶


신천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여기서부터 존칭 생략평안북도 황해 바닷가 용천에서 아버지 함형택과 어머니 김형도 사이의 32녀 중 누님 아래 둘째로 태어났다. 5세경 누님이 배우는 천자문을 옆에서 듣고 모두 외었다여섯 살에 기독교 계통의 사립 덕일 소학교에 입학하고 긴 댕기머리를 잘랐다함석헌에 의하면 전통 종교가 창조적인 생명력을 잃은 형식적 전통에 불과할 때 바닷가 상놈의 고장으로 알려진 자기 마을에 새로 들어온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넣어주었다고 한다그는 기독교 계통 사립 초등학교에서 하느님과 민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홉 살 때 나라가 일본한테 아주 망하고 어른들이 예배당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어린 마음에 크게 충격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인해 아주 낙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후일 함석헌은 자기가 열세 살까지 지금 생각하기에도 순진한 기독 소년이었다고 고백한다. 14세에 양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16세에 졸업한 다음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이것은 나중 의사가 될 목적이었다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순진성이 많이 없어지고 과학을 배우면서 성경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양고보 2학년 17세에 한 살 아래의 황득순과 결혼했다.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수리조합 사무원소학교 선생으로 일하기도 했다그해 11월 장남 국용이 출생하고 2년 후 장녀 은수가 태어났다그는 모두 2남 3녀를 두었다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집에서 2년 동안을 있노라니 운동 이후 폭풍처럼 일어나는 자유의 물결과 교육열 속에서 젊은 놈의 가슴이 타올라 날마다 빈둥빈둥 놀면서 썩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21년 21세에 다시 학업을 계속하려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4월이라 입학 시기가 지나 어디에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그러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집안 형 되는 함석규 목사를 만나그가 써주는 편지를 가지고 정주 오산학교에 가서 3학년에 편입되었다그해 여름이 지나고 류영모가 교장으로 부임하고, 9월 개학식 때 함석헌은 처음으로 류영모를 만나게 되었다함석헌에 의하면 그는 류영모의 영향으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처음으로 한국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찾기 시작하고또 류영모로부터 노자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그 결과 남을 따라 마련된 종교를 믿기보다는 좀 더 참된 믿음을 요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더욱이 교회가 점점 현실에서 먼 신조주의信條主義’, 교리중심주의로 굳어지게 되자 교회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시작했다오산학교와 류영모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함석헌은 1923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다그해 9월에 난 대지진으로 도쿄시의 3분 2가 타버렸다일본 정치가들은 민심수습책으로 한국인들이 폭동을 계획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한국인 약 6천명이 학살되었다이를 본 함석헌은 기독교를 가지고 내 민족을 건질 수 있을까?” 번민하기 시작했다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다고 도덕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할 수도 없었다오래 동안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 형편으로는 교육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일본 유학을 결심한 그 본래의 의도대로 1924년 지금의 교육대학에 해당하는 도쿄 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갔다새로 입학한 기쁨에 교회를 찾아가다가 동갑내기 1년 선배인 김교신金敎臣을 만나고김교신이 우치무라의 성경연구회에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치무라는 오산학교에서 류영모 선생에게서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그 당시에는 우치무라가 생존인물인지도 몰랐는데김교신을 통해 그가 도쿄에 살면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과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함석헌은 존경하는 스승 류영모가 언급한 인물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우치무라의 무교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는 별도의 예배형식이 없이 성경을 읽고 십자가에 의한 속죄를 강조하며 해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한다여기서 함석헌은 성경이란 이렇게 읽어 나갈 것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다그러면서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번민에서 벗어나 크리스챤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28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귀국오산학교로 돌아와 역사 선생으로 일했다그러나 역사 선생이 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역사란 것이 온통 거짓말투성이일 뿐 아니라 한국 역사가 비참과 부끄럼의 연속이어서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르치자니 어린 마음에 자멸감과 낙심만’ 심어줄 것 같고다른 사람들처럼 과장하고 꾸미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민에 고민결국 자기에게는 세 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확인했다첫째 한민족으로서 민족적 전통을 버릴 수 없고둘째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버릴 수 없고셋째 영국 역사가 H. G. Wells의 The Outline of History를 읽고그 영향으로 받아들인 과학과 세계국가주의를 버릴 수 없었다이 셋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이 셋을 다 살리면서 역사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된 것인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난의 메시야가 영광의 메시야라면고난의 역사는 영광의 역사가 될 수 없느냐?’하는 것이었다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용기가 나 역사 교수를 계속할 수 있었다말하자면 한국 역사의 keynote를 고난suffering’으로 보는 역사관이 확립되고 이런 역사관에 입각해서 한국 역사를 재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치무라의 성서연구모임에 참석했던 유학생들 여섯 명이 귀국하여 성서연구모임을 만들고 󰡔성서조선聖書朝鮮󰡕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했는데함석헌은 고난의 견지에서 한국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글을 연재했다이것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라는 명작이 되어 나왔다이 책은 나중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이름의 개정판으로 나왔고류영모의 맏아들이 번역하여 영문판으로도 나왔다.


오산학교에 10년간 있었는데그때는 스스로 십자가 중심 신앙에 충실한 무교회 신자였다고 했다그러나 본래 교파를 싫어하여 무교회라는 것이 생겼는데아이러니하게도 무교회도 하나의 교파로 굳어가는 것 같고또 우치무라에 대한 개인숭배 태도가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 반감을 느끼고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주적으로 생각을 깊이하면서 예수가 내 죄를 대신해서 죽었음을 강조하는 우치무라의 십자가 대속 신앙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었다심정적으로는 무교회주의에서 떠났지만그것을 크게 공표하여 부산을 떨 필요를 느끼지 않아 그런대로 몇 년을 지났다.


오산에 있으면서 한국의 구원은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통해 농촌을 살려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오산에 온 것도 이를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믿었다그러나 1936~1937년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점점 가혹해지자 함석헌은 죽을 지언정 이에 맞서야 한다고 하였지만 오산학교 행정자 측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그는 평생을 바칠 마음으로 왔던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38년 봄 눈물로 교문을 나왔다.”


교문은 나왔지만 차마 학생들을 떠날 수는 없었다오산에 머물면서 일요일마다 학생들을 만났다그렇게 2년을 보내다가후배 김두혁이 평양 시외에서 경영하던 덴마크식 송산농사학교를 넘겨주겠다고 하여 1940년 그리로 갔다가자마자 설립자가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검거됨에 따라 함석헌도 덩달아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억울하게 1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1942년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실린 조와弔蛙라는 우화 때문에 잡지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잡혀가는 사건이 터져다시 감옥에 들어가 1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이 때문에 나중 독립유공자 자격으로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될 수 있게 된 것이다출옥 후 다시 농사를 짓고 있는데, 2년 후 해방이 되었다.


함석헌은 이때까지 감옥을 네 번그 후로도 세 번 더 들어갔는데감옥에 있을 때 얻은 것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그는 감옥을 인생대학이라 부르고감옥 속에서 불교 경전도 보고노자장자도 더 읽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신비적인 체험도 얻었다고 한다이런 경험을 통해 모든 종교는 궁극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확신에 이를 수도 있었다함석헌은 감옥에서 깨달은 바를 스스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동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인간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려는 세계혁명의 시작이다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국가관이 달라져야 한다대국가주의시대大國家主義時代가 지나간다세계관이 달라지고 종교가 달라질 것이다아마 지금과는 딴판인 형태를 취할 것 아닐까종교의 근본 진리야 변할 리 없지만 모든 시대는 그 영원한 것의 새로운 표현을 요구한다각 시대는 제 말씀을 가진다장차 오는 시대의 말씀은 무엇이며누가 받을까새 종교개혁이 있기 위해 이번도 새 학문의 풍()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그러면 역시 과거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새로운 고전古典 연구가 필요하다그 고전은 어떤 것일까서양 고전이 될 수는 없다그것은 이미 다 써먹었다그럼 동양 고전을 다시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 거다막다른 골목에 든 서양문명을 건지는 길은 동양을 새로 맛보는 데서 나올 것이다.”


특히 종교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기성 종교는 국가주의와 너무 깊이 관련되었기에 낡은 문명과 함께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마치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를 말한 디트리히 본회퍼나 2000년 전 예수 탄생 때 동방에서 선물이 온 것처럼 지금도 동방에서 새로운 정신적 선물이 와야 한다고 한 토마스 머튼을 읽는 기분이다

 

해방 후 사람들의 강권에 의해 임시자취원회 위원장이 되고이어서 평안북도 임시정부 교육부장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반공 시위인 신의주 학생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소련군 감옥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밀정이 되기를 요구하는 소련군정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남한으로 넘어왔다. 1947년의 일이다.

월남하여서는 무교회 친구들의 협력으로 일요 종교 강좌를 열어 1960년까지 계속하면서 말로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젊은이들 사이에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필자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 그 당시 󰡔사상계思想界󰡕에 실린 그의 글들을 읽었다그의 생각이 일반에게 알려지면서 한국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낙인찍고그의 무교회 친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세 가지 주된 이유는 그가 십자가를 부정하고기도하지 않고너무 동양적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함석헌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십자가에서 몸소 지는’ 십자가를 강조한 것이고기도도 형식과 인간끼리의 아첨에 지나지 않는’ 공중기도를 삼갈 뿐이라고 하고동양 종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교파적인 좁은 생각으로 동양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에는 결코 동조할 수 없었다고 한다결국 표층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심층 종교로 들어가는 함석헌을 이해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일로 구태여 무교회와 결별할 생각은 없었다무교회를 떠난 결정적 계기는 중대한 사건’ 때문이었다그가 오산 시절부터 간디를 알고 오래 동안 간디를 좋아해 간디 연구회를 만들 정도였는데동지들 사이에서 간디의 아슈람 비슷한 것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1957년 천안에 씨알농장을 만들고 젊은 몇 사람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이때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형세는 돌변했다친구들이 모두 외면하고 떠나버린 것이다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그러면서 관념적으로 믿고 있고 감정적으로 감격하던 십자가가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었다그는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십자가도 거짓말이러라
아미타불도 빈말이러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도 공연한 말 뿐이러라
내가 쟝발장이되어 보자고 기를 바득바득 쓰건만 나타나는 건 미리엘이 아니고 쟈벨 뿐인 듯이 보이더라
무너진 내 탑은 이제 아까운 생각 없건만 저 언덕 높이 우뚝우뚝 서는 돌탑들이 저물어가는 햇빛을 가리워 무서운 생각만이 든다.”


이때를 예견한 것인가함석헌은 1947년 월남 이후 지은 그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심정이 토로하고 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救命袋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不義의 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 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스승 류영모마저도 그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끝내 그를 내쳤다그러나 물론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다석일지󰡕에 보면 함은 이제 안 오려는가영 이별인가” 하며 탄식하는 등 7~8회에 걸쳐 제자 함석헌을 그리는 글이 나온다류영모는 내게 두 벽이 있다동쪽 벽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고 서쪽 벽은 함석헌이다고 할 정도였다.


심정적으로는 그럴지라도 겉으로는 스승으로부터도 버림받아 홀로 된 그에게 퀘이커가 나타났다퀘이커에 대해서는 오산 시절부터 들었지만 좀 별난 사람들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한국 전쟁 후 구호사업으로 한국을 찾은 퀘이커들을 만나 처음으로 퀘이커 신도가 된 이윤구를 통해 퀘이커를 접하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상태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퀘이커 모임에 나갔다. 1961년 겨울이었다이렇게 되어 196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퀘이커 훈련 센터인 펜들힐Pendle Hill에 가서 열 달 동안비슷한 성격의 영국 버밍엄에 있는 우드브루크Woodbrooke에 가서 석 달 동안 지내게 되었다이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퀘이커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룻밤 뽕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가려는 중의 심정이었다그러다가 1967년 미국 북 캐롤라이나에서 열렸던 퀘이커 세계 대회에 퀘이커 친우들이 그를 대해 주는 데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껴서 결국 퀘이커 정회원이 되었다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수평선너머를 내다봅니다.

내가 황햇가 모래밭에서 집을 지었다 헐면서 놀 때에 내다보던 수평선,

피난 때 낙동강 가에서 잔고기 한 쌍 기르다 죽이고 울면서 내다보던 수평선,

영원의 수평선너머를 나는 지금도 내다봅니다.”


함석헌은 류영모와 달리 현실참여에 적극적이었다. 1961년 장면 정권 때 국토 건설단에 초빙되어 5·16 군사 정권이 들어오기 전까지 정신교육 담당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잡지 󰡔의 소리󰡕를 창간하여 그의  사상을 널리 펼치고 동시에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는데,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폐간되었다가 1988년 8년 만에 복간되었다군사 정권에서는 군사 독재에 맞서서 1974년 윤보선김대중 등과 함께 민주회복국민운동본부의 고문역을 맡아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느라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이런 민주화 운동을 인정받아 1979년과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퀘이커 봉사회의 추천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989년 췌장암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 2월 4일 새벽 5시 28, 87년 11개월 가까이날짜로 33,105일을 사시고 세상을 떠났다함석헌을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박재순 박사에 의하면돌아가시기 전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쓰셨다는데그것이 스승 류영모가 돌아가신 날에 맞추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고 한다장례식은 조문객 2 명이 오산학교 강당에 모여 오산학교장으로 치르고 경기도 연천읍 간파리 마차산에 묻혔다가,  2002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자로 건국훈장이 추서되고이에 따라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영원한 들사람에게는 약간 의외의 조치가 아닌가 여겨지는 면도 있다.


그의 가르침


함석헌은 동서고금의 정신적 전통에서 낚아낸 깊은 사상을 바탕으로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생명평화민주비폭력 등을 위해 힘쓴 행동하는 신비주의자’, 세간에서 말하는 한국의 간디라 할 수 있다성경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누가복음6:40) 했다󰡔도마복음󰡕이나 󰡔장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류영모 선생님의 제자이지만어느 면에서 스승이 이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의미에서 청출어남이청어남靑出於藍而靑於藍의 경우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함석헌의 사상이 어떻게 세계 종교의 심층곧 신비주의 전통과 통하는가그의 가르침이 어떻게 우리가 살펴본 인류의 정신적 스승들의 사상을 통섭하고 있는가몇 가지 예를 들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경전을 끊임없이 고쳐 해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소위 정통주의라 하여 믿음의 살고 남은 껍질인 경전의 글귀를 그대로 지키려는 가엾은 것들은 사정없는 역사의 행진에 버림을 당할 것이다아니다역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가 스스로 역사를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진술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정통주의나 근본주의적’ 태도는 종교의 더욱 깊은 뜻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심각하게 받아들이려면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다고 한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둘째는 자라나는 신앙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생장기능生長機能을 가지고 있다이 생장은 육체적 생명에서도 그 특성의 하나이지만신앙에 있어서도 그러하다신앙에서 신앙으로 자라나 마침내 완전한 데 이르는 것이 산 신앙이다.”

옛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는 낡아 빠진 종교다우리들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말하는 종교는 낡아 빠진 종교이다신학적인 설명을 강요하기 휘해 과학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종교도 역시 낡아 빠진 종교다.”


자라지 않은 신앙은 죽은 신앙생명이 없는 신앙이다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시 바람(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결국에는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도마복음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우리의 의식구조가 변화를 받아 점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데선 만날 데가 없고우리 마음속에생각하는 데서만 만날 수가 있다.

자기를 존경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믿음이다……그것이 자기발견이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가장 본질적인 나라는 뜻에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참 나라 할 수 있다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이런 발견을 일반적으로 일컬어 깨침이라 한다심층 종교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지적하고 있다.   


넷째,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믿는 것은 그리스도다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내 속에도 있다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그때에 비로소 그의 죽음은 나의 육체의 죽음이요그의 부활은 내 영의 부활이 된다속죄는 이렇게 해서만 성립된다.”


놀라운 통찰이다예수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혹은 그리스도 의식Christ-consciousness임을 발견한 분이다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예수와 같은 그리스도 의식에 동참하여 그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을 비롯하여 심층 종교의 기본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랑이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평화주의가 이긴다.

인도주의가 이긴다.

사랑이 이긴다.

영원을 믿는 마음이 이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세계 거의 모든 종교 신비주의 심층 전통에서는 나와 하느님이 하나임을 말함과 동시에 나와 다른 이들다른 사물들과도 결국 일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이다. “어떤 경우가 천박한 이해인가나는 답하노라. ‘하나의 사물을 다른 것들과 분리된 것으로 볼 때’ 라고그리고 어떤 경우가 이런 천박한 이해를 넘어서는 것인가나는 말할 수 있노라.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있음을 깨닫고 천박한 이해를 넘어섰을 때라고.”


여섯째는 너와 나는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남과 같이 있다그 남들과 관련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그러므로 나와 남이 하나인 것을 믿어야 한다·남이 떨어져 있는 한나는 어쩔 수 없는 상대적인 존재다그러므로 나·남이 없어져야 새로 난 그러므로 남이 없이그것이 곧 나다 하고 믿어야 한다.”


함석헌은 내 속에 참 나가 있다”, “이 육체와 거기 붙은 모든 감각·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의 참 나는 죽지도 않고늙지도 않고변하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는다고 하면서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와 만물이 하나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가히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다.    


일곱째는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좁아서는 안 되겠지요우주의 법칙생명의 법칙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나와 달라도 하나로 되어야지요사람 얼굴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아요생명이 본래 그런 건데종교와 사상에서만은 왜 나와 똑같아야 된다고 하느냐 말이야요생각이 좁아서 그렇지요다양한 생명이 자라나야겠는데……


이사야나 아모스만이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니라 동양의 공··장도 모두 다 하느님의 예언자다.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말이나 문자로 표현된 것의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궁극 실재에 대한 우리 인간의 견해見解는 그 타당성이 결할 수밖에 없다모든 견해가 이럴 진데 나의 견해만 예외적으로 절대로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자연히 다원적 사고를 인정하게 된다거의 모든 심층 종교신비주의 전통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런 몇 가지 예만으로도 함석헌의 사상이 류영모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세계 신비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아는 데 충분하리라 생각한다특히 오늘 한국의 종교들이 거의 표층 종교 일색으로 변해 있는 상태에서 이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된다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나 도로테 죌레Dorthee Soelle가 미래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심층적인 종교신비주의적 종교일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류영모·함석헌의 사상에서 미래 종교의 광맥을 보는 듯하다 하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