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

Philo Kalia -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

Philo Kalia -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원광대)는 녹두 전봉준을 사상가로 조명하려고... | Facebook

사상으로 읽는 동학 네 번째 강의



#조성환 교수(원광대)는 녹두 전봉준을 사상가로 조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른바 전봉준의 “공생사상”

역사학자들이 전봉준을 주로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맥락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그가 사상가는 아니지만 그의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닌데, 따라서 사상적 차원에서 읽는 참신한 시도였다. 큰 주제가 사상으로 읽는 동학이다.

#조성환은 공생사상 이전에 수운, 해월의 ‘개벽’에서 녹두의 ‘혁명’으로 바뀌게 된 전환의 동기로 輔國安民의 安民에서 학민(虐民) 그리고 원민(冤民)을 예로 들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학민과 원민이 죽 있어 왔지만 동학의 포접이 형성되고 그 원민의 숫자가 결합되어 무르익는 순간, 녹두가 선봉이 되어 기포(起包)가 이루어지고 백성을 학대하고 가렴주구하는 관에 대한 봉기,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전쟁(전투)으로 이어진 것이다.
“매일 멸망할 것이라고 노래하던 민중들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하며 기일이 오기만 기다리더라.“(사발통문에서) 기일이 와서 기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며, 전하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하고 뜻만 맞추면서 충성을 간하는 말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자를 비도(匪徒)라고 한다. 안으로는 나랏일을 도울[輔國]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학대하는 관리가 많아, 백성들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변하였다.“(무장포고문에서)

”심문: 다시 기포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진술: 그 후에 들으니 일본이 개화라 칭하고 처음부터 민간에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또 격문도 없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 도성에 들어가 야반에 왕궁을 습격하여 임금을 놀라게 하였다 하기로 초야의 사족과 백성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비분강개하여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인과 전투하여 이런 사실을 우선 일차 따져 묻고자 함이었습니다.“(전봉준 공초에서)
동학 ‘혁명’이란 말은 천도교의 <개벽>(1920. 6)지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고,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 국내에 소개된 1920년대 초가 아닌가 추정했다.
전봉준의 사상을 오늘의 관점에서 현재화하기 위해 ‘공생’ 사상, 혹은 ‘평화’ 사상, 혹은 ‘생명’ 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혁명가로서 ‘혁명’ 사상으로 남겨두고, 그 우물에서 계속 ‘혁명’ 사상을 퍼 올렸으면 좋겠다.
독일의 농민 혁명가 토마스 뮌처도 루터의 개혁과 함께 보조를 맞추다가 1524년에 이르러 농민 혁명가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 노선과 결별하게 된다.
나는 대학원 시절 ‘과격한 종교 개혁가’(radical reformers) 세미나에서 뮌처의 설교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 역사적 윤곽과 루터와의 대략적인 차이 외에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에른스트 블로흐가 뮌처를 “혁명의 신학자”로 언급한 책(1921년)을 보고, 적지 않게 고무된 적이 있었다.
토마스 뮌처와 녹두 전봉준의 가슴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언어와 생각의 개념은 다르게 표현되었겠지만, 학민(虐民)으로부터 원민(冤民)의 분통한 가슴을 깊숙이 듣고 떨리고 공감하여 분출한 농민해방의 꿈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도 가슴에 담아 두고 싶은 혁명가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사발통문, 전봉준의 공초(供招), 오하기문 등의 자료를 통해서 본 전봉준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치밀하고 현실적이고 평화적이다. 혁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 속에 혁명의 꿈이 갇힌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평화’도 좋고 ‘공생’도 좋지만, 전봉준만큼은 ‘혁명’ 사상이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마하트마 간디, 체 게바라,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넬슨 만델라, 안토니오 그람시,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녹두 전봉준.
종로 1가 네거리에 세워진 전봉준의 동상을 보라
굵은 농민의 손가락, 근력의 어깨, 하늘을 향한 가슴, 무엇보다 부라린 눈, 눈빛!
거기 그때는 혁명의 눈빛이다.
평화나 공생은 후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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