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
물의 왕(水王): 동학과 화엄의 아우라지 기행(
-모악산 수왕사(水王寺)를 오르다
밤 2시경까지 이야기꽃으로 잠 못 이루다가 5시 반쯤 깨어 준비하고 7시에 모악산 수왕사(水王寺)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아침부터 무더운 기운이 정수리에 닿아 몸을 데운다. 모악산(795m)은 한국의 악(岳)산 중에서도 유명하지 않은가. 설악산, 치악산, 화악산, 운악산, 월악산,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관악산... 그리고 모악산(母岳山), 아기를 안은 어미 모습을 한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모악산이라 한다.
이번 기행 기획자인 Nambutas Kim선생의 수왕사 답사 의도를 추정해본다.
김지하의 우주생명미학은 <우주생명학>(2018), <初美>(2014), <아우라지 美學의 길>(2014), <수왕사>(2013) 그리고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2010)에서 지어지는데 중심에 <수왕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왕사>에 우주생명미학의 착상과 전체 그림의 도안이 발견되고, 우주생명학 전체 그림의 윤곽이 그려지고 요체가 전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지하에 따르면 水王會는 이렇게 시작된다.
갑오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1895년 음력 4월 5일 향아설위를 집행한 해월선생은 그날 밤 이천군 앵산 봉우리에서 손천민(동학), 6촌 할아버지뻘인 김이민(동학), 인정언(남학), 기세춘(정역), 금강산 당취 두목 彬杉和尙, 모악산 수왕사 주지인 乃紅 스님, 抿(백두산 천부경 수련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기는 蝨(이, 이수인, 28세, 여성, 해월 수발 동학당) - 김이민이 차출함, 그리고 海月선생 이상 9인이 모인다. 이들은 화엄개벽을 통해서 우주생명의 산알을 내림받는 개벽을 모시는 운동의 지하조직을 결성한다. 이 회의는 4년동안 27회나 지속된다. 그 회의에 대한 기록이 <수왕사>의 알맹이다. 김지하는 수왕사 이야기를 집안에서 들었다. 특히 동학당 김이민 선생에게서 들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면서 기억의 숫자는 역사적 상상력의 순서로서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김지하는 기억에 의한 기록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나의 기억력이 좋은 탓인지 온갖 것을 다 기억하는 데다가 또 동학사 공부가 가세하여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수왕회의 주체는 여성과 어린이와 쓸쓸한 대중(현람애월민, 玄覽涯月民)이다. 이 운동은 이후근 80년 간 지하조직운동으로 지속되었다가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근대 백년 동아시아의 온갖 진보적 민중, 민족 특히 여성과 미성년 청소년, 유년운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하였다. 불교, 기독교(서학), 동학, 남학, 정역, 강증산, 원불교와 사회주의, 자유주의 운동 등이 모두 <남학밭>, <당취굴> 등의 이름으로 지하에서 망라되었다. 이 운동은 2008년 4월 29일에서 6월 9일까지의 시청 앞 첫 촛불에서 전 문명사적인 재생 부활의 예절을 올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이것은 전 인류와 전중생계의 새로운 우주생명학에 입각한 水王史를 화엄개벽운동으로 들어올리는 필연한 역사의식이라는 것이며, 그 가장 핵심적인 현안이 곧 산알 운동이라고 말한다. 지하에서 펼쳐진 드러나지 않은 감춰진 역사를 지상으로 드러내는 불굴의 魂이 느껴지지만 낯선 개념의 등장과 왠지 허황해 보이고 뜬구름 잡는 환상이 펼쳐지는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인상이 듦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와 취지를 활성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정열과 원대한 이상, 이것을 화엄후천개벽 등 여러 가지 용어로 말하지만 곧 우주생명미학의 줄거리이다.
우리는 더위 때문에 두세차례 쉬면서 중간에 시도 낭송하면서(임동확 시인은 詩낭송을 좋아함) 마침내 수왕사에 도달했다. 수왕사는 초라한 흔적으로만 남아있고 <수왕사>에 나오는 모악산 수왕사 주지인 乃紅 스님의 숨결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럴듯한 건물을 기대한 것이 玄覽涯月民의 바탕과 위배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인 사찰이 구이면 외곽에 위치한 술공장 옆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등산객들은 잇따라 허탈감과 아쉬움을 지어보이며 전북도와 완주군의 허술한 관리와 이전 지원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연신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전북의소리(http://www.jbsori.com)
깎아지른듯한 바위절벽 틈으로 흐르는 맑은 물만이 물왕이절, 생명물의 수왕사(水王寺)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수왕사>에서 핵심 인물은 蝨, 李水仁이다. 그는 3차례 수왕회의 참석 후 1896년 가을 어느 날, 양평시장에서 체포되어 여러 포졸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핏자국 흥건한 죽임을 당한다. 그때 해월이 이 소식을 듣고 조용히 울며 “이(蝨)가 오얏(李)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날 밤 나루터 너머 큰 물 위에 하연 초승달이 떠있는 것을 보고 한없이 흐느껴 울며 나지막이 몇 번이고 “슬이 이다”를 외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왕사>는 검은 바탕에 초승달이 떠 있다.
28세 동학당 여인 蝨(이수인)가 후천화엄개벽을 한 마디로 아낙네의
①母性(엄마 마음)
②밥
③月經(母體)라고 발언
월경. “모든 살과 모든 뼈에 생명을 실어 나르는 물은 피다. 곡식이 우주의 물로써 빚어진 생명의 젖인 것처럼, 피는 인류 역사를 뚫고 흘러온 ‘불타는 물’이다. ”강과 하수와 시내와 못은 천지만물의 골수와 진액이요, 사람의 몸에 혈액은 이 천지의 강과 하수와 시내와 못이니라.“(해월 「天地之理氣」) 피는 우주에서 가장 성스러운 물이다. 그것은 물이면서 동시에 불(火)이다. 물과 불의 상극은 불타는 물로서의 피에서 완전히 해소, 조화되었다. 피는 단지 가열되어 끓는 물이 아니다. 예수의 피, 홍수전의 피, 수운의 피, 전봉주의 피처럼(덧붙여 이수인의 피) 성스러운 인간들의 피는 불타는 물로서 인류 역사의 쓰레기들을 태워 왔으며, 인류 역사의 묵은 때(垢)를 씻어 왔다. 물의 세례와 불의 세례는 피의 세례로써 완성된다.”(윤노빈)
<수왕사>의 부제는 “삼천 년을 짓밟혀 온 못난 백성들과 여인들의 역사”이다. 김지하는 이수인을 <모심(섬김)>의 모형 <수왕회>, 즉 그녀의 <화엄개벽모심> 화엄경 자행 동녀 스타일의 <무승당해탈인>으로 본다. 그리고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여성 리더쉽으로 다섯명을 언급한다.
①천도교 여성 리더였던 주옥경(朱鈺卿)
②최초의 여성명창이었다는 이화중선(이화중선(李花仲仙)
③최초의 여성 기철학자 임윤지당(任尹摯堂)
④송도 기생 황진이(황진이(黃眞伊)
⑤이조 초기의 프리섹스 여성 어을우동(於乙于同)
이 5명의 여성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 탄생의 계보에 나오는 5명의 여성,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에 상응한다는 생각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말하려는 근본 뜻은 水王, 물의 왕 곧 진정한 샘물, 생명수의 원천으로서의 물, 샘물 찾기 역사로서의 水王史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水王史 이야기는 성경에도 핵심적으로 나타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찾는 사마리아 여인이 그 단적인 예이다. 성경에서 그 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그 물을 찾고 먹고 마셔 영생하는 자, 곧 화엄개념모심을 행하는 자는 사마리아 여인이다. “목 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 42:1)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찾은 김지하는 이제 생명수의 왕, 수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수왕 이수인이 김지하에 의해 기호화 된다는 젊은 여성 작가의 반론이 있었다. 그래서 <수왕사>를 계속 읽어나갈 수 없다는 불편감을 토로했다. 미천한 한 여성이 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비참한 꼬락서니를 담담하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참극은 여성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일어난 것이라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론은 사안에서 벗어난다. 이 반감은 동일한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지식인의 내면적 항변, 자기비판의 시작이고 무시무시한 딜레마, 엄청난 괴리라고 생각한다. 즉자적으로 현람애월민(玄覽涯月民)이라면 이런 고민이 생길 터가 없을 것이다. 바보인줄 모르면서 남이 보기에 바보로 사는 바보, 그러나 한 마을 안에서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 성자처럼 살았던 바보. 지식인에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삶이다. 그저 생각하고 미안해하고 때로 깊은 연민의 정과 용서를 빌 뿐이다. 김지하도 “산알의 명심보감”에서
이제
끝이다.
산알 모란꽃의 스톡홀롬 산알 41개의 마지막
순서가 ‘멍’이다.
‘멍’은
산알의 명심보감이다.
자기비판의 시작
박경리 선생의 ‘생명의 아픔’이다.
선생은 한때 채마밭에서
배추를 가꾸다가 곁에 멍하게 서 있는 날더러
‘늬는 밭 메봤나?’
‘아니요’
‘밭도 못 메본 사람이 생명 타령하나?’
‘......’
이것이 멍이다.
한 구절 아무 데서나 뽑아 쓰면서 이 글 끝낸다.
『생명의 아픔』, 73페이지, 단 한 줄이다.
-이와 같은 엄청난 괴리, 지식인들은 어디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걸까, 부끄럽다.
물의 왕(水王): 동학과 화엄의 아우라지 기행(
-모악산 수왕사(水王寺)를 오르다
밤 2시경까지 이야기꽃으로 잠 못 이루다가 5시 반쯤 깨어 준비하고 7시에 모악산 수왕사(水王寺)를 오르기 시작했다.
- 은적암이 수운(水雲) 최제우에 대한 회상이며 초혼(招魂)이라면
- 수왕사는 해월(海月) 최시형과 노겸(勞謙) 김지하를 추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아침부터 무더운 기운이 정수리에 닿아 몸을 데운다. 모악산(795m)은 한국의 악(岳)산 중에서도 유명하지 않은가. 설악산, 치악산, 화악산, 운악산, 월악산,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관악산... 그리고 모악산(母岳山), 아기를 안은 어미 모습을 한 큰 바위가 있다 하여 모악산이라 한다.
이번 기행 기획자인 Nambutas Kim선생의 수왕사 답사 의도를 추정해본다.
김지하의 우주생명미학은 <우주생명학>(2018), <初美>(2014), <아우라지 美學의 길>(2014), <수왕사>(2013) 그리고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2010)에서 지어지는데 중심에 <수왕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왕사>에 우주생명미학의 착상과 전체 그림의 도안이 발견되고, 우주생명학 전체 그림의 윤곽이 그려지고 요체가 전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지하에 따르면 水王會는 이렇게 시작된다.
갑오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1895년 음력 4월 5일 향아설위를 집행한 해월선생은 그날 밤 이천군 앵산 봉우리에서 손천민(동학), 6촌 할아버지뻘인 김이민(동학), 인정언(남학), 기세춘(정역), 금강산 당취 두목 彬杉和尙, 모악산 수왕사 주지인 乃紅 스님, 抿(백두산 천부경 수련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기는 蝨(이, 이수인, 28세, 여성, 해월 수발 동학당) - 김이민이 차출함, 그리고 海月선생 이상 9인이 모인다. 이들은 화엄개벽을 통해서 우주생명의 산알을 내림받는 개벽을 모시는 운동의 지하조직을 결성한다. 이 회의는 4년동안 27회나 지속된다. 그 회의에 대한 기록이 <수왕사>의 알맹이다. 김지하는 수왕사 이야기를 집안에서 들었다. 특히 동학당 김이민 선생에게서 들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면서 기억의 숫자는 역사적 상상력의 순서로서 심오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김지하는 기억에 의한 기록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나의 기억력이 좋은 탓인지 온갖 것을 다 기억하는 데다가 또 동학사 공부가 가세하여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수왕회의 주체는 여성과 어린이와 쓸쓸한 대중(현람애월민, 玄覽涯月民)이다. 이 운동은 이후근 80년 간 지하조직운동으로 지속되었다가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근대 백년 동아시아의 온갖 진보적 민중, 민족 특히 여성과 미성년 청소년, 유년운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하였다. 불교, 기독교(서학), 동학, 남학, 정역, 강증산, 원불교와 사회주의, 자유주의 운동 등이 모두 <남학밭>, <당취굴> 등의 이름으로 지하에서 망라되었다. 이 운동은 2008년 4월 29일에서 6월 9일까지의 시청 앞 첫 촛불에서 전 문명사적인 재생 부활의 예절을 올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이것은 전 인류와 전중생계의 새로운 우주생명학에 입각한 水王史를 화엄개벽운동으로 들어올리는 필연한 역사의식이라는 것이며, 그 가장 핵심적인 현안이 곧 산알 운동이라고 말한다. 지하에서 펼쳐진 드러나지 않은 감춰진 역사를 지상으로 드러내는 불굴의 魂이 느껴지지만 낯선 개념의 등장과 왠지 허황해 보이고 뜬구름 잡는 환상이 펼쳐지는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인상이 듦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와 취지를 활성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정열과 원대한 이상, 이것을 화엄후천개벽 등 여러 가지 용어로 말하지만 곧 우주생명미학의 줄거리이다.
우리는 더위 때문에 두세차례 쉬면서 중간에 시도 낭송하면서(임동확 시인은 詩낭송을 좋아함) 마침내 수왕사에 도달했다. 수왕사는 초라한 흔적으로만 남아있고 <수왕사>에 나오는 모악산 수왕사 주지인 乃紅 스님의 숨결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럴듯한 건물을 기대한 것이 玄覽涯月民의 바탕과 위배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인 사찰이 구이면 외곽에 위치한 술공장 옆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등산객들은 잇따라 허탈감과 아쉬움을 지어보이며 전북도와 완주군의 허술한 관리와 이전 지원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연신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전북의소리(http://www.jbsori.com)
깎아지른듯한 바위절벽 틈으로 흐르는 맑은 물만이 물왕이절, 생명물의 수왕사(水王寺)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수왕사>에서 핵심 인물은 蝨, 李水仁이다. 그는 3차례 수왕회의 참석 후 1896년 가을 어느 날, 양평시장에서 체포되어 여러 포졸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핏자국 흥건한 죽임을 당한다. 그때 해월이 이 소식을 듣고 조용히 울며 “이(蝨)가 오얏(李)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날 밤 나루터 너머 큰 물 위에 하연 초승달이 떠있는 것을 보고 한없이 흐느껴 울며 나지막이 몇 번이고 “슬이 이다”를 외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왕사>는 검은 바탕에 초승달이 떠 있다.
28세 동학당 여인 蝨(이수인)가 후천화엄개벽을 한 마디로 아낙네의
①母性(엄마 마음)
②밥
③月經(母體)라고 발언
월경. “모든 살과 모든 뼈에 생명을 실어 나르는 물은 피다. 곡식이 우주의 물로써 빚어진 생명의 젖인 것처럼, 피는 인류 역사를 뚫고 흘러온 ‘불타는 물’이다. ”강과 하수와 시내와 못은 천지만물의 골수와 진액이요, 사람의 몸에 혈액은 이 천지의 강과 하수와 시내와 못이니라.“(해월 「天地之理氣」) 피는 우주에서 가장 성스러운 물이다. 그것은 물이면서 동시에 불(火)이다. 물과 불의 상극은 불타는 물로서의 피에서 완전히 해소, 조화되었다. 피는 단지 가열되어 끓는 물이 아니다. 예수의 피, 홍수전의 피, 수운의 피, 전봉주의 피처럼(덧붙여 이수인의 피) 성스러운 인간들의 피는 불타는 물로서 인류 역사의 쓰레기들을 태워 왔으며, 인류 역사의 묵은 때(垢)를 씻어 왔다. 물의 세례와 불의 세례는 피의 세례로써 완성된다.”(윤노빈)
<수왕사>의 부제는 “삼천 년을 짓밟혀 온 못난 백성들과 여인들의 역사”이다. 김지하는 이수인을 <모심(섬김)>의 모형 <수왕회>, 즉 그녀의 <화엄개벽모심> 화엄경 자행 동녀 스타일의 <무승당해탈인>으로 본다. 그리고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여성 리더쉽으로 다섯명을 언급한다.
①천도교 여성 리더였던 주옥경(朱鈺卿)
②최초의 여성명창이었다는 이화중선(이화중선(李花仲仙)
③최초의 여성 기철학자 임윤지당(任尹摯堂)
④송도 기생 황진이(황진이(黃眞伊)
⑤이조 초기의 프리섹스 여성 어을우동(於乙于同)
이 5명의 여성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 탄생의 계보에 나오는 5명의 여성,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에 상응한다는 생각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말하려는 근본 뜻은 水王, 물의 왕 곧 진정한 샘물, 생명수의 원천으로서의 물, 샘물 찾기 역사로서의 水王史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水王史 이야기는 성경에도 핵심적으로 나타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찾는 사마리아 여인이 그 단적인 예이다. 성경에서 그 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그 물을 찾고 먹고 마셔 영생하는 자, 곧 화엄개념모심을 행하는 자는 사마리아 여인이다. “목 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 42:1)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찾은 김지하는 이제 생명수의 왕, 수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수왕 이수인이 김지하에 의해 기호화 된다는 젊은 여성 작가의 반론이 있었다. 그래서 <수왕사>를 계속 읽어나갈 수 없다는 불편감을 토로했다. 미천한 한 여성이 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비참한 꼬락서니를 담담하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참극은 여성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일어난 것이라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론은 사안에서 벗어난다. 이 반감은 동일한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지식인의 내면적 항변, 자기비판의 시작이고 무시무시한 딜레마, 엄청난 괴리라고 생각한다. 즉자적으로 현람애월민(玄覽涯月民)이라면 이런 고민이 생길 터가 없을 것이다. 바보인줄 모르면서 남이 보기에 바보로 사는 바보, 그러나 한 마을 안에서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 성자처럼 살았던 바보. 지식인에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삶이다. 그저 생각하고 미안해하고 때로 깊은 연민의 정과 용서를 빌 뿐이다. 김지하도 “산알의 명심보감”에서
이제
끝이다.
산알 모란꽃의 스톡홀롬 산알 41개의 마지막
순서가 ‘멍’이다.
‘멍’은
산알의 명심보감이다.
자기비판의 시작
박경리 선생의 ‘생명의 아픔’이다.
선생은 한때 채마밭에서
배추를 가꾸다가 곁에 멍하게 서 있는 날더러
‘늬는 밭 메봤나?’
‘아니요’
‘밭도 못 메본 사람이 생명 타령하나?’
‘......’
이것이 멍이다.
한 구절 아무 데서나 뽑아 쓰면서 이 글 끝낸다.
『생명의 아픔』, 73페이지, 단 한 줄이다.
-이와 같은 엄청난 괴리, 지식인들은 어디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걸까,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