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3 h ·
‘김지하의 사회사상’을 읽으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김지하 선생의 시대에 대한 인식이나 개벽과 혁명의 비전에 대한 광활한 꿈에 공감하고, 그의 천재성과 창조성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찬탄과 긍지를 느끼면서도
그가 현실의 정치나 사회를 변혁하는 정치담론가나 사회담론가로 자리매기기는 어렵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세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고, 특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우선 그의 정신은 현실의 정치담론이나 사회담론이라는 틀 속에 갇힐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
내가 그를 근본적으로 시인(詩人)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는 이른바 신기(神氣)가 강한 사람이다. 그의 정신적 영적 체험은 나 같은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다.
다만 내가 느끼는 것은 밝음을 강조하면서도 그 신기(神氣)가 어딘지 어둡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거친 역사 속에 쌓인 수 많은 한(恨)들이 그의 예민한 감수성에 반응하는 것 같다.
후천 개벽의 전위의 하나로 마당굿 광대들에 대한 언급이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몸, 그 캄캄한 몸, 아토피와 오염과 생식력 상실, 정신 파탄, 생산력 감퇴, 권태 짜증, 온갖 기괴한 바이러스나 암 증상에 시달리며 악몽과 푸대접과 절망에 들볶이며, 더러운 교육 아래 지지 밟히며 월급도 별로 못 받는, 그 외로움 속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괴상하고 캄캄한 병든 시 구절을 끄적거리고 있는 그 버림받은 아이들, 바로 그들이다”
이른바 ‘꼬래비’가 전위가 되는 그런 개벽을 그리고 있다.
이런 부분이 나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그것이 개벽이든 혁명이든- 현실적인 정치담론이나 사회담론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꼬래비’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의 감정과는 별개로 실제로 혁명이나 개벽의 주체는 꼬래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별적인 경우는 있을 것이지만 계층으로서의 꼬래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부르죠아 계급이 근대 혁명의 주체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부(富)’와 ‘교양(敎養;정신)’을 일정한 수준으로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꼬래비’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전위(前衛)는 아마도 어느 정도의 물질적 안정(富)과 미래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정신을 가진 그러면서도 기득권에 저항하는 계층(아마도 중하의 중산층)일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 선 부분에 있는 사람(계층)들 가운데 자신을 더 해방하고 싶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나는 앞 선 자(者)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를 더 해방(관념계의 자유를 향하여, 즉 자신이 가진 것을 풀어놓고 나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자각하는)하도록 하는 것이 개벽이나 혁명의 성공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이 잘 만나는 정치 담론이나 사회 담론들이 나오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지하 선생의 걸출한 사상이 이 땅에서 잘 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