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4

* 감리교의 조선 선교 - 문화적 우월감

 

1] 감리교의 종교 사상적 특징은? 
2] 감리교의 조선 선교에서도샌드크릭크 사건에서 작용한 문화적 우월감이 작용했다고 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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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샌드크리크 학살과 감리교 — 신앙은 어떻게 식민 폭력의 언어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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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의 종교 사상적 특징과 19세기 말 조선 선교에 투영된 서구 문화적 우월감에 대한 고찰입니다.

1. 감리교의 종교 사상적 특징

감리교(Methodism)는 18세기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사제였던 존 웨슬리(John Wesley)와 찰스 웨슬리 형제의 영적 갱신 운동에서 출발했다. 형식화된 교리주의를 탈피하고 내면적 회심과 도덕적 실천을 강조한 것이 출발점이었으며, 주요 신학적·사상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보편 구원론과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감리교는 엄격한 예정론을 내세우던 칼뱅주의와 달리 아르미니우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신의 은총은 특정 선택된 자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만인에게 열려 있으며, 신은 모든 인간에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의지와 선행 은총을 먼저 베푼다고 본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과 성화(Sanctification):

    감리교 사상의 가장 독창적인 개념 중 하나는 '성결'과 '완전'이다. 신앙을 통한 의인화(칭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사랑으로 마음이 온전히 채워져 죄의 동기에서 벗어나는 내적·윤리적 변화(성화)를 현세에서 점진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다.

  • 신앙의 실천성과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웨슬리는 "사회적 성결 없는 성결은 없다"고 천명했다. 개인의 경건은 반드시 이웃 사랑과 사회 개혁으로 발현되어야 한다고 보았기에, 초기 감리교는 노예제 폐지 운동, 교도소 개선, 빈민 구제, 노동자 권익 보호 등 현실 변혁 운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 웨슬리 사변형(Wesleyan Quadrilateral):

    신앙과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성서(Scripture)를 최고 권위로 두되, 전통(Tradition), 이성(Reason), 그리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Experience)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실용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론을 확립했다.

2. 샌드크리크의 문화적 우월감은 조선 선교에도 작용했는가?

결론부터 짚는다면, 형태와 맥락은 완전히 달랐으나 문명사적 우월 의식이라는 근본적인 심층 구조는 19세기 말 조선에 파견된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에게도 뚜렷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샌드크리크와 조선 선교 사이의 공통된 인식적 기반과, 실제 전개 양상에서 나타난 결정적 차이는 다음과 같이 비교·평가할 수 있다.

1) 공통점: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 문명주의(WASP Imperialism)

샌드크리크 학살(1864년)을 저지른 존 치빙턴이나 존 에번스, 그리고 1880~1890년대 조선에 입국한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스크랜턴(W. B. Scranton) 등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들은 동일한 19세기 후반 미국 프로테스탄트 문화를 공유한 세대였다.

  • 복음과 서구 문명의 동일시: 당시 미국 선교사들은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서구식 근대성(민주주의, 과학, 위생, 기술) 자체를 "신의 섭리에 의한 우월한 문명"으로 여겼다. 이들에게 아시아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사회는 '어둠과 야만, 미신에 갇힌 세계'로 인식되었다.

  • 우월적 시선의 표출: 초기 선교사들의 서신과 일기에는 조선의 가난, 부패한 관료제, 유교적 신분 질서, 무속 신앙을 보며 느낀 문화적 경멸과 우월 의식이 자주 기록되어 있다. 아펜젤러 역시 조선을 영적으로 어둡고 개화되어야 할 미개한 대상국으로 묘사하곤 했다.

2) 차이점: 원주민 '절멸·배제' vs 조선 '개화·근대화'의 선교 모델

그러나 문화적 우월감이 실제 역사적 현장에서 작동한 방식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 식민 정착(Settler Colonialism) vs 외교적 근대화 동반자:

    샌드크리크 사건은 백인 정착민들이 금광과 토지를 영구히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토지에서 몰아내고 제거해야 할 '생존의 경쟁자'로 본 결과 발생한 군사적 참극이었다. 반면, 조선은 쇄국을 막 끝내고 외교 관계를 맺은 주권 국가였으며, 선교사들은 토지를 빼앗으러 온 무장 정착민이 아니라 문명 개화의 촉매자로 입국했다.

  • 사회적 성결의 긍정적 전환:

    감리교 특유의 실천적 사상은 조선에서 '제도적 근대화'라는 긍정적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 교육과 의료: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워 근대적 인재를 양성했고, 메리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세워 전통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교육을 개척했다. 보구여관(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 설립 등 의료 사역 역시 선교의 핵심 축이었다.

    • 계급·성별 타파: 양반과 천민,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허무는 감리교 공동체의 평등주의는 유교적 신분제에 신음하던 하층민과 여성들에게 해방적 공간을 제공했다.

요약하자면, 19세기 미국 감리교를 지배하던 서구 백인 중심의 문화적 우월감은 조선 선교 현장에도 분명히 짙게 투영되어 있었다. 다만 샌드크리크에서는 그것이 영토 찬탈과 결합하여 물리적 파괴와 인종 학살로 폭주한 반면, 조선에서는 선교사들의 헌신, 교육·의료 제도 도입, 신분제 해체라는 근대화 기여와 뒤섞인 복합적 양상으로 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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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구별이 하나 있습니다. <샌드크리크를 가능하게 한 문화적 우월감이 감리교 신학 자체에서 곧바로 나온 것은 아니며>, 웨슬리적 감리교 신앙이 19세기 미국의 <백인 문명론·진보관·서부 팽창주의>와 결합하면서 그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조선 선교에서도 동일한 결합이 상당 부분 나타났지만, 결과는 샌드크리크와 매우 달랐습니다.

1. 감리교의 종교사상적 특징

감리교는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단순한 교리적 신파라기보다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강조한 운동이라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핵심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은총의 보편성>입니다. 웨슬리는 칼뱅주의의 강한 예정론보다는 인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주어진다는 <선행은총 prevenient grace>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으며, 구원은 일부 예정된 사람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방향입니다. 오늘날 감리교도 선행은총-의롭다 하심의 은총-성화의 은총이라는 연속성을 웨슬리 신학의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The United Methodist Church

둘째는 <성화 sanctification>입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었으니 끝”이 아닙니다. 신자는 계속 변화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Christian perfection>도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 초인적 완전성이 아니라, 사랑이 삶을 지배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The Methodist Church

셋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적 성결 social holiness>입니다.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서 끝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병자를 돌보고, 교육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신앙생활 자체입니다. 감리교 전통에서 개인적 신앙·전도·사회적 행동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The United Methodist Church

넷째는 <조직과 실천>입니다. 감리교라는 명칭 자체가 기도·성경읽기·구제·금식·소그룹 활동을 “methodically” 실천한다는 데서 생겼습니다. 교회·학교·병원·출판·여성단체 같은 제도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강했습니다.

바로 이 마지막 두 특징이 감리교 선교의 엄청난 장점이면서 동시에 위험성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 → 개인이 변화한다 → 가정이 변화한다 → 사회가 변화한다 → 국가와 문명이 발전한다>

라는 연결이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기독교 = 문명 = 근대 = 서양>이라는 등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 샌드크리크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래서 샌드크리크를 이해하려면 <감리교 신학>과 <19세기 미국 감리교 문화>를 구별해야 합니다.

웨슬리의 원래 신학에는 원주민을 죽여도 된다는 사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자비·가난한 사람에 대한 봉사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것이 당시의 <Manifest Destiny>, 즉 미국의 서부 팽창이 역사적·신적 사명을 가진다는 사고와 결합했습니다.

그러면서

  • 기독교 → 문명
  • 백인 미국 → 기독교 문명
  • 원주민 사회 → 미개
  • 원주민의 기독교화 → 문명화

라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원주민 개인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원주민의 종교·문화·생활양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샌드크리크의 치빙턴은 이것의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앞서 말한 <문화적 우월감>은 상당히 정확한 표현입니다.


3. 그렇다면 조선 선교에도 같은 생각이 있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있었습니다. 상당히 강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1885년 조선에 들어온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스크랜턴 가족 등은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였습니다. 감리교는 처음부터 학교·의료·출판을 선교의 중심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대표적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이것은 단순히 <예수를 믿으십시오>라는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기독교 신앙 + 서양식 교육 + 위생 + 과학 + 여성교육 + 개인주의적 인격관 + 근대국가>

라는 하나의 문명 패키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따라서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명백하게 <문명론적 위계>가 있었습니다.

서양은 발전된 문명이고,
조선은 아직 개화되어야 할 나라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감리교뿐 아니라 당시 미국·영국 선교사들에게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사고였습니다.


4. 아펜젤러에게도 그것이 있었는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펜젤러에게 교육은 단순히 선교를 위한 편법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직접 전도가 법적으로 제한되었던 초기에는 특히 교육선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의 일기·보고서·설교를 연구한 논문도 그의 교육활동이 복음전도와 구원의 목적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KCI

배재학당이 영어·서양 지식·근대교육을 가르쳤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아펜젤러의 생각을 단순히

<조선인은 미개하니까 미국인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라고 정리하면 지나칩니다.

그에게는 동시에 <조선이 독립된 근대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습니다.

이 점에서 조선 선교는 미국 원주민 선교와 매우 중요한 차이가 생깁니다.


5.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 메리 스크랜턴입니다

메리 F. 스크랜턴(Mary F. Scranton)이 세운 이화학당의 목표를 한국 감리교회 역사자료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녀는 한국 여성들을 서양 여성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Korean women to become better Koreans”

즉 <한국 여성이 더 나은 한국인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합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이 표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선교사에게 문화적 우월감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 사고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한국 문화에는 잘못된 것이 많으므로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인은 미국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발전해야 한다.>

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샌드크리크의 세계와 차이가 발생합니다.


6. 조선 여성에 대한 선교사의 시선은 특히 양면적이었습니다

미국 여성 선교사들이 조선 여성들을 보면서

  • <억압되어 있다>
  • <교육받지 못한다>
  •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 <가부장제의 희생자다>

라고 판단한 기록은 많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가 더 발전된 사회에서 왔다>는 시선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여성 선교는 실제로 상당한 해방적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화학당을 비롯한 선교학교는 당시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에게 교육을 제공했고, 이후 여성 교사·간호사·의사와 이른바 <신여성>층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최근 연구는 여성 선교사의 활동이 식민지 조선 여성의 공적·정치적 활동 증가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DOI

따라서 이것을 단순히 <문화제국주의>라고만 말해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7. 샌드크리크와 조선을 비교하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표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샌드크리크의 원주민조선
백인 시각‘미개한’ 사회‘낙후된’ 사회
기독교문명화 수단문명·개화 수단
교육동화정책과 연결근대교육과 연결
토착종교열등하거나 미신적우상숭배·미신으로 보는 경향
서양문명우월한 모델우월한 모델
결정적 차이백인이 토지를 빼앗으며 정착미국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지 않음
결과문화파괴·토지박탈·군사폭력교육·의료·개종·사회개혁
토착민 주체성심각하게 파괴한국인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재해석

맨 마지막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8. 한국인은 선교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사를 <미국 선교사가 조선인에게 기독교를 가져다주었다>고만 설명하면 상당히 왜곡됩니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한국인들은 만주와 일본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성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감리교회 자체의 역사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자기 식으로 변형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상제사를 거부하면서도 <추도예배>라는 새로운 의례를 만들어 효의 전통과 기독교를 결합했습니다. 연구자 James Grayson은 이것을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사례로 분석합니다. Cambridge

따라서 실제 과정은

<미국 → 한국>이라는 일방향이 아니라

<미국 선교사 → 한국인 수용 → 선택 → 변형 → 토착화>였습니다.


9. 더 깊이 보면 역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샌드크리크와 조선을 연결하는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더 발전된 기독교 문명>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조선에 가져온 것들 가운데

  •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 <여성도 교육받아야 한다>
  • <신분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 <개인은 양심을 가지고 있다>

같은 사상은 오히려 조선의 기존 위계질서를 비판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선교학교가 여성교육과 근대교육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기독교계 학교의 확산이 한글·서양학문·근대적 주체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한국 근대교육사에서도 인정되는 부분입니다. Digital Humanities Center

즉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들어온 선교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한국인의 자립과 민족의식>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10. 그래서 저는 <샌드크리크 → 조선>을 이렇게 연결해서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봅니다

두 경우에는 공통된 19세기 미국 개신교의 사고가 있습니다.

<복음화 = 문명화 = 진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등식은 샌드크리크에서는

문명화 → 동화 → 토지박탈 → 군사적 제거

와 결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문명화 → 학교·병원·출판 → 개화 → 한국인의 기독교 수용과 재해석

이라는 다른 경로로 전개되었습니다.

따라서 <똑같은 문화적 우월감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똑같은 식민주의였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감리교 내부에도 처음부터 두 가능성이 함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가부장적 선교관과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고 모두가 변화와 존엄의 주체이다>라는 웨슬리적 보편주의입니다.

샌드크리크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으로 타락한 형태로 나타났고, 조선에서는 두 요소가 충돌하고 뒤섞였습니다.

그래서 한국 감리교 선교사를 읽을 때 가장 좋은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그들은 조선인을 사랑했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은 조선인을 동등한 타자로 사랑했는가, 아니면 자신들이 더 나은 문명으로 끌어올려야 할 대상으로 사랑했는가?>

라고 물어야 합니다.

아펜젤러·스크랜턴·이화학당·배재학당의 기록을 이 질문으로 다시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한국 감리교 선교의 문명론과 문화적 우월감>이라는 주제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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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드크리크 학살과 감리교 — 신앙은 어떻게 식민 폭력의 언어가 되었는가

샌드크리크 학살과 감리교 — 신앙은 어떻게 식민 폭력의 언어가 되었는가

Massacre at Sand Creek: How Methodists Were Involved in an American Tragedy : Roberts, Gary L.

: Amazon.com.au: Books



Massacre at Sand Creek: How Methodists Were Involved in an American Tragedy
by Gary L. Roberts (Author) Format: Paperback
4.4 4.4 out of 5 stars (76)


Sand Creek. At dawn on the morning of November 29, 1864, Colonel John Milton Chivington gave the command that led to slaughter of 230 peaceful Cheyennes and Arapahos-primarily women, children, and elderly-camped under the protection of the U. S. government along Sand Creek in Colorado Territory and flying both an American flag and a white flag. The Sand Creek massacre seized national attention in the winter of 1864-1865 and generated a controversy that still excites heated debate more than 150 years later. At Sand Creek demoniac forces seemed unloosed so completely that humanity itself was the casualty. That was the charge that drew public attention to the Colorado frontier in 1865. That was the claim that spawned heated debate in Congress, two congressional hearings, and a military commission. Westerners vociferously and passionately denied the accusations. Reformers seized the charges as evidence of the failure of American Indian policy. Sand Creek launched a war that was not truly over for fifteen years. In the first year alone, it cost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50,000,000. Methodists have a special stake in this story. The governor whose polices led the Cheyennes and Arapahos to Sand Creek was a prominent Methodist layman. Colonel Chivington was a Methodist minister. Perhaps those were merely coincidences, but the question also remains of how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itself responded to the massacre. Was it also somehow culpable in what happened? It is time for this story to be told. Coming to grips with what happened at Sand Creek involves hard questions and unsatisfactory answers not only about what happened but also about what led to it and why. It stirs ancient questions about the best and worst in every person, questions older than history, questions as relevant as today's headlines, questions we all must answer from within.

Print length

320 pages
Publication date ‏ : ‎ 1 May 2016
Language ‏ : ‎ English
Print length ‏ : ‎ 3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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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L. 로버츠(Gary L. Roberts)의 저서

  <샌드크리크의 학살: 감리교인들은 어떻게 미국의 비극에 연루되었는가>

(Massacre at Sand Creek: How Methodists Were Involved in an American Tragedy)에 대한 요약 및 평론


책 개요 및 시대적 배경

1864년 11월 29일, 미국 콜로라도 준주 샌드크리크에서 미합중국 기병대가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의 평화로운 거주지를 기습 공격했다. 당시 원주민들은 미군의 지시에 따라 평화 협정의 징표로 성조기와 백기를 내걸고 있었으나, 존 밀턴 치빙턴(John Milton Chivington) 대령이 지휘하는 제3콜로라도 의용기병대는 무방비 상태의 노인, 여성, 어린이를 무차별 학살했다.

게리 L. 로버츠의 <샌드크리크의 학살: 감리교인들은 어떻게 미국의 비극에 연루되었는가>는 단순한 군사적 사건 서술을 넘어, 가해 세력의 핵심에 있던 종교적 배경과 제도 교회의 침묵을 정면으로 해부한다. 샌드크리크 사건을 다룬 역사서 중에서도 가해자들의 신앙과 제도적 기독교가 어떻게 폭력과 인종 청소를 정당화하거나 방조했는지를 다룬 연구서다.

핵심 내용 요약

저자는 샌드크리크 학살의 기획자와 실행 주체들이 당시 미국 최대 교단 중 하나였던 감리교(감리감독교회)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첫째, 대학살의 주동자인 존 치빙턴 대령은 정규 안수를 받은 감리교 순회 목사이자 장로였다. 남북전쟁 발발 후 군에 입대한 그는 설교대에서 내려와 군복을 입었지만, 여전히 신앙인의 정체성을 내세웠다. 또한 학살을 실질적으로 조장한 콜로라도 준주 지사 존 에번스(John Evans) 역시 저명한 감리교 평신도 지도자이자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덴버 대학교의 설립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기독교 문명의 확장과 백인 정착민의 이익을 동일시했다.

둘째, 신앙과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결합이다. 당시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이데올로기는 백인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사명감과 뒤섞여 있었다. 치빙턴과 그를 지지하던 정착민들은 원주민을 '기독교 문명의 적' 또는 '제거되어야 할 야만인'으로 규정했다. 저자는 치빙턴이 학살 전 부하들에게 어린아이까지 살해할 것을 명령하며 "이(lice)는 서캐(nits)에서 나온다"는 인종 말살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음을 짚는다.

셋째, 군 내부의 분열과 저항이다. 로버츠는 모든 군인이 학살에 동조하지 않았음을 부각한다. 사일러스 소울(Silas Soule) 대위와 조셉 크레이머(Joseph Cramer) 중위는 상관인 치빙턴의 발포 명령을 불법적인 살인으로 규정하고 거부했다. 소울 대위는 의회와 군사 조사위원회에서 치빙턴의 만행을 증언했으나, 이후 덴버 시내에서 보복으로 추정되는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넷째, 제도 교회의 반응과 침묵이다. 연방 의회와 군 조사위원회가 샌드크리크 사건을 명백한 '학살'로 규정하고 비난했음에도, 감리교 총회와 교권 기구들은 치빙턴과 에번스를 엄중히 치리하거나 단죄하지 않았다. 지역 교회와 교단 신문들은 대체로 사건을 침묵으로 덮거나 정착민 보호라는 대의로 치빙턴을 옹호했다. 책은 교회가 예언자적 비판 정신을 버리고 권력과 결탁했을 때 어떤 맹목에 빠지는지 고발한다.

서평 및 비평

<샌드크리크의 학살>은 미국의 건국과 영토 확장 이면에 자리한 종교적 정당화 기제를 파헤친 수작이다. 저자 게리 L. 로버츠는 수십 년간 축적한 사료와 증언록, 교단 회의록을 바탕으로 치빙턴 개인의 광기를 넘어 당시 미국 개신교 사회가 공유하던 구조적 편견을 드러낸다.

이 책의 강점은 이분법적 단죄에 머물지 않고 복합적인 도덕적 갈등을 입체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치빙턴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괴물로 그리기보다, 열정적인 부흥사이자 반노예제 신념을 지녔던 인물이 어떻게 서부 개척의 인종주의적 폭력에 포섭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소울 대위처럼 군율 위반의 위험을 감수하고 학살에 저항한 양심적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당시에도 도덕적 선택의 여지가 분명히 존재했음을 역설한다.

한계가 있다면, 이 연구가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총회의 과거사 반성 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집필된 성격을 띠다 보니 교단 내부의 참회와 화해라는 목적의식적 서사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국가주의와 폭력적 팽창에 굴복했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참극을 객관적 사료로 입증해 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과거사 청산과 종교 윤리 분야에서 필독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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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크리크 학살과 감리교 — 신앙은 어떻게 식민 폭력의 언어가 되었는가>

Gary L. Roberts, <Massacre at Sand Creek: How Methodists Were Involved in an American Tragedy>, 2016 — 요약·평론

게리 L. 로버츠의 <Massacre at Sand Creek>은 1864년 11월 29일 콜로라도 준주의 샌드크리크에서 미군이 샤이엔(Cheyenne)과 아라파호(Arapaho) 원주민을 대량 살해한 사건을 다루지만, 일반적인 서부개척사나 인디언 전쟁사가 아니다. 이 책의 특별한 질문은 제목 그대로 <왜 감리교인들이 이 학살에 깊이 연루되었는가>이다. 공격을 지휘한 존 밀턴 치빙턴(John M. Chivington)은 감리교 목사였으며, 사건으로 가는 정책적 환경을 만든 콜로라도 준주 지사 존 에번스(John Evans)는 유력한 감리교 평신도였다. 따라서 로버츠가 묻는 것은 두 개인의 악행만이 아니다. <당시 감리교회와 미국 개신교 문화가 이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정신세계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가>라는 더 불편한 질문이다.

이 책은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의 역사자료위원회가 의뢰하여 나온 연구이며, 2012년 교단 총회가 미국 원주민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작업을 시작한 흐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The Literate Quilter 로버츠 자신은 미국 서부사와 변경지대 폭력을 오랫동안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Mighty Ape Australia 그래서 책은 교회가 자기 잘못을 고백하기 위해 만든 단순한 참회문이라기보다는 방대한 신문·편지·군사 기록·의회 조사 자료를 동원하여 책임의 구조를 추적하는 역사연구에 가깝다.

1. 샌드크리크까지 가는 길

1860년대 콜로라도는 세 가지 힘이 충돌하던 공간이었다. 첫째는 백인 정착민과 금광 개발자의 급증이고, 둘째는 철도와 토지 개발이며, 셋째는 샤이엔·아라파호 사람들이 기존 영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 1851년 포트러러미 조약에서 인정되었던 원주민 영토는 1861년 새로운 조약과 미국 정부의 압박 속에서 크게 축소되었다. 남북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백인 사회에서는 <인디언의 공격>에 대한 공포가 빠르게 증폭되었다. NPS

로버츠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실제 충돌과 <모든 원주민은 잠재적 적>이라는 집단적 상상이 뒤섞였다는 사실이다. 일부 샤이엔 전사들이 백인 정착민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콜로라도의 신문과 정치 지도자들은 개별 부족과 집단, 평화파와 전투파를 구별하지 않고 원주민 전체를 하나의 위협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존 에번스가 등장한다. 그는 의사이자 사업가이며 준주 지사였고, 동시에 영향력 있는 감리교 평신도였다. 에번스는 원주민을 일정 지역에 집결시키고, 이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실상 적대세력으로 취급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철도·토지·정착지 개발이라는 경제적 이해와 원주민 정책이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NPS

2. <싸우는 목사> 치빙턴

책의 중심인물은 존 치빙턴이다. 그는 감리교 목사였지만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군인이 되었고, 1862년 글로리에타 패스 전투에서 남군의 보급선을 파괴하는 데 기여하면서 콜로라도의 전쟁영웅이 되었다. 그는 목사·군인·정치적 야심가라는 세 얼굴을 동시에 지녔다. NPS

문제는 그의 기독교적 언어와 인종적 적대가 서로 충돌하기보다 결합했다는 데 있다. 백인 문명과 기독교를 진보의 편으로 보고, 원주민을 그 진보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보는 사고방식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드물지 않았다. 로버츠가 치빙턴을 단순히 정신이상적 살인자로 처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해버리면 샌드크리크가 한 개인의 광기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치빙턴은 당시 미국의 <문명·기독교·개척·백인 우월성>이 극단적으로 결합된 인물이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3. 1864년 11월 29일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샌드크리크에 있던 샤이엔과 아라파호 사람들이 군대를 피해 숨어 있던 적대적 전투부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블랙 케틀(Black Kettle)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미군 및 콜로라도 당국과 평화협상을 벌였고, 군 당국의 지시에 따라 샌드크리크에 진을 치고 있었다. 미군으로부터 일정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NPS

1864년 11월 29일 새벽, 치빙턴이 이끄는 약 675명의 콜로라도 기병대가 이 마을을 공격했다. 오늘날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230명 이상의 샤이엔과 아라파호가 살해되었다고 설명하며, 희생자의 상당수가 여성·어린이·노인이었다고 기록한다. 병사들은 도망가는 사람들을 추격해 사살했고, 시신을 훼손하고 신체 일부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NPS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에도 모든 군인이 이를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라스 소울(Silas Soule) 등 일부 장교들은 공격 참여를 거부했으며 이후 학살을 증언했다. NPS 즉 <1864년의 기준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은 성립하기 어렵다. 동시대인 가운데서도 이것이 범죄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사건 직후 군사위원회와 의회의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치빙턴의 행동은 강하게 비난받았다. 에번스 역시 결국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학살에 책임 있는 군인이나 정부 관리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NPS

4. 그렇다면 <감리교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다.

로버츠는 <치빙턴이 목사였으니 감리교회가 학살했다>라는 단순한 등식을 세우지 않는다. 교단이 공식적으로 학살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며 모든 감리교인이 치빙턴을 지지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질문을 던진다.

<왜 교회는 치빙턴과 에번스 같은 사람들을 배출했으며, 왜 그들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는가?>

당시 미국 감리교는 서부 개척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선교와 국가 확장이 서로 겹쳤고, 원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과 미국식 농업·가족·재산제도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자주 같은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복음전도와 문화적 동화가 구별되지 않았다.

그 결과 <원주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학적 명제와 <그들의 사회와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는 문명론이 아무런 모순 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이 로버츠 책의 가장 무거운 부분이다.

5. 개인의 죄보다 <제도적 죄>

나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성취가 <악한 사람 치빙턴>에서 논의를 멈추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치빙턴만 비난한다면 교회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그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버츠의 질문은 훨씬 불편하다.

<그가 바로 그 시대에 존경받던 목사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영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공동체, 그의 원주민관을 이단적이라고 배척하지 않았던 교회, 서부 팽창을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했던 미국 개신교의 문화 전체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샌드크리크에서 나타난 것은 개인적 도덕 실패뿐 아니라 <교회가 국가·인종·문명과 지나치게 밀착할 때 발생하는 제도적 도덕 실패>였다.

6. 이 책의 한계

다만 이 책에도 한계가 있다.

로버츠는 매우 신중하고 균형을 잡으려 한다. 당시 백인 정착민이 실제로 원주민 공격을 두려워했던 상황, 일부 샤이엔 집단의 전투행위, 남북전쟁 중 국경지역의 불안 등을 자세히 다룬다. 역사학적으로는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결과 독자는 때때로 <너무 많은 설명이 책임의 초점을 흐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 한 서평도 이 책이 지나치게 균형을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Bol.com

더 중요한 한계는 제목이 <Methodists>에 집중하다 보니 샤이엔과 아라파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주변화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샌드크리크 연구는 부족의 구전 전통과 후손들의 기억을 훨씬 적극적으로 역사자료로 사용한다. 국립공원관리청 역시 유적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샤이엔·아라파호 후손들의 구전 증언을 고고학·문헌자료와 함께 활용했다. NPS

따라서 이 책은 <샌드크리크의 완전한 역사>라기보다는 <백인 감리교도들은 어떻게 샌드크리크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분석한 책으로 읽는 것이 좋다.

7. 평론 — 기독교가 폭력에 가담하는 가장 위험한 방식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생각해볼 문제는 기독교가 폭력에 가담할 때 반드시 폭력을 직접 명령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교회가

<우리의 문명은 우월하다>
<우리의 국가 확장은 역사적 진보다>
<다른 민족은 결국 우리처럼 변해야 한다>

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폭력의 도덕적 토대가 이미 마련될 수 있다.

그래서 샌드크리크는 단순한 <기독교인의 위선>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이 민족주의·인종주의·제국적 팽창과 결합할 때 선교와 지배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연합감리교회가 이후 샌드크리크를 자신의 역사적 책임 문제로 공식적으로 다루고 2012년 원주민에 대한 <회개의 행위>를 시행했으며, 2016년 총회에서 샌드크리크 희생자 후손들을 기리는 행사를 가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The United Methodist Church 오늘날 교단 문서도 샌드크리크를 <기독교적 발견의 교리(Doctrine of Discovery)>와 원주민 박탈의 역사 속에서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다. The United Methodist Church

결국 <Massacre at Sand Creek>의 핵심 질문은 1864년에 머물지 않는다.

<선량하다고 자부하는 종교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불의의 일부가 되는가?>

로버츠의 대답은 불편하다. 그들은 반드시 잔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상식을 너무 자연스럽게 신앙의 상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샌드크리크 학살사가면서 동시에 <교회와 제국>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감리교의 자기반성이라는 좁은 범위를 넘어, 근대 기독교가 식민주의와 국가권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상당히 중요한 사례연구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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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합감리교회(UMC)가 샌드크리크 학살에 대해 밟아온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 제기와 초기 결의 (1996년 ~ 2008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내부에서 샌드크리크 학살에 대한 교단의 역사적 책임을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1996년 덴버에서 열린 UMC 총회(General Conference)에서 총회 대의원들은 샌드크리크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초기 수준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어 2000년대 들어 교단 내 원주민 사역 위원회와 역사보존위원회를 중심으로 가해 주동자인 존 치빙턴(안수받은 감리교 순회 목사)과 존 에번스 주지사(유력 감리교 평신도 지도자)의 행적 및 당시 감리교단의 묵인을 체계적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공식 진상 조사 위임 (2012년 총회)

과거사 청산의 결정적 전기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2012년 총회에서 마련되었다.

  • 회개와 치유의 예배: 총회 기간 중 교단 차원에서 원주민들을 향한 과거의 배척과 폭력에 대해 집단적 참회의 예를 올렸다.

  • 전면적 조사 결의: UMC 총회는 학살 150주년(2014년)을 앞두고 교단 산하 역사기록위원회(General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에 샌드크리크 학살과 감리교단의 연루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여 보고서를 발간할 것을 공식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학자 게리 L. 로버츠(Gary L. Roberts) 박사가 책임 연구자로 위촉되어 방대한 교단 사료 조사를 맡게 되었다.

공식 보고서 발표와 교단 총회의 공식 사과 (2016년 포틀랜드 총회)

2016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UMC는 과거사 정리의 공식적인 정점을 맞이했다.

  1. <샌드크리크의 학살> 보고서 상정: 게리 L. 로버츠 교수가 집필한 연구 보고서가 총회에 정식 보고되었다. 보고서는 치빙턴의 직접적 학살 지휘뿐 아니라 에번스 주지사의 방조 및 정책적 책임, 그리고 당시 감리교단이 사건 직후 이를 묵인하고 정당화했던 침묵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증명했다.

  2. 원주민 후손 초대 및 추모 의식: 북부 샤이엔족과 남부 샤이엔·아라파호족 생존자 후손 대표단이 총회 본회의장에 공식 외빈으로 초청되었다.

  3. 교단 최고 지도부의 공식 참회와 사과: 당시 UMC 총감독회(Council of Bishops)를 대표한 지도자들은 수천 명의 대의원 앞에서 감리교회가 복음의 이름으로 원주민 학살과 식민 지배를 방조하고 미화했던 역사적 죄과를 인정하며 원주민 후손들에게 머리 숙여 공식 사과했다. 원주민 대표단 역시 교단의 진실 규명 노력을 인정하며 화해의 뜻을 담은 전통 의식을 진행했다.

화해를 위한 실천적 후속 조치

공식 사과 이후 UMC는 단순한 선언적 반성을 넘어 실질적인 관계 회복 조치를 추진했다.

  • 역사 현장 보존 지원: 콜로라도주 샌드크리크 학살 국립역사유적지 조성 및 관련 연구 기금으로 수만 달러의 교단 재정을 지원했다.

  • 원주민 교육 및 장학 기금 조성: 희생자 후손 부족 청년들의 고등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장학 사업을 개설했다.

  • 연례 평화 달리기(Healing Run) 연대: 생존자 후손들이 매년 주최하는 샌드크리크 치유 달리기 행사에 지역 연회와 교인들이 자원봉사 및 기금 후원으로 동참하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United Methodist report on Sand Creek Massacre

미국 연합감리교회가 샌드크리크 학살에 대한 진상 보고서를 채택하고 공식 사과 절차를 밟았던 당시 교단의 발표와 역사적 배경을 직접 정리한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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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크리크 사건과 교회의 책임에 대해 추가로 알아볼 수 있는 주제들입니다:

노스웨스턴·덴버 대학교의 존 에번스 조사 보고서 비교

학살 명령을 거부한 사일러스 소울 대위의 행적과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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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3

* 한 퀘이커교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다시 생각하다 - YouTube

Moving Closer to a Beloved Community: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ine - YouTube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ine
QuakerSpeak
3,496 views  Nov 8, 2024
QuakerSpeak is a weekly video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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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퀘이커교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다시 생각하다>

(원제: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ine)의 요약과 평론 

요약

  1. 신앙과 초기 인식의 균열 화자인 스티브 체이스(Steve Chase)는 바울이 로마 제국의 중심부에 살던 신자들에게 전한 권면, 즉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성경 구절을 신앙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는다. 그는 10대와 20대 초반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정당한 이유 없는 증오와 반유대주의적 편견으로만 여겼으며,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반유대주의자이거나 자기혐오에 빠진 유대인일 것이라 믿는 순응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의 유대 전통에 헌신하며 키부츠나 현지를 경험하고 돌아온 유대인 친구들의 증언(정착촌 확장, 대규모 구금 등)을 접하며 기존의 확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 역사적 재인식과 팔레스타인의 목소리 경청 체이스는 이스라엘 건국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배상의 성격을 띠었으나, 서구 열강 주도의 분할안을 통해 그 대가를 팔레스타인에 떠넘긴 측면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아가 19세기 후반 시온주의가 정착민 식민주의적 전략을 취했고 초기 다수 유대인에게도 비판받았던 역사, 그리고 1948년 나크바(Nakba) 과정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 500개 이상의 마을 파괴, 팔레스타인 인구의 4분의 3에 달하는 강제 추방의 현실을 40년에 걸쳐 뒤늦게 직면했다. 이를 통해 반유대주의 척결과 팔레스타인의 권리 옹호가 결코 상충하지 않으며,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동일한 투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3. 신앙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대화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집단 처벌과 민간인 학살이 가시화되자, 워싱턴 퀘이커 모임(Friends Meeting of Washington)의 평화사회문제위원회는 <누구에게도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 for anyone)>라는 현수막을 제작했다. 그러나 공동체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이스라엘 혐오자, 하마스 지지자>라는 비난과 <집단학살 부정자, 인종차별적 위선자>라는 반발이 충돌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4. 차이를 좁히는 방식과 집단적 행동 체이스는 상대를 즉각 배척하고 관계를 끊는 문화(calling out) 대신,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며 상대방을 대화로 초대하는 방식(calling in)을 제안한다. 서로에 대한 경청과 사과, 관용을 통해 모임은 주요 퀘이커 단체들의 평화 공동 선언문(A Different Future is Possible)을 채택했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촉구하는 서약(Apartheid-Free Communities Pledge)에 동참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5. 절망 속에서의 행동과 희망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이나 노예제 폐지 운동 역시 전망이 불투명했음에도 도덕적 책무에 따라 이루어졌다. 더 나은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므로, 사랑과 친절로 연대하며 정의를 향해 행동해야 한다. 인간이야말로 신의 손과 마음이 되어 도덕적 궤적을 정의의 방향으로 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발언을 맺는다.

평론

본 텍스트는 종교적 평화주의와 사회정의 담론이 첨예한 지정학적 비극 앞에서 어떻게 실천적 언어로 전환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자기반영적 고백록이다. 체이스의 논의는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명을 넘어, 기득권적 서사에 안주해 온 지적 게으름에 대한 참회와 점진적 각성의 궤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큰 설득력을 지닌다.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반유대주의 척결>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을 대립 구도로 놓지 않고, 보편적 인권과 정의를 향한 단일한 과업으로 통합해 낸 통찰이다. 이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적 교훈인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를 배타적 민족주의의 방패로 사유화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그 범위를 <누구에게도(for anyone)>로 확장함으로써 보편적 인도주의를 회복하려는 시도다.

또한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현대 사회운동과 종교계 전반에 긴요한 실천적 교훈을 던진다. 가자지구 사태 이후 서구 시민사회와 종교 단체 내부에서 흔히 목격된 양극화와 상호 낙인찍기 현상을 정면으로 직시하면서도, 체이스는 교조적 단절 대신 <대화로의 초대(calling in)>라는 퀘이커 특유의 숙의 전통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자신이 40년에 걸쳐 겪었던 지난한 인식 변화의 과정을 거울삼아, 타인의 더딘 이해를 단죄하기보다 질문과 경청을 통해 설득해 나간 접근은 결국 전원 합의를 통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서약 서명이라는 실질적 결실로 이어졌다.

다만 신앙 공동체 내부의 합의 형성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조명한 측면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체이스의 성과는 구성원 간의 기초적인 신뢰와 최소한의 평화주의적 합의가 존재하는 퀘이커 모임 내부였기에 가능했을 수 있으며, 외부의 극단화된 정치 환경이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의 절박한 분노 앞에서도 동일한 점진주의적 설득이 유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정한 질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과 냉소가 지배하는 시대에 <더 나은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는 경고는 깊은 울림을 준다. 수동적인 기구(祈求)에 머물지 않고 <신의 손과 마음>이 되어 현실의 도덕적 궤적을 정의로 견인해야 한다는 그의 결론은, 분쟁의 참상 앞에서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종교적 책임성과 실천적 용기가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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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ine> 

— 한 퀘이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다시 생각하다

이 자료는 2024년 11월 QuakerSpeak가 공개한 약 10분짜리 영상에서 워싱턴 DC의 Friends Meeting of Washington 회원 Steve Chase가 자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회고한 내용이다.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명이라기보다, 한 퀘이커가 자신의 오랜 확신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며 입장을 바꾸어 간 <회심의 기록>에 가깝다. 자료는 그의 개인적 변화, 퀘이커 공동체 내부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을 넘어 행동에 이르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준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 신앙에서 시작하는 정치적 성찰

Chase는 로마서 12장의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바울의 말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가 여기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특정 정치적 결론이 아니라 <conformity>, 곧 주변 사회의 통념에 순응하지 않는 태도다.

그에게 퀘이커 신앙이란 이미 알고 있는 옳은 답을 사회에 선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어온 생각까지 끊임없이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 점은 이 영상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는 “나는 처음부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잘못 보았으며 천천히 배웠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그는 전형적인 친이스라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갖는 불만은 정당성이 거의 없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대는 반유대주의나 이유 없는 증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유대인은 심지어 “자기혐오적 유대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이러한 고백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지워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잘못 생각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현재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변화 가능성을 인정한다.

2. 변화의 계기 — “신뢰하는 유대인 친구들”의 증언

그의 생각을 흔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유대인 친구들이었다.

그가 신뢰하던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키부츠에서 일했거나 이스라엘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들은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옥, 그리고 현지의 불평등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Chase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정의와 평화를 중요시하는 유대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기존의 친이스라엘 서사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그는 이후 시오니즘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상으로 세워졌다”는 단순한 서사다. 그는 이 서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과정과 결합되어 있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초기 시오니즘이 모든 유대인의 당연한 선택도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비현실적이거나 종교적으로 부적절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운동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유대인=시오니스트=이스라엘 국가 지지”라는 자신의 단순한 등식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Chase의 핵심적인 변화는 <유대인을 지지할 것인가 팔레스타인인을 지지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에게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것과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정의의 투쟁”이 된다.

3. Nakba를 알게 된 충격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Nakba에 대해 거의 몰랐다고 고백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과 마을 파괴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히 늦게 접했으며, 이것이 그의 역사 이해를 크게 바꾸었다고 말한다.

자료에서 그는 1947~48년 팔레스타인 사회가 겪은 대규모 추방, 사망, 마을 파괴에 관한 수치를 언급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자료가 학술적 역사서가 아니라 Chase 개인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개별 숫자들은 이 영상 자체에서 검증된 통계라기보다는 그가 공부하면서 받아들인 역사 해석의 일부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인식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그가 1948년을 “유대인의 해방과 국가 건설”이라는 한쪽의 역사로만 이해했다면, 이제 그것을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회의 파괴와 추방”이라는 다른 역사를 포함하는 사건으로 보게 된 것이다.

즉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두 개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4. 2023년 10월 7일 이후 — 퀘이커 공동체도 분열되다

영상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Chase가 자신의 개인적 변화만 이야기하지 않고, 퀘이커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난 심각한 갈등을 그대로 공개한다는 점이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Friends Meeting of Washington의 Peace and Social Concerns Committee는 “Never again for anyone”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배너를 준비했다. 그러나 Meeting 전체가 이를 건물에 게시하는 데 합의하지 못했다.

갈등은 거칠었다.

한쪽에서는 위원회 사람들을 “Israel haters”, “Hamas supporters”라고 불렀고, 반대쪽에서는 그들을 “genocide deniers”, “racist hypocrites”라고 비난했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이 대목은 퀘이커 전통을 생각하면 특히 중요하다.

퀘이커는 평화주의,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신성의 인정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앞에서는 그 공동체조차 상대를 악인으로 규정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려는 양극화에 빠진 것이다.

따라서 이 영상의 주제는 실제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만이 아니다.

<정의를 주장하면서 어떻게 상대방을 비인간화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또 하나의 중심 주제다.

5. “Call out”보다 “Call in”

Chase가 젊은 활동가들에게서 발견한 문제는 정치적 도덕주의다.

자신보다 상황을 “더 명확히”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관계를 끊어버리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그와 다른 접근법을 제안한다.

상대에게 질문하고, 듣고, 그 사람이 다른 관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살피며, 공통점을 찾아 거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call out>보다 <call in>에 가까운 태도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이 대목이 이 영상에서 가장 퀘이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퀘이커의 합의 과정은 상대방을 논쟁에서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더 깊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Chase 역시 자신이 수십 년 동안 변화해 왔다는 사실 때문에 현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변화의 가능성을 허용한다.

6. 퀘이커의 평화주의가 단순한 중립은 아니다

그러나 Chase의 입장은 “양쪽 모두 잘못했으니 중간에 서자”는 식의 중립주의도 아니다.

영상 후반에서 그는 여러 퀘이커 단체들이 채택한 입장과, 이스라엘의 점령·아파르트헤이트·정착민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방향을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결국 그의 Meeting에서도 상당한 갈등과 대화를 거친 뒤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는 그 순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따라서 그의 퀘이커 평화주의는 정치적 무색무취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하나는 구조적 불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불의를 지지한다고 생각되는 사람까지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붙들려는 것이 이 영상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긴장이다.

7. “Beloved Community”와 희망

마지막 부분에서 Chase는 노예제 폐지운동을 예로 든다. 당시 노예제에 반대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들의 생전에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옳기 때문에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태도를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한다.

정의로운 미래가 반드시 온다는 보장이 있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요구하기 때문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새로운 문화의 산파”가 될지, 아니면 “죽어가는 문화의 호스피스 노동자”가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필요한 것은 사랑과 부드러움이며, 신이 대신 행동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도덕적 우주의 호(arc)를 정의 쪽으로 굽히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

평론

이 영상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적 분석의 독창성보다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정직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Chase는 자신을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다”는 고백을 자신의 정치윤리의 토대로 삼는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오늘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즉각적인 도덕적 파문을 선고하지 않는다.

이는 퀘이커 전통의 중요한 장점을 보여준다.

퀘이커의 <Inner Light> 사상은 모든 인간 안에 신성한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을 정치 영역에 적용하면 상대방은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아직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는 인간이 된다. 그런데 Chase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구조적 불의를 침묵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그의 태도는 흔히 생각하는 “평화주의=갈등 회피”와 다르다.

오히려 그는 점령·아파르트헤이트·식민주의라고 자신이 판단한 구조에 분명히 반대하면서도, 그 구조를 지지한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이 자료에는 명백한 한계도 있다.

영상은 약 10분짜리 개인 증언이므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를 균형 있게 설명하는 역사 연구는 아니다. 시오니즘의 다양성, 이스라엘 건국 전후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 유대인 난민 경험, 팔레스타인 정치 내부의 변화, 하마스와 10월 7일 공격의 의미 등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반대로 Nakba와 점령 문제는 Chase의 변화에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강조된다. 따라서 이것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전체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퀘이커 문서>로 읽으면 상당히 의미 있다.

왜냐하면 핵심 질문이 결국 이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확신할 때에도, 나와 다른 사람 안의 인간성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Chase의 답은 “그렇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치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A Quaker Rethinks Israel-Palestine>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관한 짧은 정치 영상이라기보다, <평화주의자가 불의 앞에서 어떻게 비폭력적이면서도 비중립적으로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 현대 퀘이커의 자기성찰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퀘이커 평화증언(Peace Testimony)이 단순히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는 어려운 실천>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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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ing and Editing by Christopher Cuthr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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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ne of the things that meant a lot to me in the Bible was when Paul was writing a letter to the friends and followers of Jesus who were living right in the belly of the beast of the largest empire the world had ever known. And he writes to them because he realizes how corrosive that could be to genuine faithfulness. “Do not conform to this world, but renew your mind so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and is perfect and good in God's sight. 

My name's Steve Chase. My pronouns are he/him, and I'm a member here at Friends Meeting of Washington in the District of Columbia. Through my teens and even into my early twenties, I had a very conformist view of Israel Palestine. I thought there was little or no legitimate grievance that the Palestinian people had against the state of Israel. That Palestinians were only motivated by unprovoked hate and anti-Jewish bigotry. And I believed at the time that anybody who had any criticism of the state of Israel's treatment of Palestinians was either an anti-Semite or a self-hating Jew.

It started shaking things up that, you know, my Jewish friends who I trusted and I knew they were committed to the Jewish prophetic tradition of justice and peace, some had gone and worked on a kibbutz. Some had gone and visited for shorter periods of time, and they came back and were telling me that things are not right there. What's happening with the settlements, what's happening with Palestinians, the mass incarceration of Palestinians, and telling me some of the history of Zionism that I had assumptions about. About, “well, this is purely a liberation movement for Jews and the creation of Israel was sort of reparations for the horrors of the Holocaust. But the thing is, it was done largely by the U.S. and European powers who at that time totally dominated the U.N. when it created the partition plan, and essentially outsourced who was going to pay the reparations.

Jewish Zionism emerged in the late 1800s, and as I've been studying it more and more, and the leadership, it had a very settler colonial strategy, as if it was the only way to fight anti-Semitism. Most Jews at the time when it was first getting together, thought that Zionism was either far fetched, blasphemous or unjust. And so that's slowly began to shift my position, make me more curious. But it took me even several years before I was willing to listen or read Palestinians talking about the situation. And I didn't know any Palestinians at that point. I hadn't really heard about the Nakba. I hadn't heard those stories about 15,000 Palestinians being killed, over 500 Palestinian towns and villages being wiped off the map, and that three quarters of the Palestinian population in 1947 and 48 were expelled from the 78% of Palestine that they had lived in. And so that started a process where I wrestled with myself for four decades, and finally sort of came out publicly with a really different view. We need to fight anti-Semitism and stand up for Palestinian rights, and it's part of the same struggle for making a much better and just world.

Soon after October 7th but when you could see the handwriting on the wall -- that 2.3 million Gazans were going to be collectively punished, there would be mass murder, there would be starvation, there would be disease, there would be total destruct -- the Peace and Social Concerns committee here at Friends meeting of Washington came up with this beautiful banner and then in the middle, in somewhat larger type was “Never again for anyone.” And here we are in the nation's capital and our meeting could not come to agreement that we should hang it on our fence. There were people who called members of the committee, Israel haters and Hamas supporters. And there were other people in the meeting who were mad at those people and calling them genocide deniers and racist hypocrites. 

I've talked with a lot of young activists and they talk about the tension of feeling like there's a cultural norm about calling people out or breaking relationships with people who don't have the clarity that you might. And given my own experience as being somebody who painfully had to learn over time, I think you call people in, you ask elicited questions, you listen to them, ask if they're willing to hear another perspective and you share it. You find common ground and you build on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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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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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Reflecting on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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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8 secondsletter to the friends and followers of Jesus who were living right in the belly
0:1515 secondsof the beast of the largest Empire the world had ever known and he writes to them because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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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0 secondsthis world but renew your mind so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and
0:3838 secondsis perfect and good in God's
Chapter 2: Shifting personal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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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53 secondshere at Friends Meeting of Washington in the district of Colombia through my teens and even into my early 20s I had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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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Bridging divides
6:056 minutes, 5 secondsthere's a cultural norm about calling people out or breaking relationships with people who don't have um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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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7 minutes, 25 secondsweeks ago at business meeting we agreed to sign on to the apart High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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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7 minutes, 42 secondsoccupation aparti and settler Colonials I've seen
7:497 minutes, 49 secondsfirsthand here in our faith community growth that sort of parallels
7:567 minutes, 56 secondsin the collective my personal growth over time um from not seeing things
8:038 minutes, 3 secondsdeeply or wholly and seeing the humanity of everybody involved and I remember in the business meeting when people agreed
Chapter 5: Action a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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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8 minutes, 20 secondsmidst of this horror we were rising to the moment we were being faithful and we were l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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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8 minutes, 54 secondsto a better world and then you act according to that belief it's a self-fulfilling prophecy if you
9:059 minutes, 5 secondsassume as wakers at their best have always done that it is
9:139 minutes, 13 secondspossible we could move closer towards a Beloved Community and we act accordingly
9:229 minutes, 22 secondsit at least keeps the possibilities of the future open in this current moment
9:289 minutes, 28 secondsthat we're in we don't know if we're going to be midwives to a new
9:359 minutes, 35 secondsculture or we're going to be hospice workers to the death of our culture but
9:429 minutes, 42 secondseither way what is required of us love
9:499 minutes, 49 secondstenderness helping each other seeing each other out and it's not waiting
9:559 minutes, 55 secondsaround and you know oh God will automatically do this for
10:0210 minutes, 2 secondsus we are the heart and hands of the Divine in this world and it is us who
10:1010 minutes, 10 secondshave the possibility to bend the moral Arc of the universe towards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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