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9

초기불교 | 박광준 | 알라딘

[전자책] 초기불교 | 박광준 | 알라딘

[eBook] 초기불교 
박광준 (지은이)민족사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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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종이책 25,200원
전자책정가
17,000원


종이책 페이지수 : 446쪽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초기불교-붓다의 근본 가르침과 네 가지 쟁점》, 이 책은 초기불교를 만들어 낸 사회‧문화적 바탕과 역사적 배경을 논리적 ‧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그 교리에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명료화함으로써 초기불교에 관한 새로운 논의 마당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집필 ‧ 출간되었다.

저자는 초기불교와 관련된 많은 물음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는데, 이는 많은 논란거리를 포함하고 있다. 또 인간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해 가면서 전에 없이 평화를 느끼게 된 저자의 체험담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 체험담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는 저자가 인도에서 찍은 사진 46점의 컬러 사진도 수록되었다. 초기불교의 사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사진들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본문 내용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그때그때 사진과 해설을 참고하면 본문의 내용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5

서장: 초기불교를 어떻게 탐구할 것인가?

1. 초기불교에의 접근·21
비교종교적 관점·21 비교경전적 관점·24
경전 활용과 한역 경전 문제·28
2. 초기불교에 관련된 네 가지 쟁점·29
쟁점 ①: 깨달음의 조건은 무엇인가?·29
쟁점 ②: ‘육년고행설’이라는 오해는 어떻게 고착화되었는가?·31
쟁점 ③: 붓다는 윤회를 어떻게 보았는가?·33
쟁점 ④: 붓다 업론과 바라문 업론은 어떻게 다른가?·35
3. 초기불교 관련 용어·37
불교·37 한국 역사에서 본 불교라는 용어·38
불교의 시작·40 초기불교란?·43
4. 초기불교 경전과 참고문헌·46
초기불교 경전이란: 남전과 북전·46
초기불교 경전 번역본과 참고문헌·50

제1부: 연기론적 관점에서 본 붓다와 불교 경전

제1장 붓다 탄생의 땅, 고대 인도·57

1. 인도의 역사·문화적 풍토·57
붓다 사상을 연기론적으로 보기·57
인도의 종교 및 사상들과 공유한 핵심 용어들·59
불교 경전의 문화적 해석·61 인도의 역사·문화적 풍토·64
2. 아리안, 베다 및 우파니샤드·66
아리안의 이동·66 ‘베다’란?·68
바라문 출가자·70 우파니샤드·73
3. 바라문교와 인간 차별의 사회문화·76
바라문계급과 ‘진정한 바라문’·76 인간 차별의 풍토: 카스트제도·79
수행자로서의 바라문·81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바라문교·84
4. 베다질서에의 도전·88
이단설에 대한 관용성·88 해탈사상의 대두·90
슈라마나의 기본 수행법: 고행과 명상·92
베다에 도전한 사상가들·95 자이나교·97
5. 불교 탄생의 정치·경제적 배경·100
정치적 배경의 중요성·100 신분제 동요와 공화제·103
농업발전과 상인계급의 대두·105

제2장 인간 붓다와 초기불교·108

1. 인간 붓다·108
길 위의 사람, 붓다·108 완전히 건넌 사람, 붓다·112
깨달음과 전법(傳法)의 삶·115 법(다르마)·118 승가와 계율·120
2. 초기불교 경전 성립과정·123
경전 결집의 경위·123 암송에 의한 법의 전승·125
근본분열과 2차 결집·127 비중앙집권 전통과 승가의 다양성·130
1차 결집 이후 경전 편집·133 부파불교를 거쳐서 전해진 경전·135
3. 초기경전 시기 구분과 경전 내용 차이: 출가와 입멸·137
초기경전 시기 구분과 그 필요성·137 초기경전 시기 구분의 방법·139
출가 동기에 관하여: 설화와 초기경전·141
최고층 경전으로 본 출가 동기·144
붓다 입멸에 관련된 경전과 그 해석·147 춘다의 공양에 관하여·151
4. 초기불교의 특성·156
인간 평등의 승가·158 불가촉천민 및 여성의 수용·160
교리의 합리성과 객관성·164 현실주의 내지 현장주의·166
도덕적 행위론, 그리고 전통과 개혁의 조화·169

제3장 경전의 중국 전파와 한역·172

1. 설법 기록과 대기설법·172
대기설법이 담긴 경전·172 엄격한 계급사회와 설법·174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설법·178 선택적 설법·180
질문만 있고 대답이 없는 경우: 무기(無記)·183

2. 불교의 중국 전파·188
경전 언어와 전파·188 불교의 중국 전파·191
인도와의 문화교류와 중국 독자적 발전·193
3. 중국 전파를 전후한 인도불교: 대승불교의 발흥·196
인도불교의 역사·196
불교 교리는 왜 이론화되었는가: 내부경쟁과 타종교와의 경쟁·198
대승불교와 밀교·202 인도에서의 불교 소멸과 그 시사·206
재가신자의 성격 변화·209
4. 경전 한역과 한역 경전의 문제·211
인도 경전의 한역: 용어 문제·212
불교에 대한 중국의 파격적 예우·215
한문 번역의 과정과 절차·217 가부장적 내용의 주입·221
지의(智顗) 교판론의 악영향·223 한반도불교에의 영향·226

제2부: 초기불교에 관한 네 가지 쟁점

제4장 깨달음의 조건 및 의미·231
1. 붓다 및 깨달음의 조건·231
붓다의 조건 ①: 깨달음·231
붓다의 조건 ②: 자비와 완전한 인격·233
깨달음의 조건 ①: 철학적 지식과 소양·236
깨달음의 조건 ②: 태만 및 바르지 않은 수행방법 멈추기·240
2. 연기법과 그 사회성·244
연기법의 의의·244 깨달음의 사회성·247
연기론적 신체관: 오온가화합·250
3. 문제 해결 방법 발견으로서의 깨달음: 팔정도와 사성제·253
문제 해결 방법의 발견·253 완전한 깨달음·255
사성제·257 달라이 라마의 사성제론·259 팔정도·261
4. 신앙이자 수행방법으로서의 팔정도·263
수행의 전제와 실천수행·263 신앙으로서의 정견·266

제5장 ‘육년고행설’에 관하여·270

1. 고행과 수행에 관한 두 가지 쟁점·270
육년고행설의 오해·270 계율이 의미하는 것·273
2. 고행의 의미와 붓다의 고행관·277
고행의 내용과 관련 개념·277 초기경전에 나타난 고행·280
붓다가 행한 고행·283 극단적 고행을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287
육년고행설은 왜 고착화되었는가?·290
3. 붓다의 신체관과 수행·293
붓다의 신체관·293 유물론‘적’ 신체관·295
신체는 바른 수행의 조건·297
4. ‘악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깨달음 이후의 수행·300
악마는 왜 등장하는가·300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 붓다 만년에 등장하는 악마·302

제6장 윤회에 관하여·306
1. 윤회의 의미와 관점·306
윤회적 사고·306 붓다의 삶을 도외시한 윤회 논의·308
윤회의 개념·310 경전상의 첫 용례·313
2. 바라문교의 윤회관·315
오화이도설·315 인도의 죽음 문화·317 아트만이란 무엇인가·320
3. 무아설과 비아설·324
삼법인과 무아·324 초기경전의 비아·326
붓다는 왜 무아를 명언하지 않았는가?·330
버려야 할 자기와 추구해야 할 자기·332
4. 붓다의 윤회관·334
대승불교 및 밀교의 입장·334 초기경전의 윤회관·338
붓다 윤회관의 추정·340 윤회를 수용한다는 것·343
윤회에 대한 무기가 의미하는 것·346

제7장 업론과 ‘인-연-과’·349

1. 업의 정의와 그 구속력·349
바라문교 업론·349 붓다가 본 업의 주체·351
카스트를 설명하다·353
2. 붓다 업론의 특징·356
보편적 규범을 지킨다는 것·356 이숙인 이숙과의 논리구조·359
과거업을 수용한다는 것: 업의 소멸·361
3. 붓다 업론의 구조와 시사점·362
‘인-연-과’(因-緣-果)·362 한 열차사고로 본 업론·364
현재 중심의 업론·366 자기 책임론과 『신 없는 사회』의 시사점·368
4. 문화의 관점에서 본 업·372
문화로서의 생활 습관·372 공업과 문화전승·375

종장: 붓다의 길 따라 걷는다는 것

1. 자신(自信)을 가진 삶·386
2. 인간과 사회를 연기적으로 보기·392
3. 오직 법의 길만을 걷기·398
4. 멈추기에 도전하기·403
5. 타인의 고통 해소에서 가치 찾기·409
6. 제념(諦念)하기·414

• 찾아보기·419
• 사진과 해설·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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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 초기불교란 붓다 재세기(在世期)를 포함하여, 붓다 입멸 후 약 100~200년까지 존재했던 모습의 불교이다. 인도불교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순으로 발전했으므로, 초기불교란 부파불교 혹은 대승불교에 대한 용어이며 한국에서는 주로 대승불교의 상대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파불교는 불법 해석을 둘러싸고 승가가 분열되면서 생겨난 불교이므로 초기불교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며, 대승불교는 그 후 다시 200년 이상 흐른 뒤에 생겨난 불교이다. 접기
P. 6 초기불교를 논의한다는 것은 초기불교 사상에 관하여 논자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논의란 경전에 설해진 내용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선행연구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국에는 방대한 초기경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누구나 손쉽게 읽을 수 있고, 불자들의 식견도 예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다. 불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불교에 대한 자신들만의 입장과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진 지적 호기심은 경전 내용 소개만으로 충족될 리가 없다. 독자들은 자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불교를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접기
P. 22 붓다는 젊은 시절 베다나 우파니샤드 철학 등 당시 주류적 인도사상을 학습했으므로, 29세에 출가하여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높은 수준의 철학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제1장) 고대 인도의 교육체제를 보면, 붓다와 같은 크샤트리아계급(왕족, 무사계급) 자녀들은 바라문을 교사로 초빙하여 학습시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더보기
P. 23 붓다 사상의 특징을 논하기 위해서는 베다사상이나 자이나교사상 등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특징이라는 용어 자체가 비교를 전제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 불교 교리인 사성제(제4장), 즉 고성제·집성제·멸성제·멸도성제(滅道聖諦) 중에서 그 첫 번째, ‘삶이 고’[苦, 두카(du?kha)]라는 진리는 당시 인도사상계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던 인식이었다. 고를 멸하는 길, 즉 해탈이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출가하여 사문(슈라마나)이 되는 것이 마치 사회운동처럼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가 불교의 핵심적 교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성제에 관련된 모든 것이 붓다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다. 붓다가 설한 사성제의 독창성은, 다른 사상이나 다른 종교 교리와 비교했을 때 비로소 분명해지고, 나아가 그 위대성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그 점을 탐구하여 밝히려 하지 않고, 고에 관한 교리 전부를 붓다의 독창적 교의로 간주하고, 기존 논의만을 되풀이하는 안이한 태도야말로 불교적 사성제 탐구의 걸림돌이다. 접기
P. 31 내가 보기에, 오늘날 동아시아불교 교리 중에서, 가장 사실과 멀어져 있는 것이 육년고행설이다. 그것은 붓다가 출가 후 6년간 고행했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고행을 포기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설명이다. 이 설에 의하면, 고행이란 향락(애욕)과 함께 양극단의 하나이며, 오로지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P. 103~104 붓다의 출신 부족인 석가족은 코살라국에 의해 붓다 재세 시에 멸망했다. 설화에 의하면 출가 전 고타마는 온갖 사치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전하지만, 그것은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것이다. 위의 16국에 석가족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붓다 스스로가 석가족을 코살라국에 복속하고 있는 부족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붓다 부친인 정반왕(淨飯王)은 부족장 혹은 지방호족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데이비스는 이미 140여 년 전의 저작에서 고대 인도에서 왕이란 칭호는 명문집안에 대한 존칭이었다고 밝히면서 고타마는 왕자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고, 지금까지 그의 견해에 대한 반증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는 국왕이라는 칭호는 경전이나 인도 문서에 반드시 대왕(大王)으로 표기됨을 상기시켰다. 정반왕 가문 인물들에는 이름에 반(飯: 쌀, 밥을 의미)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출신지역은 주로 쌀농사 지역이었다고 추측된다. 이 지역은 비옥한 평원이다.[사진 2-3] 고타마는 정반왕의 아들로서 석가족 지도자로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석가족도 집단적인 통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부족 존망의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는 정치적 상황은 붓다 출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접기
P. 108 붓다는 인간 붓다이며 역사적 붓다이다. 즉 가공인물도 초인적 인물도 아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젊은 날에는 고뇌했고,인간의 몸으로 깨달음에 도전하여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깨달음의 지혜를 수많은 고통 속 중생을 구제했고, 인간의 몸으로 입멸했다. 그는 길 위의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45년 동안 우안거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유행(遊行)했다. 설법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걸어 다가갔다. 접기
P. 157 인간 붓다의 가르침인 초기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행복(해탈)을 추구하는 실천윤리에 가까웠다. 불교학자 중에는 인간 붓다를 ‘철저한 종교비판자’였다고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바라문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종교 그 자체를 초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하여, 붓다 추종자들은 종교를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종교로서의 불교를 신봉하지 않더라도 붓다의 세계관과 대화방법, 사물의 인식방법 그 자체에 대한 존경이 폭넓게 보이는 것이다.
붓다는 행복이란 절대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설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불교는 철저한 자기 책임주의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 이외의 누구도 자기를 해탈시켜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초기불교는 인간이란 자신의 해탈을 가로막는 어떤 장벽도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해탈을 향하여 정진하도록 하는 것이 중생에 대한 인간 붓다의 관심사였다. 접기
P. 228 오늘날 비구니 차별 문제에 대하여, 한문 경전을 방패 삼아 그 차별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이 한국 현실이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나 보일 수 있는 안쓰럽고도 부끄러운 소치이다. 여성 차별의 정당성을 기어이 경전에서 찾고자 하는 집요함은, 그 내용 몇 구절이, 여성을 차별해 온 자신의 죄를 없애 줄 면죄부라고 믿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인권문제나 사회적 약자에 관련된 문제일수록, 인간 평등이라는 붓다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접기
P. 403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바른 행위란 법의 길을 걷는 것과 계를 지키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계율이란 멈추기의 도전이다. 늘 하던 것을 멈추는 것이 도전의 본질이며, 특히 붓다가 보여 준 도전이 그 전형이었다. 도전은 행동이자 실천이며, 멈춤 또한 행동이자 실천이다. 붓다법에 따른다는 것, 불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붓다 가르침의 본질이 실천에 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에게 계속 들려주는 습관을 몸에 붙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붓다 가르침을 그때그때의 행동 선택에 반영하려고 의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붓다 설법을 먼 세계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나, 경전에 새겨져 있는 인쇄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귀에 대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습관에 의해서 비로소 얻어진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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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광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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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통영에서 출생했다.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붓쿄佛教대학에서 페이비안사회주의사상 연구로 사회학박사 학위(1990)를 받았다. 12년간 신라대학교(전 부산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2년 이후 붓쿄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 (중국)시베이西北대학 객좌교수, (중국)옌볜延邊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그리고 동국대학교(서울)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복지사상사를 연구했으나 2000년경부터 주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정책(역사) 비교연구, 그리고 불교사상, 유교와 법가 등 동양사상을 복지사상과 접목시키는 연구를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다. 지금의 연구과제는 개항 이후 대한민국 건국까지의 빈곤정책 역사인데, 특히 빈곤과 실업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이동에 관심이 많고, 이 책도 그 일환이다.
취미는 사진, 바둑 등이며 특히 동아시아의 노거수老巨樹를 찾아보고 사진에 담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은퇴 후에는 제주도에서 살려고 한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사회복지의 사상과 역사』(양서원, 2002), 『붓다의 삶과 사회복지』(한길사, 2010. 청호불교문화상학술상.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한국사회복지역사론』(양서원, 2013), 『조선왕조의 빈곤정책: 중국‧일본과 어떻게 달랐나?』(문사철, 2018. 2019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초기불교: 붓다의 근본가르침과 네 가지 쟁점』(민족사, 2020. 2021년 세종도서) 등이 있다.
일본에서 출간된 것으로는 『社会福祉の思想と歴史: 魔女裁判から福祉国家の成立まで』(ミネルヴァ書房, 2004), 『老いる東アジアへの取り組み』(九州大学出版会, 2006. 共著), 『ブッダの福祉思想』(法蔵館, 2013. 붓쿄대학학술상), 『朝鮮王朝の貧困政策: 日中韓比較研究に視点から』(明石書店, 2020. 사회정책학회학술상)이 있다. 중국에서 출간된 것으로는 『東亜:人口少子高齢化与経済社会可持続発展』(社会科学文献出版社, 北京, 2012. 共著), 『中日韓人口老齢化与老年人問題』(社会科学文献出版社, 北京, 2014. 共著), 「東亜地区社会保障比較研究的意義和課題: 有関養老保険的問題」(『社会保障研究』 2005. 12. 中国人民大学), 「公共年金制度建立的国家間学習: 以東亜為例」(『社会保障研究』 2009. 3. 中国人民大学)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여자정신대, 그 기억과 진실>,<초기불교>,<조선왕조의 빈곤정책>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간 붓다와 초기불교에서 배우는
지혜로운 삶에 대하여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초기불교-붓다의 근본 가르침과 네 가지 쟁점》, 이 책은 초기불교를 만들어 낸 사회‧문화적 바탕과 역사적 배경을 논리적 ‧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그 교리에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명료화함으로써 초기불교에 관한 새로운 논의 마당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집필 ‧ 출간되었다.
저자는 초기불교와 관련된 많은 물음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는데, 이는 많은 논란거리를 포함하고 있다. 또 인간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해 가면서 전에 없이 평화를 느끼게 된 저자의 체험담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 체험담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는 저자가 인도에서 찍은 사진 46점의 컬러 사진도 수록되었다. 초기불교의 사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사진들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본문 내용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그때그때 사진과 해설을 참고하면 본문의 내용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초기불교와 관련한 네 가지 쟁점

이 책은 초기불교와 관련하여 학계에서 아직까지 합의되지 않은 핵심 쟁점들 네 가지를 정리한 뒤 그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데 내용 절반을 할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쟁점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쟁점 ①: 깨달음의 조건은 무엇인가?
쟁점 ②: ‘육년고행설’이라는 오해는 어떻게 고착화되었는가?
쟁점 ③: 붓다는 윤회를 어떻게 보았는가?
쟁점 ④: 붓다 업론과 바라문 업론은 어떻게 다른가?

각각의 쟁점과 관련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쟁점 ①: 깨달음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붓다 깨달음이 첫째, 지식과 소양, 둘째, 멈추기의 도전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 조건 위에서, 선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서 깨달음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붓다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이었다. 완전하다는 의미는 자신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 깨달음이었던 것과 동시에, 중생의 고통 문제 해결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깨달음의 조건뿐만 아니라 깨달음 이후의 수행에 관한 의미 해석과도 관련된다.
저자가 이 문제를 초기불교 쟁점 중 첫째 항목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한국불교에 ‘깨달음지상주의’라는 현상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깨달음지상주의로부터의 출가’ 또한 붓다 깨달음에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히 한다.
저자는 붓다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깨달음에는 선정 이전에 필요조건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문제를 초기불교의 첫 번째 쟁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쟁점 ②: ‘육년고행설’이라는 오해는 어떻게 고착화되었는가?>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동아시아불교 교리 중에서 가장 사실과 멀어져 있는 것이 바로 육년고행설이다. 그것은 붓다가 출가 후 6년간 고행했고 그것이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고행을 포기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설명이다. 이 설에 의하면, 고행이란 향락(애욕)과 함께 양극단의 하나이며, 오로지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초기불교에 관한 매우 그릇된 이해임을 강조한다. 붓다의 깨달음은 고행을 포함한 6년간 수행으로 얻어진 것이며, 그 바탕에 철학적 소양과 지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년고행설이 마치 붓다법인 양 오전(誤傳)된 것은 초기경전이 고행주의를 부정하는 부파불교를 통하여 전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게다가 고행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하여 경전 분석을 통해서 철저하게 규명하려 하지 않고, 한 번 정형화된 설이라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연구풍토 역시 육년고행설을 오랫동안 고착화시켰다고 본다.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이 책에서 붓다가 고행을 어떻게 설했는가를 밝히고,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고행 개념을 자이나교 및 바라문교와 비교 관점에서 고찰한다. 또한 난행(難行), 범행(梵行), 두타행(頭陀行), 사의(四依) 등 고행과 관련된 개념들을 비교 검토한다. 나아가, 붓다가 고행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음 직전에 극단적 고행을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쟁점 ③: 붓다는 윤회를 어떻게 보았는가?>

붓다는 윤회에 관련된 질문에 무기(無記: 질문에 침묵하는 것)로 일관했다. 그러므로 붓다 윤회관을 탐구하는 것은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론해 내는 작업이다. 저자는 붓다가 윤회가 없다는 말을 입에 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침묵했다고 본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려고 했을 수도 있으나, 붓다는 윤회를 믿는 사람에게도 불법을 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출가자든 재가자든 윤회를 믿는 것은 개인적 자유이지만, 붓다가 윤회를 설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임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초기불교가 아트만을 인정했느냐 아니냐에 관해서는, 무아설과 비아(非我)설을 초기경전에 기초하여 가능한 한 자세히 검토한다.

<쟁점 ④: 붓다 업론과 바라문 업론은 어떻게 다른가?>

이 책에서 업론을 초기불교의 쟁점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붓다 업론이 인(因: 직접 원인)과 과(果: 결과) 사이에 연(緣)이라는 간접원인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은 사회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교리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이다. 붓다 업론은 ‘인-연-과’ 체계로 되어 있다. 붓다는 인-과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거나 그 관계를 규명하려 하지 말라고 설했다.
저자는 붓다 업론은 ‘인-과’가 아닌 ‘이숙인-이숙과’의 관계임을 분명히 하고, 그것은 ‘현재’ 중심의 업론이며 한마디로 자기 책임론임을 강조한다. 붓다 업론이 바라문교 업론과 다른 점, 붓다 업론이 가진 희망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기불교의 다섯 가지 특징

초기불교는 붓다 재세기(在世期)를 포함하여, 붓다 입멸 후 약 100~200년까지 존재했던 모습의 불교를 가리킨다. 인도불교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순으로 발전했다. 부파불교는 불법 해석을 둘러싸고 승가가 분열하면서 생겨난 불교이므로 초기불교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며, 대승불교는 그 후 다시 200년 이상 흐른 뒤에 생겨난 불교이다.
《초기불교-붓다의 근본 가르침과 네 가지 쟁점》, 이 책은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초기불교에 주목한다. 저자는 오늘날 불교가 가진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초기불교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평등주의이다. 붓다는 행복이란 절대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계급과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해탈을 향하여 정진하도록 하는 것이 중생에 대한 인간 붓다의 관심사였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는 인간 평등주의를 실천한다.

둘째는, 초기불교의 교리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붓다 설법이 주로 고통을 가진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지만, 눈앞의 고통 해소를 위하여 초자연적인 것이나 주술, 기도(무엇인가를 실현하기 위한 기도를 말함), 마력 등을 동원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셋째는, 초기불교가 현실주의 내지 현장주의라는 점이다. 붓다의 관심은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 문제였다. 그래서 문제를 가진 이의 상태나 신분계급, 종교적 배경에 따라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이 달랐다. 설법도 대중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붓다가 설한 열반도 사후세계가 아니라 이 생에서의 행복이었다.

넷째는, 초기불교의 도덕적 행위의 실천, 즉 윤리성이다. 붓다는 ‘바라문이란 출생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정해진다’라는 말은 거듭 되풀이하였다. 인간은 신분이나 성별 등에 관계없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두 가지 생활태도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노력으로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고,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지 않는 태도였다. 두 번째는, 허황된 믿음이나 미신에 사로잡힌 나머지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해탈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수행을 거듭하는 태도였다.

다섯 번째는, 초기불교가 지닌 전통과 개혁의 조화이다. 초기불교는 반드시 필요한 개혁에 힘을 집중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저자는 붓다가 인간 고통의 원천인 카스트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했지만,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운 현실 역시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제안하는 용어, 제념(諦念)의 태도이다.
저자는 포기와 좌절의 의미를 내포한 ‘체념’이란 말 대신 ‘제념’이라고 쓰길 제안한다. 그리고 한정된 시간 내에는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다른 일들은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원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마음이 곧 제(諦)의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사성제(四聖諦)란 바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진리일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 책은 초기불교를 고대 인도의 역사문화 및 사회사상과 가능한 한 비교 관점에서 기술함으로써 그 독자성을 분명히 밝힌다. 저자는 붓다 사상을 소개할 때, 그것이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를 가능한 한 자세히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또 이 책에서는 초기경전 중에서 오래된 경전과 후대의 경전으로 다시 구분하거나, 혹은 하나의 초기경전 안에서 최초에 만들어진 부분과 후대에 추가된 부분으로 구분해 내어, 양자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초기불교의 특징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이로써 초기경전을 시기 구분해야지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를 밝힌다.
초기불교에 관해서는 이미 국내외 많은 선행연구들이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 선행연구는 물론, 일찍부터 초기불교를 연구한 유럽 선행연구, 남방불교 선행연구, 일본 선행연구들을 두루 참조함으로써 논의의 객관성을 높였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라 걷는 길

붓다는 인간 붓다이며 역사적 붓다이다. 즉 가공인물도 초인적 인물도 아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젊은 날에는 고뇌했고, 인간의 몸으로 깨달음에 도전하여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고 깨달음의 지혜를 수많은 고통 속 중생을 구제했고, 인간의 몸으로 입멸했다. 그는 길 위의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45년 동안 우안거를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유행(遊行)했다. 설법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걸어 다가갔다.
- 108쪽

한 종교의 교조(敎祖)를 인간으로 보는 것과 초인간적 존재로 보는 것 사이에는 세계관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초기불교는 ‘인간 붓다’의 가르침이다. 인간 붓다가 만난 개별 인간의 고통 문제 해소를 위한 설법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 바로 초기경전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설법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가르침 내용이 다르고 교리나 설법이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다. 심지어 한 경전 안에도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내용이 섞여 있어서 해석의 여지도 많다.
이에 반해 오늘날 한국불교가 표방하는 대승불교는 신앙을 중시하여, 붓다를 신격화된 존재로 숭상한다. 교리도 체계적이다. 이미 신격화된 존재로서의 붓다는 모든 유혹을 초월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 그리는 붓다는 정각자이면서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을 누구나 따라갈 수가 있다.

저자는 이런 인간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가며 전에 없이 평화를 느끼게 된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그리고 불자는 붓다를 단지 숭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붓다처럼 질문하고, 생각하고, 해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자임을 분명히 한다.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을 끊임없이 붓다에게 묻고, 자기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붓다의 삶을 살펴보고, 또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 노력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불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 418쪽

붓다의 가르침은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인간 붓다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기보다,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를 더 바랄 것이다.
저자는 붓다가 법을 어떻게 실생활에 반영하고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 거라 말하며, 불교에서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독자들도 붓다를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 어떤 선택에 앞서 보다 평화로운 선택이 어느 쪽인가 하고 붓다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 물어보는 습관을 몸에 붙이려고 노력함으로써 각자의 삶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초기불교-붓다의 근본 가르침과 네 가지 쟁점》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이 책의 제1부는 초기불교의 사상적 토대를 가능한 한 폭넓게 검토한다.
붓다 사상을 고대 인도의 정치적·경제적·사상적 풍토와 연기적 관계로 파악하여 그 특징을 밝힌다. 여기에는 초기불교 경전에 관한 논의가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다. 초기불교 경전을 최초기 경전과 후대에 추가된 경전으로 다시 분류하여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인도 경전이 한역되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했으며 한역 경전의 문제와 한계도 지적했다.

둘째, 이 책의 제2부에서는 초기불교에 관련된 쟁점을 4가지로 유형화하여 제시하고 그 각각을 하나의 장으로 만들어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깨달음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육년고행설이라는 오해는 어떻게 정착되었는가, 인간 붓다는 윤회를 어떻게 보았는가, 붓다 업론은 바라문 업론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네 가지가 그 쟁점들이다. 이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불교계나 불교인, 불교학계로부터 이론(異論)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제기와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다.

셋째, 종장이다.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인간 붓다를 만난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붓다가 제시한 길을 따라 걸어 보니, 전에 없이 평화를 느낀다는 체험담이다. 저자의 붓다의 가르침이 어떻게 각자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초기불교의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실천성임을 강조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불교 실천담을 소개한다.

넷째, 사진과 해설이다. 이 책의 끝에는 인간 붓다와 관련된 사진 46점이 실려 있다. 초기불교의 사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사진들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약 10년 전 저자가 직접 인도 현지에서 담은 것들인데, 본문 내용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그때그때 사진과 해설을 참고하면 본문의 내용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2025/08/17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A New Translation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A New Translation eBook : Zweig, Stefan, Ferousse, Liam: Amazon.com.au: Kindle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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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A New Translation Kindle Edition
by Stefan Zweig (Author), Liam Ferousse (Translator) Format: Kindle Edition


4.3 4.3 out of 5 stars (12)


Stefan Zweig’s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first published in 1932, is one of the most compelling and psychologically nuanced biographies of the doomed French queen. Renowned for his ability to bring historical figures to life, Zweig offers an intimate and deeply human portrayal of Marie Antoinette, tracing her transformation from a carefree Austrian archduchess to the tragic symbol of the French Revolution.

Unlike traditional biographies that focus solely on political events, Zweig’s approach is psychological and novelistic, making the book as gripping as a work of fiction. He explores Marie Antoinette’s emotional world, her initial naïveté and frivolity at the court of Versailles, her lavish lifestyle, and her slow awakening to the realities of her position as queen. As France plunges into revolutionary chaos, Zweig examines how Marie Antoinette evolves from a sheltered, pleasure-seeking woman into a figure of resilience and dignity in the face of her impending doom.

Drawing from an extensive range of historical sources, Zweig vividly recreates the opulence of the Bourbon court, the growing unrest of the French people, and the dramatic downfall of the monarchy. He neither condemns nor glorifies Marie Antoinette, but instead presents her as a flawed, complex individual caught in the merciless tide of history. His narrative is filled with emotional depth, historical insight, and a keen understanding of human psychology, making this one of the most enduring biographies of the queen.

This new edition preserves Zweig’s masterful storytelling, offering readers a deeply immersive experience into one of history’s most infamous lives. Whether you are drawn to royal history, the French Revolution, or simply a story of human strength and transformation, Marie Antoinette remains an essential and fascinating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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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Freeman
5.0 out of 5 stars Marie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7 August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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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teresting biography about a larger than life figure in Fren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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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ie Smith
5.0 out of 5 stars Book condition.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9 Ma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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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was in great condition and I look forward to read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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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
3.0 out of 5 stars Small Print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0 Ma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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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criticism of the writing, but the print is really small. Unless you have superb vision, it’ll be hard to read due to the small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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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y Henry
1.0 out of 5 stars Tiniest print I’ve ever seen!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9 Jul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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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 was so small that it gave me a headache each time I read it for 15 min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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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6

이병철 -내가 먼저 돌아가야 하는/-아는 것과 알 수 없음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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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내가 먼저 돌아가야 하는/

안개가 자욱하다. 산자락 마을이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연지에도 안개가 가까이 내려와 있다. 연꽃과 안개로 흐릿한 풍경을 함께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안개 속의 몽환적 풍경이 '알 수 없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금 내가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죽음과 관련한 것들이다. 삶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어서 더욱 그러리라 싶다. 죽음과 그후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최근에 아내와 나눈 주된 대화도 이런 주제들이다. 
오늘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을 산문시 형식을 빌러 함께 나눈다.
지금 연지에는 연지 가득 피어있던 그 연꽃들 거의 다 졌다.

<내가 먼저 돌아가야 하는>

태어났으니,
언젠가 돌아가야 하리.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니
돌아감은 분명한 일이지만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는 아직 나는 알지 못한다.
죽음이 태어난 순서를 따르는 것도 아니니
누가 먼저,
언제, 어떤 모양으로 가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그래도 자식보다 부모가 먼저 가야 하는 것은
자식은 부모의 삶을 이어갈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해 온 두 사람이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훨씬 짧음을 절감하며
누가 먼저 떠나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미리 순서를 정하고 마음을 그리 모아간다면,
떠나고 보내는 그 순간을 조금은 더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까닭이다.
아내와 함께 동의한 기준은
오래 사는 것보다
마지막 날까지 맑은 정신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떠난 뒤
남은 사람이 홀로 견뎌낼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당신보다 내가 먼저 가야 한다고 진즉부터 그리 말해왔던 것은
내가 더 오래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홀로 살아갈 능력도, 자신도 나에겐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한 샹을 백수로 지내며 여태껏 살아온 것도
생계를 모두 아내에게 기대어 가능했던 일.
그런 아내가 먼저 간다면
이제 어디에 기대어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과 내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은
이제 알만큼 살았다.
나와 분리된 세상을 구한답시고 나대던 것이 한때의 미망이었음을 
내 곁에 있는 이들, 지금 함께하는 이들과의 경험이 곧 나의 세계라는 것도.
그러니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내가 남는다면,
그것은 함께하는 세계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짐을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살아 있을 때도 내 삶의 무게를 대부분 
아내에게 짊어지게 했는데,
죽음마저 아내에게 맡긴다는 것이 염치없음은 안다.
그럼에도 이런 부탁을 다시 하는 것은
이 또한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인연,
함께 짊어진 그 카르마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밖에
언젠가, 그 이별의 날이 올 것이다.
그날까지 서두르지 않고 남은 길을 함께 가다가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
 내 마지막 인사말이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닿기를.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때 나를 보내는 당신의 얼굴이
슬픔을 넘어 밝을 수 있기를.
그래야 먼저 떠나는 내 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 있고,
그래야 남은 당신도 나머지 삶을 
더 충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
내가 아내보다 먼저 떠나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내 일인 까닭이며,
내가 먼저 돌아가야 하는 그 또렷한 이유이다.
(25. 08.14)
이상권
저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저의 장례식을 이렇게 치르라고 했습니다. "나의 죽음은 축복이다. 인간으로서의 고된 삶을 무사히 마무리했으니 기쁜 일이다. 슬픈 일이 아니니 가능하다면 축제로 손님들을 반겨라. 생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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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프 내외와 검돌 화백의 ‘오늘 화실’에 다녀오다 /

어제 사천의 강달프·엘리네와 점심을 함께한 뒤, 거기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산청 남사 예담촌 ‘오늘 화실’의 검돌 화백을 만났다. 지난번 몽골생태영성순례단 일행들 가운데  몇 사람들의 번개팅인 셈이다.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몽골 순례를 함께 다녀온 뒤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다가, 더위를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터라 사천에 간 김에 강달프 내외와 검돌 화백을 함께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남사 예담촌은 아름다운 황토 흙벽 담장과 함께 오랜 선비마을의 역사와 자취가 잘 보존된, 유서 깊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검돌 화백이 서울에서 내려와 이 마을에 둥지를 튼 지도 올해로 18년째다.
마침 검돌 화백이 지난번 몽골 순례 때 스케치해 온 그림을 대형 작품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인 ‘홉스골 호수의 은하수’가 완성되어 우리가 가장 먼저 감상하는 멋진 기회를 얻었다.
작업 공간인 오늘 화실의 큰 벽면에 걸린 그림은 크기가 대단했다. 가로 550cm, 세로 180cm에 이르는 대작이었다. 그 넓은 화폭에 홉스골 호수 위로 은하수가 빛나는 풍경이 장엄하게 담겨 있었다.
시베리아 낙엽송이 우뚝 선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르와 모닥불, 그리고 어둠 속 호수 위로 쏟아질 듯 반짝이는 수많은 별 사이에 빛의 강처럼 흐르는 은하수는, 다시 홉스골의 밤을 마주하는 듯한 감동을 주었다. 
거장의 솜씨로 재현된 그 풍경 속에 모두 감탄과 그리움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검돌 화백은 이 작업에 매달리느라 더위도 잊고 지냈다고 한다. 이번 몽골 순례에서 담아 온 풍경이 수십 점에 이르니, 그것을 모두 대형 화폭에 옮기려면 아마도 2~3년은 걸릴 듯하다. 대작들이 기대된다.
이런 형태의 작업을 통한 전시는 이미 인도전과 아프리카전도 한 바 있으니, 그림이 완성되면 한·몽 문화교류 차원에서도 뜻깊은 전시가 되리라 싶다.
검돌 화백의 작품이 보관된 수장고에도 들러 그동안 해 온 작품들도 함께 감상했다. 대부분 대형 작품 위주였는데, 이들 모두는 검돌 화백이 독창적으로 정립한 ‘생활풍수화’의 결과물이다. 모든 작품은 직접 현장을 발로 답사하고 실측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화실 옆에는 부인 수인(水仁) 여사가 운영하는 아트 카페 ‘지금이 꽃자리’가 있다. 정갈하게 가꾼 대나무 숲과 어우러진 이 카페는 주인의 맑고 환한 미소처럼 아담하고 포근하다. 여름 풍경도 좋지만, 대숲에 눈이 내리면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분홍빛이 황홀한 시원한 오미자차와 고급 아이스크림 등을 푸짐하게 대접받고, 손수 만든 딸기잼도 큰 병으로 한 병씩 얻어왔다. 12월 사천 엘리 댁 송년 파티 때, 이곳 예담촌이 멀지 않으니 카페 ‘오늘이 꽃자리’에도 들러 따뜻한 대추차와 집안 감나무에서 딴 곶감도 맛볼 수 있으리라 싶다.
숲마루재에 돌아오니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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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알 수 없음의 사이에서/

아침에도 빗소리를 듣는다. 지난번 큰비가 내린 뒤로 비가 연일 오락가락한다. 마치 장마 때와 같다. 한창 불볕더위가 쏟아져야 할 8월 중순에 장마철처럼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정상적인 날씨는 아니다. 이제 8월 장마나 가을 장마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기후대로 바뀐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기상 변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알 수 없다.
계속 내린 비로 연지에도 물이 불어 출입을 금지한다는 줄을 쳐 놓았다. 연지 둘레를 돌면서 비에 젖어 있는 연꽃을 만난다. 비 때문인가, 활짝 피어 있는 연꽃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꽃은 빗속에서도 피어남을 멈추지 않는다고 노래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꽃도 피어남을 멈추고, 날이 환하게 개이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제대로 수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더욱 자주 드는 생각이다. 나이 들수록, 세상에 대한 나름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갈수록 잘 모르겠다는, 모른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든다.
젊은 날의 그 확신에 찬 생각들,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가 명확하게 분별되던 그 판단들이,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경계가 흐릿해지고 모호해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확신에 찬 주장을 할수록 내 내면에서는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더 커진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내가 안다고 하는 것도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그렇다고 여기는 하나의 생각일 것이다. 생각은 사실 자체가 아니다.
어쩌면 ‘안다’는 그 생각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더 제한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다는 그 생각에 묶여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알 수 없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 서서 내가 안다는 그 짧고 좁은 생각에 묶여 세상의 무한함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우리가 안다는 것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그 확신, 이른바 확증편향이다. 그 확증편향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광기로 치달은 숱한 역사를 우리는 보아왔다.
올해 도반들과의 공부 모임 주제는 ‘죽음’이다. 죽음을 알기 위해서는 삶을 먼저 알아야 하고, 그 삶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삶의 주체인 존재, 곧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죽음이 있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죽음이 무엇인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삶이 없다면 죽음 또한 없을 것이기에, 잘 사는 것이 곧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지에는 날마다 꽃이 피고 진다. 피었기에 지는 것이다. 이 빗속에서도 내 앞에 맑고 고운 자태로 나투어 있는 이 연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연밥만 남긴 뒤 저버린 그 꽃은 어디로 갔는가. 저 연꽃의 한 생과 우리네 한 생이 다르지 않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꽃 피어 있다가 어떻게 지고 있는가. 나의 이번 생이 지고 나면 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가. 무아(無我)와 윤회(輪回)를 이야기해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생각일 뿐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게는 불안이 아니라 하나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미지, 곧 알 수 없음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나 자신의 존재를 포함하여 알 수 없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 생각, 이 자각이 빗속의 연꽃을 더 깊게 만나게 한다.
고맙다는 그 생각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2025.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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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연지에서, 
머무름과 스침의 사이/

연지에는 이미 피어 있는 연꽃보다 꽃잎은 다 지고 연밥만 매달고 있는 꽃대가 더 많다. 그래도 피고 있는 연꽃들도 아직 제법 남아 있으니 고맙다. 그중에는 미색 연꽃도 포함되어 있다. 미색 연꽃은 지금이 한창인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홍련 사이에 뒤늦게 피고 있는 이 미색련에 더 눈길이 간다. 아마도 연지의 백련을 볼 수 없어 더 그런 것 같다.
어찌할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그 자태를 담는다. 오늘 내가 만나는 이 연꽃을 내일이면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지지 않고 피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 그 자태는 오늘 내 눈길을 끌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미루지 않기, 오늘을 산다는 것은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 만큼 살아왔다. 이미 남아 있는 시간이 미루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온몸으로 체감하기 때문이다.
어찌 미룰 수 없는 것이 시간뿐일까.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사랑한다는 그 말 또한 미룰 수 없는 것이리라.
홍련 사이에 피어 있는 미색련에 눈길을 두고 그 자태를 담으면서, 그 곁에 있는 홍련들은 그냥 스쳐 지난다. 내 관심과 주의가 지금 미색 연꽃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두르듯이 미색련에 주의를 보내다가 문득 한 생각이 스민다. 지금 미색련에만 주의를 보내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는 것은 미색 연꽃을 편애하는 것이고, 스쳐 지나는 다른 연꽃들은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인가 하는 새삼스러운 물음이다.
내가 아침마다 들르는 이 연지에는 아직도 많은 연꽃들이 피어 있다. 그 연꽃들 가운데 내가 발길을 멈추고 눈길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담는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모든 연꽃을 한꺼번에 만나거나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눈길을 맞출 수 있는 것은 한번에 연꽃 한 송이거나 또는 그 한 장면일 뿐이다. 이때 내 주의가 가닿는 것, 또는 내 주의를 가닿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아침에 내가 미색 연꽃에 더 관심을 두고 그 자태를 사진으로 담은 것은 내 의도가 먼저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미색 연꽃 가운데서도 내 주의를 이끌고 그 모습을 담게 한 것은 내 의도만이 아닌, 어떤 끌림 때문이다. 그 연꽃이 내 주의를 그리 이끈 것이다. 그것을 부름과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마음이 없이는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는 길에서 우연히 눈길이 가닿은 한 송이 들꽃이 주의를 이끌었을 때, 그것은 그것을 보고자 하는 내 마음에 앞서 내 주의를 이끌게 한 그 꽃의 부름, 그 이끔이 먼저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을 이끌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만남이란 상호의 작용, 서로 부르고 응답하는 동시적 작용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싶다.
내가 이 연지에 먼저 피었던 한 송이 꽃을 오랫도록 오롯이 바라보았던 것처럼, 오늘 아침에 내 눈길이 가닿지 않았던 다른 연꽃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관심에 따라 먼저 주의가 가닿거나, 이끌림의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싶다. 내 감성 또는 정서가 그렇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리라. 그것이 지금 내 정체성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관심과 무관심, 또는 차이와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도 무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을 보탠다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세상일에 의연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 때문이다. 연못에서 피어나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을 외면하지는 않되, 애쓰지는 않을 수 있으면 좋갰다. 
이 연지의 연꽃들이 피었다가 미련 없이 지는 것처럼, 연꽃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걸림없는 바람처럼 내 눈길과 내 마음도 그렇게 가벼울 수 있기를.
세상이 잘 되기를 기도하되,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기를.
오늘 아침 연지에서 떠오른 두서없는 생각이다. 
(2025.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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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 아침 연지에서,
비에 젖은 연꽃/

미리 고백하자면, 어제 아침 연지에서도 나는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전날 밤에 비가 내렸고, 아침에도 간간이 빗발이 돋아 비에 젖은 연지의 풍경이 평소와 사뭇 달라 그 풍경과 그 속의 연꽃 자태를 담고자 하는 내 욕심을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냥 연꽃과 마주하는 일은 다른 날로 미루고, 비에 젖어 빗방울을 매단 연꽃 자태를 스마트폰으로 담기로 했다.
‘청호우기(晴好雨奇)’라 했던가. 환하게 눈부신 날보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나 안개 낀 날의 풍경이 내게는 더욱 깊게 다가온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  더 해지는 까닭이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연꽃과 연잎의 자태가 더 맑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미리 피었다가 꽃잎을 닫지 못한 연꽃들은 잎이 젖거나 축 늘어져 있지만, 이제 막 피어나거나 전날 피었다가 꽃잎을 다시 닫은 연꽃들은 부푼 꽃봉오리 째로 빗방울을 매달고 있다. 그 빗방울들이 더없이 맑고 영롱하다. 내게는 그 물방울들이 모두 보석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말처럼, 연꽃과 연잎은 물에 젖지 않는다. 그래서 빗속에서도 잠시 빗방울을 매달고 있다가, 적절한 무게가 되면 그냥 떨어지게 한다. 연꽃이나 연잎이 폭우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붙잡지 않고 놓아주기 때문이다.
문득 ‘방하착(放下着)’이 떠오른다. 잠시 소유하되, 그것을 내 것이라 움켜쥐거나 매달리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 비에 젖으면서도 맑게 피어나는 연꽃과 연잎에게서 그런 삶의 이치를 본다.
소유한다는 것은 동시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불필요한 것을 소유함으로써 도리어 그것에 소유당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미 넘치도록 많이 가졌음에도, 무언가를 더 가져야만 한다는 끝없는 그 허기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 내 앞에서 비에 젖으면서도 환하게 피어나는 연꽃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이란 시귀가 떠오른다. 바람이 자유로운 것도 그가 만난 것들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비에 젖은, 비에 젖으면서도 해맑게 피어나는 연꽃을 담아 나눌 수 있어 고마운 아침이다.
(2025.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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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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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미완성의 걸작/
오늘 아침 페북에서 가슴 뛰는 글을 한 편을 읽었다. 동검도에서 작은 예배소를 짓고 기도하고 사색하며 그림을 그리고 창작활동을 하시는 조광호신부님의 글이다.
평소 내 생각도 신부님의 이 지론과 비슷한데, 그런 생각을 더 깊고 넓게 정리해주시어 공감하고 감사하는 머음으로 여기에 나눈다. 신부님의 기도소이자 작업장인 작고 아름다운 채플은 강화도 갯펄의 끝자락에 있다. 신부님의 작품인 스테인글라스 창으로 꾸며진 이 작은 예배소를 썰물 때나 해넘이 때 방문한다면 더욱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으리라.

Kwangho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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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인간의 초월성과
창조럭의 실험
프로로그
모든 사람이 예술가인 이유를
당신이 알게 된다면
오늘 당신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 순간 만이라도
그 어느 고정관념의 끌림으로 부터
잠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당신은 기가막힌 화가가 될수있다
여기서
자유로움이란— 단순히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 본연의 흐름과 일치하는 상태, 우주의 창조적 리듬에 몸을 맡기는 상태다.
당신의 설레임이 깃든
이 간절한 바람 속에
모든 창조의 비밀이 숨어있다.
요셉 보이스는 바로 이 자유로움을 전제로하여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선언했다
기술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고정관념과 두려움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
진정성을 지키고 마음 가는 대로, 형편대로 캔버스에 그릴 수 있는 용기의 문제다
캔버스 앞에 선 당신. 붓을 들었지만 무엇을 그려야할지 모르는 설레임 속에 당신은 바로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준비상태"에서 텅빈 자유로움으로
순수한 지성으로 신을 닮은 작은 우주가 된다
하나: 자유로움이 열어주는 양자적 공간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준다. 관찰되기 전까지 입자는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파동함수라고 불리는 '가능성의 바다' 속에서 무한한 잠재태로 머물러 있다가, 관찰되는 순간 비로소 하나의 확정된 현실로 붕괴한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자유로운 관찰'이다. 선입견이나 기대에 사로잡힌 관찰자는 이미 결과를 제한한다. 진정 자유로운 의식만이 무한한 가능성을 현실로 불러올 수 있다.
당신의 캔버스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붓질을 하기 전까지, 그 하얀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모든 색채가, 모든 형태가, 모든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잠재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저 사람처럼 그려야 한다"는 끌림에 사로잡힌다면, 그 순간 무한한 가능성은 제한된 몇 가지 선택지로 축소된다.
그러나 그 어느 고정관념의 묶임이나 끌림으로부터 잠시라도 자유로워진다면?
그때 당신의 붓질은 양자적 창조 행위가 된다.
예측 불가능하지만 완전히 진실한,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인 그 무언가가 캔버스에 출현한다.
진정성을 지키고 마음 가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바로 이 양자적 자유로움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계산된 기교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진동을 캔버스에 전이시키는 것.
둘: 물감이 흐르는 불확정성의 원리
물감을 부어도 되고, 흘려도 되고, 붓으로 그어도 된다. 이 자유로움 속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우리는 정확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감 한 방울이 중력을 따라 캔버스를 타고 흘러내린다. 당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패턴을 만들며. 그 순간 당신은 통제를 포기하고 흐름과 협력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창작이다.
샤르댕이 말한 '의식의 진화' 과정과 닮아있다. 물질이 생명으로, 생명이 의식으로, 의식이 사랑으로 진화해가는 그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방향성 있는 흐름. 당신의 붓질도 그와 같은 진화의 한 부분이다.
실수라고 생각했던 번짐이 그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되기도 한다. 지우려다가 남겨진 자국이 전체 작품의 영혼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닌 창조적 지혜의 발현이다.
셋: 사랑이라는 창조의 원동력
왜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가? 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리학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안다. 무언가를 창조할 때 느끼는 그 기쁨, 그 충만함을.
샤르댕은 사랑을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보았다. 중력이 물질을 끌어당기듯, 사랑은 의식을 끌어당기고 진화시킨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이 사랑의 인력장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신이 캔버스를 마주하는 순간, 당신은 세상과 사랑에 빠진다. 색채와 사랑에 빠지고, 형태와 사랑에 빠지고, 그 과정 자체와 사랑에 빠진다. 기술이 없어도 상관없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어머니가 아이를 그리는 서툰 그림에도, 연인이 서로를 위해 그린 어설픈 초상화에도, 그 안에는 측정할 수 없지만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 바로 사랑이라는 창조의 원동력이.
넷: 진정성이라는 양자 얽힘
진정성을 지키며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양자 얽힘을 인정하는 것이다. 거리와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입자들처럼, 당신의 마음과 캔버스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기법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 유명한 화가의 스타일을 모방할 필요도 없다.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진동, 당신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떨림—그것이 바로 당신의 예술 언어다.
이것은 개인주의적 아집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적 연결감의 표현이다. 당신이 진정성을 지킬 때, 당신은 우주 전체의 창조적 흐름과 일치하게 된다. 당신을 통해 우주가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형편대로 그리면 된다는 말의 깊은 의미가 여기에 있다. 당신의 현재 상황, 당신의 한계, 당신의 부족함까지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을 포착하는 것.
다섯: 모든 사람이 예술가인 우주적 이유
요셉 보이스의 선언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는 이제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의식을 가진 모든 존재는 관찰자이고, 관찰자는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이미 창조적 행위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관찰되지 않은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아침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 당신은 그 하늘을 창조하고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바라보는 그 순간, 당신은 그 아름다움을 존재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샤르댕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의 의미다. 우주는 물질에서 시작해서 의식으로, 의식에서 사랑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그 진화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모든 창조적 행위, 모든 사랑의 표현, 모든 예술적 시도가 우주 진화의 한 부분이다.
붓을 든 당신, 노래를 부르는 당신, 사랑하는 당신—모든 순간에 당신은 예술가다. 우주가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여섯: 불완전함의 성스러운 아름다움
당신의 그림이 완벽하지 않다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완벽함은 죽음과 같다.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는, 변화할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 반면 불완전함은 생명이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살아있는 에너지.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 미학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깨진 그릇을 금으로 이어붙이는 킨츠기(金継ぎ)처럼, 상처와 결함이 오히려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서툰 붓질, 당신의 어색한 색채 선택—그 모든 것이 당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다.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이것이다. 불확정성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라는 것.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다면 새로운 것은 태어날 수 없다. 불확실함 속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창조가 가능하다.
당신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실수와 우연, 의도하지 않은 효과들이 오히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때, 당신의 예술은 살아 숨쉬게 된다.
일곱: 기도하는 붓질, 명상하는 색채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도와 같다. 말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존재 전체로 드리는 기도. 붓을 든 손의 떨림, 물감을 선택하는 순간의 직감, 캔버스와 대화하는 침묵의 시간—모든 것이 명상이고 기도다.
이때 당신은 에고의 경계를 넘어선다.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무언가가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 이것이 바로 영성 체험이다. 종교적 신앙과는 별개로, 존재 자체와의 깊은 만남.
샤르댕이 말한 '우주의 내면화' 과정이 바로 이것이다. 물질 세계가 의식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그 인식이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과정. 당신의 모든 붓질이 이 우주적 과정의 일부다.
색채 하나하나가 우주의 진동이고, 선 하나하나가 존재의 호흡이다. 당신이 진정성을 지키며 마음 가는 대로 그릴 때, 당신은 우주와 하나가 된다.
에필로그: 영원히 미완성인 걸작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전문 화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창조적 존재라는 뜻이다. 사랑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당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붓질을 하며, 예상치 못한 색채를 더하며,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깜짝 놀랄 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미완성 작품.
그리고 그 미완성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상태다.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있고, 언제나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상태.
캔버스 앞에 선 당신, 붓을 든 당신, 진정성을 지키며 마음 가는 대로 그리는 당신—당신은 이미 예술가다. 우주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고유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려라.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당신의 진정성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우주의 창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감을 부어도 좋고, 흘려도 좋고, 붓으로 그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기법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랑하는 마음, 경외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그린 한 점, 한 선이 138억 년 우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간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 파울 클레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요셉 보이스의 정신을 계승하며



Namgok Lee
아름다운 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사르댕을 이렇게 만납니다
나의 캔버스, 붓, 물감을 생각합니다.
삶이 곧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