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5

알라딘: 군서치요 群書治要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은이) 2014

알라딘: 군서치요


군서치요 - 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샤오샹젠 (지은이)
,

김성동,조경희 (옮긴이)싱긋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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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국의 고전 연구자인 샤오샹젠蕭祥劍이 풀어엮은 <군서치요심득群書治要心得>을 번역한 책. <군서치요>는 당왕조 초년에 태종 이세민(599~649)의 명으로 편찬된 책이다. 중요한 역사문헌인 <군서치요>는 중국의 전통적 국정운영 사상을 계승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통치에 대한 갖가지 유익한 경험을 참고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군서치요>가 내용상 워낙 방대한데다 원문이 고문古文으로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무에 바쁜 현대의 지도자나 간부가 그 책의 정수를 깊이 있게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편역자 샤오샹젠은 <군서치요> 원전을 숙독한 바탕 위에서 이 책의 편찬과 그 전파된 역사를 소개하고, <군서치요> 속의 통치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의 수많은 경전의 핵심 내용을 모아놓은 <군서치요> 원전은 공교롭게도 중국 대륙에서 오랜 기간 사라졌다가 이웃 일본에 전해진 책이 나중에 발견되어 다시 중국에 전해지는 우여곡절을 거친 뒤, 최근 중국의 정.재계와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은 <군서치요> 원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리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목차


추천사 리더의 역사읽기는 『군서치요』로 시작해야 한다

서장 『군서치요』란 어떤 책인가?
제1장 천도를 본받고 천인합일을 이룬다(效法天道, 天人合一) -『군서치요』의 천도天道 사상
1. 하늘을 본받아 행하는 이가 천자이다
2. 하늘의 도를 실천하고 하늘의 덕을 실행한다
3. 하늘을 따르면 길하고 하늘을 어기면 불길하다
4. 뛰어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군주의 존재만 알 뿐이다

제2장 수신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정치를 한다(修身爲本, 爲政以德) -『군서치요』의 덕치德治 사상
1. 하늘은 공정무사하여 오직 덕이 높은 이를 도울 뿐이다
2.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 지극한 덕의 도이다
3. 덕으로 정치를 하고 효를 덕의 근본으로 삼는다
4. 덕이 그 자리에 맞지 않으면 그보다 더 상서롭지 못함이 없다

제3장 어진 이는 남을 사랑하고 의로운 이는 도리를 따른다(仁者愛人, 義者循理) -『군서치요』의 인의仁義 사상
1. 어진 이는 남을 사랑하고 의로운 이는 도리를 따른다
2. 도로 몸을 닦으며 인으로 도를 닦는다
3. 치국의 도는 인의를 귀하게 여긴다
4. 인을 잃은 뒤에 의를 중시하게 되고 의로운 자는 이치를 따른다
5. 인을 근본으로 삼고 의로써 다스린다

제4장 군주를 평안하게 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방법으로 예만큼 좋은 것이 없다(安上治民, 莫善於禮) -『군서치요』의 예치禮治 사상
1. 사람으로서 예가 없다면 어찌 일찍 죽지 않겠는가
2. 예는 하늘을 본보기로 삼아 생겨났다
3. 도덕과 인의는 예가 없으면 이룰 수 없다
4. 나라를 다스리며 예를 잃게 되면 혼란이 찾아온다

제5장 낡은 풍속을 고치는 방법으로 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移風易俗, 莫善於樂) -『군서치요』의 악치樂治 사상
1. 낡은 풍속을 고치는 방법으로 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2. 음성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
3. 음악을 제정하는 근본은 사람을 선으로 이끄는 것이다
4. 몸을 닦고 백성을 가르침에 좋아하는 음악을 신중히 해야 한다

제6장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의 군주가 됨에 교육과 학문을 우선으로 삼는다(建國君民, 敎學爲先) -『군서치요』의 교육사상
1.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의 군주가 됨에 교육과 학문을 우선으로 삼는다
2.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은 잔혹한 박해이다
3. 가르침의 도는 효를 핵심으로 한다
4. 네 가지 교육, 삼대 핵심
5. 삼공은 교육을 실시하여 천자를 가르친다

제7장 현명하고 유능한 이를 임용하며 사악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한다(任人唯賢, 去邪遠?) -『군서치요』의 용인用人 사상
1. 정사의 핵심은 인재를 얻는 데 있다
2. 현명한 인재의 선발과 임용이 정치의 근본이다
3. 간절하게 현인을 찾는 것이 명군이 되는 길이다
4. 현명한 인재를 추천할 수 있는 이가 현명한 신하이다
5. 현명한 인재의 식별은 덕을 우선으로 한다
6. 인재를 임용함에 끝까지 믿고 맡기며 간사한 자를 제거함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7. 간사한 자를 제거하고 아첨꾼을 멀리하며 출중한 인재를 임용해야 한다

제8장 덕치를 위주로 하며 법치로 보조한다(德治爲主, 法治爲輔) -『군서치요』의 치정治政 사상
1. 도덕 교화를 중시하면 반드시 다스려지고, 오로지 법에만 맡기면 반드시 망한다
2.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되지만, 법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죄는 피하지만 부끄러움을 모른다
3. 덕을 근본으로 삼고 법으로 보조한다
4. 도덕 교화를 행한 뒤에야 비로소 법을 쓸 수 있다
5. 좋은 제도라도 반드시 현명한 인재가 필요하다
6. 형법은 신중하게 운용하며, 상세히 조사하고 신중하게 판결한다
7.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적은 더욱 늘어난다
8. 유가를 중시하고 법가를 경시하며,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제9장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민생을 중시한다(以民爲本, 注重民生) -『군서치요』의 민본民本 사상
1.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정된다
2.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한다
3. 정치의 도는 민심을 따르는 데 있다
4. 치국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풍족하게 해야 한다
5. 풍족하게 한 후에 도덕을 가르치며, 백성들에게 믿음을 얻는다
6. 민의를 듣고 민심을 알아야 한다
7.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당연한 이치가 있으니,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제10장 근본을 중시하고 말단을 경시하며 사치를 버리고 검약을 받든다(重本輕末, 去奢崇儉) -『군서치요』의 경제사상
1. 때에 맞춰 농업에 힘쓰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2. 근본을 등지고 말단을 좇는 것은 천하의 대재난이다
3. 나라에는 네 부류의 백성이 있으니, 농민을 중시하고 상인을 경시한다
4. 백성에게 근본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각각 그 직무에 힘쓴다
5. 사치를 근절하고 지나친 기교를 금한다

제11장 전쟁을 멈추고 문교에 힘쓰며 덕으로 변방의 백성을 보듬는다(偃武修文, 以德懷遠) -『군서치요』의 군사외교사상
1. 덕을 닦아 변방의 백성을 보듬고, 문文으로써 교화한다
2.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며, 전쟁을 잊으면 필시 위험하다
3. 폭군을 제거하고 반란을 토벌하며, 인의를 마음에 품는다
4. 군대를 부리는 요체는 민심을 얻는 데 있다
5. 장수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하며, 최고 병법은 책략으로 토벌하는 것이다

제12장 겸허하게 간언을 받아들이고 충언으로 직간한다(虛心納諫, 忠言直諫) -『군서치요』의 납간納諫 사상
1. 간언을 따르면 현명해지고, 간언을 막으면 어지러워진다
2. 바른말하는 신하는 가까이하고, 아첨하는 신하는 멀리한다
3. 신하의 간언은 지극히 어려우니, 열린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4. 국가가 흥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간언하는 신하이다
5. 단지 따르기만 하면 충이 아니요, 직간할 수 있어야 현명한 것이다
6. 신하가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큰 시름이다

제13장 공적에 따라 관리를 심사하며 온 정성을 모아 정치에 힘쓴다(考功按績, 勵精圖治) -『군서치요』의 이치吏治 사상
1. 엄격하게 심사하고, 업적에 의해 상벌을 시행한다
2. 기구를 간소화하고 관리를 줄인다
3. 효성과 청렴을 중시하고, 능력에 의해 관직을 수여한다
4. 백성을 가까이하는 관리는 자주 옮기면 안 된다
5. 덕으로써 작위를 주고 공에 따라 봉록을 준다
6. 봉록을 중시하고 상벌을 공평하게 한다

제14장 정무를 근면하게 수행하며 덕으로 재해를 없앤다(勤修政事, 以德化災) -『군서치요』의 재난대처사상
1. 사람이 도덕규범을 위반하면 변란이 생기고, 하늘이 사계절의 운행을 어기면 재해가 발생한다
2. 사람이 윤리도덕을 어기는 것이 자연재해와 이상현상의 근원이다
3. 예를 따르고 덕을 닦으면 재난을 없앨 수 있다
4. 미신을 타파하고, 덕을 닦아 재앙을 피한다
5. 살육을 줄이고 천하를 구제한다

제15장 선을 숭상하면 창성하고 악을 좇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崇善卽昌, 從惡必報) -『군서치요』의 인과因果 사상
1. 착한 일을 하면 착한 보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2. 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후손까지 복이 미친다
3. 온갖 악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4. 인과를 분명하게 이해하면, 화와 복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제16장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처음처럼 끝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居安思危, 愼終如始) -『군서치요』의 우환憂患 사상
1. 평안할 때 위험을 잊지 않고, 존재할 때 멸망할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2. 끝까지 처음처럼 신중히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3. 온종일 근면하게 일하며,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한다
4. 공을 쌓고 업적을 이루면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

종장 『군서치요』를 어떻게 학습하고 실천할 것인가?
1. 천고의 학문을 진실하게 공경해야 한다
2. 옛것을 믿고 좋아하며, 이해와 실천을 병행한다
3. 옛것을 지금의 거울로 삼고, 옛것을 현실에 맞게 적용한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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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태종은 영민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언변이 뛰어났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른 나이에 종군하여 독서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는 수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창업의 어려움과 수성의 험난함을 깊이 이해하였으며, 재위 기간에 뭇 신하들에게 정책의 실패에 대해 간언하고 비평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해 책...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샤오샹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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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성 출신으로, 십 년 넘게 출판업에 종사하였으며, 중국 전통문화를 접한 뒤로 『군서치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런 노력에 따라 『군서치요고역群書治要考譯』과 『군서치요역주群書治要譯註』의 출간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홍콩과 동남아 등지에서 중국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대중강연을 활발하게 펼치는 한편,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도 중국 고전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작 : <군서치요>

김성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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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베이징대학교 고급진수과정을 수료했다. 연세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중국어 번역서로 『職業規劃』 『職場定位』가 있으며, 『인문과학중국어강독』 『한의학중국어강독』 『중국희곡사』(공역) 『중국철학산책』(편역) 등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다.


최근작 : <영화 열두 이야기>,<인간 열두 이야기>,<이과장 비즈니스 중국어회화 1> … 총 13종 (모두보기)

조경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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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홍콩 중문대학IASP과정을 수료했다. 호원대학교와 열린사이버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과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강의했다. 중국어 번역서로 『韓國文化嚮導』 『讓我們富起來』 『深林之屋』 『醫道』 등이 있고, 『항주』 『장춘』 『마오의 독서생활』 『자본의 전략』(공역) 등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으며, 중국어 교재와 중국 현대문학 분야의 논문이 다수 있다.

최근작 : <항주>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리더에게 필요한 인문정신은 이 책 한 권에 있다
당태종의 명으로 당대 최고의 신하들이 편찬한 통치술의 정수!

전쟁터를 누비다 독서가 부족했던 당태종, 역대 왕조의 제왕학 편찬을 지시하다
이 책은 중국의 고전 『군서치요群書治要』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으로, 중국의 고전 연구자인 샤오샹젠蕭祥劍이 풀어엮은 『군서치요심득群書治要心得』을 번역한 것이다. 『군서치요』는 당왕조 초년에 태종 이세민(599~649)의 명으로 편찬된 책이다. 16세에 부친을 따라 종군한 당태종은 10여 년간 군무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27세에 황제에 즉위한 뒤에는 전쟁을 멈추고 문교에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혼란에 빠진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에 유념하였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태종은 영민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언변이 뛰어났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른 나이에 종군하여 독서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는 수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창업의 어려움과 수성의 험난함을 깊이 이해하였으며, 재위 기간 동안 뭇 신하들에게 정책의 실패에 대해 간언하고 비평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당대 최고의 신하인 위징, 우세남, 소덕언 등에게 명을 내려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하도록 하였다. 완성된 책의 이름은 『군서치요』. 역대 왕조의 사료를 집록하고, 경서.사서.제자백가서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관련된 핵심 내용을 선별하였다. 책이 완성되고 난 뒤, 위징은 서문에서 “현금의 사회에 사용되어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하며,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방략을 제시할 수 있는” 치세의 보전寶典이라고 하였다.
태종은 위징이 올린 『군서치요』에 답하는 친필조서에서 “짐은 어려서 무력을 숭상하고 학업에 정진하지 않아, 선왕의 도는 아득하기가 바다를 건너는 듯했다. 편찬된 이 책을 읽으면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니, 짐이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정치를 펴는 데 옛일을 고찰하여 유익한 적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정무를 처리하면서 의혹이 없어졌으니, 그 수고로움이 참으로 크지 아니한가!”라고 치하했다.

이 책을 태자와 제후왕에게 나눠주어 정치의 귀감으로 삼도록 하라!
당태종은 이 책이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요점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여기고, 특별히 10여 질을 필사하도록 명하여 태자와 제후왕에게 나누어주고 정치의 귀감으로 삼도록 하였다. 태종은 자신이 날마다 열독하였으며, 그 열독한 느낌을 총결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으며, 풍속과 교화의 근본을 알게 되고, 정치의 근원을 보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비교해보더라도 이 책이 치세에 관한 훨씬 폭넓고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무렵에는 조판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은 탓에 송왕조 초기에 이미 실전되었기 때문으로, 『송사』에도 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견당사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고, 이로써 일본 역대 천황과 대신들의 정치 규범이 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일본인이 필사한 『군서치요』 전질이 가나자와문고金澤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그럼으로써 이 책이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다. 그뒤 청왕조 건륭 60년에 일본인이 이 책을 중국에 전해왔고, 상하이 상무인서관의 사부총간과 타이완에서 각각 이 판본을 바탕으로 영인하여 출판하였다.

고경금감古鏡今鑒,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비추다
중요한 역사문헌인 『군서치요』는 중국의 전통적 국정운영 사상을 계승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통치에 대한 갖가지 유익한 경험을 참고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어떻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가르쳐주는 바가 크다. 최근에 전 중국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시중쉰(시진핑 현 주석의 부친)은 『군서치요고역』이라는 책에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비추다’라는 뜻의 ‘고경금감古鏡今鑒’이라는 제사를 붙여, 지도자급 간부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중시하며 학습하도록 장려했다. 또한 원자바오 전 총리는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특별히 『군서치요.창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학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군서치요』 원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리한 안내서
『군서치요』가 내용상 워낙 방대한데다 원문이 고문古文으로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무에 바쁜 현대의 지도자나 간부가 그 책의 정수를 깊이 있게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편역자 샤오샹젠은 『군서치요』 원전을 숙독한 바탕 위에서 이 책의 편찬과 그 전파된 역사를 소개하고, 『군서치요』 속의 통치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중국의 수많은 경전의 핵심 내용을 모아놓은 『군서치요』 원전은 공교롭게도 중국 대륙에서 오랜 기간 사라졌다가 이웃 일본에 전해진 책이 나중에 발견되어 다시 중국에 전해지는 우여곡절을 거친 뒤, 최근 중국의 정.재계와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은 『군서치요』 원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리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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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명서 - 군서치요 -



군서치요, 제목부터 낯선 이름이였다. 나름 중국 고전에 대해서 다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 책은 생소했다.

그래서일까? 더욱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3천년의 리더십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 책이 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고전들은 당시의 시대를 고려했을때 대부분이 제왕학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고전들의 이야기는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준다.

이 책도 그런 부류의 하나인데 특이한 점은 이 책을 지은 사람과 그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등장하기까지 다른 어떤 고전들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중국 당나라 제 2대황제 이세민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질적으로 당나라의 기틀을 세운 이세민은 자신이 황제가 되고 나서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하기 시작한다.

위징, 우세남, 소덕언 등의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군서치요이다.



이렇게 어렵게 편찬된 군서치요는 아이러니하게 송대에 들어서 실전되게 된다. 당시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수량의 책만이 편찬되었고 이로 인해 책이 후세에 들어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당태종 이후 중국의 많은 역사가 혼란의 시기가 왔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훌륭한 책이 그렇게 사라질 수 있을까?



이렇게 소중했던 군서치요는 일본에서 발견되어 역으로 중국에게 전해진다. 여기서 일본에 대한 태도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바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태도 말이다. 지금의 일본이 자신들의 선조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했던 자세를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책은 총 17장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각 챕터는 천도, 덕치, 인의 등 우리가 도덕시간이나 고전을 배울때 한번쯤을 들어봤음직한 주제를 가지고 나눈 것이다. 또한 그 챕터속에 군서치요의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담았다.

군서치요는 상당히 복잡한 책이다. 총 50여권이라는 방대한 양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 권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출판사가 선택한 것이 챕터별로 구분짓고 그 챕터에 맞는 군서치요의 내용을 간략하게 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많은 양의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키포인트는 바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이다. 제왕학을 다룬 책이다 보니 개인의 수신보다 더 큰 의미인 치국, 평천하까지 다루게 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의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뛰어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군주의 존재만 알 뿐' 이라는 것이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의 우리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와는 전혀 반대이다.

물론 매스컴의 발달이라는 영향이 있겠으나 우리는 우리의 리더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물론 그것이 좋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말이다.)



지식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몇백년 전의 조상들의 지식을 따라가고 더 배우고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반성을 통해 발전을 해야 하건만 우리는 그런 반성조차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아쉬운 점도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의 장점이면서 단점이 되는 부분이다.

바로 집대성이다. 군서치요는 고대의 많은 부분들을 집대성 한 책이다. 때문에 그것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고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중국 고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접할때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의라는 챕터에서 다룰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묵자'이다.

묵자 왈 이라 하면서 이 책은 인의를 설명하는데 묵자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사상을 제시했는지 모른다면 그 부분이 와 닿을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이 이 책 군서치요에 많이 등장한다.



결론은 이 책을 중국 고전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책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크지 않다. 다만 그 깊은 뜻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곱씹어서 읽어봐야 하고 이 책과 같이 병렬적으로 다른 고전들도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을 통해서 군서치요를 알게 된다면 이 책의 가치는 지금까지 읽었던 겉핥기식의 군서치요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군서치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3천년의 리더십을 담은 제왕학의 정수 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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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가저물면 2014-12-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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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이 되고자 했던 당 태종




각 시대의 명군들에겐 그 명군들의 정신세계를 지탱한 서적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조선 왕조의 경우, 태조와 태종, 세종의 머릿속에는 <대학연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치적을 밝히는 일은 그들이 애독한 서적들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겠다. 고려 시대 광종의 경우는 <정관정요>를 애독하였다고 하며, 그 <정관정요>는 고려의 중요 제왕학 교제가 됐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십 강의는 중요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뜻이 있는 군주들은 어떻게 통치를 해야 할까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효율적이고도 바람직한 리더십을 연구한 학문이 바로 제왕학이다. 지금 시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의 뿌리는 태고의 인간이 집단과 국가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발달했었고,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왕학이란 학문이 군주나 국본인 세자를 위한 학문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발전했고 이미 절대적인 신분계급제는 타파됐으며,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리더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리더십의 시대라고 할 만 하다.


<군서치요> 역시도, 그 시대의 리더십을 고민한 책 중 하나였었다. 이 책은 당 태종 이세민이 집권하면서 그의 명으로 편찬된 제왕학의 책이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어린 시절 현무문의 변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뒤, 제왕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 고조와 함께 전선에 앞장섰으며, 당나라 개국의 큰 공을 이룩했었다. 그러나 나라의 건국 뒤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형제들과의 권력 다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왔었고, 칼로써 형제들을 무찌르고 그렇게, 권력투쟁이 승리하여 권력의 정점에 섰다. 그는 수나라의 몰락을 지켜보며 느꼈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집권하기보다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칼을 빼 들은 그여서, 통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깊이 독서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통치를 위한 제왕학서를 편찬하라고 당대의 명신(위징을 포함한)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하여 완성된 당나라 태종의 제왕학서가 바로 <군서치요>라는 책이었다.


보통 우리는 당 태종 이세민 하면 <정관정요>를 떠올린다. 물론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며, 당 태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관정요>라는 책은 당 태종 사후에 오긍이라는 사관이 사료를 참고하여 만든 책이다. 즉 당 태종이 집권할 시기에 당 태종이 애독했던 책은 바로 <군서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상 <정관정요>와 <군서치요>를 살펴보자면, <정관정요>가 당 태종의 행적들을 중심으로 밝힌 역사적 성격의 제왕학서라고 한다면 <군서치요>는 중국 고대의 여러 제자서들과 경서, 그리고 역사서들에서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집대성한 철학적 성격(이론 중심적)의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들만을 살핀 역사서라고 보면 되겠고, <군서치요>는 중국의 고대 이래로 내려져오는 철학과 역사를 통치론으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군서치요>는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제왕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이와 비슷한 책이 떠올랐다. 바로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유가적인 제왕학서 <대학연의>가 떠올랐다. 두 책은 경(철학)과 사(역사)가 만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연의> 역시 유학의 이론서들과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 등의 역사서들을 혼합시켜서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책의 성향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가령 예를 들면 <대학연의>는 철저하게 유학 중심적인 제왕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대학연의>에 인용되는 경전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유가 서적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군서치요>를 살펴보면 유가에서 극도로 꺼리는 제자서 들을 대거 포용하여 집대성하고 있다. 바로 법가의 <한비자>, 도가의 <노자>, 병가의 <손자>, <울료자> 등등 유가를 포함한 40여 가지의 제자서를 분류하여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모두 인용하여 밝히고 있었다.


물론 <군서치요> 역시도, 기본은 유학 중심적인 사고가 깔려있다. 당 태종 이세민 역시도 유학을 존중했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학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유학이 추구하는 인과 예 의 지 등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연의>가 완강하게 유학적 사고를 고집하고 강요하는 느낌, 그리고 타 사상에 대한 비판을 논한 부분 등에서 보이듯, 다른 사상에 대한 관대하지 않은 부분이 <군서치요>에는 없었다. 유학을 존중하되, 다른 제자학에 대해서도 군주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은 사상을 가리지 않고 기록하여 남기고 있었다. 즉 <대학연의>에 비해 사상적 편협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느껴졌었다.


이 부분은 <군서치요>가 나온 당나라와, <대학연의>가 나온 송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당나라의 경우는 어쨌든 북방 민족이 건국한 이민족의 국가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유학을 존중했지만, 도교를 국교로 선택할 만큼 도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군주였었다. 즉 사회 분위기가 사상적 편협함이 송나라보다는 덜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족이 세운 송나라의 경우는 전형적인 유교 지향적 사고 관념을 보여주고 있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학자들이 성리학을 개척했었다. 그 과정에서 타 사상들은 모두 배격됐었고 성리학만이 유일한 국학으로 인정받았다. 그 이론에 입각하여서 <대학연의>가 편찬됐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군서치요>의 편찬자들은 여러 명이었던 것에 비해, <대학연의>의 저자는 진덕수 한 사람이다.


<군서치요>가 또 중요한 점은 풍부한 제자서의 인용 덕분에, 지금 원본이 손실된 책들의 중심 내용이, <군서치요>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료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나라를 깔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군서치요>에는 사료적인 가치를 의심할 만한 의문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중국에서 원본이 없어진 책이다. <군서치요>는 <대학연의>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방대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논의된 권수는 40권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 중국 본토에서는 오랜 내전 끝에 없어졌었다. 그럼 어떻게 이 책이 전해질 수 있었느냐? 책이 제작되고 일본에 전수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책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역대 천황들이 이 책을 보며, 제왕학을 익혔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도 이 책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나온다.


일본에 전파된 <군서치요>는 세월이 지나 일본에서 역으로 전파되어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 몇 권이 소실됐다.) 아무튼 그런 기구한(?) 운명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진본이 없어진 책이라서,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논쟁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컸다. 나 역시 이 책의 존재를 <정관정요>에서 발견했었는데,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은 제왕학서라 기억에 사라졌는데, 이렇게 책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학을 존중한 국가였다. 따라서 유학 중심적인 <대학연의>를 제왕학의 교제로 선택했고 다른 사상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번역되는 동양 고전 책들을 보면 아무래도 유학 중심적인 번역이 많다. 이 부분도 참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사상의 고전들을 번역해야겠고, 유학의 중요성은 인식하되, 유학에 집착하는 관념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바로 <군서치요>와 같은 주옥같은 고전들도 원전 번역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은 <군서치요>의 원전이 아니다. 샤오쟝센이라는 엮은이가, 방대한 군서치요를 일반인들이 보기 좋게 주제별로 나눠서 재편집하여 해설을 가한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책을 읽어보니 최대한 <군서치요>의 철학을 잘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원전을 다 밝혀놓은 것이 아니라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책은 요약 안내서이지만 쪽수가 535쪽 양장본으로 상당히 두툼한 책이었다. 그만큼 원전이 방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바쁜 현대인이, 방대한 고전인 <군서치요>를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국내에서는 이 책 외에는 <군서치요>를 볼 수 있는 책이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조금 욕심이 나서, 책의 원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번역할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겠지만...)


책의 해석이 조금 중화주의 사상 중심적인 시각이 보여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 부분을 스킵하고, 본다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문헌들의 내용도 많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다만 이렇게 <군서치요>라는 책을 편찬한 당 태종 이세민도, 현신들이 먼저 죽자, 말년에는 꽤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실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것은 후계구도에 대한 취약성도 나타났다.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은 참으로 닮았다. 부왕인 태조를 도와 개국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과, 아버지를 따라 종군하여 전쟁 경험을 두루 겪은 점,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용상에 올랐던 점, 그리고 나라의 초석을 다진 점 당 태종은 <군서치요>를 바탕으로 정치를 했고, 조선 태종은 <대학연의>를 바탕으로 통치를 했다. 참으로 닮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당 태종과 조선 태종의 차이점은 앞서 말했듯 후계 구도다. 당 태종 사후 당나라는 급격하게 왕권이 약화됐지만, 조선 태종은 세종이라는 군주를 배출했다. 당 태종은 말년에 고구려 원정이라는 무리수를 뒀지만, 조선 태종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그 임무를 충실하게 했다. (사담으로 이방원은 역사상 과거 급제를 한 유일한 공인 능력 인증 군주라는 점도...)


아무리 이런 통치학의 책을 발간하고 익혔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당태종 이세민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좋은 글을 집대성하고, 통치에 도움이 되는 사상을 엮는다 한들, 끝까지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상에 좋은 글은 차고 넘치지만, 그 좋은 글을 한결같이 실천하기란 참 힘든 법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리더가 될 사람들은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완역이 아니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발간하지 않은 <군서치요>, 그 <군서치요>의 요체를 밝힌 핵심 안내서를 만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쁨도 있었다. 하루빨리 완역본이 발간되길 기대하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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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군 2015-02-0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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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

당나라 태종(이세민, 599~649)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되고 널리 회자되는 임금 중 한 사람입니다. 한 가정을 이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넓은 영토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그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도 빛나는 치적으로 잘 알려진 당 태종의 뒤에는 이 <군서치요(群書治要)>가 있었다고 들어왔습니다. 이 도서의 내용을 살펴보니 '위로는 오제五帝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진대晉代에 이르기까지 1만 4천여 부, 8만 9천여 권의 고서적 중에서 도합 50여 만 자를 두루 모... + 더보기
star4es 2015-01-3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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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군서치요



[서평] 군서치요 [샤오샹젠 저 / 싱긋]



군서치요는 당왕조의 정관 초년에 태종 이세민의 명으로 편찬된 책이다. 16세라는 나이에 부친을 따라 10여 년간 사회를 평정하며 군무로 분주한 날을 보냈고 27세에 황제에 즉위한 뒤에 전쟁을 멈추고 문교에 힘을 기울였으며 혼란에 빠진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에 유념하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위징, 우세남, 소덕언 등에게 영을 내려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해 책으로 편찬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군서치요이다. 이 책의 내용은 1만 4천여 부, 8만 9천여 권의 고적에서 선별한 것으로 오제부터 진대에 이르기까지 6경과 4사, 제자 백가에서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와 관련된 핵심내용을 발췌하였으며 총 50권, 50여 만 자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엄청난 분량이다.



이 책은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요점이 잘 정리되어 있다며 태자와 제후왕에게 나눠주며 태종도 날마다 열독하였는데 이렇게 좋은 책이 후세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당시 조판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리고 이후 군서치요는 13세기에 일본에서 발견되었고 결국 중곡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뒤 전란이 빈번하게 발생한 탓에 깊이 연구한 이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귀한 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중국으로 돌아갔고 이렇게 우리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 17장의 챕터로 천도사상, 덕치사상, 인의사상, 예치사상, 악치사상, 교육사상, 용인사상, 치정사상, 민본사상, 경제사상, 군사외교사상, 납간사상, 이치사상, 재난대처사상, 인과사상, 우환사상을 만나볼 수 있다. 참 많은 사상과 좋은 내용을 담고있는데, 생각해보니 총 50권의 책인 군서치요를 이 한 권의 책에 집대성하였으니 당시 당태종이 읽던 내용은 얼마나 방대하고 많은 내용을 익히고 나라를 다스렸을지 생각만해도 놀랍고 대단해보였다. 이 책은 유학을 바탕으로 도, 인, 의, 예, 지, 신 등을 강조한다. 민심을 알고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천하를 다스리고 선행을 쌓고 근면성실하며 효와 예를 다하고청렴하고 학문과 교육을 우선시하고, 좋은 충고는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중국의 고전 속에서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간혹 읽는 편인데 이 책 군서치요는 처음 들어본 책이었다. 그런데 책의 소개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니 어린 시절부터 전선에 앞장섰던 당태종이 뒤늦게나마 자신이 보기위해 과거 왕들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의 핵심만을 정리하였으니, 당태종을 이끌고 지탱시킨 제왕학 책이 담고있는 그 내용은 과연 얼마나 좋을까 흥미로운 마음에 읽게 되었는데 리더십의 핵심인 군서치요 중에서도 원전에서 중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재편집하였고, 거기에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는 해설까지 있어 바쁜 현대인들이 읽기에 유익하고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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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천사 2014-12-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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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리더십의 집대성



冊 이야기 2015-033



『군서치요(群書治要)』 샤오샹젠 풀어 엮음 / 싱긋(문학동네)


































책이 귀하던 시절 어렵게 출간된 책이 전란(戰亂)을 겪으며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으로 나갔던 책 한질이 그 나라의 문자로 번역 출간되면서 그곳에서 오랜 동안 그 명맥이 유지된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그 책은 원래 출간 되었던 나라로 다시 돌아와 크게 숨을 쉰다. 바로 이 책 『군서치요(群書治要)』 에 얽힌 이야기다.





“짐은 어려서 무력을 숭상하고 학업에 정진하지 않아, 선왕의 도는 아득하기가 바다를 건너는 듯했다. 편찬된 이 책을 읽으면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니, 짐이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정치를 펴는데 옛일을 고찰하여 유익한 적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정무를 처리하면서 의혹이 없어졌으니, 그 수고로움이 참으로 크지 아니한가!”





당태종과 『군서치요(群書治要)』



위에서 지칭되는 ‘짐’은 당왕조의 정관(貞觀) 초년의 태종 이세민(李世民, 599~649)이다. 나이 열 여덟에 부친을 따라 종군한 당태종은 봉기를 일으켜 사회를 평정하며 전장에서 심 년 넘게 분주한 세월을 보냈다. 스물여덟 살에 황제 자리에 오른 뒤에는 전쟁을 멈추고 문교에 힘썼으며, 특히 치평지도(治平之道)에 힘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애썼다.



당태종 이세민은 즉위하고 나서 두 달 뒤에 홍문전에 홍문관(弘文館)을 설립하도록 했다. 홍문관은 국가의 장서기관이자 황제가 문학지사(文學之士)들을 불러 모은 곳으로, 저량 · 요사렴 · 채윤공 · 소덕언 등의 영재들을 집결시켰으며, ‘정사를 논할 때 전내(殿內)로 불러들여 문장의 의미를 강론하게 하고’, ‘밤이 되어서야 헤어지곤 했다’. 매번 조정에서 공무를 논한 뒤, 태종은 현인들을 홍문관으로 초빙해 치국의 묘책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으며, 이를 이후 시정의 훌륭한 방책으로 삼았다.



많은 현인들이 홍문관에서 밤낮으로 번갈아가며 입직했지만 시간적,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고대의 경전이 워낙 방대했다. 설령 많은 책을 두루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 핵심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하기 어려웠다. 이에 태종은 『군서치요(群書治要)』를 편찬할 생각을 하게 된다.



“태종은 과거 왕조의 득과 실에 대해 알고자 위징 · 우세남 · 저량 · 소덕언을 불러 경사서 가운데 역대 제왕의 흥기와 멸망을 다룬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편찬하여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명을 내렸다. 태종은 이 책의 내용이 깊고 넓으면서도 간단명료한 점에 매료되어 말했다. ‘짐이 옛일을 고찰하여 지금의 정사를 처리하면서 의혹이 없는 것은 모두 그대들의 공헌이오!’ 그러고는 후한 상을 하사하였다.”

























『군서치요(群書治要)』 의 긴 여정



이처럼 진귀한 책이 당시 중국에서 조판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데다 당왕조 말기의 전란을 거치며 송왕조 초에 이르러서는 그만 실전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일본 사절단이 이 책을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줄곧 일본의 역대 천황과 황자, 대신들 사이에서 법도로 받들어졌고, 이로써 중화문명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 일본의 간세이 8년(1796)에 오와리 번주 가문은 이 책이 이미 중국에서는 실전(失典)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섯 부를 중국에 전한다. 『군서치요(群書治要)』는 모두 50권(3권 망실, 47권 보존)으로, 경전 65종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기본적으로는 경서(經書), 사서(史書), 자서(子書)의 차례로 배열되어있다. 그러나 이백년 가까이 중화정통의 성철(聖哲)교육이 쇠락하면서, 이 책은 그저 학자들의 서재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1990년대에 이르러, 주일 중국대사였던 푸하오가 일본 황실의 구성원을 통해 『군서치요』 한 질을 구해 2004년에 재출간한다. 최근 들어서는 2012년에 중국서점이 온전하게 주를 달고 번역한 『군서치요』를 출판하면서 원래 망실되었던 세 권을 보충하여 수록했다. 이에 이르러 『군서치요』는 다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이 책은 중국의 지도급 간부와 전문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늘 무서운지 알지어다



『군서치요(群書治要)』에 오른 많은 사상 중 으뜸은 천도(天道)사상이다. 「천도를 본받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룬다」이다. ‘하늘을 본받아 행하는 이가 천자이다’, ‘하늘의 도를 실천하고 하늘의 덕을 실행한다’, ‘하늘을 따르면 길하고 하늘을 어기면 불길하다.’ 등이다.



고대 중국에는 네 가지 교육이 있었다. (현재도 이렇게 되어 진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과거완료로 표현) 첫째가 가정교육이고, 둘째가 학교교육, 셋째는 사회교육, 넷째가 종교교육이다. 이 네 가지 교육은 가정교육을 근본으로 삼으며, 종교교육을 궁극적인 완성으로 삼는다. 뒤늦게 생긴 종교교육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한(漢)왕조부터 시작된 불교와 위진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도가는 중국본토의 종교이며, 이에 유가가 더해져서 유(儒) · 불(佛) · 도(道)라고 일컬어진다. 이 삼교의 교육은 모두 악을 끊고 선을 닦을 것과 미혹함을 부수고 깨우침을 얻을 것, 범인의 영역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로 들어설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5 · 4’운동 이후 유가는 타도되었고, 불교와 유가도 대부분 교육을 그 근본으로 하지 않았으며 그런 까닭에 미신으로 여겨졌다. 이로부터 현대인의 신앙적 결함과 도덕적 쇠락이 초래되었으며, 많은 사회적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였다. 『군서치요』에서는 비록 종교교육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역사책의 기록을 보면 당태종 본인이 각 종교를 힘써 보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왕조 시기에는 유 · 불 · 도 삼교가 매우 흥성하였다.”

(p.152)



* 오사운동(五四運動) : 1919년, 러시아 혁명(1917년)의 영향을 받아 중화민국 베이징 대학의 대학 교수, 강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한 반제국주의 ·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다. 중국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되는 사건이 되었다. 학생운동이 혁명운동으로 변화된 정치운동이다. 중국 공산당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기도 하며, 또한 중국 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의 고전 연구자 샤오샹젠이 풀어 엮은 『군서치요심득(群書治要心傳)』을 번역한 것으로, 작금의 중국 상황과 맞물려 그 특별한 존재의 의의가 더욱 빛난다. 아쉬운 점은 『군서치요』 원전이 중국 대륙에서 오랜 기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점이다. 책이 그대로 있었다할지라도 안 읽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그대로 읽히며 마음에 담고 몸소 실천하며 후세대들에게 전해졌으면 지금의 중국은 분명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혁명」 같은 세상에 전무후무한 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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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5-02-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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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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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群書治要)는 중국 (唐)의 위징(魏徵) 등이 찬한 저술이다. 전50권.[1]

개요[편집]

당 태종 정관(貞觀) 원년에 천하가 바야흐로 평정되고, 당 태종이 전대 군주들의 득실을 열람하고 싶다고 하여 위징, 우세남(虞世南), 저량(褚亮), 소덕언(蕭德言) 등에게 명해 편찬하게 하였다.

이 책은 육경(六经) 및 제자(諸子)에 이르기까지 67종의 서, “위로는 오제(五帝)에서 시작해 아래로는 진대(晋代)에 이르기까지”(上始五帝,下至晋代) 1만 4천여 부(部) 8만 9천여 권의 고적들을 채집하여 그 가운데 다스림에 참고가 될 만한 말들을 발췌하여 각 책마다 배열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군서치요》는 글을 인용함에 대부분 문장 자체를 초록하고 문장을 잘라내거나 고친 흔적은 드물며,정문(正文)을 큰 글자로 쓰고 주석문을 작은 글자로 썼다. 정관 5년(631년) 《군서치요》가 완성되어 9월 27일에 비서감 위징의 이름으로 바쳐졌고[2] 당 태종은 사람을 시켜서 《군서치요》10여 부를 엮고 필사하도록 하여 태자 및 여러 친왕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책의 서문에서 위징은 “현금의 사회에 사용되어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하며,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방략을 제시할 수 있는” 치세의 보전(寶典)이라고 하였다.

그뒤 《군서치요》는 차츰 산실되어 송대에는 이미 10권밖에 알려지지 않았다.[3]

다만 일본에는 이 책이 전해져서 (清) 가경(嘉慶) 연간에 일본에서 중국으로 역수입되기도 했다. 헤이안 시대에 일본에 전해져서 구조 가문에 소장되었고 닌묘 천황 때에 이 책을 궁중에서 강독하였다고 하며[4] 우다 천황은 후계 천황들에게 남기는 《관평어유계》에서 "천자는 경사백가에 통달하지 못해도 한탄할 것이 없다. 다만 《군서치요》는 읽어 익혀야 한다. 잡문 때문에 세월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의 가나자와 문고(金沢文庫)에도 《군서치요》가 전해져 보존되었는데, 청대의 학자 완원(阮元)이 수입해 《원위별장》(宛委別藏)에 실은 것은 가나자와 문고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겨우 47권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구조 가문에 소장된 《군서치요》는 13권만이 남았다). 결권된 책은 권4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상, 권13 《한서》(漢書)1, 권20 《한서》8이다. 가나자와 문고판 군서치요는 일본 궁내청 서릉부(宮内庁書陵部)에 소장되었다.

일본에서 《군서치요》는 에도 시대인 겐나(元和) 2년(1616년)에 고활자본(스루가판駿河版)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간행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에도 후기인 덴메이(天明) 연간(1781년 - 1789년)에 오와리번(尾張藩)에서, 고카(弘化) 연간(1844년 - 1848년)에 기슈번(紀州藩)에서 각기 스루가판으로 활자를 보충해 인쇄했다. 1989년에는 가나자와 문고본이 영인본으로 출판되었다. 중국으로 역수입된 《군서치요》는 이렇게 제작된 인쇄본으로 완원이 입수해 가경제(嘉慶帝)에게도 진상되었다. 완원은 당시 중국에도 현존하지 않는 서적들이 많이 실려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고, 분명하게 당대 초기의 책으로 판단하고 있다.[5] 또한 1990년대에 일본의 왕실 관계자를 통해 사본을 입수한 시중쉰(習仲勲)이 연구를 명해 『군서치요고석』(群書治要考訳)이 간행되기도 하였다.[6][7]

《군서치요》는 적지 않은 옛 문헌들의 당대 이전 초본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인용된 책 가운데에는 산일되어 완본이 현존하지 않는 책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 자료적인 가치는 매우 높다. 현존하는 서적 가운데에도 현행본과는 다른 부분도 보이고 있어서 중요하다.

전적들을 인용할 때는 꼭 그 주석까지도 같이 인용하였다. 예를 들어 《사마법》(司馬法)은 원래 주해가 없는데[8] 《군서치요》에 인용된 《사마법》의 글에는 주석이 붙어 있다. 또한 방현령(房玄齡), 저수량(褚遂良) 등이 《진서》(晉書)를 중찬한 것은 정관 20년의 일인데, 《군서치요》에 실린 《진서》2권은 臧榮緒가 쓴 《진서》에 십팔가진사(十八家晉史)까지 참고하였다. 완원은 “《진서》2권 같은 것은 아직 (당대 편찬된) 《진서》 이전의 십팔가(十八家) 가운데 구본(舊本)”이라고 하였다. 같은 청대 후기의 고증학자 왕념손(王念孫)이 옛 서적들을 교감할 때에도 《군서치요》를 참고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어 번역[편집]

한국에는 중국의 고전 연구자 샤오샹젠(蕭祥劍)이 풀어 엮은 《군서치요심득》(群書治要心得)을 저본으로 2014년 도서출판 싱긋에서 《군서치요 -3천 년 리더십의 집대성-》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2020년에는 도서출판 3에서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선집본을 한국어 번역으로 《군서치요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참고 문헌[편집]

  • 是沢恭三「群書治要について」(『東京国立博物館研究誌』110、1960年)
  • 尾崎康 (1991년 3월 31일). “群書治要とその現存本”. 《斯道文庫論集》 (慶應義塾大学) 25: 121–210.

각주[편집]

  1.  《舊唐書》‧ 經籍下「《群書理要》五十卷」;《新唐書》‧藝文志「《群書治要》五十卷」。
  2.  《唐會要》“貞觀五年九月二十七日。祕書監魏徵。撰《群書政要》。上之。”
  3.  진규(陳騤)의 《중흥관각서목》(中興館閣書目)에는 10권이라고 하였고 《송사》(宋史)도 같다. 완원은 〈《群書治要》五十卷提要〉에서 “《송사》 예문지에는 실려 있지 않으니 그 사라진 것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미 송대에 《군서치요》가 산실되었다고 썼으나 완원의 설에는 오류가 있는데, 《송사》예문지(藝文志)6에 《군서유종》이 10권으로 실려 있다.
  4.  e-국보 군서치요
  5.  阮元〈群書治要五十巻提要〉. 《四庫未収書提要》. 揅経室外集巻三.
  6.  “中国の支配者・習近平が引用する奇妙な古典”. ジセダイ. 2015년 4월 23일. 2018년 3월 10일에 확인함.
  7.  “習近平の父が守った伝統文化の価値”アゴラ. 2017년 11월 4일. 2018년 3월 10일에 확인함.
  8.  閻禹錫《司馬法集解》“久無註解”

외부 링크[편집]


알라딘: 군서치요-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 2020

  • 알라딘: 군서치요
    군서치요 -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엮은이),하영삼,정혜욱,이용남 (옮긴이)
    도서출판3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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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2쪽

    책소개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전체를 군도, 신술, 귀덕, 위정, 경신, 명변 등 6가지 부류로 나눈 <군서치요> 선집본을 번역한 책으로, 한국에서 <군서치요>의 원문을 직접 번역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목차


    서문 11
    편역에 즈음하여 14
    일러두기 16

    제1부 군도(君道): 지도자의 길 20

    제1장 수신(修身): 수양 22
    1. 계탐(戒貪): 탐욕에 대한 경계 22
    2. 근검(勤儉): 검소하고 부지런 하라 34
    3. 징분(懲忿): 분노를 피하라 38
    4. 천선(遷善): 선행을 실천하라 41
    5. 개과(改過): 실수를 바로 잡아라 42
    제2장 돈친(敦親): 친한 이를 존경하라 48
    제3장 반신(反身): 자신을 되돌아보라 54
    제4장 존현(尊賢): 현명한 자를 존중하라 73
    제5장 납간(納諫): 간언을 받아들여라 88
    제6장 두참사(杜讒邪): 비방과 악의적 충고를 막아라 96
    제7장 심단(審斷): 깊이 있게 판단하라 98

    제2부 신술(臣術): 신하의 기술 106

    제8장 입절(立節): 절차를 세우라 107
    제9장 진충(盡忠): 충성을 다하라 114
    제10장 권간(勸諫): 간언을 하라 118
    제11장 거현(?賢): 훌륭한 관리자를 인용하라 124

    제3부 귀덕(貴德): 덕을 귀하게 여겨라 126

    제12장 상도(?道): 도를 섬기라 127
    제13장 효제(孝悌): 효도와 우애 141
    제14장 인의(仁義): 자비롭고 정의로워라 159
    제15장 성신(誠信): 성실하고 신의를 지켜라 166
    제16장 정기(正己): 자신을 바로 세워라 176
    제17장 도량(度量): 아량을 가져라 192
    제18장 겸허(謙虛): 겸손하라 194
    제19장 근신(謹?): 신중하라 208
    제20장 교우(交友): 친구 사귀기 225
    제21장 학문(學問): 공부하기 229
    제22장 유항(有?): 인내하라 235

    제4부 위정(爲政): 정치하기 238

    제23장 무본(務本): 근본에 충실하라 239
    제24장 지인(知人): 남을 잘 판단하라 279
    제25장 임리(任吏): 관리 임용하기 293
    제26장 지공(至公): 지극히 공정하라 304
    제27장 교화(?化): 가르침과 변화 314
    제28장 예악(禮樂): 예의와 음악 336
    제29장 애민(愛民): 사람들을 배려하라 354
    제30장 민생(民生): 백성들의 생계 368
    제31장 법고(法古): 과거로부터 배워라 371
    제32장 강기(綱紀): 기본적인 원칙을 지켜라 375
    제33장 상벌(賞罰): 보상과 처벌 389
    제34장 법률(法律): 법과 규정 396
    제35장 신무(?武): 군사행동에 신중하라 402
    제36장 장병(將兵): 장수와 병사 411

    제5부 경신(敬?): 공경과 신중함 412

    제37장 미점(微漸)미리 예방하라 413
    제38장 풍속(風俗): 사회적 관습 430
    제39장 치란(治亂): 혼란을 다스려라 436
    제40장 감계(鑒戒): 위험을 경계하라 442
    제41장 응사(應事): 올바른 대응 462
    제42장 신시종(?始終):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라 473
    제43장 양생(養生): 건강을 유지하라 476

    제6부 명변(明辨): 분별력 있는 사람들 478

    제44장 사정(邪正): 선과 악 479
    제45장 인정(人情): 인간의 감정 486
    제46장 재덕(才德): 재능과 도덕성 495
    제47장 붕당(朋黨): 파벌의 형성 497
    제48장 변물(辨物): 중요한 차이점을 분별하라 499
    제49장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 508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머리말


    21세기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대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IMF 당시 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경제위기와 고용불안, 그리고 사스, 메르스, 에볼라 보다 더 무서운 COVID-19의 등장, 언어폭력으로 물든 인터넷 댓글 문화 등으로 인간의 가치는 더욱 혼란스럽고 우리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날로 늘어나는 청년 백수, 예전에는 철밥통이라 불렸던 정규직에조차도 불어 닥치는 구조조정의 매서운 칼날, 결과 어떤 자영업종은 10곳 중 9곳이 문을 닫는다는 가슴 아픈 소식까지 들려온다.

    지금의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네 글자로 된 한자말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각자 스스로 살기를 도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자도생이란 말이 오늘날을 묘사하는 단어로 흔히 등장함에도, 중국의 고전에도 등장하는 고사성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도 아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힘든 삶을 살았던 조선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한자어라는 것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각자도생이란 단어 속에는 가족에 대한 배려도, 친구에 대한 배려도, 공동체에 대한 배려도 윤리도 없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기에, 나쁜 일에는 나만 해당되지 않으면 되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취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각자도생하는 사회는 윤리가 사라진 야만의 사회이기도 하다.

    사실 각자도생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면서 각국의 무역 분쟁을 조정하는 기구도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래고, 한국이 전통적 우방국이라는 주장도 미국만이 소중하다는 슬로건 앞에서는 혈맹의 의미조차 빛을 바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 역시 자국중심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다 각자도생에 목메고 있다.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윤리가 사라지고, 국가의 지도자들도 양심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당선되기 일쑤다. 정의와 원칙이 실종되고 협력과 상생이 파괴된 국제사회,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속이고 위협하고 편법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사실 사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이어가는 것, ‘연명’이 다가 아니다. 삶을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니마 모랄리아(Minima Moralia, 한줌의 도덕), 즉 인간을 살만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가 윤리와 도덕을 설사 바로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미니마 모랄리아, 즉 한줌의 도덕에라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세상을 어떻게 해야만 만들 수 있을까?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한줌의 도덕이 살아있다면, 그것을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어, 조금이라도 덜 나쁜 세상을, 덜 절망적인 사회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날로 커져가는 빈부격차, 정보격차, 지식격차, 경제격차, 환경격차, 이들의 간격을 줄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날로 증가되는 문명 간의 충돌, 민족 간의 대립, 날로 줄어가는 지구의 한정된 자원, 파괴되어 가는 환경, 이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는 화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화해와 협력, 공존과 공유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우리는 옛 고전 속에서 혼란한 이 시대에 한 줌의 도덕이라도 세워줄 수 있는,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실제로 공자와 노자 등 고대 동양철학자들도 오늘날과 같은 혼란기를 살았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이 극심하게 패권을 다투었던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부모가 죽어도 장례조차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야만 사회를 목격한 자들이요, 지도자가 백성을 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돌볼 때 어떻게 몰락하는 지, 백성들은 어떤 도탄에 빠지게 되는지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다.

    공자의 <논어>나 노자의 <도덕경>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대중성 있는, 그리고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동양고전의 정수를 공자와 노자 등 수많은 성인의 목소리를 살려서, 각 철학자들의 생전의 고민과 주장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책이 <군서치요>다. 이 책속에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을 소중하게 만들고, 평화로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옛사람들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윗물부터 깨끗하게 할 방법부터 모색했던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나 개인 하나하나가 모든 사회, 국가의 출발자이기 때문이다.

    <군서치요>는 “숱한 고전 속에서 다스림의 요체를 뽑은 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치가나 고위 공직자를 위한 책만은 아니다. 계급사회였던 옛 성현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민주사회이고, 민주사회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시민이 주인이고, 우리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책의 부제가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이라 되어있지만, 사실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이기도 하다. 자신이 먼저 서야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고, 자신이 공정해야 세상을 공정하게 이끌 수가 있다. 염치와 양심이 살아 있다면 세상은 다스리지 않아도 공정하고 정의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특히 수신을 강조한다. 개인이 가진 양심과 염치, 그것이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그리고 “진정성과 공손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보았다. 송나라 때의 대철학자 정자(程子)가 말한 “경승백사(敬勝百邪)”, 즉 공경하는 마음이 모든 부정을 이겨낸다는 혜지를 깊이 새길 것을 주문한다. 그것이 곧 자신을 바로 세우고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정치가나 고위공직자나 최고경영자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함양하기를 원하는, 미래의 리더로 성장하고픈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좀 더 바른 사회를 세우기 위해 고민하는 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아울러 세상의 윤리를 바로 세우려고 시도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이제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 책은 중국이 자랑하는 제왕의 한 사람인 당 태종 이세민이 자신 스스로 통치의 거울로 삼고자 편찬을 명했고,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다. 그리하여 “정관의 치”는 물론 당나라 300년을 진정한 태평성세로 만들었다. 그 후 이 책은 일본으로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치 지침서가 되었고, 역대 천왕들의 필독서가 되어 일본을 문명국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즐겨 읽는 애독서의 하나이다.

    <군서치요>는 중국의 전설시대 때에서부터 위진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혜를 모은 1만4천여 부, 8만9천여 권의 고서 가운데서 대표적 경전 65종을 선별하여 만든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중국 문명 5천 년간 축적된 리더십의 정수이자 동양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서는 50여 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 마침 말레이시아 중화교육문화센터에서 그중에서 우리 삶의 도항이 될 가장 대표적인 360항목을 뽑아 놓아 그 정수를 음미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 책은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

    이제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전체를 군도(君道), 신술(臣術), 귀덕(歸德), 위정(爲政), 경신(敬?), 명변(明辯) 등 6가지 부류로 나눈 <군서치요> 선집본을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군서치요>의 원문을 직접 번역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 시대를 비추는 영원한 거울, 최초의 한국어 선집 번역판 <군서치요>, 여기에 담은 그 정수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절실한 충언이요, 미래시대를 대비할 진정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정의롭고 명예롭고 품격 있게 만드는 책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올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정공 스님이 이끄는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와 초역과 윤문 및 영어대역 등을 담당한 두 공동역자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20년 3월
    역자를 대표하여 하영삼 씀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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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군서치요>

    하영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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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의령 출생으로, 경성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 단장, 세계한자학회(WACCS) 상임이사로 있다. 부산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100개 한자로 읽는 중국문화>, <한자와 에크리튀르>, <부수한자>, <뿌리한자>, <연상한자>, <한자의 세계: 기원에서 미래까지>, <제오유의정리와연구(第五游整理與硏究)>, <한국한문자전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 시대>(장광직), <허신과 설문해자>(요효수), <갑골학 일백 년>(왕우신등), <한어문자학사>(황덕관), <한자 왕국>(세실리아링퀴비스트, 공역), <언어와 문화>(나상배), <언어지리유형학>(하시모토만타로), <고문자학첫걸음>),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최술,공역), <석명(釋名)>(유희,선역), <관당집림(觀堂集林)>(왕국유,선역)등이 있으며, “한국역대자전총서”(16책) 등을 공동 주편했다. 접기

    최근작 : <키워드 한자 : 24개 한자로 읽는 동양문화 - 하>,<키워드 한자 : 24개 한자로 읽는 동양문화 - 상>,<韓國近代漢字字典硏究> … 총 61종 (모두보기)

    정혜욱 (옮긴이)

    현재 부경대에서 미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문화번역과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적 프레임』, 『번역과 문화연구: 반복을 거부하는 합일』, 『세계문학 속의 여성』(공저), 『상처와 치유의 서사』(공저), 『미국근현대소설』(공저) 등 다수가 있고, 옮긴 책으로 『탈식민 페미니즘과 탈식민페미니스트들』(공역), 『인터넷 상에서』, 『군서치요』(공역) 등이 있다. 현재 상처받은 몸들의 정동과 연대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최근작 : <문화 번역과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적 프레임>,<번역과 문화연구> … 총 6종 (모두보기)

    이용남 (옮긴이)

    한중번역전문가. 중국 연변대학 조선문학부 졸업, 현 연길연신(延信)번역센터장,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상무이사로 있으며, <에디슨>, <나도 마술사>, <지모지략 이야기> 등을 번역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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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제왕학의 집대성 

    반가운 책을 접했다. 그 책은 바로 《군서치요》인데, 중국의 제왕학 정치고전이다. 고전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첫 번째가 역사고 두 번째가 정치학이다. 동양의 정치고전들은 군주정에 기초하였기에 제왕적 리더십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개인적인 취향 덕에 국내에 출판된 메이저, 마이너 중국 정치고전을 대부분 섭렵하였는데 《군서치요》는 처음으로 접하는 책이라 굉장히 뜻깊었다. 이 책은 중국의 정관치지를 구현한 당 태종 이세민 시대에 만들어졌다. 태종은 어수선한 난세의 시기, 부친인 당 고조의 패권전쟁에 앞장서서 종군하였으며, 끝내 부왕과 형, 동생을 제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무력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었지만 무력만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치를 지향했다. 그런 일환에서 현신들에게 정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 것을 명하였고 그 결과 탄생한 책이 바로 《군서치요》다.

    내용적으로 볼 때 《군서치요》는 기존 제왕학 텍스트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먼저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문헌들, 가령 《논어》, 《노자》, 《한비자》, 《사기》 등등과 같은 고전에서 통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구들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재구성하여 편집한 책이다. 《군서치요》에 인용된 책은 유가의 경전, 제자백가 철학서, 역사서, 그리고 그 외 정치학 고전 등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기에 중국 고전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군주는 사무가 많았기에 치국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기에 현신들은 방대한 고전 속에서 왕에게 필요한 구절들을 엄선하여 《군서치요》를 완성한 것이다.

    또 주목할 점으로는 다양한 사상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치사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는 유가의 왕도와 성악설을 바탕으로 하는 법가의 패도로 나뉜다. 역대 중국의 제왕들은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왕도, 즉 유가의 이론만을 신봉했다. 그렇기에 중국의 제왕학 고전들은 대체로 주류 사상인 유가 쪽으로 치우쳤다. 《군서치요》 역시 유가를 중심사상으로 설정하기에 기존 중국의 제왕학 이론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유가와 대조적인 법가와 도가 사상 텍스트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당나라 시대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꽃피운 점인데,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다. 《군서치요》 역시 이런 개방적인 사회에서 제작됐기에 다채로운 사상의 고전들을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흔히 당 태종을 상징하는 제왕학서로 《정관정요》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이고 《군서치요》는 신하들이 당 태종의 정치를 돕기 위해 편찬한 정치교본이다. 그렇기에 당 태종의 정치인 정관치지를 알기 위해서는 태종이 애독했다는 《군서치요》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두 책의 관계는 마치 법조문과 판례라고 볼 수 있는데 《군서치요》가 조문이라면 《정관정요》는 판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왜 《정관정요》가 유행하고 《군서치요》는 생소한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정관정요》는 고려 광종 이후 왕들의 정치 교과서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군서치요》의 원문은 세월을 거치면서 중국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마 한반도에는 《군서치요》를 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에서 《군서치요》가 사라지기 전, 일본의 학승이 《군서치요》 전질을 필사하여 일본에 보관했는데 이를 통해 천황가, 쇼군, 야심이 있는 다이묘들은 《군서치요》를 탐독하며 당 태종의 정관치지를 배우고자 노력했다. 에도 막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장서가로도 유명한데, 그 역시 《군서치요》를 통해 정치의 요체를 배웠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군서치요》는 원문 중 요긴한 구절 360개를 추려서 번역한 책이다. 덕분에 《군서치요》를 국내에서 접하게 되어 기쁘지만 완역이 아니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책의 원문은 65부 50권 50여만 자로 방대한 분량이라서 완역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완역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자들은 민주시대를 사는 오늘날, 왕조시대의 통치론을 탐독하는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책을 직접 읽고 나면 우려가 기우였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동양 정치학은 타인을 다스리기 이전의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치인 이전에 수기가 우선이다.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예의와 도덕과 같은 정신문화가 사라지는 요즘,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군서치요》는 민주 시민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참고할 수 있는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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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군 2020-04-24 공감(2) 댓글(0)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꼭 읽고 배워야 할 군서치요BY JOURNEYMAN ON 5. 3, 2016군서치요1
    고구려를 침략했다 패퇴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는 과소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있다. 고조에 이어 당나라 2대 황제에 오른 태종 이세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8세의 나이에 옥좌에 오른 당 태종 이세민은 국가 제도를 정비하여 국정을 안정시키고 당나라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데 힘써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인물이다.
    이세민은 한 고조 유방과 위 무제 조조의 기량을 한몸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방의 호탕함과 뛰어난 용인술, 그리고 조조의 지모와 용병술을 모두 지녔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과 맞섰던 위징을 중용하여 단소리뿐만 아니라 쓴소리 듣기에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과거제도를 통해서 출신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였다. 또한, 당시 세계 초강대국이던 이슬람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겨눌 만한 강건한 국가를 만들기도 했다.
    당 태종의 등장은 많은 점에서 조선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나라와 조선의 개국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이세민은 둘째, 이방원은 넷째)로 후계자가 되지 못했고 이후 ‘현무문의 난’을 통해서 형제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과정이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흡사하기도 하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처럼 이세민이 후대에도 존경받는 위대한 군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원래부터 영민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언변이 뛰어났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을 따라 18세부터 전장터를 누빈 터라 학문을 깊이 배울 기회가 없었으나 황제에 즉위한 뒤에는 문교에 힘을 기울이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에 유념하였으며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 태종은 위징, 우세남, 소덕언 등에게 영을 내려 역대 제왕의 치국과 국정운영 사료를 정리해 책으로 편찬하도록 하였다. 그 내용은 1만 4천여 부, 8만 9천여권의 고적에서 선발한 것으로, 위로는 오제부터 아래로는 진대에 이르기까지 6경과 4사, 제자백가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관련된 핵심내용을 발췌하였으며 총 50권, 50여 만 자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당 태종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만들어준 책이 바로 ‘군서치요(群書治要)’다. 책이 완성되고 난 뒤, 위징은 서문에서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역사를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하며, 후세에 전하여 자손들에게 훌륭한 방략을 제시할 수 있는” 치세의 보전이라 하였다. 군왕이 되기 위한 일종의 학습서 혹은 자습서라 할 수 있겠다.
    군서치요에 감명받은 태종은 “짐이 어려서 무력을 숭상하고 학업에 정진하지 않아, 선왕의 도는 아득하기가 바다를 건너는 듯했다. 편찬된 이 책을 읽으면서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니, 짐이 국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정치를 펴는 데 옛일을 고찰하여 유익한 적용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정무를 처리하면서 의혹이 없어졌으니, 그 수고로움이 참으로 크지 아니한가!”라는 친필조서를 남기기도 했다.
    방대한 분량 중에서 문학동네 싱긋에서 발행한 ‘군서치요’는 천도(天道), 덕치(德治), 인의(仁義), 예치(禮治), 악치(樂治), 교육(敎育), 용인(用人), 치정(治政), 민본(民本), 경제-외교군사, 납간(納諫), 이치(吏治), 재난대처, 인과(因果), 우환(憂患) 등 17개 부문으로 나누어 그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 만으로도 500여쪽이 넘을진대 원서는 얼마나 방대할런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뛰어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군주의 존재만 알 뿐이다'(천도), ‘덕으로 정치를 하고 효를 덕의 근본으로 삼는다'(덕치), ‘인을 근본으로 삼고 의로써 다스린다'(인의), ‘나라를 다스리며 예를 잃게 되면 혼란이 찾아온다'(예치), ‘인재를 임용함에 끝까지 믿고 맡기며 간사한 자를 제거함에 머뭇거리지 않는다'(용인), ‘치국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풍족하게 해야 한다'(민본) 등 오늘날에도 배워야 마땅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한때 사람들은 이 땅의 정치를 이끌어갈 사람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밖에 없음에 한탄하곤 했었다. 언제까지 3김에 의지해야 하나 하며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정계에서 물러난 지금은 3김만 한 정치인이 없음에 한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정가에 몸담으면서 자신만의 정치철학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계를 주름잡았던 3김과 달리 시행착오만 거듭하는 초보 정치인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으며 박근혜 현 대통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 역시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야권의 선두 주자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나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 또한 준비된 정치인이라고 하기 힘든 탓이다. 그들 모두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만 힘을 쏟을지언정 정작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었다.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준비된’이라는 표현을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당 대표나 야당 대표 모두 헛발질만 하고 있을 뿐 현실 감각도 부족하고 국정 운영 능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국을 차지하고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당 태종을 마땅히 본받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