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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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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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 가자 피안으로.
피안으로 아주 가자,
영원한 깨달음으로. ”

—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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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산스크리트어: महावैपुल्यबुद्धावतंसकसूत्र, 산스크리트어: Mahāvaipulya Buddhāvataṃsaka Sūtra[1])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산스크리트어: Avataṃsaka Sūtra) 또는 《잡화경(雜華經)》(산스크리트어: Gaṇḍavyūha Sūtra)은 초기 대승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로,[2] 중국과 한국의 화엄종을 비롯한 많은 종파의 핵심 경전으로 사용된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전하지 않으며, 《십지경(十地經)》(산스크리트어: Daśabhūmika Sūtra)이 화엄경의 일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남아있는 원전으로 추측된다. 한역본으로는 5세기 동진 불타라발타라의 《60화엄》(K.0079, T.0278)과 7세기 당나라 실차난타의 《80화엄》(K.0080, T.0279)이 있으며, [3][4] 일부 한역(漢譯)으로는 보현행원품을 옮긴 8세기 실차난타의 《40화엄》(K.1262, T.0293)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화엄경》은 고타마 붓다완전한 깨달음증득한 직후에 '부처의 연꽃[佛華]'으로 상징되는 그 깨달음경지와 그것의 증득을 가능하게 하는 수행을 그대로 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렇게 믿어져 오고 있다.[2][3] 이는 역사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렇기는 하나 《화엄경》은 매우 웅대한 희곡적 구상과 유려한 서술로 법계(法界), 즉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5]부처깨달음경지에서 보이는 우주, 즉 완전한 깨달음경지를 묘사하고 있으며,
'진리의 연꽃[法華]의 경전'이라는 뜻의 《법화경(法華經)》 즉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함께 대승경전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2]

《60화엄》은 7처8회34품(七處八會三四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처8회는 설법의 장소와 회좌(會座)의 수효이며, 34품은 장 또는 절의 수효이다.[2]

《60화엄》은 보살대승불교의 수행자수행과 그 과보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불지(佛地)의 41위를 설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6]
즉, 제1품부터 마지막 제34품까지의 《60화엄》 전체가 먼저 완전한 깨달음불지(佛地)를 먼저 설하고
그런 후 41위를 순서대로 설하여 다시 불지(佛地)에서 끝을 맺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41위대승불교에서 널리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보살 수행계위인, 《영락경》에서 설하고 있는 10신 ·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등각 · 묘각52위가 성립되는 바탕이 되었다.[7]


목차
1이름
2역사
3산스크리트어 원본과 티베트역
4한역본
4.1완역
4.1.160화엄
4.1.280화엄
4.2부분역
4.2.140화엄

560화엄의 내용

6문학
6.1소설 화엄경

7대한민국의 문화재
7.1국보
7.2보물
7.3시도 지정유형문화재

8같이 보기
9참고 문헌

10각주
11외부 링크

이름[편집]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제목의 뜻은 '대방광불과 화엄에 대한 경전'으로, 대방광불은 크고[大] 바르고[方正] 넓은[廣] 진리 그 자체인 완전한 깨달음[佛] 또는 그것을 성취한 존재인 부처[佛]를 말하고, 화엄은 완전한 깨달음부처장엄[嚴]하는 연꽃[華] 즉 완전한 깨달음부처의 지위를 증득할 수 있게 하는 원인들과 그 원인들에 의해 성취되는 갖가지 공덕을 뜻한다. 따라서 '대방광불화엄경'은 불지(佛地)라는 과위(果位)와 그 인위(因位)에 대한 경전을 뜻한다.[3]
역사[편집]

29세에 출가고타마 붓다가 35세인 기원전 589년 음력 12월 8일, 부다가야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서, 첫 제자들에게 최초에 설법한 것이 《화엄경》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불교학자들은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라서, 고타마 붓다최초에 설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화엄경》에 의거하여 지론종 · 화엄종이 생겨났다. 화엄종은 특히 제3조 현수대사에 의해 집대성되어, 현수종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본 불교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의상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종을 배워와서 신라에서 화엄종을 창시하였다.
산스크리트어 원본과 티베트역[편집]

《80화엄》과 비슷한 티베트역도 있으나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서는 보살의 수행계위(修行階位)를 서술한 제6회 〈10지품〉(第六會 十地品)[8]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구한 구도 이야기인 제8회 〈입법계품〉의 2종이 존재할 뿐이다.
한역본[편집]
완역[편집]
60화엄[편집]

《60화엄(六十華嚴)》(K.0079(8-1), T.0278(9-395))은 총 60권으로 이루어진 경전으로, 동진(東晉) 시대에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418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422년에 완료하였다. 3만 8천 게송, 3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60권 화엄》, 《구화엄(舊華嚴)》, 《진경(晉經)》, 《진본(晉本)》이라고도 한다.
80화엄[편집]

《80화엄(八十華嚴)》(K.0080(8-425), T.0279(10-1))는 총 80권으로 이루어진 경전으로, 당 중종 때에 실차난타가 695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699년에 완료하였다. 4만 5천 게송,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80권 화엄》, 《신화엄(新華嚴)》, 《당경(唐經)》, 《당본(唐本)》이라고도 한다.
부분역[편집]
40화엄[편집]

《40화엄(四十華嚴)》(K.1262(36-1), T.0293(10-661))은 총 40권으로 이루어진 경전으로, 당 덕종 정원(貞元) 11년에 남인도 오다국(烏茶)의 사자왕이 친히 써서 보내 온 산스크리트어본을 그 이듬해인 정원 12년(796년)부터 정원 14년(798년)까지 반야삼장(般若三藏)이 장안(長安)의 숭복사에서 번역하였다.

전체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으로, 줄여서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또는 《보현행원품》이라고도 하고, 번역 완료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연호를 따라 《정원경(貞元經)》이라고도 한다. 《60화엄》과 《80화엄》의 〈입법계품〉의 별역(別譯)이다.
60화엄의 내용[편집]

《60화엄》 전체에 걸쳐서 설해지고 있는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불지(佛地)의 41위대승불교에서 널리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보살 수행계위10신 ·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등각 · 묘각이 성립되는 바탕이 되었는데,[7] 41위는 8회 34품 중 아래 목록에 나타난 바와 같은 회와 품에서 설해지고 있다.[6]

한편, 《화엄경》에서는 '10신(十信)'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언급되거나 설해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10주를 설하기 전의 〈제8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에서 현수보살은 '청정믿음[淨信]'이 모든 수행의 근본이며 수행을 통해 증득하는 모든 공덕의 모태라고 설하고 있다.[9]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41위 또는 52위 등의 보살 수행계위 또는 보살행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성인의 계위이자 진정 성도(聖道: 성인의 길, 성스러운 길, 깨달음의 길 즉 불교)라고 할 수 있는 10지(十地)이다. 즉 윤회의 원인인 번뇌끊어낼 수 있는 10가지 또는 10단계의 무루지(無漏智, 즈냐나, 반야바라밀)이다.[10]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에서도 제22품에서 제30품 또는 제32품까지에 걸쳐서 10주 등의 다른 그룹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10지를 설명하고 있다.[11]

《60화엄》의 내용은 불지(佛地)에서 시작하여 불지(佛地)에서 끝난다.
불지(佛地): 제1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는 〈제1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과 〈제2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까지로, 보현보살부처의 깨달음을 설한다. 《60화엄》에서는 부처의 깨달음구경각을 가리키는 낱말로 '부처의 지위'라는 뜻의 불지(佛地)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12] 등각(等覺)을 간혹 사용하고 있다.[13] 하지만 묘각(妙覺)이라는 낱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14] 한편 《80화엄》과 《40화엄》에서는 불지(佛地)[15] 와 '등각(等覺) 대신에 정등각(正等覺)'[16] 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묘각(妙覺)이라는 낱말은 극히 드물게(검색결과로는 《80화엄》과 《40화엄》 각각에서 단 2회) 사용하고 있다.[17] 그리고 《60화엄》의 주석서로 《80화엄》(695~699년)과 《40화엄》(798년)이 번역되기 이전의 687~695년의 기간 동안 저술된 《화엄경탐현기》에서 법장(643~712)은 보살 수행계위10신 · 10해(十解) · 10행 · 10회향 · 10지 · 불지(佛地)의 51위를 말하고 있다.[18][19]
정신(淨信): 제2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는 〈제3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에서 〈제8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까지로, 문수보살청정한 믿음[淨信]을 설한다.
10주(十住): 제3 도리천궁회(忉利天宮會)는 〈제9 불승수미정품(佛昇須彌頂品)〉에서 〈제13 초발심보살공덕품(初發心菩薩功德品)〉까지로, 법혜보살10주를 설한다.
10행(十行): 제4 야마천궁회(夜摩天宮會)는 〈제14 명법품(明法品)〉에서 〈제18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까지로, 공덕림보살10행을 설한다.
10회향(十廻向): 제5 도솔천궁회(兜率天宮會)는 〈제19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에서 〈제21 금강당보살십회향품(金剛幢菩薩十廻向品)〉까지로, 금강당보살10회향을 설한다.
10지(十地): 제6 타화자재천궁회(他化自在天宮會)는 크게 둘로 나눈다. 〈제22 십지품(十地品)〉에서 〈제30 불소상광명공덕품(佛小相光明功德品)〉까지는 금강장보살10지를 설한다. 또한 〈제31 보현보살행품(普賢菩薩行品)〉과 〈제32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에서는 보현보살보살행을 설한다.
불지(佛地): 제7 보광법당중회(普光法堂重會)는 〈제33 이세간품(離世間品)〉이 해당하며, 보현보살보살행을 설한다. 또한, 제8 급고독원회(給孤獨園會)는 〈제34 입법계품(入法界品)〉이 해당하며, 53선지식이 법계에 들어감을 설한다.

문학[편집]
소설 화엄경[편집]

승려 출신의 시인, 소설가인 고은소설 화엄경을 썼다. 1991년 민음사에서 출판했다. 이 소설은 《화엄경》 〈입법계품〉을 소설 형식으로 쓴 것으로서, "어린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스웨덴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20] 1959년 운허스님이 "춘원이 쓰려다가 못 쓴 것이니 고은이 쓸 차례"라고 권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9년 부터 연재소설 형식으로 쓰기 시작하여, 20여년에 걸친 집필 끝에, 《소설 화엄경》이 완성되었다.

대한민국의 문화재[편집]

국보[편집]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 이 사경은 고려 이전의 유일한 작품으로, 754년(신라 경덕왕 13년)에 연기법사(緣起法師)가 그의 부모를 위해서 발원한 것이다.
국보 제202호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37
보물[편집]
보물 제685호 《대방광불화엄경진본(권4)》 - 《진본(晉本)》 60권 중에서 제4권으로서,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임
보물 제752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정원본》 - 감지에 금으로 새긴 것
보물 제1017호 《대방광불화엄경
보물 제1192호 《대방광불화엄경진본(권38)》 -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한역한 《화엄경》을 목판으로 찍은 책.
보물 제104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 신라시대에 명필 김생(金生)이 쓴 글씨를 새긴 것으로서, 신라 문무왕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장륙전(丈六殿)[21] 에 새긴 《화엄경》의 판석경이다.

시도 지정유형문화재[편집]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6호 《대방광불화엄경 권3》 - 고려시대 인경된 동진 천축 삼장 불타발타라 역의 화엄경 진본으로 보물 제685호, 제686호와 동일본으로 추정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7호 《대방광불화엄경 권32》 - 당의 반야가 번역한 정원본 400권 중 권32의 령권 1축이 전래된 것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8호 《대방광불화엄경소 권3〜4》 - 당의 실차난타가 번역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80권에 대하여 정원이 해설한 것으로, 전체 120권 가운데 권3~4의 1책이 전래된 것이다.

같이 보기[편집]
일체유심조
보살 수행계위
52위
화엄경 수사 목록

참고 문헌[편집]1차 자료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K.79, T.278). 《대방광불화엄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79(8-1), T.278(9-395).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60권 화엄》《구화엄(舊華嚴)》《진경(晉經)》 또는 《진본(晉本)》
실차난타 한역, 이운허 번역 (K.80, T.279). 《대방광불화엄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80(8-425), T.279(10-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80권 화엄》《신화엄(新華嚴)》《당경(唐經)》 또는 《당본(唐本)》
반야 한역, 이운허 번역 (K.1262, T.293).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262(36-1), T.293(10-66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40권 화엄》《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보현행원품》 또는 《정원경(貞元經)》
(중국어) 불타발타라 한역 (T.278).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대정신수대장경. T9, No. 278,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60권 화엄》《구화엄(舊華嚴)》《진경(晉經)》 또는 《진본(晉本)》
(중국어) 실차난타 한역 (T.279).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대정신수대장경. T10, No. 279,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80권 화엄》《신화엄(新華嚴)》《당경(唐經)》 또는 《당본(唐本)》
(중국어) 반야 한역 (T.293).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대정신수대장경. T10, No. 293,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40권 화엄》《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보현행원품》 또는 《정원경(貞元經)》2차 자료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성전 > 화엄경"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고려대장경 전자 불교용어사전》.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 / (사)장경도량 고려대장경연구소.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고려대장경연구소 (K0079 (T.0278)). 《대방광불화엄경 해제》.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고려대장경연구소 (K1513 (T.1733)). 《화엄경탐현기 해제》. 2013년 4월 12일에 확인.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법장 술, 노혜남 번역 (K.1513, T.1733). 《화엄경탐현기》.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1513(47-458), T.1733(35-107).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행담 (2008). 《『화엄경』「十地品」에 나타난 修行次第에 관하여》. 지도교수 해주.
(중국어) 법장 술 (T.1733).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대정신수대장경. T35, No. 1733,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佛門網. 《佛學辭典(불학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편집]

원명은 "부다아바탐사카 나마 마하바이풀랴 수트라(Buddha avatamsaka nama mahavaipulya sutra)"이다.
이동:가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성전 > 6001 > 화엄경,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화엄경: 華嚴經 원명은 부다아바탐사카 나마 마하바이풀랴 수트라(Buddha­avatamsaka­nama­mahavaipulya­sutra)이고 자세하게 말해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 부른다. 초기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으로서 7처8회34품(七處八會三四品)으로 되어 있는데 7처8회라 함은 설법의 장소와 회좌(會座)의 수효이다. 한역으로는 현재 60권본(本)과 80권본 등 2종의 완본(完本)과 이 양자의 마지막 장인 제8회 입법계품(第八會入法界品)에 해당하는 40권본의 3종이 있으며 80권본과 비슷한 티베트역도 있으나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서는 보살의 수행계위(修行階位)를 서술한 제6회 10지품(第六會十地品:독립경전으로서의 <十地經)>)과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구한 구도 이야기인 제8회 입법계품의 2종이 존재할 뿐이다. <화엄경>은 불타가 성도(成道) 직후에 스스로의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그대로 설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그렇게 믿어져 왔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매우 웅대한 희곡적 구상(戱曲的構想)과 유려(流麗)한 서술로 불타의 깨달음의 경지(法界)를 묘사하려고 한 것으로서, <법화경>과 함께 대승성전(大乘聖典)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이동:가 운허,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운허"[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88FAFE59AB4E7B693rowno1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2013년 4월 13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星雲, "大方廣佛華嚴經".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大方廣佛華嚴經:  梵名 Buddhāvatajsaka-mahāvaipulya-sūtra。又稱華嚴經、雜華經。乃大乘佛教要典之一。我國華嚴宗即依據本經,立法界緣起、事事無礙等妙義為宗旨。茲就本經之經題而論,大方廣佛華嚴經,係「法喻因果」並舉,「理智人法」兼備之名稱,一經之要旨,皆在此中。大,即包含之義;方,即軌範之義;廣,即周遍之義。亦即總說一心法界之體用,廣大而無邊,稱為大方廣。佛,即證入大方廣無盡法界者;華,即成就萬德圓備之果體的因行譬喻;故開演因位之萬行,以嚴飾佛果之深義,則稱為佛華嚴。總之,大方廣佛華嚴係所詮之義理,而「經」則為能詮之言教。
 本經係如來成道後之第二七日,於菩提樹下為文殊、普賢等上位菩薩所宣說之自內證法門,此一華嚴經教乃教法中之根本法輪,故稱「稱性本教」。又因本教法屬頓教法門,故亦稱初頓華嚴。內容記述佛陀之因行果德,開顯出重重無盡、事事無礙之妙旨。華嚴經雖出於印度,然尚未發揮本經最高之玄旨,直至我國成立華嚴宗,方才發揚其真義。
 關於本經之梵本,自古以來即有諸種異說,據法藏之華嚴經傳記卷一載,龍樹菩薩於龍宮中見本經有上、中、下三本,其上本與中本之頌數品數浩大,非凡力所能受持,故隱而不傳;至於所傳之下本,即是十萬偈四十八品(或謂三十八品)之華嚴經。其後,世親菩薩作十地經論以釋十地品,金剛軍、堅慧等論師亦造有十地品之釋論。又華嚴經探玄記卷一,將本經分為恆本、大本、上本、中本、下本、略本等六本。華嚴經旨歸、華嚴經疏卷三等則舉出:異說經、同說經、普眼經、上本經、中本經、下本經、略本經、主伴經、眷屬經、圓滿經等十種之別。另據大智度論卷一○○所載,不可思議解脫經(四十華嚴經)之梵本共有十萬偈。然梁譯攝大乘論釋卷十五則謂,華嚴經僅有百千偈,故稱百千經。
 茲將現存華嚴經之別生經,即由大本別出抄譯(又稱別譯)之經,以及華嚴經之別本,與華嚴經之品名相比,列表如下:
 此外,華嚴經之異譯本(相當華嚴經之全部),則有下列三種:
 (一)六十華嚴。凡六十卷。東晉佛馱跋陀羅譯。又稱舊華嚴、晉經。收於大正藏第九冊。總成七處,八會,三十四品。華嚴宗將本經三十四品攝為教起因緣分、舉果勸樂生信分、修因契果生解分、託法進修成行分、依人入證成德分等五分,此係就經文而別之;及立所信、差別、平等、成行、證入等五周之因果,此則就義理而區分。如上表所示。
 六十華嚴之結構組織,採用七處八會之說法,七處,即演說之場所為七處;八會,即演說之回數為八會。茲列表於下頁。
 此外,天台宗將本經之八會分為前分與後分,前分,乃前七會屬之,為佛成道三七日間所說;後分,乃後一會屬之,為後時之所說。又菩提流支認為前五會乃佛成道後之初七日所說,而第六會以後,則為第二七日所說。另澄觀於華嚴經疏卷四則舉出,新華嚴(八十華嚴,採七處九會之說)九會中,前五會為初七日之說法,第六、七、八三會為第二七日之說法,第九會入法界品則為後時之說法。
 關於本經之翻譯,據出三藏記集卷九、華嚴經探玄記卷一等所舉,華嚴經之梵本,原有十萬偈,由東晉支法領從于闐國攜入三萬六千偈,自安帝義熙十四年(418)三月,由佛馱跋陀羅譯成六十卷,稱為六十華嚴,此即第一譯。然六十華嚴中之入法界品尚有缺文,直至唐永隆元年(680)始補譯之。
 本經之註疏甚多,有華嚴經疏七卷(慧遠)、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五卷(智儼)、華嚴經孔目章四卷(智儼)、華嚴經探玄記二十卷(法藏)等。
 (二)八十華嚴。凡八十卷。唐代實叉難陀譯。又稱新華嚴、唐經。收於大正藏第十冊。總成七處,九會,三十九品。為六十華嚴之異譯。茲將八十華嚴與六十華嚴之異同處,列表如左:
 八十華嚴之梵本,乃實叉難陀應武則天之請,從于闐國攜入我國,自唐武則天證聖元年(695)三月,於遍空寺內始譯,武后親臨譯場,揮毫首題品名,至聖曆二年(699)十月功畢,此即第二譯。新譯之八十華嚴比舊譯之六十華嚴,文辭流暢,義理更周,故流通較盛。華嚴宗之主經即此八十華嚴。
 此外,本經之西藏譯本,總成四十五品。其中,前四十四品相當於本經之前三十八品,第四十五品相當於本經第三十九入法界品。又西藏本之別譯有第十一品、第三十二品等二品。上述西藏本之文句與本經出人之處不少。
 關於本經之註疏,有略疏刊定記十五卷(慧苑)、華嚴經疏三十卷(神秀)、華嚴經疏六十卷(澄觀)、華嚴經綸貫一卷(復菴)、華嚴經綱要八十卷(德清)等。
 (三)四十華嚴。凡四十卷。唐代般若譯。全稱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略稱普賢行願品,又稱貞元經。收於大正藏第十冊。為新舊兩譯華嚴經入法界品之別譯,與傳於尼波羅國(尼泊爾)之九部大乘經中之華嚴經為同本。內容記述善財童子歷參五十五善知識(或謂五十三參),而成就普賢之行願。
 四十華嚴僅有入法界品一品,然此品佔華嚴經四分之一以上,故視之為異譯,茲將其結構組織,列表如後。
 又四十華嚴之敘述,雖與新舊兩華嚴經之入法界品大同小異,然其文較廣,於卷四十中新添加普賢十種大願,及「重頌」(以偈頌重覆闡釋經法)之普賢廣大願王清淨偈,為本經之特色。
 關於本經之翻譯,係於唐德宗貞元十一年(795)十一月,由南天竺烏荼國師子王派使者進貢其所親寫華嚴經之梵本,翌年六月,於長安崇福寺,由罽賓般若三藏譯之,澄觀及圓照、鑑虛等諸師詳定,至貞元十四年二月譯畢,共四十卷,此即四十華嚴。又本經之梵本,現保存於英、法、印度等國之圖書館或學會中。本經亦有西藏譯本及西夏文字之經本。
 此外,本經記述善財童子遊行南方,歷訪善知識之說,與道行般若經等所述薩陀波倫菩薩東行參求般若之說類同。又本經所記之諸大聲聞不能聞知佛之自在神變,以寓「斥小歎大」(斥責小乘,稱歎大乘)之意,與維摩經等之旨趣一致。
 本經之別譯,有西秦聖堅所譯之羅摩伽經三卷、唐代地婆訶羅所譯之大方廣佛華嚴經入法界品一卷、唐代不空所譯之大方廣佛華嚴經入法界品四十二字觀門一卷。又本經卷四十普賢廣大願王清淨偈之異譯有二種。
 本經之註疏,有華嚴經行願品疏十卷(澄觀)、華嚴經別行疏二卷(仲希)、華嚴經普賢行願修證儀一卷(淨源)等。另讚詠善財童子歷參五十五善知識者,有大方廣華嚴入法界品讚(楊傑)、文殊指南圖讚(惟白)等。〔出三藏記集卷二、歷代三寶紀卷三、卷七、大唐內典錄卷六、開元釋教錄卷三、至元法寶勘同總錄卷二、唐本一切經目錄卷上、貞元新定釋教目錄卷十三、卷十七、大藏聖教法寶標目卷九〕(參閱「五十三參」1048、「五十五善知識」1053、「五周因果」1106、「善財童子」4888;「華嚴宗」5245) p758"
운허, "蓮華藏世界(연화장세계)".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蓮華藏世界(연화장세계): 【범】 padmagarbhalokadhātu 십련화장장엄세계해(十蓮華藏莊嚴世界海)ㆍ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ㆍ십련화장세계(十蓮華藏世界)ㆍ연화대장세계(蓮華臺藏世界)ㆍ화장 세계(華藏世界)ㆍ화장계(華藏界)라고도 함. 비로자나불이 있는 공덕무량(功德無量)ㆍ광대장엄(廣大莊嚴)의 세계를 말함. 이 세계는 큰 연화로 되고, 그 가운데 일체국(一切國)ㆍ일체물(一切物)을 모두 간직하였으므로 연화장세계라 함. 그 세계의 형상에 대하여는 『화엄경(華嚴經)』과 『범망경(梵網經)』이 달리 설명하였음. 『화엄경(華嚴經)』에는 세계의 맨 밑에 풍륜(風輪)이 있고, 풍륜 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고, 향수해 중에 큰 연화가 나고 연화장 세계는 그 속에 있어 사방이 평평하고 깨끗하고 견고하며, 금강륜산(金剛輪山)이 세계를 둘렀다 함. 『범망경』에는 노사나불이 천 잎으로 된 연화대에 앉았는데 그 천 잎이 각각 한 세계이고, 노사나불로부터 화현한 천 석가가 그 천 세계에 있고 한 세계마다 백억 나라가 있고, 한 나라에 한 석가가 있어서 보리수(菩提樹) 아래 앉았다고 하였음. 이것은 무진연기(無盡緣起)의 깊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
이동:가 고려대장경연구소 K0079 (T.0278), 대방광불화엄경(60화엄) 해제
"전체 34품으로 이루어진 대부(大部)의 경전이다. 그런 까닭에 어느 한 시점에 일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하나의 품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뒤 따로이 별행경(別行經)으로 유통되다가 후대에 집대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현재 화엄경의 주요한 품에는 그것과 상응하는 지분경(支分經)들이 존재함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현재 산스크리트 어 사본이 남아 있는 것은 다만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뿐인데, 이를 통해서도 이들 두 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십지품의 성립이 더욱 빠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대 학자들은 서기 150년 이전에는 성립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입법계품 역시 십지품을 바로 뒤이어서 서기 163년 이후에는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전국(Khotan) 및 중국의 지명까지 등장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화엄경의 편집은 중국의 지명까지도 잘 알 수 있는 중앙 아시아에서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시기는 불타발다라가 번역한 시기로부터 그렇게 멀리 소급되지는 않으리라 생각되며, 일부 학자들은 아예 그 편집자로서 불타발다라를 상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 설법의 장소와 모임을 기준으로 전체 60권 34품을 크게 7처(處) 8회(會)로 나눈다. 제1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는 제1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과 제2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을 말하는 것이며, 보현 보살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하는 내용이다. 제2 보광법당회(普光法堂會)는 제3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에서 제8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까지를 말하며, 문수 보살이 청정한 믿음을 설한 것이다. 제3 도리천궁회(忉利天宮會)는 제9 불승수미정품(佛昇須彌頂品)에서 제13 초발심보살공덕품(初發心菩薩功德品)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법혜(法慧) 보살이 10주(住)를 설한 것이다. 제4 야마천궁회(夜摩天宮會)는 제14 명법품(明法品)에서 제18 보살십무진장품(菩薩十無盡藏品)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공덕림(功德林) 보살이 10행(行)을 설한 것이다. 제5 도솔천궁회(兜率天宮會)는 제19 여래승도솔천궁일체보전품(如來昇兜率天宮一切寶殿品)에서 제21 금강당보살십회향품(金剛幢菩薩十廻向品)까지를 말하는 것이며, 금강당 보살이 10회향을 설한 것이다. 제6 타화자재천궁회(他化自在天宮會)는 크게 둘로 나눈다. 제22 십지품(十地品)에서 제30 불소상광명공덕품(佛小相光明功德品)까지는 금강장(金剛藏) 보살이 10지(地)를 설한 것이며, 제31 보현보살행품(普賢菩薩行品)과 제32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은 보현 보살이 보살행을 설한 것이다. 제7 보광법당중회(普光法堂重會)는 제33 이세간품(離世間品)이 해당하며, 보현 보살이 보살행을 설하고 있다. 제8 급고독원회(給孤獨園會)는 제34 입법계품이 해당하며, 53선지식이 법계에 들어감을 설한 것이다. 이와 같이 '지상 @[→] 천상 @[→] 지상'으로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부처님은 오직 침묵한 채 여러 보살들이 설주(說主)가 되어서 설법하고 있다. 보광법당의 설법이 2회에 걸치므로 7처 8회가 된다. ... 화엄경이 비록 방대하지만 그 핵심 사상은 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성기 사상과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현행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화엄경은 화엄종의 소의 경전으로서 대승 불교의 역사 속에서 널리 읽힌 경전이다. 그 영향은 화엄종의 범위를 넘어서 선종에까지 크게 미쳤다. 주석서로는 지엄(智儼)의 수현기(搜玄記)와 법장의 탐현기(探玄記)가 유명하며, 그 핵심 사상을 간추려서 노래한 것으로는 의상(義湘)의 법성게(法性偈)가 유명하다."
이동:가 운허, "菩薩瓔珞本業經(보살영락본업경)". 2013년 4월 10일에 확인
"菩薩瓔珞本業經(보살영락본업경):
K-530, T-1485. 축불념(竺佛念)이 전진(前秦)시대인 374년에서 요진(姚秦)시대(384-417) 사이에 번역하였다. 줄여서 『보살영락경』ㆍ『본업경』ㆍ『영락경』ㆍ『영락본업경』이라고 한다. 보살의 본업인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廻向)ㆍ10지(地)ㆍ등각(等覺)ㆍ묘각(妙覺)의 42현성(賢聖)의 행업(行業)과 인과(因果)를 설한 경전이다. 『범망경』과 함께 대승의 계율을 설한 경전으로, 전체 8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 「집중품(集衆品)」에는 부처님이 발하신 42가지의 빛이 영락이 되어 불신(佛身)을 장엄하고 법계에 가득 하자, 시방 일체의 국토에서 수많은 보살들이 몰려오는 광경이 설해져 있다. 제2 「현성명자품(賢聖名字品)』에서는 부처님께서 42현성명문(賢聖名門)과 10원명자(願名字) 보살, 10종 불가회계(不可悔戒)에 대해 설하신다. 제3 「현성학관품(賢聖學觀品)』에서는 보살 명자(名字)의 의상(義相)을 배우고 관찰하는 것에 대하여 설하시는데, 습종성(習種性)ㆍ성종성(性種性)ㆍ도종성(道種性)ㆍ성종성(聖種性)ㆍ등각성(等覺性)ㆍ묘각성(妙覺性)의 6종성과 동ㆍ은ㆍ금ㆍ유리ㆍ마니ㆍ수정의 여섯 가지 영락을 연결지어 말씀하신다. 제4 「석의품(釋義品)」에서는 10주부터 묘각지의 의상(義相)에 대해 설하신다. 의(義)는 공덕을 가리키며, 보살의 체(體)로부터 나온다. 제5 「불모품(佛母品)」에서는 2제(諦)와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에 대해 설하시고, 제6 「인과품(因果品)」에서는 3세의 모든 부처님이 행하신 인(因)인 10바라밀에 대해 설하신다. 제7 「대중수학품(大衆受學品)에서는 일체의 중생이 3보의 바다에 들어와서는 믿음으로 근본을 삼고 불가(佛家)에 들어와서는 계(戒)로써 근본으로 삼는데, 계는 일체행 공덕장의 근본이고 일체의 악을 없애는 정법의 밝은 거울이라고 말씀하시고, 섭선법계(攝善法戒)ㆍ섭중생계(攝衆生戒)ㆍ섭율의계(攝律義戒)와 3종의 수계(受戒)에 대해 설하신다. 제8 「집산품(集散品)」에서는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42현성의 인과법문을 들었으니 모두 3보리심을 일으키고 받아 지닐 것을 당부하신다. 이 경전의 42현성은 60권 『화엄경』에 의거한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보살본행경』ㆍ『범망경』ㆍ『인왕반야경』ㆍ『보살지지론』ㆍ『우바새계경』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수(隋)의 천태대사와 당(唐)의 현수 법장이 이 경전을 중시하였으며, 주석서로는 원효의 『소(疏)』 하권만이 일본속장경에 전해지고 있는데 『의천록(義天錄)』에 의하면 이 소(疏)는 본래 3권이었다고 한다. 이 경의 번역자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으며,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일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독립경전으로서의 《십지경(十地經)》
행담 2008, 5. 믿음[信]쪽
"菩薩道의 첫걸음은 믿음[信]부터 시작된다. 이에 대하여 『華嚴經』「賢首菩薩品」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믿음은 佛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모든 선한 법을 증장시키고 모든 의혹을 모두 없애고 애욕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여 마침내 열반의 세계의 문을 열어 보인다.8)

믿음은 불도의 근본이며 복덕의 모태로써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인도자가 된다는 것으로 信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한 것이다.
믿음은 迷信이나 盲信이 아닌 맑고 깨끗한 淨信이어야 한다고 賢首菩薩은 주장하고 있다. 청정한 믿음에서 모든 공덕이 생기기 때문이다.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바른 법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해 집착이 없어져서 완전히 청정해지며, 그로 인해 위없는 마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9)
이렇게 중요한 믿음에 대하여 『華嚴經』에는 十信의 명칭이나 십신보살의 실천행에 대해서는 설해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를 法藏은 十住 내지 十地의 실천행에는 階位가 있을 수 있지만, 믿음에는 계위가 없기 때문에 나열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10)
8) 『大正藏』9, p.433, “信爲道元功德母 增長一切諸善法 除滅一切諸疑惑 示現開發無上道”
9) 『大正藏』9, p.433.
10) 『探玄記』권4, (『大正藏』35, p.187上), “釋云信不成位故不例也.”"
Gampopa's "Jewel Ornament of Liberation", especially the ten bhumis, where the absorption state or non-dual state, which characterizes all ten bhumis, in this well-respected traditional text, is equated to the state of jnana
고려대장경연구소 K1513 (T.1733), 화엄경 탐현기 해제
"[《화엄경탐현기》는] 60권 본 화엄경을 해석한 주석서인데, 열 가지 범주 즉 10문(門)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은 탐현기 전체의 열 가지 범주 중에서 아홉 가지 범주를 다루고 있다. ... 이상의 아홉 가지 범주가 모두 제1권에서 설해지고 있으니, 제1권을 현담(玄談)이라 부른다. 열째 범주는 경문을 따라서 해석하는 것(隨文解釋)이다. 제2권 이하 전체에 걸치고 있는데, 법장은 스스로 화엄경 전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밝힌다. 그는 크게 화엄경을 서분(序分)과 정종분(正宗分)으로 나누고 있으니, "화엄경은 법계에 계합하는 법문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유통분(流通分)이 없다."라고 하였다. ... 제4권 이하는 정종분을 주석하는 것이니, 각 품마다 반드시 이름을 해석하는 석명(釋名), 그 품이 그 위치에 있어야 할 논리적 이유를 앞뒤의 품과 관련하여 논하는 내의(來意), 그 품의 주제를 분석하여 밝힌 종취(宗趣), 본문의 구절 구절을 해석하는 석문(釋文) 등의 넷으로 나누어서 번쇄하다 할 정도로 철저히 주석한다. 그의 스승 지엄(智儼)이 그에게 문지(文持)라는 호를 하사할 정도이다. 제4권 이하의 정종분 중에서 가장 자세하게 주석하고 있는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이다. 입법계품은 원래 본문이 방대하기 때문이지만 십지품은 제9권부터 제14권에 이르기까지 총 5권에 이르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주석하고 있음을 통해서 볼 때, 화엄 교학에 있어서 10지 사상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구글 CBETA 검색, "佛地".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佛地: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2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25.htm
T09n0278_p0562a29(04)║深得大悲力故,名為過聲聞、辟支佛地、趣佛智地。
T09n0278_p0562b01(01)║是菩薩住是地,無量身業無相行,無量口、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2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02.htm
T09n0278_p0404b10(00)║數不可盡。 如來真子, 欲觀佛地,
T09n0278_p0404b11(00)║一切法門, 無量無邊, 非諸佛子,
T09n0278_p0404b12(00)║所有境界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3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35.htm
T09n0278_p0623c19(00)║如來復有巧方便智風,能持一切菩薩,
T09n0278_p0623c20(01)║不令究竟盡滅墮於聲聞、辟支佛地。
T09n0278_p0623c21(03)║菩薩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5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55.htm
T09n0278_p0751a13(01)║捨離世間,具足佛地智慧猛盛,佛法現前, ...
T09n0278_p0751a22(07)║勇猛精進至佛地藏菩薩受生法。 「佛子!何等為供養
一切佛,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10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10.htm
我於諸地如說行時,逮得無量諸功德藏, T09n0278_p0460a15(04)║得無量功德藏
已,漸到佛地,到佛地已,能作佛事。』 T09n0278_p0460a16(01)║是故,菩薩摩訶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2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23.htm
T09n0278_p0548b12(00)║而無有障礙, 能至於佛地。 T09n0278_p0548b13(00)
║住是初地中, 多作閻浮王, T09n0278_p0548b14(00)║善知於諸法, 常行慈悲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4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41.htm
... 觀察現前於一切佛法, T09n0278_p0659a22(02)║修佛眼故;觀察智慧,隨器
說法故; T09n0278_p0659a23(05)║觀察無生法忍,決定得佛法故;觀察不退佛地,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3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38.htm
... 善知識發菩提心, T09n0278_p0641c20(06)║長養善根智慧光明;示現一切諸佛
智慧光明; T09n0278_p0641c21(04)║化一切眾生悉令成熟,安住佛地智慧光明;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3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32.htm
如來有大人相, T09n0278_p0602a25(05)║名分別法界雲,如來智慧廣照佛地一切
菩薩眾、 T09n0278_p0602a26(03)║無量法海、無量佛剎,令一切眾生入佛境界,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18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18.htm
T09n0278_p0514a18(08)║令一切眾生得薩婆若清淨佛地,究竟得到普賢菩薩所行
彼岸; T09n0278_p0514a19(00)║令一切眾生得大地陀羅尼,離癡正念,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4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45.htm
T09n0278_p0687b05(00)║善女人,成就十種大心,則得佛地,
T09n0278_p0687b06(03)║況菩薩地;何等為十?所謂:發廣大心,
T09n0278_p0687b07(05)║長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4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42.htm
... 眾魔,滅除煩惱向法; T09n0278_p0663a02(02)║安住佛地,知一切眾生諸根,隨
應聞法, T09n0278_p0663a03(03)║廣為演說向法;安住無量無邊清淨法界向法。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3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53.htm
T09n0278_p0737a19(09)║普照如來過去無量菩薩諸地,無量佛地,神力自在;無量
劫中, T09n0278_p0737a20(02)║所修習起,淨無量佛過去菩薩地,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4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54.htm
... 憂悲惱海,得如來樂, T09n0278_p0742a08(00)║入佛功德精進之海,安住佛地,
T09n0278_p0742a09(05)║滿足如來一切智力,究竟十力。如此人者,乃能信解,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09/0278_058.htm
T09n0278_p0773a06(01)║安住正法;過童蒙地,住諸菩薩功德之地,
T09n0278_p0773a07(01)║具智慧地,得諸佛地,菩薩行海;
T09n0278_p0773a08(06)║成 ...
CBETA T09 No. 266《佛說阿惟越致遮經》卷3
www.cbeta.org/result/normal/T09/0266_003.htm
... 宮殿無所不照。」 T09n0266_p0224b14(02)║說是語時,此之國土六反震動,遍
雨天華。 T09n0266_p0224b15(02)║ 阿難白佛:「地何故動,而雨天華?」 佛告阿難
: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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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726a22(03)║辟支佛地, T09n0278_p0726a23(16)║無量無邊眾生
得菩薩不可思議喜幢自在法門,於念念中, T09n0278_p0726a24(09)║無量無邊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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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菩薩行不離佛地,超出世間,法身圓滿, T09n0278_p0755c07(02)║應世受生,普
現種種諸方便身?知法無性, T09n0278_p0755c08(02)║示現一切眾生之身,解 ...
CBETA T09 No. 263《正法華經》卷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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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63_p0112c10(00)║成大神通聰明智慧,住于佛地習佛慧誼,
T09n0263_p0112c11(00)║於世希有,建大聖力。世尊往古,
T09n0263_p0112c12(05)║亦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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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等覺: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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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443c19(00)║如是取相者, 言有佛等覺, T09n0278_p0443c20(00)
║顛倒無正念, 是故不見佛。 T09n0278_p0443c21(00)║能知此實法, 寂滅真如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3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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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627a07(06)║如是等覺一切無性無盡智、自然智,
T09n0278_p0627a08(08)║一切如來無極大悲度脫眾生。 「佛子!譬如虛空界,
世界若成、 ...
CBETA T09 No. 266《佛說阿惟越致遮經》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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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66_p0222c05(00)║進世尊等覺, 不應供養佛; T09n0266_p0222c06(00)
║設有受此經, 皆除猗果想, T09n0266_p0222c07(00)║是則為供養, 世尊最上 ...
CBETA T09 No. 268《佛說廣博嚴淨不退轉輪經》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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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68_p0260a28(00)║佛為諸菩薩, 說是差別相。 T09n0268_p0260a29(00)
║「如是,阿難!如來.應.正等覺, T09n0268_p0260b01(07)║以方便力為聲聞 ...
CBETA T09 No. 273《金剛三昧經》卷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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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3_p0370a13(00)║佛言:「一者、十信行,二者、十住行,三者、十行行,
T09n0273_p0370a14(00)║四者、十迴向行,五者、十地行,六者、等覺行。
CBETA T09 No. 263《正法華經》卷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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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63_p0113c08(01)║故為說言,告諸比丘:『這度終始方今出家,
T09n0263_p0113c09(01)║成平等覺從來未久, T09n0263_p0113c10(10)║甫乃
逮得無上 ...
CBETA T09 No. 266《佛說阿惟越致遮經》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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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白佛:「何謂明證?」 眾祐答曰: T09n0266_p0202c24(02)║「明證經籍及諸聽者
然後說法。 T09n0266_p0202c25(07)║如來法力最明等覺,因其明證而為分別。
CBETA T09 No. 263《正法華經》卷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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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63_p0093a06(00)║雨諸天華, 紛紛如降, 用散等覺,
T09n0263_p0093a07(00)║人中之導。 於虛空中, 暢發雷震,
T09n0263_p0093a08(00)║而以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20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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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527c01(11)║得一切佛無量無邊滿足勝眾生法,示現一切眾生、薩婆
若、十力、等覺。 T09n0278_p0527c02(01)║佛子! T09n0278_p0527c03(16)║ ...
CBETA T09 No. 263《正法華經》卷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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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知如來等覺有無央數倉庫帑藏, T09n0263_p0076b12(00)║以得自在,為諸黎庶
現大法化諸通愍慧, T09n0263_p0076b13(00)║當作是知、當解此誼。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7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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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765b06(05)║如是憶念恒河沙劫,我常不捨諸佛如來、應、正等覺,
T09n0278_p0765b07(01)║從彼一切諸如來所, T09n0278_p0765b08(10)║聞此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4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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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669a02(02)║所出淨音,悉與一切眾生心等,覺如來力;
T09n0278_p0669a03(02)║悉能受持一切佛法,覺如來力; T09n0278_p0669a04(
06)║得與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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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9n0278_p0423c24(00)║等覺明解脫, 無量不可數, T09n0278_p0423c25(00)
║無邊世界中, 因緣和合起。 T09n0278_p0423c26(00)║無諸陰界入, 永離生死 ...
CBETA T09 No. 278《大方廣佛華嚴經》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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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心,常為諸佛之所護念; T09n0278_p0485b19(02)║得佛無量住持神力,決定
究竟到於彼岸, T09n0278_p0485b20(03)║清淨正念,速成等覺;得諸如來心之原
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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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ETA T09 No. 273《金剛三昧經》卷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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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等平等,等覺三地,妙覺三身, T09n0273_p0371b16(01)║於九識中皎然明淨,無
有諸影。善男子! T09n0273_p0371b17(03)║是法非因、非緣,智自用故;非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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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地: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6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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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026a28154)║「云何是諸佛地?云何是諸佛境界?云何是諸佛加持?
云何是諸佛 ... T10n0279_p0026b15(00)║云何了知諸佛地? 云何觀察如來境?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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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39c14(07)║乃至佛地解釋加持。 T10n0287_p0539c15(00)║「復
次,菩薩作是思惟:『諸佛之法如是甚深, T10n0287_p0539c16(01)║如是寂靜, ...
CBETA T10 No. 308《佛說大方廣菩薩十地經》卷1
www.cbeta.org/result/normal/T10/0308_001.htm
T10n0308_p0964c01(12)║超越聲聞辟支佛地為首尸羅波羅蜜,淨身業為首尸羅
波羅蜜, T10n0308_p0964c02(04)║淨口業為首尸羅波羅蜜,淨意業為首尸波羅蜜
, ...
CBETA T10 No. 303《佛華嚴入如來德智不思議境界經》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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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303_p0917c08(08)║順到無邊無中佛地平等(二十一)、法界最極(二十二)、
虛空界究竟(二十三)、 T10n0303_p0917c09(02)║無後際盡(二十四)、於諸劫數常轉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40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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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211a24(02)║勢力慧菩薩、世間慧菩薩、佛地慧菩薩、
T10n0279_p0211a25(04)║真實慧菩薩、尊勝慧菩薩、智光慧菩薩、無邊慧菩薩、 ...
CBETA T10 No. 294《佛說羅摩伽經》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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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94_p0870a08(08)║令諸眾生遠離聲聞辟支佛地,疑惑顛倒,有無二邊,皆
悉歡喜, T10n0294_p0870a09(01)║得智慧樂,悉教一切迴向佛道。又於一切毛孔 ...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1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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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93_p0744a21(07)║令其超越一切聲聞、辟支佛地;或為演說,不住生死,
T10n0293_p0744a22(03)║不住涅槃,令其不著有為、無為,於敬、於慢,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1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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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096b23(10)║何以故?我等若於地地中住,成就如是廣大功德;具
功德已, T10n0279_p0096b24(03)║漸入佛地;住佛地已,能作無邊廣大佛事。
CBETA T10 No. 305《信力入印法門經》卷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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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305_p0929a13(00)║得至平等無邊無中佛地之處。 T10n0305_p0929a14(
05)║ T10n0305_p0929a15(23)║得至諸佛廣大如法界究竟如虛空無有邊際自然 ...
CBETA T10 No. 286《十住經》卷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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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6_p0518c03(03)║名為過聲聞辟支佛地趣佛智地。是菩薩住是地, ...
T10n0286_p0519a01(06)║隨行佛智轉聲聞、辟支佛地,得至諸佛法藏而現於魔界;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6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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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331b24(00)║不墮聲聞、辟支佛地,生一切如來家,
T10n0279_p0331b25(03)║具一切菩薩願,學習一切如來功德,
T10n0279_p0331b26(06)║修行 ...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27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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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93_p0786b14226)║辟支佛地?菩薩云何住於佛地而能遍入諸菩薩地?
菩薩云何住菩薩位而能入佛種種境界?菩薩云何超於世間而能成就世間之法?菩薩
云 ...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3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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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者,如善方便、 T10n0293_p0812b20(01)║善巧,證得諸佛地故;善知識者,猶如
門戶, .... T10n0293_p0813a13(02)║謂於諸法無迷惑故;善知識者,是諸佛地, ...
CBETA T10 No. 307《佛說莊嚴菩提心經》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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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307_p0962b18(03)║離聲聞地,四曰、離辟支佛地,五曰、身清,六曰、口清,
T10n0307_p0962b19(01)║七曰、意清,八曰、莊嚴心,九曰、斷地獄緣,十曰、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2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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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為菩薩摩訶薩施僕使時善根迴向; T10n0279_p0151a05(01)║為令眾生遠離塵垢
,淨治佛地, T10n0279_p0151a06(06)║能現如來自在身故。 「佛子!菩薩摩訶薩 ...
CBETA T10 No. 292《度世品經》卷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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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不念言。眾生將無諸根純淑。 T10n0292_p0635c25(01)║吾明不及。現佛境界。未
有此應。以大勇猛。 T10n0292_p0635c26(02)║觀眾生根。為顯佛地。雖化眾生。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7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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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66b17(00)║若法決定、不決定, 三乘所行及佛地;
T10n0287_p0566b18(00)║有為、無為行差別, 如是而知入世間。
T10n0287_p0566b19(00)║即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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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36c04(00)║ 辯地能作最微妙, 由此佛地有修證。
T10n0287_p0536c05(00)║ 微細難見離分別, 遠離心地難證悟;
T10n0287_p0536c06(00)║ 智者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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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022a06(00)║佛子眾會廣無限, 欲共測量諸佛地,
T10n0279_p0022a07(00)║諸佛法門無有邊, 能悉了知甚為難。
T10n0279_p0022a08(00)║佛如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37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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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197c05(01)║雖隨順佛智,而示入聲聞、辟支佛地;
T10n0279_p0197c06(04)║雖得佛境界藏,而示住魔境界;雖超魔道,
T10n0279_p0197c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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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等覺: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5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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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268a25(03)║正等覺音聲? 「佛子!菩薩摩訶薩應知如來音聲 .... 佛
子!如來、應、 T10n0279_p0269b03(02)║正等覺亦復如是,興大悲雲遍十方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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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65a12(11)║知一切佛一剎那頃成正等覺;以義無礙解,知種種時事
相 ... T10n0287_p0565b06(11)║於佛世尊正等覺前所領無量妙法明門,彼得多聞,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5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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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79_p0273c07(03)║正等覺境界? .... T10n0279_p0274c04(00)║正等覺
金翅鳥王亦復如是,住無礙行, ... T10n0279_p0274c16(02)║正等覺所行之行。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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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等覺已, ..... T10n0287_p0556a25(01)║入於無量諸佛世尊智正等覺; ....
T10n0287_p0557a18(09)║正遍等覺及已安住第八地等諸大菩薩意樂加行,無與等
者。
CBETA T10 No. 301《大方廣如來不思議境界經》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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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時佛在摩竭提國菩提樹下。 T10n0301_p0909a08(01)║成正等覺。其菩提樹。名
阿攝波。磐根深固。 T10n0301_p0909a09(02)║擢本修直。周圓無節。如栴檀柱。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2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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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39c09(06)║能信諸佛正等覺者本所入行、修證到彼岸、修證諸勝地,
T10n0287_p0539c10(01)║成就諸力、成滿無所畏。由不共佛法不可映奪,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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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67c25(07)║一切有情悉得安樂,一切諸佛正等覺前,
T10n0287_p0567c26(08)║不可思議供養承事同時而轉,十方一切諸佛眾會,皆有
證知。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6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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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93_p0687a28(01)║龍自在王如來、應、正等覺道場眾會之所圍遶,
T10n0293_p0687a29(00)║毘盧遮那藏菩薩而為上首; T10n0293_p0687b01(06)
║又見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19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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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來如來、應、正等覺! T10n0279_p0099b13(03)║唯願哀愍,處此 .....
T10n0279_p0102b19(00)║亦不離於聲, 能知正等覺。 T10n0279_p0102b20(00)
║菩提無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3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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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287_p0545c12(03)║若聞一頌善說正法,歡喜勝得轉輪王位。
T10n0287_p0545c13(04)║聞未聞法是佛所說,能引正等覺、
T10n0287_p0545c14(08)║能淨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50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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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性起妙德菩薩問普賢菩薩言:「佛子! T10n0279_p0262c09(01)║菩薩摩訶薩應
云何知諸佛如來、應、 T10n0279_p0262c10(04)║正等覺出現之法?願為我說!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14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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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於彼佛正等覺所, T10n0293_p0723b19(02)║聞如是 .... T10n0293_p0725a14(
00)║或為讚說一切如來、應、正等覺所有功德, T10n0293_p0725a15(01)║令樂 ...
CBETA T10 No. 304《大方廣入如來智德不思議經》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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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n0304_p0924b13(08)║佛於其中坐寶蓮華師子之座,證淨等覺,所行無二,住
佛所住, T10n0304_p0924b14(01)║悉與一切諸佛平等,到無障礙不退轉法。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63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63.htm
T10n0279_p0339b28(00)║應、正等覺,道場眾會之所圍遶, ...
T10n0279_p0339c05(08)║又見東北方一切上妙寶世界,無所得境界眼如來、應、正
等覺,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16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16.htm
T10n0279_p0080c21(03)║善來如來、應、正等覺!唯願哀愍,處此宮殿!」 爾時,
T10n0279_p0080c22(01)║世尊即受其請,入妙勝殿;十方一切諸世界中,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1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87_001.htm
T10n0287_p0536a13(02)║與正等覺力無有能摧伏, T10n0287_p0536a14(09)║
與如來無所畏令無怯弱, T10n0287_p0536a15(17)║與以一切智智所攝大無礙解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25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25.htm
盡未來際,所有如來、應、正等覺, T10n0279_p0133b02(01)║遍法界住,當成佛道
, T10n0279_p0133b03(09)║當得一切清淨莊嚴功德佛土。盡法界、虛空界,無邊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9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87_009.htm
T10n0287_p0571b07(06)║正遍等覺無量智者無比法性, T10n0287_p0571b08(
11)║云何汝今以與諸菩薩法性比量?然,善男子! T10n0287_p0571b09(11)║如 ...
CBETA T10 No. 287《佛說十地經》卷6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87_006.htm
T10n0287_p0561a09(08)║於如來身中知等覺身、顯身化身、加持之身、相好莊嚴
微妙色身 ... T10n0287_p0561a26(11)║於隨所欲佛剎時分示等覺故;得神通自在,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18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18.htm
T10n0279_p0095b18(15)║正等覺百千阿僧祇劫修菩薩行時所集法藏,悉能守護,
開示演說, T10n0279_p0095b19(05)║諸魔外道無能沮壞,攝持正法無有窮盡; ..."
구글 CBETA 검색, "妙覺". 2013년 4월 13일에 확인.
"妙覺: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4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93_004.htm
T10n0293_p0677b21(02)║供養德童女、吉祥圓光童女、妙覺童女,
T10n0293_p0677b22(04)║如是等眾前後圍遶,來詣文殊師利童子所。到已禮足,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9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09.htm
T10n0279_p0046b10(05)║此上過佛剎微塵數世界,有世界,名:無邊音;佛號:
T10n0279_p0046b11(03)║一切智妙覺慧。此上過佛剎微塵數世界,有世界,名: ...
CBETA T10 No. 293《大方廣佛華嚴經》卷29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93_029.htm
T10n0293_p0795b07(03)║次有佛出,名妙覺智拘蘇摩華光;次有佛出,
T10n0293_p0795b08(03)║名寶焰山吉祥威德;次有佛出, T10n0293_p0795b09(
07)║名 ...
CBETA T10 No. 279《大方廣佛華嚴經》卷6 - CBETA 中華電子佛典協會
www.cbeta.org/result/normal/T10/0279_006.htm
T10n0279_p0026c14(00)║化度一切眾生海, 今成妙覺遍照尊。
T10n0279_p0026c15(00)║毛孔之中出化雲, 光明普照於十方,
T10n0279_p0026c16(00)║應受 ...
CBETA T10 No. 309《最勝問菩薩十住除垢斷結經》卷9
www.cbeta.org/result/normal/T10/0309_009.htm
CBETA 數位藏經閣漢文電子佛典No. 309《最勝問菩薩十住除垢斷結經》 卷9."
법장 술 T.1733, 제1권. p. T35n1733_p0108c03 - T35n1733_p0108c08. 51위(五十一位)
"六顯位故者。為顯菩薩修行佛因。一道至果具五位故。此亦二種。一次第行布門。謂十信十解十行十迴向十地滿後。方至佛地。從微至著階位漸次。二圓融相攝門。謂一位中即攝一切前後諸位。是故一一位滿皆至佛地。此二無礙廣如下文諸會所說。"
법장 술, 노혜남 번역 K.1513, T.1733, 제1권. p. 12 / 1565. 51위(五十一位)
"여섯째 ‘위(位)를 나타내는 까닭’이라고 한 것은 보살이 불인(佛因)의 일도(一道)를 수행하여 과에 이르기까지 5위(位)를 갖춤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제항포문(次第行布門)이니 10신(信) · 10해(解) · 10행(行) · 10회향(回向) · 10지(地)가 원만한 뒤에 비로소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은미[微]한 데서부터 드러나는[著] 데에 이르는 점점 나아가는 차례의 계위[階位漸次]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융상섭문(圓融相攝門)이니, 한 지위[一位] 가운데 곧 모든 전후 좌우의 여러 가지 지위를 섭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까닭에 하나하나의 지위마다 원만하며 모두 부처님의 지위[佛地]에 이르도록 이 두 가지가 걸림이 없음이니, 아래 경문의 여러 모임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같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79&aid=0000188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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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
네이버 백과사전 - 화엄경
한글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 40권본 전문 - 동국대 역경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한글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 60권본 전문 - 동국대 역경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한글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 80권본 전문 - 동국대 역경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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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1

Capitalism is destroying the Earth. We need a new human right for future generations | George Monbiot | Opinion | The Guardian

Capitalism is destroying the Earth. We need a new human right for future generations | George Monbiot | Opinion | The Guardian



Capitalism is destroying the Earth. We need a new human right for future generations

 This article is more than 1 year old

George Monbiot

George Monbiot

The children on climate strike are right: their lives should not be sacrificed to satisfy our greed



 @GeorgeMonbiot

Fri 15 Mar 2019 18.30 AEDTLast modified on Fri 15 Mar 2019 23.15 A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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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Ben Jennings

 Illustration: Ben Jennings/The Guardian

The young people taking to the streetsfor the climate strike are right: their future is being stolen. The economy is an environmental pyramid scheme, dumping its liabilities on the young and the unborn. Its current growth depends on intergenerational theft.



At the heart of capitalism is a vast and scarcely examined assumption: you are entitled to as great a share of the world’s resources as your money can buy. You can purchase as much land, as much atmospheric space, as many minerals, as much meat and fish as you can afford, regardless of who might be deprived. If you can pay for them, you can own entire mountain ranges and fertile plains. You can burn as much fuel as you like. Every pound or dollar secures a certain right over the world’s natural wealth.



But why? What just principle equates the numbers in your bank account with a right to own the fabric of the Earth? Most people I ask are completely stumped by this question. The standard justification goes back to John Locke’s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published in 1689. He claimed that you acquire a right to own natural wealth by mixing your labour with it: the fruit you pick, the minerals you dig and the land you till become your exclusive property, because you put the work in.



 Young climate activists around the world: why I’m striking today

Brianna Fruean and others

 Read more

This argument was developed by the jurist William Blackstone in the 18th century, whose books were immensely influential in England, America and elsewhere. He contended that a man’s right to “sole and despotic dominion” over land was established by the person who first occupied it, to produce food. This right could then be exchanged for money. This is the underlying rationale for the great pyramid scheme. And it makes no sense.



For a start, it assumes a Year Zero. At this arbitrary point, a person could step on to a piece of land, mix their labour with it, and claim it as theirs. Locke used America as an example of the blank slate on which people could establish their rights. But the land (as Blackstone admitted) became a blank slate only through the extermination of those who lived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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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only could the colonist erase all prior rights, he could also erase all future rights. By mixing your labour with the land once, you and your descendants acquire the right to it in perpetuity, until you decide to sell it. You thereby prevent all future claimants from gaining natural wealth by the same means.



Worse still, according to Locke, “your” labour includes the labour of those who work for you. But why should the people who do the work not be the ones who acquire the rights? It’s comprehensible only when you realise that by “man”, Locke means not all humankind, but European men of property. Those who worked for them had no such rights. What this meant, in the late 17th century, was that large-scale landrights could be justified, under his system, only by the ownership of slaves. Inadvertently perhaps, Locke produced a charter for the human rights of slave holders.



Even if objections to this could somehow be dismissed, what is it about labour that magically turns anything it touches into private property? Why not establish your right to natural wealth by peeing on it? The arguments defending our economic system are flimsy and preposterous. Peel them away, and you see that the whole structure is founded on looting: looting from other people, looting from other nations, looting from other species, and looting from the future.



Yet, on the grounds of these absurdities, the rich arrogate to themselves the right to buy the natural wealth on which others depend. Locke cautioned that his justification works only if “there is enough, and as good, left in common for others”. Today, whether you are talking about land, the atmosphere, living systems, rich mineral lodes or most other forms of natural wealth, it is clear there is not “enough, and as good” left in common. Everything we take for ourselves we take from someone else.



You can tweak this system. You can seek to modify it. But you cannot make it just.



 Think we should be at school? Today’s climate strike is the biggest lesson of all

Greta Thunberg, Anna Taylor and others

Greta Thu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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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should take its place? It seems to me that the founding principle of any just system is that those who are not yet alive will, when they are born, have the same rights as those who are alive today. At first sight, this doesn’t seem to change anything: the first article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states that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But this statement is almost meaningless, because there is nothing in the declaration insisting that one generation cannot steal from the next. The missing article might look like this: “Every generation shall have an equal right to the enjoyment of natural w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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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rinciple is hard to dispute, but it seems to change everything. Immediately, it tells us that no renewable resource should be used beyond its rate of replenishment. No non-renewable resource should be used that cannot be fully recycled and reused. This leads inexorably to towards two major shifts: a circular economy from which materials are never lost; and the end of fossil fuel combustion.



11:05

 The Age of Stupid revisited: what's changed on climate change? – video

But what of the Earth itself? In this densely populated world, all land ownership necessarily precludes ownership by others. Article 17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is self-contradictory. It says, “Everyone has the right to own property.” But because it places no limit on the amount one person can possess, it ensures that everyone does not have this right. I would change it to this: “Everyone has the right to use property without infringing the rights of others to use property.” The implication is that everyone born today would acquire an equal right of use, or would need to be compensated for their exclusion. One way of implementing this is through major land taxes, paid into a sovereign wealth fund. It would alter and restrict the concept of ownership, and ensure that economies tended towards distribution, rather than concentration.



These simple suggestions raise a thousand questions. I don’t have all the answers. But such issues should be the subject of lively conversations everywhere. Preventing environmental breakdown and systemic collapse means challenging our deepest and least-examined beliefs.



• George Monbiot is a Guardian columnist



We've got an announcement …

… on our progress as an organisation. In service of the escalating climate emergency, we have made an important decision – to renounce fossil fuel advertising, becoming the first major global news organisation to institute an outright ban on taking money from companies that extract fossil fuels.



In October we outlined our pledge: that the Guardian will give global heating, wildlife extinction and pollution the urgent attention and prominence they demand. This resonated with so many readers around the world. We promise to update you on the steps we take to hold ourselves accountable at this defining point in our lifetimes. With climate misinformation rife, and never more dangerous than now, the Guardian's accurate, authoritative reporting is vital – and we will not stay quiet.



You've read 25 articles in the last six months. We chose a different approach: to keep Guardian journalism open for all. We don't have a paywall because we believe everyone deserves access to factual information, regardless of where they live or what they can afford to pay.



Our editorial independence means we are free to investigate and challenge inaction by those in power. We will inform our readers about threats to the environment based on scientific facts, not driven by commercial or political interests. And we have made several important changes to our style guide to ensure the language we use accurately reflects the environmental emergency.



The Guardian believes that the problems we face on the climate crisis are systemic and that fundamental societal change is needed. We will keep reporting on the efforts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who are fearlessly taking a stand for future generations and the preservation of human life on earth. We want their stories to inspire hope.



We hope you will consider supporting us today. We need your support to keep delivering quality journalism that’s open and independent. Every reader contribution, however big or small, is so valuable. Support the Guardian from as little as $1 – and it only takes a minute. Thank you.



Support the Guardian

2020/04/30

[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주류가 된 진보, 파탄 난 민주화 서사….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




주류가 된 진보, 파탄 난 민주화 서사….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
주류가 된 진보, 파탄 난 민주화 서사….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입력 2020.04.30 04:30


<16>부친 살해의 드라마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두 개의 큰 이야기로 움직여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서사. 이 두 서사는 동시에 두 세대를 대표한다. 산업화를 이끈 할아버지 세대와 민주화를 이룬 아버지 세대. 이번 총선을 통해 사회의 주류는 전자에서 후자로 교체됐다. 하지만 이것이 산업화에 대한 민주화 서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86세대가 새로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민주화 서사 역시 해방서사로서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1968년 12월 21일 서울-인천 간(23.4km) 경인 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개통 테이프를 끊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수의 이야기



과거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큰 이야기는 박정희 정권이 쓴 반공과 ‘산업화 서사’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국력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고, 북한은 이를 토대로 적화통일을 추구했다. 끝없는 남침의 위협 속에서 시민들은 반공전사와 산업전사로서 ‘싸우면서 일하는 보람’에 살았다. 전쟁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시절 정권은 국민의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것만으로 쉽게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화는 눈부신 업적이었다. 농경사회였던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산업사회로 변모한다. 고도성장은 독재체제에 대한 시민의 염증을 성공적으로 무마했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 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 사이에 이 국가발전전략에 대한 암묵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 기계와 결합한 산업생산력은 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놀라움은 지도자에 대한 종교적 외경에 가까운 숭배로 이어졌다.

박정희 모델은 1979년 그의 시해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하지만 박정희식 고도성장의 신화는 3저(저유가·저금리·저원화가치) 호황에 힘입어 그의 사후에도 지속되다가, 결국 1997년 국가부도 사태와 함께 막을 내린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이를 대신할 대안 서사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고, 아직도 실패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식 고도성장의 서사를 재활용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치방식마저 유신시대로 되돌렸다가 탄핵을 당하고 만다.
1987년 6월 26일 부산 문현로타리에 집결한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진보의 이야기


산업화세대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다. 배우지 못한 아버지들이 힘들게 가르쳐놨더니, 대학에 간 자식들은 반공전사와 산업전사가 되기를 거부하고 민주투사와 통일일꾼이 되려 했다. 자식 세대의 투쟁 이야기 역시 아버지들의 전쟁 이야기 못지않게 절절했다. 이들의 부친살해는 1987년 시민항쟁으로 시작해 30년 만인 2017년 대통령 탄핵으로 완료됐다. 이번 총선은 그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화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만든 터부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임수경의 방북은 몇 년 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선거 때마다 ‘북풍’이 불까 걱정하는 것은 민주화 세력이었으나, 요즘은 외려 보수진영에서 ‘북풍’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산업화세대의 업적은 역설적으로 반공의 성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체제대결에서 남한의 압도적 승리로 북한이 과거만큼 위협적 존재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사이에 공동체의 기억도 바뀌었다. 부모에게 전쟁 얘기를 듣고 자란 자식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반독재 무용담을 들려준다.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반공 영화를 보고 자랐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변호인’ ‘1987’ ‘택시운전사’를 보며 자랐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해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도 북한의 만행이 아니라 분단의 비극을 강조한다. 그 사이에 할아버지 세대는 ‘국제시장’을 내놨을 뿐이다.
◇진보의 종언


사실 민주화세대는 그 동안 꾸준히 보수화해 왔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급속히 체제에 포섭돼 아파트를 가진 중산층으로 변모한다. 산업화세대는 이들을 데모만 하느라 ‘직접 돈을 벌어보지 못한 세대’라 매도하곤 했다. 하지만 새로이 도래한 정보사회에서는 80년대에 운동을 하거나, 그 분위기에 동조했던 이들이 외려 생산의 중추가 됐다. 2000년대에 벤처나 인터넷 기업들을 세운 것도 이들이다.

생산에서만이 아니다. 소비에서도 이들은 구매력이 가장 강한 계층이다. 그 구매력에 힘입어 광고를 먹고 사는 언론매체에까지 자신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과거의 산업화세대는 노령화로 이미 구매력을 잃은 데다가, 그 수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의 선거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경계가 40대 유권자층에서 형성되곤 했다. 어느새 그 경계는 50대로 올라갔고, 머잖아 60대로 진입할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나이가 들어도 세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코호트 효과’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하는 ‘에이징 효과’를 압도했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그 두 효과가 중첩해 나타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즉, 코호트 효과로 투표에서 진영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에이징 효과로 아예 진영 자체가 보수화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존재’는 오래 전에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는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흔들리게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치러졌던 2019년 9월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숙환(위선과 편법)으로 별세했다는 장례식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뉴시스
◇더 나쁜 아버지


조국 사태는 존재와 의식의 이 괴리를 상징한다. 민주화 세대가 그를 두둔한 것은 그것이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세대’의 특징임을 시사한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실은 보수다. 산업화의 추억에 갇힌 미련한 보수를 제치고 정보화의 흐름에 적응한 노련한 보수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비리와 성추행사건은 주로 이들이 일으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개혁의 레토릭을 자신들의 비리를 덮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벌써 정계와 관계, 방송과 신문, 시민단체와 지식인층을 망라하는 거대한 기득권의 커넥션을 구축했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 커넥션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그 압도적 헤게모니를 이용해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순식간에 잠재워 버린다. 낡은 보수의 나쁜 모습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으로 체화한 것이다. 기득권을 확보한 그들은 그 커넥션을 활용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식 세대에 물려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됐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됐다. 산업화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트도 한 채 갖게 해줬다. 하지만 586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 버린다.
2019년 9월 19일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수화한 젊은이들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이 났다. 우리 세대가 아버지 세대의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소수를 제외하고,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

최근 20대의 정치적 성향이 노년층과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를 20대의 보수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 세대를 불신한다고 해서 그들이 할아버지 세대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당층으로 남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부친을 살해하려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민주화세대에게는 정치적 ‘집단’으로 조직하는 데에 필요한 서사, 즉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이뤄졌고,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자본주의 서사가 통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 양극화 속에서 경제적 불안정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 모든 상황을 고립된 ‘개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만은 있지만 표출할 수가 없다.

양당 혹은 1.5당의 기득권 체제 속에서 젊은이들은 고작 선거용 홍보물로 쓰이다 버려질 뿐이다. 대안이 없을 때 남는 것은 냉소적 태도뿐.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이들이 ‘공정’과 ‘정의’라는 화두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과의 불평등은 용인해도 과정의 공정성만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진보가 아직도 가능하다면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불교언론-29. 허준의‘잔등’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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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허준의‘잔등’

이미령
승인 2015.03.17 11:54


소년의 뱀장어와 할머니 잔등불에 담긴 증오 혹은 연민


▲ ‘잔등’
허준 중편소설
창비출판사
20세기 한국소설 제12권1945년 8월15일 마침내 일제가 항복했습니다. 정말이지 그들은 지독했습니다. 남의 땅에 무단으로 쳐들어와서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빼앗았습니다. 이 땅의 주인들은 저항 한 번 못 하고 고스란히 다 내줘야 했습니다. 그랬던 시절이 이제 끝이 났습니다.

해방을 맞아 이 땅 38선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왔고, 저들의 통제 아래 그럭저럭 새로운 질서가 잡혀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패전한 일본인들의 입장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제 서러움과 모진 학대는 저들 차례가 되었습니다.

월북작가 허준의 중편소설 <잔등>은 바로 이런 시점에 함경도 청진 땅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만주에서 살고 있던 화가지망생 천복은 해방 조국을 맞아 친구 방(方)과 함께 서울로 돌아오기로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만주 장천을 떠나 회령까지 도착했고,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함경도 청진 땅으로 들어오려 했다가 만원기차에서 친구와 그만 헤어지고 맙니다. 천복은 우여곡절 끝에 트럭을 얻어 탔고, 수많은 난민들을 지붕 위까지 싣고 오느라 더디게 달리던 기차보다 더 먼저 청진에 도착합니다.

청진에 도착한 그는 친구가 탄 기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해방을 맞고 보니 억척스레 만주 땅을 개척했다가 일본인들에게 고스란히 토지를 빼앗긴 친척들도 생각납니다. 저들도 이제 떳떳한 독립국가의 주인으로서 제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겠지…하며 자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을볕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강둑에서 하릴없이 상념에 잠겨 있는 그때 난데없이 소리가 들립니다.

찰그닥-.

소년 하나가 강에서 뱀장어를 잡아 강둑에 내던지는 소리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나이 어린 소년인데 뱀장어를 삼지창으로 찍어 낚아 올리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가리가 삼지창에 찍혀 피투성이가 된 뱀장어는 뭍으로 내동댕이쳐지기 무섭게 필사적으로 물을 향해 꿈틀거립니다.

‘삼지창 끝에 박히었던 장어의 대가리는 옥신각신 진탕으로 이겨져서 여지없이 된 데다가 뛰는 때마다 피가 뿜어져 나온 부분이 모래와 반죽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장(細長)의 동물은 그 전신 토막토막이 전수이 생명이라는 듯이 잠시도 가만있지는 아니하였다. 제가 얼마나 뛰랴, 뛰면 무엇 하랴 하고 얕잡아보고 앉았는 사이에 여러 번 여러 수십 번도 더 툭툭거리기질을 하는가했더니 어느 덧 물 언저리까지 접근하여 가서 한 번 더 뛰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가 있게까지 된 것이 아닌가.’

하여, 천복은 서둘러 일어나 뱀장어를 다시 낚아 올려 이전 자리에 팽개쳐버립니다. 소년이 힘들게 낚은 것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지요. 하지만 뱀장어는 어떻게 해서라도 물로 들어가려 몸부림을 칩니다. 작가는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목숨이 어디가 붙었는지도 모르는 그 목숨에 대한 본능적인 강렬한 집착-그리고 그 본능의 정확성은 놀라리만큼 큰 것이었다. 곰불락일락 쳐보아서 전후좌우의 식별이 없이 그저 안타까워서 못 견디는 맹목적인 발동같이 보이지만 나중에 그 단말마적 운동이 그려나간 선을 따라가보면 그것은 언제나 일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이 찾아야 할 방향을 으레 지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뱀장어를 지켜준 덕분에 주인공 천복은 소년과 말문을 트게 됩니다. 열서너 살 정도 된 소년은 이 뱀장어를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일본인들에게 판다고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전 재산을 재주껏 빼돌리고 감춰둔 채 스스로를 알거지라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그래도 음식 본능은 감출 수 없는지 소년의 뱀장어를 사먹기 위해 품에서 돈을 꺼냅니다. 소년은 뱀장어를 팔면서 낯을 익혀둔 일본인들이 재산을 빼돌려 수용소를 탈출할 때 그들을 검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도 합니다.

소년의 눈에는 일본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이글이글 불타오릅니다. 하긴, 왜 안 그러겠습니까.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그냥 놔둘 수가 없지요. 당한 만큼 되돌려줘야 셈이 맞을 것입니다. 아니, 죄 없이 당한 설움까지 갚으려면 저들은 곱절로 당해도 쌉니다.

아닌 게 아니라 청진 땅에서 마주치는 일본인들은 이미 그 죄를 다 받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재산을 몰래 감추고 탈출하려다 붙잡혀 모진 매질 끝에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질 않나, 사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아내 홀로 남아 자식들을 안고 업고 걸리고 동냥질하며 아오지나 고무산으로 떠날 기차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까요? 아마 몰랐을 겁니다. 남의 땅을 무단으로 쳐들어와서 이 땅의 본래 주인을 노예처럼 부리며 대대손손 호위호식하며 잘 살리라는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 땅과 가족과 이름과 생명마저 빼앗긴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돌아보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지금 저들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본인들은 마지막까지 잔인했습니다. 도망치면 시내에 있는 아이들 학교마저 불 질러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려면 그나마 곱게 갈 일이지 그런 해코지까지 하고 떠나다니, 이런 사악한 자들이 또 어디 있을까요? 천벌도 아깝습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은 뱀장어를 미끼로 일본인들을 조롱하고 감시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주인공 천복의 발길을 장터의 어느 국밥집으로 향하게 합니다. 밤새도록 희미한 잔등불 하나 밝혀 놓은 채 새색시마냥 오두마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주인입니다. 천복은 술 한 잔 받아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불면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낮에 아주 잠깐 잘 뿐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희미한 잔등을 밝혀 놓고는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다는 거지요.

할머니의 사연은 기가 막힙니다. 일찌감치 남편과 아이들을 조르륵 앞세우고 늘그막에 얻은 막내아들 하나를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이 아들이 해방되기 직전 옥사했기 때문입니다. 단 며칠만 버텨주었더라면…. 할머니 가슴에 일본에 대한 원망과 저주가 가득할 법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 눈에는 못된 패전국가의 포로가 아니라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처참한 몰골만이 보입니다.

‘더부룩이 내리덮인 머리칼 밑엔 어떤 얼굴을 한 사람인지 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아니하는 동안에, 헌 너즈레기 위에 다시 헌 너즈레기를 걸친 깡똥한 일본 사람들의 여자옷 밑에 다리뼈와 복숭아뼈가 두드러져 나온, 두 개 왕발이, 흐물거리는 희미한 기름불 먼 그늘 속에 내어다보였다. 한 팔을 명치끝까지 꺾어 올린 손바닥 위에는 옹큼한 한 개의 깡통이 들리어서 역시 그 먼 흐물거리는 희미한 불그늘 속에서 둔탁한 빛을 반사하고 있으며.’

“저겁니다. 저것들입니다.”

할머니는 ‘저것’을 보고 있습니다. ‘저것’이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 업은 일본여자가 깡통을 들고 동냥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다는 할머니입니다. 모진 세월을 지독한 아픔 속에 지내오다 보니 원망도 증오도 재가 되었는지, 남은 것은 그저 목숨에 대한 안쓰러움뿐인 것만 같습니다. 죽고 죽이고 죽이게 하며 아비지옥의 세월을 거친 결과가 지금 그렇습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깡통 들고 동냥 하는 저 일본여자의 모습은 소년의 삼지창에서 대가리가 으깨져 피투성이가 되어도 제 살 곳을 찾아가겠다고 단말마적 발악을 하던 뱀장어와 다르지 않습니다.
목숨은 그렇습니다. 목숨은 살고자 합니다. 살아 있어야 목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숨이라는 본능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그 누구도 목숨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뒤집혀졌으니 이제 네가 죽을 차례라는 법은 없습니다.

국밥집 할머니는 자식을 앞세우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할머니가 새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오지에서 실려 온 일본인 포로들의 추위와 굶주림을 달래주려고 한밤중에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말아 내주는 일이 전부입니다. 할머니의 그 행동은 화려하거나 찬란하지 않습니다. 벽 틈으로 새어들어 오는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부끄러운 등잔불빛 정도입니다. 작가는 그걸 이렇게 표현합니다.

‘혁명은 가혹한 것이었고 또 가혹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임에 불구하고 (중략) 덥석덥석 국에 말아줄 마음의 준비가 언제부터 이처럼 되어 있었느냐는 것은 나의 새로이 발견한 크나큰 경이가 아닐 수 없었다. 경이보다도 그것은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거쳐서만 거둬들일 수 있는 하염없는 너그러운 슬픔 같은 곳에 나를 연하여 주었다.’

천복은 천만다행하게도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깨 겯고 서울로 향하겠지요.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그 후 이 땅에 대살육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떠올라 새삼 몸서리가 쳐집니다. 뱀장어를 잡으며 일본인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던 소년도, 하얗게 밤을 새며 따끈한 국밥으로 생명을 안아주던 할머니도 그 아수라장에서 어찌되었을까요?

문체가 너무나 고색창연해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다가 덮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모쪼록 당신이 이 작품을 지금 새롭게 만났다면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혁명이라는 불길 속에 목숨은 뱀장어처럼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는 가운데, 흐릿한 등잔불 같은 온정이 흐믈흐믈 춤을 춥니다. 목숨을 향한 경외와 너그러운 슬픔을 지독하리만치 세심하게 묘사한 문체에 곱절은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Beyond Belief: The Secret Gospel of Thomas | November 21, 2003 | Religion & Ethics NewsWeekly | PBS



Beyond Belief: The Secret Gospel of Thomas | November 21, 2003 | Religion & Ethics NewsWeekly | PBS
Beyond Belief: The Secret Gospel of Thomas
November 21, 2003

Doubting Thomas
by Allen D. Callahan

Style, grace, lucidity and charm: traits seldom encountered in works of biblical scholarship and almost never encountered together. But those familiar with the work of Elaine Pagels — and few are not, judging from her commercial success as an author (yet another trait rare among works of serious scholarship) — have discovered that these unexpected pleasures are to be expected in everything she writes. And Pagels’s most recent bestseller, BEYOND BELIEF: THE SECRET GOSPEL OF THOMAS (Random House, 2003), is more of the same. The combination of such an erudite mind and such engaging prose makes her arguments for the virtues of the Gospel of Thomas almost irresistible. Almost.

Pagels’s advocacy for Thomas as a source for early Christianity and a resource for contemporary spirituality is appealing. But the gap between her interpretation of Thomas as a guide to contemporary seekers and the text of the Gospel of Thomas itself requires too great a leap of faith based on what Thomas has to offer. We have good reasons for doubting Thomas.

Pagels sees the Gospel of Thomas and other apocryphal Christian literature as shut out of the ecclesiastical smoke-filled room that foisted the canon upon early Christianity. But the formation of the canon was a complex process that started long before the Council of Nicea in 325. The canon lists of the fourth century — and there were several different though similar canon lists in existence by that time — reflected to a great extent literature that had been on the reading list of churches throughout the Roman Empire for centuries. This was so even among the Gnostics; when they wrote commentaries, canonical scriptures were their texts of choice. The canon invariably provided the grist for their exceedingly fine-grinding exegetical mills. Apocryphal texts, Gnostic or otherwise, riff on the texts that we have come to call canonical and upon which all Christian literary cachet depends.

Biblical texts were the common ground of the Gnostics and the orthodox, even though the partisans often did not recognize them as such. The arch-orthodox Irenaeus claimed that the Gospel of John declares the divinity of Jesus. On this he agreed wholeheartedly with his Gnostic nemesis Valentinus. Together the two affirmed the importance of the Gospel of John, as did the apocalyptic Montanists, who were otherwise so different from both the orthodox and the Gnostics.

According to Pagels’s reconstruction of the first four centuries of the Common Era, the bishops voted Thomas out and John in because the latter better served orthodoxy. That “official version” is represented in the Gospel of John which, on Pagels’s reading, marshals a theology that intentionally contradicts the Gospel of Thomas: “what [the Gospel of] John opposed … includes what the Gospel of Thomas teaches.” Whereas “the Gospel of John helped provide a foundation for a unified church… Thomas, with its emphasis on each person’s search for God, did not.”

But the Council of Nicea had little to do with the Bible, and the text of John was superfluous to the proceedings. Pagels herself reminds us that some of the bishops at Nicea were troubled because the proposed language of the Nicean Creed was not biblical. Even the Nicean definition of Jesus as “begotten not made” has no real relation to the description of him as “the only begotten” in the Gospel of John. (This latter phrase is a holdover from the Old Testament, where it means “beloved.” God uses it in his conversation with Abraham to describe Isaac, who certainly was not Abraham’s only son.) And as Pagels also points out, in several places the Gospel of John seems to flatly contradict the other three canonical gospels; it was apparently unknown to the early church fathers Ignatius, Polycarp and Justin Martyr, and John had been associated with heretics. Not a compelling pedigree for a text pressed into service as a rallying point for ancient orthodoxy.

But the ultimate purpose of the genealogy of Christian orthodoxy in BEYOND BELIEF is to buttress Pagels’s claim that orthodox Christianity has stolen from us an authentic, first-century Christian spirituality to which the Gospel of Thomas bears witness. This alternative collection of sayings in effect gives us another Jesus, and Pagels says as much. The Nag Hammadi texts “revealed diversity within the Christian movement that later ‘official’ versions of Christianity had suppressed.” Pagels writes of her surprise at finding “unexpected spiritual power” in the sayings from Thomas that call for a personal, inner-directed quest for the divine. The Jesus of the Gospel of Thomas “does not tell us what to believe but challenges us to discover what lies hidden within ourselves.” “I realized,” Pagels goes on to comment, “that this perspective seemed to me self-evidently true.”

Pagels speculates that some Egyptian monks placed Thomas and the other Nag Hammadi texts in a six-foot cylindrical jar to save them from the wrath of the orthodox book burners. The jar served as an earthen time capsule for the ancient texts until an Egyptian shepherd discovered them almost sixteen centuries later.

Reading Thomas now, it is easy to see why it might have been a favorite in the monastery. Thomas is shot through with a curmudgeonly, monastic sensibility. Its sayings badmouth weddings, marriage and sex. The phrase “a single one” in Thomas translates from the original Coptic the Greek loan-word monachos — “monk.” The word appears in two other sayings in Thomas. One of them has Jesus say, “There are many standing at the door, but only those who are solitary (literally, “those who are monks”) will enter the bridal chamber.” A monk in the newlywed suite: the austerity here is almost morose, the imagery of a true libido wet blanket. Thomas’s Jesus comes off as a Gnostic killjoy.

Thomas has a healthy monastic disdain for wealth and the wealthy. Those who are well dressed, i.e., well heeled, are incapable of knowing truth. Rich people are fools, and Thomas agrees with the book of Proverbs and Mario Puzo that fools die. Thomas forbids interest and speculation, detests merchants, and warns that businessmen will not enter “the Kingdom of the Father.” Would-be Thomas Christians working on Wall Street? Don’t even think about it.

And just as any celibate ascetic, Thomas has no use for women. The concluding saying of the Gospel of Thomas is cold comfort for feminist seekers: “Simon Peter said to them, ‘Make Mary leave us, for females are not worthy of life.’ Jesus said, ‘Look, I shall guide her and make her male, so that she too may become a living spirit resembling you males. For every female who makes herself male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The text leaves undetermined who this “Mary” is. Mary the mother of Jesus, perhaps? Or Mary Magdalene? Or some other Mary? According to the words of “the living Jesus,” however, it doesn’t matter. Whoever they are, women who aspire to Thomas’s version of enlightenment must undergo, at the hands of Jesus, a Gnostic sex change operation.

Like some early Egyptian monks who fled society to wander in deserted places, the Gospel of Thomas is big on bowling alone. The following enigmatic saying is one of several in Thomas that tout the superiority of the single life: “Jesus said, ‘Where there are three deities, they are divine. Where there are two or one, I am with that one.” The text here may be corrupt: nevertheless it seems to echo a saying in the Gospel of Matthew,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Matthew 18:20). Thomas’s version of the saying serves notice on Matthew’s chummy spirituality.

In the opening chapter of BEYOND BELIEF, Pagels recalls her reacquaintance with her own faith on a walk-in visit to the Church of the Heavenly Rest in New York. “From the beginning, what attracted outsiders who walked into a gathering of Christians, as I did on that February morning, was the presence of a group joined by spiritual power into an extended family.” It is very hard to imagine the writer of the Gospel of Thomas being attracted to what Pagels found at the church that day. He makes a point of inveighing against just such fraternizing. Pagels’s translation of another saying, paralleled in both Matthew 9:37-38 and Luke 10:2, sharpens the point: “Jesus said, ‘The harvest is great but the work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workers to the fields’.” But the later clause literally says,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a worker to the fields.” The singular, in view of Thomas’s predilection for singulars, is not an unimportant detail; one worker will do. For the Gospel of Thomas, two’s a crowd.

The greatest problem for Pagels’s endorsement of Thomas, however, is what its sayings do not say. Early in her book she speaks of her admiration for Christian communities as places where people stand in solidarity against that last of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 death. Recalling her first visit to the Church of the Heavenly Rest, where she began to revisit her own faith, she writes, “Here is a family that knows how to face death.” Pagels writes movingly of the support she received at the church during the illness and sudden death of her six-year-old son. There she found a fellowship in which “those who participate weave the story of Jesu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into their own lives,” a story that “simultaneously acknowledges the reality of fear, grief, and death while — paradoxically — nurturing hope.”

But that story is missing in Thomas. It is a gospel without the Passion; it offers a way of discipleship without a via dolorosa. There is nothing about resurrection, either of Jesus or anyone else. The “living Jesus” of Thomas speaks of suffering and death quite, well, dispassionately. The gospel presents “the secret sayings that the living Jesus spoke,” and there is no suggestion that Jesus has or will “taste death,” as Thomas puts it. So too for those who understand his sayings: “And he [Jesus] said, ‘Whoever finds the interpretation of these sayings will not taste death’.” Thomas understands death not as a problem of humanity but as a challenge of hermeneutics.

Thomas shares detachment from death with other Nag Hammadi texts. In passing Pagels discusses the Gospel of Truth, which discourages believers from seeing Jesus “nailed on a cross” but instead recommends that they visualize him as “fruit” on the tree of knowledge in Paradise that imparts wisdom to those who eat it. The writer transforms the grim reminiscence of Jesus’ violent death into an allegory of enlightenment.

Another Nag Hammadi document that Pagels cites with approval, the Apocalypse of Peter, depicts Jesus “glad and laughing on the cross.” This is Gnostic spin control on what the Apostle Paul called the scandal of the cross — the savior of the world publicly tortured to death, the son of God nailed naked on a crude wooden gibbet. In their tacit flight from human suffering, these texts have drained the Crucifixion of its blood.

Pagels concludes her book by damning the orthodox, ancient and modern, with faint praise so suavely written that we might overlook its condescension:

How can we tell the truth from lies? What is genuine, and thus connects us with one another and with reality, and what is shallow, self-serving, and evil? Anyone who has seen foolishness, sentimentality, delusion, and murderous rage disguised as God’s truth knows that there is no easy answer to the problem that the ancients called discernment of spirits. Orthodoxy tends to distrust our capacity to make such discriminations and insists on making them for us. Given the notorious human capacity for self-deception, we can, to an extent, thank the church for this. Many of us, wishing to be spared hard work, gladly accept what tradition teaches.

But it is the unorthodox traditions of Nag Hammadi that taught that death is ultimately a language game, that the cross was more like apple picking than agony, and that the Crucifixion could be a laughing matter. And the orthodox, with all their shortcomings, would have none of it. It was the orthodox who insisted on doing the existential heavy lifting that a cross-bearing gospel demands — truly hard work.

It’s ironic. With poignancy Pagels has shown her readers that she herself is deeply touched by and deeply in touch with our common mortality — that touchstone of the best of Christian spirituality — more deeply than anything we read in the Gospel of Thomas.

Allen D. Callahan is a biblical scholar and the author of the forthcoming book THE SPIRITUAL GOSP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