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한 오라기의 혁명 - 자연농법 철학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은이), 최성현 (옮긴이) | 녹색평론사 | 2011-09-09
반양장본 | 272쪽 | 128*188mm (B6) | 272g | ISBN : 9788990274687
국내도서 > 과학 > 농업 > 생태농업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논밭을 갈지 않고 비료나 농약은 물론 김매기도 않는 '자연농법'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무위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저자가 자연 농법과 자연식을 소개한 책. 유기농업 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체험적 자연농법론이다. 11개 국어로 번역된 이 책은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과 스스로의 삶을 파괴해 온 인류의 「자만」을 경고한다.
세관의 식물검사과에 근무하던 지은이는 25세 때 인위의 무용성을 깨닫고 귀향, 농장을 세운 뒤 50여년간 독특한 자연농법을 실천해오고 있다. 흔히 「4무농법」으로도 불리는 그의 자연농법은 땅을 갈지 않고, 농약을 쓰지 않으며, 비료를 뿌리지 않고, 제초를 하지 않는 무위의 농사방식이다.
자연농법은 인류와 풀과의 오랜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평화와 공생의 삶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성이나 교육 등 조금이라도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저 자연을 따라 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연농법은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농사를 짓는 방법이다.
서문
제1장 자연이란 무엇인가
이 보리를 보라 /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 고향으로 돌아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을 목표로 하다 / 농업의 원류는 자연농법
자연농법은 왜 보급되지 않는 것일까 / 인간은 자연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2장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운 농법
쌀과 보리농사의 실제 / 자연농법의 4대 원칙 / 기로에 선 일본 벼농사
짚을 이용하는 농법 / 이상적인 벼농사 / 귤농사의 실제
과학기술의 의미와 가치
제3장 오염시대에 보내는 편지
식품공해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는가 / 바다오염은 화학비료가 원인이다
과일은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다 / 수고는 많고 성과는 적은 유통구조
자연식품 붐이 의미하는 것 / 자연이 만든 것의 맛 / 인간의 먹을거리란 무엇인가
원점을 망각한 일본의 농정 / 기업농업은 실패한다
누구를 위한 농업기술 연구인가 / 자연을 섬기기만 하면 된다
일본인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 사라진 농부의 정월 휴일
공동체 속에서 싹트는 자연농법 / 자연농법과 유기농법
자연농법의 사명은 무엇인가
제4장 녹색 철학
알지만 아는 것이 아니다 / 바보는 누구인가 / 나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서 태어났다
떠가는 구름, 흐르는 물과 과학의 환상 / 상대성이론이여, 똥이나 먹어라 / 전쟁도 평화도 없는 마을
짚 한오라기의 혁명 / ‘서울의 꿈’/ 갈대 줄기 속으로 하늘을 엿본다
제5장 현대인의 병든 식이
자연식이란 무엇인가 / 자연식의 방법 / 먹을거리의 본질 / 자연식에 대한 정리
제6장‘짚 한오라기’의 미국여행
캘리포니아는 왜 사막화되었는가 / 미국 농업은 미쳐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확대를 지향하는 기계문명의 종말
후기
소원
옮긴이의 글
첫문장
저는 이 짚 한오라기로부터도 인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P.3 : 생명이란 우주 삼라만상, 곧 대자연 그 자체의 합작품이다. 그 의미와 의지를 모른 채 자연과 대립자가 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여 생명의 양식인 먹을거리를 기르며 살아가고자 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어머니 대지에 반역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사탄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화전(火田)에서 시작한 농업 발달,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농업의 변천 및 문명 발달의 역사가 그대로 자연파괴의 역사가 되어왔다.
P.26~27 : 일반적으로 자연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합니다. 다만 무엇이 자연인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최초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 결국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한 것입니다. (…) 자연상태의 흙이란 그냥 두어도 절로 비옥해지기 때문에 비료 따위는 넣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자연상태를 인간이 파괴하여 땅힘을 없애버린 채, 거기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비료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과일나무와 벼를 연약하게 만들어놓고, “농약을 썼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P.40~41 : 농약 뿌리기는 병충학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른바 인간의 진선미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 요컨대 철학자와 종교인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까지 참가하는 검토회를 열어서, 농약을 뿌려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뿌려서는 안되는 것인지, 비료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단 한번만이라도 이 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면, 인간의 지혜라든가 사고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지은이 : 후쿠오카 마사노부 (福岡 正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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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1913년 에히메 현이요 시 오히라에서 태어나 1933년 기후 농업대학교를 졸업했다. 1934년 요코하마 세관 식물검사과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1937년 임시 귀농했다가, 1939년부터는 고치 현 농업시험장에서 근무했다. 1947년에 다시 귀농한 후로 자연농법에만 매진했다.
1988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인도의 타고르 국제 대학교로부터 최고 명예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짚 한 오라기의 혁명》《신의 혁명》《무의 철학》《자연으로 돌아가다》《자연을 산다》등이 있다.
2008년에 서거했다.
옮긴이 : 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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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래 봐야 보이는 것들> <산에서 살다> <시코쿠를 걷다> <좁쌀 한 알> <바보이반의 산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자연농법>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 교실> <신비한 밭에 서서> <여기에 사는 즐거움> <어제를 향해 걷다> <나무에게 배운다>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공역) 등이 있...
“이 짚은 지극히 가볍고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짚 한오라기로도 인간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연농법의 효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대표적 저서인 이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단순히 농법에 관한 숱하게 많은 주장이나 학설들 중의 또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자연농·자연식·자연인이라는 철학을 역설하고 있는, 사상서이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이 삼자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나라’를 꿈꾸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흔히 ‘현대의 노자’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평생을 외곬으로 무심(無心)·무위(無爲)를 지향하는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농학자로서 요코하마세관 식물검사과에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후쿠오카는, 어느 날 인간의 지식, 과학문명이 모두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는 “인위의 일체는 무용하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사법을 통해 검증코자 했다. 그리고 쌀·보리농사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있는 땅갈기, 퇴비,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내어 실증함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사상을 증명해 보였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농법이란 무엇인가?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식(지혜)에 기대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후쿠오카는 ‘방임’과 ‘자연’을 구별한다. 가령 한번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다음해에도 계속해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린다. 이것은 방임이다. 이미 나무(자연)에 교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해놓고서, 그 결과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열심히 고치는 것 ― 이것이 현대의 과학농법인 것이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과학농법은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궁리해낸 기술도 부분적·한시적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도리어 더 많은 문제를 배태하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인간의 자기파괴적 행위의 결과가 극한에 치닫고 있으므로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책이 쓰여진 지 한세대가 지난 지금, 인류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길’을 방기한 데 대한 우리의 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농부의 삶, 인간의 삶
자연농법은 진실로 엄격한 농법이다. 농부는 자연의 힘을 완전하게 믿고, 그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서로 다른 조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서로서로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어제 저곳에서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 오늘 여기서는 최악의 조건일 수 있다.
따라서 농부의 일이란 자연을 섬기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그러나 충실하게 섬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농업은 신(神)의 시종으로서 신에 봉사하는 역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본질을 망각한 사람들이 근대농업이라든가 기업농업이라면서 신의 측근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고 이익을 앞세우는 현실을 슬퍼한다. 농부의 기쁨은 다만 오늘 하루의 일에 전념해서 씨를 뿌리고, 자연의 활동에 따라서 작물을 애호하면서 작물과 함께 생활해가는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농부의 생활방식이고, 그것이 진정한 농부의 모습이다.
실은 이것은 보편적 인간 삶에 대한 지침이다. 자연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신의 뜻, 자연의 의지에 따라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복종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완성, 자연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혜로 온전히 밝힐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자연농법은 영원한 미완성의 길, 구도(求道)의 길이다.
‘전세계 자연주의자들의 경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고전(古典)이, 처음 출판된 지 3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지금에야 한국의 독자들에게 두루 소개되는 것은 한편 안타깝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nervalien 2012-05-20
세상을 바꾸는 지혜는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 속에 깃들여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단 욕심을 버리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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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6443 2011-09-15
절판되서 언제 다시보나 했는데 이렇게 보게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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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an77 2012-03-22
최근 도시농부가 되기로 하고, 책을 구입, 열심히 읽고 있다. 암...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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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 기준은
하지 않으면서 하는 삶
쉽싸리 2011-12-16
오늘도 밥을 먹는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긴 하지만 밥과 반찬중에 내가 직접 농사지은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그렇치 않은 사람들이 일부 있겠고, 그사람들을 이름하여 농부라 할 수 있지만, 사실 농부들 중에서 자신이 먹는 거의 전부를 직접 농사지어 얻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즉, 지금보다 농민이 더 많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농사지어 먹을 것을 거의 전부 얻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다 지금처럼 농민도 많이 줄고 그나마 일부 한정된 농사를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농민이라 해도 특수한 직업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그냥 농사지어 그것을 팔아 밥 벌어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 그것이 잘못된 것이냐 하면, 그것도 좀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이다. 무조건 과거로 돌아 갈수는 없지 않나? 농민이 줄어들고 농사 또한 단순화 된것이 잘못이라고 해도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뭔가?
언제부터인가 농업본래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는 말씀들을 많이 한다. 즉, 생명을 살리고 가꾸는 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 순환하는 삶의 방식, 다양성을 살리는 삶의 방식,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각각의 얘기도 조금씩 차이가 있고 더구나 그것을 자신의 삶과 직접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하는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안하는 것도 어렵지만 무엇을 한다는 것도 어렵다. 더구나 무슨 목표를 세워두고 하자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런데 여기 후쿠오카 마사노부라는 사람은 평생 동안 그 무엇을 직접 해왔다. 그것을 한마디로 일컬어 '자연농법'이라고 한단다.
이 분은 젊을때 부터 산에 들어가 농사지으면서 무심, 무위를 삶의 목표로 삼아 수행아닌 수행을 해온 구도자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무의 철학에 입각한 자연농법의 최종 목표는 절대진리인 '공관(空觀)'에 있고, 신을 향한 봉사에 있다고 얘기한다.
아, 어렵다, 무위, 무심, 공관.
무위, 무심도 어렵지만 공관은 또 무언가? 사전에서는 공관을 '삼관(三觀)의 하나. 형상 있는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일 뿐 실제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이치를 관(觀)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교의 바탕을 이루는 연기론에 입각한 그런건가? 근데 신은 또 무언가? 내가 신인가? 자연이 신인가? 잘 모르겠다.
책에는 자연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으로부터 농업, 먹을거리, 식품얘기 들이 나온다. 그로부터 일정한 생각의 틀이 정해져 왔고 그것은 거의 50여년 동안 실천하면서 그리된 것이다. 오랜 세월임에 틀림없다. 그로부터 나온 지은이의 생각들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렇다. 못해도 수십년은 해봐야 한다. 해보고 나서 얘기해도 되고 하는 도중에 얘기해도 된다. 그런데 안하면 어떤가? 어떤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고 하는 것은 어떤가? 불가능 한가? 이 책의 지은이는 안하면서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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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2012-02-19
자연농법을 평생 실천한 한 농부의 자서전이다. 농사를 통해 세상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벼농사하면 모내기부터 김매기 농약치기, 비료주기, 땅갈기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농약', '무경운(땅을 갈지 않는다.)','무비료','무제초' 4농법은 정말 신선하다 못해 놀랍기까지 하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유기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들어 봤지만 잡초제거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그냥 두어도 스스로 순환하고 치유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그 자연을 될 수 있으면 원래의 상태로 놔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뭔가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오랜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것, 인간이 문명이라고 말하는 것,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대자연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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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으로부터의 혁명
두크나이트 2016-07-17
마사노부는 책 처음에 짚 한 오라기로 혁명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것의 방법으로 인간의 지혜와 인위를 모두 거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 등 동양사상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자라게 된 영향 때문인지 이런 마사노부의 접근법은 낯설지 않았을 뿐더러 반가웠다. 글에서 읽은 마사노부의 이력을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을 피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사노부도 어느 정도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인식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사상적 흐름을 보면 양차 세계대전 이후 보통 사람들은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된다. 중세의 신성에 반한 하나의 이성적 조류와 함께 발생했던 ‘근대’라는 이름은 인류사 최악의 결과를 맞이함으로써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반이성적 사상의 조류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 서구중심적인 내용이고 이것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이런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전후인식은 마사노부의 인식과 유불선(儒佛仙)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과 일정부분 함께 공유하는 상(像)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문제의 근본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사노부는 무위(無爲)의 자연(自然)농법을 주장한다. 인위도 없고 또한 자연이란 낱말의 의미 그대로인 스스로 그러한 농법을 주장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설득력이 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현대를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혁명’에 가까운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마사노부는 무위와 방임은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충격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마사노부의 주장을 잃으면서 한 가지 생각난 것은 나도 이미 현대에 젖어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대중사회 속 소비주의 세대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났고, 서구화 된 삶을 살며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냥 몇 가지 ‘-주의’들을 적었지만 이것들이 내 삶에 꽤나 구속력 있게 작용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또한 나의 삶이, 사회가 많은 부분 앞에 나열한 인식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현대를 생각했을 때 이것은 정말 ‘혁명’에 가까운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9/01/11
2019/01/10
1901 “지속가능한 문명 실현하는 북의 농축산정책”
“지속가능한 문명 실현하는 북의 농축산정책”
홈기획연재
김수복 선생 ‘북의 과학기술정책’
“지속가능한 문명 실현하는 북의 농축산정책”
기사승인 2019.01.10 14:42:18
- 김수복 선생의 ‘북의 과학기술정책’ -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후방산업(1)
재미동포 통일운동가인 김수복 선생(6.15뉴욕지역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대북제재 원유 공급 중단으로 조성된 전력난을 이겨낸 북 특유의 ‘자연흐름식 물길공사’에 이어 공장·기업소와 주거단지에 농축산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closed loop)에 의한 후방사업’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지속가능한 문명 실현하는 북의 농축산정책”
기사승인 2019.01.10 14:42:18
- 김수복 선생의 ‘북의 과학기술정책’ -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후방산업(1)
재미동포 통일운동가인 김수복 선생(6.15뉴욕지역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대북제재 원유 공급 중단으로 조성된 전력난을 이겨낸 북 특유의 ‘자연흐름식 물길공사’에 이어 공장·기업소와 주거단지에 농축산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closed loop)에 의한 후방사업’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김 선생은 앞으로 북의 자연개발과 과학기술분야를 주로 다룰 예정이어서 연재 제목을 ‘북의 과학기술정책’으로 바꾼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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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은 평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승용차이다. 지난 2013년 5월17일 화창한 봄날 휘파람을 몰고 신의주 고속도로를 달렸다.
최첨단 새 기술에 의해서 무연탄만 있으면 비료를 뽑을 수 있다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당시 유튜브에는 북은 비료가 없어서 농사를 못 짓는다며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많이 퍼져있었다. 공장 포장반으로 들어서자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요소비료를 재빠른 동작으로 포장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른 달려가서 금방 생산한 하얀 비료알갱이를 내손에 한 움큼 쥐어보니 아직 따끈한 온기가 내 심장까지 스며왔다. 유튜브에 날조한 거짓들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방문 기록을 보니 공장 종업원이 1만2000명인데 기술직은 3000여명이고 나머지는 후방사업에 종사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 뉴욕에 돌아와서 한참 뒤 남흥청년화학을 소개하는 동영상의 후방축산기지 편을 보고서야 이러한 엄청난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북의 공장들에는 제품 생산부서와 별도로 공장 일군들과 가족은 물론이고 인근 애육원, 육아원, 양로원과 초등학원, 중등학원과 인근 주민들에게 공급할 육류단백질, 채소, 버섯과 심지어 과일을 생산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약 4000개의 농업협동농장과 축산전문조합은 당연한 것이고 전국의 모든 공장, 기업소, 군부대도 자체적으로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다. 대부분 육류, 야채, 과일, 버섯 등의 부식을 생산하지만 남흥청년화학과 같은 대규모 공장에서는 벼농사까지 지어서 주식까지도 해결하는 단위가 많이 있다.
이러한 사업을 후방사업 또는 후방축산사업이라고 한다. 농축산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진행하게 되므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closed loop)에 의한 후방사업이라고도 한다. 후방사업은 북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당 정책으로 시행되었고 김정은 시대에 와서 대대적으로 실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15년 5월 다시 평양에 가서 국가과학원 참사실장 리문호 박사로부터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를 비롯해서 북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리문호 박사는 미국의 아라모스 핵연구소 책임자였던 핵공학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평양에 왔을 때 3번이나 안내한 핵분야 전문가이다.
▲ 리문호 국가과학원 참사실장(박사. 왼쪽)과 함께
이와 같이 전국의 모든 기본 단위에서 자기들에게 적합한 축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단지와 공사 기간이 장기화되는 자연흐름식물길공사장이나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도 집짐승을 기르고 야채밭과 겨울철을 위한 남새온실까지 건설해 자기 단위 일꾼들에게 1년 내내 신선한 야채는 물론 육류 단백질 공급을 해결하고 있다. 양어장까지 함께 묶어서 진행하는 곳도 많이 있다.
이제는 밥만을 주식으로 하지 않고 축산물, 수산물을 더 많이 먹자는 당 정책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새로운 우량종자를 펼치며 짐승 먹이풀을 개발해 알곡먹이를 대폭 줄이면서도 집짐승의 숫자를 확대하고 있다. 리문호 실장에 의하면 스위스의 파울 염소와 잔앤종 염소와 또 3원 교잡 원원종돼지 우량종자를 대대적으로 전국으로 펼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화학비료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땅이 산화되어 지력이 떨어져 생산성도 떨어지며 농산물에 있어야 할 필수 영양소도 결핍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가혹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반공화국 세력들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원유 공급이 급락하자 농사에 필요한 화학비료 생산도 영향을 받았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유기질비료 생산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화학비료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주는 식물성장활성제 등을 많이 개발했다. 이것들은 이미 이용하던 흙보산비료와 함께 알곡생산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북에서는 각 지역의 토양 특성에 맞는 유기질거름과 흙보산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을 각 군에 한군데씩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유기질비료 원료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축산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돼지, 닭, 오리, 거위(게사니)의 배설물을 볏짚, 콩짚, 옥수수대와 야채 부산물에 섞어 발효시키면 질이 좋은 유기질거름이 된다. 그러나 볏짚과 콩짚 등은 가을에는 흔하지만 겨울과 봄에는 귀하고 양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영양가 높은 짐승먹이용 풀 육종에 힘을 넣어 이제 우수한 새로운 풀들이 등장했다. 비름, 토끼풀, 자주꽃자리와 같이 종전부터 있던 풀들에 더해서 단백풀, 애국풀이 나왔다.
단백풀은 연못처럼 얕은 물위에 떠서 자라는데 흙탕물이나 썩은 물에서도 잘 자라며 물 정화 능력이 탁월하다. 이 풀에는 단백질 함량이 많고 돼지, 닭의 식성에 잘 맞아 집짐승 알곡먹이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단백풀은 잘 자라므로 계속 걷어내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
▲ 물웅덩이에서 자라는 단백풀(위성과학자살림집 남새온실. 2015년)
새로운 종자인 애국풀은 수수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성장이 빠르고 5m까지 자라며 넙적한 잎이 28개까지 돋아 많은 양을 거둬들일 수 있다. 소, 염소, 돼지가 좋아하고 영양가도 높아 알곡먹이를 대폭 줄여주고 있다. 겨울나기를 위해서 절여 보관한다. 우리가 김치를 먹듯 가축에게도 겨울철에는 풀조림을 먹여서 건강을 증진시킨다.
애국풀을 개발한 원산농업종합대학 생물공학연구소의 동영상(아래)이 잘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대동강 과수종합농장, 은정구역 위성과학자거리 살림집 단지에 이어 휴전선 접경 세포지구 대단위 축산기지에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가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소개하겠다.
1. 대동강 과수종합농장
▲ 끝이 보이지 않는 대동강 과수종합농장 1000정보. 멀리 살림집들 너머에도 사과밭이 있다.
1000정보에 달하는 대단위 사과전문농장인 대동강 과수종합농장은 2009년 11월에 완공되었다. 평양시 동북 외곽에 있다. 작업에 편하도록 키 작은 사과 종자를 육종한 사과밭이 끝이 보이지 않는 무릉도원이 되었다. 사과 가공공장은 거의 무인화로 돌아가는데 사과과자, 단물 사이다, 사과술, 식초, 향수, 비누, 샴프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해서는 규모가 대단한 대동강 돼지공장과 양어장도 운영하고 있다. 각 부위별로 포장한 돼지고기제품과 여러 가공품과 양어장에서 키운 잉어, 왕새우, 왕개구리, 자라도 판매하고 있다.
돼지공장과 양어장에서 나온 배설물은 다시 위생처리를 거쳐 질 좋은 유기질거름이 되어 사과밭에 뿌려진다. 비옥해진 토양은 사과 풍년을 약속한다.
대단위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데 쓰레기가 거의 없는 청정 순환생산체계를 실현하고 있다. 이것을 북에서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에 의한 농축산이라고 부른다.
▲ 사과제품 가공공장. 거의 무인화된 자동흐름생산체계이다.
▲ 대동강 과수종합농장 매점 봉사원들이 우리 일행을 배웅하고 있다.
▲ 매점 내부
▲ 부위별로 포장된 돼지고기제품
▲ 사과 찌꺼기로 기른 자라, 잉어, 왕개구리, 새우도 판매한다.
2. 은정구역 위성과학자거리 살림집 단지
북의 과학중시정책의 핵심기관 중 하나인 국가과학원은 평양시 북쪽 은정구역에 분원을 두고 있다. 은정구역은 평성시에 속했는데 얼마 전에 평양시로 편입되었다. 평성시는 평안남도 도행정소재지이며 평양에 들어오는 길목이다.
위성과학자거리는 24개 호동에 1004개 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2014년에 완성되었다. 국가과학원 참사실장 리문호 박사께서 내가 미국에서 제기했던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질의에 대해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시고 오후에는 위성과학자거리까지 동행해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여행을 하다보면 과분한 대접을 받아서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학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나에게 방문 때마다 베풀어주신 국가과학원의 여러 분원, 인민대학습당, 김철주사범대학,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위성과학자거리 살림집 단지는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초급과 고급중학교까지 있고, 체육관, 병원, 일용잡화가게, 행정관리사무소를 갖춘 종합적 아파트단지이다. 이름은 과학자 살림집이지만 모두 과학자만 입주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은퇴한 부부가 아들 손주와 함께 거주하는 한 가구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살림집 매 호동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일정한 텃밭이 붙어있어 해당 주민들이 채소를 가꾸고 필요한 만큼 뜯어다가 싱싱한 식재료로 이용한다고 한다. 겨울철에도 싱싱한 야채 공급이 가능하도록 4개 호동의 태양열남새온실을 운영하고 있다.
▲ 매 호동 앞에 남새밭이 있다.
▲ 위성과학자거리 태양열남새온실 4개동
태양열남새온실 관리자가 마침 온실 천정에 엘이디(LED)등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매 호동 면적이 350평방미터인데 300평방미터의 남새(야채)밭 옆에 돼지우리, 단백풀 물웅덩이, 부엌과 메탄가스 발생 탱크, 영양액 탱크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여성 관리자는 첫 동에 있는 관리원실에 기거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다녀오는데 남편이 돼지냄새 난다며 놀린다고 웃는다. 위성과학자거리가 완성되면서 관리자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되어 자원했단다. 재정분야에서 일했고 남편은 지금도 재정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며 리승기 박사의 손주며느리 량혜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나도 리승기 박사에 관한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더니 금방 내 손을 덥석 잡고 친오빠처럼 살갑게 대해주며 토마토 3알을 선물로 주었다.
남새온실에는 여러 가지 남새를 가꾸고 바나나도 시험재배하고 있었다. 위에 실은 단백풀 소개 사진을 여기서 찍었다. 시멘트로 만든 자그마한 물웅덩이 위에 단백풀이 자라고 그 밑에는 미꾸라지가 헤엄치고 있다. 단백풀과 미꾸라지가 상생하는 평화의 현장이었다. 단백풀과 미꾸라지는 다 자라면 돼지먹이가 되고 돼지 배설물은 발효해서 남새온실의 거름이 된다. 남새 부산물과 돼지배설물을 메탄가스탱크로 흘려보내 발효되면 많은 양의 메탄가스가 생긴다. 부엌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켜자 불이 확하며 붙었다. 또 메탄가스를 만들고 남는 찌꺼기는 유기질 거름이 되어 남새밭에 뿌려진다.
온실 북쪽 벽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쌓고 흙을 더해 찬 기운을 차단하고 남향은 여러 겹 박막비닐로 되어있어 태양열을 흡수하므로 겨울에도 상온이 유지된다. 필요한 전기는 옆에 설치한 태양빛전지판에서 생산한다.
이렇게 크지 않은 아파트단지에서도 친환경 무공해 태양열온실을 운영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과학지식이 일반 인민들의 생활에 그대로 이용하도록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무엇 하나 쓸모없게 버려지지 않고 모든 것이 이웃에 유익하게 재사용되는 것이다. 고리형 순환생산체계가 생활화되고 있다. 다음에는 이런 주택단지가 얼마나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지 자료를 구하려고 한다.
(계속)
▲ 오밀조밀한 남새온실 350평방미터의 구조.
▲ 온실 천정에 LED등을 설치해 놓았다.
▲ 온실 내부 돼지우리에 11마리 새끼돼지가 통통하다.
▲ 단백풀이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를 손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 남새온실 량혜옥 관리원(왼쪽)과 함께.
▲ 돼지 배설물과 버리는 남새가 발효할 때 생기는 메탄가스로 밥도 짓고 물도 데운다.
김수복 6.15뉴욕지역위 공동위원장
다른 백년, 다시 개벽 – 이병한의 [개벽파 선언]
다른 백년, 다시 개벽 – 다른백년
기획칼럼, 조성환/
이병한의 [개벽파 선언] | 2019.01.03
다른 백년, 다시 개벽
이병한(다른백년 이사)
다른백년 이사, 원광대 동북아연구소 교수, 유라시아 문명사학자.
다른 백년, 다시 개벽
이병한(다른백년 이사)
다른백년 이사, 원광대 동북아연구소 교수, 유라시아 문명사학자.
저서로 『반전의 시대』, 『유라시아 견문』3부작이 있다.
1. 다시 천하?
새해 첫날입니다. 동트기 전, 고요한 새벽입니다. 2019년을 선생님과의 서신으로 출발합니다. 두근두근, 한 해를 여는 신고식입니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처럼, 새 마음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초심을 6개월 내내 지속하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을 돌아봅니다. 학술행사 참여 차 베이징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춤한 때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위대한 변혁’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한참을 줄을 서고 기다린 끝에야 겨우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고속인터넷, 세계 최장의 교각과 달 탐사 등 시종 물질개벽의 성취를 일방으로 선전합니다. 경제강국, 기술강국, 우주강국, 군사강국만 도드라지게 꾸며두었습니다.
물론 지난 40년 중국이 이룩한 상전벽해는 괄목할 것입니다. 그 성취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기내에서 시청한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제목이 유별납니다. <Crazy Rich Asians>. 아시아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는 ‘글로벌 중국인’이라 해야겠군요.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 커플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지인의 SNS를 통해 싱가포르에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곧장 알려집니다. 뉴욕,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런던 등 글로벌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실시간 이어지는 연결망이 대단합니다. 200년 오래된 화교 네트워크와 20년 새로운 온라인 네트워크가 결합된 21세기의 디지털-화교망을 실감나게 연출합니다. 누천년의 아날로그 공동체와 새천년의 디지털 커뮤니티가 합류한 모양새입니다. 신대륙과 구대륙을 아우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횡단하는 글로벌 차이나의 현재입니다.
‘Crazy Rich’, 영화 제목이 상기하는 것처럼 중국은 이미 물질개벽의 수준에서 미국과 유럽에 육박했습니다. 구미를 능가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일백주년에는 명실상부 G1이 될 공산이 큽니다. 새로운 현상만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오래된 지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아편전쟁 이전으로 반전하고 있습니다. 저 나라의 지도층이 부쩍 ‘책임대국’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익숙한 미래’를 예비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사상계에서는 ‘천하’나 ‘대동’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이번 베이징대학의 한 연구소 개소식 또한 ‘천하’를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었습니다. 천하질서가 무너졌다고 호들갑이었던 것이 불과 120년 전입니다. 동아시아인의 장구한 역사 감각으로 미루어 보면 백년의 대란은 잠시, 일시에 그칩니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한 주기, 변주일 뿐입니다. 천하는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확장되고 심화된 형태로 다시 굴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기에는 동아시아로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따라 아랍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오래된 사자성어가 “Global First”라는 신조어로 번안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보호주의로 퇴각하고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구미에 맞선 대안적 지구사상으로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신천하, ‘다시 천하’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천하의 귀환을 마다할 것 없다 여깁니다. 40년 항산을 갖추었으니, 다음 40년은 항심을 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천하론을 추수하는 것만으로는 썩 석연치 않습니다. 지난 백년을 지나 ‘다시 천년’으로 복귀하는 것 또한 영 마뜩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천하대란의 벽두, 우리들의 선조들이 자생적으로 토해낸 모던한 개념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개벽’입니다. 저들에게 ‘천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개벽’이 있습니다. 저들이 끝내 ‘천하’를 고수하고 사수할 때, 우리는 ‘개벽’을 창안하고 창조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선생님의 책 <한국 근대의 탄생>을 다시 펼쳐 든 까닭입니다. 저에게는 단연 2018년 ‘올해의 책’으로 꼽는 수작입니다. 완미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개벽’의 물꼬를 틔우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른 백년,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의 단서가 숱하게 묻혀있는 보물창고 같은 저서입니다. 부디 더욱 널리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2. 다시 개벽!
아시다시피 저는 유라시아를 천일 간 유랑했습니다. 근대의 고약한 시공간 개념을 철폐하고 싶었습니다. 공간적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무 자르듯 나누고, 시간적으로 전통과 근대에 만리장성을 쌓아둔 딱딱하고 단단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리고 싶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시 합류하고 고전과 미래가 소통하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진풍경을 두 눈에 담고 두 발로 누비고 싶었습니다. 귀로에 접어들며 뜻밖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서구적 근대가 산출한 겹겹의 분단체제의 심층에 성(聖)과 속(俗)의 분단체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분단체제라고도 하겠습니다. 자연과 자유의 분화라고도 하겠습니다. 속이 성을 압도했습니다. 지상의 논리가 천상의 도리를 압살했습니다. 자유가 자연에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근대화=세속화의 교조주의가 곳곳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과 속이 다시 합류하고 있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속합작’이라고 말을 즐겨 쓰게 된 연유입니다. 탈서구적 세계화, 지구적 근대의 정수였습니다. 허나 탈세속화의 끝이 비단 종교의 귀환이 아니었음이 백미입니다. 기성종교가 축적한 문명적 자산이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업데이트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영성화’라고 표현합니다. 특정계급만 향유하던 일상을 한층 성스럽게 영위하는 삶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의 추구가 ‘새 정치’도 추동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2.0’, 권리(權利)의 민주화에서 천리(天理)의 민주화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전혀 낯선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듭 거푸 동학운동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고 만물을 한울로 섬기는 동학이 목하 지구사의 대세, 메가트렌드와 합치한다고 여겼습니다. 귀국하면 신동학 운동에 투신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 자신을 ‘개벽파’로 자임하게 된 것입니다. 동무와 동지가 있을까, 동덕(同德)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찔러온 것이 선생님이 쓰신 일련의 논문들입니다. 이틀을 몰아서 ‘조성환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첫 손에 꼽았습니다. 처음 뵌 것이 작년 봄, 4월입니다. 익산의 원광대학교 앞, 아담한 카페였습니다. 그 후로 학교 안과 밖에서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넌지시 서신 형태의 연재를 제안한 것이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기꺼이, 망설임 없이 수락해 주셨죠. 신이 났습니다. 흥에 겨웠습니다. 덕분에 신년 맞이가 더욱 신명이 납니다.
<개벽파 선언!>. 철학자와 사학자가 나누는 이 대화에 임하는 저의 기대부터 밝혀두려 합니다. 사학과 철학의 앙상블, 사상사의 졸가리를 새로이 세우고 싶습니다. 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서술한 한국근현대사는 한마디로 ‘개화사’입니다. 문명개화, 서구적 근대로 향해 진보하는 150년사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에 기초하여 1,500년 과거사도 기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좌/우와 진보/보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식민지 근대화와 개발독재의 성취를 높이 치고, 다른 쪽은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높게 삽니다. 그러나 심급에서 ‘탈아입구’의 대서사는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구사의 대반전을 맞춤하여 ‘개벽사’(開闢史)를 새로이 쓰고 싶습니다.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150년사를 통으로 갈아엎고 싶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턱없이 벅찹니다. 공부도 아직 미진합니다. 밑천이 모자란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래서 먼저 개벽사를 정리하고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긴히 빌고자 합니다.
개벽사의 서술은 개벽학의 수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현재의 대학은 개화학교입니다. 학과체제부터 커리큘럼까지 온통 개화독재입니다. 절절하게, 열렬하게 개벽대학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새 학파의 등장은 새 정파 탄생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개벽파를 규합하고 개벽당의 출범까지 내다봅니다. 물론 서두를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철학이 부재한 새 정당과 새 정치의 좌초를 이미 숱하게 목도한 터입니다. 정당보다 시급한 것이 학당입니다. 공교육 학교와 사교육 학원 사이, 학당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공/사로 나뉘되 학교와 학원 또한 일백년 개화의 관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응당 개벽학당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개벽사의 서술, 개벽학의 수립, 개벽파의 규합, 개벽당의 출범, 그리하여 끝내 개벽국가의 탄생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먼저 마당을 깔고 피리를 불면 재야의 인재와 강호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희구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백년의 주인공, 새 천년에 태어난 1020세대의 호응을 깊이 갈망합니다.
3. 디톡스
바야흐로 2019년입니다.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부터가 ‘다시 개벽’운동이었습니다. 19세말 천하대란 속에 좌절한 동학혁명이 3.1운동의 기개로 20세기를 열어젖혔던 것입니다. 1919년에서 다시 백 년 째, ‘또 다시 개벽’, 개벽 2.0을 궁리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 ‘Toxic’이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과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극서와 극동이 하나의 지구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폭한이 유난스럽습니다. 미세먼지는 나날이 극성입니다. 지난 백년, 개화득세의 후과입니다. 적폐 중의 적폐, 19세기말 문명개화 이래 누적된 ‘개화 중독증’을 서둘러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개벽파 선언>이 그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디톡스 운동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중독에서 해독으로, 포스트모던, 포스트 웨스트, 포스트 트루스 시대정신과도 부합합니다.
미리 오해는 피하고 싶습니다. 개벽이 개화를 능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도모합니다. 서방학과 동방학을 회통한 신동학을 추구합니다. 천주와 천하와 천도가 융합하는 다시 개벽을 소망합니다. 해원상생(解寃相生),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쌍방의 조화를 탐색합니다. 지난 연말, 한해를 마감하는 술자리에서 애용했던 건배사가 하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남긴 방명록 문구입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의 부제 ‘개화에서 개벽으로’야말로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에 딱 어울리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맹목적 척사로 치달았던 북조선과 맹종적 개화로 내달렸던 남한이 다시 어울어지는 최선의 방편 또한 양쪽에서 공히 잊혀졌던 개벽파를 더불어 재건해가는 데 있다고 여깁니다.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읍시다.
첫 글은 이쯤에서 닫습니다. 책에서 제기한 도전적인 내용들은 차근차근 여쭙겠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 해가 떠오릅니다. 개벽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1. 다시 천하?
새해 첫날입니다. 동트기 전, 고요한 새벽입니다. 2019년을 선생님과의 서신으로 출발합니다. 두근두근, 한 해를 여는 신고식입니다. 심호흡을 깊이 하고 반듯하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처럼, 새 마음을 새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초심을 6개월 내내 지속하고 싶습니다.
지난 연말을 돌아봅니다. 학술행사 참여 차 베이징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춤한 때였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위대한 변혁’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한참을 줄을 서고 기다린 끝에야 겨우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고속인터넷, 세계 최장의 교각과 달 탐사 등 시종 물질개벽의 성취를 일방으로 선전합니다. 경제강국, 기술강국, 우주강국, 군사강국만 도드라지게 꾸며두었습니다.
물론 지난 40년 중국이 이룩한 상전벽해는 괄목할 것입니다. 그 성취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기내에서 시청한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제목이 유별납니다. <Crazy Rich Asians>. 아시아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는 ‘글로벌 중국인’이라 해야겠군요. 도입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 커플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가 지인의 SNS를 통해 싱가포르에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곧장 알려집니다. 뉴욕, 상하이, 홍콩, 타이베이, 싱가포르, 런던 등 글로벌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실시간 이어지는 연결망이 대단합니다. 200년 오래된 화교 네트워크와 20년 새로운 온라인 네트워크가 결합된 21세기의 디지털-화교망을 실감나게 연출합니다. 누천년의 아날로그 공동체와 새천년의 디지털 커뮤니티가 합류한 모양새입니다. 신대륙과 구대륙을 아우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횡단하는 글로벌 차이나의 현재입니다.
‘Crazy Rich’, 영화 제목이 상기하는 것처럼 중국은 이미 물질개벽의 수준에서 미국과 유럽에 육박했습니다. 구미를 능가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일백주년에는 명실상부 G1이 될 공산이 큽니다. 새로운 현상만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오래된 지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아편전쟁 이전으로 반전하고 있습니다. 저 나라의 지도층이 부쩍 ‘책임대국’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익숙한 미래’를 예비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사상계에서는 ‘천하’나 ‘대동’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이번 베이징대학의 한 연구소 개소식 또한 ‘천하’를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었습니다. 천하질서가 무너졌다고 호들갑이었던 것이 불과 120년 전입니다. 동아시아인의 장구한 역사 감각으로 미루어 보면 백년의 대란은 잠시, 일시에 그칩니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한 주기, 변주일 뿐입니다. 천하는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확장되고 심화된 형태로 다시 굴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기에는 동아시아로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따라 아랍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오래된 사자성어가 “Global First”라는 신조어로 번안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보호주의로 퇴각하고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구미에 맞선 대안적 지구사상으로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신천하, ‘다시 천하’의 기세가 하늘을 찌릅니다.
동아시아인으로서 천하의 귀환을 마다할 것 없다 여깁니다. 40년 항산을 갖추었으니, 다음 40년은 항심을 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천하론을 추수하는 것만으로는 썩 석연치 않습니다. 지난 백년을 지나 ‘다시 천년’으로 복귀하는 것 또한 영 마뜩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천하대란의 벽두, 우리들의 선조들이 자생적으로 토해낸 모던한 개념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개벽’입니다. 저들에게 ‘천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개벽’이 있습니다. 저들이 끝내 ‘천하’를 고수하고 사수할 때, 우리는 ‘개벽’을 창안하고 창조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선생님의 책 <한국 근대의 탄생>을 다시 펼쳐 든 까닭입니다. 저에게는 단연 2018년 ‘올해의 책’으로 꼽는 수작입니다. 완미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개벽’의 물꼬를 틔우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른 백년,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의 단서가 숱하게 묻혀있는 보물창고 같은 저서입니다. 부디 더욱 널리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2. 다시 개벽!
아시다시피 저는 유라시아를 천일 간 유랑했습니다. 근대의 고약한 시공간 개념을 철폐하고 싶었습니다. 공간적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무 자르듯 나누고, 시간적으로 전통과 근대에 만리장성을 쌓아둔 딱딱하고 단단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리고 싶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시 합류하고 고전과 미래가 소통하는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진풍경을 두 눈에 담고 두 발로 누비고 싶었습니다. 귀로에 접어들며 뜻밖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서구적 근대가 산출한 겹겹의 분단체제의 심층에 성(聖)과 속(俗)의 분단체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분단체제라고도 하겠습니다. 자연과 자유의 분화라고도 하겠습니다. 속이 성을 압도했습니다. 지상의 논리가 천상의 도리를 압살했습니다. 자유가 자연에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근대화=세속화의 교조주의가 곳곳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과 속이 다시 합류하고 있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성속합작’이라고 말을 즐겨 쓰게 된 연유입니다. 탈서구적 세계화, 지구적 근대의 정수였습니다. 허나 탈세속화의 끝이 비단 종교의 귀환이 아니었음이 백미입니다. 기성종교가 축적한 문명적 자산이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업데이트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영성화’라고 표현합니다. 특정계급만 향유하던 일상을 한층 성스럽게 영위하는 삶의 기술이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의 추구가 ‘새 정치’도 추동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2.0’, 권리(權利)의 민주화에서 천리(天理)의 민주화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전혀 낯선 모습만은 아니었습니다. 거듭 거푸 동학운동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고 만물을 한울로 섬기는 동학이 목하 지구사의 대세, 메가트렌드와 합치한다고 여겼습니다. 귀국하면 신동학 운동에 투신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 자신을 ‘개벽파’로 자임하게 된 것입니다. 동무와 동지가 있을까, 동덕(同德)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찔러온 것이 선생님이 쓰신 일련의 논문들입니다. 이틀을 몰아서 ‘조성환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첫 손에 꼽았습니다. 처음 뵌 것이 작년 봄, 4월입니다. 익산의 원광대학교 앞, 아담한 카페였습니다. 그 후로 학교 안과 밖에서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넌지시 서신 형태의 연재를 제안한 것이 늦가을 무렵이었습니다. 기꺼이, 망설임 없이 수락해 주셨죠. 신이 났습니다. 흥에 겨웠습니다. 덕분에 신년 맞이가 더욱 신명이 납니다.
<개벽파 선언!>. 철학자와 사학자가 나누는 이 대화에 임하는 저의 기대부터 밝혀두려 합니다. 사학과 철학의 앙상블, 사상사의 졸가리를 새로이 세우고 싶습니다. 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서술한 한국근현대사는 한마디로 ‘개화사’입니다. 문명개화, 서구적 근대로 향해 진보하는 150년사를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에 기초하여 1,500년 과거사도 기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좌/우와 진보/보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쪽은 식민지 근대화와 개발독재의 성취를 높이 치고, 다른 쪽은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높게 삽니다. 그러나 심급에서 ‘탈아입구’의 대서사는 공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구사의 대반전을 맞춤하여 ‘개벽사’(開闢史)를 새로이 쓰고 싶습니다.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150년사를 통으로 갈아엎고 싶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턱없이 벅찹니다. 공부도 아직 미진합니다. 밑천이 모자란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래서 먼저 개벽사를 정리하고 계신 선생님의 도움을 긴히 빌고자 합니다.
개벽사의 서술은 개벽학의 수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현재의 대학은 개화학교입니다. 학과체제부터 커리큘럼까지 온통 개화독재입니다. 절절하게, 열렬하게 개벽대학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새 학파의 등장은 새 정파 탄생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개벽파를 규합하고 개벽당의 출범까지 내다봅니다. 물론 서두를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철학이 부재한 새 정당과 새 정치의 좌초를 이미 숱하게 목도한 터입니다. 정당보다 시급한 것이 학당입니다. 공교육 학교와 사교육 학원 사이, 학당의 새 길을 모색합니다. 공/사로 나뉘되 학교와 학원 또한 일백년 개화의 관성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응당 개벽학당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개벽사의 서술, 개벽학의 수립, 개벽파의 규합, 개벽당의 출범, 그리하여 끝내 개벽국가의 탄생을 목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먼저 마당을 깔고 피리를 불면 재야의 인재와 강호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기를 희구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백년의 주인공, 새 천년에 태어난 1020세대의 호응을 깊이 갈망합니다.
3. 디톡스
바야흐로 2019년입니다.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부터가 ‘다시 개벽’운동이었습니다. 19세말 천하대란 속에 좌절한 동학혁명이 3.1운동의 기개로 20세기를 열어젖혔던 것입니다. 1919년에서 다시 백 년 째, ‘또 다시 개벽’, 개벽 2.0을 궁리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이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 ‘Toxic’이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과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극서와 극동이 하나의 지구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폭한이 유난스럽습니다. 미세먼지는 나날이 극성입니다. 지난 백년, 개화득세의 후과입니다. 적폐 중의 적폐, 19세기말 문명개화 이래 누적된 ‘개화 중독증’을 서둘러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개벽파 선언>이 그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디톡스 운동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중독에서 해독으로, 포스트모던, 포스트 웨스트, 포스트 트루스 시대정신과도 부합합니다.
미리 오해는 피하고 싶습니다. 개벽이 개화를 능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을 도모합니다. 서방학과 동방학을 회통한 신동학을 추구합니다. 천주와 천하와 천도가 융합하는 다시 개벽을 소망합니다. 해원상생(解寃相生), 일방의 승리가 아니라 쌍방의 조화를 탐색합니다. 지난 연말, 한해를 마감하는 술자리에서 애용했던 건배사가 하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 남긴 방명록 문구입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의 부제 ‘개화에서 개벽으로’야말로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에 딱 어울리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맹목적 척사로 치달았던 북조선과 맹종적 개화로 내달렸던 남한이 다시 어울어지는 최선의 방편 또한 양쪽에서 공히 잊혀졌던 개벽파를 더불어 재건해가는 데 있다고 여깁니다.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읍시다.
첫 글은 이쯤에서 닫습니다. 책에서 제기한 도전적인 내용들은 차근차근 여쭙겠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새 해가 떠오릅니다. 개벽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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