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公共)철학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자기와 타자와 세계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행복(私福)과, 일정 생활공간 속에 사는 주민 전체의 행복(公福)과, 양자가 상호보완적으로 세대를 초월하여 계승 생생(生生)하도록 작용하는 '공복(共福)'-공공(公共)의 행복-을 삼차원 상관관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의 꿈은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민족과 문화와 종교와 언어의 벽을 뛰어 넘어,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공공행복의 세계를 공동(共働:人+動) 구축하는 것입니다.이를 위한 지적(知的)전략이 바로 '활사개공(活私開公)'과 '공사공매(公私共媒)'를 통해서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지향하는 공공철학입니다."
공공철학 p190-p191
●김태창 소장의 말이다. 그는 '공공행복의 세계를 공동(共働)구축하는 표현에서 動자에 人이 첨부되어 인간미가 흐르는働자를 쓴다.
◆교토포럼◆
우리들은 왕왕 수단으로 삼는 눈앞의 목적을 자신의 목적으로 오해하고 인간 존재의 본래적 목적을 잊어버린다. 그날 저녁 나는 시미즈 사카에(淸水榮) 교수, 이노우에 키도(井上希道) 선사와 함께 인생의 목적, 의미 등의 문제에 대해 밤새도록 토론 했다. 이 토론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시켰다. 즉 자신의 국한을 초월할 필요가 있다. 사욕이 없는 입장에서 출발하여, 뜻을 함께 하고 길이 합치되는 사람을 모아서 함께 진동하고 함께 울리는 대화 가운데에서 인류를 위해 미래의 길을 열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통된 인식은 <교토포럼>의 출발점이 되었다.
1989년 11월 3일 [문화기념일] 국립교토 국제회관에서 <교토포럼>이라는 비영리 민간조직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회장을 맡은 시미즈 사카에 선생은 교토대학의 명예교수였다.
(중략)
일본 철학자 다니카와 데쓰조(谷川徹二)에 의해 ‘아인슈타인 원칙’이 라고 일컬어진 이념은 ‘전체 인류사회 멸망을 피하는 목표의 실현은 기타 어떤 목표에도 우선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이것은 또한 교토포럼의 원칙이기도 하다. 교토포럼은 과학과 종교 이 양대 영역에서 인류사회가 전체멸망을 부를 수 있는 요소에 대해 외재적 지구 환경의 파괴와 내재적 인간 정신의 파괴 두 방면에서 충분한 토론을 진행한다.
양심적 각성을 지향으로 삼고 인류사회 미래의 행복을 공동의 인식으로 삼아 닫힌 자아, 닫힌 사회로부터 점차적으로 자아의 개방, 사회의 개방을 향해 교토포럼은 매우 작은 범위에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디었다. 사람의 양지를 일깨우고 뜻을 세우는 것[立志]에서부터, 자신의 국한을 초월하여 사욕이 없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뜻이 같고 도가 합치되는 사람을 모아 더욱 높은 목적 인식과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함께 진동하는[共振] 대화 가운데에서 인류의 천추만세를 위한 태평사업의 길을 열어 놓는다. 교토포럼은 위에 언급한 목표의 실천과 체험의 장소를 실현하는 것이 되었다.
<실심실학>p360-p362
일본 연수 첫째 날 오사카에 있는 교토포럼에서 김태창 소장님과 대담을 하고 책 두권을 선물 받았다. 동방의 빛에서 출간한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김태창 편저, 조성환 번역:2010년 12월 10일 초판 발행))과 실심실학(야자키 카츠히코 지음, 정지욱 번역)이다.
일본어판 시리즈 공공철학은 1기 전10권(2001-2002)과 제2기 전5권(2004), 제3기 전 5권(2005) 총 20권(김태창 편저)이 나와 있고 중국어판 제1기 전 10권이 나와 있다고 한다.
철학에 대해서 모르는 내가 공공철학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80세(1934생) 고령에도 공과 사와 공과 공과 사와 사를 맺고, 잇고, 살리고자하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의 길을 이론만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시는 소장님을 만난 것이 큰 복이었다
그는 서구에도 공공철학이 있으나 그가 생각하는 공공철학과는 다르다고 한다. 공과 공공의 차이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이렇게 말한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은 'state-centric publicness'나 'governmental publicness' 혹은 official-bureaucratic publicness' 로, '공공'은 'citizen-centric publicness'나 'common-mediating publicness' 혹은 '서로 화(和)한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mutually softening publicness'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정치제제로서의 공화제의 '공화(共和)는, 그 작용면에서 보면 다름 아닌 상화(相和) 간화(間和) 호화(互和)에 해당합니다. 한편 영어권 일부에서는 최근 'public-common'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종래의 'public'이나 'common'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공철학 p246
"동아시아의 전통사상- 특히 중국사상과 한국사상- 의 맥락에서는, 이것이 '동(同)'과 '화(和)'의 '사이'의 문제로서 오랫동안 사유되고 논의되어 왔습니다. '동'은 기본적으로 동일률 또는 모순율적인 사고에 기초합니다. 그에 반해 '화'는 동일율과 모순율의 사이- 대립, 갈등, 분쟁- 를 완화시키고, 화해시키고, 가라앉힘으로써 맺고, 잇고, 살린다고 하는 발상이자 작동이자 과정입니다. 결국 '화'란 - 특히 '상화(相和)라고 이해하면- 양자의 공립(共立)을 가능하게 하는 '공매율(共媒律)'이라고 하는 새로운 논리가 되기도 합니다. 동일율과 모순율의 중간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포함하는 논리라는 의미에서 '포중율(包中律)'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간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양자를 매개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공매율'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이'와 '화'의 공공철학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그것은 행복공창(幸福共創)- 함께 행복해지는 것. 즉 공복실현(共福實現)- 을 지향합니다. '화', 특히 '상화'는, 세계를 보편일원화(普遍一元化)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원차이화(多元差異化)시키는 것도 아니며, 다양, 다원, 다중의 차이성, 독자성, 개별성을 사이의 문제로 재인식하고, 각자가 설정하는 경계, 영역, 구분을 횡단매개하는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는 부드러운 역동입니다. 저는 그것을 'transversality'라는 말로 나타냅니다. 'trans(횡단)+ vers(向)+ ality(性)'의 합성어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횡단매개성'입니다. <논어>의 '화이부동'이나 <국어>의 '화실생물(和實生物), 동즉불계(同卽不繼)'라는 명제를, '화'의 횡단매개적인 역동으로 읽는 것입니다. '사이'를 '동'으로 일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가지고 '다(多)와 '이(異)'를 살리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사이'와 '화'의 실심실학으로서의 공공철학의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공공철학 p248-p249
●글자 강조는 저 스스로 한 일이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자키 카즈히코
★야자키 카즈히코
1965년 <주>하이센스를 설립하여 전무에 취임
1980년 동사 사장
1987년 동사 대표이사겸 회장에 취임
동년 교토포럼 사무국장에 취임
회사명을 <주>페리시모로 개칭하고 대표이가겸 회장에 취임(미국 프랑스, 홍콩의 현 지 법인회장 겸임)
1992년 UNCED(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 회의) 공식신문인 EARTH SUMMIT TIMES의 공동발행인
동년 뉴욕에 '장래세대국제재단'을 설립하고 교토에 '장래세대종합연구소'를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
※ 지금은 기업 일선에서는 은퇴하여 '인도사막에 나무심기' '중국소수민족 장학사업',등을 하고 있다
함, 우리는 그의 저서 '실심실학' 한국어 번역판을 선물로 받았다.
"실은 저의 공공철학적 발상의 근원은, 한국 근세의 대유학자(大儒)인 하곡(霞谷) 정제두(鄭濟斗,1649~1736)의 '실심'에 의한/'실심'에 기초한/'실심'을 밝히는 '실학'이라고 하는 '실심실학'과 한국실학의 집대성자라고 불리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백성의 생활에 공헌하지 않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하는 '실용실학'의 학문관입니다. ..(중략}..
이 '사이'의 문제는 결국 자기와 타자 사이의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까지 73년 동안 세계의 여러곳을 다니면서 거기에서 연구하거나 살면서 자타간의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실패와 실망 그리고 낙담과 좌절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당시의 실패로부터의 배운 것이 오히려 오늘의 공공철학적 사고와 실천의 원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무엇보다도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만남은 내적으로 폐쇄된 세계로부터 외부 세계에 실재하는 타자와의 공존(共存)이라는 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동아시아에 파급된 세계사적 대 변혁과 그것이 요청하는 타자인식을 완강하게 거부한채, 반시대적인 자기인식만 고집 해 온 지도자들과 민중의 무지가 근대 한국의 비극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순자가 '천하의 공통된 우환(公患)'이자 '인간의 커다란 재난(大殃大害)'이라고 규탄한 '고루'한 폐해이지요.
만남은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대화는 일방적인 말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상대를 동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도 아닌, 각각의 '사'(성(性), 심(心), 욕(欲), 익(益), 리(利)등)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개신하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진심을 담은 말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진심이란 곧 실심을 말합니다. 가짜 마음, 거짓 마음, 이름 뿐인 마음이 아니라 성실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한다면 '실심대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심대화는 서로의 마음의 심층에서 공진, 공명, 공감하는 작용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작용이 겉으로 드러나 자기와 타자 사이를 잇게 되면, 여러 형태의 공동을 가져옵니다. 저는 협동(協同)이라는 한자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협(協)'이라는 글자는 뭔가 노골적인 폭력, 무력, 권력을 떠오르게 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 대단히 기분 나쁜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動)'에는 인간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인(人)'을 더해서 '동'(働)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공'(共)이라는 한자는 본래 '신에게 올리는 제물을 양손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일을 자기와 타자가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위해 성의를 담아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공동(共働)의 참모습입니다. 그래서 '실심공동'(實心共働)이라고도 말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성의를 담은 공동(共働)의 중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심(和心)'='온화한 마음'입니다. 중국 고전인 <국어>에 나오는 '화실생물(和實生物), 동즉불계(同卽不繼)'에서의 화의 작용을 말합니다. 온화함의 힘이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적절한 긴장완화는 만물생생의 순환체계를 가동시키는 기점으로, 사이를 활성화시킵니다. 서로가 '강심'(强心), '승심'(勝心), '전심'(戰心)만을 고집하면 사이가 양측의 퇴화, 변태, 공감(共減)을 가져올 뿐입니다. 사이(間)를 동(同)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아니라, 화(和)를 통해서 사이로 부터 공생(共生), 호생(互生), 상생(相生)의 새로운 역동(力働)이 시작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화심이라고 하는 실심(實心)의 공동(共働)입니다. 실심대화가 실심공동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실심개신(實心開新)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개신'이란 '새로운(新) 차원, 지평, 세계가 열린다(開)'는 말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차원, 지평, 세계를 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개(開)'가 자동사로도 타동사로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와 타자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와 공동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개신은,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명령, 지시, 설득에 의한 다른 한쪽의 복종, 수용, 납득이 아니라 상호학습, 상호이해, 상호실천이라는 점입니다.
공공철학p238-p240
"대체 '중용'(中庸)이란 무슨 뜻입니까?"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중(中)'을 '중심'으로 해석하고(중심성), 일본인들은 '내면'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데(내면성), 한국의 한사상에 입각해서 해석하면 '중'은 "중간(=사이)에서 매개하면서 양자를 살린다"는 의미이고 (매중성(媒中性), '용(庸)'은 이러한 매개 작용을 '평소에 실천한다'는 뜻이 됩니다.그럼 왜 사이에서 양자를 매개하는가? 그것은 서로를 보충해 주기 위해서입니다.그럼 왜 보충해 주는가? 그것은 서로를 행복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중용>에서 말하는 '중화(中和)'는 또 무슨 뜻입니까?"
"이 경우에 '중(中)'은 마음 속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을 말하고, '화(和)'는 그 감정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그 화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말고 마음 속으로 한번 걸러서, 부드러운 어조로 완화시켜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중화(中和)'가 됩니다."
공공철학 p470-p471
김태창
1934년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주한미국 경제기획보좌관,충북대 사회과학대학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일본동경대학 객원교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경영대학원 객원 교수 등을 역임 했으며 현재 일본 오사까에 있는 공공철학 공동(共働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공공철학, 연구의 현장들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고 소통시키는‘공공(公共)’이 필요하다”
대학신문 2008년 05월 24일 (토) 21:42:39 이진환 류원식 기자 realung1@snu.kr
교육 자율화와 함께 일고 있는 사교육 열풍, 노동자와 경영자간의 갈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 갈등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공과 사의 갈등 문제는 항상 논란이 되지만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공과 사의 갈등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과 사의 관계를 다루는 철학적 논의는 역사가 깊고 내용도 다양하다. 때문에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 해결책 또한 가지각색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쿄대 ‘공공철학 공동연구회’를 중심으로 공(public)과 사(private)를 이원구도로 파악하는 것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공공(公共)’개념을 재활성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어 주목해 볼 만하다.
서양의 공공철학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접근은 서양철학이 사회를 인식하는 주된 방법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은 폴리스에서 시민의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공적 영역으로, 가족의 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사적 영역으로 구분한다. 가정을 사적 관계망의 핵심으로 바라본 플라톤은 통치자가 가정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야 부정의 유혹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공공철학 연구자들은 공공성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사유 속에서 이해하곤 한다. 아렌트는 공과 사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룬 대표적 철학자다. 당시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적 권력정치를 경험한 아렌트는 이러한 현상이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고대에는 사적 영역에 갇혀있던 경제가 현대에 사회적인 것으로 비대화됨으로써 공공영역을 소멸시켰다”며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인 활동이 인간에게 가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행위라고 규정하고 공적 영역을 회복할 것을 역설한다.
플라톤에서 아렌트까지 이어지는 서양의 공공철학은 공과 사를 이원론(二元論)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그중에서도 공적 영역을 더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홍림 교수(정치학과)는 “사적 경쟁, 사적 논리가 팽배하게 되면 사회가 점점 공공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해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며 “이런 측면에서 서양의 공공철학은 대체로 공적 영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한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의 공공철학
최근 동아시아 각국에서 공공철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일본의 공공철학공동연구회는 교토포럼에서 공사 관계에 대한 개념을 재해석했고, 도쿄대출판부는 『공공철학』, 『공공철학총서』 시리즈 등을 발간했다. 『공공철학총서』는 법률, 종교, 문화, 예술,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 공공성을 적용해 설명한다. 야마와키 나오시 교수(山脇直司, 도쿄대ㆍ종합문화연구과)는 『공공철학의 고전과 장래』,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의 저서에서 고대 그리스, 중세 기독교, 유교 및 일본 사상을 통해서 공공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은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보다 중요시 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을 강조해 왔다.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정신은 역사 속에서 가미가제(神風)특공대나 야스쿠니(靖國)신사에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일본 사회는 ‘멸사봉공’의 정신을 비판하면서 사적 영역이 확대됐다. 사람들은 공적 영역에 무관심 해졌고 이는 탈정치적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사적 영역을 강조한 나머지 공적 질서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고희탁 연구교수(고려대)는“일본의 공공철학은 전전(戰前) 국가에 매몰돼 버린 개인과 전후(戰後) 공적 영역에서 사라져버린 개인, 양 측면을 모두 살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공공철학자들은 서양의 공공철학이 이원론적인 대립구도로 공과 사를 바라보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공, 사, ‘공공’(公共)이라는 삼원론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파악한다. 공과 사 모두를 살리기 위해 서양의 공공철학을 일본의 맥락에 맞게 재정의한 것이다. 그들은 서양의 공(public)으로 ‘공공’을 해석하지 않고 아시아의 ‘공공’으로 공(public)을 해석한다. ‘공공’은 공과 사의 사이를 매개하고 둘의 관계를 소통시키는 영역이다. 공공철학행동연구소장 김태창 박사는 “공과 사 쌍방을 서로 인정해 이 둘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함께 움직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를 개척하는 동태적인 과정이 ‘공공’의 실질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공과 사를 매개한다는 것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한차원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의미한다. 일본의 공공철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공자, 주자 등의 동아시아 전통사상에서 찾는다. ‘같지 않으면서 조화로운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법을 『논어』의 유명한 구절인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 찾아낸 것이 좋은 예다. 공공철학은 이질적인 ‘타자’의 존재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존재로 정의하고 자신과 타자의 ‘화(和)’와 ‘공(共)’을 통해 공공의 행복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런 역학관계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로 확장된다. 사적 영역을 존중하고 발전시키면서 공적 영역을 개방적으로 만들면 ‘공공의 인격’을 갖춘 시민들의 공공세계를 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사상에서 그 원형을 찾는 공공철학은, 같은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중국은 개혁겙낱?이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였던 중국은 그동안 사적 영역은 없고 공적 영역만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제성장과 함께 사유재산권이 신장되면서 양자 간의 충돌현상이 발생했고,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공과 사를 아우르는 공공철학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린(吉林)대학은 지난 2005년 ‘철학과 공공정책의 문제-중국경험의 반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정치적현실 때문에 공공철학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가 중국인인가 대만인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되던 공공철학은 최근 중국 전통 속의 공과 사의 문제를 찾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공사영역의 새로운 탐구-동아시아와 서양관점의 비교’라는 주제로 일본, 대만, 중국의 학자들이 모여 공공철학의 전통에 대해 논의했고, 이날 발표된 눈문은 『동아문명연구총서』로 출간되기도 했다.
국내 연구 현황 및 필요성
한편 지난달 16일(금) 씨알사상연구소는 ‘공공성의 철학과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씨알사상포럼을 개최했다.지난 2003년에는 한국양명학회 국제회의에서 공공철학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공철학에 대한 연구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계에서 자유주의, 공화주의 등의 정치사상에서 공과 사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공공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유홍림 교수는 “외국인의 참정권 문제나 한국정치의 공공성 등 공공철학과 연관된 주제들은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공공철학이 사회철학의 경우처럼 하나의 분과학문으로서 체계화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공공철학을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인식하고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공공철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널리 쓰이고 있지 않고, 하나의 학문적 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의 시기 내내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의 획득이 당면과제였던 탓에 공과 사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만한 토대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도있다. 고희탁 연구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민족주의적 정체성이 강해서 공적 질서 형성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하고, 권위주의 등의 역사적 경험을 겪어 공적 영역이나 공공성보다 개인의 자유, 권리를 더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우리 사회에 공공철학이 더욱 요구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규창 교수(이화여대·철학과)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이기적 개인주의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며 “이질성을 포용하는 공공철학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필요성을 설명했다.
공공철학의 기반은 아직 미약하지만 일각에서는 학자들의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6년 한국윤리교육학회는 ‘공공철학, 공공윤리, 시민교육’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일본 등의 학자들이 모여 ‘공공철학과 한사상’, ‘유가에서 본 공공사회와 공공윤리 제고론’ 등의 발표를 통해 공공철학을 전통사상 속에서 살펴봤다.
그동안 한국에서 공공철학은 체계적인 제도적곀橘??틀 속에서 연구되지 않았다. 개별적 학문에서 논의되는 공사 문제를 이제는 공공철학이라는 큰 틀 속에서 살펴볼 때다. 이와 함께 공공철학을 한국적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도 필요하다. 고희탁 연구교수는 “공공철학은 각국의 문화환경에 따라 논의의 초점이 다르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공공철학이 말하는 ‘활사(活私)’뿐만 아니라 활사를 위한 ‘열린 공적 질서’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