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법어]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참된 앎)의 문명으로
작성자 실상사 20-05-31 10:35 조회3,774회 댓글0건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참된 앎)의 문명으로
오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644년전 우리 곁에 오신 뜻 깊은 날입니다.
한없이 기쁘고 복된 날인데, 우리들의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습니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희생되었습니다. 작은 미생물로 인한 고통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라고 하니, 염려와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이 집중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도 가슴 아프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과 두려움, 배타와 혐오가 확산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는 ‘미혹(무명)의 문명병’입니다. 맹목적인 개발과 환경파괴, 도시집중, 성장에만 매몰된 경제질서 등 획일화된 현대문명의 병폐 위에 이 병은 생겨난 것입니다. 감각적 욕망, 풍요와 편리만 추구하는 소비문명에 길들여진 우리 각자의 삶이 병을 깊어지게 했고, 그 바탕에는 생명의 참모습에 대한 무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마다 백신을 개발하는 식의 표면적 대응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갈 수도 없습니다.
붓다께서는 ‘미혹(무명)’으로 인한 고통은 ‘참된 앎(깨달음)’으로만 치유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무명의 문명’은 ‘깨달음의 문명’으로만 활로가 열릴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 일상에서 서로간의 차이를 이해 존중하는 삶의 태도, 인간 • 자연 • 사회가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문명을 담대하게 구상하고 열어가야 합니다.
다행히 지난 수 십 년간 지구촌 곳곳에서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펼쳐져 왔습니다. 알맞게 소유하고 알맞게 쓰는 단순소박한 생태적 삶이 세상 곳곳에서 확산되었고, 주거 복지 의료 환경 교육 등 세상의 고통을 상호 돌봄과 나눔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작은 공동체들의 실험도 꾸준히 전개되었습니다.
일찍이 붓다께서는 깨달음의 문명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길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한마디로 가리키셨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홀로 우뚝하다. 기꺼이 뭇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하리”라는 문명대전환의 선언이었습니다.
불교는 지난 2천7백여년간 깨달음의 문명을 추구하는 단순소박한 공동체적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등불이 되고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전통이, 연기적 사유와 단순소박한 생활방식이 마을로 지역사회로 온 나라와 지구 전체로 확산되도록 우리 불교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역할 해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밝힌 진리의 등불로 오늘 인류가 겪고있는 고통의 본질을 환히 비추어,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으로 전환되도록 우리 불교인들부터 지혜와 용기를 모아내야겠습니다. 나아가 부처님의 정법을 좀 더 쉽고 명료한 대중의 언어로 다듬어 세상에 널리 펼치고, 지속가능한 사회 비전이 되도록 발전시켜냅시다.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참된 앎)의 문명으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엄중한 시대적 책무 앞에서, 함께하신 모든 도반들과 함께 간절히 발원합니다. 일평생 진리를 등불로, 자신을 등불로 살아가신 부처님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이 저마다 존엄함을 깊이 자각하여 고통을 낳는 미혹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모두에게 참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줄 깨달음의 문명이 자리잡을 때까지 불퇴전의 용기로 한 발 한 발 나아갑시다.
불기2564년 5월 30일
도법/실상사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