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1

함석헌 바가바드 기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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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 | 바가바드 기타- 제16장 거룩한 바탈과 귀신바탈
작성자 바보새 16-01-29 02:16 조회8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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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거룩한 바탈과 귀신바탈
 
 
 
 
거룩하신 주 말씀하시기를
 
지상의 자아(푸루쇼타마)에 대한 공부는 가멸과 불멸에 대한 지식의 절정이다. 그러므로 사실로 한다면 제7장에서 시작된, 즈나나 비즈나나에 대한 설명, 즉, 사람들이 카르마 요가에 의하여 도를 닦아나갈 때에는 최고 주재자를 깨달음으로써 해탈에 도달하게 된다는 그 설명은 여기서 완결이 됐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결론이 시작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제 9장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느껴 알 수조차 없이 뛰어나신 ‘그이’의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을 그저 간단히 했을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이 장에서 그러한 믿지 않는 자들의 성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어찌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게 되느냐 하는 것을 설명한 다음,「기타」전체에 대한 결론을 제 18장에서 한다. ―틸라크
 
1. 두려움 없음, 마음 깨끗함, 지식 요가에 굳게 섬, 자비, 자제, 희생, 경전 외기, 고행, 곧음,
 
2. 비폭력, 참, 노염 없음, 내버림, 안정, 몹쓸 소리 아니함, 산 것을 불쌍히 여김, 탐내지 않음, 온화함, 수줍음, 신중함,
 
3. 정신왕성, 참아줌, 억셈, 깨끗함, 샘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음, 이런 것들은, 바라타의 왕자야, 거룩한 바탈로 난 사람 들의 받아가지고 있는 것이니라.
인도의 종교적인 상징 중에서 광명을 표시하는 ‘데바’(deva)와 ‘어둠의 아들’인 아수라의 대립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다. 「리그베다」에는 신들과 암혹의 대적들이 싸우는 것이 있고, 라마야나(Ramayana)도 고등한 문화 대표자들과 무절제한 이기주의 대표자들의 충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하바라타」는 진리와 법과 정의의 신봉자인 판다바족(Pandavas)과 권력의 숭배자인 카우라바족(Kauravas) 사이의 싸움이다. 역사를 보면 인류는 놀랄이만큼 변함없이 그 특징을 지켜온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도 마하바라타의 시대나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거룩하게 착하고, 어떤 사람들은 악마 같이 타락되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고약하게 무관심하다. 이것들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의 갈 수 있는 길들이다. ‘데바’ 도 ‘아수라’도 다 마찬가지로 프라쟈파티에서 나온 것이다. ―라다크리슈난
이 스물여섯 개의 거룩한 특성은 제 13장(7〜11절)에서 말한 즈나나의 특징과 실질상으로 같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음 절에서 거룩하지 못한 특성들을 들 때에 그 속에 아즈나나(ajnana,무지)를 넣었다. 이 26개 항목의 말들을 서로 각각 구별해 설명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요, 또 크리슈나의 뜻이 그렇게 하잔 것도 아닐 것이다……위의 세 절에서 이 모든 특성들을 열거한 목적은 오직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으로써 선성의 거룩한 천분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가 어느 한 말로 분명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어느 말 속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틸라크
 
4. 위선, 건방짐, 자부, 분노, 각박, 무지, 이런 것들은, 프리다의 아들아, 귀신 바탈로 난 것들의 특성이니라.
 
5. 거룩한 바탈은 해탈을 위한 것이고 귀신 바탈은 얽어매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판두족의 아들아, 슬퍼하지 말라, 너는 거룩한 바탈로 났느니라.
1절에서 5절까지에 있는 모든 말에 관하여는 갈라디아 사람들께 보낸 바울의 편지 5장 끝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성령께서 지도하신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육정을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슬리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슬립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육정이 빚어내는 것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더러운 것,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가 되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5: 1~26)
그 덕들을 하나님이 주신 유산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열매라 하고, 그 악을 귀신이 주는 유산이라기보다 육(肉)의 작용이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룩한 바탈과 귀신의 바탈이란 어쩔 수 없이 꼭 짜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다.「기타」에 인생더러 지옥의 세 문을 피하라고 한 것을 참조하라.
그리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비평에서, 위에 열거한 덕목을 보면 그 주요한 것들이 다 소극적인 도덕뿐이라는 말은 온전히 잘못된 비판이라는 게 나의 의견이다. 이 덕목들이 실지로 살려는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그 하나하나의 뜻을 설명하는 즈나네슈바라(Jnaneshvara)의 글을 보면 된다.
맨 첫머리에 있는 두려움 없음은 아마 무엇보다도 더 적극적인 도덕일 것이다.「우파니샤드」는 두려움 없음의 조건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자기밖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다름’이라는 데서부터기 때문이다.” “브라만의 즐거움을 안 사람에게는 두려움이란 것이 없다.” “볼 수 없는, 구체적이 아닌, 두려울 것 없는 것 안에 턱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사람은 두려움이 없어진다.” 다른 모든 덕이 다 여기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간디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네가 만일 참에 대한 맹세를 지키려 한다면 두려움은 필연적으로 없어질 것이다.” ―마하데브 데자이
 
6. 이 세계 피조물에는 두 종류가 있다. 거룩에 속한 것과 귀신에 속한 것. 거룩한 종류에 관하여는 이미 자세히 말하였으니, 프리다의 아들아, 이제 귀신 종류를 들어보아라.
 
7. 귀신 바탈의 사람은 어떤 것이 할 것이요, 어떤 것이 하지 않을 것임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정결도, 올바른 행동도, 참도 없다.
 
8. 그들은 생각하기를 세계는 실존도 아니요, 근저도 없고, 주인도 없다. 그럴 만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만 서로 간의 정욕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실존도 아니 아사챠(asatya), 진실하지 않음.
‘근저가 없다’ 함은 어떤 도덕적인 근거도 없다는 말, 이것이 물질주의적인 견해다.
아파라스파라삼부탐(aparaspara-sambhutam)은 일정한 원인이 있어서 된 것 아니다 하는 뜻. 이것은 또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다. 이슈바라(창조주)가 통솔하고 있는 세계는 일정한 질서에 맞는 세계다. 거기서는 한 물건에서 다른 물건이 나을 때는 법칙에 의해서 된다. 그런데 물질주의자들은 세계에 그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저 어떻게 돼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실은 일정하게 계속되는 것이란 없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세계는 오직 쾌락을 위해서만 있다고 한다. “모든 생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원인은 오직 성욕 그것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로카 야티카스(Lokayatikas,오랜 옛날 있었던 물질주의자―역주)의 견해다”라고 샹카라는 말했다. ―라다크리슈난
 
9. 이러한 생각에 달라붙어서, 그 영혼을 잃고, 이성에 부족한 것들은 흉악한 행동을 하며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그 원수로 나타났느니라.
 
10. 물릴 줄 모르는 애욕에 빠져들어 위선과 교만과 방종에 몸을 맡기고, 허망한 생각으로 그릇된 견해에 빠져 부정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11. 한이 없고, 죽음으로야 끝이 나는 근심 걱정에 싸여, 욕망의 만족을 최상의 목적으로 알고, 인생은 그저 이것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12. 천 가지 백 가지 공상의 줄에 걸려 애욕과 노여움의 종살이를 하며, 욕망의 만족을 위해 부정한 수단으로 재물쌓기를 일삼고 있다.
 
13. 이것을 오늘 내가 얻었다. 이 나의 소원을 내가 성취하리라. 이 제물은 내 것이요, 이후에도 역시 내 것일 것이다.
 
14. 나는 내 대적을 이미 멸했고, 또 다른 대적도 내가 멸할 것이다. 나는 주인이다. 나는 즐거워하는 자다. 나는 성공자다. 나는 강한 자다. 나는 행복자다.
 
15. 나는 부자요, 귀한 자다. 감히 나와 견줄 자 누가 있느냐? 제사도 내가 드릴 것이요 자선도 내가 베풀 것이다. 그리 하여 나는 스스로 즐거워하리라. 이와 같이 무지에 미혹된 자는 말하더라.
 
16. 그렇듯 허다한 생각에 미혹되어 미망의 그물에 걸리고, 욕망의 만족에 물들어 그들은 더러운 지옥에 빠지느니라.
 
17. 자부하고, 완고하며, 부(富)함으로 일어나는 교만과 방종에 빠져, 그들은 허영심에서 규칙을 무시하고 이름뿐인 재물을 바치느니라.
 
18. 자부와 힘과 교만과 또 애욕, 분노에 사로잡혀 그 악한 자들은 자신 또는 다른 사람 속에 있는 ‘나’를 미워하느니라.
나 크리슈나, 곧 각 사람 속에 계시는 지상의 주재자.
 
19. 그 미워하는 자들은 잔혹하고 사나운, 인간 중에서 가장 천한 것들이므로 이 윤회의 바다에서 나는 그들을 끊임없이 마귀의 태 속에 집어넣는다.
윤회의 바다 나고는 죽고, 죽어서는 또 난다는 고통의 바다인 이 현상의 세계 속세.
 
20. 쿤티의 아들아, 이 악마의 태 속에 들어간 것들은 다시 나고 또다시 나면서 헤매어 내게 이르지 못하고 마침내 가장 낮은 지경으로 떨어져 들어가느니라.
 
21. 이 영혼의 멸망으로 이르는 지옥의 문은 세 겹으로 되어 있으니, 애욕과 분노와 탐욕이다. 그러므로 이 셋을 버려야 하느니라.
애욕, 분노, 탐욕 치(痴), 진(膜), 탐(貪)의 3 독(三毒).
 
22. 쿤티의 아들아, 이 어둠의 세 겹 문을 벗어난 사람은 자아에 대해 좋은 일을 한 다음,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르느니라.
 
23. 그러나 누구나 성전의 계명을 내버리고 애욕의 행동에 멋대로 머물러 있는 자는 완전에 이를 수도 없고, 안락을 얻을 수도 없으며, 가장 높은 지경에 이를 수도 없느니라.
 
24. 그러므로 무엇이 할 것이며 무엇이 하지 않을 것임을 결정하는 데는 경전만이 네 표준이 되어야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먼저 경전이 명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 다음 행동하여야 하느니라.
무엇이 할 것이며, 무엇이 하지 않을 것 카랴(karya, 의무), 아카랴(akarya, 의무 아닌 것), 우야바슈디타우(uyavashthitau, 결정).
욕망의 충동은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으로 바뀌어야하지만 정신의 자유에 대한 지상목적이 달성되면 사람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요, 법에 따라 하는 것도 아니요, 모든 생명의 정신에 대한 깊은 뚫어봄에 의하여 행동하게 된다. 사람의 일만으로 개인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다가, 그담은 사회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법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구경에 가서는 생명의 깊은 뜻에 도달해서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욕망의 지배(18: 59), 법의 지도(16: 24) 정신의 자유(18: 64, 11: 33)—라다크리슈난
 
이것이「바가바드기타」라는「우파니샤드」의 제 16장 거룩한 바탈과 귀신바탈의 끝이니 이는 브라만의 지식 속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크리슈나와 아르쥬나의 문답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