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04.一日三省(일일삼성)
一日三省(일일삼성)
<論語> <學而第一(학이제1)> 0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이니라“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 曾參)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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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註(논어집주)>
<學而第一(학이제1)> 0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 曾參)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曾子(증자)는 孔子弟子(공자제자)니 名參(명삼)이요 字子輿(자자여)라 盡己之謂忠(진기지위충)이요 以實之謂信(이실지위신)이라 傳(전)은 謂受之於師(위수지어사)요 習(습)은 謂熟之於己(위숙지어기)라 曾子以此三者(증자이차삼자)로 日省其身(일성기신)하여 有則改之(유측개지)하고 無則加勉(무측가일)하여 其自治誠切(기자치성절)이 如此(여차)하니 可謂得爲學之本矣(가위득위학지본의)요 而三者之序(이삼지서)는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즉우이충신위전습지본야)니라』
『○ 尹氏曰(윤씨왈) 曾子守約(증자수약)이라 故(고)로 動必求諸身(동필구제신)하시니라
○ 謝氏曰(사씨왈) 諸子之學(사씨왈제지지학)이 皆出於聖人(개출어성인)이나 其後愈遠而愈失其眞(기후유원이유실기진)이어늘 獨曾子之學(독증자지학)은 專用心於內(전용심어내)라 故(고)로 傳之無弊(전지무폐)하니 觀於子思孟子(관어자사맹자)면 可見矣(가견의)라 惜乎(석호)라 其嘉言善行(기가언선행)이 不盡傳於世也(불진전어세야)여 其幸存而未泯者(기행존이미민자)를 學者其可不盡心乎(학자기가불진심호)아』
『증자(曾子)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삼(參)이요,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이르고, 성실히 하는 것을 신(信)이라 이른다. 전(傳)은 스승에게 전수(傳受)받은 것이요, 습(習)은 자기 몸에 익숙히 함을 말한다. 증자는 이 세 가지로써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여 이런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자신을 다스림에 정성스럽고 간절함이 이와 같았으니, 학문하는 근본을 얻었다고 이를 것이요, 세 가지의 순서는 또 충(忠)•신(信)을 전습(傳習)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 윤씨(尹氏)가 말하였다. “증자(曾子)는 지킴이 요약(要約)하였다. 그러므로 행동함에 반드시 자신에게서 구하신 것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여러 제자들의 학문이 다 성인(聖人)에게서 나왔으나 그 뒤에 더욱 멀어질수록 더욱 그 참을 잃었는데, 유독 증자의 학문은 오로지 내면에 마음을 썼다. 그러므로 전수(傳受)함에 폐단(弊端)이 없었으니, 자사(子思)와 맹자(孟子)에게서 관찰하면 이것을 볼 수 있다. 애석하다! 그 아름다운 말씀과 좋은 행실이 세상에 다 전해지지 못함이여. 그 다행히 남아있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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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논어주소)>
<學而第一(학이제1)> 0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 曾參)가 말하였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注]馬曰 弟子曾參이라 言凡所傳之事에 得無素不講習而傳之[乎]아
마왈(馬曰):제자 증삼(曾參)이다. “남에게 전수(傳授)한 일 중에 평소 강습(講習)하지 않은 것을 전한 것은 없었는가?”라는 말이다.
[疏]‘曾子曰’至‘習乎’ ○正義曰:此章論曾子省身愼行之事. 弟子曾參嘗曰 “吾每日三自省察己身, 爲人謀事而得無不盡忠心乎, 與朋友結交而得無不誠信乎, 凡所傳授之事, 得無素不講習而妄傳乎. 以謀貴盡忠, 朋友主信, 傳惡穿鑿, 故曾子省愼之.
경(經)의 [증자왈(曾子曰)]에서 [습호(習乎)]까지
○ 정의왈(正義曰):이 章은 曾子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행실을 삼간 일을 논한 것이다.
제자 증삼이 일찍이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나 자신을 성찰(省察)하니,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하면서 충심을 다하지 않은 점은 없는가? 벗과 교제하면서 성신(誠信)하지 못한 점은 없었는가? 전수(傳授)한 일들 중에 평소 익히지 않은 것을 전수(傳授)한 것은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계획에는 충심을 다하는 것이 귀중하고, 벗 사이에는 신의가 중요하고, 전수에는 천작(穿鑿:牽强附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증자가 반성하고 근신(謹愼)한 것이다.
★ 穿鑿(천작) : 학문을 깊이 연구함
★ 牽强附會(견강부회) :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의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
[疏]○注 ‘馬曰 弟子曾參’ ○正義曰:史記弟子傳云 “曾參, 南武城人, 字子輿. 少孔子四十六歲. 孔子以爲能通孝道, 故授之業. 作孝經, 死於魯.”
○ 주(注)의 [馬曰(마왈) 弟子曾參(제자증삼)]
○ 正義曰(정의왈):≪史記(사기)≫ ˂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에 “증삼은 남무성(南武城) 사람이고, 자(字(는 자여(子輿)이다. 공자보다 46세가 적다. 공자는 그가 효도에 능통하였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에게 학업을 전수하셨다. 그는 ≪孝經(효경)≫을 지었고, 노(魯)나라에서 죽었다.”라고 하였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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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注疏)≫는 ≪논어≫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저술된 가장 오래된 주석서(注釋書)이다. 주희(朱熹: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와 함께 대표적인 ≪논어≫ 주석서로 일컬어지며, 중국 위(魏)나라 하안(何晏)의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송(宋)나라 형병(邢昺)이 소(疏)를 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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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曾子, 기원전 505년~기원전 435년)는 중국 전국 시대의 유가(儒家) 사상가이다.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輿)이며, 증자는 존칭이다. 남무성(南武城, 지금의 산둥 성) 출신이다.
공자의 만년의 제자로서 공자보다도 46세 연하이다. 공자 사후 유가의 유력한 일파를 형성하여 공자사상의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켰다. 그의 언행은 《논어》에 몇 조목이 보이며, 또 《대대례기》(大戴禮記)의 증자 10편 및 《효경》은 그의 저작이라고 인정된다. 그는 당시 진행 중이던 봉건제의 붕괴를 제지하기 위하여 씨족제로부터 비롯된‘효(孝)’라는 덕목을 강조하였다. 또,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펴본다”라고 하여 공자 사상의 근본을 충서(忠恕)라는 말로 표현했다. 공자 사상의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후에 증자의 학통은 자사, 맹자로 이어져 유가의 도통을 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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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자의 이름, 曾參은 증삼인가? 증참인가?
○성백효 선생 역서 논어집주 (학이편 4장) : 이름은 參(참)이요...
대개 曾參을 증삼으로 읽는 것이 보편적인데, 위의 역서에는 '참'으로 음을 달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參에 대해서는 그 음이 里仁편에 등장한다.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里仁篇15章 중에서) ○參,所金反.
所金의 反이므로, 그 음은 '슴'이다. 중국음으로 읽으면 '씬'이 되는데, 參의 현대 중국음 중에 '씬'은 없다. 이는 아마도 古音이기 때문에 현대 중국음과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여하튼, '슴'과 비슷한 우리음은 참이 아니라, 삼이고, 현대 중국음으로 봐도 참(: 중국음: 찬)이라기 보다는 삼(: 중국음: 싼, 또는 쉔)에 가깝기 때문에, 曾參의 이름은 '증삼'으로 읽어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2. 傳不習乎? 의 해석.
(古注-注) 凡所傳之事, 得無素不講習而傳之.
(古注-疏) 凡所傳授之事, 得無素不講習而妄傳乎?
고주에 따르면, 傳은 전수하다는 의미로서 동사이고, 習은 전수할 일들을 익히고 강론한다는 의미로서 명사구로 해석해야 한다. 즉, 우리말의 어순에 따라 위의 글을 재배치하면 이런 것이다.
得無素不講習(凡所傳授之事)而妄傳乎?
모든 전수해야 할 일들을 평소에 강습하지 않고 망령되이 전수함이 없었는가?
도올 강의에서는 이를 어느 일본인이 傳을 동사로 보고, 不習을 명사로 본다고 하였으나, 이미 古注에서 그렇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新注) 傳, 謂受之於師.
주자는 傳을 명사로 보고 있다. (단, 傳, 平聲이라 하였다. 중국음으로, 傳을 평성으로 읽으면 전수하다는 의미이며, 거성으로 읽으면 경전의 의미로서, 서로 뜻이 다르다) 그리고 不習乎를 하나의 동사구로 보고 있다. 이것이 문장의 형식면에서나, 의미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不忠乎? 不信乎? 不習乎? 로 댓구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앞부분은 그 동사구에 대한 대상들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즉,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도모함에, 붕우와 사귐에, 전수함을, 不忠했는가? 不信했는가? 不習했는가? 인 것이다.
이때 전수함이란, 不習의 대상이므로, 제자에게 전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스승에게서 전수한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친절히 "스승에게서 受한 것"이라고 注하는 것이다.
3. 아랫부분에 대한 성백효 선생 역서의 현토에 관하여..
謝氏曰 諸子之學이 皆出於聖人이나 其後愈遠而愈失其眞이어늘 獨曾子之學은 專用心於內라 故로 傳之無弊하니 觀於子思孟子면 可見矣라.
성백효 선생은 위와 같이 현토하셨는데, 나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문제는 "故로 傳之無弊하니"에 있는데, 이는 문장의 전체 흐름에 다소 부자연스럽게 붙여진 토인 듯하다. 내가 현토한다면 "故로 傳之無弊를"이라고 할 것이다. 傳之無弊는 서술부가 아니고, 可見의 목적구이기 때문이다. 즉, 위의 문구를 우리말의 어순에 따라 재배열하면,
故觀於子思孟子, 可見傳之無弊矣.
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한문의 입장에서 봐도 가능한 문장이다. 可見은 그 목적절을 앞에 둘 수도 있고, 뒤에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적어가 명사구인 경우는 목적어가 도치되는 것이 일반적임: 이때 목적어가 도치된 자리에는 동사에 之를 붙이거나, 또는 그 동사에 可처럼 조동사나 不와 같은 부정사가 붙을 경우에는 之를 동사뒤에 붙이지 않는다. 즉 可見之라 하지 않음) 따라서, 傳之無弊는 서술부가 아니라, 당연히 可見의 목적어인 것이다. 따라서, 서술부에 해당하는 토를 달 것이 아니라, 목적어에 해당하는 토를 달아야 한다.
공자-증자-자사-맹자로 道統이 이어지므로, 증자의 학문은 간접적으로 그 뒤를 이은 자사의 중용이나, 맹자의 [맹자]를 보면 증자의 그 학문이 어떠했는지를, 즉 공자로부터의 그 전수함이 폐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출처>이야기 한자여행
http://hanja.pe.kr/tt/board/ttboard.cgi?act=read&db=old_qna&page=1&idx=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