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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6

변혁적 중도주의와 불교 / 백낙청 < 권두언 - 불교평론

[권두논단] 변혁적 중도주의와 불교 / 백낙청 < 권두언 < 기사본문 - 불교평론



[권두논단] 변혁적 중도주의와 불교 / 백낙청
기자명 백낙청
입력 2026.03.28 

― 붓다의 중도론에서 현대 한국의 변혁적 중도주의로

20여 년 전 ‘변혁적 중도주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을 때만 해도 나는 불교적 의미의 ‘중도’와의 연관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가능성이 약간 부담스러웠다. 좌와 우를 적당히 절충한 중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의 중도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그 점을 더 천착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 사회에서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공유하는 광범위한 중도 세력의 결집이 변혁적 중도주의의 취지였고,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참된 진보 노선이다”라고 주장하는 데 그쳤다. ※註 주 1) 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2006), 〈6·15 시대의 대한민국〉 31면. ‘변혁’과 ‘중도’라는 얼핏 보기에 상충하는 두 낱말이 논리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것은 ‘변혁’은 한반도 차원에 적용되고 ‘중도’는 분단체제 변혁의 목표에 동조하는 남한 내 광범위한 세력의 규합을 뜻하기 때문이다.(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변혁과 중도를 다시 생각할 때〉 178~179면).

이후 나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의 개벽사상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친연성에 주목했고※註 사회변혁 운동에서 수행과 정신개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키워 갔으나 붓다까지 끌어대는 일은 여전히 언감생심이었다. 주 2)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변혁적 중도주의와 소태산의 개벽사상〉. 이 글은 졸저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창비, 2025)에 제4장으로 재수록됐다.

그러던 중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창비, 2025)라는 나의 신간을 접한 《불교평론》 측으로부터 불교와 연관시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정리하는 글을 써 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차제에 불교 공부를 더 해 보려는 욕심도 없지 않은 데다 마감날이 한참 남았다는 사실만 믿고 덜컥 응했는데, 결국은 불교에 대한 엄청난 무지를 치유하지 못한 채 집필을 서둘러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붓다의 중도론에 관한 단상

붓다의 ‘중도’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고행도 쾌락도 아니고 그 둘을 적당히 섞어 놓은 것도 아닌 올바른 가운뎃길을 뜻한다고 한다. 이를 출가 이전의 향락 생활도 아니오, 출가 후의 고행도 아닌 중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쾌락은 수행의 과정에서 맛보는 쾌락을 뜻하며 “몸으로 완성하는 수행과 감각을 멈추어 얻는 삼매는 절대로 최상의 깨달음으로 연결되지 않기에, 붓다는 고행이나 삼매를 떠난 중도(中道)를 설한 것이다.”※註 라는 해석이 옳은 것 같다. 주 3) 고광 《고광스님의 불교 도장 깨기》(불광출판사, 2025), 50면. 저자의 부연 설명도 함께 인용한다. “선정 삼매(三昧)의 즐거움은 감각적인 쾌락보다 훨씬 강렬하며, 실제로 삼매에 들어가면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편안함과 강렬한 희열이 느껴진다. ……싯다르타도 ‘이 즐거움이 지속되면 열반이 될 것이라는 견해’에 빠졌다가 ‘열반으로 이어질 수 없는 삿된 견해’ 즉 사견(邪見)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버린 것이다.”(82면).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세속의 노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붓다의 중도론이 갖는 매력은 세계의 큰 종교 중 거의 유일하게, 입증이 안 되는 특정 명제들―우주의 시원과 종말이라든가 교조의 이적 등―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 점이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조리 정연한” 말로 “합리적 이성에 호소”※ 하는 것이 불교의 전도 방법이다. ※註 주 4) 홍사성 권두언 〈지령 100호, 전도선언을 다시 읽는다〉 《불교평론》 2024년 겨울호, 5면.

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탈종교를 지향하면서도 인간의 종교적 욕구도 충족하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탈종교적 종교’의 면모이기도 하다. ※註 주 5) 불교와 더불어 한반도인의 정신생활을 오랫동안 주도해 온 유교도 ‘탈종교적 종교’랄 수 있다. 다만 불평등한 사회제도들과 너무나 밀접히 합체된 역사로 인해 현대인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동학이나 원불교가 이룬 일대 전환이 필요한 처지로, 힌두교 사회의 전통들과 과감히 결별하면서 처음부터 평등주의를 지향한 불교와 다른 점이다.

실제로 붓다가 깨달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는 모두 이치를 따져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며, 근대 과학의 입장에서도 거부감을 느낄 일이 적다. 물론 물리적 우주라는 실체가 ‘있다’는 전제 아래 그것에 대한 알음알이의 축적에 골몰하는 과학은 붓다의 깨달음에 위배되는 ‘사견(邪見)’이지만, 현대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감각하는 대상이 연기작용으로 구성된 가상현실이라는 붓다의 견해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곧, “과학 자체는 ‘가상현실’과 ‘진짜 현실’을 판별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비록 그 ‘가상현실’의 정도나 종류에 대해서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대상에 관해 더없이 풍부한 수학적 계산을 동원하여 판별해 주지만―엄밀히 말하면 실제로 신체의 접촉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그것이 고도로 세련된 ‘싸이버 쎅스’와 진정한 결합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판별해 줄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뜻이 된다.” ※註 주 6) 졸저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창비, 2020) 제7장 ‘재현과 (가상)현실’, 342~343면. 물론 과학이 말하는 가상현실은 여전히 유(有)의 세계에 속하고 붓다가 설한 ‘가유(假有)’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진정한 결합’도 연기작용에 따른 허상이다. 그러나 허상 중에도 ‘진정한 결합’이라 부를 만한 허상이 있는 것이며, ‘공(空)’과 ‘유(有)’가 둘이 아니라는 대승불교에 오면 ‘진정한 결합’에 대한 대중의 선호는 곧 부처의 마음일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중생이 가상 내지 허상을 실체로 간주함에서 오는 괴로움[苦]을 없애는 길인 팔정도(여덟 개의 길들이라기보다 여덟 겹의 한 가지 길이라는 뜻으로 팔지성도(八支聖道)라고도 함) 역시 지극히 합리적인 처방으로 들린다. 삿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正見)을 취하여 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을 하라는 가르침에는 이치에 어긋나는 무엇을 믿으라는 요구가 전혀 없다. 물론 그 하나하나의 뜻을 새기면 모두가 간단치 않아서 나로서는 우리말로 번역하기조차 꺼려진다. 여덟 가지의 배열도 음미할 만한데, 나는 ‘바른 삼매[正定]’로 끝나는 것이 불교의 정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삼매의 쾌락 역시 중도가 아니라고 그에 전념하는 수행법을 버렸다고 하면, ‘바른 삼매’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것일 터이다. 곧, “붓다가 가르친 선정(禪定)에서 입정(入定)은 있지만 출정(出定)은 있을 수 없다.” ※註 주 7) 고광, 앞의 책, 222면.

이것이야말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일행삼매(一行三昧) 또는 원불교의 무시선(無時禪)·무처선(無處禪)과 다름없으며, 현대인이 선호하는 생활불교로 통하는 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변혁적 중도주의 기획에서도 한번 도전해 봄 직한 목표이다.



소태산: 후천개벽 사상과 불교의 융합

한반도의 후천개벽 사상은 19세기 중엽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동학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수운 선생은 유교의 민본사상을 계승하되 유교 사회의 신분 차별·남녀 차별·적서 차별을 일거에 타파하는 새로운 가르침을 펼쳐 대중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수운은 유교뿐 아니라 유·불·선 삼교의 결합을 추구했는데, 실제로 불교가 미친 교리상의 영향이 큰 것 같지는 않다. ※註 주 8) 박맹수 〈동학과 한말 불교의 교섭〉 《개벽의 꿈》(모시는사람들, 2004), 그리고 조극훈 〈동학사상에 끼친 불교의 영향〉 《불교평론》 2024년 가을호 등을 보아도 당대 불교 스님들이 수운에게 제공한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로 부각시키고 있다. 사상 면에서 불교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의 〈무체법경(无體法經〉일 것이다(《천도교경전》(11판, 2020) 〈의암성사법설(義庵聖師法說〉). 그러나 의암이 수운·해월의 동학을 얼마나 충실히 계승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 공부》, 창비 2024, 제2장 백낙청·정지창·김용휘 좌담 〈동학의 확장, 개벽의 운동〉 113~118면 참조).

후천개벽 운동의 또 다른 중요 인물인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도 삼교 결합을 지향했지만, 선도(仙道)의 요소가 가장 두드러졌고 불교의 영향은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천개벽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 불법을 주체로 회상을 만들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는 소태산이다. 그의 개벽사상가적 면모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나 《정전(正典)》 첫머리 ‘개교의 동기’(총서편 1장)에 뚜렷한데, 불교에 없는 개념과 시대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붓다도 당대의 현실에 깊이 영향을 받았겠지만, 시국에 대한 판단을 경전에 남긴 바 없으며 더구나 당시가 ‘물질 개벽의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소태산은 《정전》 총서편 제2장 ‘교법의 총설’에서 “불교는 무상대도(無上大道)”라 못 박았고, 그의 언행록인 《대종경(大宗經)》에서는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고 명언했고,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도 불법을 주체로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고 다짐했다(《원불교전서》(초판 27쇄), 서품 2장, 95면).

그런데 정작 그의 대각 일성(서품 1장)을 보면 붓다가 깨달은 내용과 반드시 일치하는지는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원기(圓紀) 원년 사월 이십팔일[음 3월 26일]에 대종사(大宗師)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 《원불교전서》 95면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한 언급이 없음은 물론,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명제는 만유가 십이연기에 따라 조성되는 허상 내지 가유(假有)라는 붓다의 깨달음과 모순되지 않는가? 그 답은 ‘체성(體性)’의 의미에 따라 달라질 터인데, 원불교 경전에 드물지만 비중 있게 나타나는 이 단어는 과연 무슨 뜻일까? ‘체’를 ‘체(體)·상(相)·용(用)’ 삼대(三大) 중 본체 내지 본질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이해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소태산이 대각 당시에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그 용어를 알았는지는 의문이며, 원불교 경전에서도 드물게 〈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과 《대종경》 서품 1장에만 나온다. 아무튼 이 표현이 만유의 실체적 존재를 전제하는 표현은 아닐 것인데, 이 판단은 성품 자리를 뜻하는 ‘성’에 한정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일원상서원문〉에 “일원의 체성”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만큼 어떤 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나타내려고 ‘체성’을 말한 것이 아님을 수긍할 수 있지만, 왜 굳이 ‘성품 성’ 자와 ‘몸 체’ 자를 함께 썼는지는 음미해 볼 일이다. ※註 주 9) 백낙청 외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제3장 백낙청·전도연 대담 〈K사상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원불교〉에서 나는 나름의 가설을 던져 보았다. “그냥 성품 자리라고 하면 자칫 우리의 감각적 세계나 현실적인 삶을 초월한 그런 성품 자리를 생각할 수 있거든요. 특히 서양의 이원론적 사고, 플라톤식으로 초감각적인 영원불변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체성은, 이 성품 자리가 몸이기도 한 것 아니에요? 그 점에서는 서양식 표현을 쓴다면 굉장히 유물론적인 사유를 하고 계신 거죠.”(185면).

‘체성’과 마찬가지로 ‘생멸 없는 도’ 역시, 만일 그것이 영원불변의 초감각적 세계 속에 실존하는 어떤 법칙이나 원리라면 붓다가 배척한 ‘사견(邪見)’의 하나임을 피할 수 없다. ‘인과 보응’도 실재하는 주체와 주체, 또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라면 정견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일원상의 진리’에 대한 소태산의 진술(《정전》 교의편 1장 1절 ‘일원상의 진리’)과도 양립하기 힘든 성격이다.

어쨌든 소태산의 대각 일성과 붓다의 사성제 사이에는 적어도 어떤 ‘온도차’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석가모니도 대각의 순간에 깨달음의 환희를 맛보았고 제자들도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정정(正定)의 희열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쳤지만,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는 소태산의 말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경이감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은 것 같다. ※註 주 10) 《초전법륜경》에는 깨달음이 전파되는 순간 천신들이 소리치고 세계가 요동치고 광명이 비추고 제자들이 환희하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깨달음을 얻은 환희이지 ‘만유의 체성’을 관조한 희열과는 차이가 있다.

단순한 표현상의 차이를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 있지만, 붓다가 깨달은 진리를 소태산이 다시 깨달을 때까지 2천5백 년 동안 누적된 대승불교와 유교, 도교, 전통 무교(巫敎) 등의 현세 긍정적 사유가 스며든 흔적일 수도 있다. 소태산이 고(苦)보다 은(恩)을 중심사상으로 삼은 것도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일어난 불법의 새로운 전환이지 싶다.

소태산이 제시한 해탈과 여래위(如來位)에 오르는 공부법 역시 불교의 계(戒)·정(定)·혜(慧) 삼학을 계승하면서도 현실 속에서의 실천을 지계의 국한을 넘은 삼학의 ‘열매’로 간주하고 ‘정당한 알음알이’를 강조하는 등 붓다의 팔정도와 차이를 보인다. ※註 주 11) 그 차이를 더 분명하게 설한 것은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다. “과거에도 삼학이 있었으나 계정혜와 우리 삼학은 그 범위가 다르나니, 계는 계문을 주로 하여 개인의 지계에 치중하셨지마는 취지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모든 작업에 빠짐없이 취사[作業取捨]케 하는 요긴한 공부며, 혜도 자성에서 발하는 혜에 치중하여 말씀하셨지마는 연구[事理硏究]는 모두 일 모든 이치에 두루 알음알이를 얻는 공부며, 정도 선정에 치중하여 말씀하셨지마는 수양[精神修養]은 동정 간에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는 일심 공부라, 만사의 성공에 이 삼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 위에 더 원만한 공부 길은 없나니라.”(《정산종사법어》 경의편 13장, 《원불교전서》 842~843면).

다만 삼학이든 팔조든 또는 인생의 요도라고 하는 사은 사요든, 불합리한 어떤 명제에 대한 신앙을 요구함이 없이 조곤조곤 이치를 따져 수행자를 설득하는 방식도 붓다의 선례를 그대로 닮았다 할 것이다. ※註 주 12) 삼학 팔조에 관한 상세한 논의로 백낙청 외 《개벽사상과 종교 공부》(창비, 2024), 제3장 백낙청·방길튼·허석 좌담 〈원불교, 자본주의 시대의 절실하고 원만한 공부법〉 참조.



‘세계적 주교’가 될 불교

소태산은 대각 후 처음부터 불교의 진리를 가르치지는 않았다. 청중의 수준도 있거니와 불교를 천시해 온 조선시대의 풍조를 의식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는 작심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 [중략]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중생의 혜(慧)·복(福) 두 길로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 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化被草木) 뇌급만방(賴及萬方)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

— 《대종경》 서품 15장, 《원불교전서》 103면

원불교의 교도가 이 말씀을 듣고 여기 언급된 새로운 불교 곧 원불교가 장차 세계 최대의 종단이 되어 ‘세계적 주교’의 자리에 오르리라고 해석하는 이가 있다면―그 심경이 이해가 가기는 해도― 그것은 너무도 편협한 분파주의일 것이다. 그보다는 불교를 포함한 세계의 많은 종교와 비종교 세력이 ‘부처님’의 도덕에 귀의하고 ‘중정(中正)’의 정신을 터득하여 ‘삼동윤리(三同倫理)’의 규정대로 ‘동척사업(同拓事業)’의 동업자로 나서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 ※註 주 13) 소태산의 일원대도를 부연하여 그 실천 강령을 세 가지 윤리로 요약한 정산 종사의 삼동윤리에 관해서는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34~37장(《원불교전서》 988~991면) 참조. 그중 동척사업 대목의 일부를 인용한다. “삼동윤리의 셋째 강령은 동척사업이니 곧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니라. [중략] 그러므로, 모든 사업이 그 대체에 있어서는 본래 동업인 것이며, 천하의 사업가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서로 이해하고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사업이 다 한 살림을 이루어 서로 편달하고 병진하다가 마침내 중정(中正)의 길로 귀일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먼저 이 중정의 정신을 투철히 체득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사업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확립하며, 나아가서는 이 정신으로써 세계의 모든 사업을 중정으로 통일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니라.”(37장).

한국불교 내부에서도 쇄신 노력이 다각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 그중에는 소태산과 원불교를 연상시키는 예도 적지 않다. 가령 10년 전에 나온 글이지만, 금강 스님의 〈한국불교의 새 길 찾기〉는 ‘실천과 참여의 불교로 의식 전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수행과 포교로의 전환’ ‘실천하는 생활 규범과 청규로 전환’ 등 크게 세 항목에 걸쳐 상세한 혁신 방안을 제시했는데, 모두 붓다의 본뜻에 충실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상당 부분은 원불교의 실행과 합치하는 성격이다. 특히 그가 주장하는 ‘생활의 전환’은 ‘불법시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불법(生活是佛法)’이라는 원불교의 표어를 연상시킨다.

여하튼 한 개인과 사회와 세계가 만나 삶을 만들어 가는 ‘생활’은 고통[苦]의 현장이다. [중략] 이 생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고통의 해소와 행복 증진이라는 불교의 가치 구현이자 존재 목적의 핵심이다.

[중략]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보면 생활의 전환은 의식의 전환보다 어려운 공덕이다. 그동안에는 재가불자들이 따르는 불교의 생활양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교와 사회가 분리되었듯, 불교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동안 재가불자들은 생활의 측면에서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교도로서 지향하는 가치가 삶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 ※註 주 14) 금강 〈한국불교의 새 길 찾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편 《종교·생명의 대전환과 큰 적공》 모시는사람들, 2016, 136면.

《불교평론》 지령 100호 특별기획 ‘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에 기고한 성태용 교수도 〈불청지우의 보살행에 나서자〉에서 생활 불교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삶의 현장이 바로 수행의 도량이어야 한다는 말이 한갓 구호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불자들의 올바른 수행 지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불자들이 힘 있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삶을 통해 불국토를 건설하는 존재로 올바로 설 수 있다. 지금의 불자와 불교는 이런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불자들은 기복적인 데 매달리거나 ‘깨달음 병’ ‘수행 병’에 걸려, 힘 있는 실천을 통해 보다 나은 오늘을 건설하는 존재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불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 바로 여기에 불국토를 건설하는 종교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가 대량생산하는 괴로움과 소외에 지친 이들을 수용하는 피난처에 그치고 있다. ※註 주 15) 《불교평론》 2024년 겨울호, 60면.

아쉬운 점은 한국불교의 개혁을 추구하는 뜻있는 인사들이 비슷한 교리와 실행을 이미 보여 주고 있는 원불교와의 허심탄회한 소통에 임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원불교 측에서 그러한 소통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기 점검과 반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스님이 선창한 ‘조선불교유신’의 상당 부분이 《조선불교혁신론》(1935)을 저술한 소태산 박중빈의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에서 실행에 옮겨졌고 ‘생활이 곧 불법’이라는 표어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교단이 불교 종단에 비해 규모가 미미하다고 해서 진지한 소통의 대상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그 어느 쪽에도 이득이 될 게 없을 것이다.



불자의 마음으로 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대적 현실을 직시하고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려면 이 세상을 올바로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소태산의 말대로 세상만사를 ‘산 경전’ ※註 으로, 다시 말해 불자(佛子)의 마음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주 16) “세상은 일과 이치를 그대로 펴 놓은 경전이라. …이것이 산 경전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많고 번거한 모든 경전을 읽기 전에 먼저 이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을 잘 읽도록 부탁하노라.”(《대종경》 수행품 23장).

그런데 지금이 자본주의 세상임을 빼고 말한다면 팔정도에 충실한 불자일 수 있을까. 붓다의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불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수운만 하더라도 한반도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타율적으로) 편입되기 전에 살았으므로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규탄했으나, 그것을 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당대의 말세적 풍조로 지적한 각자위심(各自爲心)이 자본주의 근대의 기본 특성을 포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세기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근대 문물이 정신없이 유입되던 현실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를 만들어 낸 소태산은 자본주의 인식에서 확실히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런데 ‘물질 개벽’이 자본주의 시대를 규정하기에 얼마나 정확하고 포괄적인 개념인가? 이는 많은 연마가 필요한 물음으로서 나는 ‘물질 개벽’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옳다고 믿는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물질세계와 이른바 정신적 가치들의 엄청난 변화,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모든 단단한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상황은 ‘물질 개벽’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며, 더욱이 인간이 시작한 변화가 이제는 인간 없이도 진행되면서 가속화될 전망이 열리는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이르러 그 표현이 한층 적중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기후 위기 등 생태계의 대대적 변화가 자본주의라는 말만으로 표현하기 충분치 않다고 믿는 이들은 지질학적 용어를 빗대어 ‘인류세’니 ‘자본세’ 같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나 자신은 굳이 지질학을 끌어넣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편이다. ‘자본세’는 ‘자본주의 시대’와 동어반복이나 다름없고, 인류의 등장 자체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본다면 이는 충적세(沖積世, Holocene) 훨씬 전에 시작한 거대 기간이 된다. 나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를 뛰어넘는 큰 시운(時運)을 함축하는 표현이 한반도에서 이미 창출되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는 조선조 말기의 대혼란과 동학혁명의 패배, 국권 상실 등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드디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간명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명제를 산출했다. 이는 단순한 표어의 발명이 아니라 새 불교를 표방하는 자생종교에 동학 이래의 후천개벽 사상이 합류하는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註 주 17) 졸저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28면.

불자의 마음으로 자본주의를 읽을 때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각자위심’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임이 드러난다. ‘각자위심’과 ‘탐·진·치’로 움직이지 않는 인간을 처벌하고 주변화하는 데 전대미문의 위력을 발휘하는 체제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의 세계체제가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의 힘으로 작동하는 체제”로 규정한 바 있다. ※註 주 18) 졸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통일시대·마음공부·삼동윤리〉 294면. 이하 296면까지 이 주장에 대한 부연 설명이 나온다.

다시 말해 불자의 마음이 용납할 수 없는 체제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체제라는 것이 한번 성립되면 그것은 몇 사람의 결단으로 허물 수 없는 지구력을 지닌다. 더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대략 16세기 서구의 한 모퉁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일단 성립된 후로는 승승장구하여 20세기에는 전 지구를 덮을 만큼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생산력의 증대뿐 아니라 기념비적 지식과 문화의 생산을 이루어냈다. 근대의 극복이 본질적인 목표라 해도 그 목표의 추구와 달성을 위해 근대에 적응하며 활동하는 ‘이중 과제’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21세기 초에 이르러 이 체제가 말기 국면의 대혼란을 맞이했고 중생의 고통이 날로 가중되고 있으며, 자칫 지구 전체의 유정·무정 존재들의 존속이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했다. 불자라면 당연히 자본주의에 대한 연마와 더불어 그 대안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사회 연구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것이 ‘사회주의’인데 이것 또한 불자의 마음으로 볼 필요가 절실하다.

500년의 역사를 지녔고 지금도 작동 중인 자본주의와 달리, 사회주의는 한 번도 전 세계를 장악한 적이 없고 세계의 한 지역에서나마 제대로 작동한 적이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따라서 어떤 사회주의를 대안 체제로 상정하고 있는지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 참고할 역사적 사례로는 아무래도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 이래 2차대전 이후 한동안 동유럽 여러 나라들까지 지배했던 ‘공산권’ 내지 ‘현실사회주의권’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불자의 관점으로 볼 때 이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수행(修行)’ 개념의 부재다. 물론 초기 공산주의자들 가운데는 자기희생과 헌신이 뛰어난 인격들이 많았지만, 탐·진·치를 작동 원리로 삼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 팔정도 같은 수행이 필수적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었다. 자본주의 진영의 포위 공격 속에 그런 수행이 얼마나 가능했을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1990년대 초 소련·동구권의 몰락으로 이 역사적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밖의 크고 작은 실험들과 현실 속의 실험 기회를 얻지 못한 운동 및 사상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여러 단체와 인사들이 불교와 사회주의, 더 나아가 불교와 마르크스의 결합을 시도해 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내가 (불교나 다른 어느 종교의 교도가 아니면서도)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불자의 마음’이다. 예컨대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세간의 연구와 평가를 충분히 감안하되 그의 학설 또한 붓다의 가르침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묻는 일을 생략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세속의 학설이 아닌 ‘불자의 마음’으로 접근할 때, 당대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붓다가 설한 정견(正見)의 개념조차 없었던 마르크스를 새 시대의 주세불로 숭앙하는 것은 중생구제의 정도(正道)가 아님이 분명해지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의 이론과 실천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보살행에 얼마나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허심한 판단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무튼 불자의 마음으로 용인할 수 없는 체제가 자본주의인 이상, 그 대안으로서 새로운 사회주의적 사상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불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아니, 구체적인 사회주의 이론이나 실행에 가담하기에 앞서, 자본주의가 아닌 것에 대한 소망은 인간 본연의 마음임을 깨달아 ‘빨갱이’ 운운에 지레 겁먹고 탐구를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자세로 붓다와 마르크스의 만남을 구상할 때 한국의 민중불교운동은 한국 특유의 불교사회주의를 ‘새로운 사회주의적 사상’을 위한 하나의 생산적 의제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는가

현대 한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폭넓은 세력을 확보하려는 중도주의이다. 이때 ‘분단체제 변혁’을 분단체제의 극복이 아닌 단순한 분단 극복(다시 말해 통일)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대대적인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은 뒤에도 남북분단이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 상태로 오래 지속됨으로써 일종의 ‘체제’를 형성한 결과, 분단과 직접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삶의 구석구석까지 분단체제의 일부가 되었고 따라서 통일이든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일거에 바꾸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이다. 단일형 민족국가로서의 통일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형국에서, 분단체제 극복은 국내의 총체적인 개혁과 더불어 남북 두 국가의 느슨한 연합으로 시작되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창의적인 재통합이라는 한결 복잡한 과제로 대두한 것이다.

이러한 분단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산물이며 그것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국지적 현상이라는 것이 분단체제론의 또 다른 논지이다. 그렇다고 분단체제 극복이 반드시 세계체제의 종말과 동시에 와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며, 오히려 한국에서 변혁적 중도주의가 정착하면서 세계체제의 변혁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믿음이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이 땅에 드디어 왔다고 나는 2025년 신년 칼럼에서 선언했다. ※註 주 19) 졸저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제1장.

이것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 선언인가? ‘변혁적 중도’가 여전히 대중에 낯선 구호이고 주류 언론과 지식사회의 호응도 미미한 마당에 어떤 의미로 ‘때가 왔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는가?

수운 선생은 “시호시호(時乎時乎) 이내시호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時乎)로다/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註 라며 다시 못 올 때가 왔다고 노래했는데, 이는 ‘무극대도’를 얻은 기쁨을 표현했을 뿐 당신 스스로 얼마 안 가 처형될 운명이었고 이후 동학도들에 대한 탄압과 살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주 20) 《천도교경전》 〈용담유사〉 부록 ‘검결’ 237면.

뒤이은 국권 상실과 의병 활동, 3·1혁명에 대한 탄압과 일제강점기 내내 지속된 민중의 고난은 분단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4·19와 5·18, 1987년의 6월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성장해 왔고, 2016~2017년의 촛불 대항쟁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을 탄핵 퇴치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때’가 온 것은 아니어서,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일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결코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아닌 ‘변칙적 사태’가 연출되었다. 이에 촛불 시민·빛의 시민이 다시 궐기하여 친위 쿠데타를 진압하고 또 한 번 대통령 파면과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이다. 그렇게 출범한 새 시대는 87년체제의 역사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2025년 체제라 불러도 좋을 터이다.

‘때’가 왔다는 실감은 누구나 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변혁적 중도’의 때인지는 연마가 필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체제론이 전제될 때만 제대로 파악하고 실행할 수 있는 노선이며, 분단체제론은 또 세계체제론을 전제한 담론인 것이다. 첩첩산중의 공부 길인 느낌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동학 이래의 오랜 노력이 사회의 발본적 쇄신과 인심의 개벽을 동시에 추구해 온 역사이며 그 과정에서 충분히 변혁적이지 않거나 ‘중도’를 벗어난 단순 해법들이 번번이 실패했고, 촛불혁명·빛의 혁명에 나선 군중들이 비록 ‘변혁적 중도’의 깃발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에 상충하는 구호나 논리를 내세운 연설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따라서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말은 무슨 난삽한 학문적 작업이기보다 이미 생성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요구할 따름이다. 이 능력 자체가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붓다의 ‘중도’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한반도 자생의 새 불교를 표방하면서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를 낳은 역사를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백낙청 paiknc@snu.ac.kr
1938년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 편집인. 근년의 저서로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 만들기》 《변혁과 중도의 때가 왔다》 등이 있고, 공저자로 《백낙청 회화록》(전 8권), 좌담집 《개벽사상과 종교 공부》 《세계적인 K사상을 위하여》 등을 간행했음.

Posted by Sejin at April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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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 전쟁하는 종교, 위태로운 평화 문유정 외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 문유정 외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 전쟁하는 종교, 위태로운 평화 
문유정,박문수,원영상,이병성,이찬수,정상교,홍미정 (지은이),
아시아종교평화학회,불교평론 (엮은이)
동연출판사2026-04-15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 전쟁하는 종교, 위태로운 평화 검색
문유정,박문수,원영상,이병성,이찬수,정상교,홍미정 (지은이),
아시아종교평화학회,불교평론 (엮은이)
동연출판사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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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욕망의 모방과 집단의 폭력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종교와 전쟁의 관계를 성찰한 연구서다. 불교평론과 아시아종교평화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 심포지엄의 결과물을 엮어, 평화를 향한 종교 연구자들의 논의를 집약했다.


전쟁은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인간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종교가 집단과 제도 속에서 국익의 도구로 전락해 온 과정을 짚는다. 십자군 전쟁과 30년 전쟁, 태평양 전쟁, 한반도 분단 이후의 사례를 통해 종교와 폭력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표층 종교를 넘어 타자의 고통을 짊어지는 실천윤리로서의 ‘심층 종교’ 가능성을 제시한다. 집착과 적대를 넘어서는 길을 모색하며, 갈등이 고착화된 시대에 평화를 향한 내적 전환과 사회적 성찰의 방향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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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펴내며 _ 이찬수


전쟁의 이유, 종교의 자리, 명멸하는 평화 _ 이찬수
전쟁의 인과 관계
제1차 세계대전의 복잡성
전쟁을 정당화하는 종교
민족과 국가에 종속된 종교
수단과 목적의 전복
욕망 이론과 전쟁의 심리적 원인
거대한 부정성과 심층 종교
명멸하는 평화와 감폭력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평화 _ 홍미정
십자군전쟁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십자군전쟁 이전의 상황
십자군전쟁과 십자군 왕국 건설
이슬람과 평화


30년전쟁과 가톨릭 · 개신교 ― 종교, 국가, 평화 _ 이병성
들어가는 말
역사적 맥락과 분쟁의 기원
전쟁의 주요 단계와 중요한 사건
베스트팔렌 평화조약과 그 영향
30년전쟁에 대한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비평
30년전쟁과 현대 평화론
나가는 말: 30년전쟁과 한반도 평화


아수라로 전락한 불교 ― 태평양전쟁과 일본 불교 _ 원영상
파시즘 체제의 폭주
불교계의 전쟁 옹호
전시 교학의 논리
과연 불교는 홀로 설 수 있는가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_ 박문수
그리스도교와 전쟁
공산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충돌 전사(前史)
한국전쟁기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선택
성전
정당한 전쟁
평화주의
성찰


연기의 그늘에서
― 로힝야 난민과 국제분쟁에 대한 불교적 성찰 _ 문유정
침묵과 망각의 경계에서: 고통을 자원화한다는 것
국제정치 속의 주변화된 생명들
연기의 관점에서 본 로힝야 사태
무명과 삼독심 그리고 침묵
베스트팔렌 체제에 대응하는 보살도의 요청
다시, 연기의 그늘에서 말하다


전쟁, 욕계(欲界)의 숙명인가 _ 정상교
들어가는 말
인류는 전쟁과 함께
전쟁을 바라보는 불교의 시점
탐·진·치에 따른 전쟁의 양상
참된 평화를 위한 불교의 방법론
나가는 말


글쓴이 알림


접기
책속에서
종교 본연의 가르침에 어긋나 보이는 이런 현상은 한때 벌어졌던 종교의 일시적인 실수나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도 결국 ‘인간 현상’이고, 인간이 ‘진리’를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상황, 문화적 환경, 인간관계 등에 기반해 해석하고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게 적용하려 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사랑이나 자비와 같은 이상적 가치와 태도도 현실에서는 현장에 어울리게, 무엇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구체화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의 요지가 그렇듯이,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이타적 행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이기성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종교도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존속하는 한 이런 현상은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찬수╻전쟁의 이유, 종교의 자리, 명멸하는 평화〉 중에서  접기


「메디나 헌장」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메카 출신의 이주민 무슬림들과 메디나 주민들 사이에서 체결된 공존 협정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이듬해인 623년에 만들어졌다. 이 헌장은 무슬림들과 다양한 메디나 주민들, 특히 유대인들이 하나의 공동체(국가)를 결성하도록 규정하였으며,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및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부족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 이와 같이 카즈라즈 부족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메디나로 초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메디나에서 정착하여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후 이 부족은 무슬림으로 개종하였으며, 무함마드 사후에도 예루살렘 정복을 비롯한 무슬림들의 정복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메디나 헌장」 속에 나타나는 무슬림들은 각 부족 내 유대인들과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고, 종교나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거나 분쟁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홍미정╻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평화〉 중에서 접기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전쟁(Thirty Years’ War)은 근대 초기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변혁적인 분쟁 중 하나로 기록된다. 주로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의 분열된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거의 모든 유럽 강대국을 종교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로 끌어들였다. 역사가 마이런 구트만(Myron Gutmann)은 이 전쟁을 “하나가 아닌 세 개의 전쟁, 여섯 개 이상의 주요 당사자”로 적절히 묘사하며 그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강조했다.1 이 분석은 전쟁이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뿌리 깊은 종교적 긴장에서 시작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성격이 점진적으로 정치적 지배와 유럽 권력 역학의 재편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화는 궁극적으로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Peace of Westphalia)으로 이어졌는데, 이 조약은 길고 긴 유혈 사태를 종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국가 체제, 국제 관계를 규율하는 원칙 그리고 종교적 관용의 범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이병성╻30년전쟁과 가톨릭 ․ 개신교 ― 종교, 국가, 평화〉 중에서 접기


1945년 2월 일본 유일의 종교신문인 「중외일보」(中外日報)에서는 “백년전쟁의 각오를 굳게 하자”라며 전쟁을 일상화하는 논리를 폈다. 정부에서나 민간에서는 패전을 전망하는 말이 나왔다. 3월에는 도쿄 대공습으로 패색이 짙어졌다. 조동종 승려이자 학자인 마스나가 레이호(増永霊鳳)는 5월, 같은 신문의 “특공정신의 근원”에서 이를 개아의 부정에 의해 역사를 짊어진 혼의 부활이라고 하며 죽음을 미화했다. 8월에는 전시종교보국회 불교국 ․ 대동아불교청년회 등에서는 국민 총무장을 외치며 죽창 훈련을 개시했다. 다른 종파도 마찬가지이지만 9월에 당시 조동종 관장 다카하시 로센(高階瓏仙)은 “성지(聖旨)를 봉체하여 부동의 신념으로 신일본 건설의 초석이 되자”라고 유시했다. 반성이나 참회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원영상╻아수라로 전락한 불교 ― 태평양전쟁과 일본 불교〉 중에서 접기


북한이 남침하자 모든 교파는 침공을 비난하며 이 침공에 대응하는 ‘반공 성전(聖戰) ․ 반공 십자군전쟁’을 독려하였다. ‘반공 성전’에는 직접 참전(입대, 의용군 지원), 간접 지원(군종, 의료, 후방 군사 활동 지원), 선무(宣撫, 반공 선전) 등의 활동이 포함되었다. 이 ‘반공 성전론’은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정당방위’이자 공산주의라는 ‘악’의 분쇄라는 견해에서 옹호되었다. 이 주장은 전쟁 중에는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전쟁 중에는 ‘반공 성전론’이 지배하였기에 ‘정당한 전쟁론’은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정당한 전쟁론’은 외국인 선교사 일부만 가지고 있었다. 성전의 정반대 위치에 있는 ‘평화주의’ 역시 극히 일부 그리스도인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전쟁 예방 노력, 폭력적 상황에서 무저항(순교 포함),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타인의 살상을 막은 경우 등이 포함된다.
〈박문수╻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중에서 접기


나아가 불이(不二)의 연기관은 오늘날의 난민 문제, 기후 위기 및 무력 분쟁과 같은 글로벌 위기 속에서 대안적 세계관으로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보살도는 이러한 불이의 통찰을 실천윤리로 구체화한다. 다시 말해 불교적 세계시민주의 또는 보살의 실천윤리로 확장되어 정치적 국경과 이념적 경계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의 감수와 연대적 행동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보살은 국경 넘어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언급될 기회마저 상실한 이들의 고통을 내 자신의 것으로 함께 짊어지며 공존 속에서 자기 구원을 실현해 나간다. 정서적 연민을 넘어 배제된 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통해 자기의 해탈이자 구원을 이루는 인간적 지향점이자 수행의 종착지가 ‘보살’이라 할 수 있겠다.
〈문유정╻연기의 그늘에서 ― 로힝야 난민과 국제분쟁에 대한 불교적 성찰〉 중에서 접기


… 따라서 인간의 마음 작용인 앎은 대상(欲, kāma)을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접촉하면서 생긴다. 즉,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은 눈, 코, 귀, 입, 피부로 들어오는 정보의 해석을 기반으로 구축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는 보통의 인간이 사는 곳을 욕계(欲界, kāma-avacara)라고 하는데, 계(界)의 원어인 아바까라(avacara)는 ‘그 주변을 맴돈다’,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욕계에 사는 인간의 마음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것에 머물러 만들어지는 것이다.
… 이러한 욕계의 마음은 더 가지려는 탐(貪, lobha), 좌절되고 분노하는 진(瞋, doṣa), 알려고 하지 않는 치(癡, moha)라는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다. 결국 삼독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성의 합리적 진보(라는 착각)도, 과학 기술의 발전도 전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욕계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므로 다툼과 분쟁과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상교╻전쟁, 욕계(欲界)의 숙명인가〉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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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문유정 (지은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강사,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 화엄선연구소 연구원


중앙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졸업, 동국대학교에서 불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강사,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 화엄선연구소 연구원, 한국선학회 총무이사, 한국 동서철학회 감사로 일한다.
논문으로 “생명정치 주체의 선불교적 사유―푸코의 생명정치와 선불교 주체양식의 비교”, “『화엄경』 보살 사상으로 바라본 ‘세계시민보살(Universal Bodhisattva citizenship)’의 덕목―불교 시민성 정립의 이론적 토대”, “無我의 행위자가 지니는 실천윤리학적 의의―초기 유가행 유식학파의 공성 인식을 중심으로―”, “비선형 인과 속 인격 동일성의 윤리적 함의―파핏(Derek Parfit)의 심리적 환원주의에 대한 보완가능성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박문수 (지은이)
(사)우리신학연구소 소장,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교육연구이사


연세대학교에서 신학 전공으로 신학사,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가톨릭 신학 전공으로 문학 석사 ․ 박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정치통일 전공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왜 지금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주목하는가』(2025) 외 공저 포함 43권, 논문으로는 “정보사회의 그리스도교: 가톨릭교회의 미래 전망”,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서광사, 1997) 외 70편, 역서로는 『희망의 문턱을 넘어』(시공사, 1994) 외 공역 포함 9권이 있다.
현재 (사)우리신학연구소 소장,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교육연구이사로 있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가톨릭 실천지성 1>,<왜 지금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주목하는가?> … 총 8종 (모두보기)

원영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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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알림 신청
원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원광대 원불교학과 및 일본어교육학과 교수


원불교 교무(법명: 益善), 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 일본 교토 불교대학 문학 박사.
저서로는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教と社会』(공저) 등,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소태산 박중빈의 불교개혁사상에 나타난 구조고찰” 등이 있다.
종교와 국가 관계, 일본 불교의 역사와 사상, 불교와 원불교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사드(THAAD)철폐운동, 새만금신공항 반대운동을 비롯한 종교의 사회참여 현장에도 뛰어들고 있다. 언론 매체에 불법(佛法)의 입장에서 국가와 자본주의의 문제, 정의와 평화 문제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다. 한국선학회 편집이사,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종교학회의 인도철학 및 불교 분과위원장, 원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원광대 원불교학과 및 일본어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상호문화적 글로벌시대의 종교와 정치>,<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 총 7종 (모두보기)
이병성 (지은이)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강사,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연세대 경제학과를 거쳐 캐나다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전쟁 70년과 ‘이후’ 교회』(공저), 『폭력개념연구』(공저), 『평화의 신학』(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21세기 이후의 기독교교양> … 총 2종 (모두보기)


이찬수 (지은이)
가톨릭대학교 교수,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부회장


서강대 화학과를 거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종교로 세계 읽기』,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평화와 평화들』, 『메이지의 그늘』,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공편) 등 100여 권의 책을 냈다.
현재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부회장이자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실패의 인문학>,<동학과 서학> … 총 63종 (모두보기)

정상교 (지은이)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교수


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인도 중기 중관학파의 푸드갈라설 비판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금강대학교 HK연구교수, 동국대학교 와이즈 캠퍼스 티벳대장경 역경원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반 대중과 불교의 소통에 뜻을 두고 불교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알리기 위해 유학 시절 출판한 『도쿄대학 불교학과』는 ‘2014 올해의 불서’를 입상하였다. 이후 지속적으로 불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SBS “빅퀘스천”, 유튜브 “일당백” 그리고 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유튜브 “헬로붓다 TV” 등에 출연해 이해하기 쉬운 불교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불교 경전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2025년에 출간한 『천 번을 부서져도 그대는 여전히 바다다』는 대만과 베트남에 판권이 수출되어 번역 및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천 번을 부서져도 그대는 여전히 바다다>,<상월원각대조사 법어 연구> … 총 6종 (모두보기)

홍미정 (지은이)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 교수


2003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에서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 조교수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명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3까지 한국중동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중동 현대사: 무엇이 문제인가』, 『21세기 중동 바르게 읽기: 재설정되는 국경』, 『팔레스타인 땅, 이스라엘 정착촌』 등이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현대사: 무엇이 문제인가』를 동예루살렘 소재 팔레스타인국제문제연구소(PASSIA) 소장 마흐디 압둘하디와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이외 공동 저서로 『울지마, 팔레스타인』, 『현대중동국가의 형성과 발전』, 『사우디아라비아의 형성과 발전』, 『아랍에미리트의 형성과 발전』, 『카타르의 형성과 발전』, 『쿠웨이트의 형성과 발전』, 『바레인의 형성과 발전』 외 다수 있다. 앨버트 후라니가 쓴 『아랍인의 역사』를 명지대학교 아랍지역학과 김정명 교수와 공동 번역했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중동 현대사>,<인권, 세계를 이해하다> … 총 12종 (모두보기)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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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에서 종교가 폭력축소와 평화구축에 공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다양한 전공자들의 학술 연구모임이다. 2015년 한국에서 시작되었던 레페스포럼(종교와 평화 토론 모임)과 평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종교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하여 2023년 11월 일본에서 창립했다. 2020년 1월에 일본(욧카이치시)에서 있었던 창립 준비 학술회의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단행본 『종교로 평화 만들기』(2022)를 출판했고, 2023년 11월의 창립 학술대회 발제문을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평화는 왜 오지 않는가: 평화를 위한 종교적 투쟁』, 『宗教における平和構築の原動力: アジアの社会政治背景を中心に』로 출판했다. 현재 한일 양국의 각 지부에서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매년 전체 국제학술회의로 모인 뒤, 연구 결과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출판하고 있다. 현재 한국, 일본, 중국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8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향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평화는 왜 오지 않는가> … 총 2종 (모두보기)


불교평론 (엮은이)
최근작 :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설악무산의 삶과 생각, 그 깊이와 넓이>,<설악무산의 불교, 그 깊이와 넓이> … 총 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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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욕망의 모방과 집단의 폭력,
“종교는 왜 전쟁의 도구가 되었는가”


이 책은 2025년 8월 28일, 「불교평론」과 ‘아시아종교평화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 심포지엄의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결정체다. 다시 말해,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는 인류 최후의 과제인 ‘평화’를 위해 여러 종교 연구자가 세계 전쟁의 역사를 함께 성찰한 평화의 가능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인류의 전쟁은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자아의 심층에 자리 잡은 ‘타자의 욕망’에서 기인한다. 라캉의 통찰처럼 자아는 가장 내밀한 동시에 외부적인 ‘외밀’(extimité)의 속성을 지닌다.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을 모방으로 메우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고, 붓다가 경계한 ‘무아’(無我)의 가르침조차 집단과 제도의 벽에 부딪혀 소외되곤 한다.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확장판이 아니라 조직과 제도로 규율되는 독립적 실체다. 종교의 순수한 메시지는 집단화 과정에서 종종 국익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는 모순을 보인다.


인류의 전쟁과 종교,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종교는 십자군 전쟁이나 30년 전쟁처럼 정치적 정복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 불교처럼 전쟁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은 어떤가.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급기야 전쟁까지 벌어지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던 남과 북의 교회들이 상대를 저주하며 자기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근원적 부정성’이 고착화된 사례다.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 종교조차 이념의 논리에 함몰될 때 평화는 요원해진다. 언어 자체의 제한성 또한 오해를 심화시킨다. 하나의 기표가 사회적 기의 안에서 배타적으로 작동하며 진리의 다면성을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심층 종교’의 가능성을 본다. 제도와 권련에 부응하는 ‘표층 종교’를 넘어, 부정성을 축소하고 타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짊어지는 보살의 ‘실천윤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관심과 미움을 극복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평화 없는 성취는 그 무엇이든 스스로를 잠식하는 폭력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으로 점철된 욕계(欲界)의 숙명을 거슬러, 불탐(不貪心)·부진(不瞋心)·불치(不痴心)의 길을 걷는 시도들이 실낱같이 좁고 위태로울지라도 우리는 그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이 책은 집착과 적대의 원천을 차단할 메시지와 이를 체현해온 이들의 경험을 통해 종교가 지닌 해체와 재구성의 능력을 증명한다. 평화 지향의 연구자들이 전 세계 전쟁의 역사에 대해 함께 성찰한 이 시간들이 독자들에게도 평화의 실재적 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갈등이 문화화된 ‘고질적 갈등’의 시대, 이 책이 제시하는 심층 종교의 지혜가 독자 개개인의 내적 전환을 넘어 우리 사회의 평화를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는 단단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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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요약 및 평론

 [요약] 욕망의 전장과 종교의 두 얼굴

1. 전쟁의 근원: 타자의 욕망과 집단의 소외 모든 전쟁에는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르네 지라르와 자크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고유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자아는 내밀하면서도 동시에 외부적인 <외밀(extimité)>의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근원적 결핍과 모방이 갈등과 전쟁의 심리적 토대가 된다. 또한 개인은 훌륭할지라도, 조직과 제도로 이루어진 집단과 국가는 개인의 도덕적 역량을 넘어서는 독립적 실체로 작동하며, 이 과정에서 내적 자아는 소외되고 외부 질서에 지배당하게 된다.

2. 국익에 종속된 표층 종교의 역사 사랑과 자비를 외치는 종교 역시 집단화되는 순간 순수한 메시지를 잃고 국익의 도구로 전락하는 <표층 종교>의 모습을 보여 왔다.

  • 십자군 전쟁: 종교 전쟁의 외피를 썼으나 실상은 동방 교회를 정복하려는 서방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권력 투쟁이었다.

  • 30년 전쟁: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은 결국 종교가 국가의 하위 범주로 귀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일본 불교: 태평양 전쟁 당시 자비와 무집착을 가르치는 불교가 오히려 국가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가 되었다.

  •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남북 분단 이후 같은 신앙을 공유하던 교회들이 각자의 정권과 연동되어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반공 성전>을 독려하는 등 국가에 종속된 모습을 보였다.

3. 심층 종교와 실낱같은 평화의 길 종교는 폭력의 동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폭력적 구조를 해체하는 동기 또한 제공한다. 오강남이 제시한 <심층 종교>는 제도와 권력에 부합하는 표층을 넘어, 전쟁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고 타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짊어지는 실천적 영역이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탐·진·치(貪瞋痴)라는 삼독을 버리고 불탐·부진·불치의 길을 걷는 내적 전환을 통해 평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사 심층의 거대한 부정성을 축소해 나가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 [평론] 거룩한 기도가 총성이 된 역설에 대한 통찰

이 책은 인류의 고질적인 비극인 전쟁을 종교라는 렌즈를 통해 해부하며, 종교가 어떻게 평화의 사도에서 폭력의 하수인이 되었는지 냉철하게 분석한다. 필자들은 종교 본연의 가르침과 현실적 작동 방식 사이의 간극을 <표층>과 <심층>이라는 개념으로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종교에 실망한 현대인들에게 종교적 가치의 재발견을 촉구한다.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전쟁의 원인을 단순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자아의 결핍과 모방 욕망이라는 인문학적 심층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이는 종교적 해결책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왜 개인의 <내적 전환>과 <실천 윤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필연성을 부여한다. 특히 한반도의 <고질적 갈등>과 한국 교회의 국가 종속성을 다룬 대목은 독자들에게 뼈아픈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다양한 종교 연구자들이 참여하다 보니 각 장의 논조나 깊이에서 미세한 차이가 느껴질 수 있으나, <평화는 부정성의 축소 과정>이라는 일관된 주제 의식이 이를 단단히 묶어준다. 이 책은 종교가 인류의 마지막 과제인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체>하고 무엇을 <재구성>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종교의 심층적인 통찰이 세진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 중에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특정 종교의 사례나 철학적 개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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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 — 전쟁하는 종교, 위태로운 평화』

1,000단어 요약 + 평론

『기도는 왜 총성이 되었나』는 아시아종교평화학회와 불교평론이 공동 기획한 연구서로, 종교가 왜 반복적으로 전쟁의 정당화 장치가 되는가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그 속에서도 평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다시 발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 책이다.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일본 불교의 태평양전쟁 협력, 한국전쟁기의 그리스도교, 로힝야 난민 문제, 불교의 전쟁관까지 폭넓게 다룬다. 단순히 “종교는 평화를 말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얼마나 자주 폭력의 편에 섰는지를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의 중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왜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가 전쟁의 총성이 되었는가?

이찬수의 서문은 이 질문을 인간 욕망의 구조에서 출발시킨다. 그는 전쟁을 단순한 국가 간 이해관계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인간 내면의 구조”로 본다. 인간은 결핍을 느끼고, 타자가 가진 것을 욕망하며, 그 욕망이 집단화될 때 갈등은 전쟁으로 발전한다.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개인의 신앙은 평화를 지향할 수 있지만, 집단화되고 제도화되는 순간 종교는 국가와 민족의 도구가 된다. 그는 이를 “표층 종교”라 부른다. 반면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는 실천윤리로서의 종교를 “심층 종교”라 규정한다. 평화는 표층 종교가 아니라 심층 종교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미정의 장은 십자군 전쟁을 다룬다. 흔히 십자군은 단순한 기독교-이슬람 문명 충돌로 이해되지만, 저자는 그 이전 이슬람 세계 내부의 공존 질서와 메디나 헌장을 강조한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다양한 종교 집단과 공존 협정을 만들었던 사실은, 이슬람의 원형이 반드시 배타적 전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십자군은 종교전쟁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적 정복 전쟁이었다. 여기서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제국의 동원 언어가 된다.

이병성은 30년 전쟁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의 충돌을 분석한다. 이 전쟁은 종교개혁의 결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권력 재편과 국가 체제 형성의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근대 국제질서의 출발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교전쟁이 결국 세속적 국가질서를 낳았다는 역설이다. 종교가 폭력의 극단까지 갔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종교를 국가로부터 분리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원영상의 글은 일본 불교의 태평양전쟁 협력을 다룬다. 이 부분은 특히 충격적이다. 불교는 흔히 평화의 종교로 여겨지지만, 일본 불교는 파시즘과 결합해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조동종 승려들은 특공대를 미화했고, 불교 교단은 “죽음을 통한 자기 부정”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해석했다. 불교적 무아와 희생의 개념이 국가주의에 흡수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종교가 국가 권력에 포섭될 때 발생하는 구조적 위험이라고 본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반성과 참회가 가능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박문수는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를 다룬다. 북한의 남침 이후 대부분의 교회는 이를 “반공 성전”으로 규정했다. 전쟁 참여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신앙적 의무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악이 되었고, 반공은 곧 신앙이 되었다. 여기서 ‘정당한 전쟁론’조차 설 자리가 없었고, 평화주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가 단순한 정치 입장이 아니라 신학적 구조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문유정은 로힝야 난민 문제를 통해 현대 국제정치 속 불교적 윤리를 묻는다. 그는 불교의 연기(緣起)를 단순한 철학 개념이 아니라 세계시민적 책임의 윤리로 해석한다. 국경 밖 타자의 고통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다. 보살도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배제된 자와 함께 살아가는 실천이다. 이 장은 책 전체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이다. 과거의 전쟁 분석을 넘어, 오늘의 평화 실천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정상교는 불교의 삼독(탐·진·치)을 통해 전쟁의 근원을 설명한다. 인간은 욕계에 살며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고, 분노하며, 알려 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이 삼독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은 계속된다. 참된 평화는 제도 개혁 이전에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는 불교적 통찰이 제시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종교의 위선”을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교가 왜 반복적으로 폭력에 협력하는지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몇몇 타락한 성직자가 아니라, 집단화된 종교 자체다. 종교는 국가와 결합하고,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자기 집단의 생존을 위해 교리를 재해석한다. 이 분석은 매우 설득력 있다.

특히 세진님이 관심 가지시는 한반도 평화와 연결하면,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현재의 경고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일본 불교의 전쟁 협력, 이슬람과 서구의 상호 적대는 모두 “기도가 총성이 되는 순간”의 다른 얼굴이다.

다만 한계도 있다. 책은 종교의 폭력성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실제로 평화를 만들어낸 종교운동—예를 들어 퀘이커의 평화주의, 해방신학, 민중신학, 간디의 비폭력—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심층 종교의 가능성을 말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타자의 고통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기도가 총성이 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기도가 다시 평화가 되게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이 책은 바로 그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중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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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원영상, 박문수의 글을 각각 200 다어로 요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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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전쟁의 이유, 종교의 자리, 명멸하는 평화>

이찬수는 전쟁의 원인을 단순한 국가 간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 구조에서 찾는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모방하며 살아가고, 이 모방 욕망은 결핍과 경쟁을 낳는다. 개인 차원의 욕망이 집단으로 확대되면 민족주의, 국가주의, 종교적 배타성으로 발전하며 전쟁의 심리적 기반이 된다.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본래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도 집단화되고 제도화되면 국가와 민족의 이해에 종속된다. 한국전쟁에서 남북의 교회가 서로를 저주하며 승리를 기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를 “표층 종교”라고 부른다. 반면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부정을 통해 폭력을 줄이려는 종교를 “심층 종교”라고 규정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부정성과 적대를 축소하고 타자를 환대하는 능동적 과정이다. 종교가 국가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될 때만 평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원영상 <아수라로 전락한 불교 ― 태평양전쟁과 일본 불교>

원영상은 일본 불교가 태평양전쟁 동안 어떻게 국가 파시즘에 협력했는지를 분석한다. 불교는 흔히 평화의 종교로 이해되지만, 일본의 주요 불교 종단들은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했다. 승려들은 천황을 절대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불교의 무아와 희생의 교리를 국가를 위한 죽음의 정당화에 사용했다. 특히 특공대 정신은 자기 부정과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숭고한 행위로 미화되었다. 조동종을 비롯한 여러 종파는 전쟁 말기까지 국민 총동원과 죽창 훈련을 독려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종교 제도 전체가 국가주의에 흡수된 결과였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와 종교의 밀착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패전 후에도 즉각적인 참회는 없었고, 반성과 책임 인식은 수십 년 뒤에야 시작되었다. 그는 불교가 진정 평화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과의 결합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문수 <한국전쟁과 그리스도교>

박문수는 한국전쟁 시기 한국 그리스도교가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당화했는지를 살핀다. 북한의 남침 이후 대부분의 교회는 이를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반공 성전”으로 규정했다. 공산주의는 절대 악으로 해석되었고, 이에 맞서는 전쟁은 신앙적 의무가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직접 입대하거나 군종, 의료, 후방 지원, 반공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이 아니라 종교적 확신에 기반한 행동이었다. 전쟁 중에는 “정당한 전쟁론”보다 훨씬 강한 “성전론”이 지배적이었고, 평화주의는 극히 소수의 입장에 불과했다. 일부 외국인 선교사만이 정당한 전쟁론을 유지했고, 무저항과 비폭력을 주장하는 평화주의는 주변화되었다. 이러한 반공 성전론은 전쟁 이후에도 1980년대까지 한국 교회의 중심 담론으로 남았다. 저자는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가 단순한 정치 선택이 아니라 신학적 구조로 자리 잡았음을 지적하며, 오늘날에도 그 유산이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
[한국전쟁에서 남북의 교회가 서로를 저주하며 승리를 기도] 한국 전쟁 때 북한에 교회가 있었나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표현의 핵심입니다.

한국전쟁 직전까지 북한 지역은 오히려 한반도 개신교의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Pyongyang은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이후 장로교·감리교가 매우 강했고, 많은 목회자와 신학교, 교회 조직이 북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에도 상당수의 기독교인이 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정권 수립과 함께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1. 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남쪽으로 피난
  2. 교회 재산 국유화
  3. 종교 활동에 대한 강한 통제
  4. 반공 성향의 기독교 지도층 탄압

이 과정에서 남한 교회의 주요 지도자 상당수가 사실상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강한 반공주의에는 이 개인적·집단적 기억이 깊게 작용합니다.

반면 북한에도 완전히 교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기와 그 이후 북한은 국가 통제 아래 제한된 형태의 기독교 조직을 유지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후일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같은 형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로운 교회라기보다 국가 관리 체계 안의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남북의 교회가 서로를 저주하며 승리를 기도했다”는 말은,

  • 남한 교회는 북한을 “무신론적 공산 악”으로 규정하며 반공 성전을 주장했고
  • 북한 체제 안의 기독교 혹은 종교 담론은 남한과 미국을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했다

는 뜻에 가깝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 중 북측의 중심 이념은 교회가 아니라 국가와 혁명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래서 대칭적으로 “양쪽 교회”라고 표현하면 약간 단순화가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한에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성전화했고, 북한에서는 혁명 이데올로기가 그 역할을 했다>

가 더 역사적으로 정확합니다.

----

전전 일본에서 [승려들은 천황을 절대적 존재로 받아들이고, 불교의 무아와 희생의 교리를 국가를 위한 죽음의 정당화에 사용했다.] --- 자기 보호를 위한 기회주의적 사고와 행동이었을까요? 아니면 신념 자체가 그쪽으로 기울어 젔나요?

둘 다였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기회주의만은 아니고, 신념 자체가 이미 국가주의 쪽으로 재구성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전전 일본 불교계의 전쟁 협력은 세 층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생존을 위한 순응>이 있었습니다. 메이지 이후 일본 국가는 신도 중심의 천황제 국가를 만들었고, 불교는 한때 폐불훼석으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불교계는 “우리는 국가에 충성하는 종교”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 점에서는 자기보호적 기회주의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둘째, <제도적 출세와 권력 접근>도 있었습니다. 군국주의 국가에 협력하면 종단은 인정받고, 학교·포교·조직 유지에 유리했습니다. 이 역시 현실적 계산입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교리 자체의 국가주의적 재해석>입니다. 무아, 보은, 자기희생, 보살행 같은 불교 개념이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는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특공대의 죽음도 “개아의 부정”이나 “역사를 짊어진 혼의 부활”처럼 미화되었다고 책은 지적합니다. 전쟁 말기에는 불교계 일부가 국민 총무장과 죽창 훈련까지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속으로는 안 믿었지만 살아남으려고 협력했다”라고 보면 부족합니다. 많은 승려와 종단 지도자들은 실제로 천황제 국가와 불교가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더 나아가 일본의 전쟁을 아시아 해방이나 불국토 건설처럼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순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신념이 되었고, 결국 불교 교리 자체가 국가주의의 언어로 변형되었다.>

이 점이 무서운 부분입니다. 종교가 권력에 이용당한 것만이 아니라, 종교인 스스로 권력의 언어로 자기 신앙을 다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퀘이커교 창시자나 무교회그룹의 창시자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할까요? 일본 자체가 신앙?

네,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똑같이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전전 일본에서는 “일본/천황/국가” 자체가 거의 종교적 절대성으로 작동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 신도, 기독교, 무교회, 퀘이커까지도 모두 이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습니다.

<1. 일본 불교 주류>
일본 불교 종단들은 대체로 국가와 제도적으로 결합했습니다. 천황제 국가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교리를 재해석했고, 전쟁 협력도 상당히 적극적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무아·희생·보은”의 국가주의적 해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 니토베 이나조와 일본 퀘이커>
니토베 이나조는 퀘이커였지만 동시에 일본 제국의 엘리트 관료·국제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평화주의적 감수성을 가졌지만, 일본 국가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무사도』도 서구에 일본 정신을 설명하려는 책이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적 도덕성과 국가정체성을 고양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니토베는 <군국주의자는 아니지만, 일본 국가주의와 일정하게 공존한 퀘이커>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

<3. 우치무라 간조와 무교회주의>
우치무라 간조는 더 복잡합니다. 그는 “두 개의 J”, 즉 Jesus와 Japan을 함께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천황 숭배 자체에는 저항했고, 국가주의 교회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깊은 애국심은 강했습니다.

그의 문제는 <국가를 우상화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본에 대한 종교적 애정은 매우 강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교회주의는 제도국가에 비판적이면서도, 일본 민족의 도덕적 사명이라는 생각과 쉽게 결합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일본 자체가 신앙이 되었는가?>
네. 전전 일본에서는 상당히 그랬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정도가 달랐습니다.

불교 주류: 국가신앙에 적극 편입
니토베: 평화주의와 일본 엘리트 국가주의의 공존
우치무라: 천황제 우상화에는 저항, 그러나 일본 사랑은 신앙적 깊이를 가짐

그래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전전 일본의 많은 종교인은 일본을 믿었다. 다만 어떤 이는 천황국가를 믿었고, 어떤 이는 일본의 도덕적 사명을 믿었고, 어떤 이는 일본을 사랑하면서도 국가우상화에는 저항했다.>



Posted by Sejin at April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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