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9

회복적 사법 피해자학

회복적 사법



피해자학 강의

회복적 사법

범죄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의 형사사법체계와는 달리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가해자와 피해자는 물론 범죄문제에 대해 일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지역사회공동체까지 범죄사건의 해결주체로 끌어들인다. 또한 회복적 사법은 그들 사이의 상호 이해, 화해, 원상회복 등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평화를 회복하고자 한다.

전통적 형사사법에 비해 회복적 사법이란 말은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다. 예컨대 응보나 처벌이라는 말보다는 화해 내지 회복을 내세우는 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 국가는 회복적 사법과 관련하여 단순한 이론적 차원의 논의를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형사사법제도에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념과 이론적 논의를 넘어 회복적 사법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형사사법체계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통적인 형벌에 기초를 둔 응보적 사법(restitutive justice), 범죄자의 처우에 중점을 두는 배분적 사법(distributive justice), 회복적 사법(resotrative justice) 등이 그것이다. 응보적 사법과 배분적 사법은 범죄자의 행위에 대한 통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회복적 사법은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회복을 꾀하며, 이 회복 과정에서 범죄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문제해결의 주체가 된다.

회복적 사법의 이념은 결국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해결방안을 관련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대화를 통해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회복적 사법의 이념과 프로그램은 범죄문제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야기되는 민사상의 갈등, 이혼 등 가정 내의 불화, 학교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차별 등의 문제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회복적 사법 심리학

회복적 사법

회복적 사법

restorative justice ]
요약
지역사회,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여 범죄 행동에 의한 피해를 바로잡는 것에 중점을 둔 사법적 이론
주요용어범죄 피해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조정 모델, 협의 모델, 서클 모델
분류법정 심리학

1. 개요

회복적 사법은 특정 범죄에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가 모두 모여 그 범죄가 미친 영향, 피해의 회복 그리고 그 범죄가 장래에 가진 함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범죄자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형사 사법 체계의 틀에서 벗어나 범죄 피해자의 권리 신장과 피해 회복에 초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며, 범죄자와 피해자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조정 모델, 협의 모델, 서클 모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2. 응보주의적 사법 정의와 회복적 사법 정의

응보주의적 사법 정의와 회복적 사법 정의는 사법 정의의 여러 측면에서 다른 견해를 보인다(배임호, 2007). 전통적 사법 정의는 응보주의적 정의관을 나타내는데, 형벌은 죄에 대한 합당한 보복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처벌관이다(이종원, 2011). 전통적 형사 사법에서는 국가의 주도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통합적 조정이 무시되며, 범죄자는 문제 해결의 책임이 없고 손해 배상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으며 지역사회와 격리된다.

이에 비해 회복적 사법은 범죄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가해자와의 갈등 해소 및 손해의 원상 회복을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고려한다(김성진, 2009). 문제 해결이 중심이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피해자의 권리 보호에 중점을 둔다. 범죄자는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으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반성하여 지역사회로 통합된다.

3. 회복적 사법의 발전 과정

1970년대부터 ‘범죄 피해자 권리 운동’은 피해자에 대한 신중한 배려와 형사 절차에서의 피해자 지위 강화, 피해 회복 기회 부여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사 정책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이용식, 2012; 이호중, 1997; 박성철, 2006). 회복적 사법은 정의의 내용 및 실현 절차의 중심에 범죄 피해의 회복을 둔다.

1970-80년대에 회복적 사법의 시초로 불릴 만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1974년에 피해자-가해자-화해 프로그램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 키치너(Kitchener)에서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법원의 관여 없이 중립적인 조정자의 감독 아래 불만을 말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피해자-가해자-조정 제도와 같은 프로그램이 발달했다.

또한 여러 학자들 사이에 회복적 사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면서 1990년대부터는 다양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 그 후 회복적 사법의 이념을 형사 사법 정책에 반영하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2002년 7월에는 회복적 사법의 활용을 위한 기본 원칙이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승인되었다.

한국에서는 1998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2회 세계범죄학회에서 피해자-가해자-조정, 피해 보상, 피해자의 지원, 피해자의 다양한 개입 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회복적 사법의 개념과 관련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2006년 4월부터 회복적 사법 관련 프로그램인 형사조정 제도가 범죄 피해자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김성진, 2009; 박미숙, 2000).

4. 회복적 사법의 목표

회복적 사법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UNODC 2009). 첫째, 피해자의 의견을 듣고 표현하게 하며 해결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범죄에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합의하여 범죄로 인해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 범죄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으로 비난하고 지역사회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넷째, 관련자 모두가 책임을 지는데, 특히 가해자가 책임을 통감하도록 만들고 회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다섯째, 가해자를 변화시키고 이들을 지역사회에 재통합시켜 재범을 줄이는 것이다. 여섯째, 범죄를 야기한 요인들을 밝혀 국가로 하여금 범죄 감소 전략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5. 회복적 절차의 참여자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UNODC)(2009)에 따르면 회복적 절차의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따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거나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복적 사법의 관계(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2009)
회복적 사법의 관계(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2009)
범죄 피해자는 우선 발언을 요구할 권리와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고 다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어야 회복적 절차가 진행되지만 언제든지 동의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 만약 피해자가 어린이, 불법 이민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등 사회적 약자일 때에는 이들의 권리 보호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가해자 역시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절차 참여에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하지만 동의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 회복적 절차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가해자가 형식적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가지고 진정한 참여를 하는 것이다.

경찰의 역할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중재자로서 완전히 개입하거나 조력자로 도움만 주는 경우도 있고 별다른 역할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검사는 특별한 지침이 없는 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변호사는 가해자를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회부하는 역할을 하며 가해자에게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의 혜택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판사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유형에 따라 참여하는 역할이 다른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회부를 결정하는 역할만 한다.

회복적 사법 절차는 보호관찰 중이거나 지역사회에서 다른 형태의 감시 하에 있거나 구금 중인 가해자에게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가석방을 결정하는 담당자나 교정 공무원들이 가석방 조건의 일부로서 조정(mediation)을 활용하거나 가해자를 회복적 프로그램에 회부할 수 있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가해자와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가해자가 지켜야 하는 합의 사항을 도출하는 일을 한다. 회복적 사법에서 조정인(mediator) 또는 주선인(facilitator)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능력 등 여러 능력이 요구된다.

6.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종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는 조정 모델, 협의 모델, 서클 모델 등이 있다(McCold, 2002, 박성철, 2006에서 재인용; 정진수, 2004; 배임호, 2007). 첫째, 조정 모델은 조정인의 개입을 인정하는데 조정자는 중립적인 제삼자이며 프로그램 참여자는 일반적으로 피해자, 가해자, 조정인에 국한되고 법원은 이 절차에 간접적인 역할을 한다.

조정 모델에는 피해자-가해자 화해(victim-offender reconciliation) 모델과 피해자-가해자 조정(victim-offendermediation) 모델이 있다. 피해자-가해자 화해 모델은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키치너에서 시작되었으며 미국과 캐나다에서 최초로 회복적 사법의 원리를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화해이며, 여기서 화해는 범죄행위에 의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붕괴했을 때 사용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피해자-가해자 조정 모델은 “만족할 만한 상호 합의”를 목표로 130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전 세계에서 운용되고 있고 결과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두 번째, 협의 모델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후원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힘의 균형을 창출한다는 특징이 있다. 협의 모델은 가족집단회의 모델(family group conferenceFGC), 경찰 협의 모델, 공동체 협의(community conferencing) 모델로 구분한다. 가족집단회의 모델은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 가해자의 가족과 친구 등도 참가하고, 가해자 중심적이며, 집단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경찰 협의 모델은 경찰관이 주선하며, 피해자와 가해자, 그들의 가족 및 친구, 범죄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참석한다. 일반적으로 적절한 원상 회복 및 배상을 위한 합의를 장려하는 와가 와가(Wagga Wagga) 모델, 음주운전과 같이 직접적 피해자가 없는 사건에 대해 사용하는 캔버라 모델, 캔버라 모델보다 덜 심각한 사건에서 사용되며 범죄에 의해 야기된 피해를 보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템스 밸리(Thames Valley) 모델 등이 있다.

공동체 협의 모델은 학교나 회사처럼 넓은 환경에서 다루는 모임으로 사건 중심적이며 경찰이 아니라도 소송 과정에서 사건을 전환할 수 있는 권력 기관이나 국가로부터 사건 위탁을 받은 훈련된 공동체 자원봉사자 등이 주도할 수 있다.

세 번째, 서클 모델은 피해자, 가해자, 이들의 가족과 지원자, 형사 사법 기관 외에 형사 사건에 관심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참가할 수 있고 공동체에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클 모델에는 양형 서클(sentencing circleSC)과 치유 서클(healing circleHC)이 있다. 양형 서클은 피해자, 가해자, 이들의 가족, 후원자 및 법원 직원으로 구성되는 이너 서클(inner circle)과 공동체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과 특별한 정보를 위해 요청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우터 서클(outer circle)로 구분하기도 한다. 치유 서클은 근친 강간과 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서클 모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7.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장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김용세, 2003; 박성철, 2006). 첫째, 피해자에게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직접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피해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별도의 민사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가해자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가해자와 대화하여 자신이 피해를 당한 이유를 확인하고 사죄를 받음으로써 정신적∙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일반적인 형사 소송 절차에서 발생하는 소외감과 무력감 등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둘째, 가해자의 재사회화에 기여한다. 가해자는 회복적 절차에 참여하여 자신의 범죄가 피해자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피해자와 직접 만나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된다.

셋째, 방향 전환(diversion) 효과가 있다. 가해자에게 형벌을 집행하는 과정이 없으므로 범죄자로 낙인 찍히지 않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넷째,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공동체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고, 가해자 및 피해자의 책임의식이 높아지며, 이에 따라 사회적 결속력이 커져서 범죄가 줄어든다.

8. 회복적 사법에 관한 쟁점

회복적 사법을 둘러싸고 여러 쟁점이 존재한다(이호중, 2001; 장규원, 윤현석, 2012; 이용식, 2012). 첫째, 회복적 사법과 기존 형사 사법 체계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가 있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가 실제 발생했는지 여부, 즉 범죄자의 유∙무죄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기존 형사 사법의 보충적 대안으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과, 잠재적인 범죄 예방 및 다른 긍정적인 영향으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양립한다.

둘째,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범죄자가 과연 자발적으로 참여했느냐 하는 문제이다. 범죄자가 회복적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 회복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가혹한 형벌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회복적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할 때는 검사의 기소 판단과 법원의 양형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범죄자가 자백하지 않은 경우 회복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에 합의한다면 범죄자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범죄자에 대한 사회 통제망이 확대되는 문제가 있다. 경미한 범죄라면 가벼운 형벌 혹은 기소유예 판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더 가혹하고 무거운 부담을 질 수 있다. 또한 회복적 사법과 기존 형사 사법 체계가 잘 연계되지 않았을 때 회복적 절차가 추가적 제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회복적 절차의 참여가 이후에 이루어질 형사 사법 기관에 의한 최종 결정에서 얼마나 유리하게 고려될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9. 결언

회복적 사법은 진화하는 개념으로 국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관점이 다르다. 범죄의 피해자, 가해자, 범죄의 영향을 받은 다른 개인이나 지역사회 구성원이 모여 진행하는 회복적 사법은 기존의 형사 사법 절차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를 중심에 둔다. 회복적 사법의 장점 때문에 국가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집필 : 김민지(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출처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표제어 전체보기

제공처
한국심리학회 http://www.koreanpsychology.or.kr
심리학용어사전은 네이버와 한국심리학회가 공동기획하고 제작하는 콘텐츠입니다. 한국심리학회는 1946년 설립돼 현재 14개 분과에 17,000여 명의 회원이 속해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심리학 연구를 위한 학술 단체입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
[네이버 지식백과] 회복적 사법 [restorative justice]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

2016/09/14

The Big Book of Restorative Justice, Howard Zehr Allan MacRae - Shop Online for Books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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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Book of Restorative Justice

Four Classic Justice & Peacebuilding Books in One Vol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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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t:Paperback, 368 pages
Other Information:illustrations
Published In:United Kingdom, 13 October 2015
For the first time, the four most popular restorative justice books in the Justice & Peacebuilding series 
The Little Book of Restorative Justice: Revised and Updated
The Little Book of Victim Offender Conferencing
The Little Book of Family Group Conferences, and 
The Little Book of Circle Processes 
are available in one affordable volume. 
Restorative justice, with its emphasis on identifying the justice needs of everyone involved in a crime, is a worldwide movement of growing influence that is helping victims and communities heal while holding criminals accountable for their actions. 
This is not a soft-on-crime, feel-good philosophy, but rather a concrete effort to bring justice and healing to everyone involved in a crime. 
Circle processes draw from the Native American tradition of gathering in a circle to solve problems as a community. Peacemaking circles are used in neighborhoods, in schools, in the workplace, and in social services to support victims of all kinds, resolve behavior problems, and create positive climates. Each book is written by a scholar at the forefront of these movements, making this important reading for classrooms, community leaders, and anyone involved with conflict resolution."

About the Author

Howard Zehr directed the first victim offender conferencing program in the US and is one of the original developers of restorative justice as a concept. Zehr is the Distinguished Professor of Restorative Justice and the codirector of the Zehr Institute for Restorative Justice at Eastern Mennonite University. He lives in Harrisonburg, Virginia. Allan MacRae is the manager of coordinators for the southern region of New Zealand, overseeing Family Group Conferences for both youth justice and care and protection. After receiving the National Supreme Award for Innovation, Allan developed a program in Wellington, which emerged as a leading model of youth justice. He lives in New Zealand. Kay Pranis served as the restorative justice planner for the Minnesota Department of Corrections for nine years. Pranis has conducted circle trainings in a diverse range of communitiesfrom schools to prisons to workplaces to churches, and from rural towns in Minnesota to Chicago s South Side to Montgomery, Alabama. She lives in St. Paul, Minnesota. Lorraine Stutzman Amstutz is the director of the Mennonite Central Committee s (MCC) office on crime and justice. Lorraine has worked in the victim offender field since 1984 when she began working in Elkhart, Indiana, the site of the first Victim Offender Reconciliation Program (VORP) in the United States. Lorraine currently serves on the board of the local victim offender program in Lancaster County, Pennsylvania, where she lives."
EAN:9781680990560
ISBN:168099056X
Publisher:Good Books

Susumu Ishitani

LOOKING FOR MEANINGS OF MY A -BOMB EXPERIENCE IN NAGASAKI


Susumu Ishitani


박성용 기독교와 불교의 생태평화화 -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알라딘: 기독교와 불교의 생태평화화 -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기독교와 불교의 생태평화화 - 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박성용 (지은이) | 다산글방 | 200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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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낡은 종교적 담론의 탈 구조화와 새로운 비전의 도래

1. 우리 시대의 징조들과 종교적 담론의 재도식화

2. 기독교 신학적 담론에 타자를 재정위하기

3. 변화하는 세계를 향한 현대불교의 새 방향



제2부 사물의 우주와 샐리 맥훼이그의 육화신학

4. 생태시대에 따른 기독교 언어의 재구성

5. 에코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신학의 재형성

6. 생태평화 공동체의 헌신의 삶



제3부 생명의 우주와 조안나 메이시의 생태불법학

7. 갈등하는 세상에서 법륜을 돌림

8. 메이시의 불법학이 지닌 인식론, 도덕성 그리고 공동체

9. 생태평화 공동체와 헌신의 삶



제4부 종교 담론에 에코페미니스트의 비전을 엮어 넣기

10. 에코페미니스트 종교 담론의 평가와 도전들

11. 페미니즘, 종교 그리고 생태학에 있어 더 깊은 토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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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 marine's message lives on in Okinawa and Vietnam | The Japan Times

Late marine's message lives on in Okinawa and Vietnam | The Japan Time



Late marine’s message lives on in Okinawa and Vietnam

BY 
U.S. Marine Allen Nelson first visited Okinawa in 1966 when the entire island was under American control and functioned as its springboard for the war in Vietnam. For two weeks, Nelson and his fellow new recruits spent their days practising guerilla warfare at Camp Hansen, central Okinawa, then in the nights, they headed into civilian areas to drink, fight and look for women. In later interviews, Nelson recalled drunken U.S. Marines beating taxi drivers and bar workers unconscious: “When we are coming to town, we don’t leave our violence on military bases. We bring our violence into towns with us.”
The next time Nelson visited Okinawa was 30 years later. This time when he visited local communities, he brought something very different: the message that the U.S. military presence on the island was unjust and the bases should be closed immediately.
What had happened in those intervening years to transform Nelson’s stance so profoundly has been explored in numerous Japanese books, TV shows and even a manga published in 2005 titled “Nelson-san, Anata wa Hito o Koroshimashitaka” (“Mr. Nelson, Did You Kill People?”). But very little has been written in English about the former marine and, although his story cuts to the core of current U.S.-Japan relations, he remains largely unknown in his home country.
Born in Brooklyn in 1947, Nelson, like many other African-Americans, benefited little from the economic boom heralded by U.S. victory in World War II. His father was absent and his mother raised Nelson and his four sisters in poverty; often there was not enough money for food and Nelson shared shoes with his sisters. After dropping out of high school, he was drawn to one of the few places that guaranteed a steady income to undereducated black males: the U.S. military.
In 1965, Nelson signed up for the U.S. Marines. Following his training in the U.S. and Okinawa, he was deployed to Vietnam where, for the next 13 months, he experienced combat so horrific that no amount of training could ever have prepared him. Nelson killed Vietnamese soldiers and saw his comrades killed beside him. He was wounded in an explosion and he participated in at least one execution of a prisoner.
What especially seared Nelson’s memories were the raids on villages where, following combat, he had to stack the civilian dead into piles — sometimes with surviving children clinging to their mother’s corpses.
In total, Nelson served four years with the U.S. Marines. After returning to civilian life, he found it impossible to readjust to peace time: the military had taught him how to kill but not how to live. Suffering from severe PTSD, he wound up homeless and it was only after years of counseling that he could begin to accept what he had experienced in combat.
Determined that other young Americans not suffer as he had, Nelson joined the Quakers, a pacifist Christian sect. He took part in demonstrations against overseas U.S. intervention and he led campaigns to oppose military recruitment in schools.
In September 1995, Nelson heard the news that three U.S. service members — including two U.S. Marines from Camp Hansen — had raped a 12-year-old girl on Okinawa.
“The news shocked Allen both as a former marine and a father. What also surprised him was the fact that U.S. bases were still on Okinawa. He’d assumed they’d all been closed after the end of the Vietnam War,” says Yutaka Ohata, a friend and long-term supporter of Nelson.
Through Quakers in Japan, Nelson was invited to visit Okinawa. In 1996, he arrived on the island and, at schools and community centers, he gave a series of talks about his service in the military.
“For many Okinawans it was the first time to learn about how Americans experienced the Vietnam War and what went on within the bases we lived alongside,” says Eiko Ginoza, a high school teacher who met Nelson during his first visit and became a life-long friend. “Allen told us about the nuclear weapons, chemical weapons and Agent Orange. He told us all the ways he’d been taught to kill — and we were very surprised.”
Nelson’s accounts of how Vietnamese civilians bore the brunt of combat also struck a chord with Okinawans whose island had lost more than a quarter of its residents during World War II.
His talks on Okinawa were so well-received that word of his eloquence soon spread to mainland Japan. Upon his return to the States, he was flooded with requests to come back and give lectures throughout Japan. So began 12 years of annual visits during which he racked up more than 1,000 speeches at schools, universities, temples and community centers.
Nelson’s visits punctuated a tumultuous time in Japanese politics with many similarities to today. In 2004, Tokyo attempted to start construction of a new U.S. base at Henoko, Okinawa, triggering widespread protests on land and sea. The government also tried to foist a more assertive international role on the nation’s Self Defense Forces — particularly in the Iraq War where it dispatched to Iraq more than 5,500 members of the Ground Self Defense Force between 2004 and 2006 to aid reconstruction. As with Prime Minister Shinzo Abe’s current ploy to reinterpret the role of the Japanese military, these moves were seen by many critics as attempts to undermine the Constitution’s Article 9, which renounces the use of military force.
Nelson was an ardent supporter of Article 9, arguing that it had saved Japan from becoming embroiled in misguided U.S.-led conflicts such as the Vietnam War.
During a speech in 2003, for example, he told the audience of Japanese high school students:
“Because Article 9 is there, no one in the world says that their land was bombed by Japanese bombers or their towns and villages were burned by Japanese troops; no one says that their children were killed or hurt by Japanese soldiers. In this sense Article 9 saved not only you Japanese people but also millions of other people.”
Following his talks at Japanese schools, children often asked questions that adults would never have asked: How does it feel to kill? Did he miss his mother in Vietnam? Had he been afraid to go to the toilet in the jungle?
“I started to understand: Little children, they understand war from the bottom up; adults, we try to understand from the mind. But we can’t understand the horror of war intellectually,” Nelson said.
In order to cap such painful discussions with a positive note, Nelson — an accomplished guitarist — often ended his talks with a spiritual song such as “Amazing Grace.”
These talks gradually made Nelson a well-known figure in Japan. From Hokkaido to Kyushu, all across the country he was invited to give lectures — as well as in Vietnam with NGO Peace Boat and at The Hague in the Netherlands. Okinawa, though, always retained a special place in his heart. According to Ginoza, Nelson believed the island’s poverty and history of Tokyo-backed discrimination mirrored his own experiences as an African-American.
During his frequent trips to Okinawa, Nelson visited Iejima Island near the main island’s northwestern coast where he met Shoko Ahagon — the founder of the postwar Okinawan peace movement. Then in his 90s, Ahagon had waged a decades-long campaign to reclaim farm land seized by the U.S. military in the 1950s. Apparently Nelson was so impressed by the elderly Okinawan that he likened Ahagon to Gandhi and Martin Luther King Jr.
Meetings with Ahagon and other Okinawan peace campaigners cemented in Nelson a strong sense of outrage against the U.S. presence on the island. He participated in demonstrations against the bases and railed against the authorities’ violent treatment of peaceful protesters.
Despite his outward displays of strength, however, Nelson still battled PTSD. Ohata realized this when he took Nelson on a hike into the hills of Gifu Prefecture to pick wild mushrooms; the veteran suddenly grew fearful of possible landmines and snipers. Fireworks festivals, a popular summertime event in Japan, were likewise a no-go zone.
The lectures, too, often left Nelson physically and mentally drained.
“Every time he talked about Vietnam, he had to go back there in his mind,” explains Ohata. “It was very hard for him to constantly return to combat in the jungles.”
In January 2009, Nelson discovered that his 13 months in Vietnam had not only taken a mental toll. Doctors diagnosed him with multiple myeloma — a form of bone marrow cancer — that Nelson believed had been sparked by exposure to Agent Orange in the jungles of Vietnam.
Hospitalized in the U.S., Nelson applied to the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for assistance. But as his condition worsened and his medical bills soared, it became clear that VA processing would take too long. His friends in Japan stepped in to help. They organized a collection to pay for his treatment and, to ensure the money arrived safely, they delivered it in person to Nelson in his hospital bed.
But the cancer was already too far advanced and on March 25, 2009, Nelson passed away. Three months later, his ashes were interred at one of the places where he had felt at peace in Japan — Kousenbou Temple in Kaga, Ishikawa Prefecture.
Although their collection couldn’t help Nelson’s condition, his friends realized that the remaining money could ensure that the former marine’s legacy would survive. In keeping with his belief that education was key for children to escape poverty, in 2010, his supporters established the Allen Nelson Fund to assist impoverished students in Vietnam.
Since its creation, the fund has distributed financial aid to more than 600 children. The most recent donation in February 2015 saw Okinawan representatives hand out aid to 120 youngsters living in Tam Ky City and Que Son District in Quang Nam Province. The fund gives priority to children who, like Nelson, come from single-parent families.
Nelson’s message also survives with those who knew him the best.
“Allen always used to say that Article 9 was stronger than any army. Today Article 9 is in danger more than ever before,” says Ginoza. “His words encourage us to keep opposing the destruction of the constitution and Henoko Bay. If Allen were alive today, he’d continue to build peace alongside us.”
Jon Mitchell writes about human rights issues on Okinawa. He received the 2015 Foreign Correspondents’ Club of Japan Freedom of the Press Award for Lifetime Achievement for his investigations into U.S. military contamination on Okinawa and other base-related problems.Your comments and story ideas: community@japantimes.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