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무엇인가
칼럼
입력 2002.04.04
종교란 무엇인가 - 니스타니 게이지
장영섭
십자가로 밥을 떠먹을 수 없고 하루종일 염불한다고 떼인 돈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종교는 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먹고사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다 보면 가슴 한켠이 적잖이 켕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고해성사를 위해 신부를 찾고 절집에 몇 푼이라도 시주를 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한 인간의 보편적 심리. 왜일까?
일본 교토대 철학과 교수 니시타니 게이지(1900~)는 이 물음에 대하여 “종교는 삶 그 자체의 중대한 문제이다. 순간의 삶을 살고 마느냐, 영원한 삶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은 삶의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라고 해답을 제시한다. 나직한 목소리가 참으로 미덥다. 신앙의 목적이 단순히 얄팍한 위안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심리적 쾌락과 효용성 증진이 종교의 기능은 아니라는 존제에서 차라리 곰 인형을 사서 끌어안고 자는 것이 낫다. 우리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이마에 ‘유한성(有限性)’이라고 낙인찍기 위해 뒷덜미에서 달려드는 검고 광폭한 그림자가 없었다면, 인간 세상에 종교가 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협상가라도 죽음과는 거래가 불가능하다. 억만금을 주고도 불현듯 엄습한 죽음을 되돌려 보낼 수 없음을 처절히 깨우칠 때, 그의 눈시울엔 도저한 절망과 허탈감이 이내처럼 깔린다. 니시타니는 이러한 “허무를 절대무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역설한다. 허무해 하는 나 자신 역시 ‘없음’을 깨달을 때, 죽음과 흔쾌히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神)은 전지전능한 신성일지언정 종교는 실수투성이 인간성이 만들어놓은 체계인지라 어딘가 모르게 삐그덕거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가 붕괴되는 징조를 느낄 때,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서양과 대체적으로 불교의 그늘 아래 놓인 동양의 뼛속깊은 갈등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붕괴를 야기한 망치는 세계사적 측면에서 살펴볼 경우 순교자를 양산한 만큼 유례 없는 보복을 빈번하게 일삼은 기독교의 손에 들려 있었다고 해야 옳다.
책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함께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 연구하는 것에도 매진한다. 서양은 나르시스의 생트집, 즉 자기만 아는 철부지 정신과 타자 배척의 역사일 뿐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지만 공 사상을 내면화한 니시타니는 따스하게 에둘러 간다.
불교의 편에 선 저자이지만 결코 기독교를 험구하지 않는다. “‘공(空)’, 업(業)‘, ’성기(性起) 등 특정 종교의 용어를” 자주 거론하지만 이것은 “‘리얼리티’와 ‘인간의 본질과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빌어 쓴 것”일 따름이다. 요는 ‘영생’도 ‘열반’도 아니고 ‘절대무에의 회귀’, ‘죽음과 절친한 사이가 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니시타니 필생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공감을 얻는 이유는 저자의 으리으리한 박람강기(博覽强記)와 날카롭고도 튼튼한 논변 덕분만은 아니다.
거기엔 그의 ‘몸’이, 젊은 날의 허기와 피로와 허망함이 면면히 녹아 들어가 있기에 딱딱한 종교입문서를 넘어 '정제된 살풀이'로 읽힌다. 죽음의 친구가 되기는 삶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무한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