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6

민속원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 지준 지음



(11) 민속원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한국근대 민속·인류학 번역총서 14) 무라야마 지준 지음 / 노성환...








민속원
21 May at 10:39 ·



【신간안내】
『조선의 귀신』(한국근대 민속·인류학 번역총서 14)

무라야마 지준 지음
/ 노성환 옮김, 크라운변형판, 양장, 540쪽.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신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다.

인간의 사상에 있어서 근기根基를 이루며 생활의 지침으로서 결정되는 정신작용의 3유체三流體인 지知·정情·의意라는 세 가지 작용 중 감정의 작용이 중심을 이룬다는 것은 심리학계에 있어서는 정설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감정 작용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신앙현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생활을 이해할 경우 신앙현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봄으로써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분류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향과 생활이상生活理想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현상은 인간의 사상에 근기를 이루고 있는 만큼 일반성이 결여된 개인적인 것이므로 만인이 공통으로 동일한 신앙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란 개인적인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즉, 공동적 작위作爲로 말미암아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를 개인적 성질의 신앙현상으로부터 접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신앙의 현상이 얼마나 그 사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또 그 사상으로부터 출발한 생활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신앙현상이 개인적이며 사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사회 전체의 사상과 문화를 생각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이해하고 민족사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 민족의 공통적인 신앙현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같은 공통된 신앙현상이 다름 아닌 민간신앙이다.

【약력 및 주요 저술】
무라야마 지준은 1891년 일본 니이가타현新潟県 가리와군刈羽郡 출신으로,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일련종日蓮宗 묘광사妙廣寺에 들어가, 그곳의 주지 무라야마 지젠村山智全의 양자가 되어, 그의 영향 아래 성장했다. 제1고를 거쳐 동경제국대학에 입학하여, 1919년 7월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사회학 전공)했다. 졸업논문은 「일본 국민성의 발달」이었다.

졸업하던 그 해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어, 조선으로 부임했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조선에서 그는 처음에는 사회제도, 조선인의 사상 등을 조사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물이 1924년에 낸 󰡔조선의 독립사상 및 운동󰡕(조사자료 제10집)이었다. 그 후 의식주를 포함한 서민생활, 귀신과 풍수에 관련된 민속종교, 전통적인 놀이 등을 기록한 조사 자료를 많이 남겼다. 그의 주요 업적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朝鮮의 服装󰡕 3, 朝鮮総督府, 1927年
󰡔朝鮮人의 思想과 性格󰡕 調査資料 第二十輯, 朝鮮総督府, 1927年
󰡔朝鮮의 習俗󰡕 4, 朝鮮総督府, 1928年
󰡔朝鮮의 鬼神󰡕 調査資料第二十五輯, 朝鮮総督府, 1929年
󰡔朝鮮의 風水󰡕 調査資料第三十一輯, 朝鮮総督府, 1931年
󰡔朝鮮의 巫覡󰡕 調査資料第三十六輯, 朝鮮総督府, 1932年
󰡔朝鮮의 占卜과 預言󰡕 調査資料第三十七輯, 朝鮮総督府, 1933年
󰡔朝鮮의 類似宗教󰡕 調査資料第四十二輯, 朝鮮総督府, 1935年
󰡔部落祭󰡕 調査資料第四十四輯, 朝鮮総督府, 1937年
󰡔釈奠․祈雨․安宅󰡕 調査資料第四十五輯, 朝鮮総督府, 1938年
󰡔朝鮮의 郷土娯楽󰡕 調査資料第四十七輯, 朝鮮総督府, 1941年
󰡔朝鮮場市의 研究󰡕(미완의 작품) 国書刊行会, 1999年


이상과 같은 목록에서 보듯이 조선인의 민속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정열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남긴 저서들은 훗날 한국 민속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다. 특히 그 중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 󰡔조선의 점복과 예언󰡕이 출판 되었을 때는 조선인 민속학자 손진태孫晋泰가 서평을 썼을 정도로 국내외의 민속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총독부의 관리(중추원편집과, 조사과, 서무부 조사과, 총독관방의 총무과, 문서과)생활을 하면서, 경성법학전문학교, 사립불교학교, 경성공립상업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조선󰡕이란 잡지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연구와 교육을 활발하게 벌였던 그가 1941년 돌연 일본으로 귀국하여 조선총독부의 지소支所와 같은 성격의 조선장학회에 근무하다가, 은사이자 양부養父인 무라야마 지젠이 1945년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묘광사의 주지가 된다. 그로부터 13년 후 동경으로 거처를 옮기나, 본인이 바라던 조선관계의 학술활동은 거의 없었으며, 1968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 자세한 내용은 민속원 홈페이지 (http://www.minsokwon.com/) 참조.




117Sung Deuk Oak, Sunghwan Jo and 11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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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죽인 범인 용서한 한국인 부모, 미국인들에게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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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호 기념 장학 사업 지속…이스턴대학 해마다 추모 행사



박지호 (simpro@newsnjoy.or.kr)

승인 2008.04.22 08:50









▲ "To Turn Sorrow into Christian Purpose"(슬픔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오인호 씨의 묘비명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위해 선처를 호소한 오 씨의 부모님이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지금부터 꼭 49년 전인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펜실베이니아대학 주변 해밀턴 거리 36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집 앞에 있는 우체통으로 다가가는 순간 근처에 숨어 있던 흑인 불량배들이 달려들었다.



11명의 불량배들은 오 씨를 에워싸고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철사가 달린 블랙잭이란 흉기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자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콜라 병을 깨뜨려 몸을 찔렀다. 정신없이 맞은 오 씨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본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오 씨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 씨가 머물던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의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들은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싱 파티 입장료 6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범인들이 붙잡혔다. 이들은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싱 파티 입장료 35센트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다음 날 아침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뤘다. 시민들은 6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범인들의 비인간성에 경악했고, 폭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잔혹함에 분노했다. 신문마다 “cold-blooded”(냉혈한), “brutal”(잔혹한), “heartless”(무자비한) 등의 수식어를 써가며 범인들을 비판했다. 여론도 들끓었다. 범인들이 비록 청소년들이지만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검찰도 중벌을 내리기로 유명한 검사를 배정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 사건 발생 3일 후에 열린 오인호 씨의 장례식.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가장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이 필라델피아 시장이다.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시민들은 오 씨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오 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필라델피아 시장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오 씨의 아버지인 오기병 장로가 한국에서 보낸 편지다.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고,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과 인간성 마비에 대해서도 슬프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인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열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 교육적 빈곤이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 교육 및 사회 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기병(오인호 씨 아버지) 올림.



오 장로의 편지로 미국 사회는 다시 한 번 들썩였다. 당시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자비의 손을 내미는 오 씨의 부모를 주목했다. 5월 2일자 <The Evening Bulletin> 신문에는 “To Return Good for Evil”(악을 선으로 갚다), “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layers”(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 기부한 오 씨의 부모님)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실렸다. 뉴욕 <Guidepost>도 4면에 걸쳐 오 씨와 그의 가족에 대한 기사를 담았다. 당시 언론들은 “미국에서 500불은 큰돈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2센트~35센트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오 씨 가족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라며 오 씨의 가족이 보여준 용서에 대한 진정성을 높이 샀다.















▲ 오인호 씨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왼쪽)와 어머니 한신현 권사(오른쪽).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유가족을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오 씨의 시신을 한국으로 송환키로 했다. 그러나 오 장로는 오히려 아들을 미국 땅에 묻기 원했다. 아들의 무덤을 통해 미국 국민들이 교육적 빈곤이 청소년 범죄의 일차적인 원인임을 자각하고, 청소년 교육의 책임성을 절감토록 하기 위해서다.







오 씨의 죽음 이후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오인호 기념 장학금’을 마련해 장학금을 모금했다. 그 장학금으로 두 명의 한국 학생이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입학해서 박사 학위 과정까지 마쳤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들도 160만 불이 넘는 기금을 모금해 숭실대학교에 전달하고, 일부는 적십자사에 사회복지기금으로 기부했다. 1962년에는 미국 장로교회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An Epistle from Koreans’(한국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만들어 5,000곳이 넘는 미국 교회들에서 상영했다. 범인 중 한 명은 훗날 오 씨의 부모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오 씨와 함께 살았던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는 사건 이후 이 비극을 어떻게 기독교적 소망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도 상의했다. 한국에 있는 오 씨의 가족들은 범인들을 돕고자 했으나 흑인 커뮤니티에서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결국 가족들이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 센터’를 건립하고 어떤 형태로든 오 씨의 가족들이 보여준 사랑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오 목사 부부는 월세가 100불 정도 하던 낡은 집을 구입해서 개조했다. 그곳에서 미국인들과 문화 교류를 가졌다.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어울리며 교제하는 친선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 모임은 기도 모임으로 발전해 80년대 후반까지 30여 년간 이어졌다.



센터는 또 당시 극소수에 불과했던 재미 한국인들을 섬기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이었기에 유학생들이나 교포들의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당장 생활비가 없거나, 급한 일을 앞두고 교통편이 없어 발을 굴러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자동차가 없는 유학생들을 위해 교통편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벌였고, 머무를 곳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온 유학생들을 재우고 먹이는 일도 했다. 실수로 임신한 사실을 알고 한국에서 모든 지원을 끊어버려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을 맡아서 태어난 아기와 여학생을 돌보기도 했다.















▲ 센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오 목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 기념 센터’는 멈춰있다. 건물은 잠겨 있고, 센터 앞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70년대에는 한인 1·5세와 2세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열어 한글을 비롯해 한국 문화와 전통을 가르쳤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이민자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법률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펼쳤다. 아시아법률센터를 설치해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밀입국하다 적발되어 유치장에 갇힌 중국인들을 위해 영주권 취득을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센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오 목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 기념 센터’는 멈춰 있다. 건물은 잠겨 있고, 센터 앞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건물에는 30개가 넘는 방이 있지만 나서서 센터를 이끌 사람이 없어 그냥 두고 있다. 얼마 전엔 도둑까지 들어 센터에 있던 물건들을 훔쳐갔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남은 김자영 사모가 가끔 둘러보긴 하지만 몸이 불편해 거동마저 힘들기에 관리조차 버겁다.

















▲ '오인호 씨 추모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스턴대학교 도서관에 전시된 오인호 씨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오 씨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다녔던 이스턴대학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 씨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의 기독교적 정신을 기리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이스턴대학은 ‘오인호 장학금’을 만들었다. 또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 룸을 만들어 매년 오 씨가 사고를 당한 4월을 전후해 추모 행사를 가져왔다.



한인 사회와 교회에서 오인호 씨는 아직도 낮선 이름이다. 그의 가족이 보였던 사랑과 용서의 정신도 낯설다. 오인호 씨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기독학생협동관 <협조의 벗>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50년 전 한국 교회를 향한 그의 일갈이 아직도 유효한 까닭이다.













▲ 오인호 씨.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변하는 사회와 시대 속에서 교회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탓함은 그 변함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 변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까닭에서다.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집단이 되고, 사회의 등불과 양심이 되고, 죄악과 불의에 대한 총탄과 방패가 되며, 사회의 복음화와 질서를 위한 남모른 제물이 되며, 빛과 생명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임을 몰각하고 교파와 세력 다툼과 자기기만에 빠져들고 있다. 교회의 존재의의는 내로는 교회 자체의 순결을 꾀하고 외로는 복음 전파에 있다. 어느 교회나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 자체의 이익과 확장만을 위한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만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는 믿지 않는 중생하지 못한 인간 그대로의 확대임에 불과하며, 이는 그 변해야 할 심장부의 변화가 없는 교회가 된다."



"그러나 외적인 것보다 먼저 내적인 변화야말로 교회의 성화와 사회의 복음화와 및 교회의 세속화와 사회의 반신화를 막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일은 어느 그룹이나 신학자와 교역자의 독점사는 결코 아니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워진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신학자나 목사가 되라고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 사랑으로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으니 우리들은 먼저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되며 사랑의 화신이 되어 기도와 연구와 실천에 온 힘을 다하는 벗이 되고 그릇된 꿈과 환상을 버리고 실천과 위기에서 살며, 자체가 요나의 이적 십자가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19/05/22

"하나님 나라는 결코 종교가 아니다" - NEWS M



"하나님 나라는 결코 종교가 아니다" - NEWS M



"하나님 나라는 결코 종교가 아니다"

최태선
승인 2016.09.17 02:43


"인류 진보의 가장 큰 위험은 기독교"

불룸하르트는 1842년 독일 뫼트링겐에서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도 복음전도자와 성령치유자로 높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와는 달리 그는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밀려오자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찾아왔는가?' 하는 회의에 빠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 육체적 치유를 갈구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과 자극적인 것을 찾아 왔습니다. 그의 심각한 고민은 자신이 예수의 증언자로 하나님의 행위, 예수의 승리를 증언하려고 했던 것이지 어떤 개인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불룸하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진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 바로 “기독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가 의미하는 기독교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한 실제적인 일 대신에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이며 피안적인 종교성만을 부추기는 의식과 종교행위로 가득한 일요일 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룸하르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성령치유자로서의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이기심을 보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전하고자 한 것은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이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단지 하늘에만 계시며 복음은 단지 내면적인 삶에만 관계한다는 개념은 기독교 신앙에 재앙을 가져왔다며 한탄하게 되었습니다. 불룸하르트에게 있어서 복음은 인간 삶에 혁명을 요구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나 다른 어떤 종교 제도나 인간적인 진보사상과 혼동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도 아니다. 선지자들과 예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님이 만유를 다스리시는 세상을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천국과 개인 구원은 역사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단지 천국에만 계시고 복음은 내적인 삶에만 적용된다는 생각은 재앙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받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가 먼저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는 것에 관심이 없으시다. 오히려 천국이 이 땅에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그대들은 하나님의 것"

불룸하르트는 점차로 교회나 종교적인 문제들, 예배 행위나 교의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개인 구원이나 내적 평안 같은 것에도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믿음이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문제이며, 지금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어둠과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세상에 화해를 선포하며, 모든 고통을 없애고,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하신다고 믿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지구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의 백성과 증인으로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1896년 가을, 그는 '그대들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새로운 표어를 내걸었습니다. 인간의 육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의 사건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아멘'이며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담겨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번의 회심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다음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고,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들이 일차적으로 세상의 곤궁한 사람들을 돕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는 가장 곤궁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오고 또 버림받은 자들, 핍박하는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불안한 변혁이 일고 있는 시대 속에서 인간들의 갈망을 보았고 인간들의 노력과 사회운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들이 여러 가지 부정의한 삶의 조건들을 변혁시키려고 노력하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함께 고통하고 수난 당하는 모습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콘스탄틴 시대 이후 국가교회체제를 유지해 온 교회 전통을 비판하면서 독일교회가 사도적 전승을 잃어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교회는 중세 이래로 지배계층으로 군림해 왔고 당시에도 여전히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지배체제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른바 '제단과 왕좌의 결혼' 현상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승리한다"

오늘 우리의 한국교회도 독일교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개혁으로 과거의 모든 잘못된 기독교의 관행에서 벗어난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개혁주의를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여 잘못된 현실을 개혁하려하지만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던 콘스탄틴 이후의 '제단과 왕좌의 결혼' 현상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보이는 모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1899년 6월에 그가 목회하던 마을 근처의 도시 '괴팅엔'에서 노동자들이 단체 행동권 보장을 위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 집회에 참석했고,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불룸하르트'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가입한 정당은 반교회적 성격을 띤 사민당이었습니다. 왕립 종교국은 이러한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1899년 11월에 그는 목사 직위와 칭호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블룸하르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현실정치에 뛰어든 것은 예수를 따르기 위함이고, 또 이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통해 독일 민족주의의 발흥을 보았고 그는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독일 편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전쟁은 혼란스럽고 자만한 민족들의 세계에 대한 심판이라고 믿었고, 전쟁의 혼란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다스릴 것이다." 그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친처럼 "예수가 승리한다"라는 확신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한국교회에 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갑니다.

1917년 9월 29일 행한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에서 그는 이사야 49장 7-13절의 약속과 위로의 말씀을 읽고 다음과 같이 몇 마디를 첨가했습니다.


"이렇게 약속이 주어져 있고 우리가 이 약속의 빛 안에서 행할 수 있도록 지상에 빛이 늘 머물러 있습니다. 때로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버린 것과 같이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의 말씀은 살아있는 참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1919년 8월 2일, 그는 주름살투성이의 손을 가슴에 얹고 조용히 누워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그는 죽음에 임해 시편 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는 구절을 택해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설립자인 에버하르트 아놀드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나라 공동체 건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세상에 속할 수 없습니다. 작은 타협도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최선의 차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인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다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영원한 목표이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우리들 가운데 임하기를 바라며 불룸하르트의 기도를 주님께 올립니다.


주 우리 하나님, 단 한 번도 우리에게서 도움의 손을 거두지 않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은 것을 알고 우리가 기쁨으로 주 앞에 섭니다.
우리를 이끄셔서 우리 앞에 놓인 하늘나라의 상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혼자라고 느낄 수 있는 적막한 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인생의 고난을 견뎌내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드소서.
주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동행하시니 우리가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덧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실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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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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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정도의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그의 아버지 요한 블룸하르트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독일어:Christoph Friedrich Blumhardt1842년 6월 1일-1919년 8월 2일)는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이자, 종교 사회주의자이다.

생애[편집]

독일 뫼트링겐(Möttlingen)에서 루터교회 목사이자 기독교 영성가인 요한 크리스토프 불룸하르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859년부터 7년동안 우르아흐의 신학교와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수업을 받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후 그 뒤를 이어 고향인 뫼트링겐 교회에서 목회하였는데, 이때 교제한 신학자중에는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신학으로 신정통주의를 주장한 카를 바르트가 있다. 불름하르트는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가 원인인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고통받는 괴핑엔(Göppingen)의 노동자들과의 사귐을 통해, 민중들에게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느님의 다스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노동악법인 노동자 탄압법에 반대한 독일 사회민주당집회에 참여하게 한다. 당시 불름하르트가 독일 사회민주당 집회에서 한 연설중 일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노동자편에 선 것에 대해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그리스도는 가장 비천한 자에 속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한 것은 그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2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을 그의 제자로 삼았습니다.“누군가 내가 프롤레타리아가 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편에 서는 것을 비난한다면 나의 신앙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인간은 모두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사회참여로 인해 주교회의에서 목사직에서 면직당한 불름하르트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민중들의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사회 민주당 내부적 갈등과 1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어두운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재선에 출마할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1919년 신약성서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문장인“오시옵소서, 주 예수여.아멘”을 유언으로 남기고 별세하였다.



류영모의 삶과 그가 남긴 『다석강의』 - 에큐메니안

다석 류영모는 왜 한국의 철학자인가동서통합의 영성적 철학자 유영모 (1)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5.12 18:59
“경전에 이르기를 ‘지금의 세상에 살면서 옛적의 도(道)로 돌아가면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친다’ 했다.”(한용운)(1)
지난 호까지 나는 독일의 가톨릭 종교철학자 베른하르트 벨터의 사상 전모를 특히 그의 ‘없음’(무) 사상과 관련해 다루어 보았다. 또한 동양의 ‘없음’(무) 사상과 비교하며 글을 마무리 하였다.
이번 글부터는 한국으로 눈을 돌려 한국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나는 오랫동안 여러 각도에서 다석 류영모에 대한 연구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 주제가 분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제가 함축하고 있는 방향과 내용들을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
다석 류영모는 왜 철학자가 아니었나
우선 주제에서 ‘철학적 의미’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말은 지금까지의 한국 철학계의 연구 풍토를 감안할 때 부정적인 배경을 함축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 철학계에서는 아무도 류영모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90년대 들어서 그의 사상의 일부분이 드러나면서 몇몇 학자들이 류영모에 대해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대부분 신학자들이었다.
▲ 다석 류영모 선생님(사진 오른쪽)과 부인 김효정 선생님(가운데), 그리고 제자 박영호 선생님(왼쪽) ⓒGetty Image
그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도 선뜩 그를 철학자로 분류하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그의 일지나 강의 가운데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생각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류영모가 어디에서도 철학적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 ‘사상가’로 분류할 수는 있어도 ‘철학자’로 지칭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 듯싶다.
따라서 ‘다석 류영모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 점이 분명하게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류영모가 남긴 글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잡지에 실린 글은 몇 편 되지도 않고 그나마 그것도 학술지가 아닌 일반 교양지 수준의 잡지에 실렸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는 그의 어록이나 명상록 등은 그가 종로 YMCA 연경반에서 행한 강의들과 그가 거의 매일 기록한 일기들을 기록하고 해설한 것들이다.
그의 일기인 『다석일지』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시 형식으로 쓰여 있다. 대충 한시(漢詩)가 1300편, 우리말 시가 1700편정도 실려 있다. 이 시들은 대부분 짧고 함축적이어서 해설이 없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알아듣기 힘든 형편이다.
류영모의 생각의 큰 얼개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은 그의 강의록이다. 여기서의 강의도 대학이나 학술단체에서의 강의가 아니라 성경연구모임에서 몇몇 사람들을 앞에 놓고 행한 강의일 뿐이다. 이 강의록마저도 그가 준비한 강의원고가 아니고 제자들이 속기사를 시켜 기록하게 한 강의 기록본이다.
이 강의록이 ‘다석어록’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지만 학술적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2)
류영모는 왜 한국 철학자인가
이와 같은 배경이 류영모를 철학자로 간주하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넓은 의미의 사상가는 될지 몰라도 철학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의 일기와 강의록에 심오한 사상의 단편은 있을지 몰라도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류영모 철학’이라고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동안 『다석일지』와 그의 강의록들을 공부하고, 다석의 제자들이 해설해서 펴낸 명상록들과 일지 공부들을 연구하면서 다석의 생각들이 단순히 사상의 편린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하나의 큰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류영모 자신은 신, 우주[세계], 인간에 대해 체계적인 논의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사상들을 좀 더 넓고 깊게 그 함축한 의미를 따라가며 이해하여 해석할 때 다석의 독특한 신론, 우주[세계]론, 인간론을 구축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 동안 나는 이런 작업을 하여 몇 편의 글과 책으로 출간하였다.(3)
따라서 체계적인 이론이 없기 때문에 류영모를 철학자로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 근거가 없는 셈이다.(4)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비록 그가 남긴 글은 하나도 없지만 후대 사람들이 그를 철학자로 연구하는 것은 그의 사상에 나름대로의 이론적인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류영모를 철학자로 내세울 수 있는 근거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류영모는 우리말로 사유하고 철학한 주체적인 한국 철학자다.
2) 그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며 해결하려고 시도한 현대 철학자이다. 우리는 그의 철학에서 시대정신의 반영을 읽어낼 수 있다.
3) 그는 동서 통합의 지구촌 시대에 통합적인 사유로 새로운 신론, 인간론, 생명론을 전개한 세계 철학자이다.
4) 그는 무엇보다도 존재이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인 철학자이다. 있음의 관점이 아닌 없음의 관점에서 현실을 볼 것을 제안한 ‘없음[무]의 형이상학자’이다.
5) 그는 이성중심의 인간관에서 탈피하여 영성중심의 인간관을 제시한 인간학자이다.
6) 그는 생명에서 하늘의 뜻을 볼 것을 제안한 영성가이다.
다음 글부터 나는 좀더 자세하게 위의 주장들을 검토할 것이다.

미주

(미주 1)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이원섭 옮김, 운주사, 1992, 119.
(미주 2) 다석학회는 이 강의 속기록들을 검토하여 믿고 인용할 수 있는 강의록으로 출간하였다. 류영모,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미주 3) 참조 이기상, “태양을 꺼라! 존재중심의 사유로부터의 해방. 다석 사상의 철학사적 의미”, 「인문학 연구」 제4집(1999),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34; “존재에서 성스러움에로! 21세기를 위한 대안적 사상모색 ― 하이데거의 철학과 류영모 사상에 대한 비교연구”, 『인문학과 해석학』(해석학 연구 제8집) (한국해석학회 편) (2001. 10월), 247〜300; “다석 류영모에게서의 텅빔과 성스러움”, 2000년 11월 18일 체코 올로모츠에서 개최된 국제현상학회 발표원고, 『철학과 현상학 연구』제16집 (2001년 6월), 353〜392; “다석 류영모의 인간론. 사이를 나누는 살림지기”, 『씨알의 소리』통권 제174호(2003년 9/10월호), 71〜99; “생명은 웋일름을 따르는 몸사름. 다석 류영모의 생명사상의 영성적 차원”, 『류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의 생명사상 재조명』(오산창립100주년기념 학술세미나 발표집) (2005년 11월 28일), 53〜85;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 살림, 2003;  『다석과 함께 여는 우리말 철학』, 지식산업사, 2003.
(미주 4) 물론 나는 류영모의 인간론, 신론, 생명론 등을 전개하면서 류영모 자신의 말이나 글에 의존하기보다는 그의 말이나 글이 함축하고 있는 차원과 그 지시하고 있는 방향을 고려에 넣어 이론적인 얼개를 구성하였다. 그리하여 혹자는 텍스트를 넘어서는 자의적인 해석에 가깝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많은 철학이론들이 그런 생산적인 대결에서 생겨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류영모의 삶과 그가 남긴 『다석강의』동서통합의 영성적 철학자 유영모 (2)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5.19 19:00
40년을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걸어다닌 사람이 있다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칠성판이라고 하는 죽음의 널판자에서 자고 하루의 시작과 더불어 그 위에서 사색하고 공부하면서 하루를 살다가 밤이 되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다시 죽음의 널 위에서 눈을 감는다. 매일같이 그렇게 하루[할우]를 사는 ‘하루살이’의 삶을 산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류영모의 삶과 연경반(硏經班) 강의
바로 그가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라고 설파하면서 인류의 모든 문제는 식(食)과 색(色)에 달려 있다고 외친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1890〜1981)이다. 그처럼, 그의 주장대로 산다면 21세기 인류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처럼 하루 한 끼니만 먹고 걸어다니면서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정신과 가르침에서 암울한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삶의 지표를 발견할 수 있다.
다석 류영모, 그는 누구인가?(1) 류영모는 어려서는 서당과 소학교에 다녔다. 17세에는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하여 2년 간 수학하였다. 이렇게 그는 서당교육과 신식교육을 아울러 배운 신지식인이었다.
1910년 20세에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고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에 교사로 2년 간 봉직한다. 그 후 일본에 유학 가서 동경 물리학교에 입학하여 1년 간 수학하고 귀국한다. 1921년 31세에 정주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년 간 재직한다.
이때 함석헌과 운명적으로 만나 평생 그의 스승이 된다. 1928년부터 약 35년 간 YMCA에서 성서를 포함한 동서양의 경전을 연구하는 연경반(硏經班) 모임을 지도한다. 1939년 51세의 나이에 깨달음을 얻고 일일일식(一日一食)과 금욕생활을 실천한다.
1955년에 일년 뒤인 1956년 4월 26일에 죽는다는 사망예정일을 선포한다. 일기 『다석일지(多夕日誌)』를 쓰기 시작한다. 1959년 노자 도덕경을 우리말로 완역하고 그밖에도 다른 경전의 중요부분들을 우리말로 옮긴다. 1981년 2월 3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하루살이의 삶이 3만 3천 2백일을 채운 날이다.
2006년에 출간된 책 『다석강의』(2)는 다석이 1956년 10월 17일부터 1957년 9월 13일까지 약 일년 간 YMCA 연경반(硏經班) 모임에서 한 강의를 속기록에 바탕해서 복원한 강의록이다. 다석 강의의 속기록 전문이 출간되기는 처음이다. 이 강의록을 보고 나는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먼저 일 년이 채 안 되는 강의의 기록이 천 쪽 가량의 방대한 분량이라는 사실이다. 서양의 저명한 사상가의 두 학기 강의록에서도 이만한 분량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한국의 무명 양봉가(養蜂家)가 해낸 것이다.
그 다음 그 내용이 그야말로 깊은 사색과 명상, 그리고 엄격한 자기수련에서 갈고 닦아낸 삶의 지혜라는 것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플라톤의 대화록, 공자의 가르침, 간디의 어록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주옥같은 말씀들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타오른다. 35년의 연경반 강의에서 일 년 치 강의만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동서양 종교에 대한 통합적 사유의 길
“이 사람이 『성경』만 먹고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유교의 경전도 먹고 불교의 경(經)들도 먹습니다. 살림이 구차하니 정식으로 먹지 못하고, 구걸하다시피 여기서도 얻어먹고 저기서도 빌어먹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것이나 인도의 것이나 다 먹고 다니는데, 이 사람의 깜냥[消化力]으로 소화시켜 왔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여 내 건강이 별로 상한 일은 없습니다. 『성경』을 보나 유교 경전을 보나 불교의 경을 보나 그리스의 지(智)를 보나 종국은 이 ‘몸성히’, ‘맘뇌어’, ‘뜻태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3)
이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류영모는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아우르는 ‘무엇’인가를 모색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그의 독특한 언어관에 바탕해서 펼쳐나갔다. 그에 의하면, 언어[말]는 하느님의 마루[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류영모는 우리말에 담긴 존재의 소리 또는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어 그것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고유한 인간관, 생명관, 신관을 펼쳐보이려 시도하였다. 따라서 류영모는 우리말로 철학하려 시도한 최초의 한국 사상가인 셈이다.
다석 사상의 뛰어남 가운데 하나는 그 동안 언문, 암글이라고 무시되고 천시받아 온 ‘한글’로서 학문할 수 있고 철학할 수 있음을, 아니 철학해야 함을 보여준 데 있다. 다석은 우리말 속에서 말건네 오고 있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고 믿었다. 바로 우리말 속에 우리의 독특한 삶의 방식, 사유방식, 철학이 들어있음을 강조하였다.
말을 보이게 하면 글이고, 글을 들리게 하면 말이다. 말이 글이요, 글이 말이다. 하느님의 뜻을 담는 신기(神器)요 제기(祭器)이다. 하느님의 마루뜻[宗旨]을 나타내자는 말이요, 하느님을 그리는 뜻[思慕]을 나타내자는 글이다.
“이렇게 몇 자가 분열식을 하면 이 속에 갖출 것 다 갖춘 것 같아요, 말이란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말도 정말 이렇게 되어야 좋은 문학, 좋은 철학이 나오지 지금같이 남에게(외국어) 얻어온 것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 돼요. 글자 한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 있고 말 한 마디에 영원한 진리가 숨겨져 있어요.”(4)
다석은 우주의 영원한 생명줄이 이어 이어 내려와서 지금 여기의 나의 몸에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이제긋’이라고 이름한다. 무한한 생명이 이어져 내려와 그 끄트머리가 나에게까지 닿은 것이 ‘이긋’이고, 이제 그것을 지금 여기의 내가 이어받아 이어나가야 할 끄트머리로 삼을 때 ‘제긋’이다. 이렇게 ‘하나’인 우주생명은 ‘이제긋’으로서 나의 몸에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웋일름[하늘의 뜻]을 따라 하늘로부터 받은 속알[바탈]을 태워 다시 ‘하나’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입니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다니는 것밖에 없습니다.”(5) “‘우’를 쳐다보면서 올라가는 것만이 거룩하게 되는 길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항상 하는 소리입니다.”(6) “이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늘 하나입니다. ‘하나’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가 신입니다. 하늘을 왜 믿습니까? 간단히 ‘하나’를 믿는 것이 옳지 않나요?”(7) “이 사람이 드릴 말씀은 사는 날까지 하느님을 더 알고 더 연구하고 싶고, 덕(德)이라는 것을 더 붙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일 죽더라도 ‘덕’을 붙여 보고 싶습니다.”(8)
우리말로 철학한 최초의 사상가
배움과 말의 관계에 대한 다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배운다는 것은 말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어 사귀게 합니다. 물건과 물건 사이를 설명해주고 밝혀주는 것도 또한 말입니다. 말은 ‘너를 사랑한다’거나 ‘미워한다’ 할 때에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이치상관(理致相關)이라 물건과 물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치를 밝혀주는 것입니다.”(9)
다석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야 실존을 찾아갈 수 있고 하느님도 찾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말씀을 모르고서는 도무지 사람 노릇을 못한다.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 또 말을 알지 못하면 무엇을 갖고 사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 도(道)라는 것도 말의 길을 안다는 것이다.
다석에 의하면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신이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신과 연락하는 것, 곧 신이 건네주는 것이 생각이다. 신이 건네주지 않으면 생각이란 없다. 생각을 한다면 신과 연락이 되어야 한다.(10)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람을 보고 나온다. 거의 들리지 않는 가느다란 소리로 말씀이 나온다. 정말 믿으면 그 사람에게서 말씀이 나온다. 말씀이 나오지 않으면 하느님을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우리가 말씀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결단이 난다. 하느님의 얼이 끊어지면 그렇게 된다. 생각하는 데 하느님이 계시고,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은 짐승이다.(11)
다석은 우리말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계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한자말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별(別) · 의(義) · 친(親) · 정(正)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닳(별) · 옳(의) · 핞(친) · 밣(정)’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야 우리말로 문화예술의 사상을 그릴 수 있습니다. 너무 어려워도 안 되고 간단히 뜻을 나타내야겠는데, 그러한 표식이 없고서는 큰 사상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문으로 적어 놓으면 설명하여야 하고, 자꾸 설명하다 그만두게 됩니다.”(12)
“진 · 선 · 미, 이것도 우리말로는 없습니다. ‘참(眞) · 좋(善) · 곻(美)’으로 나타내면 어떨까 합니다. 이렇게 해놓아야 후세 사람도 그 뜻을 알고 이어서 다시 큰 사상을 담게 되는 것입니다.”(13)
다석은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시험 삼아 말하지만 후에 우리나라 철학이 있게 되면 이 말들이 잘 쓰일 것이라고 예언한다.
“우리 민족에게 철학이 필요하면, 누가 되었건 우리말로 철학 용어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있어서 우리 몸이 있는 것같이, 우리가 쓰는 말도 꼭 필요한 자식처럼 필요한 말이 마침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쓰는 말을 억지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무리가 되더라도 만들어야 할 때는 만들어야 합니다.”(14)

미주

(미주 1) 다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길잡이 글로는 다음과 같은 책이 있다. 박영호, 『씨알.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 홍익재, 1985; 『다석 류영모의 생각과 믿음』, 다석사상전집 1, 문화일보사, 1995;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전2권), 두레, 2001; 박재순, 『다석 유영모. 동서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 철학자』, 현암사, 2008.
(미주 2) 류영모,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현암사, 2006, 975.
(미주 3) 류영모, 『다석강의』, 606.
(미주 4) 박영호,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 하권』, 문화일보 1996, 131/2.
(미주 5) 류영모, 『다석강의』, 607.
(미주 6) 류영모, 『다석강의』, 667.
(미주 7) 류영모, 『다석강의』, 103.
(미주 8) 류영모, 『다석강의』, 110.
(미주 9) 류영모, 『다석강의』, 48/6.
(미주 10) 참조. 류영모, 『다석강의』, 96/7.
(미주 11) 참조. 류영모, 『다석강의』, 100.
(미주 12) 류영모, 『다석강의』, 132.
(미주 13) 류영모, 『다석강의』, 133.
(미주 14) 류영모, 『다석강의』, 678.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2019/05/20

류시화 - 지구 행성에 여행을 온 것이라 믿었다.


류시화 Shiva Ryu
13 hrs ·


지구 행성에 여행을 온 것이라 믿었다. 민들레 홀씨가 미약한 공기의 흐름에도 멀리 날아가듯, 언제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다. 30년 동안 매년 인도를 여행하다 보니 인도인들보다 더 많은 장소를 가 본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부임하는 인도인 외교관들도 내가 방문한 도시와 마을들에 대해 묻곤 한다. 북인도 우타르칸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레와트 씨는 자신의 고향인 가르왈 히말라야 지역에서의 여행 경험을 들려주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끌림은 누구에게나 강렬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를 질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와 만나 생의 교감을 나눴는가는 잘 묻지 않는다. 내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장소들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도.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갠지스강이 발원하는 고산지대에도, 어른거리는 흰 빛뿐인 라자스탄 사막에도,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외길 중턱에 기적처럼 나타나는 찻집에도. 어디나 인간의 삶이 있고, 따뜻한 불길이 타는 부엌이 있고, 자선과 배움이 있었다. 짧은 만남도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인도와 네팔의 웬만한 장소들에 가면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 갈 필요도 없이 나를 반겨 주는 친구들이 있다.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다. 그들은 어느덧 인생의 동지들이다. 우리는 음식과 잠자리뿐 아니라 삶의 크고 작은 애환과 기쁨을 나눈다. 모든 불행의 해결은 신에게 맡기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그들의 인내심, 굳건한 삶의 의지, 그리고 친절함에 놀란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저토록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을까?

델리에 사는 한 타블라 연주가의 아내는 자신의 집을 처음 방문한 나에게 "아비 압 하마레 파리와르 케 헤(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며 두 딸과 함께 쉴 새 없이 온갖 인도 음식을 내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기어코 자기 집에서 나를 묵게 했다. 자신들은 딸들 방에서 함께 자며.

처음 라다크 지역에 갔을 때는 레의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내가 말을 건넬 수도 없이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녀가 꽃을 좋아해 매일 화단을 가꾸는 것을 보고 화초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대화 중에 그녀는 바로 앞집에 사는 시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결국 달리아꽃 만발한 화단 한가운데에서 투숙객이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을 위로하며 껴안아 주는 풍경이 벌어졌다. 그 이후 지금까지 십 년 넘도록 나는 그 게스트하우스의 가족이자 무료 투숙객으로 여름마다 환영받아 왔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의 풍경 사진 옆에, 혹은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 옆에, 당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을 것이다. 사실 장소는 상징에 불과하다. 그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떠올리게 하는 상징 말이다. 당신이 낙천주의자든 염세주의자든, 삶은 인간과의 경이로운 만남들이 정거장처럼 다가오는 긴 여정이 아닐까? 장소들과 함께 당신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엽서 사진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바닷가를 걷고 있던 한 청년이 해변에서 열 개가 넘는 작은 진흙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마치 누군가가 진흙 구슬을 만들어 놀다가 버려두고 간 듯 햇빛에 단단하게 구워져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주워든 청년은 해변을 걸어가며 재미 삼아 하나씩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진흙 덩어리는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 파도 속으로 가라앉았다. 거의 다 던졌을 때쯤 실수로 손에서 떨어뜨린 진흙 구슬 하나가 돌에 부딪히며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놀랍게도 진흙 덩어리 안에 흰 진주 보석이 박혀 있었다. 흥분한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한 개의 진흙 덩어리도 깨 보았다. 그 안에도 역시 눈부신 광채를 지닌 진주 보석이 들어 있었다. 이미 열 개 남짓한 보석은 바다 멀리 던져 버린 후였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삶의 해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와 같다. 우리는 대개 인간을 겉모습으로만 보고 진흙으로 된 육체 속의 보석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멀리 밀어낸다. 겉에 보이는 화려한 모습을 보석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안의 무엇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삶의 예술은 타인 안의 보석을 발견하는 일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러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진흙 덩어리들을 멀리 던져 버렸는가가 아니라, 사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보석을 발견했는가일 것이다.


art credit_Amitesh Chandra, Lada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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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Jung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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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Jung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Carl Jung

A portrait of Jung, unknown date
Born
Carl Gustav Jung
26 July 1875

Kesswil, Thurgau, Switzerland
Died 6 June 1961 (aged 85)

Küsnacht, Zürich, Switzerland
Alma mater University of Basel
Known for 

Influenced Joseph Campbell, Hermann Hesse, Erich Neumann, Ross Nichols, Alan Watts, Jordan Peterson[2], Terence McKenna, Gaston Bachelard[3]
Signature


Part of a series of articles on
Psycho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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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rtant works[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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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ning[show]

Psychology portal


v
t
e


Carl Gustav Jung (/jʊŋ/;[4] German: [jʊŋ]; 26 July 1875 – 6 June 1961) was a Swisspsychiatrist and psychoanalyst who founded analytical psychology.

Jung's work was influential in the fields of psychiatry, anthropology, archaeology, literature, philosophy, and religious studies. Jung worked as a research scientist at the famous Burghölzli hospital, under Eugen Bleuler. During this time, he came to the attention of Sigmund Freud, the founder of psychoanalysis. The two men conducted a lengthy correspondence and collaborated, for a while, on a joint vision of human psychology.

Freud saw the younger Jung as the heir he had been seeking to take forward his "new science" of psychoanalysis and to this end secured his appointment as President of his newly founded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
Jung's research and personal vision, however, made it impossible for him to bend to his older colleague's doctrine, and a schism became inevitable. This division was personally painful for Jung, and it was to have historic repercussions lasting well into the modern day.

Among the central concepts of analytical psychology is individuation—the lifelong psychological process of differentiation of the self out of each individual's conscious and unconscious elements. Jung considered it to be the main task of human development. He created some of the best known psychological concepts, including synchronicity, archetypal phenomena, the collective unconscious, the psychological complex, and extraversion and introversion.

Jung was also an artist, craftsman and builder as well as a prolific writer. Many of his works were not published until after his death and some are still awaiting publication.


Contents




Biography[edit]

Early years[edit]
Childhood[edit]

The clergy house in Kleinhüningen, Basel where Jung grew up

Carl Gustav Jung[a] was born in Kesswil, in the Swiss canton of Thurgau, on 26 July 1875 as the second and first surviving son of Paul Achilles Jung (1842–1896) and Emilie Preiswerk (1848–1923). Their first child, born in 1873, was a boy named Paul who survived only a few days.[5][6]Being the youngest son of a noted Basel physician of German descent, also called Karl Gustav Jung (1794–1864), whose hopes of achieving a fortune never materialised, Paul Jung did not progress beyond the status of an impoverished rural pastor in the Swiss Reformed Church; his wife had also grown up in a large family, whose Swiss roots went back five centuries. Emilie was the youngest child of a distinguished Basel churchman and academic, Samuel Preiswerk [de] (1799–1871), and his second wife. Preiswerk was antistes, the title given to the head of the Reformed clergy in the city, as well as a Hebraist, author and editor, who taught Paul Jung as his professor of Hebrew at Basel University.[7]

When Jung was six months old, his father was appointed to a more prosperous parish in Laufen, but the tension between his parents was growing. Emilie Jung was an eccentric and depressed woman; she spent considerable time in her bedroom where she said that spirits visited her at night.[8] Although she was normal during the day, Jung recalled that at night his mother became strange and mysterious. He reported that one night he saw a faintly luminous and indefinite figure coming from her room with a head detached from the neck and floating in the air in front of the body. Jung had a better relationship with his father.[8]

Jung's mother left Laufen for several months of hospitalization near Basel for an unknown physical ailment. His father took the boy to be cared for by Emilie Jung's unmarried sister in Basel, but he was later brought back to his father's residence. Emilie Jung's continuing bouts of absence and depression deeply troubled her son and caused him to associate women with "innate unreliability", whereas "father" meant for him reliability but also powerlessness.[9] In his memoir, Jung would remark that this parental influence was the "handicap I started off with. Later, these early impressions were revised: I have trusted men friends and been disappointed by them, and I have mistrusted women and was not disappointed."[10] After three years of living in Laufen, Paul Jung requested a transfer. In 1879 he was called to Kleinhüningen, next to Basel, where his family lived in a parsonage of the church.[11] The relocation brought Emilie Jung closer into contact with her family and lifted her melancholy.[12] When he was nine years old, Jung's sister Johanna Gertrud (1884–1935) was born. Known in the family as "Trudi", she later became a secretary to her brother.[13]
Memories of childhood[edit]

Jung was a solitary and introverted child. From childhood, he believed that, like his mother,[14] he had two personalities—a modern Swiss citizen and a personality more suited to the 18th century.[15] "Personality Number 1", as he termed it, was a typical schoolboy living in the era of the time. "Personality Number 2" was a dignified, authoritative and influential man from the past. Although Jung was close to both parents, he was disappointed by his father's academic approach to faith.[16]

A number of childhood memories made lifelong impressions on him. As a boy, he carved a tiny mannequin into the end of the wooden ruler from his pencil case and placed it inside the case. He added a stone, which he had painted into upper and lower halves, and hid the case in the attic. Periodically, he would return to the mannequin, often bringing tiny sheets of paper with messages inscribed on them in his own secret language.[17] He later reflected that this ceremonial act brought him a feeling of inner peace and security. Years later, he discovered similarities between his personal experience and the practices associated with totems in indigenous cultures, such as the collection of soul-stones near Arlesheim or the tjurungas of Australia. 

He concluded that his intuitive ceremonial act was an unconscious ritual, which he had practiced in a way that was strikingly similar to those in distant locations which he, as a young boy, knew nothing about.[18] His observations about symbols,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were inspired, in part, by these early experiences combined with his later research.[19][20]

At the age of 12, shortly before the end of his first year at the Humanistisches Gymnasiumin Basel, Jung was pushed to the ground by another boy so hard that he momentarily lost consciousness. (Jung later recognized that the incident was indirectly his fault.) A thought then came to him—"now you won't have to go to school anymore."[21] From then on, whenever he walked to school or began homework, he fainted. He remained at home for the next six months until he overheard his father speaking hurriedly to a visitor about the boy's future ability to support himself. They suspected he had epilepsy. Confronted with the reality of his family's poverty, he realized the need for academic excellence. He went into his father's study and began poring over Latin grammar. He fainted three more times but eventually overcame the urge and did not faint again. This event, Jung later recalled, "was when I learned what a neurosis is."[22]


University studies and early career[edit]

Initially, Jung had aspirations of becoming a preacher or minister in his early life. There was a strong moral sense in his household and several of his family members were clergymen as well. After studying philosophy in his teens, Jung decided against the path of religious traditionalism and decided instead to pursue psychiatry and medicine.[23] His interest was immediately captured—it combined the biological and the spiritual, exactly what he was searching for.[24] In 1895 Jung began to study medicine at the University of Basel. Barely a year later in 1896, his father Paul died and left the family near destitute. They were helped out by relatives who also contributed to Jung's studies.[25] During his student days, he entertained his contemporaries with the family legend, that his paternal grandfather was the illegitimate son of Goethe and his German great-grandmother, Sophie Ziegler. In later life, he pulled back from this tale, saying only that Sophie was a friend of Goethe's niece.[26]

In 1900, Jung moved to Zürich and began working at the Burghölzli psychiatric hospital under Eugen Bleuler.[27] Bleuler was already in communication with the Austrian neurologist Sigmund Freud. Jung's dissertation, published in 1903, was titled On the Psychology and Pathology of So-Called Occult Phenomena. In 1905 Jung was appointed as a permanent 'senior' doctor at the hospital and also became a lecturer Privatdozent in the medical faculty of Zurich University.[28] In 1906 he published Diagnostic Association Studies, which Freud obtained a copy of.[29] In 1909, Jung left the psychiatric hospital and began a private practice in his home in Küsnacht.[30]

Eventually a close friendship and a strong professional association developed between the elder Freud and Jung, which left a sizeable correspondence. For six years they cooperated in their work. In 1912, however, Jung published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which made manifest the developing theoretical divergence between the two. Consequently, their personal and professional relationship fractured—each stating that the other was unable to admit he could possibly be wrong. After the culminating break in 1913, Jung went through a difficult and pivotal psychological transformation, exacerbated by the outbreak of the First World War. Henri Ellenberger called Jung's intense experience a "creative illness" and compared it favorably to Freud's own period of what he called neurasthenia and hysteria.[31]:173

Marriage[edit]

In 1903, Jung married Emma Rauschenbach, seven years his junior and the elder daughter of a wealthy industrialist in eastern Switzerland, Johannes Rauschenbach-Schenck, and his wife.[32] Rauschenbach was the owner, among other concerns, of IWC Schaffhausen—the International Watch Company, manufacturers of luxury time-pieces. Upon his death in 1905, his two daughters and their husbands became owners of the business. Jung's brother-in-law—Ernst Homberger—became the principal proprietor, but the Jungs remained shareholders in a thriving business that ensured the family's financial security for decades.[33] Emma Jung, whose education had been limited, evinced considerable ability and interest in her husband's research and threw herself into studies and acted as his assistant at Burghölzli. She eventually became a noted psychoanalyst in her own right. They had five children: Agathe, Gret, Franz, Marianne, and Helene. The marriage lasted until Emma's death in 1955.[34]

During his marriage, Jung engaged in extramarital relationships. His alleged affairs with Sabina Spielrein[35] and Toni Wolff[36] were the most widely discussed. Though it was mostly taken for granted that Jung's relationship with Spielrein included a sexual relationship, this assumption has been disputed, in particular by Henry Zvi Lothane.[37][38]

Wartime army service[edit]

During World War I, Jung was drafted as an army doctor and soon made commandant of an internment camp for British officers and soldiers. The Swiss were neutral, and obliged to intern personnel from either side of the conflict who crossed their frontier to evade capture. Jung worked to improve the conditions of soldiers stranded in Switzerland and encouraged them to attend university courses.[39][40]


Relationship with Freud[edit]
See also: Psychoanalysis
Meeting and collaboration[edit]

Jung was thirty when he sent his Studies in Word Association to Sigmund Freud in Viennain 1906. The two men met for the first time the following year and Jung recalled the discussion between himself and Freud as interminable. He recalled that they talked almost unceasingly for thirteen hours.[41] Six months later, the then 50-year-old Freud sent a collection of his latest published essays to Jung in Zurich. This marked the beginning of an intense correspondence and collaboration that lasted six years and ended in May 1913.[42]At that time Jung resigned as the chairman of the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 a position to which he had been elected with Freud's support.

Group photo 1909 in front of Clark University. Front row, Sigmund Freud, G. Stanley Hall, Carl Jung. Back row, Abraham Brill, Ernest Jones, Sándor Ferenczi.

Jung and Freud influenced each other during the intellectually formative years of Jung's life. Jung had become interested in psychiatry as a student by reading Psychopathia Sexualis by Richard von Krafft-Ebing. In 1900, Jung completed his degree, and started work as an intern (voluntary doctor) under the psychiatrist, Eugen Bleuler at Burghölzli Hospital.[43] It was Bleuler who introduced him to the writings of Freud by asking him to write a review of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1899). In the early 1900s psychology as a science was still in its early stages, but Jung became a qualified proponent of Freud's new "psycho-analysis." At the time, Freud needed collaborators and pupils to validate and spread his ideas. Burghölzli was a renowned psychiatric clinic in Zurich and Jung's research had already gained him international recognition. In 1906 he published Diagnostic Association Studies, and later sent a copy of this book to Freud—who had already bought a copy.[29] Preceded by a lively correspondence, Jung met Freud for the first time, in Vienna on 3 March 1907.[44] In 1908, Jung became an editor of the newly founded Yearbook for Psychoanalytical and Psychopathological Research.

In 1909, Jung travelled with Freud and Hungarian psychoanalyst Sándor Ferenczi to the United States; they took part in a conference at Clark University in Worcester, Massachusetts. The conference at Clark University was planned by the psychologist G. Stanley Hall and included twenty-seven distinguished psychiatrists, neurologists and psychologists. It represented a watershed in the acceptance of psychoanalysis in North America. This forged welcome links between Jung and influential Americans.[45] Jung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the next year for a brief visit.

In 1910 Freud proposed Jung, "his adopted eldest son, his crown prince and successor," for the position of life-time President of the newly formed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Association. However, after forceful objections from his Viennese colleagues, it was agreed Jung would be elected to serve a two-year term of office. [46]


Divergence and break[edit]

Jung outside Burghölzli in 1910

While Jung worked on his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a study of the transformations and symbolisms of the libido, tensions manifested between him and Freud because of various disagreements, including those concerning the nature of libido.[47] Jung de-emphasized the importance of sexual development and focused on the collective unconscious: the part of the unconscious that contains memories and ideas that Jung believed were inherited from ancestors. While he did think that libido was an important source for personal growth, unlike Freud, Jung did not believe that libido alone was responsible for the formation of the core personality.[48] Jung believed his personal development was influenced by factors he felt were unrelated to sexuality.

In 1912 these tensions came to a peak because Jung felt severely slighted after Freud visited his colleague Ludwig Binswanger in Kreuzlingen without paying him a visit in nearby Zurich, an incident Jung referred to as "the Kreuzlingen gesture". Shortly thereafter, Jung again traveled to the United States and gave the Fordham University lectures, a six-week series, which were published later in the year as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a study of the transformations and symbolisms of the libido, (subsequently republished as Symbols of Transformation). While they contain some remarks on Jung's dissenting view on the libido, they represent largely a "psychoanalytical Jung" and not the theory of analytical psychology, for which he became famous in the following decades. Nonetheless it was their publication which, Jung declared, “cost me my friendship with Freud”.[49]

Another primary disagreement with Freud stemmed from their differing concepts of the unconscious.[50] Jung saw Freud's theory of the unconscious as incomplete and unnecessarily negative and inelastic. According to Jung, Freud conceived the unconscious solely as a repository of repressed emotions and desires.[51] Jung's observations overlap to an extent with Freud's model of the unconscious, what Jung called the "personal unconscious", but his hypothesis is more about a process than a static model and he also proposed the existence of a second, overarching form of the unconscious beyond the personal, that he named the psychoid—a term borrowed from Driesch, but with a somewhat altered meaning.[52] The collective unconscious is not so much a 'geographical location', but a deduction from the alleged ubiquity of archetypes over space and time. Freud had actually mentioned a collective level of psychic functioning but saw it primarily as an appendix to the rest of the psyche.[citation needed]

In November 1912, Jung and Freud met in Munich for a meeting among prominent colleagues to discuss psychoanalytical journals.[53] At a talk about a new psychoanalytic essay on Amenhotep IV, Jung expressed his views on how it related to actual conflicts in the psychoanalytic movement. While Jung spoke, Freud suddenly fainted and Jung carried him to a couch.[54]

Jung and Freud personally met for the last time in September 1913 for the Fourth International Psychoanalytical Congress in Munich. Jung gave a talk on psychological types, the introverted and extraverted type in analytical psychology. This constituted the introduction of some of the key concepts which came to distinguish Jung's work from Freud's in the next half century.
Midlife isolation[edit]

It was the publication of Jung's book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in 1912 that led to the break with Freud. Letters they exchanged show Freud's refusal to consider Jung's ideas. This rejection caused what Jung described in his (posthumous) 1962 autobiography, Memories, Dreams, Reflections, as a "resounding censure". Everyone he knew dropped away except for two of his colleagues. Jung described his book as "an attempt, only partially successful, to create a wider setting for medical psychology and to bring the whole of the psychic phenomena within its purview." The book was later revised and retitled Symbols of Transformation in 1922.

London 1913–14[edit]

Jung spoke at meetings of the Psycho-Medical Society in London in 1913 and 1914. His travels were soon interrupted by the war, but his ideas continued to receive attention in England primarily through the efforts of Constance Long who translated and published the first English volume of his collected writings.[55][56]

The Red Book[edit]

In 1913, at the age of thirty-eight, Jung experienced a horrible "confrontation with the unconscious". He saw visions and heard voices. He worried at times that he was "menaced by a psychosis" or was "doing a schizophrenia". He decided that it was valuable experience and, in private, he induced hallucinations or, in his words, "active imaginations". He recorded everything he felt in small journals. Jung began to transcribe his notes into a large red leather-bound book, on which he worked intermittently for sixteen years.[57]

Jung left no posthumous instructions about the final disposition of what he called the Liber Novus or the Red Book. Sonu Shamdasani, a historian of psychology from London, tried for three years to persuade Jung's resistant heirs to have it published. Up to mid-September 2008, fewer than two dozen people had seen it. Ulrich Hoerni, Jung's grandson who manages the Jung archives, decided to publish it to raise the additional funds needed when the Philemon Foundation was founded.[57]

In 2007, two technicians for DigitalFusion, working with New York City publishers W. W. Norton & Company, scanned the manuscript with a 10,200-pixel scanner. It was published on 7 October 2009, in German with a "separate English translation along with Shamdasani's introduction and footnotes" at the back of the book, according to Sara Corbett for The New York Times. She wrote, "The book is bombastic, baroque and like so much else about Carl Jung, a willful oddity, synched with an antediluvian and mystical reality."[57]

The Rubin Museum of Art in New York City displayed the original Red Book journal, as well as some of Jung's original small journals, from 7 October 2009 to 15 February 2010.[58] According to them, "During the period in which he worked on this book Jung developed his principal theories of archetypes, collective unconscious, and the process of individuation." Two-thirds of the pages bear Jung's illuminations of the text.[58]

Travels[edit]

Jung emerged from his period of isolation in the late nineteen-teens with the publication of several journal articles, followed in 1921 with Psychological Types, one of his most influential books. There followed a decade of active publication, interspersed with overseas travels.

England (1920, 1923, 1925, 1938)[edit]

Constance Long arranged for Jung to deliver a seminar in Cornwall in 1920. Another seminar was held in 1923, this one organized by Helton Godwin Baynes (known as Peter), and another in 1925.[59]

In 1938, Jung was awarded with an honorary degree from Oxford.[60] At the tenth International Medical Congress for Psychotherapy held at Oxford from 29 July to 2 August 1938, Jung gave the presidential address, followed by a visit to Cheshire to stay with the Bailey family at Lawton Mere.

United States 1909–12, 1924–25, 1936–37[edit]

During the period of Jung's collaboration with Freud, both visited the US in 1909 to lecture at Clark University, Worcester, Massachusetts[45] where both were awarded honorary degrees. In 1912 Jung gave a series of lectures at Fordham University, New York which were published later in the year as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61] Jung made a more extensive trip westward in the winter of 1924–5, financed and organized by Fowler McCormick and George Porter. Of particular value to Jung was a visit with Chief Mountain Lake of the Taos Pueblo near Taos, New Mexico.[59] Jung made another trip to America in 1936, giving lectures in New York and New England for his growing group of American followers. He returned in 1937 to deliver the Terry Lectures at Yale University, later published as Psychology and Religion.[62]

East Africa[edit]

In October 1925, Jung embarked on his most ambitious expedition, the "Bugishu Psychological Expedition" to East Africa. He was accompanied by Peter Baynes and an American associate, George Beckwith. On the voyage to Africa, they became acquainted with an English woman named Ruth Bailey, who joined their safari a few weeks later. The group traveled through Kenya and Uganda to the slopes of Mount Elgon, where Jung hoped to increase his understanding of "primitive psychology" through conversations with the culturally isolated residents of that area. Later he concluded that the major insights he had gleaned had to do with himself and the European psychology in which he had been raised.[63][64]

India[edit]

In December 1937, Jung left Zurich again for an extensive tour of India with Fowler McCormick. In India, he felt himself "under the direct influence of a foreign culture" for the first time. In Africa, his conversations had been strictly limited by the language barrier, but in India he was able to converse extensively. Hindu philosophy became an important element in his understanding of the role of symbolism and the life of the unconscious, though he avoided a meeting with Ramana Maharshi. He described Ramana as being absorbed in "the self", but admitted to not understanding Ramana's self-realization or what he actually did do. He also admitted that his field of psychology was not competent to understand the eastern insight of the Atman "the self". Jung became seriously ill on this trip and endured two weeks of delirium in a Calcutta hospital. After 1938, his travels were confined to Europe.[65]

Later years and death[edit]

Jung became a full professor of medical psychology at the University of Basel in 1943, but resigned after a heart attack the next year to lead a more private life. He became ill again in 1952.[66]

C. G. Jung Institute, Küsnacht, Switzerland

Jung continued to publish books until the end of his life, including Flying Saucers: A Modern Myth of Things Seen in the Skies (1959), which analyzed the archetypal meaning and possible psychological significance of the reported observations of UFOs.[67] He also enjoyed a friendship with an English Roman Catholic priest, Father Victor White, who corresponded with Jung after he had published his controversial Answer to Job.[68]

In 1961, Jung wrote his last work, a contribution to Man and His Symbols entitled "Approaching the Unconscious" (published posthumously in 1964).[66] Jung died on 6 June 1961 at Küsnacht after a short illness.[31]:450[69] He had been beset by circulatory diseases.[70]

Thought

Jung's thought was formed by early family influences, which on the maternal side were a blend of
interest in the occult and in solid reformed academic theology. 

On his father's side were two important figures, his grandfather the physician and academic scientist, Karl Gustav Jung and the family's actual connection with Lotte Kestner, the niece of the German polymath, Johann Wolfgang Goethe' s "Löttchen".[71] 

Although he was a practicing clinician and writer and as such founded analytical psychology, much of his life's work was spent exploring related areas such as physics, vitalism,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y, alchemy, astrology, and sociology, as well as literature and the arts

Jung's interest in philosophy and the occult led many to view him as a mystic, although his preference was to be seen as a man of science.[72]

Key concepts[edit]

The major concepts of analytical psychology as developed by Jung include:[73]

  • Archetype – a concept "borrowed" from anthropology to denote supposedly universal and recurring mental images or themes. Jung's definitions of archetypes varied over time and have been the subject of debate as to their usefulness.

  • Archetypal imagesuniversal symbols that can mediate opposites in the psyche, often found in religious art, mythology and fairy tales across cultures

  • Complex – the repressed organisation of images and experiences that governs perception and behaviour

  • Extraversion and introversion – personality traits of degrees of openness or reserve contributing to psychological type.[74]

  • Shadow – the repressed, therefore unknown, aspects of the personality including those often considered to be negative

  • Collective unconscious – aspects of unconsciousness experienced by all people in different cultures

  • Anima – the contrasexual aspect of a man's psyche, his inner personal feminine conceived both as a complex and an archetypal image

  • Animus – the contrasexual aspect of a woman's psyche, her inner personal masculine conceived both as a complex and an archetypal image

  • Self – the central overarching concept governing the individuation process, as symbolised by mandalas, the union of male and female, totality, unity. Jung viewed it as the psyche's central archetype

  • Individuation – the process of fulfilment of each individual "which negates neither the conscious or unconscious position but does justice to them both".[75]

  • Synchronicity – an acausal principle as a basis for the apparently random simultaneous occurrence of phenomena.[76]


Extraversion and introversion[edit]

Main article: Extraversion and introversion

Jung was one of the first people to define introversion and extraversion in a psychological context. In Jung's Psychological Types, he theorizes that each person falls into one of two categories, the introvert and the extravert. These two psychological types Jung compares to ancient archetypes,
Apollo and Dionysus

The introvert is likened with Apollo, who shines light on understanding. The introvert is focused on the internal world of reflection, dreaming and vision. Thoughtful and insightful, the introvert can sometimes be uninterested in joining the activities of others.

The extravert is associated with Dionysus, interested in joining the activities of the world. The extravert is focused on the outside world of objects, sensory perception and action. 

Energetic and lively, the extravert may lose their sense of self in the intoxication of Dionysian pursuits.[77] 

Jungian introversion and extraversion is quite different from the modern idea of introversion and extraversion.[78]
Modern theories often stay true to behaviourist means of describing such a trait (sociability, talkativeness, assertiveness etc.) whereas Jungian introversion and extraversion is expressed as a perspective: introverts interpret the world subjectively, whereas extraverts interpret the world objectively.[79]

Persona[edit]
See also: persona (psychology)

In his psychological theory – which is not necessarily linked to a particular theory of social structure – the persona appears as a
consciously created personality or identity, fashioned out of part of the collective psyche through socialization, acculturation and experience.[80]Jung applied the term persona, explicitly because, in Latin, it means both personality and the masks worn by Roman actors of the classical period, expressive of the individual roles played.

The persona, he argues, is a mask for the "collective psyche"
a mask that 'pretends' individuality, so that both self and others believe in that identity, even if it is really no more than a well-played role through which the collective psyche is expressed. 

Jung regarded the "persona-mask" as a complicated system which mediates between individual consciousness and the social community: it is "a compromise between the individual and society as to what a man should appear to be".[81] 
But he also makes it quite explicit that it is, in substance, a character mask in the classical sense known to theatre, with its double function: both intended to make a certain impression on others, and to hide (part of) the true nature of the individual.[82] The therapist then aims to assist the individuation process through which the client (re)gains their "own self" – by liberating the self, both from the deceptive cover of the persona, and from the power of unconscious impulses.

Jung has become enormously influential in management theory; not just because managers and executives have to create an appropriate "management persona" (a corporate mask) and a persuasive identity,[83] but also because they have to evaluate what sort of people the workers are, in order to manage them (for example, using
personality tests and peer reviews).[84]

Spirituality[edit]

Jung's work on himself and his patients convinced him that
life has a spiritual purpose beyond material goals.[85][86] Our main task, he believed, is to discover and fulfill our deep, innate potential. 

Based on his study of Christianity, Hinduism, Buddhism, Gnosticism, Taoism, and other traditions, Jung believed that this journey of transformation, which he called individuation, is at the mystical heart of all religions. 
It is a journey to meet the self and at the same time to meet the Divine.[87]

Unlike Freud's objectivist worldview, Jung's pantheism may have led him to believe that spiritual experience was essential to our well-being, as he specifically identifies individual human life with the universe as a whole.[88][89]Jung's ideas on religion counterbalance Freudian skepticism. Jung's idea of religion as a practical road to individuation is still treated in modern textbooks on the psychology of religion, though his ideas have also been criticized.[90]

Jung recommended spirituality as a cure for alcoholism, and he is considered to have had an indirect role in establishing Alcoholics Anonymous.[91]
Jung once treated an American patient (Rowland Hazard III), suffering from chronic alcoholism. After working with the patient for some time and achieving no significant progress, Jung told the man that his alcoholic condition was near to hopeless, save only the possibility of a spiritual experience. Jung noted that, occasionally, such experiences had been known to reform alcoholics when all other options had failed.

Hazard took Jung's advice seriously and set about seeking a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He returned home to the United States and joined a First-Century Christianevangelical movement known as the Oxford Group (later known as Moral Re-Armament). He also told other alcoholics what Jung had told him about the importance of a spiritual experience. One of the alcoholics he brought into the Oxford Group was Ebby Thacher, a long-time friend and drinking buddy of Bill Wilson, later co-founder of Alcoholics Anonymous (AA). Thacher told Wilson about the Oxford Group and, through them, Wilson became aware of Hazard's experience with Jung. The influence of Jung thus indirectly found its way into the formation of Alcoholics Anonymous, the original twelve-step program.

The above claims are documented in the letters of Jung and Bill Wilson, excerpts of which can be found in Pass It On, published by Alcoholics Anonymous.[92] Although the detail of this story is disputed by some historians, Jung himself discussed an Oxford Group member, who may have been the same person, in talks given around 1940. The remarks were distributed privately in transcript form, from shorthand taken by an attender (Jung reportedly approved the transcript), and later recorded in Volume 18 of his Collected Works, The Symbolic Life,


For instance, when a member of the Oxford Group comes to me in order to get treatment, I say, 'You are in the Oxford Group; so long as you are there, you settle your affair with the Oxford Group. I can't do it better than Jesus.[93]

Jung goes on to state that he has seen similar cures among Roman Catholics.


Paranormal beliefs

Jung had an apparent interest in the paranormal and occult. For decades he attended seances and claimed to have witnessed "parapsychic phenomena". Initially he attributed these to psychological causes, even delivering 1919 lecture in England for 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on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for the belief in spirits".[94]However, he began to "doubt whether an exclusively psychological approach can do justice to the phenomena in question"[94] and stated that "the spirit hypothesis yields better results".[95]

Jung's ideas about the paranormal culminated in "synchronicity", his idea that meaningful connections in the world manifest through coincidence with no apparent causal link. What he referred to as “acausal connecting principle”.[96] Despite his own experiments failing to confirm the phenomenon[97] he held on to the idea as an explanation for apparent ESP.[98]As well as proposing it as a functional explanation for how the I-Ching worked, although he was never clear about how synchronicity worked.[99]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edit]

Jung influenced one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not the science) of quantum physics with the concept of synchronicity regarding some events as non-causal. That idea influenced the physicist Wolfgang Pauli (with whom, via a letter correspondence, he developed the notion of unus mundus in connection with the notion of nonlocality) and some other physicists.[100]

Alchemy[edit]

The work and writings of Jung from the 1940s onwards focused on alchemy.

In 1944 Jung published Psychology and Alchemy, in which he analyzed the alchemical symbols and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re is a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m and the psychoanalytical process.[b] He argued that the alchemical process was the transformation of the impure soul (lead) to perfected soul (gold), and a metaphor for the individuation process.[24]

In 1963 Mysterium Coniunctionis first appeared in English as part of 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Mysterium Coniunctionis was Jung's last book and focused on the "Mysterium Coniunctionis" archetype, known as the sacred marriage between sun and moon. Jung argued that the stages of the alchemists, the blackening, the whitening, the reddening and the yellowing, could be taken as symbolic of individuation — his favourite term for personal growth (75).

Art therapy[edit]

Jung proposed that art can be used to alleviate or contain feelings of trauma, fear, or anxiety and also to repair, restore and heal.[17] In his work with patients and in his own personal explorations, Jung wrote that art expression and images found in dreams could be helpful in recovering from trauma and emotional distress. At times of emotional distress, he often drew, painted, or made objects and constructions which he recognized as more than recreational.[17]

Dance/movement therapy[edit]

Dance/movement therapy as an active imagination was created by C.G. Jung and Toni Wolff in 1916[101] and was practiced by Tina Keller-Jenny and other analysts, but remained largely unknown until the 1950s when it was rediscovered by Marian Chace and therapist Mary Whitehouse, who after studying with Martha Graham and Mary Wigman, became herself a dancer and dance teacher of modern dance,[102] as well as Trudy Schoop in 1963, who is considered one of the founders of the dance/movement therapy in the United States.


Political views[edit]

Views on the state[edit]

Jung stressed the importance of individual rights in a person's relation to the state and society. He saw that the state was treated as "a quasi-animate personality from whom everything is expected" but that this personality was "only camouflage for those individuals who know how to manipulate it",[103] and referred to the state as a form of slavery.[104][105][106][107] He also thought that the state "swallowed up [people's] religious forces",[108] and therefore that the state had "taken the place of God"—making it comparable to a religion in which "state slavery is a form of worship".[106] Jung observed that "stage acts of [the] state" are comparable to religious displays: "Brass bands, flags, banners, parades and monster demonstrations are no different in principle from ecclesiastical processions, cannonades and fire to scare off demons".[109] From Jung's perspective, this replacement of God with the state in a mass society leads to the dislocation of the religious drive and results in the same fanaticism of the church-states of the Dark Ages—wherein the more the state is 'worshipped', the more freedom and morality are suppressed;[110] this ultimately leaves the individual psychically undeveloped with extreme feelings of marginalization.[111]
Germany, 1933 to 1939[edit]

Jung had many friends and respected colleagues who were Jewish and he maintained relations with them through the 1930s when anti-semitism in Germany and other European nations was on the rise. However, until 1939, he also maintained professional relations with psychotherapists in Germany who had declared their support for the Nazi regime and there were allegations that he himself was a Nazi sympathizer.

In 1933, after the Nazis gained power in Germany, Jung took part in restructuring of the General Medical Society for Psychotherapy (Allgemeine Ärztliche Gesellschaft für Psychotherapie), a German-based professional body with an international membership. The society was reorganized into two distinct bodies:
A strictly German body, the Deutsche Allgemeine Ärztliche Gesellschaft für Psychotherapie, led by Matthias Göring, an Adlerian psychotherapist[112] and a cousin of the prominent Nazi Hermann Göring
International General Medical Society for Psychotherapy, led by Jung. The German body was to be affiliated to the international society, as were new national societies being set up in Switzerland and elsewhere.[113]

The International Society's constitution permitted individual doctors to join it directly, rather than through one of the national affiliated societies, a provision to which Jung drew attention in a circular in 1934.[114] This implied that German Jewish doctors could maintain their professional status as individual members of the international body, even though they were excluded from the German affiliate, as well as from other German medical societies operating under the Nazis.[115]

As leader of the international body, Jung assumed overall responsibility for its publication, the Zentralblatt für Psychotherapie. In 1933, this journal published a statement endorsing Nazi positions[116] and Hitler's book Mein Kampf.[117] In 1934, Jung wrote in a Swiss publication, the Neue Zürcher Zeitung, that he experienced "great surprise and disappointment"[118] when the Zentralblatt associated his name with the pro-Nazi statement.

Jung went on to say "the main point is to get a young and insecure science into a place of safety during an earthquake".[119] He did not end his relationship with the Zentralblatt at this time, but he did arrange the appointment of a new managing editor, Carl Alfred Meierof Switzerland. For the next few years, the Zentralblatt under Jung and Meier maintained a position distinct from that of the Nazis, in that it continued to acknowledge contributions of Jewish doctors to psychotherapy.[120] In the face of energetic German attempts to Nazify the international body, Jung resigned from its presidency in 1939,[120] the year the Second World War started.

Anti-Semitism and Nazism[edit]

Jung's interest in European mythology and folk psychology has led to accusations of Nazi sympathies, since they shared the same interest.[121][122][54] He became, however, aware of the negative impact of these similarities:


Jung clearly identifies himself with the spirit of German Volkstumsbewegungthroughout this period and well into the 1920s and 1930s, until the horrors of Nazism finally compelled him to reframe these neopagan metaphors in a negative light in his 1936 essay on Wotan.[123]

There are writings showing that Jung's sympathies were against, rather than for, Nazism.[c]In his 1936 essay "Wotan", Jung described the influence of Hitler on Germany as "one man who is obviously 'possessed' has infected a whole nation to such an extent that everything is set in motion and has started rolling on its course towards perdition."[124][125]

Jung would later say that:


Hitler seemed like the 'double' of a real person, as if Hitler the man might be hiding inside like an appendix, and deliberately so concealed in order not to disturb the mechanism ... You know you could never talk to this man; because there is nobody there ... It is not an individual; it is an entire nation.[126]

In an interview with Carol Baumann in 1948, Jung denied rumors regarding any sympathy for the Nazi movement, saying:


It must be clear to anyone who has read any of my books that I have never been a Nazi sympathizer and I never have been anti-Semitic, and no amount of misquotation, mistranslation, or rearrangement of what I have written can alter the record of my true point of view. Nearly every one of these passages has been tampered with, either by malice or by ignorance. Furthermore, my friendly relations with a large group of Jewish colleagues and patients over a period of many years in itself disproves the charge of anti-Semitism.[127][d]

Others have argued contrary to this, with reference to his writings, correspondence and public utterances of the 1930s.[128] Attention has been drawn to articles Jung published in the Zentralblatt fur Psychotherapie stating: “The Aryan unconscious has a greater potential than the Jewish unconscious” and "The Jew, who is something of a nomad, has never yet created a cultural form of his own and as far as we can see never will".[129] His remarks on the qualities of the "Aryan unconscious" and the “corrosive character” of Freud's “Jewish gospel” have been cited as evidence of an anti-semitism “fundamental to the structure of Jung’s thought”.[130] However, Aniela Jaffé says that such sentences must be put in the context of the many positive statements Jung made about Jews and Judaism,[131] and that the above quoted claims were framed by his argument that Jews are a "race with a three-thousand year civilization", while "Aryans" were race with a "youthfulness not yet weaned from barbarism."[131] Jung saw the former as "possessing the inestimable advantage of greater consciousness and differentiation, while the latter were closer to nature and unlike Jews, capable of creating new cultural forms". For Jung, the "epithet "barbarism" was anything but a compliment".[131]

During the 1930s, Jung had worked to protect Jewish psychologists from antisemitic legislation enacted by the Nazis. Jung's individual efforts to aid persecuted German-Jewish psychologists were known only to a few; however, during this period he discreetly helped a large number of Jewish colleagues with active and personal support in their efforts to escape the Nazi regime - and many of those he helped in this period would later become friends of his.[131]
Service to the Allies during World War II[edit]

Jung was in contact with Allen Dulles of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predecess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and provided valuable intelligence on the psychological condition of Hitler. Dulles referred to Jung as "Agent 488" and offered the following description of his service: “Nobody will probably ever know how much Professor Jung contributed to the Allied Cause during the war, by seeing people who were connected somehow with the other side.” Jung's service to the Allied cause through the OSS remained classified after the war.[132]


Legacy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 a popular psychometric instrument, and the concepts of socionics were developed from Jung's theory of psychological types. Jung saw the human psyche as "by nature religious" and made this religiousness the focus of his explorations. Jung is one of the best known contemporary contributors to dream analysis and symbolization. His influence on popular psychology, the "psychologization of religion", spirituality and the New Age movement has been immense. A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survey, published in 2002, ranked Jung as the 23rd most cited psychologist of the 20th century.[133]

In popular culture[edit]

Literature[edit]
Laurens van der Post, Afrikaner author who claimed to have had a 16-year friendship with Jung, from which a number of books and a film were created about Jung's life.[134]The accuracy of van der Post's claims about the closeness of his relationship to Jung has been questioned.[135]
Hermann Hesse, author of works such as Siddhartha and Steppenwolf, was treated by Joseph Lang, a student of Jung. For Hesse this began a long preoccupation with psychoanalysis, through which he came to know Jung personally.[136]
In his novel The World is Made of Glass (1983) Morris West gives a fictional account of one of Jung's cases, placing the events in 1913.[137] As stated in the author's note, the novel is "based upon a case recorded, very briefly, by Carl Gustav Jung in his autobiographical work Memories, Dreams, Reflections".
Art[edit]

Original statue of Jung in Mathew Street, Liverpool, a half-body on a plinth captioned "Liverpool is the pool of life"
The visionary Swiss painter Peter Birkhäuserwas treated by a student of Jung, Marie-Louise von Franz, and corresponded with Jung regarding the translation of dream symbolism into works of art.[138]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Jackson Pollock underwent Jungian psychotherapy in 1939 with Joseph Henderson. His therapist made the decision to engage him through his art, and had Pollock make drawings, which led to the appearance of many Jungian concepts in his paintings.[139][140]
Contrary to some sources,[141] Jung did not visit Liverpool but recorded a dream in which he had, and of which he wrote "Liverpool is the pool of life, it makes to live." As a result, a statue of Jung was erected in Mathew Street in 1987 but, being made of plaster, was vandalised and replaced by a more durable version in 1993.[142]

Music[edit]
Musician David Bowie described himself as Jungian in his relationship to dreams and the unconscious. Bowie sang of Jung on his album Aladdin Sane (a word play on sanity) and attended the exhibition of The Red Book in New York with artist Tony Oursler, who described Bowie as "... reading and speaking of the psychoanalyst with passion". Bowie's 1967 song "Shadow Man" poetically encapsulates a key Jungian concept, while in 1987 Bowie tellingly described the Glass Spiders of Never Let Me Down as Jungian mother figures around which he not only anchored a worldwide tour, but also created an enormous onstage effigy.[143]
Argentinian musician Luis Alberto Spinetta was influenced by the texts of Carl Jung in the development of his 1975 conceptual album Durazno sangrando, specifically in the songs "Encadenado al ánima" and "En una lejana playa del ánimus", which deal with the jungian concepts of Anima and Animus.[144]
Jung appeared on the front cover of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45]
BTS's 2019 album Map of the Soul: Persona is based on Jung's Map of the Soul, which gives basic principles of Jung's analytical psychology.[146] The album includes an intro song titled Persona rapped by group leader RM, who asks the question 'who am I?', and is confronted with various versions of himself with words such as "Persona", "Shadow", and "Ego", which refer to Jung's theories.[147]

Theatre, film and television[edit]
Federico Fellini brought to the screen an exuberant imagery shaped by his encounter with the ideas of Jung, especially Jungian dream interpretation. Fellini preferred Jung to Freud because Jungian analysis defined the dream not as a symptom of a disease that required a cure but rather as a link to archetypal images shared by all of humanity.[148]
BBC interview with Jung for Face to Face with John Freeman at Jung's home in Zurich. 1959.[149]
Stanley Kubrick's 1987 film Full Metal Jacket features an underlying theme about the duality of man throughout the action and dialogue of the film. One scene plays out this way: A colonel asks a soldier, "You write 'Born to Kill' on your helmet and you wear a peace button. What's that supposed to be, some kind of sick joke?" To which the soldier replies, "I think I was trying to suggest something about the duality of man, sir... The Jungian thing, sir."[150]
The Soul Keeper, a 2002 film about Sabina Spielrein and Jung.
The Talking Cure, a 2002 play by Christopher Hampton
A Dangerous Method, a 2011 film directed by David Cronenberg based on Hampton's play The Talking Cure, is a fictional dramatisation of Jung's life as a psychoanalyst between 1904 and 1913. It mainly concerns his relationships with Freud and Sabina Spielrein, a Russian woman who became his lover and student and, later, an analyst herself.
Matter of Heart (1986), a documentary on Jung featuring interviews with those who knew him and archive footage.
Carl Gustav Jung, Salomón Shang, 2007. A documentary film made of interviews with C. G. Jung, found in American university archives.
The World Within. C. G. Jung in his own words, 1990 documentary (on YouTube)


Video games[edit]

The Persona series of games is heavily based on his theories,[151] as is the Nights into Dreams series of games.[152] Xenogears for the original PlayStation and its associated works — including its re-imagination as the “Xenosaga” trilogy and a graphic novel published by the game’s creator entitled “Perfect Works” — are centered around Jungian concepts


Bibliography[edit]

Main article: Carl Jung publications
Books[edit]
1912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1921 Psychological Types
1933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
1938 Psychology and Religion
1951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1952 Symbols of Transformation (revised edition of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1952 Synchronicity: An Acausal Connecting Principle
1954 Answer to Job
1955 Mysterium Coniunctionis: An Inquiry into the Separation and Synthesis of Psychic Opposites in Alchemy
1957 Animus and Anima
1961 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63 Analytical Psychology: Its Theory and Practice


Collected Works[edit]

Main article: 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Eds. Herbert Read, Michael Fordham, Gerhard Adler. Executive ed. W. McGuire. Trans R.F.C. Hull. London: Routledge Kegan Paul (1953-1980).1. Psychiatric Studies (1902–06)2. Experimental Researches (1904-10) (trans L. Stein and D. Riviere)3. Psychogenesis of Mental Disease (1907-14; 1919-58)4. Freud and Psychoanalysis (1906-14; 1916-30)5. Symbols of Transformation (1911-12; 1952)6. Psychological Types (1921)7. Two Essays on Analytical Psychology (1912-28)8. Structure and Dynamics of the Psyche (1916-52)9.1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1934-55)9.2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1951)10. Civilization in Transition (1918-1959)11. Psychology and Religion: West and East (1932-52)12. Psychology and Alchemy (1936-44)13. Alchemical Studies (1919-45):14. Mysterium Coniunctionis (1955–56):15. Spirit in Man, Art, and Literature (1929-1941)16. The Practice of Psychotherapy (1921-25)17. The Development of Personality (1910; 1925-43)18. The Symbolic Life: Miscellaneous Writings19. General Bibliography20. General Index

Supplementary volumesA. The Zofingia LecturesB. Psychology of the Unconscious (trans. Beatrice M. Hinckle)

SeminarsAnalytical Psychology (1925)Dream Analysis (1928-30)[153]Visions (1930-34)The Kundalini Yoga (1932)Nietzsche’s Zarathustra (1934-39)Children's Dreams (1936-1940)
See also[edit]

Psychiatry portal
Psychology portal


Topics
Anima and animus
Archetypal literary criticism
Archetypal pedagogy
Archetypal psychology
Art therapy
Bollingen Tower
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Collective unconscious
Cryptomnesia
Jungian interpretation of religion
Jungian Type Index
Jung Type Indicator
Keirsey Temperament Sorter
Logos
Logotherapy
Neo-Freudian
Nekyia
Participation mystique
Personality test
Psychodynamics
The Red Book
Reincarnation
Synchronicity
Synesthesia
The Sekhmet Hypothesis – archetypal symbolism presented by youth trends
Unus mundus
Wounded healer

People
Otto Gross – colleague, analysand and influence on Jung
R. F. C. Hull – translator of Jung's writings into English
Hugh Crichton-Miller – friend and founder of the Tavistock Clinic
Gerhard Adler – friend and co-editor of the Collected Worksin English
Irene Claremont de Castillejo – analytical psychologist and author on the feminine
Martin Buber – see the Buber-Jung disputations
Victor White – Catholic convert and priest who corresponded with Jung
Wolfgang Pauli – theoretical physicist and Nobel laureatewho corresponded with Jung
Michael Fordham – co-editor of the Collected Works in English and developer of Jungian child theory; founder of 'the London School'
Carl Kerenyi – Hungarian scholar of Greek mythology, colleague and influence on Jung
Joseph Campbell – mythologist, populariser of Jungian ideas
Linda Fierz-David – one of the earliest Jungian analysts in Zurich
Mary Esther Harding – British doctor who became one of the earliest Jungian analysts in the United States
Margaret Lowenfeld – British doctor and creator of sandplay and tutor of the Swiss Jungian, Dora Kalff, who developed sandplay as a diagnostic tool
Frances Wickes – early American Jungian child therapist, lecturer, author and friend of Jung
Erich Neumann – developer of matriarchal mythological adaptations of Jungian thought
Richard Noll – controversial critic of Jung's work
Anthony Stevens – analytical psychologist, psychiatrist and author
Winifred Rushforth – Edinburgh doctor and clinic founder who corresponded with Jung
John Beebe – Jungian analyst, typologist and commentator on Jungian ideas
Andrew Samuels – Analytical psychologist, academic and moderniser of Jungian ideas
Joel Ryce-Menuhin – proponent of sandplay therapy
Herbert Silberer Early colleague and influence on Jung
D. T. Suzuki – see An Introduction to Zen Buddhism, for which C. G. Jung wrote a preface
Richard Wilhelm – Translator of the I Ching

Organiz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Analytical Psychology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Jungian Studies

Jung in works of fiction
Possessing the Secret of Joy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A Dangerous Method
Pilgrim


Notes[edit]

  1. ^ As a university student Jung changed the modernized spelling of Karl to the original family form of Carl. Bair, Deirdre(2003). Jung: A Biography. New York: Back Bay Books. pp. 7, 53. ISBN 978-0-316-15938-8.
  2. ^ 'For Jung, alchemy is not only part of the pre-history of chemistry, that is, not only laboratory work, but also an essential part of the history of psychology as the history of the discovery of the deep structure of the psyche and its unconscious. Jung emphasized the significance of the symbolic structure of alchemical texts, a structure that is understood as a way independent of laboratory research, as a structure per se.' Calian, George Florin (2010). Alkimia Operativa and Alkimia Speculativa. Some Modern Controversies on the Historiography of Alchemy. Budapest: Annual of Medieval Studies at CEU. pp. 167–168.
  3. ^ C. G. Jung, Die Beziehungen zwishen dem Ich und dem Unbewußten, chapter one, second section, 1928. Also, C. G. Jung, Aufsatze zur Zeitgeschichte, 1946. Speeches made in 1933, 1937 are excerpted. He was protesting the "slavery by the government" and the "chaos and insanity" of the mob, because of the very fact that they were the part of the mob and were under its strong influence. He wrote that because of the speeches he delivered he was blacklisted by the Nazis. They eliminated his writings.
  4. ^ A full response from Jung discounting the rumors can be found in C. G Jung Speaking, Interviews and Encounter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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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edit]

  1. ^ Jump up to:a b Polly Young-Eisendrath. The Cambridge Companion To Jung. Cambridge University, 2010. pp. 24–30.
  2. ^ McBride, Jason (2017). "The Pronoun Warrior". Toronto Life.
  3. ^ Eileen Rizo-Patron, Edward S. Casey, Jason M. Wirth (eds.), Adventures in Phenomenology: Gaston Bachelard, SUNY Press, 2017, p. 123 n. 11.
  4. ^ "Jung". Random House 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
  5. ^ Wehr, Gerhard (1987). Jung: A Biography. Boston/Shaftesbury, Dorset: Shambhala. p. 9. ISBN 978-0-87773-455-0.
  6. ^ Brome, Vincent (1978). Jung (1 ed.). New York: Atheneum. p. 28.
  7. ^ Wehr, Gerhard (1987). Jung: A Biography. Boston/Shaftesbury, Dorset: Shambhala. pp. 17–19. ISBN 978-0-87773-455-0.
  8. ^ Jump up to:a b Memories, Dreams, Reflections. p. 18.
  9. ^ Dunne, Claire (2002). Carl Jung: Wounded Healer of the Soul: An Illustrated Biography. Continuum. p. 5.
  10. ^ Memories, Dreams, Reflections, p. 8.
  11. ^ Hoerni, Fischer & Kaufmann 2019, p. 233.
  12. ^ Bair, p. 25.
  13. ^ Wehr, Gerhard (1987). Jung: A Biography. Boston/Shaftesbury, Dorset: Shambhala. p. 349. ISBN 978-0-87773-455-0.
  14. ^ Stepp, G. "Carl Jung: Forever Jung". Vision Journal. Retrieved 19 December 2011.
  15. ^ Memories, Dreams, Reflections. pp. 33–34.
  16. ^ Wehr records that Paul Jung's chosen career path was to achieve a doctorate in philology. He was an Arabist; but the family money ran out for his studies. Relief came from a family legacy, however, a condition of the will was that it should only be offered to a family member who intended to study theology and become a pastor. Paul Jung therefore had his career determined by a will, not his will. See page 20.
  17. ^ Jump up to:a b c Malchiodi, Cathy A. (2006). The Art Therapy Sourcebook. McGraw-Hill Professional. p. 134. ISBN 978-0-07-146827-5.
  18. ^ Memories, Dreams, Reflections. pp. 22–23.
  19. ^ Wehr, G. p. 144
  20. ^ "Carl Jung | Biography, Theory, & Facts".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19 July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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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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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people's recollections of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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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Barbara, Jung, his life and work; a biographical memoir, New York: G. P. Putnam's Sons, 1976. SBN: 399-50383-8
David Bailey's biography of his Great Aunt, Ruth Bailey, ‘The English Woman and C.G.Jung’ drawing extensively on her diaries and correspondence, explores the deep and long-lasting friendship between Ruth, Jung, and Jung's wife and family.

Critical scholarship
  • Dohe, Carrie B. Jung's Wandering Archetype: Race and Religion in Analytical Psychology.London: Routledge, 2016. ISBN 978-1138888401
  • Grossman, Stanley (1979). "C.G. Jung and National Socialism". Jung in Contexts: A Reader. ISBN 9780415205580.
  • Hanegraaff, Wouter J. (1996). "New Age Religion and Western Culture: Esotericism in the Mirror of Secular Thought". Leiden/New York/Koln: E.J. Brill.
  • Wulff, David M. (1991). "Psychology of Religion: Classic and Contemporary Views". New York: John Wiley & Sons.
  • Paul Bishop, Carl Jung (Critical Lives) (Reaktion Books, 2014)
  • Noll, Richard (1994). The Jung Cult: Origins of a Charismatic Movement (1st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p. 336.
  • Richard Noll, The Aryan Christ: The Secret Life of Carl Jung (Random House, 1997)
  • Anthony Stevens, On Jung (second edition)
  • Sonu Shamdasani, Cult Fictions, ISBN 0-415-18614-5
  • Sonu Shamdasani, Jung and the Making of Modern Psychology: The Dream of a Science, ISBN 0-521-53909-9
  • Sonu Shamdasani, Jung Stripped Bare, ISBN 1-85575-317-0
  • Bair, Deirdre. Jung: A Biography. Boston: Little, Brown and Co,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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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 by Carl Jung at LibriVox (public domain audiobooks)
Carl Jung: Foreword to the I Ching
The Association Method Full text article from 1916. Originally Published in the Collected Papers on Analytical Psychology.
The Seven Sermons to the Dead, 1916 Carl Gustav Jung
The Theory of Psychoanalysis Full text article from 1915. Originally published in The Journal of Nervous and Mental Disease
Jung's 'Essay on Wotan'
Bollingen Foundation Collection From the Rare Book and Special Collections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The World Within. C. G. Jung in his own words[permanent dead link] 1990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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