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보 진영 토론회서도 '제국의 위안부' 격론 | 다음뉴스
일본 진보 진영 토론회서도 '제국의 위안부' 격론
한겨레 입력 2016.03.28. 20:06 수정 2016.03.28. 23:16
[한겨레]도쿄대서 ‘박유하 교수 책’ 토론회
옹호쪽 “한-일 관계 타개책 찾아”
비판쪽 “일본 책임 극도로 최소화”
진보 지식인 사이서 긴장감 팽팽
옹호쪽 “한-일 관계 타개책 찾아”
비판쪽 “일본 책임 극도로 최소화”
진보 지식인 사이서 긴장감 팽팽
“결국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극도로 최소화하고, 전후 일본이 해온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원하는 일본 언론의 욕망에 문제가 있다.”(정영환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28일 오후 1시30분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국제교류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일본의 리버럴(진보) 세력 안에서 이 책에 대한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들 사이의 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지만, 일본에서도 박 교수의 저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를 두고 진보 진영 안에서도 적지 않은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박 교수의 책에 대해 “전면적·실증적·이성적, 그리고 윤리적인 분석”(다나카 아키히코·정치학자), “이 문제(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데 피해갈 수 없는 책”(우에노 지즈코·여성학자)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자료의 인용 등 방법론적 차원에서 기본도 갖추지 못한 책”이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이를 두고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를 중심으로 한 이들이 ‘위안부 문제와 어떻게 마주할까-박유하씨의 논저와 그 평가를 소재로’란 토론회를 연 것이다.
박 교수의 저작을 찬성한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박 교수의 ‘선의론’이었다. 니시 마사히코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 국가간·민족간 정치적 대립이 양쪽 모두에서 ‘민족주의적 폭력’을 불러오는 상황이 결과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늦췄다는 현실에 대한 타개책을 찾으려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위안부 동지’였을 가능성을 언어화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기시하는 상황이 된 것” 자체가 한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견줘 비판론자인 정영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제시하는 역사상이 많은 일본인 지식인들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이 전하는 역사관이 왜 일본인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이어 박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인용·활용하고 있는 점을 주요한 문제점으로 들었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에는 “병사의 (성적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민간)업자의 인신매매를 묵인한 책임만 묻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박 교수 옹호파는 한-일 국경의 틀을 넘으려는 박 교수의 시도를 평가하려는 입장인 반면, 비판하는 쪽은 책의 구체적인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그러나 일부 찬성 쪽 참가자들도 박 교수가 저지른 자의적인 자료 인용 등 방법론상의 오류는 인정하면서, 박 교수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선 반대 쪽도 동의해달라고 요구했다. 찬성 쪽인 니시 교수는 “일본 독자들의 욕망에 대답하려는 책이라고 지적했지만, (조선인) 업자들의 문제 등을 (함께) 지적해 한국과 재일조선인들의 욕망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라고 반론하기도 했다.
토론의 정리자로 나선 나카노 도시오 도쿄외국어대학 명예교수는 “이런 수준의 책이 일본 사회에서 평가를 받는 것은 일본인이 가해자라는 (한국의) 비판에 일본 사회가 지쳤기 때문”이라며 “일본 사회가 이 점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로 이날 발언을 마쳤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