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7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2023

[조진범의 피플]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조진범  |영남일보  

입력 2023-01-03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301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가 독도연구소에서 
국내 정치의 문제점과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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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를 찾았다. 어수선한 세상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출발이다. 우크라니아 전쟁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상황이고,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정치의 혼란스러움은 더욱 극성이다.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서 철학자에게 물었다. 지난달 29일 영남대 중앙도서관에 위치한 독도연구소에서 최재목(62)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신유학으로 불리는 '양명학'의 대가(大家)다. 최근 최 교수가 펴낸 '비교양명학: 한중일 삼국의 시야에서'라는 학술서의 추천사를 세계적인 동양학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뚜웨이밍(杜維明) 교수와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고지마 야스노리(小島康敬) 교수가 썼다. 대가라는 타이틀이 손색이 없는 학자이다. 시인이자 시사평론가이기도 하다. 교수신문 논설위원으로 정치권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해마다 교수신문에서 선정하는 사자성어의 '단골 추천인'으로도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명지조(共命之鳥·2019), 아시비타(我是非他·2020), 묘서동처(猫鼠同處·2021)를 추천해 전국의 교수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최 교수는 "2022년에는 교수신문에서 '이번에는 참으라'라고 해서 추천을 안 했다. 나보고 하라고 했다면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추천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영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대 철학사상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쿄대 객원연구원도 역임했다. 현재 영남대 독도연구소장과 영남퇴계학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21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에 선정돼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연구하고 있다.

현 정국 향한 '以理殺人' 경계령
"이념적 노선에 의한 주의·주장 모두
상대편 죽이는 데 쓰는 무기가 된 셈
지금 진보는 사색이 낡아 빠진 꼰대
586세대 물러나고 30~40대가 이끌어야
보수 진영도 조선시대 양반 같은 느낌
철저한 반성에 따른 혁신 없이 독단적"

▶새해에 추천하고 싶은 사자성어가 있다면.
"지난해말 선정된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다)를 잇는다면 '지난 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쳐 올바르고 착하게 된다'라는 뜻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꼽고 싶다. '지난 날의 잘잘못을 본보기 삼아 새로운 시대를 도출해 낸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도 좋을 것 같다. 동학에 나오는 차차차차(次次次次)도 추천한다. 차차차차 조금씩 나가면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양명학이 무엇이고, 지금 이 시대에 가지는 의미는.
"유학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유학에 생명과 자연을 합쳤다. 양명학은 중국 명나라 때 나온 학문으로 '불변의 이치'를 주장하는 주자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이치가 완고해지면 재미가 없다. 사람이 우선이고, 주체가 우선이라는 게 양명학의 핵심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吾心)'이 중심이다. 내가 이치를 만들고, 우리 사회가 합의를 봐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적인 이치를 탈피한다는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비슷하다. 일본의 근대가 양명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실용을 중시하게 됐다. 양명학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약속된 것들이 많다. 그런 약속은 불변이라기보다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맥락을 결정하는 것은 주체다. 주체가 융통성있게 맥락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국제관계나 인간관계나 모두 맥락의 문제이다. 맥락을 잃어버리고 이치만 갖추다 보면 질식사하게 된다."

▶최근 교수신문 사설에 '이리살인(以理殺人)'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청나라 고증학자 대진이 한 말인데, '리(理)로써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섬뜩한 말이다. 리(理)라는 것은 인간이 정한 냉정하고도 근엄한 잣대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이념적 노선에 의한 주의, 주장이 리(理)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상대편을 죽이는데 쓰는 날가로운 도구나 무기가 된 셈이다."

▶지금 정치가 그렇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다.
"586세대가 물러나야 한다. 지금 진보는 스스로 진보하지 않고 진보를 팔아먹고 살아왔다. 머리가 굳어서 사색이 낡아 빠졌다. 꼰대가 됐다. 이념적 아집에 차 있을 뿐이다. 과학이나 의식적인 측면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게 우리나라 진보 진영이다. 국가와 민족도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함께 국가와 민족이라는 도식에 대해 좀 더 철학하며 타협하고 절충할 필요가 있다. 586세대는 물러서서 30~40대들이 이끌도록도 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은 586 이념형 세대에게 '입은 닫고 지갑을 열며 자리를 내주라'고 애원하고 있다."

▶ 보수 진영의 문제는 무엇인가.
"보편적인 가치를 제안하는 게 보수이다. 지금 보수 진영은 조선시대 양반 같은 느낌을 준다. 단합도 안되고, 멋도 없으면서 고칠 생각을 안한다. 철저한 자기반성에 따른 혁신 없이 독단적이다. 한마디로 건들댄다. 맥락성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문제나 경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과 지방 대학 살리려고 하는 의지도 안 보인다. 특별하게 '뭘 하고 있다'라는 게 없다. 그래도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보다 낫다. 지금 민주당은 조폭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 '단골 추천인'
"지금 한국사회에 약속된 많은 것들은
불변이라기보다 맥락 속에서 파악돼야
주체가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게 필요
작년 사자성어 '과이불개'를 잇는다면
올핸 개과천선·법고창신 추천하고 싶어"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와 독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문재인 정부 때 단절된 분위기를 좀 회복하면서 현재보다 더 나쁘지 않은 관계, 너무 멀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보편적 가치나 원리를 존중하는 선비의 나라라면, 일본은 현실과 실제에 관심이 많은 사무라이 전통의 나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당장에 속 시원한 것을 제안할 수 없겠지만, 원론적으로는 현상태를 유지하며 일본의 분쟁지역화 전략에 말려에 말려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독도는 우리가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기에 과민하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체화된 마음 이론에 대해 소개해 달라.
"몸과 환경, 뇌가 마음하고 어떻게 역동적으로 연관돼 있는 가를 연구하고 있다. 마음이란 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마음은 실체가 없다. 뇌, 환경의 협동에 의해 맥락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올해 2년째인데, 성과물이 차츰 나오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을 통해 AI시대, 포스트 휴먼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접근하려고 한다."

▶어수선한 시대에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다운 삶, 나를 향한 삶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에 더 주목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다. 자기 성찰, 자기 존중이 필요한 시대이다. 밖으로 향해 있는 눈을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자기에 주목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자기 존중이야말로 무의미 속에 의미를 찾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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