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8

알라딘:성학십도 :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 이황 2011

알라딘: [전자책] 성학십도 :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 청소년 철학창고 03

[eBook] 성학십도 :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 | 청소년 철학창고 3
이황 (지은이),최영갑 (옮긴이) 2011 

원제 : 성학십도 聖學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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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204쪽


책소개

퇴계 이황의 성리학 고전을 현대 중고등학생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한다.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쉽도록 구어체 중심으로 새롭게 번역하고 풀어서 썼으며, 책의 내용과 저자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함께 실었다. 분량도 200쪽 정도로 부담없게 배려하였다.

<성학십도>는 노년의 퇴계 이황이 17세의 어린 임금 선조에게 성리학의 기본 이념을 열 개의 그림(도표)으로 요약 정리하여 올린 책이다. 열 폭의 그림과 글 속에 퇴계가 평생동안 연구한 성리학의 핵심 내용이 들어있다. 

제 1도에서 5도까지는 우주의 원리와 만물의 근원 문제를 다루고 
제6도에서 10도까지는 구체적인 수양 방법과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목차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성학십도'에 나오는 주요 인물

1. 태극도―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라
2. 서명도―천지 만물과 하나가 되어라
3. 소학도―일상적인 일에 충실하라
4. 대학도―수신으로부터 시작하라
5. 백록동규도―인간이 되는 학문을 하라

6. 심통성정도―마음을 바르게 해라
7. 인설도―인을 본체로 삼아라
8. 심학도―잃어버린 본심을 찾아라
9. 경재잠도―경의 세부 사항을 실천하라
10. 숙흥야매잠도―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라

성인이 되기 위한 열 가지 그림, 성학십도
퇴계 이황 연보



저자 및 역자소개
이황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 더보기

최근작 : <성학십도>,<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3 분수를 넘지 마라>,<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2 국법은 지엄한 것이다> … 총 67종 (모두보기)

최영갑 (옮긴이)

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동양철학과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한국유경편찬센터 편찬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 교육원장과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장을 맡고 있으며 (재)성균관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춘성어》 《군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한 권으로 읽는 동양철학이야기》 《공자와 맹자의 도덕철학》 《성학십도: 열 가지 그림으로 읽는 성리학》 《성학집요: 교양으로 읽는 율곡 성리학》 《회남자: 생각의 어우러짐에 관한 지식의 총서》 《숟가락 먼저 들면 왜 안...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책] 사자논어 100선 >,<하늘이 내린 다섯 효자 이야기>,<동양철학이야기> … 총 3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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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용은 그림으로
egapin 2008-09-25 공감 (2) 댓글 (0)



알기 쉽게 그림 해설식으로 되어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박신연 2019-08-10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사서삼경>이나 <근사록> 정도의 번역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별로 새로울 내용은 없다.

그냥 일반적인 번역이었다면 읽기가 불편했을지 모르나 청소년을 위해 매우 상세하게 풀어서 해석을 달았기에 의혹을 가질만한 부분이 없다. 학문을 하고 수양을 하고 궁극적 으로 진지하게 하는 경지로 다가서는 경(공경)의 경지까지 소개가 되어 있었고, 이는 현대적으로 '진지성=경' 이렇게 해석이 된다. 무엇보다도 난해한 그림들을 쉽게 풀어 쓴 점에서 책의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옛날엔 이렇게 가르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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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만반독만권서 2008-12-18 공감(2) 댓글(0)



그림으로 말하는 성리학의 세계를 엿보다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나라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성학십도를 만나기 전에 율곡의 [성학집요]를 읽으면서 율곡의 성리학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율곡이 40세의 나이에 선조에게 [성학집요]를 바치지 전에 이미 퇴계 이황은 50세가 넘는 나이에 17세인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바쳐 성군이 되기를 바랬다.

[성학십도]는 성인이 되기위해 알아야 할 성리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열 가지의 그림을 통해서 표현한 책이다. 성인이 되기 위한 성리학..성리학을 배우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모두 성인이 되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그 길을 향해서 정진하는 학문으로 성리학을 배우는 것이다.

퇴계 이황이 이런 성리학의 주요 내용을 그림과 설명으로 나타내어 17세의 어린 나이인 선조에게 바친 것은 그만큼 성리학을 쉽게 풀어주면서 왕이 성인으로의 정치를 할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하겠다.

[성학십도]의 10개의 그림은 예부터 내려오던 것으로 제6심통성정도는 그림을 보충하고 , 제 3 소학도와 제5 백록동규도, 제10 숙흥야매잠도는 내용만 있었기에 퇴계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 10가지의 그림으로 구성된 [성학십도]는 크게 두 부분의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1~5도까지는 천도에 근거한 우주의 원리를 밝히고 이것을 통해 인간의 도리를 밝혔도 6~10도는 인간의 심성에 근거하여 일상에 힘써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구성만 보아도 퇴계가 선조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성리학은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성리학이 아닌 실천하는 성리학의 성격이 강함을 엿 볼 수 있다. 을사사화를 겪으면서 낙향하여 그토록 원하던 학문에 정진하면서 선조에게 바치게 되는 [성학십도]는 그의 생활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평소에도 수양론을 강조하면서 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거경과 궁리를 계승했다고 한다. 그의 [성학십도]는 경을 중심으로 설명했기에 실천하는 성리학, 수양하는 성리학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학문으로 성리학을 공부하고 그치기 보다는 수양하고 실천하는 성군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10개의 그림을 보면서 지금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을 극히 적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책에 상세한 풀이가 있기에 성학십도가 의미하는 바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림과 글에 대한 이해가 쉽지는 않았지만 성학십도를 그린 사람과 해설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들이 성리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성인의 길을 걷도록 하고자 하는 바를 넌즈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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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2006-11-21 공감(1) 댓글(0)



그림으로 성리학을 읽다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聖學)을 열 가지 그림(十圖)로 풀어낸 책, 이황의 [성학십도]를 만났다. 이름만 알고 있던 성학십도의 배경과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글로 풀어가는 대부분의 유학 서적과는 달리, 그림으로 성리학을 풀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었다.

68세의 노학자 이황이 17세의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으로, 임금을 성왕(聖王)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한다. 아무리 명망높은 대학자라 할지라도 훌륭한 군주가 되라는 충고를 담은 이러한 책을 감히 신하가 왕에게 올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유학의 기본 전제를 이해한다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므로 자연스럽게 군왕이 포함될 수 있었고, '노력하면'이라는 요건에서 끊임없는 교육과 학습이 요구되었다. 바로 이 점이 유교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이었고, 조선은 그러한 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성학십도]를 구성하는 열 가지 그림은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예전부터 전해오던 그림을 그대로 실었거나 좀더 보충하였고, 소학도와 백록동규도, 숙흥야매잠도 등 세 가지는 이황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주돈이의 태극도 외에는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유학자들이 유학의 체계를 글이 아닌 그림으로 종종 설명했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린 것일까?

오늘날의 눈으로 들여다보니 태극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도표'로 보인다.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의 요체를 적고, 그 관계를 선으로 연결하거나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제시함으로써 체계적인 요점 정리의 인상을 받았다. 오늘날 같으면 프리젠테이션의 발표 내용이 연상되었다. 성학의 요건들을 핵심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일종의 관계망으로 생각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태극도]와 [서명도]. 태극도는 우주의 근원과 만물의 생성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근사록의 첫머리도 태극도설로 시작된다. 서명도는 이일분수(理一分殊)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만물이 하나의 원리에서 나와(이일) 각각의 사물들로 나뉘는 것(분수)을 뜻한다. 이 두가지는 성리학의 기본 개념들로써 이로부터 성리학이 출발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소학도]와 [대학도]. 소학과 대학의 주요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고, 8세부터 배우는 소학과 15세부터 배우는 대학을 중요하게 취급함으로써 성리학자들이 생각한 '공부'의 순서를 알 수 있게 한다. 퇴계는 소학과 대학의 효과로서 다음 여섯 장의 그림이 나온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백록동규도]와 [심학도], [숙흥야매잠도]가 인상적이었다. 백록동규도는 주자가 백록동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규범의 목차를 퇴계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퇴계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의 사액을 상소했던 점을 떠올리면, 백록동규도를 손수 그렸고 소학, 대학 공부의 효과로 첫번째에 배치한 뜻이 이해가 될만하다. 내용은 삼강오륜과 중용에 제시된 학문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성균관과 향교의 학당을 명륜당으로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에 있어 '명인륜(明人倫)'은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또한 이치를 연구하고(궁리)와 이를 실천할 것(행)을 강조한 것은 성리학의 교육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학도]는 정복심의 글과 그림으로, 심(心)과 경(敬)의 내용과 양자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부를 타고난 것을 보존하는 공부(계구)와 욕심을 막는 공부(신독)로 나누고 이 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공부의 요체는 오로지 경이다. [숙흥야매잠도]는 진백의 그림에 퇴계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숙흥야매(夙興夜寐)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잠을 잔다는 뜻이다. 일곱 항목으로 나누어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에 따른 공부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역시 경(敬) 자가 놓여 있다. 이러한 후반부의 내용들을 통해서 퇴계가 집대성한 '경(敬)' 사상을 성학십도에서 또 한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성학십도를 직접 원문으로 보았다면 이러한 것들을 쉽게 알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원본과 그것을 다시 활자로 그린 것을 대조하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원본의 해석과 이를 풀이하여 저자가 설명한 부분도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성인이 되기 위한 성학(聖學)은 당대에는 곧 성리학(性理學)이라 할 수 있다. 퇴계가 정리한 성학, 즉 성리학의 요체를 한 눈으로 일목요연하게 만날 수 있었고, 여기에서 가지를 치는 여러 가지 공부할 꺼리들을 받아 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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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2006-12-21 공감(1) 댓글(0)



가능한 쉽게 쉽게

참 쉽게 쓴 책이다. 물론 정확하다곤 할 수없다. 틀리기 보단 더 깊은 내용도 있지 않을까 한다. 전체 다 읽어봤고 지금 한장씩 다시금 정독을 하는데...태극도의 경우엔 선도 원본과 다르고..의미도 조금 비어있다
다크시온 2008-10-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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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6-07 공감 (23) 댓글 (0)

선비 철학 vs 사무라이 사상



어제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집어든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96)의 <일본의 사상>(한길사, 2003). 본래 1998년에 나온 책의 초판 3쇄였다. 요즘은 잘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어디선가 재고도서가 들어온 듯싶었다. 짐작에 마루야마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에 보관돼 있는 책이지만 확인해볼 도리가 없는 데다가 당장 참고할 부분도 있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도 주문해버렸다(그의 사상을 개관하고 있는 <오스까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삼인, 2005)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야겠다).








역자는 두 권 모두 김석근 교수인데 사실 한국에서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소개는 거의 전적으로 그에게 빚지고 있다. 그 이전에 <일본의 현대사상>(종로서적, 1981) 등이 소개된 바 있지만 마루야마의 주요 저작들이 단기간에 한국어판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역자의 노고 덕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마루야마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도올 김용옥의 책들에서였지만.

그렇게 손에 든 책에서 '옮긴이의 말'과 마침 이 번역이 마무리될 즈음 세상을 떠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부음에 부쳐진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을 읽었다. 역자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따라가본다. 어느새 10년도 더 전의 사정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반성하도록 해준다.



역자가 마루먀아를 처음 접한 건 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 때라고 하는데, 본래 정치외교학 전공인 저자가 '한국정치사상사'를 공부하기 위한 방책으로 철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맞닥뜨리게 된 에피소드.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비슷한 사례가 될 만한 또다른 일화는 "주체적인 학문의 길을 주장"한 '어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인데, 저자와 저서명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짐작에 조동일 교수의 <우리 학문의 길>(지식산업사, 1993)의 내용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재미난 화두를 하나 던지고 있습니다. 그 분의 논지를 여기로 다 끌어올 수는 없겠습니다만, 요컨대 일본에는 '사상(사)'은 있지만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사)'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시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27쪽) 요컨대, 이러한 '부인'의 제스처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물론 이후에 '일본의 철학'을 다룬 책들이 여러 권 버젓이 나오게 됐으므로 그러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한 듯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역자가 체험한 한 시절의 풍경은 그러하다. 이것이 다소 넌센스인 것은 "애초에 '哲學'이란 단어 자체가 일본인 니시 아마네가 영어의 Philosophy를 번역하여 한자로 새로이 만들어낸 조어(造語)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28쪽) 말하자면 '철학'이란 말 자체는 근대 일본의 발명이고 고안이다. 하지만 "니들에게 철학은 없다"?

여기서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건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 1995)에 붙인 김용옥의 해제의 한 대목인데,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그것은 매우 거칠게 말해서 '한국철학'과 '일본사상'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상', '일본철학'이라는 말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학문을 연구하는 시각이나 방법의 성격상 한국에서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즐겨쓰고, 일본에서는 '일본사상'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국에서는 '한국사상'이라고 하면, 그것은 철학에 못 미치는 좀 엉성한 체계, 그리고 철학의 소양이 부족한 2류의 학인들이 자신없이 내거는 명칭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하나 일본에서는 '일본철학'이라고 하면, 역시 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는 국수주의자들의 사변체계, 군국주의시대의 '코쿠타이'(國體)를 연상시키는 '미기'(右翼) 사상가들의 억지주장 냄새가 난다."

해서 요컨대, "한국에서의 사상은 좀 처지는 놈들의 엉성한 논변이요, 일본에서의 '철학'은 항상 우익의 냄새를 피울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김용옥의 해제 28-29쪽) 그러니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상'은 좀 모자란 것이고 일본에서 '철학'은 좀 덜 떨어진 것이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실제로 '한국철학'이란 표현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사상은 '실학사상'이나 '계몽사상' 등의 표현으로나 쓰인다). 혹은 '철학사상'. '일본의 사상'이란 표현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데 비해서 '한국의 사상'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관행 탓인 듯싶다(거의 개와 고양이 수준 아닌가? 똑같은 꼬리 흔들기가 각각 반가움과 경계심의 표시라는).

잠시 옆길로 갔는데,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르느냐 아니면 '사상'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또 다른 제3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든가, 사상은 있으나 철학은 없다는 식의 논지와 일본은 '있다' '없다'라는 식의 주장 사이에는, 그 성격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물을 보는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과 패턴 같은 것에서는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저로서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29-30쪽)

"졸렌(Solen)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인(Sein)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기대면, 그가 비판하는 우리의 관행적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은 일본이란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전에 일본은 이렇다, 저렇다고 당위적으로/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가리키겠다. 그걸 경계하자는 얘기이고, 그때 필요한 건 일단은 읽는 것이다. 물론 일본사상인지 철학인지가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마루야마가 평생 사투했다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오규 소라이(1666-1728)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책을 한국어로 얼마나 읽을 수 있는가?).



한편, 책의 후기를 대신하여 쓰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에는 지난 1996년 마루야마의 타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모 열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의 도쿄 특파원이 작성했다는 기사는 가관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70년대 그의 저작들이 영문으로 번역돼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의 소개는 약간 늦은 편이어서 1981년 <일본의 현대사상>을 시작으로 <현대일본정치론>(1988), <중국근대혁명사상>(1989), <섹스원죄 어디까지인가>(1995), <섹스법정>(1996) 등이 출판됐을 뿐이다..."

필자의 지적대로 앞의 두 권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이지만 <중국근대혁명사상>(예전사, 1989)은 마루야마 마쓰유키의 저작이며, 전혀 난데 없이 들어가 있는 <섹스> 어쩌구 하는 책들은 마루야마 마사야의 책으로 보인다. 같은 마루야마 집안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문기사가 '장난'이 아닌 이상 이런 무식하고도 무책임한 내용이 아무런 여과없이 일간지에 게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이런 게 우리의 평균적인 현실이라면 희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한국에는 입만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문제이다(과연 우리에겐 '한국의 마루야마'가 있는가?).













이러한 한일 철학/사상에 관한 몰이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관련서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읽힐 필요가 있겠다(찾아보니 금장태 교수의 <도와 덕>(이끌리오, 2004)이 다산과 오규 소라이를 비교한 연구서이다). 최근에 출간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는 그래서 눈에 띄는 책인데, 한겨레의 서평(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9266.html)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인들이 상급 무사인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도라 할 수 있는 ‘무사도’가 있다. 충과 효의 덕목에, 스스로에게 엄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인자해야 한다.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하고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조항들 가운데 ‘패배한 적에게 연민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만 제외하면 ‘선비의 도’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동질성의 계기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성리학의 일본 전파를 꼽았다. 임진왜란 이전만 해도 일본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윤리적 충성의식이 높지 않았다. 주군과 가신들의 주종관계가 의리나 신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관계였기 때문이다. 무사에게는 주군을 바꿔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유학자 강항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성리학의 계통이 학립됐다. 이를 계기로 유교적 윤리인 인(仁)·충(忠)·효(孝)가 무사들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운 일본 근대 성리학의 시조 후지와라 세이카는 존왕론 주창으로 나아갔다. 천황의 역사를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미토학’ 태동의 지반도 성리학이었다. 미토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새로운 ‘천황중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이념적 지주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본다. 무사들이 ‘천황’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선 메이지 유신은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무사정권 교체는 명분론과는 무관한 패권다툼의 결과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사무라이들의 반란 혹은 '혁명'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의 소재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 그려진 사무라이상에 대한 유익한 비평은 아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사무라이 반란’은 일본에서는 ‘세이난(西南) 전쟁’으로 알려진 반란이고, 가쓰모토의 모델은 그 반란의 주모자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입니다. 여러분 사이고 다카모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까. 그는 메이지유신을 성사시킨 사쓰마, 조슈, 도사 3개 한(藩)의 하급 사무라이 중 사쓰마를 대표하는 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은 폐쇄적 쇄국을 진취적 개국으로, 쇼군(將軍)중심의 봉건적 막부 정치체제를 천황 중심의 한 서양적 의회민주제로 개혁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메이지유신의 핵심인물이 서양 문물의 홍수에 맞서서 일본의 전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받쳤다? 왠지 어색하지 않습니까.

사이고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의 핵심에는 ‘조선침략’이 놓여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서양열강과 맞서기 위해서는 문물이 뒤떨어진 한국을 공략해 식민지화해야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같은 사쓰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사쓰마로 낙향합니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지도자로 나섰다가 패배해 자결한 인물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인격적 감화능력이 탁월해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를 좋아했고, 일체의 사욕을 버리고 공리를 쫓았던 면모도 분명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메이지유신에 나섰던 이유는 ‘일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쓰마인’을 위해서였고 ‘사쓰마’가 일본 최고의 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사쓰마파벌’의 영수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사쓰마는 오늘날 일본 사무라이의 원형을 세계에 수출한 곳입니다. 사쓰마의 다이묘가문인 시마즈 가문은 도쿠가와 막부성립기 때 줄을 잘못 서서 반 도쿠가와 편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번 전체가 똘똘 뭉친 단결력과 외교수완의 결과로 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또 일도필살의 전투력으로 인해 도쿠가와도 건드리기 싫어했던 고슴도치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쓰마는 도쿠가와 막부시절에도 다른 번, 심지어 막부의 중앙관료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함흥차사’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쓰마로 떠난 파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서양인의 뇌리에 박힌 사무라이상도 이 사쓰마 산입니다.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은 1862년 에도(지금의 도쿄)를 방문중이던 주군의 행렬에 무례하게 끼어든 영국인 사업가 일행을 일본도로 참살했습니다. 격분한 영국이 사과를 요구하자 영국과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사영전쟁’입니다. 놀라운 것은 비록 일본의 한개 번으로 대영제국함대의 함포사격에 맞선 사쓰마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영국군에 유례없는 타격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영국군은 63명의 사상자가 난 반면 사쓰마측 피해는 1명 사망, 7명 부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신문들은 놀라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유럽인들에게 ‘일본 사무라이는 세다. 고로 잘못 건드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라는 인상을 팍 심어줬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사무라이’운운하며 사쓰마를 영화의 무대로 삼은 것은 핵심에 다가섰다고 평할만합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또한 이 사쓰마의 ‘주군이 죽으라 하면 죽는다’는 식의 돌쇠형 충성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를 장악한 것은 대부분 조슈와 사쓰마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이지유신을 민주화와 개방화 혁명이 아니라 천황에 대해 충성을 다 받치는 배타적 군국주의 혁명으로 오도했습니다. 사이고야말로 이런 일본 골수우익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따라서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이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성리학과 무사도, 혹은 '선비 철학'과 '사무라이 사상' 간의 차이에 조응하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의 리뷰를 마저 읽어본다.

하지만 두 세계의 차이도 명확하다. 가장 두드런 예가 교육이다. 조선 선비들은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에서 이물질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포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은 늘 적을 상정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조선선비 교육의 근본이 ‘학예일치’였다면 사무라이에게 학문은 무예의 보조적 기능에 불과했다. 선비가 글을 읽고 시를 읊을 때 사무라이는 학습 시간의 70%를 무예로 채웠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두 나라의 교육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엔 반드시 수영장을 설치해야 하고 수영 교습도 필수다. 중·고교에선 스포츠 동아리가 매우 활발하다. 2006년 여름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고등학교 수는 전체 5400개교 가운데 76%에 이르는 4112개교다. 한국의 3%와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일본이 성리학에서 받아들인 가장 큰 부분은 ‘명분 쌓기’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런 명분을 군사 행동의 정당화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성리학의 중심인 심성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일본과 일본인이 인간 심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 한국인들은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믿음을 비로소 가지게 될 것이다.”(강성만 기자)








한데, 우리에게 그런 심성론이 제대로 전수/학습되고 있는가, 란 의문을 문득 갖게 된다. 나부터도 퇴계의 <성학십도>나 율곡의 <성학집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조선 유학의 전통에 대해서도 교과서적 지식 외에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러면 공부가 '명분 쌓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은 일본이란 타자이다. 한국 철학의 자기인식이 일본 사상이란 타자를 경유해야 하는 이유이다. '퇴폐천국' 일본이란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07. 07. 04.

P.S. 귀가길에 한 서점에 들러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을 손에 들었는데, 이 책이 맞느냐고 점원에게 물어볼 뻔했다. 알라딘에는 분량이 472쪽이라고 돼 있어서 9,900원이라는 정가가 꽤 저렴하다고 생각했었는데(그래서 부담없이 구입하려던 것이었고) 웬걸 고작 220쪽 짜리 책이었다. 입력자의 착오로 보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뻥튀기'이다. 교정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