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3

내가 본 함석헌





내가 본 함석헌 책읽기

2006. 5. 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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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함석헌』

조우석 |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또 한 권의 믿음직한 함석헌 평전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읽을거리 『내가 본 함석헌』을 이번 호를 포함해 두 차례로 나눠 리뷰한다. 실은 "한 10여 회라도 썼으면…" 싶은 마음이다. 『내가 본 함석헌』은 험했던 우리 시대에 흔치않은 두 인격인 함석헌과 김용준의 만남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평전 이상의 평전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중 세월이 좋아지면 수십 권의 함석헌 평전이 나오겠지만, 그 어느 책도 이 텍스트를 비껴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그만큼 소중한 증언자인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정말 내게 각별한 분으로 남아 있다. 게으른 탓에 그 어른을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여러 계기로 내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그가 관여했던 1980년대 신과학운동 관련서를 보며"중진 화학자의 이런 탄력적인 과학관이라니…" 하며 그를 단단히 입력했다. 당시 학계 지원사업이 활발했던 핵심 공간이 대우빌딩 뒤 대우재단빌딩. 그때 그곳은 문화부 기자의 주요 출입처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에 간혹 들릴라치면 그곳의 간판스타인 국제정치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동주 이용희 선생과 함께 김용준, 그분의 손길이 느껴졌다. 젊은 내가 지적 자극을 일정하게 받았음은 물론이다. 당시 막 뜨던 도올 김용옥의 맏형이 그 어른이고, 거의 깝친다는 수준이었던 도올의 스타 기질이란 알고 보면 '장형 콤플렉스'라는 점, 어렸을 때 엄한 장형으로부터 숱하게 종아리를 맞았다는 일화도 재단 후배로부터 전해 듣고 웃었던 기억이 선하다.

김용준과 김용옥이 동향인 천안 출신이라서 친근감을 가졌으나, 김용준의 사람됨에 관한 일화 역시 우연치 않게도 천안 분으로부터 들었다. 그분은 신문기자 대선배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이계익 전 문화일보 부사장. 연세와 상관없이 가장 유연하고 탄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분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장관을 역임했지만, 내가 알기에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그중 리얼하고 잘 쓰인 논픽션의 저자다.

거의 30년 전인 1978년에 선보인 『소양강 뱃사공』(정우사)이라는 매력적인 책. 그 많은 편집국 후배들 중 당신께서는 내게 그 책을 서명해주는 친절을 베푸셨다. 예의 삼아 읽어야 했던 그 책은 험한 현대사의 복판을 걸어야 했던 바로 앞 세대의 삶에 관한 너무도 많은 정보가 담긴 보물단지로 다가왔다. 지금의 나는 그 책을 한국전쟁 시기의 중요한 기록 중 하나로 꼽는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거의 백미에 속하는 당시 전쟁상황의 일상사를 다룬 표현이다.

명문 배재중 1년생인 소년 이계익은 창졸지간에 잃은 아버지 유해를 천안여중 옆의 둑방에 가매장을 한 뒤 인근 시골 광덕에 내려간다. 그게 개전 바로 한 달 전후. "새우젓독 같은 시커먼 폭탄을 주르르 쏟"(19쪽)는 B29폭격기의 공습을 일상으로 여기며 마을 우물가에서 잡아들인 갯붕어의 배를 따던 그는 20여 명으로 구성된 여성 인민의용군을 마주친다. 놀라와라. 장총 한 자루씩을 등에 맨 채 "괴뢰와 더불어 싸워 죽은/ 우리들의 죽음을…" 하는 군가를 부르고 남진을 하던 그들은 배재의 이웃 이화여중 출신 패거리였다.

"'너, 나 모르겠니? 기억 없어?' 이웃한 여중의 5학년 간부였다면서 반갑다는 기색이었지만,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 모두 자원한 의용군이라고 했다. 쑥물을 들인 후줄근한 무명군복이 땀과 먼지에 찌들어 궁상스러웠다. 가슴, 어깨, 등에 얽힌 위장망에는 시든 풀잎이 몇 개씩 늘어져있었다. 장총을 짚고 선 계집애, 따발총을 거꾸로 둘러맨 계집애, 그것도 없는 애는 약통을 걸쳐메고 있었다."(23쪽)

전쟁의 일상에 관한 디테일로 이만한 글을 나는 본 일이 드물다. 중요한 것은 저자다. 개전 초기에 아버지를 잃었고, 막내 동생마저 굶어죽는 모습을 지켜 봐야 했던 그는 10대 시절 '전쟁 마당의 들개'로 추락한다. 마을 공회당 구호양곡을 팔아먹는 것 따위야 여반장이었다. 급기야 천안 한 교회의 책을 훔치다가 붙잡히고 만다. 그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이계익의 밀리에르 신부'가 다름 아닌 청년 김용준이었으니!

"'이 세상에 악인은 따로 없습니다.…' … 딱히 무슨 뜻인지 짚이지 않는 대목도 많았으나 계속되는 그 이야기는 서서히 뜨거운 강물이 되어 나의 발끝에서부터 차 올라오는 것이었다. 드디어 가슴 어깨 그리고 머리까지 물 속에 잠기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젊은 분은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뜨거운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일 천안중학교로 와서 나를 찾으세요. 화학을 가르치는 김용준입니다.' '…' '아니면 저녁시간에 교회로 오세요. 영어 공부들을 하고 있으니까…'"(84-85쪽)

김용준이라는 인격을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할까. 또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이 이토록 우연이면서도 절묘할 수 있을까. 전쟁 직후의 그런 사정은 『내가 본 함석헌』에도 내비치고 있다. 즉 1951년부터 3년간 김용준은 천안에서 화학, 독일어,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 김용준은 "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23쪽)을 만난다. 함석헌이 강연차 그 학교에 내려왔던 것이다. 당시 함석헌을 처음 뵐 때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33쪽)고 털어놓았던 김용준은 지금 천안중앙장로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김용준이 무교회주의자 함석헌 추종자라는 이유로 이단으로 찍혀 교회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이다. 그게 1950년대 시절의 얘기다. 이러저런 이유로 『내가 본 함석헌』은 앞의 내 판단대로 인격과 인격이 만난 '두 겹의 평전'이다. 다음 호에는 그렇게 교직되는 인연 속에서 바라본 함석헌의 모습을 리뷰하겠지만, 다소 인용이 길었던 이번 호의 잠정적인 주제는 간단하다. 우선, 만날 사람은 만나게 돼 있다는 점이다. 사람살이란 때론 그토록 오묘하다.

또 교육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평균적이고 산술적인 실력 끌어올리기가 아니다. 상대의 그릇을 발견하는 행위일 뿐이다. 또 그걸 재확인해주는 보증작업이다. 이계익을 김용준이 발견하고, 그 김용준을 함석헌이 재확인해주고…. 그러면 함석헌은 누구인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20세기 인물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를 꼽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내가 본 함석헌』은 그 모습이 그런대로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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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함석헌』

조우석 |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halfguy@hanmail.net





『소양강 뱃사공』의 저자인 10대 이계익이 운명처럼 '이계익의 밀리에르 신부'에 다름 아닌 20대 청년 김용준을 마주치고, 그 김용준은 함석헌이라는 문제적 인물과 조우를 하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돼 있다고 나는 지난 주 이 지면에서 말했다. 그 점에서 『내가 본 함석헌』은 사람과 사람, 인격과 인격이 만난 '두 겹의 평전'이었다. 교육이라는 것도 상대의 그릇을 발견하는 마주침의 행위일 뿐이라는 비약 아닌 비약까지 내친 김에 해봤다.

『내가 본 함석헌』 역시 그런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함석헌이 함석헌인 이유는 세상이 다 알듯 다석 유영모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했던 오산학교에 함석헌은 3학년으로 편입했고, 그때 두루마기에 고무신 차림의 교장인 다석을 마주친 것이다. "전 생애를 통해서 크게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게 함석헌의 회고인데, 그 말의 무게를 거듭 음미해볼 만하다. 그건 쌍방향이다. 다음 다석의 말도 기억해두자.

""내가 이번에 오산에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 만나기 위해서였던 가 봐." 함 선생님은 류 선생님의 이 한 마디 말씀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왔다고 류영모 선생님의 1주기를 기념하여 모인 자리에서 고백하였다."(92쪽)

우리의 20세기 지성사에서 다석과 함석헌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다소 거칠게 말하면 20세기란 서구 근대학문의 이식사에 다름 아니고, 그것은 대학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식권력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피할 수 없었던 과정이었지만, 그것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식민성이야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핵심 요소다. 다석과 함석헌은 우리의 부끄러움 내지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씻어주는 위안이다.

그 점에서 구한말 민족종교 이후 다석-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족보야말로 '20세기의 장외場外 사상사'의 줄기로, 장차 거듭 연구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퀘이커교도였던 두 분이 어떤 형태로든 기독교라고 하는 수입 종교와 얽혀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바로 그런 근대성의 측면 때문에 민족종교가 갖고 있는 한국 사상의 원형은 근대적 변용과정을 거칠 수 있었고, 이후 20세기로 이어진다는 게 내 판단이다.

어쨌거나 『내가 본 함석헌』에서 유심히 들여다 본 대목은 함석헌의 인간적 약점에 대한 서술이었다. 다석 역시 함석헌에 대해 실망을 안는 계기가 되었던 한 여성과의 스캔들 말이다. 혹시 그 여자문제를 마치 없던 일처럼 처리했다면, 이 평전은 '우러러보기도 힘든 함석헌'의 이미지만을 강조하면서, 국내 평전들이 저지르는 우상화 함정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있었다. "아내 아닌 다른 여인을 범하였다"(123쪽)는 구체적인 서술을 포함해 3개 절節에 걸친 서술은 인간 함석헌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가 오모 여인이라는 것, 그 여성은 천안 씨알농장에서 함석헌의 취사를 돕던 사람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일 것이다. 정권의 사주를 받은 함석헌의 조카뻘 되는 조순명이라는 사람이 『거짓 예언자』라는 책을 써서 재야세력의 핵심인 함석헌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는 90년대 말 필자가 근무했던 신문사까지 찾아와서 함석헌이 얼마나 호색한인가를 내게 강조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당혹스러웠고, 근거 없는 호색한의 이미지를 잠시 주입시켰음을 고백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 할 수 없고, 한마디로만 들어주십시오. 여성문제에서 잘못한 것입니다. 놀라고 슬퍼하실 줄 압니다마는 사실입니다. 친구들 다 소식 끊어졌고 류(영모) 선생도 매우 섭섭하게 여기시는 중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우선 형이 나를 친구로 계속해 대해주겠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럴 염치 없고, 형의 넓은 생각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내 혼이 상처를 입었습니다(1960년 9월 30일자)."(127쪽)
그 편지는 함석헌이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신학자 안병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때 함석헌은 환갑 나이였고, 단 한 번 외도로 그런 고통을 겪었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결혼했던 부인이 일생을 문맹으로 마쳤다는(133쪽) 점도 나는 이 평전에서 처음 알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함석헌을 종교적 성인 반열에 올려놓고, 그의 윤리를 재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옳다. 내 경우 이 평전을 통해 비로소 사람 함석헌이 친근하게 느껴졌음을 고백한다.

그런 함석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저자는 "나는 함석헌을 서슴없이 '정신적 낭만주의자(Spiritual Romantist)'라고 부른다"(39쪽)고 말한다. 포괄적인 규정으로는 공감할 수 있다. "워즈워스뿐만 아니라 셸리, 바이런, 브라우닝 등 19세기의 낭만주의 시인들을 즐겨 읽었다는 이야기와 또 "나는 낭만주의자이지, 별 수 없어."라는 그 자신의 고백"(34쪽)에 대한 인용도 그걸 뒷받침한다. 흥미롭다. 저자는 그 말을 주로 멘탈리티에 대한 규정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함석헌의 공적 생애가 만개한 1960년대,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 역시 현실정치에 대한 인식에 앞섰던 낭만주의 멘탈리티가 아닐까 싶은 나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싶다. 그러나 함석헌은 동시에 1인 저널리스트이자, 노장사상과 인도사상에 대한 해석자이기도 했으며, '고난의 역사론'이라는 독자적인 사론을 가졌던 재야 한국사 연구자다. 무엇보다 그는 걸출한 시인이기도 했다.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 우리는 함석헌 연구의 첫 발을 뗀 것뿐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 그것은 내 천분도 그렇겠고, 나 자신 삶에 참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우리 역사가 그런 역사다. 한 사람의 다윗도 예레미야도 난 일이 없고, 단테도 밀턴도 난 일이 없다. 그 좋은 자연에 워즈워드가 못 났고, 그 도발적인 타고르가 못 났다. … 나도 영원을 지향하는 충동을 품고 고난의 역사의 짐을 지는 한 개 심정인 이상 시가 왜 없으리오만, 그것은 품어주는 날개 없는 알같이 다 곪아버릴 수밖에 없었다."(함석헌의 시집 『수평선 넘어』 머리말 재인용,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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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가 본 함석헌|작성자 stupa84

김시천 제14강 함석헌 노장 해석의 특징

 김시천 교수의 함석헌과 『노자』



제1강 『노자』제대로 읽기
제2강 『노자』에 관하여
제3강 『노자』와 무위 1
제4강 『노자』와 무위 2
제5강 『노자』와 페미니즘 1
제6강 『노자』와 페미니즘 2
제7강 『노자』의 소국과민
제8강 『노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제9강 상상력과 과학
제10강 『노자』와 자연
제11강 『노자』와 성인 1
제12강 『노자』와 성인 2
제13강 함석헌과 『노자』
제14강 함석헌 노장 해석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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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함석헌 노장 해석의 특징

◆ 새로운 방식의 노자 읽기


▲ 새로운 방식의 무위 개념

그럼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 함석헌 선생님의 독특성이라기 보다는, 노자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따져보는 시간을 가져야 겠죠.

7쪽에 있는 내용. 재밌는 내용 “Let them leave it untouched”는 예전에 말씀드렸죠. 그래서 이걸 말로 넘어가셨지만 도올 선생은 Let it be를 부르는 걸로 방송에서 연출도 하셨죠. 엔터테인먼트도 갖고 계신 훌륭한 분이시니까. 그건 놀라운 재주예요, 진짜. 저도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자, 그 다음에 그걸 이어서 도올 선생이 해석했던, 8쪽을 보시면, 박스에 있죠.

[노자는 그 컵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위유위라고 부른다. 유위란 곧 존재에 있어서 허의 상실이다]

동아시아 개념자체가 들어갑니다. 허는 본래, ‘비어있다’ 그래서 무 자와 비슷한 것처럼 쓰는데 원래 허자의 고형, 허 자가 나무가 드문드문, 풀이 드문드문 나 있는 허허벌판을 뜻합니다. 그런 용례도 있어요. 존재론적 무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비어있다, 비우다. 그건 자연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허의 상실은 기의 상실을 얘기합니다. 기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열역학적으로 말하면 엔트로피의 증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반대 방향의 행위, 즉 빔을 極大化하는 방향의 인간의 행위를 바로 무위라고 부르는 것이다] 생태와 노자와 만나서 새로운 방식의 무위개념이 탄생하게 됩니다.

[노자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채우는 방향의 우리의 심적 작용이 곧 유위요, 마음을 비우는 방향의 심적 작용이 곧 무위인 것이다.”(『노자와 21세기』, 189-90쪽)]

이런 식의 표현들은 고전적인 용례에도 있었던 것이죠. 허정이라고 했어요. 그런 용어의 의미가.

그런데 이 속에서 우리는, 빝에 세 번째 줄을 보세요. “이러한 도올의 해석은 이미 함석헌의 ‘이야기’ 속에 간명하게 나타나 있다.” 앞에는 이야기로 나옵니다. 옛날에 민둥산 돼가지고 거길 어떻게 조림할 것인지가 필요해서 외국 조림 전문가를 불렀더니 “냅둬유” 라고 이야기로 합니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개념적으로 얘기하는 거죠. 오른 쪽은 철학이고 왼 쪽은 철학이 아니냐? 저는 과감하게 ‘철학에서 이야기로’라는 용어를 만들어본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해석적 틀을 먼저 보여주고 있었던 게 함석헌 선생의 해석방식이었단 겁니다.


▲ 도가와 아나키즘

『노자』는 기본적으로 유위보다 무위를 중시하고, 문명보다 자연을 중시하고, 간섭보다 아나키를 중시하는 것처럼 얘기해요. 특히 도가하면 아나키즘으로 해석하는데.

얼마전에도 제가 도가사상과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논문을 읽다보니까, 그 속에 이와 같은 것은 당연한 전제처럼 얘기해요.

저는 그런 전체자체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죠. 이런 도식자체가 고대중국에서 이미 형성하는 과정에 있었는데, 그 형식을 전제한 다음에 도가와 아나키즘이 된다.

일단 아나키즘이란 사상 속에는, 그 분은 그런 글을 썼어요, 도가는 인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이기 때문에 자유를 최고로 실현하고자 하는 아나키즘과 통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 아나키즘 속에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대개가 강력한 개인주의를 전제로 합니다. 완벽한 개인들을 전제로 해요.

그런데 도가에는 개인에 관련한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개인은 딱 한 사람, 제왕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아닌 제왕의 만물일 뿐이거든요.

그럼 그것이 어떻게 아나키즘과 동일한 방식의 사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 참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얘기죠. 노자를 이야기하면서 아나키즘과 가까이 갈 수 있는 부분은 다 장자에서 끌어와 노자에게 얘기해버리거든요.

하필이면 그런 혐의는 있어요. 소국과민 부분을 같이 읽었었죠. 그런데 그 부분이 장자에서 인용돼요. 굉장히 전원적인 부분을 쫙 이야기하면서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노자 자체는 어떤 주석서, 어떤 시대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었죠. 어떻게 본다면 함석헌 선생의 얘기가 전통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주로 보는 노자와 장자와 관련한 텍스트들은 다 위진시대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그 앞의 것도 안 보고 그 뒤의 것도 안 봅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은 송대의 모음집을 봤기 때문에, 그게 바로 노장전통에 있는 겁니다. 그런 주석서들을 봤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함석헌 선생님 입장에서는 고전에서 끌고 온 것이거든요.

그래서 9쪽을 보면, 맨 밑에 새롭게 시작되는 부분. 이건 기본적인 함석헌 선생의 전제입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공자의 도(道)가 목적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라면 노자·장자의 도는 길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한없이 크고 넓은 것이고 삶의 근본, 있음의 밑바닥이라고 말한다.]

노장을 일단 높이 올려놔요. 올려놓는 까닭이 뭐냐. 실현의 방법이지만 실현하기 위한 내용 그 외침의 목소리가 어디에 있냐면, 있음의 밑바닥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즉, 현실의 기저에 해당된다는 뜻이겠죠.

[“『장자』는 그저 단순히 시원한 문학만이 아니다. 이것은 피눈물이 결정된 저항의 문학이요, 삶의 부르짖음이다... 그렇게 볼 때 평화주의란 결코 평안에서 오는 한가한 말이 아니요,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비폭력의 부르짖음임을 알 수 있다.”(, 34쪽)]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비폭력의 부르짖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말하지 않아도 늘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 속에는 뭘 갖고 있냐면.

[“이제 역사는 크게 변하려 하고 있다. 물질주의, 지식주의, 권력주의, 적극주의의 서구문명이 차차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사람들은 그 산업 방법, 그 학문, 그 종교를 근본에서 고쳐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때를 당했다.”(, 34쪽)]

지금에 와서 이런 얘기를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뒤늦은 얘기 아니냐, 내용 없는 얘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2,30년 전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동양학을 학문이 아니다,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진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죠.


▲ 새로운 방식의 노자 읽기

그 다음 페이지를 보면, 그 동안 우리 논의에서 하상공 식의 노자 읽기가 얼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지 그리고 얼마나 회남자와 닮았는지. 그런 방식의 것들은 이미 다 확인했죠.

자, 그런데 그와 같은 권모술수적인 내용을 담은 것마저도 함석헌 선생님의 해석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바뀝니다. 비교를 한번 해보죠. 11쪽 보시면, 전에도 읽었던 부분인데.

[“모으려 할 때는 반드시 흩으는 법이요, 약하게 만들려 할 때는 반드시 세게 만드는 법이요, 무너뜨리려 할 때는 반드시 일으키는 법이요, 뺏으려 할 때는 반드시 주는 법이니, 이것이 이른바 숨은 밝음이다. 부드러움이 굳음을 이기고, 약한 것이 센 것을 이기나니, 고기가 깊은 소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요, 나라의 날 선 그릇을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니라.”(將欲翕之, 必故張之; 將欲弱之, 必故强之; 將欲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勝剛, 弱勝强. 魚不可脫於淵, 國有利器, 不可示人. , 44쪽)]

이 부분을 바로 어진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을 개인의 제심탈정, 즉 자기 마음을 잘 컨트롤하고 정욕에서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 권모술수적인 성격, 그렇게 해석되는 미명이라는 단어는 좋은 게 아니라 음흉한 거예요. 달리 말하면, 뒷통수 치는 행동방식을 얘기하는 겁니다. 하상공 이 주석을 이 부분을 아주 쉽게 해석합니다.

[“먼저 열어주고 펴주어라”는 것은 그들이 사치와 음란을 끝까지 다하게 해 주려는 것이다. “먼저 강하고 크게 해 주어라”는 것은 재앙과 환란을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자, 이런 식의 말들의 의미가 뭔가가,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일 수도 있지만 정치가들은 일부 이런 테크닉을 가져야 합니다. 청렴결백 강직하기만 한 정치가는 끝까지 갈 수 없잖습니까.

하지만 그가 의로운 일, 의로운 말, 의로운 선택만을 통해서 그럴 수 있느냐. 그걸 지키기 위해서 조절할 필요는 있는데, 이 속의 얘기는 그런 게 아니죠. 훨씬 더 강하죠.

[ “먼저 일으켜 세워주라”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고 위태롭게 하려는 것이다] 잘 보세요. 교만, 위태 등등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지면 가질수록 고꾸라지기 쉬운 덕목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하게 부추기라는 말이죠.

[“먼저 주어라”고 한 것은 그들이 탐욕스런 마음을 다 부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될 거예요. 왜 그러냐.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 세져요. 그가 나의 재산을 원해요. 그럼 다 주면 됩니다. 하지만 고꾸러진다. 걔 꺼 다 갖고 오면 돼요.

회남자에 뭐라고 나오느냐면, “자꾸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려고 하지마라. 천하의 창고가 다 너의 것인데, 황실 창고에 두나, 백성들 창고 곳곳에 풀어두나 뭐가 다르냐” 는 거예요.

이것도 발상의 전환으로부터 비롯되는 겁니다. 천하의 황제가, 제왕이 천하를 통치하는 방식은 자꾸 그런 자리옮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필요할 때 가져다 쓸 수 있잖아요.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런데 그런 방식의 논리가 이미 전제돼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가능한 겁니다. 달라 그러면 다 줘요. 하지만 니꺼 내가 뺏어갔으니까 가져온다, 그런데 그때 이만큼 뺏겼으니까 이만큼 가져오겠죠. 이게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 없죠.

[이 네 가지 일은 그 방법이 보이지 않으며, 그 효과는 아주 좋다] 번역이 끝내 줍니다. 그 효과가 밝다가 아니라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하니까, 함석헌 선생의 번역을 보면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번역어들이 툭툭 튀어 나와요.

그 다음 단락을 보죠. 박스에 든 글이요.

  • [“그러나 보통 밝다면 환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모를 사람이 없지만, 
  • 그러나 이 천하만물을 살리는 참빛은 빛 아닌 빛이다. 
  • 그러므로 이(夷)요, 희(希)요, 미(微)라고 한다. 
  • 숨은 빛, 가리워진 빛이다. 
  • 예수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왜 숨겨져 있고 가리워져 있나? 
  • 물건이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물건이나 일은 힘의 표현이다. 
  • 힘은 강하지만 강하기 때문에 약하다.”

(, 45-46쪽)]

여기서 말하는 빛은 이런 겁니다. 신문을 보니까 여섯 살짜리 아이가 인터뷰에 등장해요. “여기 왜 나왔니?” 그랬더니 “내가 여섯 살인데 십년 후에 내 머리 빵꾸나서 죽기 싫어요.”하고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경향신문에서 읽은 건지, 프레시안에서 읽은 건지 혼란스러운데.

그때 아기의 말 자체는 명시적인 거잖습니까. 말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공감을 하고 초를 들고 나가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안전하다 꼬마야”라고 말하고 있어요. 뭘 모르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기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거고, 그런 아기를 기르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숨겨져 있다는 뜻은 그런 겁니다. 본다고 해서 다 보는 게 아니라는 거죠. 즉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게 아니고. 이게 바로 견문의 뜻이라고 했죠.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동아시아 전통 감각이론에서는, 감각적 오류는 없습니다. 모든 게 다르나 있어요.

다만 제대로 보지 못 하도록 무언가 장애가 있거나 방해가 있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일 뿐이에요. 동아시아 전제는 그렇습니다. 그게 일원론이라는 거죠.

되게 희한해요.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하면 저 말의 의미는 뭐라고 간파해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정치일선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뚝심, 흔들리지 않는 부분을 경제에 갖다 놓으면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으랴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뚝심을 엄하게 백성들과 겨루는데 발휘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렇게 된 김에 좋은데다 뚝심을 잘 발휘하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13쪽을 다시 보면, 이러한 미명 사상을 참된 빛으로까지 나아가서 이야기하고, 이걸 또한 유의 체험이라면서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도 연결시킵니다. 이분이.

여기서 앞에 얘기하는 ‘가리워진 빛’ ‘어린아이들’ 그 다음에 주체가 누구를 염두해 둔 거냐면, 치자와 피치자를 염두하고서 발언을 하시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건, 힘없는 민초 씨알들이 커다란 독재정권을 이겨낼 수 있다고 그 당시에 이야기한 거죠.

[“모든 있음은 있음 아닌 데서 나온다.(이게 왕필의 형이상학에서 나온 건데)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모세가 당신이 누구십니까 했을 때 온 대답이 ‘네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했다. 천지 만물은 자기 주장을 아니 하는 이, 자기를 무한히 내 주는 이, 스스로 희생하는 이가 있어야만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의미 있는 부분입니다. 이게 기독교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때 “있음은 있음 아닌 데서 나온다”고 할 때 “있음아님”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 분은 나름대로 체감하고 계신 거예요.

즉,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는 개념적인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내어주기 때문에 계속 비어있는 뜻이 된다는 거죠.

달리 말하면, 신이 인간에게 무한히 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있음과 없음의 관계는 도치됩니다. 실제로 없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상대방에게 내어주기 때문에. 굉장히 친숙하고 쉬운 방식입니다.

[세상에 악이 있고 불의가 있는 것처럼, 그 악과 불의가 있으면서도 세계가 서가는 것은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일은 없다. 노자는 이래서 도를 유(柔)한 것 약한 것으로 체험했다.(, 46쪽)]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유생허무라는 구절. “있음은 없음에서 나온다” 이걸 서양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었냐면 Being originated from Non-being. 유생허무를 이렇게 번역해놓으니까 국내의 몇몇 필자들이,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나온다고 해석했어요.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피현이잖아요. 그렇죠?

그거 하나만 가지고 토론한다면 며칠이 걸릴 겁니다. 더군다나 Being만큼 어려운 말이 없잖아요. 동양인들에게는.

그런데 이 말도 어려운데 Non-being은 또 뭡니까. 존재도 이해가 안 되는데 비존재라니. 끔찍하게 어려운 말이에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그런데, 보세요. “있음은 있음 아닌데서 온다.” 그것참 재미난 표현이에요. 하지만 이거 나름대로 근거 있는 해석이거든요. 이 말 때문에 서양의 사상가들이 뒤집어 졌어요. 노자는 이것 때문에 유명해진 겁니다. 이것과 첫 번째 구절.

당시에 왜 그랬느냐. 당시에 비슷한 말했던 철학자가 있잖습니까. 비트겐슈타인. 즉 미국과 같은 지형도에서 노장 철학의 첫 번째 장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던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그런 걸 흡수할 수 있는 나름의 철학적 지평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비트겐슈타인의 경우가 그 당시에 활동했던 경우고, 초창기 노장 번역서가 물밀 듯이 들어갈 때. 그런 부분은 당연히 염두하고서 읽어야 하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 존재론을 연구하는 서양철학자들에게는 한마디로 뒷통수치는 이야기였고, 비트겐슈타인처럼 뒷통수치게 만든 구절이 여러 개 들어 있는 거예요.

여기서 “니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부분은 도올 선생의 노자와 21세기 에서도 굉장히 재밌게 한달 동안 이야기하시죠. 오히려 나중에 신학체계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번에 보니까 “큐경전”을 번역하셨더라고요. 엊그저께 보니까.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리 널리할 수 있는지 쉬운 일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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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nstudy.com/PLecture/scKim02/lecture/14_02.htm

◆ 함석헌 노장 해석의 화해의 철학


▲ 노장 사상을 대하는 삼국의 태도

제가 이 부분을, 상식의 창조라는 관점에서 봐야하고 독특함이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면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되실 거예요. 14쪽을 보시면, 도가나 노장 같은 사상을 대하는 삼국의 태도가 굉장히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일본의 번역서나 중국의 번역서가 비슷해 보일 것 같죠. 하지만 20세기 전반기에 도가나 도교, 노장을 연구하는 태도는 삼국이 굉장히 달랐어요.

중국은 어떠냐. 중국은 크게 얘길 많이 하죠. “도교는 유(儒), 불(彿), 도(道) 삼교(三敎)의 하나로서 가장 중국적인 ‘민족 종교’” 이게 바로 도교의 가장 중요한 얘기 중 하나입니다.

이게 지금 중국 사회에서 티벳 등등의 문제 때문에 나름대로 민족주의를 활성화하려는 공작을 상당히 많이 했죠. 그러다보니까 그것이 요즘은 애국주의로 빠져서 문제가 분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올림픽 성화 봉송할 때 한국에서 중국 유학생이 보여준 모습은 보기 흉했죠. 우리가 마치 황우석 사태 때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저는 이번에 촛불집회를 보면서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문제점에서 많이 벗어나는 게 아닌가. 적어도 이번 경우만 봐도 보는 자체가 흥겹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은 위험한 수위까지 가는 게 아닌가. 더구나 중국은 문맹률이나 교육의 보급 부분에서 사회의 기본적 인프라가 많이 안 돼 있고, 시민사회도 더딘 편이고, 그런 사회적 조건 속에서 애국주의가 만연한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처지잖습니까. 그런데 참 안타까워요. 도교하면 민족종교예요.

유는 종교라고 잘 안 해요. 오히려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 활동했던 현대 신유가에 의해서 도덕종교라는 표현을 쓰는데, 대륙본토에 있던 사람들은 유학을 종교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합리적으로 접근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걸 아셔야 하는데, 대만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수사가 화려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대륙중국에서 활동하는 유학이 논리적으로 훨씬 조야해보일 수도 있지만, 실지로 힘 있는 중국철학에 가까운 것은 대륙 쪽이라고 봐요.
그리고 외국에 나와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오히려 철학하는 사람보다는 사상사를 한 분이 훨씬 수준이 높고 철학적인 발언의 수준이 훨씬 건전하고 좋습니다.

만약 보실 기회가 된다면, 여영식 (여영시Ying-Shih Yü)이라는 학자가 있어요. 굉장히 제가 존경하는 학자 가운데 하나이고 70년대부터 쓴 논문 하나하나가 끝내줍니다. 새로운 눈을 열게 만드는. 제가 처음에 봤던 논문이 짧은 글인데, a soul comes back이라고 하는 중국인의 영혼을 다룬 글이에요. ["O Soul, Come Back!" A Study in The Changing Conceptions of The Soul and Afterlife in Pre-Buddhist China]

그걸 보면서 고대 중국에는 육신과 영혼의 분리라는 관념이 없었다, 사기라고 말해요. 중국적 사유라는 천인일체, 자연과 문명 자체가 사실은 서구를 염두해 두고 반대로 규정하다보니까 만들어진 20세기 이데올로기가 무지 많아요. 허황된 동양학을 하고 있다는 거죠.

90년대부터 그런 부분이 많이 극복되긴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상식화돼 있다 보니까 대화가 안 돼요. 제가 그런 얘길 하면, 제가 마치 중국 철학이 아니라 서양 철학을 공부해서 서양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데 그건 참 저도 받기 싫은 오핸데. 원전에 준해서 얘길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 다음에 민족종교로서의 도교는, 불교가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 유일한 종교가 도교기 때문에 그래요. 도교는 중국 역사 내부에서도 회한이 있는 종교이기도 한데, 가장 민간적이지만 가장 정치적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사기도 많이 쳤고.

그리고 긍정적으로 기획된 부분도 상당하죠. 예를 들면 중국에서 혁명운동의 상당수가 도교전통과 관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중국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도교는 불교의 외래성에 대해서 토착성을 강조합니다. 자생성을 강조하고. 그 다음에 국제적으로 이걸 지지받고 있어요. 그 지지하는 사람이 중국인이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도교 쪽을 신봉하는 연구하는 상당 분들이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갖는 분들이 꽤 있단 말이죠. 사실 은 도교와 관계있으니까요. 도교라고 딱 말하기 어려운 삼교혼합적인 성격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도교하면 민족종교가 책마다 다 나와요. 이게 대체 뭐냐는 걸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어떠냐. 일본은 도교학을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토대학 출신이 많아요. 우리가 읽었던 초창기 책들이. 교토대학은 왜 만들었느냐. 중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학술장려책으로 만든 게 교토대학이에요. 정책적으로 만든 대학이라는 거죠.

그래서 중국사를 거기서 엄청나게 연구를 했고 도교를 연구했습니다. 그건 중국을 식민통치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중국보다 먼저 일본에서 중국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게 일본학자들이 대단히 뛰어나고 위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나라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예요. 장려해주니까. 그래서 일본은 영국의 인도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제국주의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국 지배를 위한 정치적 요구에서 연구가 본격화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뭐냐면, 중국은 자꾸 끌어가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이겁니다. 새로운 뭔가가 발견되잖아요. 예를 들어 중국 사람들은 불교를 얘기할 때 채용론 많이 이야기합니다.

일본학자들이, “너네 그거 없던 거야. 너네 불교에서 배운 거잖아.” 그러니까 일부학자들은 채용론이 “왕필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다음에 그게 장자로 간다.”해서 나름대로 형이상학사를 구축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사기라고 보죠.

불교로부터 배웠건 안 배웠건 간에 고대 중국에서는 나중에 말하는 채용론과 같은 방식의 명확한 사유방식의 흔적을 보지 못 했어요. 오히려 다른 방식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분명하다는 거죠.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왕필을 채용론자로 보는 한 때의 기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왕필은 본말론자입니다. 본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노자를 해석하거든요. 그럼 본말론자예요.

그래서 왕필은 굉장히 유가적인 사람이에요.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문헌이 나오면, 그런 식으로 중국적 정신, 자존심에 흠집 내기 방식의 연구가 많았다는 겁니다.

어떤 문헌이 나오는데 이 얽힌 고사를 보니까 불교서랑 비슷해, 이거 기원전 몇 년 것이 아니라 기원후 600년 것이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그러면서 그 책이 한참 뒤에 만들어진 거라고 끌어내려요. 중국 사람은 막 올라가요. 그럼 미국사람이 양 쪽을 다 본 다음에, 중간입니다.

요번에 신문을 보니까, 광화문에 나온 사람 집계가 경찰에서는 지난 10일 날에도 8만, 나중에는 12만, 바뀌더라고요 숫자가. 그리고 주최측에서는 당연히 더 늘이고 싶겠죠.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농담 삼아, 두 개를 딱 더해서 반만 절충해서 하면 된다고 얘길 하는데,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중국학자와 일본학자들이 줄다리기 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아요. 대개 저는 그런 식으로 하는데.

나중에 대부분 그런 식의 정리를 하는 사람의 논의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양 극단을 피하는 식의 논의다보니까.

세 번째는 서양의 경우인데, 서양에서는 이른바 종교적 도교연구가 강합니다. 타오이즘이라는 말은 그 전에도 쓰였지만, 이건 제임스 레게라고 하는 사람이 노자와 장자를 번역하면서 타오이즘이라는 용어를 적용시켰고 그래서 노자와 장자로부터 비롯되는 중국의 종교전통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제임스 레게가 이 용어를 정착시킨 거예요.

그 다음번에 바통을 이어 연구했던 사람이 프랑스 출신의 사회학자들. 이 사람들은 두 가지를 결합했다고 말씀드렸죠. 하나는 대만과 같은 실증연구, 그 다음에 운남성엘 가서 고문헌과 운남성에 있는 장족, 묘죡 같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드워크가 결합됐어요.

이 사람들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타오이즘은 신비주의입니다. 이게 우리나라에 몇 권 소개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신비주의로 해석해요.

달리 말하면, 종교라고 하는 거죠. 그럼 왜 종교로 볼 수밖에 없느냐. 종교를 전파해야 하는데, 그렇잖습니까. 제임스 레게가 유가 경전들을 그렇게 번역한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 풍토를 이해해야지만 기독교를 설파하는 데 효율적이니까 그런 겁니다.

인도에 관한 풍부한 문헌이 영국에서 성립될 수 있었던 것, 특히 막스 윌러 같은 사람이 종교학 전집을 만들면서, 중국과 관련된 텍스트는 다 레게 것이 들어가서 출판됐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선교를 위한 전략방침과 더불어 본격화되었고, 이건 과거 카톨릭에서 파견되었던 선교사들은 위로부터 아래로예요. 즉 위를 개종시킴으로써 백성들을 개종시키는 방향의 국가적, 정치적 차원의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개신교는 노방전도를 하죠. 그런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영국엘 가면 목사님들도 다 담배를 피는데 한국의 목사님들은 담배 안 피시잖아요.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노방전도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전통을 만들다보니까 굳어진 거잖아요. 다 알고 있어요. 목사님들 다 알면서도 지금 담배 피는 목사님 없어요.

전통의 구성력이라고 하는 것, 그 차별화만큼 한국 사회에서 옛날에 한국 사람들 진짜 술 먹고 담배 펴서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요, 사람들을.

그런데 요즘에는 국가가 담배 피는 사람들을 막 사회 전반적으로 괴롭혀가지고, 저도 아주 피곤한데. 이제 끊긴 끊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이런 마스페로(Maspero)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현지조사연구"가 결합하는 민족지적 성격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싸잡아서 비난할 수 있느냐? 사람들이 새롭게 보도록 만든 부분도 상당히 있거든요.


▲ 한국에서 탄생한 함석헌의 노장 해석

이렇게 본다면 함석헌 선생님이 갖는 노장 해석의 특징, 즉 함석헌 선생의 텍스트를 가지고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면 굉장히 다릅니다. 물론 옛날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고 해서 우화 비슷하게 책을 나온 적도 있죠.

그런 방식의 책들은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상적인 깊이를 갖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자기의 사상체계 속에 녹아드는 방식으로 해낸 건 함석헌 선생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저는 더 나아가서, 15쪽을 보시면. 물론 노자가 권모술수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철학만은 아니라고 저는 과거에 생각을 해서 떠나려고 했는데,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하면서, 화해적인 방식의 텍스트 독해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화해적 방식은 이런 거예요. 특히 학자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예를 들면 기독교와 유교가 만날 수 있다고 하면, 기독교와 유교의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다른가, 같은가를 비교하는 거였어요.

즉 같고 다름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그런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까 원전중심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요. 같고 다름을 판정하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기본 적으로 다른데 다른 것이 만나야 해요. 아버지는 절 다니고 자식은 교회 다녀요. 그렇죠? 한국 사회의 독특한 풍조입니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많이 바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외국에서는 그렇게 못 산다는 거 아시죠. 한국에서 그랬다가는 풍지박산 나고. 대한민국사가 독특해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외국에는 정말 보기 힘든 제도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이 종교 지도자와 오찬을 하는데, 가톨릭, 개신교, 불교, 천도교. 희한한 일이라고 해요.

그건 함석헌 선생님처럼 도가 로고스요, 도가 진리의 빛이요 라고 하는 언설은 당연히 개념적으로 문제가 많을 수 있죠. 이건 도, 하고 나서 전세계 유명한 종교지도자와 철학자가 이야기했던 가장 상위개념이 다 나열됐어요.

학문적으로 무가치하냐? 저는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황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이런 방식의 언설들이 바로 들음을 낳고 상식을 만들 때 불교신자와 기독교신자와 가톨릭신자가 한집에서 같이 싸우지 않고 사는 현상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달라서라고 할 순 없죠. 더군다나 특히 한국사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흑백논리적이고 이념적인 색깔론에 많이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색깔논쟁에 있어서는 한국만큼 강한 데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런 종교적 관용이 있을 수가 있느냐. 달리 말하면 한국사회 종교지도자들이 상당히 관용적이고 화해적인 분위기를 이루어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독교도 그런 부분에서는 다시 봐야 해요. 기독교가 이단의식이 가장 강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가 갖는 모양새도 그 관용적인 분위기에 적응돼 있거나 그걸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바로 이러한 현상의 배후 속에서 함석헌 선생님이 의미가 있는 거고 류영모 선생님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이 얘기를 왜 꺼냈냐면, 함석헌 선생님과 류연모 선생이 노자 철학에서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 그걸 밝힐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건 학자들끼리 하면 됩니다.

한국 땅에서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겠다는 분이니까,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평가를 해줘야 하는 거죠. 노자 철학과 상관없이 오히려 종교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하나의 원천으로 우린 해석할 수 있고, 그건 그야말로 노자 철학을 획기적으로 채용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낸 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노자에 대한 해설서, 주석서니까 노자 철학서들끼리 평가한다는 방식은 상당히 편협한 방식이라면, 넓게 봐야 한다는 거죠. 그 시대의 공간 속에서 그가 의도 했던 자리에서.

15페이지를 보시면, 이게 조선조에서도 이단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도덕경과 관련한 주석서를 낸 율곡 이이 선생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단이 유학에 어긋나는 것은 그 잘못됨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되지 않은 것은 진실로 취할 만한 것이 없지 않으니, 잘못된 것을 제거하면 순수해진다. 고명한 선비가 이단에 빠져들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순수한 것만 보고 순수하지 못한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1750년 정월, 『율곡 이이의 노자』, 126쪽)]

보지도 못하는 책, 보지도 말라는 책을, 좋은 것만 골라 읽으면 못 읽을 이유가 왜 있느냐고 말합니다. 박세당 것은 지난 번에 얘길 했었죠.

16쪽을 보면, 한원진의 『장자변해』 상당히 드문 주석서입니다. 중간에 보면 이렇게 얘길 합니다. 다 읽죠. 본 김에.

[“내 생각에 장주는 육경의 요지에 대해 논하여 “『詩經』은 情性을 말하였고, 『書經』은 政事를 말하였고, 『禮記』는 행실에 대해 말하였고, 『樂經』은 조화를 말하였고, 『易經』은 음양을 말하였고, 『春秋』는 명분을 말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정자(정이천,정명도 형제를 말합니다)와 주자가 아직 나오기 전이었는데도 이렇게 한 마디 말로 그 핵심을 끄집어내어 논할 수가 있었으니, 이와 같이 분명하고 의미를 다한 것은 없었다. 그런즉 장주의 학문이 깊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가 성인의 뜻이 대해서도 또한 알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그는 本源上達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이르지 못하여 방자하게 말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 폐단이 마침내는 이단을 말하고 도를 훼손하는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배움이란 본원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이와 같은 말을 덧붙여 둔다.” (한원진의 『장자변해』)]

본원 등등 이단 등등에 관한 말들은 생략하시면 됩니다. 왜. 그런 말들을 붙이지 않으면 쓸 수가 없어요. 말하자면, 과거 북한에서 책을 쓸 때,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말을 쓰고, 그 다음에 중국에서 책을 쓸 때마다 마오의 한마디를 다 배달하면서, 맑스레닌주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사하듯이 하는 말처럼 생각하시면 돼요.

성리학 사회에서 이런 말없이 쓸 수 없거든요. 하지만 중간에 문장, “장주의 학문이 깊지 않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가 성인의 뜻이 대해서도 또한 알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은 엄청난 격찬이에요.

공자를 알았다고 말하는 건 대단한 칭찬이거든요. 달리 말하면, 많은 분들이 마치 20세기의 이단에 대해서 경원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이단의식이 있었다면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한문학 하시는 분들은 허심탄회하게 말해요.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자백가에 달통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여기 고미숙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 소설의 양식이나 표현은 다 장자 패러디한 것들이거든요. 표현양식이.

그렇게 장자를 인용했지만, 장자에 관한 책을 쓰지는 않았죠. 그러니까 박지원 같은 지식인들의 기본적인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치 이단에 관한 걸 안 읽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오히려 현대의 우리들이 더 이단에 대해서 더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한원진 선생은, 자기가 한 때 관심이 있어서 볼 만한 책은 다 봤대요. 장자에 관한 주석서는 다 봤대요. 무지무지하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 장자를 제대로 말한 것 같지 않아서 쫙 쓰는데 이것이 또 굉장히 치밀해요. 논리적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도 번역하고 싶은 책이기도 한데.

우리는 오히려 이단의식이라는 게 이단을 배척하는데 있지만 사실 동아시아에서 이단정신이라고 하는 건 함께 어울려 사는 논리를 만드는 데 그 목표가 있어요. 배척하고 소외시키고 왕따 시키는 데 목표가 있는 게 아닙니다.

“너희는 이단이다”라고 하는 것은 “너희들이 우리와 섞여 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보강해라.”고 하는데 이단의식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단의식과 다르죠. 그와 같은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왜냐하면 사회동포주의를 갖는 것이 바로 유가입니다.
그가 우리와 같은 문화, 우리와 같은 삶을 공유하는 인간인 한 다 유학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에요.

그런데 이단이니까 “너 나가”가 아니라 “이 선을 넘어 들어올 때는 이것만 지켜라.” 그래서 도교, 불교에 대해서 그런 걸 약속했습니다. 특히 선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와 같은 계율로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참선하는 걸 실천하면서 그게 살아남는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유학의 포섭정책은 놀라울 정도죠. 사상적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자, 함석헌 선생도 분명히, 저는 기독교 종교인으로서 출발한 부분도 있지만 이와 같은 조선 지식인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필이면 그가 읽었던 노자, 장자에 관한 책이 이 노장전통에 속하는 집회본이었어요.

따라서 그러고 보니까 상당히 포용적이고 화해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그가 그런 방식으로 화해적인 독해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과연 이단을 배척하는데 굉장히 주요한 논리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쉽게 정하고 있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그렇게 포용적인 방식의 태도를 갖는다는 건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줄 수 있다는 정신적 진원지는 아마도 종교 다원주의적인 한국의 분위기. 이건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 하는 사이 흐르는 것 가운데 하나일텐데.


▲ 함석헌 노장 해석의 화해의 철학

그래서 저는 함석헌 선생의 화해의 철학, 사실은 독재를 비판했던 철학이지만 궁극저긴 내면은 화해의 철학에 있었고 이런 부분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게 아닌가.

제가 처음 출발할 때, 노자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을 읽는 코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던 것 같은데. 그와 동일합니다.

그러한 코드 가운데 가장 커다란 코드가 있었다면 바로, 함석헌 선생과 같은 코드가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 있고 앞으로도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으로 그간 진행해왔던 노자와 관련한 강의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시천 제13강 함석헌과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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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교수의 함석헌과 『노자』 강좌


제1강 『노자』제대로 읽기
제2강 『노자』에 관하여
제3강 『노자』와 무위 1
제4강 『노자』와 무위 2
제5강 『노자』와 페미니즘 1
제6강 『노자』와 페미니즘 2
제7강 『노자』의 소국과민
제8강 『노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제9강 상상력과 과학
제10강 『노자』와 자연
제11강 『노자』와 성인 1
제12강 『노자』와 성인 2
제13강 함석헌과 『노자』
제14강 함석헌 노장 해석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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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강 함석헌과 『노자』

◆ 함석헌의 ‘노자’ 읽기


▲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

자, 오늘 제목은 “철학자인가 정치가인가”라고 되어 있는데, 그 동안 주로 읽었던 것이 하상공 주와 왕필 주를 소재로 하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돼 있는가.

달리 말하면 본래 정치가들 사이에서 읽힌 책이 지금에 와서 노자하면 철학자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거죠.

우리는 본질적으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장 사상 자체가 과연 철학적이냐? 정치적이냐? 당연히 섞여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방식의 노자 읽기가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는가. 상식이 되어있는가를 검토하는 것.

사실은 노자 원전을 읽는 것보다 지금 우리들이 읽고 있는 노자에 관한 책들이 어떤 시선으로 쓰여졌는가를 이해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한 일이거든요.

제가 중국철학을 전공했지만, 중국철학을 공부할 때 희한하게도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공부하다보니까 본격적으로 전공을 찾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중국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신유가에 관한 부분부터 먼저 공부를 시작했어요. 세미나 팀에서.

그러니까 내 주변에서 혹은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까지도 어떤 시각과 입장을 갖고선 고전들을 읽고 있는지 이미 정체를 어느 정도 나름대로 판단한 다음에 어떤 식으로 읽어야 되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 거죠.

현재도 상대화시키고 과거도 상대화시키고. 그러다보니까 노자가 어쩌고 저쩌고 라고 한 것 특히 논어나 노자를 비교해 보면 두 가지가 상당히 다르다. 다른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철학에서 이야기로(김시천)와 같은 책을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다 출판되어 있지 않고, 라는 책에 몇 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옛글 고쳐 씹기

함석헌 기념사업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도덕경이라고 해서 한 두 장 누락된 게 타이핑돼서 실려 있어요. 그걸 출력해서 읽어보시면, 우리가 알고 있던 노장 얘기가 여기서 나왔구나 하며 새삼 감탄하게 되실 거예요.

그 중에 몇 가지도 오늘 확인하게 될 거고요. 그 중 상당 부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이 노자 강좌를 하면서 많이 채용하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면서 어떻게 그것이 누적되었는가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노자 읽기를 본다” 뒤에 부제로 붙어 있는 것은 제가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강의를 접하고 제가 처음 썼던 논문의 제목이에요. 이 양반의 노장 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붙여야 하는가.

이 양반의 노장 해석은 한국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나오기가 어려워요. 독특한 지형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요. 노자에 대한 주석서는 다 독특하기 때문에. 다 다르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제안한 하나의 표현이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를 만들어보았거든요. 어떤 분이 논문을 쓰면서 이걸 쓰더라고요.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은 무한수를 말하는 거죠. 주석서가 나올 때마다 색다른 노자가 창조된다. 다른 얼굴이 들이밀어진다는 뜻에서 천의 얼굴을 가진 노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가 학위논문을 쓰면서 제안했던 표현이죠.

그러다보니까 함석헌 선생의 노자읽기의 독특성은 정확한 질문의 방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자를 다양하게 읽는다. 다원주의가 존중받는 시대에 백 명이 모이고 천 명이 모이면, 천 개의 노자, 백 개의 노자가 만들어진단 말인데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도대체 뭘 소통하느냔 거죠.

따라서 고전을 읽는다고 할 때 고전에 대한 정확한 번역. 번역자들은 정확한 번역을 해야 하죠. 하지만 정확성이라는 척도는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노자를 의미 있게 읽는다는 작업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 함석헌의 노자 읽기

제가 생각해낸 함석헌 선생의 노자 해석의 독특성 혹은 특이성이라는 것은 어떤 창조적 해석이 있다기보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국사람 대다수가 알고 있는 노자라는 사람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된 말, 언설, 이미지를 창조한 데 있다.

그 당시에는 새롭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에게나 상식이 돼버린. 상식의 창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철학공부를 하는 모토예요. 저는 철학이 철학으로서 끝까지 있는 한 무의미하고 철학적인 방식이 언어와 내용, 삶의 양식이 상식으로 퍼져나갈 때 의미 있는 철학, 살아있는 철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 불건전한 상식을 몰아내고 건전한 상식을 정초하는 과정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고전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바로 그런 겁니다.

동아시아 철학자들이 철학적인 활동을 했다고 하면 어떤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을 도출해내고 그러한 건전한 상식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그리고 행동에서 득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이론적 노력이 동아시아 전통철학의 내용일 것 같아요.

오늘 그것을 바로, 함석헌 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했는가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의 고전읽기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논어는 물론이고 노자는 물론이고 맹자, 중용, 다른 모든 문헌들에까지도 확장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논의의 주제는, 지금 여기에서 노자나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어우러진 노장을 읽는다는 것인데 그것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오늘의 가장 커다란 주제입니다.

그러면 함석헌 선생님의 노장읽기를 이야기할 때, 이 분이 어떤 위치를 갖느냐는 당연히 전제해야겠죠. 1페이지 맨 밑을 보면 시작됩니다.

함석헌의 노장 읽기는 19세기 이래 동아시아 전교의 특징인 서구 종교(기독교)와의 화해적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게 특징적인 겁니다. 문제는 화해적 만남이 중요해요.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본 사람은 많이 느끼겠지만, 도올 선생의 노자 강의는 화해적이지 않습니다.

동양철학의 핵심 특징은 화해론. 자연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 이런 3대 화해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노자 철학의 화해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한 어둠의 세력으로 부각이 되죠. 대비시킨단 말이죠.

저는 그런 대비효과가 동양적 사유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나쁘다, 좋다는 판단은 할 수 없죠, 하지만 읽는 방식이, 분명히 도올 선생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와 노장 사상을 대비시키는 방식이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의 노자 해석은 대비가 아니라 그 자체가 화해적 방식입니다. 노자를 만난 까닭 자체도 화해적이고. 원래 이 분이 노자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 했다가 스승이진 유은봉 선생님께 선물로 이 책을 받았죠. 그걸 평생 갖고 읽으셨다고 해요. 이때 비로소 함석헌 선생님은 비로소 동양학에 입문하신 거죠.

두 번째는, 조선조의 ‘노장’ 읽기 전통의 연장에 서 있다는 점입니다. 19세기부터 기독교와의 화해적 만남을 주선하는 이 분위기는 함석헌 샌생님의 고유한 특징이 아닙니다.

19세기 말부터 이미 서구 선교사가 시도했고 동아시아에서도 많이 이용을 했습니다. 불교도 이용했고 유교도 이용했지만 도교, 노자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방식의 이해가 사실은 전통 조선사회에서는 사실 노자는 이지단서였습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의 머릿속에서는 사실 이단까지는 아니었죠. 동서 문명의 대화라는 축에서 양자를 소통시키려 하셨으니까. 특히 종교적인 내용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그 읽는 태도의 방식이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유림이 노자나 장자를 읽고 대했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겁니다.

그 다음 세 번째, 학계라는 좁은 울타리에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최초의 문제의식 자체가 한국의 현실과 대화한 하나의 ‘이야기’로써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고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어요. 나름대로 개인의 진정성, 당신께서 갖고 있는 뛰어난, 함석헌 문체라고 함석헌 선생의 문장은 다르게 평가받기도 하잖습니까. 그런 등등의 것들과 그 분의 이력이 다 포함된 거겠죠.

이와 같은 점들은 사실 우리가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가서 연구해보시면 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두 세 부류로 갈라져요.

1] 하나는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 가운데 도가를 연구하는 사람이 해요. 또 몇 권의 책들이 나와 있는데 그 분들이 누구냐. 신학대학 소속이 꽤 있어요. 그리고 목사님이거나.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게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누구지. 장자에 관한 주석서도 많이 내고,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질 않네. 감리교 계통의 목사님이 신데, 이연현주 목사님.

그 분만의 독특한 개인적 기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신학계에 계신 분 가운데서 그와 같은 주제로 학위논문을 따신 분들이 꽤 많아요.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신학 하시는 분들 가운데 노자를 연구하는 분들이 꽤 있다. 꽤 특징적이죠. 이게 함석헌 선생만의 독특성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장해석의 중요한 지류를 타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거죠.


▲ 함석헌 노자 읽기의 특징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함석헌 선생님의 노자 해석이 어떻게 다르냐. 노자 해석의 역사 과정 속에서 독특성, 차별성, 새로움은 무엇이냐고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건 함석헌 선생의 해석방식의 기조와도 맞지 않습니다. 그 분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함석헌 노자 해석에 접근해 나가야 하느냐. 그 다음 3페이지를 보시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물음을 제기해야 합니다. 

첫 번째,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가 아니라

그가 말하고 던진 글, 내용, 화두들이 얼마나 우리와 닮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함석헌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다르단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우리는 이미 그가 해석해놓은 마당 위에서 노자를 읽고 있기 때문에 함석헌과 나와의 차이를 연구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 된다는 거죠.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의 원주소가 여기 있었구나. 하지만 다 기억나는 게 아니잖아요.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를 따져 봐야겠죠.

그 다음에, 그가 말하고 있는 독창성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가이다. 노자를 통해 페미니즘이나 생태 사상의 접속을 시도합니다. 그럼 노장 철학에 생태주의나 페미니즘의 심오한 철학이 있느냐? 그게 아니라는 거죠.

노자를 통해서 생태와 페미니즘 문제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노자 철학 자체에 무슨 대단한 얘기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들어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그 분의 철학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구분해야 하거든요. 대한민국에 철학자가 나오지 못 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새로운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원전 중심으로 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 아까 수박 주고 가신 이진경 선생님, 『자본론 읽기』그건 자본론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느냐 아니냐를 얘기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한국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현실 속에서 이진경이라고 하는 사상가가 자본론을 어떻게 읽었는가 라고 하는 점에서 평가해야 하잖습니까. 『노마디즘』도 마찬가지고. 그런 문제로 요즘 여러 지면에서 논쟁이 붙기도 하는데.


그 질문의 토론가운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번역을 할 때 어떤 텍스트의 어떤 용어는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는 건 분명히 원전의 맥락을 쫓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번역 용어를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고 쓰는가 하는 것은 여기 듣고 있는, 프랑스 사람을 위해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아닌 이상, 한국 사람을 위해서 번역하기 때문에 번역어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의 파장도 고려해야 하고 그 의미의 파장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는가가 바로 그 책을 내고 쓰는 사람의 자기 생각이 들어가는 거죠. 그가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땅과 호흡하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런 방식의 질문을 던지는 데 인색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좋아 졌어요 요즘에는. 저를 소개할 때, 동양철학자라고 하거든요. 옛날에는 철학가냐, 철학자냐, 철학인이냐를 가지고 대학 강단에서 별의별 논쟁을 많이 했거든요.

대한민국에 철학자는 없다, 철학가가 있거나 철학인이 있을 뿐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방송가 같은데서 소개할 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에게 소개할 때는 철학하는 사람, 주로 철학자라고 편하게 불러요. 많이 언어의 민주화가 된 거예요.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함석헌의 해석학

마지막으로 함석헌 선생이 노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귀 기울였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이야기예요. 이 지점은 뭐와 다르냐면, 제가 『철학에서 이야기로』 책을 쓰면서 첫 번째 챕터 제목이 ‘철학 만들기에서 철학하기’ 라는 걸 구분했습니다. 즉, 동양철학은 철학이 아니에요. 하지만 철학이 아닌 그 무엇의 내용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철학적인 방식을 부여함으로써 철학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그런 책들을 쓰신 분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서양의 철학하는 사람들이 관심 있게 읽는다. 그 다음에, 하이데거 같은 사람들이 철학적 관심으로 대해줬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무게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달리 말하면, 서양 철학적인 용어들, 쉽게 말하면 도(道하)라고 하면 이게 실체라고 하는 용어로 해석될 때만 이게 철학이 되는 거예요. 도 자체는 철학이 안 된다는 거죠. 이게 바로 신빙성입니다.

실체라는 말은 노자에 안 나오잖아요.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만 우리는 철학이라고 인정한단말이에요.

그냥 도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되죠? 불합리하다, 비과학적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가 ‘안녕히 계세요’ 그렇잖아요. 도망가야 하잖아요.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는.

달리 말하면, 도와 실체가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실체가 되는 거고, 가까이 있지 않으면 철학이 아니라고 하는 판단의 근거는 사실 판단의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저쪽에 있다는 거죠.

중요한 건 뭐냐. 노자라는 텍스트에 대해서 실체니, 로고스니 하는 어려운 용어들을 자꾸 결합시키는 노력도 중요하죠. 새로운 재해석을 제공하는 행위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자체가 텍스트의 맥락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고 당시 사회의 어떤 결들을 전해주고 있는지를 먼저 귀 기울여보는 것. 이것이 먼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런 것 때문에 과거를 보세요. 과거에는 주석사 연구를 안 했어요. 90년대 들어서 비로소 주석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런 것들이 철학이라는 개념 지형도가 바뀌는 것과 맞닿아 있는데.

뭐가 달랐느냐.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철학을 하는 분들은 철학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 했습니다. 90년대 넘어서면서부터 동양철학도 대등하다고 얘길해요.

같은 과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서양 철학 하시는 분들이 동양철학 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동양철학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좀 문제가 있어.” 했다는 거죠.

하지만 장구한 기간 동안 논문이 축적되고 어려운 용어들이 동원되고 해석이 쌓이게 되니까 이제는 “아”

이것만 가지고는 이해를 못 하거든요. “실체, 로고스” 하니까 “오” 이렇게 되는 거죠. 사실은 이게 선생님들이 그랬다기보다도, 그렇게 이야기해야지만 듣는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인지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들은 이제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옛날 선생님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그렇지 않고, 도 자체에 맥락적 의미가 무엇이냐.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방식으로 질문의 방식이 바뀝니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님의 읽기는 그와 같은 ‘해석적 읽기’가 아니라 ‘참여적 읽기’예요. 삶 속에서 대화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이 분은 귀를 기울인다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인데, 해석이라는 말은 헤르메스가 말을 보여주는 거잖습니까.

달리 말하면, 말 하는 자에게 권력의 무게가 실려 있어요. 해석학의 특징은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 무게가 듣는 사람에게 있어요. 말하자면, 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하더라도 함석헌 선생 당신이 새로운 노자를 창조해서 그걸 들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귀를 기울이는 자고 또 자기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들에게 전해주는 거예요.

무게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삶이라고 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함석헌 선생의 해석은 다른 겁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들이야말로 전통동아시아철학이 갖고 있었던 나름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러한 접근 방식을 따라 읽을 때야말로 함석헌을 따라서 함석헌을 해석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함석헌 선생이 당시에 페미니즘을 말했다, 과학을 말했다고 하지만 무엇을 말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입니다. 즉, 함석헌 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말했는가.

그럼 우리가 노자를 가지고 페미니즘이나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그 방식에 대해서 배우는 겁니다. 즉, 철학 용어가 아니라 철학하기의 모델로서 함석헌을 읽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상당히 함축적으로 이미 하고 계세요, 직접.

3페이지를 보면, 특히 이 두 단락은 다른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상당히 도움 되는 구절입니다. 제가 왜 말하기가 아니라 귀 기울임으로 해석했는지도 이걸 보면 맥락이 나옵니다.

[사실 이날까지의 옛 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권위주의, 절대주의, 귀족주의, 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강의라고 하는 공간만큼 권위적인 게 없어요. 만약에 제가 노자 전문가라고 하는 소문을 못 들었으면 여기 오실 리가 없잖아요. 강의를 들을만한 이유가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옛글을 고쳐 씹는 데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지금 있는 종교로부터 올 반대이다... 그럴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권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석가나 예수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결코 형식에 거리끼지 않았다. 또 저쪽을 숭인시키자는 것이 목적 아니었다.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새 해석을 하고 깨쳤다. 그리고는 옛날의 전통을 한 점 한 획도 무시하지 않노라고 했다. 눈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 21-22쪽)]

이 표현은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는다는 한 마디는 서구에서 그 유명한 해석학자들의 논의와 동일한 격에 속하는 무게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문장은 더 재밌습니다.

[나는 노자·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개념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고전과 나의 대화고 그 자체가 삶의 과정이다.

이런 말들은 지평융합이 이미 돼 있는 경지가 아닐까요. 가다마가 말한 지평융합이 이미 돼 있는 거예요. 지평융합은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하는 새로운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 해석학은 신앙도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내용이 당연히 섞여 있는 거죠. 하지만 말이 쉽잖습니까. 함 선생님의 말이.

[나는 일제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몇 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 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5-6쪽)다.]

멋있잖습니까. 말을 이렇게 멋있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사람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외모가 잘 생겼는가 못 생겼는가가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이 아름다워야 하고 그가 하는 행동, 그가 하는 말, 입 속에서 향기가 나와야 해요. 향기 있는 말과 향기 없는 말은 마음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말을 하는 데 향기가 난다, 한 가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 앞에 읽었던 단락에서 “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라고 하는 이 말은 왕필이 뜻을 해석하기 위해서 문자를 버릴 수 있다, 이건 득의 망상. 이미 장지를 원용해서 왕필이 말하는 해석학의 태도와 동일합니다. 이런 점들이 놀라운 거예요.

경전에 대한 해석 태도라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고도로 발전돼 있어요. 우리는 서양의 논리 방식에만 익숙해 있다보니까, 동아시아는 그걸 논증적으로 하는 방식이 적었잖습니다. 하지만 이미 들어있다는 거죠.

이 때 “권위는 영(靈)에 있다”고 하는 것을 성인 공자의 뜻, 오경 속에 살아 숨 쉬는 성인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체득한다면 오경 속에 들어있는 문자, 글자는 잊어도 된다. 이게 왕필의 태도입니다.

마찬가지의 태도를 지금 함석헌 선생이 갖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게 성서 해석학과 관련해서 자유분방하게 하는 것과도 연관 있지만 적어도 그 맥락 없이 이런 건 통하는 자세라는 거죠.

제가 여태까지 했던 얘기들이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대단하다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하자면 저는 배우거든요, 이런 구절들을 통해서. 되게 쉬운 말로 적혀 있지만 나름대로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게 드러나니까요.

다른 한편에서 보면, 노자에 대한 번역서나 해석서는, 요즘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노자를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하더라도 함석헌 선생의 노자만큼, 저는 최근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읽은 것들과 비교해봤을 때 함석헌 선생이 훨씬 더 일관되고 진솔하고 쉽고 공감이 되고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고. 그래서 굉장히 훌륭한 작품, 철학적으로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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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노장 읽기’의 역사적 연속과 불연속


▲ 한국 사회에서 노장 해석의 갈래

자, 그럼 이제 함석헌 선생님이 상식을 창조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다 끝이냐? 그게 아니라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역사적인 시각으로 전향해보면, 상식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굉장히 중요한 한국 땅이라고 하는 지형도와 맞닿아 있는 중요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 점이 그의 위대함을 더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겠죠. 즉 그 연속과 불연속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이 그 다음 부분입니다.

6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의 부분들은 앞 시간에 많이 한 얘기이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정리 차원에서 현재는 조금 달라졌는데 제가 이 글을 쓸 당시가 몇 년 전이었으니까, 처음 학위 논문을 시작할 때 이런 식의 제안을 했으니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복되는 것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결들을 잡는다면은 대략 지금에 와서도 노자나 장자를 해석하는 절, 특히 노자를 해석하는 절이 훨씬 더 복잡한데 한 여덟가지 정도로 분류를 할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제왕지술(帝王之術) 혹은 법가적 해석 특히 무위를 치술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갈래가 소수이긴 하지만 있습니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 2장,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없는 교령을 행한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 새롭게 발견된 『황제사경』(黃帝四經), 韓非子, 申不害 등등]

특히 이러한 건 황로학 붐과 더불어 일어나면서 이러한 정치적 재해석이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말하는 황로학은 정치사상으로서의 황로학을 중심으로 이야기 합니다. 한나라 초기를 지배했던 통치사상으로서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황로학이 앞에도 뒤에도 껴 있지만 여기서는 황로라는 말이 한 대에서의 전반기의 황로와 후반기의 황로라는 말이 조금 달라요. 즉, 동일한 황제의 노자라고 하는 두 문헌군, 혹은 황제와 노자를 숭앙하는 시조를 따지는 학문 풍토 혹은 학술 운동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적어도 그 글자 자체만 놓고 본다면 한 대와 후 한 대에 이것이 의미가 많이 바뀌는데 그 의미가 바뀌는 과정이 도교적인 성격이 충분히 더 강화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상공 주석의 경우도 철학적인 입각점, 방향은 한 초에 청정무위 사상을 중심으로 돼 있다고 했죠. 하지만 치신 사상등과 같은 것이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고, 표현 중에 불사(不死)가 나옵니다.

불사라고 하는 사상은 사실은 고대 중국 도가 사상에는 없던 거예요. 나중에 신설술기라고 하는 신선사상이 들어오고 나서 그 영향으로 인해 이 전통에 들어오게 됩니다.

선진 도가의 중요한 용어는 뭐냐. 불사가 아니라 장생(長生)이에요. 우린 이걸 구분해야 해요. 장생과 불사는 다릅니다. 그럼 뭐가 다르냐. 특히 불사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 방식의 불사가 있어요.

하나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끔 하는 영혼, 영혼불멸론과 연결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몸 자체가 죽지 않는 거예요. 신선이 되는 거죠. 서구에서는 영혼불사로서의 immortality가 중심이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영혼과 몸은 뗄 수 없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몸이 죽으면 안 돼요. 그래서 신선이라고 하는 건데, 장생은 달라요.

장생은 몇 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생존연령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 죽을 사람이 대낮까지 활달하게 활동하는 날 죽는 날 갑자기 죽는 거예요. 물론 수(壽)를 다하고 나서. 대략 한 120년. 의학적으로 가능한 수가 한 120살 정도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람을 보면 다 꽤 오래 살았어요.

황로학(黃老學) 및 도교적 해석은 치신치국(治身治國之道) 및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하는 전통입니다. 이렇게 불어버려요. 장생과 불사가.

노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가져다가 유덕화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으로 할 때 ‘천장지구’라고 했잖습니까. 천지는 장구하다고 할 때 천장지구. 그게 천지가 장구하다는 것은 무지하게 오래간다는 거잖습니까. 그것처럼 인간도 오래 간다는 것은 명 안에서의 생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저걸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양생에 해당하는 겁니다. 양생이라는 의미도 전한 시대에서 후한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특히 신선술과의 결합과정에서 의미의 폭이 상당히 바뀌게 딥니다.

그래서 도교 전공하는 분들 가운데서도 이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구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그 다음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게 현학(玄學) 혹은 형이상학적 해석입니다. 특히 왕필이 노자를 해석했던 방식을 후대의 학자들이 기무론이다, 무를 중시하는 철학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때 무가 형이상학적 절대 무가 아니라는 걸 지적하고 싶어요.

특히 이런 걸 추적할 때 중요한 점은, 아라비아에서 발명한 게 0이잖습니까. 0이라는 개념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진짜 개념이거든요. 고대 중국의 수학책을 보면, 제가 뒤져봤어요. 중국에서 0이라는 걸 개념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입니다.

즉 공(空)개념을 흡수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죠. 하나는 막대기 하나놓고, 막대기 두 개 놓으면 2고 막대기 세 개 놓으면 3이에요. 그럼 0은 막대기 없다. 이게 0이에요.

개념으로 정립돼 있지 않는다는 거죠. 0이라는 개념이 정립돼 있을 때 형이상학적 무라는 개념이 이해되거든요. 조사를 해보니까 중국에서 상당히 늦게 0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거죠. 특히 회남자 책을 보면 유와 무를 둘러싸고 겹쳐놓고서 복잡한 논리식을 만들어놓은 게 꽤 있는데 그때 무에 관한 규정이 나와요. 넝쿨 있죠, 만물이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엉켜 있는 상태를 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와 무라는 개념은 존재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식적이고 개념적인 틀이라는 거죠. 무엇이라 규정한 수 없다. 그래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이 쓰이는 까닭이 분명한 형체가 지각되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왕필이 도를 해석하면서 무명유형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쓰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이 가미된 건 사실이에요. 왕필 대에 들어가서.

특히 이 도가 주역의 태극으로 해석됩니다. 제가 엊그저께 서점엘 나가보니까 조선시대 서명 선생이 지은 『도덕지귀』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꼼꼼한 주석과 더불이 번역이 돼 있어요.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하신 전공자들이 했기 때문에 참고가 될 만한데, 거기서도 도를 태극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건 왕필이 없었으면 불가능한데, 바로 이 왕필 식의 새로운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필 식의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해석이 노자의 주이고 노자의 원이라고 확장합니다. 그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죠. 이것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도 있었다고 말하는 거죠.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처세술 혹은 권모술수라는 이단으로서의 해석. 이 얘기는 사실 앞에 나와야 하는데, 제왕지술과 같은 건데. 제왕지술로 읽는 사람은 노자를 읽을 때 의리적으로 읽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읽고선 말 안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권모술수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말과 붙어 있게 되는 겁니다. 이때 이단은 종교적 이단이 아니라, 말하자면 온전한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거죠.

그 다음 다섯 번째, 신과학 혹은 신비주의적 해석. 80년대에 노자가 유행하게 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이 무위를 해석할 때 엔트로피를 이용해서 해석하시죠. 우리나라에서는 신과학 운동과 연관 있고 특히 프리쳐 카프라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

문제는, 과학을 얘기하지만 이때 주장되는 동아시아의 사상들은 과학이 아니라 신비주의로 이해된다는 것을 놓치면 안 돼요. 신비주의는 불합리하다는 거죠. 불합리하지만 뜬금없이 갑자기 통찰을 준대요. 많은 책들이 그렇게 돼 있어요. 우린 이런 논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몰아붙일 때, 종교학 하는 사람들은 몰라도 철학하는 사람들이 신비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럴듯하게 높여주면서 철학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고, 아마존에 들어 가고 ‘노자와 타오이즘’ 이라고 쓴 책들을 보면 mysterious 혹은 mystericism religious 라고 붙어 있는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왜냐하면 노자 속에 철학적인 내용이 있다고 말하지 노자라는 텍스트가 철학책이 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드물어요. 얼마 전에 독일 출신 학자 가운데 욀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도덕경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재미난 책을 썼어요.

읽어보니까, 노자에 나온 테마를 상당히 새롭게 재해석하는 문인인데, 나중에 세미나 하게 되면 그런 세미도 느끼실 거예요. 장자에 나오는 우화를 해석하는 게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것이거든요.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데.

그걸 근원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서 그럴듯하다 싶을 정도로 해석하는 게, 사실 그런 것을 위해 주석서를 보는 건데, 외국인들이 가끔씩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경우들이 많다니까요. 고문헌에는 해박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얘기가, 출간된 책이에요. 『노자의 철학적 종교적 측면들』『Religious and Philosophical Aspects of the Laozi』(Csikszentmihalyi, Mark (Edt)) 라고 하는 편집된 책이 있어요. 이 책에 대한 서문을 써달라고 제안 받았다가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읽느냐. 그건 곤란하다.

즉, 이 사람들은 노자에 대해 Philosophy를 붙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 다음에 여섯 번째, 문화사적 종교사적 해석. 이 부분이 굉장히 넓은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묶어버린 까닭은 우리나라 학자층이 좁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런 식의 해석을 하는 사람은 중문과에 계신 분들이거나 전문번역가인데. 예를 들면 소병(簫兵), 『노자와 성』과 같은 책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뭐냐. 노자에도 나오는 용어들이 당시의 문화적 지형도와 동격으로 해석해버리면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의 주석학적 전통에서 나오는 용어의 전통과 틀릴 수도 있어요.

반드시 고문자학이 주석사와 꼭 일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전을 갖고 공부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와 조건이 다르다는 거죠.

이런 부분은, ‘아 저런 방식으로 읽을수도 있구나’라고 하는 게 좋지, 철학과 곧바로 연결시켜서 왜 저기랑 여기가 다르냐고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섯 번째와 관련해 소개할만한 책이 있는데, 노먼 J 지라드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혼돈신화’를 해석한 책이에요. 고대 중국에도 이른바 창조, creation myth가 있었다는 걸 논증한 책인데. ‘창조신화’ 이 사람이 그 다음에 두꺼운 책을 썼는데 제임스 레게라고 하는 동아시아 고전을 많이 영역했던 사람을 다룬 책이에요.

그런데 제임스 레게 같은 사람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는가를 당시 빅토리아 시대를 훑으면서 쓴 책이거든요. 굉장히 비중있는 사람이고, 콜로라도 대학인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사람 얘기를. 그리고 『철학에서 이야기로』에 약간 소개돼 있기도 하죠.

일곱 번째가 소박한 유물변증법과 역사유물론의 중국적 기원, 즉 마오이즘. 193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륙중국에서 많이 강조했던 노자를 보는 해석이었죠.

여덟 번 째, 유가적 다윈적 해석. 함석헌 선생님이 포함되기도 하고 저도 포함돼 보고 싶은 부류에 속하는데. 이게 조선시대 노장읽기의 방식입니다. 특징이 두 가지입니다.

첫 째는 유가적이다. 왜 그러냐.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노자라고 하는 텍스트는 절성기지, 절인기의 즉 도덕성을 의존하지 마라. 그 다음에 지적, 합리적, 반성적인 삶의 방식은 최고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잖아요.

그런데 유가적 해석이라고 붙일 수 있는 까닭은, 그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책을 갖다가 유학의 타락한 점, 사회의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점을 비판하는 방식의 논리적 무기로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절성기지나 절인기의를 말하지만, 그런 도덕성을 가지고 사회의 도덕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그 용어를 쓴다는 게 역설적이라는 거죠. 이게 유가적인 겁니다. 왕필이 유가적인 이유도 그런 점에서 성립되는 거예요.

지난 번에도 봤잖아요. 상현, 불상현. 노자 연구는 현명하다고 판단되는 놈들을 정치나 행정관료로 임용하지 말라는 것이거든요. 하상공은 말 번지르르하게 하는 부류에 속한 사람을 임용하지 말라고 그대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왕필은 어떻게 했었죠? 제대로 될 사람을 임용하면 다툼이 없을 거니까 숭상하지 않게 된다고 말을 바꾸잖아요. 그럼 무슨 뜻입니까. 재능있는 사람을 임용해라.

동일한 노자의 구절을 하상공과 왕필은 전혀 다른 방식의 의미로 바꾸어 버립니다. 왜곡이 아니라, 그가 유가이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절인기의, 절성기지와 같은 반문명적 혹은 반주지주의적 혹은 반도덕적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서 오히려 도덕성을 세우고 사회성을 높이는 데 이용한다. 그래서 이건 분명 유가적입니다.

그리고 다원적이죠. 노자의 기본적인 뜻. 공자를 얘기하면서 성인의 뜻을 이야기하지 왕필의 책을 읽어가면서 성인의 뜻과 같은 얘기 안 나옵니다.

물론 노자지략이라는 책 속에서 노자의 핵심저인 내용을 숭본의식말이라는 표현으로 집약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방법론적인 차월인 뿐이에요.

즉, '공자와 같은 성인의 위대한 뜻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와 같은 태도가 노자를 읽는 데에는 없습니다.


▲ 비판 무기로서 노자

따라서 노자라는 책은 얼마나 새롭고 의미 있는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느냐는 정도만 중요하지, 도덕성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은 이미 있는 거예요.

이렇게 비유하면 될 것 같아요. 노자라는 프로그램이 있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이 과거에 도가겠죠.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깔아서 상대되는 다른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 하도록 제어하는 장치로서만 이용한다는 거죠. 내용은 상관없이.

그래서 이 유가적, 다원적 해석의 특징은 바로 비판철학의 기능. 유가철학 자체에는 비판철학으로서의 논리적 무기가 상당히 적어요.

즉, 사회비판으로서의 무기는 많지만 철학 대 철학이 싸울 때 그걸 비판하는 논리적 무기는 상당히 적어요. 왜냐. 이미 진리의 말씀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예요.

그런데 도가 쪽이나 장자를 한번 읽어보세요. 자기 철학은 무엇이다고 하는 것보다는 수많은 타자에 대해서 다른 족에 대해서 비판하고 조소하고 풍자하고 은유하는 내용이 훨씬 많잖습니까. 당연히 비판의 논리가 더 많이 들어있죠.

그래서 노장철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유학자끼리 싸울 때 유학을 가지고 유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노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비판할 때만 써요 주로. 이것이 바로 노장전통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용당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유학은. 노자는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지만, 유가는 상대적으로 이념지향성격이 분명한 데 비해서 노장철학은 이념지향적인 성격이 모호해집니다.

충과 효를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 하는 유가가 충효를 비판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노자를 원용해서 비판하는 건데. 그런데 그때 비판하는 게 제대로 된 충효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거잖아요.

같은 용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상대방을 비판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생각하시면, 노장이 얼마나 효과적인 전술적 무기였는가. 그래서 노장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노자와 장자의 도가 무엇인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는 게 훨씬 더 정확한 판단입니다.

노자나 장자를 이용하고 활용했지 노자나 장자라는 철학 자체를 승화하거나 그걸 펼치려고 했던 바가 적었다는 겁니다. 그건 도가, 예술철학으로 가면 쫙 펼쳐지죠.

김시천 제12강 『노자』와 성인 2

 http://artnstudy.com/PLecture/scKim02/lecture/12_01.htm

김시천

제12강 『노자』와 성인 2

◆ 왕필이 말하는 성인


▲ 왕필의 성인

계속해서 왕필의 성인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가요. 그동안 우리가 주로 다뤘던 것이 전국시대 맥락을 다루면서 제왕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정치적인 맥락을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잖아요.

도대체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주, 노자주석에서 말하고 있는 정치적 담론 즉 왕필에 의해서 재해석 되었다기 보다는 해석의 틀 자체를 아주 바꾸어 놓은 정치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출발을 노자 17장에 보면 태상하지유지라는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죠. 최고의 통치자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안다고 해석이 되죠.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다만 왕이 있는가 보다 얘기하는 거죠. 정치적인 무관심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죠. 왕의 이름을 들먹인다는 것은 원망할 때뿐이에요. 원망할 일이 없으면 누가 되든 있거나 말거나만 상관이 없고, 있다는 것만 안다는 거예요.

있긴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가 누군지도 알 필요가 없고. 이때가 하상공주에서는 태평이라는 말로 표시하는데 왕필은 전혀 상이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5페이지를 보세요. 여기에 대해서 왕필은 뭐라고 하는지 봅시다.

‘태상’(太上)이란 『주역』에서 말하는 ‘대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상이란 대인이고, 이 대인은 주역의 대인입니다. 노자 원문 왕필 번역서를 갖고 계신 분들 책 속에는 대인이라는 용어만 나와 있는데, 이 용어는 맹자와 주역에 특히 많이 나오는 용어이고 도가에서는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대인이 구오의 자리인 윗자리에 있기 때문에 ‘태상’이라 한 것이다.

이 맥락을 볼 때 반드시 주역의 대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틀린 해석이에요.

대인이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무위의 일에 거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은 그에 의해 지어지면서도 처음이 되려 하지 않기에 아래에서는 그가 있다는 것만을 알뿐이다. 이는 곧 위를 따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 있다는 것만 알아요. 그가 내리는 명령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뿐이에요. 왕필에 따르면 자상치일이라고 얘기도 합니다. 만물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질서를 이뤄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왕필의 체계 속에서는 자연이라는 말은 상당히 고원한 자발적인 질서체계가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합니다.

그 근거는 바로 인간의 마음, 자연, 아까 말했던 리서의 감정, 서의 감정이 인간 누구에게나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존중하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윗사람을 모시고.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유가의 정치 시스템의 기본적인 요체인데 왕필은 거기에 낙관적으로 얘기하는 거죠.


▲ 왕필에게 있어서 주역의 괘의 의미

여기서 중요한 것, 이게 얼마나 재미난 일이냐면. 거기서 대인이라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대인이라는 것이 주역이 건괘 아시죠. 첫 번째 괘입니다. 여기에 여기를 구이라고 하고 여기를 구오라고 합니다.

아래에서부터 차례 쌓아 올라가는 거거든요. 유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괘가 뭐냐 하면, 왕필도 괘를 내서 주석을 굉장히 길게 붙이기도 했는데요. 복괘(復卦), 암울한 기운이에요. 즉 이 때 말하는 음이라는 것은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란 뜻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를 계절에 비유하면 이제 막 새싹이 막 돋아나는 상태가 복이에요. 복이 우주의 가장 원초적인 차원의 모습이에요. 시간적인 차원의 모습이 아니라, 논리적인 차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양의 기운이 다시 돋아나는 모습을 상징해요. 그래서 이 복괘를 굉장히 중시하는데 이 복괘를 쓰면서 이 앞의 괘는 박괘라고 해서 꼭대기에 양효가 있고 이거는 소인들을 상징하는 거거든요. 소인들의 기세가 무성해서 군자나 대인이 끝에 몰린 거예요. 그래서 이때는 조심해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다시 돌아서 왔다라고 해서 복괘라는 거예요.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존재론적으로 ‘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형이상학적인 ‘절대’와 같은 개념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바로 이런 용어들에 익숙한 왕필에게 있어서 괘는 시(始)를 상징하는 거고 그래서 당시의 지식인들 왕필이 활동했던 시대에 연호가 정시(正始)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왕필에게는 복이라는 하는 것, 당시의 시대를 앞서가는 최고의 문화적 코드라고 할까요.

대한민국 현재에서는 딱 한 마디로 얘기되지 않습니까. ‘경제’ 경제 얘기가 나와서 한 말씀 드리는데, 맹자에 나오는 얘기잖아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요. 왕이 맹자를 만났어요. 노인이 먼 길을 마다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하필이면 왜 리를 말하십니까 하고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서 왕께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할꼬 그러면 제우들이 앉아서 제 가족과 제 목으로 내려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규모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돼요. 그러면 뭘 해야 됩니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노자에 나오는 이 말을 읽어보세요. 정치적인 맥락에서 말한다면 자기의 이름이 백성들의 입에서 오르내리지 않는 만큼 좋은 거예요. 많이 오르내리는 만큼 나쁜 사람이 된다는 거죠.

왕필을 보세요. 태상이라고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위에 일에 거예요. 진중권씨가 대통령에게 가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만 해라. “잠 좀 주무십시오.” 무위하란 얘기 아닙니까. 함석헌 선생이 당시의 독재, 군사정권에게 무위하라. 당신들이 바쁘면 바쁠수록 피곤하다.

바로 무위의 개념을 알린 사람이 바로 함석헌의 목소리고, 이 맥락에서 온 겁니다. 제발 잠 좀 주무십시오. 이게 바로 함석헌 선생님 강의의 힘이었어요. 지금 제가 얘기하는 방식이 함석헌 선생님은 몸으로 실천하기까지 했던 분이기 때문에 파괴력이 더 크죠.

제가 유머러스하게 하는 데도 공감이 오잖아요. 자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말하는 것은 곧 그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좋다는 거예요. 대통령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록 좋습니다. 그럼 누가 오르내려야 되느냐. 실무자가 오르내려야 옳은 거죠.

왜, 그것은 바로 유위하는 자가 있어야만 무위하는 자가 무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무위의 일에 있어야 할 사람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는 얘기는 그가 무위하지 않고 유위하고 있다는 얘기고, 쓸데없는 일에 간섭한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큰 것을 놓치기 가장 쉽죠.

심지어 보수언론에서도 ‘큰 것을 놓치고 있다.’고 욕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대인이라는 것은 왕필의 무게가 어디 있느냐. 여기서 태상이라고 했잖습니까. 윗자리에 있다. 두 사람이 나와요.

그래서 대인이 있는데, 용의 덕을 갖춘 이가 인간 세상에 몸을 드러냈어요. 하지만 그는 아직 무엇을 확 펼칠만한 입장이 못 되죠. 하지만 그는 발탁이 되야 해요. 그래서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여기서도 이견대인이라는 말이 나와요. 이 사람은 황제의 자리에 있고 이 사람은 신하의 자리인데 이 사람은 왜 대인을 만나야 합니까. 뜻만 있으면 뭐해요. 발탁이 되야죠. 공자는 끝까지 발탁이 못되고 마을로 돌아갔지 않습니까.

그럼 황제는 자기 혼자 다 하느냐. 천하를 다시 리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 사람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백성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머리가 꽉 차 있으면 들어갈 데가 없으니까 이상한 얘기가 나오는 거죠. 그러면 머리를 비우고 백성의 말을 잘 알아듣는 용의 덕을 타고난 이를 발탁을 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대인입니다. 그래서 구이와 구오가 서로 만날 때, ‘물이 고기가 만났다.’라고 하는 거죠. 물과 고기의 만남이 낚시의 얘기가 아니라 황제와 재상, 성군현신의 만남을 은유하는 말입니다. 강태공도 낚시하다 만났잖아요. 그 얘기를 한 번 해볼까요.

강태공이 주나라 문왕을 만나가지고 주나라가 뜨게 되는 초석을 마련했는데, 강태공의 강자가 강족의 수장이란 뜻이에요. 사람의 성이기도 하지만, 강족이라고 해서 반역의 기질이 농후하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해야한다고 해서 특히 은나라의 박해를 처참하게 받았던 부족이다라고 했던 강족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문왕이 갇혀 있을 때 밑의 사람들이 가서 접촉을 했겠죠. 괜히 왜 낚시를 합니까. 바늘도 일자를 가지고. 다 아는 얘기지 않습니까. 장자에 나오는 얘깁니다. 내 어저께 아버님을 만났는데 어디에 가면 어떤 분이 있을 것이다. 딱 가보니까 정말 그런 모습의 사람이 있어요.

이러저러한 모습을 만났는데 아 신하들이 그것은 선왕 폐하이십니다. 그렇지 맞지.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어디를 가다보면 현인이 있을 것이니 그를 만나서 써라. 가 봤더니 그가 있어요. 그게 다 뭡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인거죠. 주족 가운데 유력한 사람이 유리에 갇혀 있을 때 구해 준 거에요.

은나라를 압박하고 해가지고. 그러면 거기에 대한 정치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협의해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설득을 해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약속을 한 거죠. 어느 날 어디쯤을 지날 터이니 낚시를 하고 있어라. 낚시 바늘도 구부러진 게 아니라 일자를 사용하고 있으면, 저 노인이 기운이 이상하다. 가서 물어봐라.

이 바늘로 낚시가 됩니까. 되죠. 사람 잡는 낚시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거죠. 어젯밤에 꿈에 선왕을 뵈었는데 라고 하면 주변에서 좍 누르는 거죠.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요식행위하는 거죠. 그러나 그게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뭐냐.

그러한 만남, 그런 방식의 협약에 대해서 뜻이 모여졌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바로 이 사회에서 말하는 정무수석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모든 정치라는 것이 사실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군주 자리의 어려움

내가 아무리 뛰어난 용이라도, 군주의 덕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발탁이 돼서 그 자리에 가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죠. 내가 왕이라도 할지라도 제대로 된 민심을 읽고 나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내가 알 수 있는 겁니다.

왜 황제가 외척세력의 발호를 금지하려고 했느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같이 살 맞대고 자는 사람이잖아요. 그 사랑스러운 부인의 말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때문에 공정한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적다라고 볼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역사적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황제의 자리에 들어가면 바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현대사회국가에서, 과거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러면 모든 사안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된다는 얘기인데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판단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성인, 대인은 어떤 존재냐. 거기 보면 문헌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함께 한다. 이 말의 의미는, 하늘은 덮어주고 땅은 실어주는 즉 태상이라는 존재는 백성을 위에서 보듬어 감싸주고 아래에서 민생을 오롯이 해결해주는 그런 문제.

맹자식으로 얘기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항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때에만 성인이 된다는 거죠. 맹자의 논리에서 그렇지 못할 때는 일개의 필부가 된다고 바로 가잖습니까. 왕필의 논리에서는 바로 그와 같은 논리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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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현(不尙賢)에 관한 하상공과 왕필의 해석


▲ 부상현에 관한 하상공과 왕필의 해석

여기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무슨 얘기냐면 과거 봉건사회에서 인재등용이랑 연관되는 거예요. 그런데 왕필은 이제 이 군주의 덕을 가진 사람이 왕의 자리에 있으면 태상이 되는 거고 신하의 자리에 있으면 재상이 될 수 있다의 논리를 펴요.

그런데 도대체 신하, 혹은 현신이라는 이 ‘현(賢)’ 이 문제에 대해서 노자에서 강력한 발언이 나옵니다. 부상현이란 표현이 나오죠. 노자 3장을 보면, 6쪽입니다.

보면 성인의 다스림이 어떻게 다른가. 조금 전에 했던 얘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다면

不尙賢, 使民不爭 : 不貴難得之貨
부상현, 사민부쟁 ; 불귀난득지화

使民不爲盜 ;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사민불위도 ;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어질다하는 사람을 상상하지 말라.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게 하지 말라. 어찌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여 백성들이 도둑이 되게끔 하지 말라. 욕심날만한 물건들을 보이게 하지 말라. 그래서 백성들의 마음이 혼란스럽게 하지 말지어다.

다 조언입니다. 군주에게 제안하는. 여기에 대해서 하상공이란 분은 있는 그대로 해석을 합니다.

제안하는. 여기에 대해서 하상공이란 분은 있는 그대로 해석을 합니다.


『河上公章句』 ‘어진 사람’이란 세속에서 말하는 어진 사람으로 언변이 좋고 문장에 능하며 도에서 떠나 권세를 부리고 참된 바탕에서 벗어나 잘 꾸미는 사람이다.

이거는 언제의 상황이냐. 한나라 초기의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유가는 대접받지 못했어요. 왜냐면 유학은 의리와 형식을 굉장히 많이 따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이야 잘 하죠. 하지만 법가에서는 정책중심으로 몰고, 노자에서는 말을 많이 하면 막히기 십상이니 말하지 말라고 하죠.

“숭상하지 말라”는 것은 후한 녹봉과 높은 관작으로 존귀하게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이 당시 한초의 얘기는 유가 특히 예학가들을 상대로 하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한고조 때 한 때 딱 발탁되어서 특혜를 받았어요. 원회라고 하는 천 황제가 정월 초하룻날에 자기가 처음으로 황제가 된 것이라고 하는 뿌듯함에 의례를 했어요. 이 얘기를 전에 했었죠? 안 했다면 시간이 나면 하죠.

그래서 한고조 같은 경우는 요즘 티비에서 초한지 무협 드라마를 인천에서 하는데, 초한지를 한 번 보세요. 유방이 되게 방정맞아요. 그렇게 무게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거든요. 항우는 무게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전략과 전술에 능한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이 유방이라는 사람이 원래 소금장수를 보호하던 호위무사출신으로써 협출신에요. 그래서 글을 못 읽어요. 무식한 사람이죠. 그래서 말 잘하고 문장 짓는 사람을 보면 어떻겠어요. 거시기 한 거라고 얘기해야겠죠. 거시기 하니까 유학자들이 또 잔소리만 해요.

‘그것은 형식과 예의에 어긋납니다.’ 귀찮죠. 그래서 유학자들이 대접을 못 받았어요. 그런데 원해율이라고 하는 황제다운 풍모와 의식을 크게 함으로써 내가 비로소 황제가 된 것 같구나. 하고 나서 유학자들이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높게 대우하지 말라. 높은 벼슬과 녹봉을 주지 말라는 얘기죠. 즉 원문에서, ‘부상현’이라는 말을 하상공주는 그대로 번역했죠. 그런데 본래 이 상현이라는 말은 묵자의 한 편명입니다. 거기에는 상현을 왜 주장하느냐. 7페이지에 있는 글을 읽어보죠.

옛 성왕들이 정치를 할 때에는 덕행에 따라 그에 합당한 지위를 부여하고 지혜로운 이를 숭상하였으니, 비록 농사일이나 기술직에 있는 사람이라해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하여 높은 작위를 주어 높이고 후한 녹을 주어 중히 여기며 적절한 일에 임용하면서 영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러면서 ‘작위가 높지 않으면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고, 녹봉이 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고, 정령을 내릴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삼성’에 취직하려고 하는 이유는 가장 연봉이 높기 때문이죠. 즉 관리가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높은 녹봉,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다.’라는 소리가 나야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삼대까지 잘 먹고 잘 사는 정도의 부가 해결 되야 되는 거죠.

즉 ‘상현론’이라는 것은 그의 명령이 백성들에게 먹힐 수 있는 시대. 이것은 변법운동의 핵심이기도 해요. 단 다른 것은 귀족들은 자신의 봉지가 이미 있기 때문에 왕이 그럴 필요가 없어요. 왕하고 겨룰 수도 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들은 왕이 하사하는 녹봉에 의존하기 때문에 말 안들으면 자를 수 있다. 즉 노동 유연성이 개입된 방식의 신하예요. 따라서 충성도가 훨씬 강합니다. 한나라때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그대로 반복되요. 그래서 그 다음 번 보면,

하물며 지혜롭고 선량한 사(士)는 덕행이 독실하고 언변에 능하며 도술에 두루 밝은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은 진실로 국가의 보배요 사직의 보필자이다. 반드시 또한 이들을 부귀하게 해 주고 공경하며 영예롭게 해 준 후에야 나라에 선량한 사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때의 ‘상현론’이라는 것은 능력 있고 재주가 있는 사람들, 특히 묵자의 편자 속에 들어있는 표현처럼 농사직이나 기술직에 있는 사람이라도 할 지라도, 이 사람들은 묵가적인 관점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거죠. 이런 현량들을 발탁해서 벼슬에 봉직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군현 제도 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입니다.

그런데 하상공 주석에서는 이 상현이 말잘하고 잘 꾸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달라져 있죠. 당시 어떤 세력을 염두 해 두고 비하하는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아니면 실제로 보면 법가나 도가나 유가 이런 학문의 배우 경력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의 경쟁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쉽겠죠.

그런데 왕필은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현이랑 재능 있는 사람이다. 왕필이 말하는 재능(才能)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탁월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중에 38장인가 39장에서 보면 ‘힘 있는 사람은 무업에 종사하게 하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은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가 되게 하고…’와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재능들을 포괄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도덕적 탁월성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지난번에 그런 얘기를 했었죠. 조조가 했던 칙서에 보면, 唯才是擧(유재시거), 오로지 재능 있는 사람들을 천거하라. 그러면 내가 쓰겠다. 조조는 기본적으로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능에 따라서 인물들을 발탁했죠. 심지어 뒤가 구렸던 자기 친구라든가 그런 사람들도 재능이 있다면, 저 쪽 정권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재능이 있다면 썼다는 거죠. 그래서 왕필이 말하는 방식의 현에 대한 방식은 조위정권의 정책과 방향이 맞는 발언입니다.

받든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귀히 여긴다는 것은 칭호를 높이는 것이다. 즉 높은 벼슬과 그에 맞는 작위를 주는 것을 얘기하는 거죠.

오로지 재능이 있는 사람을 [그에 합당한 직책에] 임용한다면 숭상은 해서 무얼 하겠는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관작이] 주어진다면 어찌 세상에서 말하는 현(賢)을 귀하게 여기겠는가?

즉 여기서 말하는 현(賢)은 평판을 얘기하는 거죠. 자기가 말하는 재능과 현, 평판을 통해서 과거에 올라가는 것이 구품중정제라고 얘기했죠. 지역 사회에서의 세력이 평판의 정도가 되었다는 거죠.

이른바 ‘현’을 받들고 이름을 떨치게 하는 것은 영예가 그 맡겨진 직책에 비해 지나치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한다면 늘 학교에서 서로 헐뜯을 뿐이다.

이런 표현들은 바로 한나라 후한시대에 태양, 앞으로 향후 관리로써 될 사람들을 태학에 모아놓고 오경박사들과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열하게 할 학교 교육기관이 없으면 해석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현이라는 것은 ‘나 잘난 놈이오.’라는 뜻이잖습니까.

그럼 저 사람을 내가 잘났다고 칭찬하면 내가 못난 사람이 되니까 서로 헐뜯을수록 자기의 위치가 올라가니까 헐뜯는 방법에도 참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말 모자란 사람들은 남을 헐뜯어요. 그런데 남을 다 칭찬하고 그 방식이 절대 맞다 그럼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과 단점을 다 알아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칭찬을 잘 해야 되요. 단점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적거든요. 그런 사람이 사실은 군자, 대인이 돼야 하는 건데.

보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그 쓰임새(用)보다 지나치면 탐욕스러운 자들은 서로 경쟁하게 되어, 벽을 뚫고 비밀금고를 찾아내려고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도둑질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 낼만 한 것을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이 얘기는 지금 제도를 보건데 능력이 있는 그 분야에 합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 발탁이 그때 그때 되면 다 알잖아요. 쟤가 나보다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보면 압니다. 그런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고 하면,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고 하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죠. 그래서 왕필은 그 분야와 직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가면 서로 경쟁할 일들이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그럼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지 말란 얘깁니까?

사실은 묵자가 주장했던 내용은 그냥 가는 거예요. 다만 어떤 사람을 앉히느냐, 그 차원의 것만 왕필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왕필의 논리는 ‘부상현’이라는 논리를 반박하거나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노자의 원문에 유배된 방식으로 해석 하고 있어요. 동조할 수 없단 얘기죠.

왕필이 말하는 인재등용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는, 지난번에 무위라고 얘기했었죠.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고 그에 맞는 적재적소에 그를 배치하는 것. 이것은 유가의 가장 기본적인 황제의 자리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선양론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 왕은 피리고,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다

그럼 대체 대인론과 어떻게 연관이 되느냐. 10쪽을 보면 해결이 됩니다. 10쪽 박스의 5장을 보면 ‘성인은 백성을 추구((芻狗:제사지낼 때 사용하던 짚으로 만든 개 인형)처럼 여긴다.’ 풀무귀유를 하면서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거기에 왕필은 뭐라고 해석 하냐면,

[군주가] 자신의 사사로움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 맡긴다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결코 없을 것이다.

기기인물, 이때 기라는 것은 내 몸을 얘기합니다. 내가 가진 생각, 나의 고집을 버리고 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 이고, 이때 ‘리’자는 다스릴 리(理자)입니다.

[그러나] 만약 피리가 소리를 내고자 하는 뜻을 가진다면 ‘피리 부는 자’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棄己任物, 則莫不理.  則不足以共吹者之求也.)

이 구절의 노자의 맥락이나 하상공주의 맥락이나 같은 초점을 맞추죠. 허위불굴이죠. 풀무는 뭔지 아시죠.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걸로 주름이 접혀 있어서 접었다 폈다 하면 공기가 밀려 나가는 게 풀무잖습니까. 석탄 있을 때, 옛날에 집에서 쌀겨를 많이 뗄 때 바람에 빙빙 돌리게 하는 게 있었죠. 그런 것도 풀무의 일종인데.

이 풀무의 작용이, 안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오는 모습을 비유하면서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것이 ‘기’죠. 이를 은유를 드는데, 왕필은 이 속에 있는 탁약을 피리로 바꾸면서 탁약유의어위성

이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피리 그 자체가 만약 어떤 소리를 내야 되겠다.’ 라는 것에 관해서 뜻을 가지게 된다면 부족이공취자지구(不足以共吹者之求). 달리 말하면, 그 피리를 부는 자의 요구에 부응(공) 할 수가 없다. 함께 할 수가 없다. 이 뜻이에요.

자 이 얘기는 재미나게 읽어 봐야 돼요. 유학자들 글이 갖고 있는 매력인데. 풀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천지의 비유라고 했죠. 아까 제왕적 사유에서 본다면 천지에 대한 표현은 제왕 자체에 대한 은유고, 제왕에 대한 이야기는 천지의 질서와 동격이라고 했었죠.

우주의 모습이 바로 제왕의 신체와 동격이니까. 그러니까 풀무도 제왕도 똑같은 거예요. 그 피리를 부는 사람이 있고, 피리가 있어요. 달리 말하면 피리가 제왕이에요. 갑자기 송창식의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이 속에 숨어있는 논리는 ‘제왕은 피리요. 나는 피리를 부는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상이죠. 그러니까 맹자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군주와 신하 사이라도 의가 맞지 않으면 떠난다.

그리고 신하는 군주를 위해서 일하지만, 군주가 신하에 대한 대접이 적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군주가 신하를 모시는 것이지, 신하가 군주를 모신다는 것은 맹자의 논리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천하’, ‘천지’라는 것을 하나의 피리, 그 피리가 곧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달리 말하면 거꾸로 가는 거예요. 한비자가 제시하는 것은 만물, 만백성이죠. 만물은 자체적인 신료들이 있어요.

한비자의 논리에 따르면 ‘딱 한 놈만 조져라.’ 라고 얘기를 해요. 예전에 주유소 습격사건 보셨죠. 거기서 보면, 무대포. “나는 여럿이 싸울 때, 무조건 한 놈만 조져.” 그럼 ‘그 놈’이 내가 안 되기 위해서라도 절게 만들잖아요. 그 논리가 참 무서운 건데 무서운 건 그 ‘한놈’이 누구냐.

딱 한 사람이 있다면, 얘도 세 명, 얘도 세 명. 열 사람을 관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세 명만 관리하기는 편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행정 조직의 원형이잖습니까.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적 모델이라고 할 때. 그러면 제일 위에 있는 군주는 한 사람만 집중하는 거죠. 그러면 내가 내려가서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이것이 바로 한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런 모델로 이른바 관료제 모델이라는 것이 득세하게 되는데요. 유학자들은 이 논리를 한 술 더 떠서, 자신은 제왕 위에 있어요. 이런 방식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자신은 벗어나 있는 거예요.

왜 의가 맞으면 있고, 안 맞으면 떠나는 거니까. 그러면 이 꼭대기에 있는 제왕을 하나의 피리처럼 여기고 연주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장자의 함지지락어 이래가지고 천지 대자연의 온갖 구멍에서 철뢰 지뢰에서 소리들이 나와 연주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통하는 정신입니다.

거기서는 ‘그러한 소리를 내는 존재가 누구일까?’로 끝나면서 제왕의 존재에 무게를 둬요. 왜냐면 당시에는 여러 세력이 활보하는 난세였기 때문에 제왕의 출현이라는 것은 천하통일이라는 대업,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국의 소리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왕필과 같은, 이미 한나라라고 하는 커다란 천하를 통일 해 본 경험을 갖고 있는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달라요. 더군다나 황제 한 사람을 개변(改變)시킴으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유가의 의식이고, 그래서 주공을 꿈꾸는 겁니다.

공자가 주공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겁니다. 제가 처음 인터넷에 에세이로 썼던 글 가운데 하난데, 이 구절을 상대로 해서 유가 정치론에 성군현신론을 한 마디로 하면, 송창식의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다.

그리고 왕필의 이 속에 있는 이야기는 그와 같은 정치적 이념을 제안하고 있는 거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천지론, 풀무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오느냐는 거죠. 그래서 지식인들의 모델이 참 재밌어요.

그러면 이 두 가지의 차이점은 뭐냐. 제왕의 통치에서는 제왕이 마음을 비운다. 홀연한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고 받고 있는 신하들의 보고 속에 있는 12곡직, 옳고 그름, 잘못된 것, 허위 보고를 가려낼 줄 아는 냉철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는 거예요. 그래서 거울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유학자들이 말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수양의 내용은 그냥 비워내는 겁니다. 대신에 그냥 듣는 거예요. 백성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백성의 마음이 나에게 채워지는 거죠. 그래서 뜻(意)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요.

민의를 듣는 것, 이게 바로 심이지 않습니까. 그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 소리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전에 한번 언어이론 얘기하면서 했었죠. 백성들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소고기 30개월 이상 월령된 것 수입하지 말라.’고 하면 백성들이, 범문정이라고 하는 송대 개혁정치가, 제가 멋있다고 했던, 유학자들이 그런 멋있는 말을 많이 해요. 더군다나 저처럼 강의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만약에 지금 실제 국무총리에 있는 사람이, ‘온 천하 백성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온 천하 백성들이 다 즐거워한 연후에야 내가 즐거워하겠다.’ 하면서 개혁정치를 시작했습니다. 멋있다고 박수가 나올 만하죠.

그런 건 통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당나라 때 시를 통해서 관리를 선발 할 때,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방식의 뜻, 그런 방식의 문장은 아무나 조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천하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만 되죠.

뭐 조금 글 잘 쓰는 사람이 그런 문장을 지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평소 행동거지가 그렇지 아니한 사람이 그런 문장을 지으면 웃기고 있네라고 하겠죠. 그럴만한 문장을 지을 사람이 그런 문장을 지으니까 부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죠.

그런 것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문’의 힘입니다. 문위제도를 표방하면서 송대 유학자들이 행동했잖습니까. 문장이라는 것은 ‘도’를 실어 나르는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도’는 나의 , 공자의 ‘도’다.

물론 그런 제도적인 차원의 것, 다른 차원의 것들에 대해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런 비슷한 부분은 똑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래서 이와 같은 시각이 가장 제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11쪽에 보시면 두 번째 점 부분 노자 62장 부분에,

“천자를 세우고 삼공을 둔다”
(故立天子, 置三公)

이라고 하는 노자의 원문에 대해 왕필은
“이것이야 말로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라고 해석한 반면에, 하상공장구에서는
“선하지 못한 사람들을 교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欲使 敎化不善之人)”

라고 얼버무려요. 즉 달리 말하면, 왕필은 삼경을 두어서, 이 때 삼경 체제라고 하는 것은 황제는 무위하고 삼공이 다하는 거예요. 이른바 재상정치죠. 그런데 하상공장구에서는 공정, 공평무사라는 뜻으로 바꿔버려요. 그래서 삼공이라는 제도 시스템을 구성해 버립니다.

즉 제왕이 아닌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왕은 초월적이라면 유가, 왕필이 말하는 왕은 인간계에 자리하고 있는 으뜸, 그가 존귀하고 큰 까닭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왕이란 자리가 존귀하기 때문에 크고 중요한 것이다 라는 논리, 즉 훨씬 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한대(漢代)의 유가하고 송대의 유가하고 청대의 유가가 또 다릅니다. 이 사람들의 방식이. 예를 들면 여기까지만 해도 유가의 기본적인 임무는 군자를 올바르게 보필해서 그가 성군이 되도록 하고 사실은 현신인 내가 다하는 거지만 보좌하는 입장이에요.

하지만 송대, 송명이학으로 들어가면 내가 곧 성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율곡이나 퇴계가 썼던 『성학집요』, 『성학십도』 이런 것은 사대부들이 직접 성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 전에 정조 이산을 그리면서, 정조를 좋게 그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릴 때, ‘조선은 사대부의 국가’라는 표현이 되게 권모술수로 누그러진 이상한 방식으로 노론의 영수를 그렇게 봤는데요.

(물론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전 그냥 유가적인 논리에 의해서 말한다면, 조선을 사대부의 국가라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진보라고 봐야 됩니다.

왕 한 사람의 정치라고 본다면 굉장히 위험 한 거죠. 하지만 그 왕이 실제로 위민을 하려고 할 때, 썩은 벼슬아치들에 의해서 전행당하는 상황이라면 달리 봐야겠지만 적어도 공동 통치체제로 나아간다고 하는 발언으로 볼 때는 좋게 봐야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없었습니다. 불가능하죠. 그런데 조선에서는 그와 같은 방식의 발언이 나왔다. 조선 유학 정신의 위대함이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현실의 정치가 상당히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대응 과정을 보면 우리가 비판할 부분들이 있겠지만 액면 100% 다 할 수 없겠지만 저는 적어도 그와 같은 제도의 발전이라고 볼 때는 의미 있는 방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유학도 실질적으로 많이 변했고, 그리고 더 커다란 변화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향약 같은 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벌이는 것은 ‘자기가 곧 성인이다.’ 라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 지역은 내가 다스린다.’는 자치의 이념을 실현해 나가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중국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내가 성인이 된다는 의미가, 고대에서는 왕을 성인으로 만들겠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송명사대부로 들어가면 ‘내가 곧 성인이다.’라고 바뀌어요. 그랬다가 내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이 이미 있었고, 그러면 황제가 무얼 합니까.

내가 살고 있는 내 지역, 그래서 예를 들면 의사로서도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는 거고. 그리고 이 사람들의 변호의 논리이기도 해요. 워낙 고시의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의사가 되기도 하고, 상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훈장이 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지역사회로 내려갑니다.

지역 사회 자체를 자기가 부활시킨다는 것이 기본적인 향약의 정신이기도 하죠. 이런 것들이 그 이후의 다양한 해석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유학적 저변의 확대라는 차원으로 관심이 바뀌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인론이라는 것이 반드시 어떤 완벽한 인격의 체현의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적어도 이 제왕, 1인 체제, 혹은 제왕의 신체 자체가 우주의 질서를 가리키는 제왕학적인 체계의 노자를, 성인론 혹은 왕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것으로 해석사를 뚫어놓은 것이 바로 왕필이었고, 그래서 부분 부분에 관한 해석에서 상당히 재밌는 표현들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왕필이 말하는 대인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따라서 이것은 공치의 이념이라는 거죠. 어떤 면에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 왜 노자라는 텍스트가 나중에 도학자들에게 의미 있는 텍스트로 받아 들여 지는 지 설명이 안 됩니다.

특히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어요. 사대부는 황제의 수족이 아니라 황제라는 피리를 연주하는 연주가다. 그래서 공자도 유어에 ‘예의 경지에 노닌다.’ 라는 표현을 쓴 거 아닙니까.

그 때 예를 것은 유괘고, 그 예는 천하의 예를 다스리는 그러한 예입니다. 지금과 같은 것이 아니란 얘깁니다. 자, 질문 있으세요. 그러면 오늘은 이걸로 얘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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