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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알라딘: 조선사상사 - 단군신화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오구라 기조

알라딘: 조선사상사

조선사상사 - 단군신화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 
오구라 기조
(지은이),이신철 (옮긴이)
길(도서출판)2022-03-21



368쪽

책소개

한국에 유학해 한국철학을 전공한 일본 학자에 쓰인 ‘조선(한국)사상사’이다. 기본 축은 사상사이지만 단군신화 시기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의 정치사와 문학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전체적인 사상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더욱이 비록 교양서를 표방했기에 입문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이렇게 통사의 형식으로 쓰인 우리 사상사가 없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번역자의 말대로 “‘조선(한국)사상사’가 우리의 사상사인 한에서 일종의 충격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5

제1장 조선사상사 총론
1. ‘조선’의 사상사라는 것 13
조선이란 13 / 조선의 호칭 14
2. 조선사상사의 특징 15
혁명인가 브리콜라주인가 15 /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 16 / 조선적 영성의 네트워크 20

제2장 신화 및 ‘고층’(古層)
1. 단군신화 23
‘단일민족’과 단군 23 / 『삼국유사』에서의 단군 25 / 단군신화의 사상적 성격 26 / 홍익인간: 단군신화의 요소 ① 27 / 곰: 단군신화의 요소 29 / 수직성과 남성 중심성: 단군신화의 요소 ③ 30 / 천부(天府): 신화로부터 위서(僞書)로 31 / 단군신화의 성격 32
2. 그 밖의 신화 및 전설 33
시조 전설과 난생 33 / 동물 혼인 34
3. ‘고층’ 또는 ‘기층’의 문제 35
‘고층’은 있는가 35 / ‘고층’의 언설: ‘풍류’를 둘러싸고 36 / ‘북’(北)의 우위 38 / 근대에서 ‘고층’의 발견, 창조 39

제3장 고구려, 백제, 신라
1. 삼국 시대 이전: 고조선, 한사군, 삼한 41
기자 조선 41 / 위씨 조선(위만 조선) 44 / 한사군 44 / 삼한: 마한, 진한, 변한 46
2. 고구려 47
고구려의 약사(略史) 47 / 고구려의 문화, 제천 의례 49 / 고구려의 불교 50 / 고구려의 유교, 도교, 풍수사상 51 / 고구려의 문학, 예능 52
3. 백제 53
백제의 약사 53 / 백제의 문화 55 / 백제의 불교 55 / 백제의 문학 56 / 백제의 예능 57
4. 신라의 약사(略史)와 문화 58
신라의 약사 58 / 통일 신라의 약사 60 / 신라의 문화 63
5. 신라의 불교 65
불교의 융성 65 / 원광과 ‘세속오계’ 68 / 원효 68 / ‘화쟁’과 ‘회통’ 70 / ‘이변비중’ 71 / 철학사에서 원효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74 / 의상 75 / 이(理)철학의 시원 77 / 화엄사상 78 / 불교의 변천, 선(禪)의 유입 79 / 아미타 신앙, 미륵 신앙 80
6. 신라의 불교 이외의 사상 82
화랑의 사상 82 / 최치원, 설총 85 / 풍수지리 86
7. 신라의 문학과 예능 87
향찰: 신라어의 표기 방법 87 / 신라의 예능 88

제4장 고려
1. 약사와 문화 91
약사 91 / 문화 94
2. 불교 97
고려 시대 불교의 특징 97 / 종파 98 / 균여 99 / 의천 100 / 지눌 102 / 지눌의 철학 104
3. 불교 이외의 사상과 문학 105
고려 시대의 유교와 풍수지리 사상 105 / 시가 107

제5장 조선 시대 1: 주자학(성리학)
1. 약사(略史) 109
조선 건국과 외적의 내습 109 / 후기로부터 말기로 111
2. 주자학(성리학)의 수용과 도입 113
고려, 조선 교대기의 사상 113 /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 113
3. 사림파의 대두와 사화 116
사대부의 분열: 사림파와 훈구파 116 / 절의 문제와 사육신, 생육신 118 / 사화 119 / 자치주의와 조광조 120 / 이언적과 태극 논쟁 121 / 성리학의 이(理) 123

4. 서경덕과 그 계통 127
화담 서경덕: 선천과 후천 127 / 기(氣)철학 129 / 서경덕의 계통 130
5. 이퇴계와 그 계통 131
퇴계 이황 131 / 사단칠정 논쟁 132 / 이발, 이동, 이도 136 / 이퇴계의 계통 139
6. 이율곡과 그 계통 140
율곡 이이 140 / ‘주리파’와 ‘주기파’ 141 / 이율곡의 견해 142 / 이율곡의 계통 144
7. 당쟁과 노론 패러다임 145
당파의 분립 145 / 예론 146 / 예론에 대한 해석 147 / 노론 패러다임과 조선형 중화사상 148 / 사람과 동물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 149 / 인물성동이론의 의미 152


제6장 조선 시대 2: ‘실학’, 양명학, 유교 이외의 사상
1. 이른바 ‘실학’ 155
‘실학’이란 무엇인가 155 / ‘실학’의 분류 157 / ‘실학’과 영성 159 / 지봉 이수광과 반계 유형원 160 / 성호 이익 161 / 성호학파 163 / 청담 이중환과 다산 정약용 164 / 북학파 165 / 담헌 홍대용 166 / 연암 박지원 167 / 초정 박제가 169 / 추사 김정희와 혜강 최한기 172 / 그 밖의 ‘실학’자들 174
2. 양명학 175
조선의 양명학 175 / 누가 양명학자인가 177 / 양명학과 ‘실학’ 177
3. 불교 178
억압당한 불교 178 / 서산대사(휴정)와 사명당(유정) 181 / 백파선사(긍선) 183 / 초의 183
4. 도교 및 예언사상, 샤머니즘 184
수도의 선정과 예언사상 184 / 무조(巫祖) 전설 184 / 사람이 죽는 장면: 사머니즘의 관점에서 186

5. 그리스도교 188
천주교의 수용 188 / 천주교에 대한 탄압 190 /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유입 191
6. 훈민정음과 문학 192
세종과 집현전 192 / 훈민정음의 사상 192 / 「용비어천가」 194 / 소설 194 / 가사와 시조 196 / 파격 197 / 예능과 문학 198

제7장 조선 말기 및 대한제국
1. 약사 201
19세기란 201 / 약사 202
2. 위정척사사상 204
양이사상 204 / 화서 이항로 205 / 노사 기정진 207 / 흥선대원군 208 / 면암 최익현 208
3. 동학 210
수운 최제우 210 / 최제우의 말 213 / 주문 215 / 불연기연 217 / 동학의 의미 218 / 해월 최시형 219 / 최시형의 말 220 / 한국과 북조선에서의 동학 평가 222 / 갑오동학농민전쟁, 동학에서 천도교로 223

4. 개화사상, 애국계몽사상, 동양연대론 등 224
개화사상 224 / 독립협회와 애국계몽사상 225 / 동양연대론 225 / 친일파 및 친일 단체 227
5. 종교 227
불교 227 / 그리스도교 229 / 신흥종교 230

제8장 병합 식민지 시기
1. 약사와 문화 233
조슈(長州)의 역할 233 / 약사 235 /
병합 식민지의 성격 237 / 문화 239 / 인간관 241
2. 일본에 대한 저항, 독립사상 242
독립선언서 242 / 애국계몽사상 245 / 박은식 246 / 장지연 250 / 신채호와 안창호 251 /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 252 / 독립운동가와 민족개조론의 중요 인물 252
3. 친일사상 253
친일이라는 행위: 이완용 253 / 중국에 대한 눈길 254
4. 새로운 사조 255
손병희와 천도교, 이돈화 255 / 문화론 257 / 문일평과 최남선 258
5. 종교 261
일본의 종교 정책 261 / 일본에 의한 조선 불교에 대한 침투와 저항 262 / 한용운 263 / 불교 266 / 그리스도교 266 / 신흥종교 267
6. 문학 267
문학 267 / 몇 사람의 문학가 269


제9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 약사 275
북조선의 기원과 국가, 체계의 성격 275 / 북조선의 핵심 사상과 역사관 278 / 1940~80년대 279 / 1990~2010년대 281
2. 정치가, 사상가들 283
김일성 283 / 박헌영 284 / 허가이, 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285 / 김정일 286 / 김정은 287
3. 주체사상 289
불멸의 주체사상과 그 맹아 289 / ‘주체’의 등장: 1955년의 연설 290 / 자주, 자립, 자위: 1960년대 291 / 헌법과 주체사상 292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293 / 주체사상의 내용 ①: 자주성 297 / 주체사상의 내용 ②: 창조성 296 / 주체사상의 내용 ③: 의식성 297 / 주체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301

4. 혁명사상 302
친일파 청산 302 / 한국전쟁의 기원 303 / 천리마 운동과 청산리 방법 305 / 고난의 행군과 선군사상 305 / 김일성, 김정일주의와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306

제10장 대한민국
1. 약사 309
대한민국의 기원 309 / 1945~80년대 310 / 1990~2010년대 313
2. 정치가들 314
이승만 314 / 김구 315 / 박정희 316 / 전두환, 노태우 317 / 김영삼 318 / 김대중 319 / 노무현 320 / 이명박 321 / 박근혜 322
3. 시대사상의 조류 322
민주, 민족, 민중 322 / 좌파사상 324 / 통일사상 325 / 선민사상 325 / 병합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326
4. 사상가들 330
유영모 330 / 함석헌 331 / 박종홍 332 / 김지하 324 / 이어령과 김용옥 337 / 지성인 338 / 현대의 철학과 사상 338 /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 339

5. 종교 341
불교의 생명력 341 /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341 / 사회 속의 불교 343 / 그리스도교 345 / 사회 속의 그리스도교 346 / 샤머니즘 350
6. 문학 351
문학의 어려움 351 / 시 352 / 소설 353

후기 355
옮긴이의 말 359
참고문헌 365
찾아보기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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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3월 25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오구라 기조 (小倉紀藏) (지은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 광고회사에 근무하다가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로 유학을 와서 8년 동안 한국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토 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제이앤씨, 2015), 『새로 읽는 논어』(교유서가, 2016),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모시는사람들, 2017)를 비롯해 『입문 주자학과 양명학』(2012), 『주자학화하는 일본 근대』(2012),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2020), 『한국의 행동원리』(2021)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조선사상사>,<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새로 읽는 논어> … 총 4종 (모두보기)

이신철 (옮긴이)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진리를 찾아서』(공저, 철학과현실사, 2000), 『논리학』(공저, 시대정신, 2010), 『철학의 시대』(공저, 해냄, 201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피히테, 철학과현실사, 2005), 『객관적 관념론과 근거짓기』(비토리오 회슬레, 에코리브르, 2005), 『신화철학』(전2권, 공역, 프리드리히 셸링, 나남출판, 2009), 『그리스 철학과 신』(로이 케니스 해크, 도서출판 b, 2011), 『헤겔』(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2), 『유대 국가』(테오도르 헤르츨, 도서출판 b, 2012), 『헤겔의 서문들』(헤겔, 도서출판 b, 2013),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하세가와 히로시, 도서출판 b, 2013), 『트랜스크리틱』(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 b, 2013),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비토리오 회슬레, 도서출판 b, 2014), 『헤겔과 그의 시대』(곤자 다케시, 도서출판 b, 2014), 『독일철학사: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비토리오 회슬레, 에코리브르, 2015), 『헤겔 이후: 독일 철학 1840~1900』(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6), 『이성의 운명: 칸트에서 피히테까지의 독일 철학』(프레더릭 바이저, 도서출판 b, 2018), 『헤겔의 이성, 국가, 역사』(곤자 다케시, 도서출판 b, 2019), 『헤겔 『논리의 학』 입문』(한스 라데마커, 도서출판 b, 2019),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울리히 브란트 외, 에코리브르, 2020), 『미래 가능성: 무능력의 시대와 가능성의 지평』(프랑코 ‘비코’ 베라르디, 에코리브르, 2021), 『탈원전의 철학』(사토 요시유키 외, 도서출판 b, 2021) 등을 비롯해 방대한 분량의 ‘현대철학사전 시리즈’(전5권)로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니체사전』, 『현상학사전』을 ‘도서출판 b’에서 펴냈다. 접기


최근작 : <철학의 시대>,<논리학>,<역사 속의 인간> … 총 3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아직까지 국내 학자에 의해 뚜렷한 성과가 없는 분야에서 외국 학자에 의해 쓰인 우리 사상사
이 책은 한국에 유학해 한국철학을 전공한 일본 학자에 쓰인 ‘조선(한국)사상사’이다. 기본 축은 사상사이지만 단군신화 시기부터 21세기 거리의 철학까지의 정치사와 문학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전체적인 사상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더욱이 비록 교양서를 표방했기에 입문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이렇게 통사의 형식으로 쓰인 우리 사상사가 없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번역자의 말대로 “‘조선(한국)사상사’가 우리의 사상사인 한에서 일종의 충격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오구라 기조는 이미 국내에 여러 책이 번역되어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 특히나 그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모시는사람들, 2017)에서 한국이 어째서 ‘도덕 지향적’인 유교적 사회인지를 한국인의 ‘이’(理) 지향성 ― 물론 그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이’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은 아닌바, ‘이’와 ‘기’의 상호 역동성 속에서 찾고 있기는 하다 ― 에 찾기도 한 바 있다.

조선(한국)사상사의 가장 큰 특성은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 그 저류에는 영성(靈性)!
저자는 조선사상사의 특질을 무엇보다도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되풀이되어 전개되었다는 데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투쟁은 정치투쟁과 직결되어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선 시대의 성리학과 해방 후의 한국과 북한에서 전개된 이데올로기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투쟁은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靈性)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볼 수 있는데,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선사상사’의 움직임을 순수 지향성과 다른 다양한 사상들과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사상의 향연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요소들을 꿰뚫고 있는 것은 ‘영성’인데, 그가 보기에 이러한 영성은 “지성으로도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현상” ― 그가 직접적으로 이 ‘영성’의 예로 드는 것은 원효와 화랑으로부터 이퇴계를 거쳐 최제우에 이르는 경주나 영남 지방에서의 “하늘과 사람은 같다”라는 영적 세계관인데, 이는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을 이룬다고 한다 ― 이라고 말함으로써 다분히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치명적 한계, 안병직과 이영훈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동조

이와 같이 나름 조선사상사를 핵심적인 키워드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려봄으로써 그 특질을 규명한 것은 비록 입문서 내지 교양서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논란의 여지를 던져주고 있기도 하다. 
  • 특히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 ― 그는 이를 ‘병합 식민지’ 시기라고 칭한다 ― 에 대한 평가에서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많다
  • 그는 교묘한 구분법 ― 이 책 237~39쪽 참조 ― 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탈과 폭력적 지배만을 했다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그리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모독임과 동시에, 역사를 살아간 조선인에 대한 멸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 그러면서 그는 수탈과 폭력적 지배만을 했다면, 왜 이 시기에 친일적인 조선인이 그 정도로 많이 출현했는지가 설명될 수 없다고까지 한다. 
  •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인식은 “전후에 만들어진 허상”이라고까지 한다. 
  • 국내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있는 안병직이나 이영훈의 논리 ― 이들의 논리와 한계를 326~28쪽에 걸쳐 “병합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 와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 물론 그는 이 시기의 독립운동과 그 사상적 조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서 이 시기를 조망함으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 한국 현대 철학의 약동성을 일본 철학자들과 비교하다

끝으로 한국 현대 철학자들의 특장점을 일본 철학자들과 비교해 놓은 부분은, 비록 상세한 서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특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즉 “김상봉은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공부했고, 이기상은 독일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공부했다. 일본의 철학 연구자는 칸트나 하이데거를 공부하더라도 현실 문제와 격렬하게 대결하는 실천자가 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 철학의 실천적 생명력이 강인함을 실감한다.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 사후의 일본 철학은 한국의 현대 철학에 비하면 현실과 대결하는 힘이 너무 약하다.”이런 점에서 그가 조선사상사의 한 특질로 약동성과 정태성의 두 측면을 공히 봐야함을 강조한 것은 두 나라의 현대 철학을 비교해본 관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2022/03/09

알라딘: [임건순]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알라딘: [전자책]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eBook]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 제자백가 아카이브 1
임건순 (지은이)서해문집2015-08-19 



 전자책 미리 읽기
전자책정가
12,600원

책소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제자백가 읽기 방식을 선보인 저자 임건순이 이번에는 제자백가 사상사를 현재적 관점으로 풀어낸 “제자백가 아카이브”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첫 번째 책인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는 제자백가 사상의 중심부로 곧장 파고들어가 정치사상으로서의 제자백가를 이야기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몸서리치던 춘추전국시대. 커다란 위기와 변화가 몰아치던 극단적인 유동성의 시대에 백가쟁명을 벌이던 사상가들. 그들은 눈을 부릅뜬 채 현실을 관찰하고, 치열하게 고민해 패를 던졌다. 난세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은 어떤 승부수를 던졌을까?

이 책은 유가(儒家)·묵가(墨家)·법가(法家)·도가(道家) 등 정형화된 범주에 갇힌 동양철학이라는 ‘박제’의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현실(사회)을 구성하려는 능동적인 정치사상으로서의 제자백가 사상을 새로이 조명한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제자백가 사상사을 만난다.


목차
프롤로그
패를 열어보는 즐거움, 제자백가 사상 공부하기
난세 극복과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이론
제자백가 사상,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이해하기
제자백가,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사상가 이야기
공동체라는 창을 통해 제자백가 읽기
역사적 배경

제1장 실용주의자 관중의 부유한 공동체

intro
제나라의 재상 관중
새로운 질서의 중심이 필요했던 시대
사농공상을 구분해 땅을 나누어주고 생산하게 하라
인민은 뺏기는 것을 싫어한다
조직적인 자원 개발자이자 거대상인으로서의 국가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상인 유치
물가조절자로서의 국가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족해야 영욕을 알게 된다”
사유(四維), 통치에 순응하는 양들의 내면
목민을 말하다
극단적 실용주의자 관중
끝까지 야인이고 소인이었던 관중
한 국가의 문명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관중도 비웃을 대한민국 사회

제2장 인본주의자 안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공동체

intro
해학과 기지의 안자
동(同)이 아니라, 화(和)의 공동체
지배층이라면 오직 사직을 위해 일하라
군주는 인민에게 죄를 짓지 마라
안자가 맹자에 앞서 여민동락을 말하다
측은지심이 여민동락의 원동력
역사상 첫 인본주의자
안자와 같은 어른이 없는 한국 사회

제3장 신전주의자 손자의 불태(不殆) 공동체

intro
눈앞으로 다가온 전국시대
신중하고 냉철한 사고와 계산 능력
전쟁은 경제력이다
전쟁은 정보력이다
손자의 질문과 조언

제4장 이상주의자 공자의 화(和)?인(仁) 공동체

intro
음악과 같은 하모니의 공동체를 꿈꾼 사람
원망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난세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
새로운 군자가 일궈내는 인(仁)의 공동체
새로운 군자, 새로운 예
공자는 씨족공동체적 삶을 그리워했다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 공자

제5장 노동자의 성인 묵자의 겸애 공동체

intro
시대적 배경과 묵자의 문제의식
관습주의 대 합의주의
합의된 하층민의 뜻 ‘천지’
‘별(別)’의 공동체에서 ‘겸(兼)’의 공동체로
겸애란 무엇인가?
체계적 행정망을 지닌 큰 정부 지향
구체적인 겸애 : 반전(反戰), 절용(節用), 절장(節葬), 비악(非樂)

제6장 유묵(儒墨)의 장수 오기의 부자지국(父子之國)?부자지병(父子之兵) 공동체

intro
오기는 병가인가, 유가인가?
유학자 오기, 인과 의와 문무 겸비를 말하다
국방력의 핵심은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
인민 교육과 부득이용병 사상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다”
국가유공자 제도를 역설하다
부자지병이면 천하무적
억압적 체제는 국방력을 약화시킨다

제7장 국가주의자 상앙의 국력 극대화 공동체

통일제국 진(秦)의 아버지 상앙, 진나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강국을 위해 법치를 주장하다
어떻게 해야 인민을 싸우게 할 수 있을까?
장평전쟁에서 엿보인 진의 위력
법을 교육하고 홍보하라
군주의 무위(無爲) 법치
상앙이 생각하는 국가의 본질
너무 깡패가 많은 한국 사회

제8장 대장부 맹자의 항산(恒産)?항심(恒心)?지식인 공동체

intro
맹자가 살았던 시대
성선설과 왕도정치 그리고 항산과 항심
왕도정치의 구체적 전개
성선설과 지식인이 주인이 되는 세상
세 가지가 보장되는 공동체

제9장 상대주의자 장자의 양생(養生) 공동체

intro
맹자와 동시대인 장자
공자의 제자 양주에게 가다
상대주의자 그리고 회의주의자
잉여가 되자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성심에서 허심으로
장자가 온다면 숨 막힐 한국 사회
도구적 이성뿐 아니라 비판적 이성도 교육하라

제10장 법철학자 신도의 인민이 장수하는 공동체

intro
신도가 생각하는 군주
신도, 법과 법치를 말하다
능력에 따라 직분과 임무를 부여하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익을 추구하라
법치의 핵심은 무위(無爲)
군주의 용인술
신도의 세(勢)
인민이 장수하는 공동체

제11장 위대한 지성의 봉우리 순자의 분(分)?예(禮)?지평(至平) 공동체

intro
순자 사상의 수요자는 바로 군주
천(天)과 인(人)을 구분하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성(본성)과 위(노력)를 구분하라
인간은 백지다
예를 만들어내는 성인 그리고 후왕
분을 핵심으로 하는 예
예법을 실천하는 개인과 사회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제12장 역사학자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공동체

intro
노회한 역사가의 이야기
소국과민
소국과민의 실상
노자는 국가주의자다
손자의 아들 노자
노자의 진짜 무위
로봇 같은 군주와 신민을 만들어라

제13장 구세의 선비 한비자의 민본주의 공동체

intro
이야기 수집광 한비자
수주대토(守株待兎)
화씨지벽(和氏之璧)
구맹주산(狗猛酒酸)
모순(矛盾)
한비자의 스승 손자
형명의 술
무위를 주장한 한비자
‘세’는 법과 술을 날개로 해서 나는 새
한비자의 꿈은 위민주의와 민본주의

에필로그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제나라의 군주 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앉히고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겠느냐고요. (…) 이에 관중은 우선 나라를 부유하게 하자고 주장합니다. 강병(强兵) 이전에 부국(富國) 또는 부국과 함께하는 강병을 말한 것이지요. 우선 나라의 살림을 충실히 다지면서 하드 파워를 키우자는 것인데, 관중은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인민이 많아져야 하고 그 인민들이 부유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자≫ <치국편>에서 치국(治國)의 핵심은 반드시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지요. (…) 관중의 답은 간단합니다. 우선 생업의 기초가 되는 생산 기반을 철저히 마련해주자는 것이었지요. 어떻게? 바로 분업의 틀을 통해서 말입니다. ‘치국의 기초는 생업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관중 사상의 요체라면 요체인데요, 잘살고 이익을 얻으려면 누구나 생업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요. 하지만 통치학과 통치 기술이 정비되지 않은 당시에 인민의 생산 기반 보장 문제는 관중이 등장하고 나서야 제대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 관중이 묻습니다. ‘당신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요.”
(‘실용주의자 관중의 부유한 공동체’ 중에서)  접기
“동(同)이 아닌 화(和)의 원리와 질서에 기초한 공동체, 사직을 이야기하면서 왕과 신하의 정치적 책무와 자세에 대하여 새롭게 말한 점, 그리고 측은지심에 기초한 정치와 여민동락 공동체에 대한 역설. 안자는 사상사를 수놓을 만큼 참으로 많은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 그는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화와 복은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노력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인간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이런 합리적 자세도 바탕이 되어야 인본주의가 꽃피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안자는 이렇게 인본주의를 개창하다시피 한 사람인데, ‘역사상 첫 번째 인본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이 위대한 인본주의자는 동아시아의 위민(爲民), 민본(民本), 애민(愛民) 사상의 토대를 닦았지요. (…) 안자는 제자백가 사상가 중 유일하게 한 국가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 어른이 없는 사회는 정말 불행한 사회가 아닐 수 없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는 안자 같은 어른이 없기에 진실로 슬픈 게 아닐는지요. 안자가 묻습니다. ‘여러분의 공동체에는 어른이 존재합니까?’”
(‘인본주의자 안자의 여민동락 공동체’ 중에서)  접기
“손자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가는 과도기에 살았고, 따라서 어떻게 해야 국가가 전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닙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입니다. 손자는 철저히 불태, 즉 위태롭지 않음을 추구했고, 불태의 국가 공동체를 꿈꾼 사상가이며 불태를 위한 실용적 지침과 전략을 말한 인물이지, 싸워서 항상 이기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일상화된 시대에 어떻게 해야 국가 공동체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요? 손자는 불태의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를 염두에 두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신중하고 냉철한 사고와 계산 능력이고, 둘째는 경제력이며, 셋째는 정보력입니다. (…) 손자가 와서 본다면 기가 막힌 현실일 것입니다. 손자가 묻습니다. ‘너희는 왜 국정원 마피아를 일벌백계하지 않느냐?’고요.”
(‘신전주의자 손자의 불태 공동체’ 중에서)  접기
“묵자가 고른 선택지는 공자와 정반대였습니다. 일단 위로부터의 개혁 내지 거듭남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운동을 주장했지요. 애초에 위로부터의 거듭남과 개혁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층민인 그들은 당장 무질서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으니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에 문제의식을 가진 채 그들보고 ‘내려와라, 우리가 올라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 틀 자체를 바꾸자, 아니면 질서 틀을 구성하는 원리를 바꾸자’고 할 것이 당연하지요. (…) 그래서 묵자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인사들이 위로 올라가 국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명한 이를 숭상하자는 상현(尙賢)이지요. 군주는 오직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분과 출신을 따지지 말고요.
(…) 공자와 달리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의 통찰력과 창의성 내지 개인의 문제의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듯합니다. 바로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수공업자와 무인 그리고 가혹한 삶을 살며 핍박받던 피지배층과 천민 여럿이 연대해 집단을 이루고 길드 내지 조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갑론을박을 벌였겠지요. 그러면서 합의와 결론을 이끌어냈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하층민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그들만의 사상과 시대정신, 공동체의 청사진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묵자 텍스트의 사상과 철학이 된 것이지요.
(…) 그러므로 겸애(兼愛)는 물질적 이익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수 있는 여건은 모두가 누려야 할 몫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내가 힘들게 일했고 뭔가를 만들어냈다면 내가 가져야 할 몫, 나에게 보장되어야 할 몫을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내 몫은 어디에 있지?’ ‘내 몫을 왜 안 주는 거야?’ ‘내 몫이 이것밖에 안 되나?’ 이렇게 따져 물으면서 자신의 정당한 몫을 달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노동자 출신의 사상가 묵자는 실제 모든 인민이 누려야 할 각자의 몫, 최소한의 자기 몫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몫이 보장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겸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몫은 당연히 물질적 이익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일한 사람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니까요.”
(‘노동자의 성인 묵자의 겸애 공동체’ 중에서)  접기
“상앙이 보기에 인간은 똑같습니다. 이익을 탐하고 벌을 무서워하는 건 모든 인간이 똑같으니 그것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농사일 잘하고 적에 맞서 잘 싸우면 상을 주고, 그러지 않으면 벌을 내릴 것이다. 그것은 모두 법으로 명확히 보장한다. 그리고 그 법은 군주 아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니 열심히 일하고 싸워라. 하층민도 열심히 일하고 싸우면 법이 보장하는 대로 귀한 신분이 될 수 있다. 귀족 역시 싸우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이다.’ 대략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 이렇게 누구든 법을 잘 알게 되고 또 그 법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집행되면서 모든 인민에게 진나라 정부는 높은 신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진나라 인민은 상앙의 개혁과 법치에 적응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치를 아주 편히 여기게 되었고, 농사와 전투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높은 생산력과 강한 군사력을 겸비한 막강한 나라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사유재산을 보장하고, 누구에게나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토대를 제공하며, 일할 맛 떨어지게 하는 외적 요소를 없애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며, 또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 왔습니다. 상앙의 변법과 통치라고 하면 잔혹함만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상앙의 주장과 그가 행한 역사적 전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통의 인민에게는 매우 진보적이었습니다.”
(‘국가주의자 상앙의 국력 극대화 공동체’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임건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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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란 책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동양철학자로서, 제자백가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좋아 세상 제일가는 제자백가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그 꿈을 현실화해가는 중이라 자부하는 젊은이다. 인문학은 ‘통찰력을 위한 무한열정이다’라고 정의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제자백가 철학, 동양사상을 말하고 저술하고 강연하는 게 아니라, 제자백가와 동양철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통찰의 근육을 가지도록 도우려 하고 있다.
제자백가 중 법가와 병가의 냉철함과 이성을 좋아하기에 법가와 병가의 지혜를 눈빛 초롱초롱한 ...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 총 3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삼국지>보다 재밌고 <군주론>보다 혁명적인
제자백가에 대한 최고의 공부!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는 제자백가 사상사

패를 열어보는 즐거움! 그들은 어떤 국가, 어떤 공동체를 꿈꾸었나?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제자백가 읽기 방식을 선보인 저자 임건순이 이번에는 제자백가 사상사를 현재적 관점으로 풀어낸 “제자백가 아카이브”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첫 번째 책인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는 제자백가 사상의 중심부로 곧장 파고들어가 정치사상으로서의 제자백가를 이야기한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몸서리치던 춘추전국시대. 커다란 위기와 변화가 몰아치던 극단적인 유동성의 시대에 백가쟁명을 벌이던 사상가들. 그들은 눈을 부릅뜬 채 현실을 관찰하고, 치열하게 고민해 패를 던졌다. 난세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은 어떤 승부수를 던졌을까?
이 책은 유가(儒家)·묵가(墨家)·법가(法家)·도가(道家) 등 정형화된 범주에 갇힌 동양철학이라는 ‘박제’의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현실(사회)을 구성하려는 능동적인 정치사상으로서의 제자백가 사상을 새로이 조명한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제자백가 사상사. 춘추전국시대 못지않게 유동성이 넘치는 지금의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정치, 어떤 공동체를 꿈꿀 것인가. 오늘날 치열하게 벌어지는 국가/정치 논쟁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는 ‘현재성의 책읽기’를 추구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쉽고, 재밌고,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하다!

“정말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전개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사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신심이 있었기에 이렇게 또다시 제자백가 사상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진 제자백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 책은 재미있고 쉽습니다. 우선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게, 제자백가 사상과 제자백가 사상사 자체가 원래 재미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제자백가 연구는 편식과 불균형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재미있는 제자백가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쉽지 않았습니다. (…) 공부를 위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든, 아니면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는 보통의 독자든, 저자로서 감히 이것 하나는 꼭 약속하겠습니다. 재미와 흥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고.” -머리말 중에서

쉽고, 재밌고,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하다! : 있는 그대로 제자백가 공부하기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자백가 공부가 심심하고 재미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자?맹자 등 지나친 유가(儒家) 중심의 공부와, ‘가(家)’로 범주화된 공부에 치우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가’에 속하는 사상가들의 공통점만을 우선적으로 공부해온 결과, 각 사상가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러한 문제의식을 만들어낸 역동적인 당대의 현실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춘추전국시대에는 ‘가’로 범주화된 분류 자체가 없었으며, 다만 사상가들이 홀로 각자 치열하게 사유하며 경쟁의 장에서 활약했을 뿐이다.
예컨대 같은 유가라고 해도 공자와 맹자는 색깔이 꽤나 다른 사상가이다. 그리고 장자와 노자는 도가에 속하지만 오히려 아주 이질적인 사상 체계를 갖고 있으며,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도, 그 사상의 수용자 층도 완전히 달랐다. 또한 전국시대 말의 유가 사상가로 분류되는 순자의 사상은 노자의 문제의식과 닮은 점이 분명히 있었고, 적잖이 장자의 영향을 받았으며, 묵자의 사상까지도 자신의 사상체계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오기는 공자적 요소와 묵자적 요소, 법술지사적 요소를 모두 지닌 입체적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가’를 인식의 틀로 삼아 제자백가 사상을 살피는 것은 헛발질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적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사상가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들 사이의 차이와 개성을 분명히 직시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서 제자백가 사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각 사상가가 앞선 선배 사상가들의 무엇을 계승하고 극복하려 했는지 그 고민도 함께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이다. 또한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도 ‘가’에 묶이지 못해 빠뜨리기 쉬운 사상가들까지도 온전히 살필 수 있으니, 자연히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다채로운 향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 ‘공동체’라는 창을 통해 제자백가 읽기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제자백가 사상은 치열한 정치 논쟁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공동체(국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공동체의 미래와 청사진을 그려볼까?’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일진대, 그들은 실제로 이런 문제를 고민했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사상을 펼쳐갔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곧바로 그들의 사상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어떤 국가를 만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할 때도 그들의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었으며, 그러한 이상적 공동체의 토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대안과 통찰은 무엇이었을까.
부유한 나라를 꿈꾸었던 극단적 실용주의자 관중, 역사상 첫 인본주의자이자 진정한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안자, 위태롭지 않게 백성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첫째 사명이라는 손자, 씨족공동체적 삶을 그리워했던 이상주의자 공자, 인민의 합의를 통한 체계적 행정망과 큰 정부를 지향했던 묵자, 만민이 법 앞에 평등한 공화국을 꿈꾸었던 국가주의자 상앙…. 그리고 그들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 사회의 갈 길은 무엇이냐고, 대한민국의 청사진은 있느냐고?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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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과 혼란의 춘추전국시대에 새로운 현실사회를 구성하려는 능동적인 정치사상으로서의 제자백가 사상의 새로운 조명. `공동체`라는 관점의 접근은 오늘날 우리 정치사회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고 더불어사는 사회!  구매
현정 2014-09-14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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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보진 않았지만 괜찮은 책임을 직감. 사상의 요점만을 정갈하게 배열하면서도 제자백가 사상의 한계를 빼놓지 않고 정리함. 제자백가 사상의 개요를 둘러보기에 적당.  구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4-09-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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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최고의 동양철학 책. 얼핏 다이제스트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알차다. 장마다 달린 저자의 논평도 재미있다. <오기>, <묵자>도 읽어봐야할 듯. 힐링 멘토 열풍 속 아주 서늘한 칼바람이다.  구매
heru25 2015-01-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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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동양철학계가 풍부해진다. 제자백가를 두루 다루면서도 깊은 책이다. 임건순 선생의 팬이 될 것 같다.  구매
파블로네루다 2017-03-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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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고전학자 임건순 선생에게 경의를 표한다. 제자백가를 핵심적으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의 독특한 해석도 감미롭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 지식인들의 사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워야할 지혜가 너무도 많다.  구매
bada0915 2019-05-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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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새창으로 보기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임건순, 서해문집


🍀더불어 읽고 있는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가 서양 철학자 위주의 국가론이라면 이 책은 동양(중국) 철학자, 사상가들의 국가론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히 공자나 맹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읽는 것은 일주일도 안되어 잊혀지겠지만 하나의 키워드(이 책에서는 ‘공동체‘, ‘국가‘)에 대해 각각의 사상가들이 주장하고 실천했던 내용이라 서로 대비되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저자가 진정 사상가들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타개책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더욱 텍스트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선 후보자들의 성향과 정책방향을 사상가들과 비교해보게 되었고 서로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접근법이 될 것 같다.

🍀철학을 읽는 목적은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할 지침을 고민하는 기회를 가짐이어야 할텐데 난 아직도 힐링용 교양서로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자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내가 읽는 책이 내게 ‘도끼‘가 되게 해야 한다. 특히 철학책은.

🍀저자가 소위 제도권밖(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의미로)의 학자라서 그런지 등장하는 사상가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볼 수 있다(순자의 성악설이나 노자의 소국과민에 대해 우리가 기존에 알던 지식과 다른 해석). 이중톈이나 최진석 교수님의 제자백가에 대한 책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P.S 임건순 작가의 책은 「손자병법」(서해문집) 이후 두번째인데 가독성이 훌륭해서 완독불가의 두려움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저자가 예고한 다음 책,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가 기다려진다.

#제자백가 #철학 #도끼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임건순 #유시민 #국가란무엇인가 #공동체 #이중톈 #최진석 #손자병법 #독서의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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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쓰기&글쓰기 2017-03-12 공감(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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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국정원 마피아를 일벌백계하지 않는가! 새창으로 보기 구매
1.

춘추전국시대

그들이 살던 시기에 천하는 항상 변화의 소용돌이에 몸살을 앓았는데, 특히 전쟁의 위협에 몸서리치곤 했습니다. 내 생명은 물론이고 내 나라와 사회적 지위, 내가 고수하는 문화와 이념이 언제 사라질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

인문학.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때야 하는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난세였다는 말씀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난세중 난세인대

우리의 철학은 인간을 위해 얼마나 사색하고 있는걸까.

 

임건순은 제자백가의 사상이 유가를 중심으로 교조적으로 해석되어 재미없을 뿐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는대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네. 재미있는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오.

편견없는 기각으로 학문적 성과를 기꺼이 나누어주는 학자들은 늘 고맙다.

넘의 논문 표절하는게 공공연한 교수들은 많지만, 그런 학자들은 드물기 때문에 더욱, 고맙다.

그들은 무질서한 시대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고, 난을 치로 전환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통으로 시간순으로 소개해주니 전체적인 맥락과 각 사상의 문제의식이 잘드러나 좋다.

 

 

2.

춘추시대의 첫번째 패자 제나라의 환공, 제자백가를 시작하는 관중의 등장

관중의 등장은 사실 타고난 신분과 혈통이 아니라 능력과 실력만으로 검증받고 인정받는 실력파 유랑 지식인 집단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고,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나라 사람도 아니고 신분도 미미한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해 부국강병을 이룩한 제나라의 환공이 결국은 패자가 되었으니, 이제 다른 나라의 군주들도 실력을 기준으로 지식인을 등용하게 되었습니다. 열국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지요.

 

관중 치국의 핵심은 반드시 인민을 부유하게 하는데 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인민을 잘먹고 잘살게 해줘야지.

적어도 인민을 굶어죽게 하거나 밥벌어먹고 살 길이 막막해 자살하는 비율이 세계 최고가가 되게 하지는 말아야지.

정치를 한다면 굳이 관중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기본 아닐까.

 

인본주의자 안자의 여민동락. 인민과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  

전형적인 춘추시대 귀족으로 우아함과 지조를 지키며 위대한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고, 또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 적잖은 영향을 준 인물

저잣거리 작은 집에 살면서 거친 밥만 먹으며 반찬을 두가지 이상 올리지 않았다는 안자. 청렴결백한 생활을 했고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했으며 인민이 재해를 겪으면 자신의 가재도구까지 모두 털어서 나누어준 인물

귀족이면서 저잣거리 작은집에 사는

계급질서를 옹호한다 해도 정치를 하려면 이정도는 되야 존경받는 재상이 된다.

도무지 대한민국의 인사청문회를 보면 청렴결백은 바라지도 않으니 사기꾼이나 아니면 다행인대

100% 경제범죄자거나 논문을 표절했거나 부동산 투기꾼이거나 사는곳을  사기치더군

 

손자

"전쟁이란 국가의 가장 큰 일이고 병사들의 생사가 걸려 있으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이기에 신중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은 이런말로 시작합니다.

 

최고의 병법은 적의 의도를 사전에 꺽어 놓는 것이고, 그 다음의 병법은 적의 외교를 끊어놓는 것이며, 그 다음 병법은 적의군대와 직접 들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고, 최하의 병법은 적의 성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살았던 시대의 시간순으로 제자백가를 한명씩 소개하고 각 장의 마지막에 현실에 대해 질문한다.

제자백가의 주장에 따른 임건순의 현실 해석 또한 명쾌하다.

손자가 묻습니다. '너희는 왜 국정원 마피아를 일벌백계 하지 않는냐?' 고요.

 

공자

이민족을 조상으로 두었지만 선대에 이미 제나라의 지배층이 된 귀족출신 안자. 그는 실제 정치 현장에 등용되어 오랫동안 재상으로 활약했지만 그와 달리 공자는 민간의 하급 무당 출신이며 취직하여 정치 현장에서 일한 적이 없었고 주로 재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공자는 귀족 입장에서 사고 했지만 어릴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컷고, 그래서 하층민의 삶과 고통을 잘 이해했던 사람이지요.

 

귀족이 제대로 귀족 다울 수 있는 것은 공자가 말한 것처럼 착하고 관대하고 인자해서가 아니지요. 누군가를 착취할 수 있고 그런 특권을 가졌기에 귀족 다을 수 있는 것입니다......이건희가 이건희인 이우는 반도체 공장에서 죽어가면서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것이지, 그의 마음씨가 고와서 그런게 아닙니다.

임건순. 재밌는 사람이다.

귀족이 아니라 천민의 사각에서, 공화주의자 시민의 시각에서, 인민의 시각에서 읽어내는 제자백가

지배계급 그 언저리에 기생하는 학자들의 해석과 다를 수 밖에  

 

묵자

<묵자> 비악편에 보면 "추운 자입지 못하고,배고픈자 먹지 못하고,힘든자 쉬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별이라는 병리현상이 가져오는 고통이 정말 절절히 와 닿습니다.

 

노동자 출신 사상가 묵자는 실재 모든 인민이 누려야 할 각자의 몫, 최소한의 자기 몫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몫이 보장되는 것이 하느님이 뜻이고 겸애하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민이각자 자신의 정당한 몫을 누리는 것,최대다수의 기본적인 이익 보장이 바로 묵자가 말하는 겸애입니다. 이러한 겸애를 묵자는 통치권, 즉 국가행정력을 통해 이루어내자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묵자 철학은 국가사회주의의 특징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상앙

군주가 임명한 중앙정부에 의해서만 통제받는 법 전문 공무원은 법을 교육하고 홍보하며 인민의 질문에 언제든 분명하게 답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질의와 응답을 기록으로까지 남기도록 해 철저함을 기했습니다. 법의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관련법에의거해 잘못을 해도 인민은 처벌받지 않았고, 또 법을 적용하기 애매하다 싶으면 법 적용을 보류하고 중앙에 보고해 심사와 논의를 의회하는 등 인민에 대한 법 집행을 신중하게 하려 노력했는데, 그러한 임무도 이 법전문 공무원이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보다 훨 좋으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은 법도 모르고, 물어보면 기냥 위에서 시키니까 한다고 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돈을 왕창 줘야 하는대

법률서비스가 공무원에 의해 무상으로 지원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진나라는 매우 선진적인 나라였다. 여러면에서. 그래서 그틀이 청나라까지 간 것이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지금으로부터 2700년전 중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었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었는지

춘추전국시대의 귀족은 모두 무인이었으므로 갈등이 생기면 대화가 아니라 컬로 해결하는것이 쉬웠겠지요. 그들이 모두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래야 그 시대 지식인이 지닌 강단과 기백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제자백가 인물들을 우리는 학자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고리타분한 샌님을 생각하기 쉬운대

이런 설명은 유용하다.

각장마다 한사람씩 그가 살던 시대의 배경, 출생과 삶, 그의 주장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한국사회, 폭력과 차별, 국민에게 전담시키는고통의 정치를 꼬집는다.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이 임건순을 보면 흐뭇해 하겠다. 재밌어.   

 

신도

객관저기오 투명하고 명시적이어서 누구든 쉽게 알 수있는 법, 소비자와 상인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저울처럼 구성원에게 신뢰를 주어 마음 놓고 거래하게 하고 또 보통의 덕성과 지력을 가진 군주도 나라를 편히 다스리게 해주는 법

뛰어난 한 사람의 왕, 그런것은 없으니 법에 의해 세상을  편하게 하자는 말이다.

2천년 후에도 인간들의 세상은 저 단순한 문장이 이렇게 어렵다.

 

한마디로 노자 사상은 무위하는 머리 빈 군주와 배부른 돼지 같은 우민을 위한 정치사상입니다.

 

어릴적부터 한문을 싫어했다.

일단 한글에 비해 너무나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문자로 느껴졌다.

글자 하나가 뜻 하나를 품다니. 그래서 뜻이 있는 문자와 문자가 모여 문장이 만들어지다니.

너무 소모적인 글자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각각의 글자가 모두 따로 있으니 배우기 전부터 질렸다고나 할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 고등학교때 러시아 글을 배워보고 싶었는대

동양철학을 보면 한문을 배워서 원서를 읽어보고 싶기도 해.

중국의 글자가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글자 자체가 시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쫌 되었다.

 

임건순의 다음 책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를 기다리겠다.

임건순에게 신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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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만세 2016-04-23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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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13인의 사상을 요약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을 고명으로 얹은 썩 괜찮은 책이다.

춘추시대 사상이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이 아닌 현실 정치학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그들의 사상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향한 각자의 다양한 방법론에 다름 아닐 것이다.  

비록 2,000년 전 고대의 이야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것은 똑같기에-지배층은 여전히 하층민의 희생을 담보로 권력을 유지한다-  더욱 오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나 또한 동의한다.

서양의 사상이 그리스시대에 이미 완성됐다면 동양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에 나올 것은 다 나온 듯하니....그 사이에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인지.....역사의 발전이 반드시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새삼 놀라울 뿐이다. 

 

첫번째, 제나라의 재상이자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인민을 배부르게 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인민과 귀족의 생활터전과 생계를 철저히 구분하고  생업에 전념토록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주변국가의 백성들이 몰려들도록 하였다.

인민의 숫자가 국가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고 나아가 부강한 국가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인의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농산물을 국가가 개입하여 쌀때 사고 비쌀때 팔아 인민의 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적당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고 소금과 철을 국가가 독점하여 나라의 자원을 관리했다.

심지어 나라에서 기생집까지 차려 수입을 챙길정도의 극단적인 실용을 추구했다.

결국, 지금의 자본주의를 방불케하는 그의 실용주의 경제학은 그의 사후 제환공이 피살당하고 천민자본주의로 흐르면서 그 폐해로 국운이 기울면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관중이 시대를 앞서간 정치가이자 경제가였으나 그의 사상에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제어할 도덕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바탕이 아닌 군주만을 위한 정책이 목표였기에 그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봐도 손색없는 그의 정책들은 2,000여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한다. 

 

두번째, 유가사상의 원류, 안자

공자와 맹자 이전 유가의 기본개념을 구축한 최초의 인본주의자 안자.  전에 별로 들어 보지 못했으나 생각외로 그의 발자취가 크다.

사직(社稷)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군주와 국가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군주 독단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자 했다.

즉, 군주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며 단지 사직이라는 국가의 관리자일 뿐이며 군자(신하,관료,지식인)는 군주가 국가를 잘 관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 군자, 백성 모두 맡은 바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사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군주가 정치를 잘 못해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내칠수 있도록 하는 맹자의 역성혁명론의 단초를 제공한다.

평생 청렴과 백성사랑을 온 몸으로 구현한 안자는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제자백가 사상가들 중 가장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극단적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관자에겐 부족했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을 사상의 기본으로 추구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세번째, 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

손자하면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손자는 결코 승리를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승을 논하기 앞서 절대 패하지 않는 법을 논했고, 그보다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不殆) 법을 고민했다.

전쟁에 패하는 것은 모든 것의 파멸을 의미했고, 승리하더라도 나라의 재정이 파탄에 이르면 같은 결과를 야기한다.

위정자는 모든 정치적, 외교적 방법을 다 동원한 후 해결책이 없을 경우 불가피하게 군사를 일으켜야 하며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준비를 철저히 하여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번째, 하층민의 대변자, 묵자
묵자는 중국사상사의 위치와 상관없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에 속하는 편이지만  묵자 하면 대표되는'겸애'는 도덕교과서에 자주 등장했다. 

누구보다 하층민을 아끼고 대변하고자 했던 묵자는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독자적으로 이론을 구축했던 것과 달리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민주적인 토론을 통한 사상의 정립을 추구했다.

 

- 시간상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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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베고자는남자 2014-09-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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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제자백가 새창으로 보기
중국 고전철학의 집대성인 제자백가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고전을 그 시대의 상황 속에서 들여다보고,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어려울 수 있는 얘기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다.개설서인데 개설서치고는 조금 장황하다.도발적인 주장들도 넘치는데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바람소리 2018-03-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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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5

임건순 - 나무위키 -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임건순 - 나무위키

임건순

최근 수정 시각: 2022-02-08 18:07:59




분류
대한민국의 철학자
1981년 출생
보령시 출신 인물
서울시립대학교 출신

1. 개요2. 생애3. 사상4. 저서5. 출처

1. 개요[편집]

임건순(1981~ )은 법가, 유가 분야를 주로 다루는 동양철학자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거주. 현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제3의길 집필진.

2. 생애[편집]

생애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등록금이 싸고 장학금이 많은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했다.[1] 본래는 행정학과 전공이었으나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으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다. 임건순 본인은 이를 두고 "나는 지적 불법체류자"라고 칭했다.

2010년대 중반 무엇인가를 계기로 운동권에서 돌아섰고 지금은 격렬한 운동권 비난론자가 되었다.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3. 사상[편집]

임건순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중산층만을 위한 배부른 학문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는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보수진보도 없다고 주장한다. 보수 세력은 게으르고 안일하게 행동하며 과거에만 머무른 채 진보하지 않는 배부른 돼지이며, 진보 세력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선민의식이 몸에 밴 내로남불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권 이후로는 조선일보, 월간조선에 칼럼을 연재하고 펜앤드마이크등의 매체에서 정규재과 함께 말을 나누는 등,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담론장에서는 확실히 보수 쪽 논객으로 기능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중국에 나라를 팔아먹고 중국 공산당 귀족 계층으로의 편입을 계획하는 집단이라고 믿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는데, 소위 '386' 기득권, 현 정권이 페미니즘 세력과 연합하여 나라를 분열의 장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네들 이득만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가열차게 비판하였으며, "진보의 민낯을 보여주어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출처

4. 저서[편집]

《야구오패》
《생각이 많으면 진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임건순 “우리나라 지도자, 오기의 리더십 배워야”복장에 주목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손자병법》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 노자》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대학, 중용》
《도덕경》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한국에서 법가 읽는 법》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하여》

5. 출처[편집]

신동아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사회공헌저널 <보편복지라는 위선과 야만의 탈 -임건순>

[1] 고등학교는 대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이 사람] 386세대에 대해 날 선 비판하는 젊은 동양철학자 任建淳
“한국은 조선시대로 귀환 중… 집권 386은 철들지 않은 꼰대”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자기들이 정의로우니 권력 누려야 한다고 믿는 집권 386은 孟子 영향받은 조선 사대부의 亡靈”
⊙ “중국인은 孫子의 자식들… 손자 및 손자의 영향받은 老子 이해하면 중국인 속이 보일 것”
⊙ “韓非子는 개인의 이기심 긍정했던 애덤 스미스와 유사”
⊙ “386이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左派·右派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 “右派는 더 이상 기득권 세력 아니다… 말과 글에 투자해야”
⊙ 諸子百家 해설서 등 11권의 책 펴내… 이번 달부터 서로 비슷한 문제의식 가졌던 동서양 사상가들을 살펴보는 ‘동서양 사상 크로스’ 연재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책 제목만 봐도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중국 고전을 만만치 않게 섭렵했음이 느껴진다. 손자(孫子)나 노자(老子)를 제외하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비교적 생소한, 중국사상사의 비주류(非主流)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손자병법》이 ‘동양의 첫 번째 철학’, 《노자》는 제왕학(帝王學)이자 병법(兵法)이라니 이 또한 생경하다.



임건순 작가의 諸子百家 관련 저작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 백발이 허연 70대 한학자(漢學者)나 ‘꼰대’ 모습이 완연한 50~60대 대학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 책의 저자는 임건순(任建淳), 38세 젊은이다. 지금까지 펴낸 11권의 책을 제외하면 세속적 의미에서 내놓을 만한 이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으로 제자백가를 재해석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아직 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나름 열광하는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임 작가가 페이스북에서 토해내는 현실, 특히 386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28일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386의 생각은 다 옳은가?’

〈시사인에서 20대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어봤는데 이런 질문들 던지고 싶다.

1. 젊은이들이 386을 무조건 정치적으로 지지해줘야 하는가?

2. 젊은이들이 386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들이 주입하는 가치관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하는가?

3. 젊은 샐럽과 지식인들도 386의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며 그들이 궁금한 것, 혹은 원하는 것들 대신 해결해주고 그래야 하나?? 이것도 넓은 의미에선 부역행위 아닌가?

386과 다른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보수고 수구고 일베고 괴물이란다. 특히 ×××라는디 그놈의 20대 ×××론은 언제까지 계속 우려먹을 것인지.

아니 386의 생각이 다 옳은가. 386과 다른 생각하면 악마여?? 그저 젊은 애들은 운동권 출신 진보를 자임하는 자들에게 표 주는 기계로 살아야 하나. 그리고 젊은 샐럽, 그래 젊은이들 중에 사회적 스피커와 마이크를 쥔 자들도 386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논해야 하나. 니들도 386이냐? 참 여러 가지 이건 아닌데 생각이 드는 기사였다. 기사에 깔려 있는 전제들이 영….

젊은이들이 386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386 지지하기만 하고 386의 가치관을 자기 신조로 삼아 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고, 맑고 밝고 명랑한 시상이 만들어질 것인디 나만 그걸 몰랐나 봐. 그냥 몇 마디 말로 통치면 되는 거 아녀. ‘야 이 ×××들아, 왜 민주당과 문재인 지지 안 해. 당장 생각 고쳐먹고 다음 총선, 대선 때 또 민주당 사람들 찍어!!’ 이러문 되는 거 아녀. 그저 386과 다른 생각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닥치고 문제라고 놓고 보는 시각 자체가 구역질 나.〉


‘知的 불법체류자’

고향인 충남 바닷가의 느긋한 사투리를 섞어 쓰면서 애써 칼날을 감추고는 있지만, 386세대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월간조선》은 7월호부터 원석(原石) 같은 젊은 동양철학자이자 작가 임원순의 글을 연재한다. ‘동서양 사상(思想) 크로스’는 세상사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와 15~18세기 유럽 철학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기획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임건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 1981년생이면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세대일 텐데 어떻게 한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까.

“외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셨습니다. 직접 배운 건 아니지만, 덕분에 어려서부터 한문에 대한 공포감이 없었죠. 그것도 일종의 ‘문화적 자본’이겠죠.”

― 행정학과 출신인데 어떻게 제자백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학부에서 교수님들이 ‘늘 행정학은 사회과학이다, 경제학이나 정치학 같은 인근 학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제자백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종합 사회과학입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 가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것보다,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튼튼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학원에서 제자백가를 공부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 한문 공부는 언제 본격적으로 했습니까.

“2008년부터 1년 동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했습니다. 1년 동안 무조건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를 다 외워야 합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은 역시 원문(原文)을 달달 외우는 것이에요.”

임건순 작가는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知的) 불법체류자’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유학도 갔다 와야 하고 제도권에서 박사학위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요. 대학에서 특강 외에는 강의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시민권・영주권이 없으니 불법체류자죠.”

―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노력은 해보았습니까.

“굳이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영주권・시민권을 얻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고요.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걸 굳이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상황에서 뭐라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원망할 것도 없고….”

―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공무원시험 봐서 직장 잡고 가정 꾸려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는 생각은 안 해보았습니까.

“어려서부터 그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단호한 대답이었다.


원추각막

― 와, 정말요? 대단하네요.

“초・중・고교 때 선생님들이 ‘건순이 쟤는 조직형 인재가 아니라 장인(匠人)형 인재다. 그냥 내버려둬라’ 하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저를 차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선생님들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새 책을 낼 때마다 그때 선생님들의 성함을 꼭 적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 그때 선생님들은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신 걸까요.

“‘늘 혼자서 책을 읽고 있고, 엉뚱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더라. 얘는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창의력이라는 것은 시험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바꾼다거나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마련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쟤는 저럴 수 있어’ 하면서 묵인하고 배려해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싶어요.”

― 원추각막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막이 망막을 뚫고 나오는 건데, 그래서 시력이 좀 안 좋습니다.”

―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지장은 없습니까.

“지장이 있기는 하죠.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면도 있어요. 눈이 잘 안 보이다 보니 공부할 때 소리 내서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암기가 잘됩니다.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습관이 되니, 글을 쓸 때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처럼, 독자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게 되더군요. 노트 한 권 쓸 것을 소리 내어 거듭해서 읽고 외우다 보면, 머릿속에서 내가 스스로 재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하면서 머리에 저장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술가로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국주의와 제국질서

― 제자백가 얘기를 좀 하기로 하죠.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인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에 온갖 사상이 만개(滿開)한 후로 한 번도 그토록 다채로운 사상을 꽃피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15세기 이후 다양한 철학사상을 꽃피우면서 이를 바탕으로 근대로 진입하지요.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제자백가 사상을 꽃피우던 춘추전국 시대는 유럽의 15~18세기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나라로 쪼개져서 서로 경쟁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5~18세기 유럽의 경쟁은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낳은 반면, 기원전 중국의 경쟁은 제국질서를 낳았습니다. 제국주의는 경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지만, 제국질서는 경쟁의 종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상적인 활력뿐만 아니라 군사혁명(군사 전략・전술・기술상의 변혁)이나 기술적인 혁명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국주의와 제국질서라… 흥미로운 얘기네요.

“제국질서 아래서는 상인(商人)들의 지위가 높아질 수 없었죠. 여러 나라가 경쟁해야 상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발언권도 올라가거든요. 군주들이 상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秦)나라, 한(漢)나라 같은 거대제국이 생기면서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커다란 진보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비자, 개인의 이기심과 인센티브 강조”



한비자(왼쪽)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결과적 평등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 제자백가 중 누구에게 가장 관심이 갑니까.

“지금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한비자(韓非子)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은 과도한 공공(公共)부문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지만 규제가 너무 많고 관치(官治)의 영역이 비대합니다. 그래서 한비자가 필요합니다. 한비자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 한비자 하면 흔히 ‘법(法)’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국가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려던 국가주의자로 인식합니다. 그런 한비자가 ‘자생적(自生的) 질서’를 강조한 프리드먼이나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와 통한다니, 뜻밖이네요.

“애덤 스미스와 한비자는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이기심(利己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죠. ‘각자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가지고 잘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상태에서 사회적 분업(分業)이 돌아가야 한다’ ‘나라는 개인들의 사적(私的) 욕망을 발현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줘야 하고, 그래야 국력도 강해진다’ 등.

법가(法家)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말했는데, 강병 이전에 부국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개개인의 욕망, 돈을 벌려는 마음, 잘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억누르면 안 된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 재미있네요.

“또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처럼 하라’는 노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작은 생선을 지질 때에는 약한 불로 하고 함부로 뒤집으면 안 되는 것처럼, 법령들을 자주 바꾸거나 덫을 놓는 규제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 혹시 ‘평등’에 대해서도 한비자가 얘기했나요.

“한비자는 결과의 평등을 철저하게 부인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더 부지런을 떤 사람, 자기 능력을 발휘한 사람, 더 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사람들이 사치하고, 방탕하고,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이 당연하다’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면 인센티브 체계가 무너져서 국력이 약해진다’고 봤습니다. 경제학적 통찰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마오쩌둥, “노자는 兵家의 書”

― 제자백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정서적 공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묵자(墨子)입니다. 묵자는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잘 이해한 것 같아요. 서구(西歐)에서는 묵자를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자로 보는 것 같더군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고학(苦學)을 했고, 지금도 가난한 학인(學人)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 묵자가 사회민주주의자라니, 그럴듯하네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보니 사회민주주의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구성원들의 정신적 건강함, 사회적・공적(公的) 신뢰가 있어야만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묵자가 개인과 계약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데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이 계약에 바탕을 둔 사고(思考)입니다. 묵자에 대한 책을 하나 쓰기는 했지만, 기회가 되면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묵자를 책으로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 노자를 문명비판론적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로, 노자의 《도덕경》을 병법서로 해석했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도덕경》은 ‘어떻게 하면 왕의 권력을 길고 안정되게 가져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를 고민한, 군주를 위한 통치술입니다. 중국이나 구미(歐美)에서도 그렇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희(朱熹・주자)는 ‘제자백가 중에 노자가 가장 독하다’고 했고, 마오쩌둥(毛澤東)은 ‘《도덕경》은 병가(兵家)의 서(書)’라고 했습니다.”

― 어떤 점 때문에 《도덕경》을 병법서로 보는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노자의 유명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죠? 손자는 ‘병법의 극치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흐르는 것이 지형을 따라서 늘 변하듯이 군대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죠. 노자는 그걸 시적(詩的)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노자를 손자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대목이 무척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손자와 노자를 같이 이해하는 논문이 꽤 많이 있어요.”


“한국인은 殺身成仁, 중국인은 明哲保身”



《손자병법》과 고구려에 대해 강의하는 임건순 작가. 사진=유튜브 캡처
임건순 작가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손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공맹(孔孟・공자와 맹자)의 자식들’입니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는 공맹만 가지고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손자의 자식’들입니다. 손자와 그의 영향을 받은 노자를 이해해야 중국인들의 속이 보일 것입니다.”

― 우리 한국인들이 ‘공맹의 자식들’이라….

“한국인들은 명분(名分)과 당위(當爲)를 중시하지만 중국인들은 철저히 실리(實利) 위주죠. 우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강조하지만, 중국인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강조합니다. 그런 중국인들의 의식의 연원은 손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명청대(明淸代)에 만들어진 후흑학(厚黑學), 36계의 뿌리도 손자에게 있는 것 같고요.”

― 서양 정치학과 철학은 어떻게 공부하게 됐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백가 시대의 중국과 15~18세기 유럽의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상황이 비슷하면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思考)를 하지 않을까’ 해서 서양 사상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묵자와 토머스 홉스’ ‘한비자와 니콜로마키아벨리, 애덤 스미스’ ‘공자와 에드먼드 버크’ ‘순자(荀子)와 데이비드 흄’이 비슷하더군요. 서양의 철학・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 제자백가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 《월간조선》에 연재할 ‘동서양 사상 크로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전(古典)은 질문입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책들이 고전입니다. 고전은 뭔가 원점(原點)에서 사회와 인간, 국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자극을 주거나, 원점에서 검토해보려고 안간힘 쓸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 속의 동서양 사상가들이 던진 질문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사회를 한번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朝鮮化’



사대부의 특권을 주장한 孟子.
―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 돌아가는 얘기를 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조선(朝鮮)으로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386운동권들은 조선시대 사대부(士大夫)들과 똑같은 사고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들이 조선시대의 망령(亡靈)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옳다, 정의롭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런저런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리스크와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옳다, 우리가 과거에 정의를 위해 투쟁했다’고 하는 당위(當爲)만 가지고서 도덕을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정치권력, 기득권(旣得權)을 정당화하고, 그 기득권을 쭉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조선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업과 상인, 과학기술자, 의사 같은 전문가 집단을 공격하고 있죠. 자기들은 사대부, 위 집단들은 상민(常民)이나 중인(中人)으로 생각하는 거죠.”

― 그런 조선적인 모습은 역시 ‘맹자-성리학’적인 건가요.

“(한숨을 쉬며) 유교(儒敎)는 공자의 철학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공자도 아니고 맹자의 나라 같아요. 맹자가 처음으로 지식인 계급, 사대부 계급의 특권과 독재, 정치권력의 독과점(獨寡占) 같은 것들을 주장했거든요. 《논어》를 보면 ‘군자는 이래야 한다, 이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군자의 의무와 자격, 책무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반면 《맹자》를 읽다 보면 ‘군자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누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금 집권세력은 누리는 것만 생각하는 것 같고,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지고 공적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근대는 小人과 謀利輩의 사회”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군자(君子)라고 믿는 사람들, 군자라는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사회는 근대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대사회는 ‘나도 소인(小人)이고 너도 소인이다’ ‘너도 모리배(謀利輩)고 나도 모리배다’라는 걸 다 인정하면서, 소인과 모리배들이 적당히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사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고 시장경제겠죠. 군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는 건 이런 근대에 대한 부정입니다.”

― 과거에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말이 있다가 근래에는 ‘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와 통하는 말이군요.

“제가 386 기득권 세력들을 비판하는 것도 단순히 ‘좌파를 때려잡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근대적 합리성을 가진 사회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작업도 단순히 그들이 나쁘다,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걸 넘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더 나은 청사진을 제자백가와 15~18세기 유럽 고전에서 찾아보고자는 것입니다.”

임 작가는 “조선화로 넘어가면서 리스크(위험)를 짊어지는 것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박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저는 우리가 사대부의 나라가 아니라 상인과 무사(武士)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합니다. 또다시 군인들이 정치하거나 기업인들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전선(前線)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外傷)센터 지원 얘기하잖아요? 그건 돈을 지원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리스크를 짊어지고 전선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이나 전쟁에서 이긴 사람들, 살벌한 경쟁투쟁에서 끊임없이 자기들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구의 힘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부족한 게 많지요.

“우리도 지방자치 선거할 때 공천 헌금하는 지역토호들을 내세울 게 아니라, 미국처럼 군인이나 경찰 생활하다가 장애를 입은 이들을 공천하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을 왜 패럴림픽에만 내보냅니까? 그들이 당장은 서툴러도 공동체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래야 시민사회가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전해질 것입니다.”


“우파가 공짜 바라는 건 자기 부정”

현 집권 386세대를 이렇게 혹독하게 비판하는 임건순 작가가 4년 전 쓴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에서는 한국 보수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묻자 “한국 보수는 너무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변해가면 ‘과거에 내가 이런 공(功)이 있다’는 것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변해야 합니다. 반공(反共)이니 산업화 같은 것을 넘어서 ‘우리가 어떤 철학과 가치(價値)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국가주의와 결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가치와 철학, 상징자산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세력에게는 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 상징자산이란?

“딱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나 이미지 같은 걸 말하는 거죠. 지금으로 치면….”

― 좌파의 노무현(盧武鉉) 같은 존재를 말하나요.

“그렇죠. 우파에게 새로운 상징자산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박정희(朴正熙)나 이승만(李承晩) 가지고 계속될 줄 알았나 봐요. 그게 아닌데…. 기존 상징자산이 기능을 못 하면 다른 걸 찾아봐야 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철학, 가치,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권력의 단맛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공짜를 좋아했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데….”

임 작가는 “우파는 공부를 아예 안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을 갖고 다녔어요. 우리나라의 보수정치인 중에 애덤 스미스적 가치, 철학에 기초한 사람이 있나요?”

― 없죠. 그 부분은 공감합니다.

“좌파는 몰라도 우파는 공짜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밖에 안 됩니다. 사람 키우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고요.”

― 그래요. 책을 내도 ‘책 하나 보내줘’ 하지 ‘내가 사 볼게’ 하는 사람이 없지요.

“기업가나 자본가라는 사람들은 ‘정권이 못살게 군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세련된 가치와 레토릭으로 자기들을 변호하고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지원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소외된 사상가・철학자・작가들을 찾아서 조금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들에게 ‘우리도 지금 이렇게 변하고 있고, 변할 테니까,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세련된 말과 글, 언어들을 생산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건 일종의 거래입니다. 날로 먹을 수는 없어요.”

― 우리나라 기업은 그런 것에 장기적 투자를 하기보다는 좌파 시민단체, 좌파정권에게 살살 때려달라고 뇌물 주면서 5년 견뎌낼 생각만 했죠. 좌파 시민단체들에게 ‘삥’ 뜯겨 건물이나 지어주고….

“자기의 말과 글,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당당하게 자기 권리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말과 글, 자기 철학이 있으면 삥 뜯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386, 심각한 피터팬증후군”



2003년 8월 남북경협 지속 발전에 관한 기자회견을 한 386세대 정치인들.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를 읽으면서 중국 제자백가 사상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비해, 기성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은 표현이나 방식이 표피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을 막으면서 빠르게 국가 건설을 해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무리도 있었겠죠. 그런 것은 나이가 들면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삶의 모순과 복잡성이 보이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이승만은 독재자이기도 하지만 평생 독립운동을 한 ‘건국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일본은 침략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두 가지 측면을 다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저도 옛날에는 그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런 걸 인정해야 하고 양쪽 다 껴안고 가야 합니다.”

― 페이스북 등에 386에 대해 비판한 글을 쓴 걸 보면, 그들을 거의 증오하는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386세대를 미워합니까.

“386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아직도 젊은이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철들지 않았다는 걸 너무 공개적으로, 또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요.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 사람들은 ‘꼰대’들입니다. 그런데 꼰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철이 들어야 하거든요. 어르신들 말씀대로 어렸을 때는 아이다운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계마다 해야 할 일과 모습이 있는 겁니다. 나이 먹어서 꼰대가 되는 건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철도 안 든 꼰대는 곤란합니다.”

― 저도 아직 대학 시절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대학 다니는 자식을 둔 놈들이 자기가 아직도 대학생인 줄 안다’고 꼬집곤 합니다.

“심각한 피터팬증후군입니다. 대학 다니는 아들,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딸을 둔 사람들이 자기가 아직도 20대 청년인 줄 알고 있어요.”

임 작가는 “한국 사회는 386이라는 악성 종양,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좌파・우파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논개처럼 산업화 세력을 껴안고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386세대를 껴안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좌파는 50대의 기득권・탐욕・이기심이, 우파는 70대의 노추(老醜)가 문제입니다. 그들이 물러나줘야 합니다.”


“이제는 좌파가 기득권 세력”

― 문재인 정부가 ‘적폐(積弊)청산’한다고 하잖아요.

“자기들이 적폐예요.”

― 대학 시절 운동권에 대한 관심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그리고 제 눈에 비친 운동권 모습이 너무 위선적이었어요. 지금도 그들이 하는 걸 보면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되는 게 많아요.”


― 어떤 걸 두고 하는 말입니까.

“386세대 교수들을 보면 대학원생들에게 함부로 하면서도 신문에 쓰는 칼럼에서는 자신을 아주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지요. 최순실 사건 때, 박근혜 정권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지만 자기들끼리는 엄청 밀어주고 끌어주고…, 민노총이 너무 막 나간다 싶은데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그들을 옹호하고 눈감아주고….”

― 임 작가는 이념적으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진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기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못사는 사람들을 정치가 챙겨야 한다’ ‘과학적 사고, 합리적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진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인식의 지체(遲滯)’ 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 무슨 얘기입니까.

“이미 대한민국에서 기득권 세력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파라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전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들이 아직도 여당이고 기득권자인 줄 알고 있어요.

좌파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차명(借名)・가명(假名) 등기하지 말고 실명(實名)으로 하고, 비판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들이 아직도 비판하고 저항하는 입장인 줄 알면서 자유한국당이나 재벌들을 욕하는데, 기득권은 이미 그들에게 완전히 넘어갔어요. 사실 그런 흐름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중에도 계속되고 있었죠. 탄핵은 그걸 추인(追認)한 것에 불과합니다. 운 좋게 우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말과 글, 이런저런 조직들을 저들이 갖고 있는 한, 우파는 대통령만 명목상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저들의 수중에 있게 될 것입니다.”

― 우파가 왜 권력을 빼앗기게 됐다고 봅니까.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안보 우산’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지다 보니 그때부터 배가 부르고 안심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영구분단 선언하자”

―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과거에는 현실로서의 북한은 우리의 적(敵)이지만, 당위로서의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같이 통일을 위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만 포기!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언해버리면 좋겠어요. 통일부는 ‘평화청(平和廳)’으로 이름 바꾸어서 외교부 산하로 넣어버리고….”

― 영구분단이라니….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가 설득력 없어요. 젊은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기성세대야 통일되는 걸 보고 샴페인 터뜨리고 얼마 후에 무덤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쟤들(북한주민들) 먹여 살리느라고 거지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적대적 분단, 돈 많이 드는 분단만 있느냐’고…. 한 나라였다가 갈라선 벨기에-네덜란드처럼 그냥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요.”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얘기가 돌아왔다.

“《월간조선》이 기회가 되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일을 좀 해주었으면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低評價)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이행, 북방정책 등의 업적이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고, 소득분배도 고른 편이었으며, ‘중산층의 꿈’이 생겼습니다. 아마 87년 체제 이후 최고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면이 많다고 봅니다.”

― 요즘 흔히 갖고 있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인격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통해 누가 국민의 삶을 개선해주었는가’ 하는 측면에서 정치인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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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웃사이더’ 동양철학자 임건순

“조선으로의 퇴보를 멈춰라”

  •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 ● 11권의 동양철학 저서 펴내고 대중 강연…“젊은 도올 보는 듯”
    ● 상위 10%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조선스러운’ 대한민국
    ● “노무현은 과대평가, 노태우는 과소평가”
    ● “열 명에게 욕먹더라도, 한 명에게 자극되는 글 쓰고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인문·사회학 분야가 천대받는 세태의 방증이다.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순수 인문학 처지는 더 어렵다.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임건순(37). 동양철학자 겸 저술가. 대중 강연도 한다. 어렵고 딱딱한 동양철학을 쉽게 녹이고 풀어내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시대의창),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세(勢),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등 그간 출간한 동양철학 분야 책만 11권. 집필 중이거나 집필 예정인 책도 10권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책들은 고정 독자를 확보하며 중쇄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척박한 인문·사회 출판계의 떠오르는 별’로 평가받는다. 

임건순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양철학 외길을 걷는 독행자(獨行者)다. 석·박사 학위는 없다. 대학 및 연구소 등 제도권에 적(籍)을 두지 않았다. 학술·연구단체와 인연도 없다. 혈혈단신 ‘임건순’이란 이름 석 자로 승부를 건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지만 행보는 거침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임건순 책의 애독자인 손상범 영남대 교수(국제통상학부)는 “임건순의 말과 글에서 ‘젊은 시절’ 도올 김용옥을 연상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지적 불법체류자’라 정의하는 임건순은 한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보 중”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만났다.

‘혈혈단신 임건순’

다수가 기피하는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대학은 행정학과로 입학했습니다만, 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은 사실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회와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학자들입니다. 정치사상이자 종합사회과학인 거죠. 관중(管仲)이나 한비자(韓非子)는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경제학적 통찰은 기가 막히죠.” 



제자백가 사상이 가지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자백가를 다른 표현으로 선진(先秦·진나라 이전) 철학이라 합니다. 통일제국 진(秦) 이전과 이후 철학 양상은 사뭇 달라요. 선진 철학이 역동적이고 재기발랄하다면, 후진(後秦) 철학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합니다. 통일제국 성립이라는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아 학문적 자유도 줄고, 수성(守成) 시대에 맞춰 개인의 수신(修身)에 중점을 두게 됐기 때문이죠. 형이상학 내지는 관념론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열국(列國)이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던 시대의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가 제자백가의 ‘역동성’과 ‘재기발랄’의 매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사유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제자백가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저술과 강연으로 이들 사상을 대중화함으로써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그만의 ‘운동’인 것이다. ‘묵자’ 상동(尙同)편 상(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람마다 의로움(義)을 달리하였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 의로움이 있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의로움이 있었다.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지면 의로움 역시 많아지는데….

임건순은 이 구절에 대해 “여러 사람이 등장해 ‘내 이야기 좀 들어보라’며 떠들어댄 당대 상황을 보여준다”며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 서로 힘을 겨룬 것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아닌 묵자(墨子) 등 이른바 비(非)주류 사상가 연구에 주력합니다. 

“균형 있게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자백가는 ‘백화제방’이란 표현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에요. 수많은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한두 송이(공자·맹자) 꽃만 바라보고 마나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순탄치 않다. 각막이 원뿔 모양으로 튀어나온, ‘원추각막’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가난도 따랐다. 원하던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학 대신, 학비가 저렴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했다. 고학(苦學)은 필연. 사회로 나온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초 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으로 수년을 버티기도 했다. 오늘날도 이른바 ‘도시빈민’ 신세다. 

“제 고향은 충남 보령군,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시골입니다. 한마디로 전 ‘촌놈’이죠. 집안 형편도 어려웠어요. 본디 양반 가문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학문적 관심도 성리학(性理學)에서 자연 묵가(墨家)와 양명학(陽明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열정적으로 구세(救世)하려던 묵자,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른 일에 종사하지만 그 도(道)는 같다’는 이업동도(異業同道)를 주창한 양명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유학파가 인문학 망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최근에 그가 주력하는 분야는 법가(法家)다. 올해 ‘법가’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이고, 최근 이랜드그룹 후원으로 10강에 걸쳐 ‘한비자’를 강의하기도 했다. 법가에 천착하는 것 또한 그의 처지와 무관치 않다. 

“제가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데다 가난해서인지 성격이 거칠고 강한 편입니다. 영춘권(詠春拳)을 비롯해 무술도 좋아합니다. 평등 원리가 강하고 기득권·중간 착취계급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법가 사상에 끌립니다. ‘근대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전근대’ 조선으로 귀환했다고 봅니다. 상위 10%의 중간지배층이 독재하는 사회로 변해버렸으니까요.” 

임건순은 사회주의 용어로 ‘사회경제적 위치·계급적 좌표’가 학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한국 동양철학계가 외면해온 분야를 파고들게 된 셈이다. 

“우선 저 자신이 서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를 자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 좌표를 정확하게 인지해야죠. 그다음 저와 문제의식이 일치하는 사상가와 텍스트를 찾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 사유’ 혹은 ‘인문학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처한 환경과 이를 바탕으로 생긴 문제의식 때문에 비주류가 되었다는 그는 한국 학계 풍토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대학에서 손자(孫子)나 오기(吳起)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석·박사 학위를 받기 힘들죠. 아마 안 줄 겁니다. 묵가, 병가, 법가 등을 공부한 저 같은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일 거예요(웃음).” 

한국 사회 ‘인문학 열풍’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요. 

“한국 사회 인문학은 ‘중산층 특화 교양’입니다. 쉽게 말해 여유 있는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라고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 구미에 맞춘 위로와 위안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인문학이란? 

“춘풍(春風)이 아니라 추상(秋霜) 같아야죠.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당장의 진실 혹은 진리는 비참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팩폭(팩트 폭행)’이죠.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극이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인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적을 만들더라도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우고 싶어요.” 

그는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인문학 위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 인문학과와 거기 교수들의 위기죠. 학령인구 감소로 인문학 전공 위주로 진행되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전임교수 자리를 잃게 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언제 인문학이 제대로 연구·교육된 적이 있습니까?” 

인문학 전공 학생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무늬만 인문학 전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텍스트를 해독해 자신의 말과 글로 풀어내는 ‘내공’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몇이나 있습니까?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는 학생을 얼마나 보셨나요? A4용지 한두 장 분량이라도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부생, 대학원생의 민낯이죠.” 

원인이 뭘까요. 

“해외 유학파가 교수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한 노력과 시스템의 부재, 모국어를 천시하는 풍토 등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에요.” 

박상익 우석대 교수도 ‘신동아’ 3월호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파들은 외국 이론·사상 ‘운반책’ 노릇이나 하고 있습니다. 로컬(local)에 기반한 상상력은 제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재나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 게으릅니다. 명색이 선생이라면서 ‘아웃소싱’할 게 따로 있지, 학문 후속 세대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유학이나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국(帝國) 연구’를 제시한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인문학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는 데 필요한 외국 고전과 명저가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겐 제국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제국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의 야만성, 침략성이 아니라, 제국 운영의 메커니즘, 제국 창업자·수성자들의 철학과 수사(修辭), 제국이 성립하기 위한 물적·사상적 토대 등을 연구해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배부른 돼지’와 ‘위선자’

그는 제국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선량한 피해자 의식’을 깨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만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수학과 과학도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철학의 핵심은 개념입니다. 이는 수학·과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훈련법을 수학·과학에서 차용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서 먼저 쉬운 한국어로 개념과 현상을 가르치면, 이 분야 전공자 중에서 장차 철학자로 대성할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철학자로서 진단하는 한국 사회 보수 및 진보의 문제점은? 

“보수는 배부른 돼지고, 진보는 위선자죠. 한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 및 진보 세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보수 세력은 너무 배가 불러 사상적으로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소홀했습니다. 왜냐? 진보와의 경쟁에서 지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사상적으로 권위주의를 탈피, 자유주의·시장주의로 진화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보는 시쳇말로 ‘내로남불’이 심합니다. 위선과 허위의식도 강하고요.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선민의식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오만과 독선도···.” 

진보의 대표적 위선은 뭐라고 봅니까. 

“자신들도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면서, 이를 애써 부정하거나 아닌 척하는 거죠. 조선시대 양반과 닮았습니다. 지배층이자,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집단이란 점에서요.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위하는 척하죠. 자신은 절대 선, 상대방은 절대 악으로 규정하며 명분과 도덕 투쟁을 벌이는 모습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 세력을 ‘위정척사적 사대부’라고 정의합니다.” 

임건순은 “대한민국은 조선으로 퇴행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빠져 있던 ‘한심한’ 나라다. 주 원인은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 있다. 명분에 집착하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고착화해 백성 차별을 당연시했다. 역동성도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고 살며 대외 환경 변화에 무지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국호는 ‘Korea’이지 ‘Chosun’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회 진보를 하자면서 왜 자꾸 조선시대로 돌아가려 합니까? 일례로 교사와 공무원이 최고 직업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다들 공무원 되려는 세상이 되면 실험실 불은 꺼집니다. 사업가는 사업을 접습니다. 안정적인 것을 찾을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려(Korea) DNA’도 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고구려와 고려의 진취성과 역동성, 개방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샌님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상인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성리학이 명분인 이(理)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현실인 기(氣) 또한 중시합니다. 성리학만 공부하면 양명학이 만든 직업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명학은 직업에 차이를 두었을 뿐,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조선이나 오늘날의 한국이 성리학만 편식한다는 겁니다. 같은 유교권인 중국이나 일본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장인정신의 뿌리는 양명학에 있습니다.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손자병법’, 병법서 혹은 제왕학서로서의 ‘노자’를 읽어야 합니다. 

호방한 양명학은 무인·상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합니다. 의병을 일으키고,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습니다. 광복 후 한국 발전에는 무인(군부)과 상인(사업가)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죠.”

‘고려 DNA’ 살려야

임건순은 이승만 초대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를 ‘고려 DNA’가 잘 반영된 시기라고 평했다. 무인과 상인을 중심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평가된 대표적 대통령”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노태우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이끈 훌륭한 파일럿이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어요. 민주시민사회 건설에도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노태우 정부 때 노동자 임금도 인상되고, 내수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소득 분배도 고른 편이었죠. 이 속에서 ‘중산층 꿈’이 생겼습니다. 대외적으로 북방 정책을 추진한 것도 획기적인 일입니다.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극적 최후 때문에 과대평가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시절 불공평이 심화됐고, 세종시 등이 비효율과 자원 낭비를 불러왔습니다. ‘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국민 편 가르기를 통한 득표 전략을 추구한 점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노태우는 보수·진보 진영 양쪽에서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에 노태우 재평가가 안 되고 있다고 봅니다. 군부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노태우를 평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노태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반민주·독재 옹호’로 낙인찍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겠죠. ‘노태우’ 이름 석 자만 나오면 공격부터 해대는 보수 및 진보 진영의 정치권도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는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더 큰 인물입니다. 언젠가는 재평가해야 하며, 재평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동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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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5

알라딘: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폴 틸리히 (지은이),송기득 (옮긴이)

알라딘: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폴 틸리히 (지은이),송기득 (옮긴이)
대한기독교서회200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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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쪽

목차
옮긴이의 머리말 
책머리에:문제와 방법 

첫째 마당-정통주의, 경건주의, 합리주의 안에서 유동하는 강조점 
1. 정통주의 시대 
2. 정통주의에 대한 경건주의의 반동 
3. 합리주의의 대두 

둘째 마당-계몽주의와 그 문제 
1. 계몽주의의 본질 
2. 계몽주의적 인간의 자세 
3. 계몽주의의 내적 갈등 
4. 계몽주의의 성취자와 비판자 

셋째 마당-계몽주의에 대한 고전주의적ㆍ로망주의적 반동 
1. 레싱, 역사적 비평, 스피노자의 재발견 
2. 스피노자와 칸트의 종합 
3. 로망주의의 본질 
4. 고전적인 신학적 종합:쉴라이에르마허 
5. 보편적 종합:헤겔 

넷째 마당-보편적 종합의 파탄 
1. 헤겔학파의 분열 
2. 쉘링의 헤겔 비판 
3. 종교부흥과 그 신학적 귀결 
4.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신학 
5. 정치적 급진주의와 그 신학적 의의 
6. 주의주의와 삶의 철학 

다섯째 마당-새로운 조정의 길 
1. 경험과 성서적 메시지 
2. '칸트로 돌아가자'는 운동 
3. 아돌프 폰 하르낙 
4. 갖가지 신학 운동 인명색인 내용색인

저자 및 역자소개
폴 틸리히 (Paul Tillich)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베를린 대학교, 튀빙겐 대학교, 할레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특히 독일 관념론 철학자 피히테의 철학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셸링에 관한 연구로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와 할레 대학교에서 신학 강의 자격(Lizentiat der Theologie)을 얻었다. 브란덴부르크주 루터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자원하여 군목으로 활동하며 유럽 문화의 끝을 알리는 끔찍한 재앙을 경험했다. 
전쟁 후 할레 대학교에서 슐라이어마허 이전의 초자연주의에 관한 연구로 교수 자격(Habilitation)을 얻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학문 활동을 시작했으며, 마르부르크 대학교, 드레스덴 공과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정교수로 철학과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 구성원들과 교류하다가 유대인 탄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비유대인으로서는 최초로 나치 정권에 의해 해직되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유니온 신학교에서 20년 동안 종교철학과 조직신학과 철학적 신학을 가르쳤으며, 하버드 대학교의 특별 교수(University Professor)와 시카고 대학교 신과대학의 존 뉴빈 석좌교수(John Nuveen Professor)를 지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개신교 신학자와 종교철학자로 꼽힌다. 

주요 저작으로는 『프로테스탄트 시대』, 『존재의 용기』, 『문화의 신학』, 『경계선 위에서』, 『흔들리는 터전』, 『영원한 지금』, 『믿음의 역동성』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폴 틸리히 조직신학 1>,<문화의 신학> … 총 14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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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득 (옮긴이)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목원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교수로서 은퇴했다.
(1999) 은퇴 이후 계간지 『신학비평』을 창간(2001)하고 주간으로 있으면서 사람다움을 지향하는 인간화 신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화를 틀로 삼아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있으며, 역사의 예수에게서 사람다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 나의 신학평전 3』 (2015)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 나의 신학평전 4』 (2012)
『역사의 예수 : 그는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엇인가?』 (2009)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 나의 신앙평전 2』 (2009)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 나의 신앙평전 1』 (2006)
『하느님의 두 아들 :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의 만남』 (2003)
『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 (1999)
『그리스도교 신학과 인간 해방』 (1998)
『사람다움과 신학하기』 (1997)
『살며 믿으며 바라며』 (1993)
『대결에서 협력으로 -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엮고 함께 씀, 1991)
『끝내 사람이고자 - 그리스도교 신학과 민중 구원』 (1990)
『예수와 인간화』 (1989)
『신학개론』 (1985)
『인간』 (1984)

옮긴 책
『파울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2005)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2004)
『무신론과 해방』 (함께 옮김, 1991)
『달라진 세계와 철학』 (1984) 접기
최근작 : <탈신학 에세이>,<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사람, 아직 멀었다> … 총 2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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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기독교 사상사를 하려거든 한번쯤은 거쳐봐야 할 책입니다.  구매
그러게말입니다 2008-09-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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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질문과 진솔한 답변

이 책을 읽으면 세계의 석학을 앞에 두고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 하듯이 강의하다가 학생이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도 실려 있어서 아주 생생하다. 틸리히는 단순히 기독교 신학자만을 다루지 않는다. 신학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도 다루고 있다. 이 번역서는 틸리히의 강의를 독일어로 정리한 제자와 영어로 번역한 칼 브라텐 둘 다를 참고하되 독일어를 우선적으로 참고하였다. 일본어 번역까지 참고한 것으로 보아 송기득 선생님의 번역의 철저함을 알 수가 있다. 원래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라는 한 책인데, 이를 <기독교 사상사>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두 권으로 나누어 번역하였다.


혼자 읽는 것보다 독서모임에서 다루니 서로 이야기하면서 더 재미있어진다. 사상사는 일관되게 흐르는 물음이 있다. 먼저 말하자면, 19-20세기 사상사는 정통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합리주의, 계몽주의에서 시작한다. 칸트의 비판철학, 헤겔의 역사변증법, 칸트와 헤겔를 다리놓은 쉘링,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는 자연주의(루소), 낭만주의(쉘링), 실존주의(맑스, 포이에르마허, 키에르케고어, 쇼펜하우어, 니체)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현대 신학자 불트만 실존주의,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칼 바르트 등을 다룬다.


틸리히의 사상사를 읽을 때, 이성이냐 감정이냐, 내면성의 신학인가 계시의 신학인가, 플라톤의 이원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원론과 이원론인가, 실재론이냐 유명론이냐, 동일철학(아리스토텔레스-스피노자-칸트-헤겔)이냐 분리철학(플로톤-키에르케고어-칼 바르트 등)의 관점으로 보면 유익하다.

 

이 책은 진지한 질문에 대한 사상가들의 고뇌와 답변이 담겨 있다.

초월은 있는가? 초월은 무엇인가? 초월은 인식이 가능한가? (칸트, 키에르케고어)

신과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영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확실한가'?

칸트의 계몽주의이후로 이성의 중요성이 등장하면서, 과연 성경은 신화인가? 진리인가?

역사비평과 철학 비평 이후에, 기독교 정통신학은 폐기해야 하는가?

성서의 메세지와 현대의 지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슐라이어마허)

비인간화된 인간이 어떻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키에르케고어, 맑스, 쇼펜하우어, 니체)

인간안에 진리가 내재했는가? 진리와 연결고리가 없는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소크라테스와 예수, 스피노자-헤겔-슐라이어마허 vs. 키에르케고어, 부르노와 칼 바르트)

 

 

이런 질문에 대한 재미있는 답변들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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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3-02-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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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준의 프로테스탄트 사상서 새창으로 보기
인터넷 헌책방 신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처음엔 별관심이 없었는데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간된 것을 보고 신뢰가 가서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놀라운 수준의 스칼라쉽이다.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300쪽에 불과한 얄팍한 책임에도 대단한 학문적 깊이와 풍부한 내용으로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사족현재는 기독교서회에서 다시 발간한 듯 하나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1982년 판 한국신학연구소 발간 본이다. 
응돌 2018-09-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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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사상사 - 파울 틸리히의   
폴 틸리히 (지은이),송기득 (옮긴이)
대한기독교서회2005-09-10




그리스도교 사상사

기본정보
450쪽

책소개

칼바르트, 루돌프 불트만과 더불어 20세기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꼽히는 파울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번역한 책. 1953년 봄학기에 유니온신학교에서 행한 강의를 엮은 것으로, 원시교단에서부터 종교개혁 직후까지 그리스도교의 사상사를 살펴보고 있다. 단순한 사상의 전개와 나열이 아닌, 아닌 역사적 전망과 역사적 해석을 전해준다.


목차
독일어판 엮은이의 머리말
영어판 엮은이의 머리말
옮긴이의 말

머리말: 도그마의 개면

제1장 그리스도교 신학의 예비
1. 카이로스
2. 로마 제국의 세계 지배에 따른 보편적 상황
3.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철학
4.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 - 성서 중간 시대
5. 신비주의와 밀의종교
6. 사도 교부

제2장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시작
1. 변증론자들
2. 영지주의의 위험성과 반영지주의 교부들에 의한 극복
3. 반영지주의적 교부들이 내놓은 새로운 교설
4. 알렉산드리아학파
5. 로고스 그리스도론에 대한 반동
6.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논쟁
7. 그리스도론의 논쟁
8. 거짓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제3장 서방의 그리스도교적 사고의 발전
1.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
2. 아우구스티누스

제4장 중세교회
1. 신학의 기본 자세
2. 스콜라주의
3. 중세종교의 여러 힘
4. 중세교회의 위치
5. 중세의 성례전론
6. 11-12세기 중세신학의 주요 대표자들
7. 13세기

제5장 트리엔트회의로부터 현재까지의 로마 가톨리시즘의 발전
1. 트리엔트회의
2. 트리엔트 이후의 가톨릭 교회의 발전

제6장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
1. 마르틴 루터
2. 홀드리히 츠빙글리
3. 존 칼빈

제7장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발전
1. 정통주의 신학
2. 경건주의
3. 합리주의와 경건주의의 관계
4. 소지니주의

문헌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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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6

Hun Jung Cho 늦봄 문익환목사의 사상과 신학

(17) Facebook: Hun Jung Cho

Hun Jung Cho

[문익환목사님 28주기를 맞아] 
늦봄 문익환목사(文益煥, 1918년 6월 1일 ~ 1994년 1월 18일)의 사상과 신학

 - 목차 -

  (1) 해방의 신학(Theology of Liberation)
  (2) 시 신학 (Poem Theology)
  (3) 감옥신학 (Prison Theology) 
  (4) 예언자 신학(Theology of Prophets)
  (5)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히브리 민중사 
  (6) 통일신학(Theology of Reunification): 주체사상과의 대화

(1) 해방의 신학(Theology of Liberation)

  해방이라는 단어는 1945년 이래 우리역사를 가로지르는 핵심단어이며, 문익환 목사 또한 함께 동참했던 민중신학의 중심명제이자 기독교성서역사의 주요언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 목사님의 신학사상을 해방의 신학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문익환 평전』의 저자 김형수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시인, 번역가, 언어학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천하는 예언자로서, 문익환은 우리 시대의 중심에서 불꽃같은 생을 살았다.” 그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대학로에서 진행된 노제에서 그의 영정이 움직이자 누군가 격정을 못 이기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해서 20세기가 서울을 뜨는구나!” 문익환 목사는 단순히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소속의 목사로서 사회선교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가 낳은 진정한 예언자였다. 
 목사님의 독특한 삶은 그의 독특한 가족배경에 기인한다. 대한제국이 외세에 의해 풍전등화와 같이 흔들리던 1899년 2월 28일 관북의 네 가문 1백 41명은 북간도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라를 일으킬 인재를 키울 것을 약속하고 함께 국경을 넘는다. 문익환의 고조부 문병규는 이 새 공동체의 웃어른이었다. 일제시대 북간도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약연, 의사 안중근 등 당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치고 문씨네 식객이 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은 장로와 전도사를 거쳐 평양신학교 졸업 후 목사가 된다. 당시 캐나다 선교부는 미국 선교부와는 달리 장차 조선의 교회는 조선인의 손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여겨 유능한 인재를 눈 여겨 보고 있었는데, 문재린이 그 첫 수혜자가 되어 캐나다 유학을 하게 된다. 유학 후 용정의 한 교회를 섬기던 문재린 목사는 3.1 봉기에 가담했던 일로 일본영사관과 헌병대에 구속된 이후, 조선공산당 그리고 소련사령부에 차례로 체포를 당해 옥고를 치르면서 죽음의 문턱을 여러 차례 오고간다. 이는 당시 북간도의 현실이 외세가 난무하는 살벌한 전쟁터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문익환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문 목사님이 방북으로 인한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을 당시 아버지 문재린 목사는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낸다.
  “재판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아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아들은 72살이고 나는 95살이오. 익환아! 너는 우리 7천만 민족을 위해 일하고 감옥에 들어갔으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심정으로 재판을 받아라! 익환아, 그것을 기억해라! ...”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익환의 어머니 또한 젊은 시절 기독교 여성해방 운동에 힘입어 ‘고만녜’ 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신묵이라는 새 이름을 갖는다. 이때 명동촌에서 믿을 신(信)자 돌림으로 이름을 갖게 된 여성이 50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기독교 신(新)여성운동이 얼마나 활발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김신묵은 이 ‘신’자 여성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명동여학교 동창회장과 여전도사로 일하면서 용정 만세시위에 참가한 지도자였다. 문익환과 동생 문동환 형제의 민족사랑은 바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었다. 

 2) 예수 가문, 그리고 문익환 가문

 이 대목에서 나는 문익환 목사를 ‘오늘의 (작은) 예수’로 이해하면서 역사적 예수의 가문과 문익환의 가문을 연계시켜보려고 한다. 물론 역사적 예수라고 하지만,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가족 얘기는 극히 작은 몇 구절에 불과하기에 신학적 상상력을 더해 얘기를 하고자 한다. 달리 말하면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얘기는 서구의 전통 성서 해석 방법인 기록된 문자에서 오늘의 상황을 바라보는 ‘문자주석’(exegesis) 방식이 아닌 오늘의 상황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상황주석’(eisegesis) 방식이다. 강연자는 ‘문자주석’을 넘어선 ‘상황주석’이야 말로 예수께서 ‘사람이 곧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서 강조하시는 바, 성서의 본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진리 추구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가족 또한 문익환의 가족과 같이 제국의 식민지 지배 하의 피압박민으로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예수 탄생에 관한 얘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둘 다 동정녀 탄생을 말하지만, 마태가 아버지 요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누가는 어머니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우선 관심하는 것은 예수의 가족이 헤롯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을 갔다는 마태의 얘기이다. 물론 마태는 그의 전체 신학 틀을 모세 오경에 맞추고 있기에 편집사적 관점에서 예수가 제2의 모세로서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해방의 역사를 펼쳐 나갈 메시아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다 실(實) 역사적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문익환의 고조부로 시작하는 가족사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독립을 꾀하기 위해 북간도로 이주하였듯이 예수의 가문 또한 요셉 이전 세대에 다윗 왕조의 회복과 독립을 꾀해 로마와 헤롯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이주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 요셉 또한 단순한 목수가 아니라 아들 예수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 독립 운동가는 아니었을까? 물론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는 교리에 물든 사람이라면 필자의 얘기에 대해 코웃음을 치겠지만, 역사적 예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해방을 염원하는 문익환의 정신세계가 부모님에게 뿌리내리고 있듯, 예수의 정신세계 또한 그의 부모님에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그리 큰 논쟁거리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언제나 한반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외세로부터 끊임없이 압박과 지배를 받았고, 그래서 외세 어느 한쪽이 지배세력이 되면 유대는 다른 외세에 의존하여 독립과 해방을 추구해 왔다. 우리나라 근세 짧은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중국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였을 때는 갑오개혁이 보여주듯 일본에 기대어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고, 일본이 지배세력이 되었을 때는 중국이나 러시아 혹은 미국의 세력을 빌리고자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 탄생 직전 유대왕국은 헬라제국의 후예들인 북방 시리아의 셀류크스 제국과 남방 애굽의 프톨레미 제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바 있으며, 예수 시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북방 세력을 대표하는 로마 제국의 지배가 가시화되자 이미 바벨론 제국의 포로에서 해방을 안겨주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파르티아 제국의 힘에 의지했고 이 희망은 동방박사의 출현으로 상징되었다. 그리고 한때 파르티아제국은 로마제국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낸 적도 있었고 이때 헤롯대왕은 로마로 피신을 가기도 했었다. 따라서 요셉 가족의 애굽 피신은 단순한 도피로 보기보다는 문 목사님의 가족 이야기에 견주어 볼 때, 독립운동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복음서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기 위함일까 아니면 요셉의 죽음 또한 십자가라는 정치적 죽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 마리아의 얘기로 옮겨가 보자. 신학자 피오렌자는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라는 기도에서 ‘비천한 신세’를 로마군에 의한 강간 임신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갈릴리 민중 전체가 갖고 있는 반제국반식민 저항운동을 더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마리아가 노래하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시고 배고픈 사람은 배불리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으로 돌려보내셨다’는 구절이 유대왕국의 독립과 민중혁명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마카비 형제들에 의해 실현된 바 있다. 어린 문익환이 고조부부터 이어지는 선조들의 투쟁의 역사를 들었던 것처럼 어린 예수 또한 선조들의 영웅적인 투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지 않았을까? 

 갈릴리가 마치 예루살렘의 유대주류사회로부터 밀려난 변방이었듯이 북간도 또한 변방이었다. 변방은 밀려난 자들의 한이 넘치는 땅이지만, 이 한은 공동체적으로 해방의 새 역사의 꿈을 키우는 혁명의 용광로였다. 문익환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그의 37년간의 삶은 로마제국 당시의 갈릴리의 예수가 33년간 겪었던 그 억압의 삶 자체였다. 따라서 예수가 그러했듯이 문익환 또한 출애굽으로서의 민족 해방,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인간 해방은 삶 자체의 지향이었다. 

(2) 시 신학 (Poem Theology)

  1) 문익환의 다양한 신학 훈련 

 문익환은 27세의 나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요절한 윤동주 그리고 반 박정희유신정권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사상계의 주필 장준하와는 명동 은진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문익환은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던 중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퇴학을 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신학교에 입학한다. 평양신학교는 근본주의적이니 일본신학교에서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신학교에서는 성서비평학이 활발했는데, 축자영감설을 믿고 있던 문익환에게 성서비평학은 받아들이기 힘든 학문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경청하지 못하면 학문을 할 자격이 없다"는 교수의 충고를 듣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이후 학병 거부로 인해 만주의 봉천신학교로 옮겼다가 해방 후 1947년 조선신학교(한국신학대학)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은 문 목사는 교회를 섬기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부를 접고 귀국 자원입대하여 통역장교로 일하다 휴전 후 1954년 다시 프린스턴 신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쳤다.
 이후 한빛교회 초대목사로 봉직하는 가운데, 한국신학대학과 연세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면서 기독교사상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설교와 글을 발표한다. 이어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에서 1년간 공부를 한다. 공부한 신학교만 만주 일본 미국의 모두 저명한 다섯 개 학교이다. 당시 이렇게 다양한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이는 문익환이 처한 시대의 난국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지만, 어쩌면 이는 그의 신학 또한 영혼처럼 자유로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2) 성서번역가 문익환

 문 목사는 51세가 되던 1968년, 개역한글판 번역이 한자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독자에겐 이해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세계 최초, 개신교•가톨릭 공동성서번역 작업에 책임위원으로 8년간 참여한다. 성서번역에 매진하기 위해 교회를 사임하고 히브리 성서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시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56세에 『새삼스런 하루』라는 첫 시집을 낸다. 이 과정에서 문익환은 제국들의 침략과 압제 그리고 추방 속에서도 야훼 신앙을 고백했던 시편 기자들과 예언자들의 말씀 속에서 우리 한민족이 펼쳐가야 할 신앙과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20세기 중반 ‘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이는 전통적인 모더니즘 시대의 체계 조직신학, 다른 말로는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으로 구분되는 백과사전적 조직신학(encyclopedia systematic theology)에 대비되는  ‘비체계로서의 신학’이라 할 수 있으며, 이야기 신학 혹은 ‘이야기 조직신학(Narrative systematic theology)’ 등으로 명명된다. 히브리성서나 헬라성서의 대부분은 이야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물론 모세 율법의 상당부분도 역사 이야기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구전전승의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은 비유를 포함해서 대부분이 이야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예수는 민중들의 언어로 하느님 나라 이야기를 전했으며, 복음서 기록 이전 순회 이야기꾼들에 의해 전승되고 선포되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문학은 크게 이야기와 시로 구분할 수 있다. 이야기 신학에 비교하는 ‘시 신학(Poem Theology)’라는 용어는 아직 신학 세계 안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시인이었다는 주장은 많지만, 시 신학이라는 용어가 없는 것은 ‘신학(Theo + logos)’이라는 학문 자체가 ‘logos(말 곧 논리성)’를 기반으로 하는데 반해 시는 논리를 뛰어넘는 비논리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신학이 반드시 논리학의 틀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하는 것은 서구신학의 주장이다.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희랍의 논리성에 기초한 철학적 개념 때문이며, 하느님의 나라를 기독교왕국(christendom)으로 치환하려는 서구기독교가 상대적으로 예수보다는 바울을 선호하여 왔기 때문이다. ‘예수신학’이라는 말은 없어도 ‘바울신학’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신학은 근본적으로 신의 절대 영역을 인간의 상대 영역인 언어로 제한하려 한다는 점에서 자체 모순이다. 오히려 문 목사님은 시야말로 과학적이라고 규정한다. 
“시작이란 이미지를 정확하게 그리고 그 이미지로 표현된 감정의 빛깔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에 맞는 말을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되거든요. 이점에 있어서 시는 철두철미 과학적이에요. 시는 언어의 예술이기 때문에 적절한 말이 없으면 새 말을 만들어도 돼요.” 문익환,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삼민사 1991 139쪽

 인간 역사 속에서 시와 종교는 거의 같은 형태로 내려왔다. 예배의 무게 중심이 개신교에서는 설교에 있지만, 이를 제외한 찬송과 기도는 모두 시어(詩語)이다. 복음서의 헬라어를 예수가 사용했던 아람어로 역번역했을 때, 학자들은 예수의 언어가 본래 시어였다고 논증한다. 마태복음의 5-7장의 산상수훈의 언어들은 대표적이다. “저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빠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저 들에 피는 꽃을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자연을 노래하는 글은 시어체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비유 곧 이야기로 분류되는 예수의 짧은 비유 말씀들은 거의 대부분이 히브리 시의 특징인 대비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곧 이야기가 아닌 시인 것이다. 히브리 성서는 율법과 예언과 지혜 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혜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편이다. 히브리 성서의 중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예언서 중 후기예언서는 어떠한가? 대부분이 시어체이다. 결국 히브리 성서의 40%가 시다. 성서의 시 신학을 오늘에 몸소 재현한 이가 문익환 목사님이다.

 왜 목사님은 시를 그토록 사랑했는가? 시의 독특성은 무엇인가? 시는 대부분의 설교가 지향하는 일방적 방식인 가르침과 설득보다는 읽는 사람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백이 있는 대화의 방식이다. 하나 둘 셋의 삼단논법을 통해 상대방의 입을 닫는 결론을 끄집어내려고 하기 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성찰 단어를 통해 보다 높은 단계인 깨달음의 세계로 상대를 이끌어낸다. 그건 시인들 자신들이 경험하는 그 영적 혹은 신비의 세계가 언어로 결코 설명되거나 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익환은 서구의 전통신학의 훈련을 받은 신학자이긴 했지만, 본래 그의 품성이 갖고 있는 이상형으로 말미암아 언어의 틀을 깨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조직신학 서적으로 분류되는 『히브리 민중사』도 매장마다 종국에는 시로 끝맺고 있다. 혁명은 감성이 주도하는 시적 통찰력에서 일어나지,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3) 시편 1편 번역 비교와 우리말로 신학하기  

 시편은 무엇인가? 시편은 삶의 현실 앞에서 김정을 표현하는 운율을 담은 시이자 하느님과의 대화이자 기도이다. 시편은 새 역사를 향해가는 믿음 위에서 출발하며, 시편 속에서 우리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들 가운데 현존하면서 생명과 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에 힘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렇게 함으로 청중 자신들의 삶과 역사 안으로 초대한다. 그렇다면 시어(詩語)가 우리의 가슴을 흔드는 순수 우리말일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문 목사님 또한 이 부분에 엄청난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시편 1편을 공동번역과 이전 개역한글과 비교해 보자.

(공동번역)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개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은 노래로 하는 시이자 기도이다. 반복되는 운율과 박자가 중요하다. 시는 전체 내용도 중요하지만, 하나하나의 단어가 갖는 함축성은 더욱 중요하다. 시에서 단어 하나는 전체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개역과 공동번역의 첫 단어는 그 느낌이 얼마나 다른가?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시작하면서 하나의 서술체로 변해가는 단어와 그냥 “복 되어라!” 하는 선언의 차이는 단순한 단어가 차이가 아니라 시 전체의 생명을 좌우하고 있지 않는가?
 구조상으로 보더라도 개역은 ‘복 있는 사람은’ 으로 시작하여 ‘묵상하는 자로다/ 하리로다/ 같도다/ 못하리로다/ 망하리로다’ 곧 ‘다.’ ‘다.’로 끝나는 다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딱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중간이 끊어지지 않는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 되어라!” 하는 축복 시어로 시작하고 또 중간에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하는 감탄 시어로 연결되면서 ‘다’(보살피신다)라나 결어는 끝에 딱 한번 나온다.  

 문법적으로 보더라도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하려면 1절의 의인이 악인의 길에 가까이 다가가는 세 개의 형용구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데, 개역은 ‘좇지 않는다’라고 하는 강한 어조가 맨 앞에 등장하므로 이후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가 갖는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반면 공동번역은 ‘가지 아니하고,’ ‘거닐지 아니하며,’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점진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역동감을 더하고 있다. 
 끝으로 시어를 보자. 개역의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리고 공동번역의 “제 철따라 열매 맺으리,”와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를 비교하면 후자가 주는 표현의 생동감은 비할 바가 없다.

 이후에 출간된 개역개정판과 표준새번역도 개역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표준새번역에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겨가 ’흩날린다’는 문구와 ‘까불린다’는 문구를 비교해 볼 때, ‘까불린다’는 표현이 우리말의 강점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겨가 악인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 깊은 신학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 발제자가 시무했던 향린교회는 홍근수 목사시절부터 지난 25년 동안 국악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이에 관련하여서는 얘기할 게 많지만, 시편에 관련해서 한마디만 하고자 한다. 예배 시에 시편교독문을 읽는데, 본인은 원시편이 노래로 하는 것이기에 이를 국악풍의 짧은 가락으로 인도자와 회중이 교대로 부르는 형식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고, 담당 교인들과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이때 만약 문 목사의 공동번역 시편이 없었더라면 많은 부분 생동감을 상실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2013년 부산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에서 “The Korean Traditional Hymn in Connection with Ecumenical Spirituality”란 워크샵을 향린교회 단독으로 주최한 바 있었다. 당시 보통의 워크샵은 많아야 2, 30명인데, 여기에는 200명이 참가 신청을 하고 큰 호응을 얻은 바가 있었다. 예배 전체 틀을 국악으로 바꾸는 일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일단 시편 교독문이라도 국악풍의 가락에 공동번역의 시어를 사용하면 한국교회 개혁에도 상당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목사님의 회고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 학교 문예지 편집 일을 맡았던 윤동주가 목사님에게도 시 한편을 써내라고 하여 한편을 보냈더니 ‘이게 어디 시야’하면서 되돌려 받게 되면서 시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번역에 참가하면서 시를 쓰게 되는데, 그러면서 상상하기를 만약 동주가 살아 있어 시편 번역을 도와주었더라면 자신은 영영 시를 써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문익환, 『혁명의 해일』 청노루 1988 118쪽)
 문 목사님께서 히브리 성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조선인의 정신과 감성을 융화하여 얻어지는 가락과 언어를 발굴함으로서 투명하고 섬세한 자신만의 고유한 시세계를 구축한 것을 생각할 때, 역사의 모순을 느끼게 한다.

 문익환의 짧은 시 두 개를 읽어보자.

- 예수의 기도 6 -

새벽 하늘 퍼렇게 멍든 가슴으로 와락 다가서시는이시여
가까워지다 멀어지다 멀어지다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로
이 새벽에도 이 외로운 감방으로 찾아오시는이시여
당신은 오직 사랑일 뿐이어
늘 슬픔이시군요
당신은 오직 진실일 뿐이어
늘 슬픔이시군요
당신은 오직 희망일 뿐이어
늘 슬픔이시군요
당신은 오직 자유일 뿐이어
늘 슬픔이시군요
당신은 우리의 노래만 들어도 목이 메이시죠
우리의 기도만 들으면 눈앞이 캄캄해지시죠
아 ---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당신의 슬픔에 얻어맞으며
노래도 잃고 기도도 막히는 바닷가 모래알들에 지나지 않는가요
익히 잘 아는 꿈을 비는 마음 문익환, 『꿈을 비는 마음』의 시작 부분이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3) 감옥신학 (Prison Theology) 

 감옥신학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문 목사님의 삶을 생각할 때,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기에 실험삼아 붙인 용어이다. 감옥은 마치 성서의 예언자들이 광야에 나가 하느님의 음성을 더 깊이 듣고 깨달았듯이 오늘의 시대에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는 현존의 장소이다. 그래서 감옥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장소이지만, 오히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역설적으로 영혼의 자유를 훈련하고 자신을 성숙시켜 나가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1975년 공동성서번역 작업을 마쳤을 즈음, 문익환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반대운동에 핵심 인물이었던 죽마고우 장준하의 의문에 찬 죽음을 맞게 된다. 그때 그는 장준하의 못다 한 삶을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다음은 장준하의 3주기에 그를 추모하며 감옥에서 쓴 시이다.
......
우리는 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운 부끄러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나 되리라
네 마음으로 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죽으리라
부나비처럼
불 속에 뛰어들어
너를 얼싸안고
신나게 춤추며 죽으리라
어둠과 탐욕을 비웃어 주면서
통일 조국을 목이 터지게 노래하면서

      <산중 고혼아> 중에서 김지형 김민희 『통일은 됐어,,』 지성사 1994 134쪽

 1976년 문익환은 3.1명동구국선언 성명서를 작성하는 주역을 담당함으로 첫 번째 옥고를 치른다. 나이 59세였다. 그의 호는 '늦봄'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역사에 대한 늦은 자각을 고백하는 언어였지만, 동시에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부름을 상징하는 호이기도 하다. 이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해 5번의 옥고를 더 치렀으며 이후 17년간 이어진 투쟁의 삶 가운데 감옥 안의 기간이 11년 반, 감옥 밖의 기간이 5년 반이었다. 
 사실 문 목사님 자신이 존경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저항의 신학이 남한 땅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본회퍼 목사의 옥중서신은 70년대 민족과 민중을 사랑했던 신학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성서와도 같은 역할을 했는데, 80년대 신학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익환의 옥중 글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영복, 서승 선생을 비롯한 여러 옥중 글들이 우리 시대의 역작으로 많이 남아 있지만, 문 목사님의 옥중서신은 더욱 의미가 크다고 본다. 고난이 삶의 열매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1973년 첫 시집을 낸 이후 나온 10여권의 저서 모두가 감옥생활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감옥신학은 새로운 용어로 들리지만, 사실 바울서신의 일부가 감옥 안에서 쓰였기에 성서 일부 자체가 감옥신학이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았던 시절의 남은 초대그리스도인들의 글이 감옥신학의 일부이고 유대인들의 아우슈비츠 관련 글들 또한 감옥신학의 일부이며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었을 때, 생겨난 모든 글들이 감옥신학이다. 옥중서간은 관제봉합엽서로 제한되기에 아무리 작게 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압축적일 수밖에 없으며 엽서이기에 공개서한의 형식을 갖는다.

 감옥에서 봄길 아내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

“오늘 새벽 무슨 꿈을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깜깜한데, 그 꿈이 어제 새벽 꿈의 고민을 풀어 준 것만은 지금도 뚜렷해요. 그게 뭐냐고 하면 이런 거였소. 호세아의 사랑의 고민은 결코 하느님과 사람의 상징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소. 고멜의 배신, 그 배신을 끌어 안는 호세아의 가슴 에이는 아픔,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포함하는 모든 사랑의 실체라는 걸 이틀 새벽 꿈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군요. 이것이 내가 법정에서 말한 성속의 이원론의 완전한 극복인 거죠. 가톨릭에서 생각하듯 그것만이 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구요, 밥상에 오르는 모든 밥이 예수의 몸인 거구요, 그리고 그것은 그래도 농민들의 살덩어리, 그들의 피눈물,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그들의 소원인거죠.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소원인 거구요. 호세아서의 해석이 리얼하게 새로워졌으니, 오늘 감방 생활도 또 하나 커다란 축복이 되었군요. 감사 감사.” 문익환,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202쪽.

(4) 예언자 신학(Theology of Prophets)

  1)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

 로마의 세네카는 일찍이 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했다. “종교는 범인들에게는 진실로 보이고 현자들에게는 거짓으로 보이며 권력자들에겐 이용의 대상으로 보인다.” 여기에 종교의 위험성이 숨어 있다. 종교는 크게 두 개의 기능이 있다. 제사장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분명한 차이점을 들라고 한다면 그건 한마디로 예언자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 혹은 예배라는 형식을 통해 찬양과 기도를 하느님께 올리고 개인적인 위로와 축복을 비는 제사장적 전통은 어느 종교에나 다 있다. 그러나 민족 전체를 향한 회개의 촉구 그리고 약자 보호 우선에 따른 사회 정의 실현을 외치면서 국가 권력과 박제화 된 종교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예언자적 전통은 히브리인들의 역사에서 두드러진다. 주위 대부분의 종교가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그 권력이 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옹호하는 국가종교의 형태로 나아갔지만, 여호수아와 사사기(판관기)는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히브리 노예들이 국가 종교의 틀은 물론 왕권마저 거부하고 계급 없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워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와 자유와 평등의 가치 실현 이것이 예언자들이 지향했던 하느님 나라이며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가나안의 축복의 실체인 것이다. 필자는 아브라함의 축복 또한 탈도시화에서 이루어지는 유목평등공동체의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복음서 또한 이 점에서 매우 분명하다.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생전 모습을 띠고 로마의 식민지 시대에 광야의 예언자로 등장한다.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가장 부유했던 시절인 아합 왕 시대에 국가권력에 저항한 예언자이다. 야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합 가문의 통치를 끝장내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인물로 예언자들을 대표한다. 세례요한 또한 로마제국의 허수아비였던 헤롯왕의 비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 옥에 갇히고 끝내 참수형을 당한다. 엘리야와 세례 요한은 국가 권력 비판이라는 예언 활동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세상에 나온 시기를 ‘요한이 잡힌 뒤에’(1장 15절)라고 말한다. 곧 마가는 예수를 부당한 국가권력을 비판했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예언자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누가복음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는데,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 눈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장 18,19절) 여기서 핵심 단어는 ‘은혜의 해’이다. 이는 레위기에서 일곱 번의 안식년 다음에 오는 50년째의 희년(Jubulee)을 말한다. 희년은 처음 분배받았던 땅을 되찾는 해이며 모든 빚을 탕감 받고 노예 또한 해방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이다. 곧 희년은 국가권력에 기초한 불평등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혁명(革命)의 해인 것이다. 프랑스의 성서학자 트로크메는 예수는 당시 명목상의 희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였음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문 목사님이 온 힘을 기울여 참여했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은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히브리 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을 이어가는 오늘의 신앙운동이었으며,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예수의 갈릴리 하느님나라 운동의 연장이었다.

2) 고난 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문익환

 40대 초반 목사님이 월간지 기독교사상에 2년에 걸쳐 기고한 글의 제목을 보면 예레미야라는 한 예언자에 완전히 ‘필’(feel)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이명박 정권 초기 하늘뜻펴기(설교)를 통해 문서 예언자 전체를 연속하여 다루고 이를 출간한 바 있지만,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 2년 동안 몰입했다는 것은 너무나 특이한 일이다. 예레미야는 누구인가? 모태에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세워나가는 예언자로 불림을 받은 사람이다. 곧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의 뒤를 잇는 문익환 자신의 운명적인 삶을 그대로 말해주는 예언자이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며,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권력자들에 의해 옥고를 치루고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수모를 당하는 예언자이다. 문 목사님은 이미 18년 후에 일어날 자신의 운명을 미리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까? 

 예레미야가 유대 종교지도자를 향해 피를 토하는 회개를 촉구하였듯이 58년 전 1960년 4.19혁명 직후 <기독교사상>에 학생들의 거룩한 희생을 언급하면서 기독교의 반성을 촉구하는 <기독교도 아편이 된다>란 글을 남겼다.
   ‘기독교도 아편이다’라는 단언 명제에 나는 찬동하지 않겠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중독증에 걸려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 첫 증상은 죄에 대한 불감증이다. 둘째는 움직여야 할 몸이 반드시 움직여야 할 때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첫째 종교성(religiosity)의 그늘 아래서 인간성(humanity)이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종교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종교의 타성(inertia)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참사람-하느님께 지음 받은 대로의 참사람-으로 회복해 주시려고 참사람-둘째 아담-으로 오신 것이다. 기독교가 이것을 무시하고 자체의 권한과 자리만을 생각하는 한 종파(cult)로 전락해 버리면, 공산주의자들에게 아편이라는 낙인을 찍혀도 변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생에서 ‘온통(tatal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회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우리는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교회’ ‘옹근 사람’이어야 생명을 건전하게 지탱할 수 있을 터인데, 우리는 분열되어 버리고 말았다. 교계의 분열은 한국 교회를 마비 상태에 떨어뜨리고 말지 않았는가?  
   셋째로 지적해야 할 원인은 ‘은총’의 남용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밖에는 구함을 받을 길이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생의 태도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부정을 덮는 아름다운 보자기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심판도 받기 전에 자신이 다 용서하고 깨끗이 치워버리고는 다른 부정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능글맞은 철면피로 보이는 까닭이 실로 여기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율법주의, 타계주의 같은 것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4월 혁명의 무서운 충격으로도 한국 교회가 그 중독증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무서운 충격이 주어지고야 말 것이다.

   지금 남한 교회의 현실이 어떠한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이 급성장한 교회요 세계 최대 50대 교회 중 절반이 서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남한 기독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평신도’가 ‘병신도’라고 조롱당한지 오래이며 젊은이들이 교회에 등을 돌린 지 오래이다. 20년 전 천만 명이 넘는다던 개신교 숫자는 현재 육백만 명 정도로 줄었으며 이백만 명 가까운 신도들이 교회 주변을 맴돌며 약속의 땅을 바라는 ‘가나안신자’들이다.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고령 신자들이 사라지는 15-20년 후에는 현재의 절반인 3백만 명으로 준다 해도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문 목사님이 60년대에 행했던 예언자적인 외침이 그간 8,90년대 교회의 성장하는 굉음에 눌려있었지만, 남한 개신교의 쇠퇴 내지는 몰락이 분명한 지금 우리는 그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5)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히브리 민중사 

 민중신학이란 항목은 앞서 언급한 해방의 신학 그리고 예언자신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따로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은 문 목사님의 말년의 역작인 『히브리 민중사』가 지닌 신학적인 독창성과 세계 신학계에서 남미의 해방신학과 더불어 민중신학이 갖고 있는 무게감 때문이다. 이 책이 절판이 되었다가 올해 문 목사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복간되었다는 것도 매우 뜻깊은 일이다. 
 흔히 제1성서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이해한다. 성서공부를 진행하다 보면 곧잘 신도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놔두고 왜 다른 민족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이 문익환의 『히브리 민중사』이다. 『히브리 민중사』는 제1성서가 하나의 민족사가 아니라 세계 모든 약소민족이 강대국에게, 또는 한 나라의 밑바닥 민중이 지배권력으로부터 겪는 억압 가운데, 야훼 하느님께서 어떻게 해방의 역사를 이끌어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함석헌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사와 한국 민족사를 민족 수난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었듯이 목사님 또한 유대민족과 한국민족을 ‘히브리’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고 있다. 히브리 민중사는 제1성서 전체를 민중 해방의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 파노라마이자 야훼 하느님의 인간 역사 개입의 본질을 드러낼뿐더러 목사님 자신의 고난에 찬 삶을 노래한 가슴풀이이다. 

 우선 히브리라는 단어는 고대 서남아시아에서는 핏줄로 이루어진 하나의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밑바닥 계층을 일컫는 사회용어였음에 대해 여러 문헌을 통해 그 사례를 밝히고 있다. 먼저 성서에 등장하는 히브리 또한 그 쓰임새를 보면 특정한 사회계층을 일컫는 것을 볼 수 있다.(창 43:32, 고후 11:22) 히브리와 같은 어근을 가진 ‘하비루’라는 용어는 고대 중동의 기원전 18세기 기록에서는 용병 혹은 강도떼로 나온다. 또 15세기 기록에서는 ‘하비루들의 신들’로 등장함으로 국제조약 체결의 증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애굽의 기록에서는 왕의 전리품으로 혹은 해방 혁명군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하비루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기 달리 지칭되면서, 전쟁포로, 노예, 용병, 강도떼, 해방군, 소작농, 떠돌이, 더부살이 등의 다양한 계층으로 말해진다. 목사님은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결국 히브리는 종족 혈족으로 단위를 이루는 배타적인 칭호가 아니라 자주적인 주격으로 해방되어야 할 밑바닥 계층이자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약자들을 포함하는 총칭”이라고 규정한다.(30쪽 이하) 

 그리하여 가나안 정복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하비루 부대와 가나안 내부에서 반애굽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농민해방군으로서의 하비루가 합세한 해방전쟁으로 이해한다. 목사님은 여기서 ‘난 발바닥으로’라는 유명한 시를 읊으며 하비루의 저항정신을 자신의 현존으로 끌어온다.(42-43쪽)

하느님

이 눈을 후벼 빼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이 코를 틀어막아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숨을 쉴 겁니다
이 입을 봉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소리칠 겁니다
단칼에 이 목을 날려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당신 생각을 할 겁니다
도끼로 이 손목을 찍어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풍물을 울릴겁니다
창을 들어 이 심장을 찔러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피를 철철 쏟으며 사랑을 할 겁니다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발바닥에 불질러보시라구요
젠장 난 발바닥 자죽만으로 남아
길가의 풀포기들하고나 사랑을 속삭일 겁니다

 십계명에 대한 해석은 더욱 놀랍다. “십계명은 단순한 도덕률이 아닙니다. 그건 모세의 등허리에 패인 열 줄 핏자국입니다. 성난 시나이 산 가슴 터지며 내뿜는 불꽃입니다. 아니, 그건 불꽃처럼 뒹구는 하비루 노예들의 살점들이었습니다. 다시는 억울하게 짓밟히고 억눌리고 착취당하고 죄 없이 맞아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살점들의 아우성이 바로 십계명이란 말입니다. 이 아우성이, 이 요구가 바로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시켜 세우려는 새 공동체의 정신이요 뼈대가 아니겠습니까?”(109쪽)

 이어 유일신 신앙 또한 해방과 자유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 지키기 운동이었지, 이웃종교를 부정하는 배타적인 교리가 아니었음을 설파한다. “어렵게 터득한 유일신 신앙이 지배자의 종교가 되면서 배타적인 독선에 빠져 독재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온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성서도 잘못 이해하면 침략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정당화하고 급기야는 독재를 뒷받침해 주는 이념이 되는 것입니다.”(114쪽) 

 창세기 2장의 선악과 열매에 대한 해석 또한 (제국)권력자의 흑백논리의 시각 안에서 보는 점은 정확하다. 곧 (권력자의) 선악 판단이 독선이 되어 (민중) 생명이 이에 짓눌려 짓밟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가인의 아벨 형제 살해 해석에도 같은 흑백논리를 적용하는 일에 있어서는 선뜩 동의하기 어렵다.(144쪽) 오히려 이는 농부로 상징되는 집단정착문명 곧 땅을 사유화하고 부를 확대해나가는 도시의 제국성(가인)이 목자로 상징되는 곧 땅을 공유하고 부의 확대를 스스로 절제해야 하는 ‘유목생명공동체(아벨) 파괴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북방 이스라엘은 62년 동안 세 번이나 반란이 일어났고 세 왕이 비명으로 죽어가는군요. 어쩌면 분단 44년에 걸친 이 남쪽의 역사를 보는 것만 같군요. 거기 비해서 남쪽 유다는 세 왕이 세습으로 대를 이어 가거든요. 다윗 왕조가 확고한 지배권을 유지해 내려갔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평양 정권이 확고한 지배권을 유지해 내려온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는 하비루 두목 다윗의 전통이 예루살렘이라는 뚜렷한 상징과 난공불락의 도성과 함께 지속될 수 있었던 반면 북쪽 이스라엘에는 중앙집권이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문익환, 『히브리민중사』 2018 152쪽)

 남북왕국의 분열의 역사를 통해 한반도의 역사를 읽는다. 확고한 통치 지배권을 세웠다고 해서 역사의 정당성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김일성주석을 다윗으로, 주체사상을 다윗의 전통으로 보는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다. 역으로 상황주석을 해 본다면 남한이 확고한 통치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이유가 일제 식민지지배 청산에 대한 불충분과 외세의 간섭으로 본다면 이는 북 왕국의 정치적 혼란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간접 설명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무당들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짓누르며 머리에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요? 무당들이란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천대를 받아 가면서도 그걸 탓하지 않고, 남의 아픔을 짊어지고 그걸 풀어 주는 걸 천칙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든요. (상게서 166쪽)

 목사는 한(恨)의 사제(司祭)여야 한다는 말은 서남동의 말이긴 하지만, 누구의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감옥에서 민중의 한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문익환은 예언자들의 중요한 점을 신학에서 말하는 말(logos)이 아닌 몸짓, 몸부림으로 보았다. 해방을 갈구하는 민중의 저항의지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꿈틀거리는 격정이 먼저이다. 거기서 말이 터져 나오면 그 말이야말로 역사를 변혁시키고 새 질서를 줄 수 있는 말인 거죠.”(169쪽) 필자는 이 ‘새 질서를 줄 수 있는 말’이란 다름 아닌 목사님께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29명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었다고 본다. 모든 이를 전율에 떨게 하는 그 외침은 하느님의 몸부림이요 땅의 뜨거운 저항이었다.

 아모스 2장 9-12절에 나오는 짧은 구절을 통해 나실인의 해방전승과 예언자들의 해방전승을 비교하고 이를 이사야를 다루면서 유목민들의 해방전승을 언급하면서 이를 장소에 연계하여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보지 못한 문 목사님만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혜안을 느낀다. 곧 자원하여 몸을 하느님께 바친 나실인들을 출애굽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사막을 떠도는 반농경사회의 해방운동가로, 예언자들은 주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해방운동가로, 유목민들은 광야의 초원지대에서의 해방운동가로 보는 관점이다.(190-191쪽) 이사야가 그리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사자와 어린 양과 늑대와 염소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가 송아지와 함께 풀을 뜯는 새 역사 창조의 장소를 사막과 농경지대의 경계선상에 있는 광야로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광야 유목민이 사막의 나실인 그리고 농경지대의 예언자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못내 아쉽다. 

 구원에 있어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개혁교리는 오늘날 남한교회의 핵심 가르침인데, 이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교회의 폐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믿음만의 교리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으로서, 이는 본래 예언자 하박국에 기인하고 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개역, 합2:4) -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공동) 여기서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큰 오해가 없는데, 개역으로 읽으면 이 믿음에 대한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문익환은 오늘의 교회가 하박국 예언자의 본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 본래 뜻은 ‘힘을 하느님이라고 믿는 사람들, 힘이 정의라고 믿고 설치는 사람들을 무서워 말라. 힘의 횡포-그건 옳지 않은 거야. 이런 뜻이죠. 하박국은 악에 항거해서 소신껏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세계를 환상으로 보았던 겁니다.’ 곧 하박국이 말하고자 했던 의인 신앙이란 ‘눈 딱 감고 믿는’ 현실 도피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와짝 뜨고 믿는’ 현실 역사 참여의 신앙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269쪽)

 『히브리 민중사』는 예언자들의 해방 전통이야 말로 성서의 일관된 중심 사상임을 밝히고 있다. 곧 ‘서구백인남성 신학자’들이 지난 이천 년동안 애써 외면해온 성서 안의 핵심인 발바닥 민중의 역사를 찾아낸 것이다. 문익환을 통일지상주의자 혹은 그래서 민족지상주의로 말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뿌리에는 하비루 곧 민중해방사상의 실현을 꿈꾸는데 있는 것이다.
 문 목사님의 뒤를 이어 가는 후학들이 담당해야 할 두 가지 신학 작업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중도에서 그친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이후 바벨론 포로기의 에스겔과 제2, 3이사야 그리고 포로 귀환 이후의 에스라와 느헤미야까지 다룸으로 히브리 민중사를 완성하는 일이다. 강연자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바벨론 포로기의 문서들을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추구한 바 있다. 그리고 민중신학의 폭넓은 소개와 발전을 위해 『히브리 민중사』를 영어로 번역 출판하는 일이다. 사실 민중신학은 80년대 초 여러 학자들의 짧은 논문들을 모아 영문으로 번역된 책 한권 외에 특별한 책이 없어 매우 아쉬웠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국내외 소장 조직신학자들의 논문을 엮은 『Minjung Theology Today』라는 책이 곧 출판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중신학 제1세대 학자들의 역작들이 세계 신학계에 소개되는 것이다. 제2성서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책이 올해 안에 영문으로 출판될 예정에 있다. 따라서 문 목사님의 『히브리 민중사』를 번역 출판할 때에 비로서 민중신학의 전체가 소개되는 것이다. 

(6) 통일신학(Theology of Reunification): 주체사상과의 대화

  1) 통일의 시급성

 남한은 현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제1의 자살률국가이다. 국민소득은 계속 올라가고 국가안보는 신무기로 계속 튼튼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전쟁 아닌 전쟁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건 남북분단이 만들어낸 반생명 반평화 죽음의 기운이 한반도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세계 자살율 2위 국가가 같은 분단의 비극을 겪고 있는 사이프러스임을 알 때 더욱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99마리 양보다 우리 밖의 한 마리의 양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교회의 복음 사역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그 초점이 맞혀져야 한다. 38년 전 서울대 신입생 환영예배에서 행한 문 목사님의 하늘뜻펴기를 들어보자. 

대한민국의 국시가 민주주의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민족을 통일하는 민주주의’가 아닌가요. 요새 저같이 민족통일을 말하는 사람을 관변측에서는 뉴레프트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저는 그런 건 일소에 붙일 겁니다.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때려잡는 칼은 한 번도 우리의 목을 떨어뜨리지 못했어요. 저는 국토 분단을 고정시키고 민족 분열을 심화시키는 민주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부할 거예요. 이것이 이 땅에서 신앙을 사는 길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민족을 통일하는 민주주의-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휴전선으로 갈려 있는 민족의 통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휴전선의 철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려 있는 한, 휴전선의 철폐만으로는 민족이 통일되지 않아요. 민족 통일의 실체는 휴전선의 철폐가 아니라, 우리의 국토인 이 한반도에서,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서 지배자-피지배자의 관계를 몰아내는 일입니다. 이렇게 자유인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민족의 주체적인 자기주장의 함성 앞에 휴전선은 여리고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문익환,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학민사, 1984. 136쪽.)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들 대부분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휴전선의 철폐를 넘어서 지배자-피지배자의 관계를 몰아내는 일이 통일의 실체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목사님이 지적하는 일차적 지배자는 미국이지만, 지금은 여기에 동승하고 있는 시장자본주의하의 투자 자본가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빈민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고 있다. 또 목사님의 발언 가운데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은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서’라는 단서이다. 북조선 또한 이러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우선의 NL주의와 민중우선의 PD주의를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합일의 정신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통일신학이란 단지 통일의 필연성을 주창하는 신학이 아니라, 남과 북의 이념과 체제가 하나로 통일이 되는 신학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남쪽의 자본주의에 기초한 자유사상과 북쪽의 사회주의에 기초한 평등사상이 만나는 신학이어야 한다. 물론 남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이고, 다수는 성공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의 평등 또한 상당부분 제한적이다. 지역적으로는 평양 그리고 계급적으로는 10%에 해당하는 당원과 관료들에게 부가 편중되어 있다. 97년 처음 평양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것은 자본에 물들기 시작하는 관료들이었다. 지금은 훨씬 더 심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체 모순에도 불구하고 강연자는 남쪽의 신자본주의와 북쪽의 신사회주의가 함께 만나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제체제야말로 이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경제모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이 말한 대로 ‘세계사의 하수구’인 한반도의 수난의 역사는 세계를 구원하게 될 것인데, 강연자는 이 세계 구원은 바로 남과 북이 만나 창출해 내는 새로운 정치사회경제체제라고 본다.

오늘 문 목사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어떤 신학적 작업을 진행할 것인가?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지만, 그건 민중신학과 주체사상의 만남이라고 본다. 여기서 필자는 주체사상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80년대 브리태니카사전은 <World Religion> 이라는 항목에서 북의 주체사상을 세계 8위의 ‘주체종교’로 분류하고 있다. 필자는 97년 이후 2013년까지 3,4년 주기로 다섯 차례 평양을 다녀온 바 있는데, 곳곳에 붙어 있는 여러 구호들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 이념을 엿보게 된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첫 방문에서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등등의 구호를 보면서 이는 기독교의 부활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었다. 지금도 김정은 위원장이 핵개발 중단 내지 핵폐기를 말하면서 그 정당성의 근거로 김주석의 유훈을 언급하는 것은 북조선이 유사종교 사회체제를 갖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김일성 개인숭배사상’으로 치부하고 마는데, 이는 북에서 기독교를 향해 ‘주 예수 개인숭배사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가 되고 만다. 교회가 이천 년 전 예수의 사상과 행동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듯이 북 또한 수십 년 전의 김일성의 사상과 행동을 오늘의 시대에 재해석하고 있다. 물론 교회에도 문자 근본주의자가 있듯이 북에도 그런 근본주의자들이 있을 것이다. 남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단들이 있듯이 북에도 그런 이단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극단의 예를 갖고 전체를 속단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며,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북에서 비판하는 기독교는 미국의 제국성을 대변하는 국가종교로서의 비판이 우선이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닌 것이다. 

   2)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대화

 이제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통일신학의 과제는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만남이다. 문제는 북은 기독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으나 남은 ‘빨갱이 덫’에 걸려 주체사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순 우리말인 ‘동무’ 대신 한자어 ‘친구’를 사용해야 하고 ‘인민(人民)’이란 좋은 단어 대신에 ‘민중(民衆)’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주체(主體)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주체성에 휘둘리며 살아온 것이다. 남에서 가장 선호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건 민(民)의 주체인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곧 주체(主體)의 실현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대화는 오히려 30년 전 한때 해외에서 진행된 적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도 비판할 게 많듯이 주체사상도 비판할 게 많다. 그러나 일단 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진정한 통일을 이루겠는가? 화해와 평화를 말하면서 내 것만 옳다고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진정한 통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80년대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로 “주체사상과 기독교”라는 과목을 가르친 바 있는 홍동근 목사도 주체사상의 매력을 정치혁명의 맑스주의를 넘은 도덕철학과 종교성에 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주체종교 내지는 주체신학으로 읽는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처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생소하지 않다. 해방 직후 맑스주의자들이 무신론과 유물사관을 가지고 기독교를 관념론이라고 조소하고 인민의 아편으로 치부하였을 때 (김일성주석은) 이념적 반대나 적대의식을 표시하지 않았다. 반대로 토착적인 따뜻함과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여 좋다. 맑스주의도 차이점을 거두고 공통점만을 찾으며 기독교와 사촌사이까지 갈 수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주체사상과 기독교』 선우학원 홍동근 공저 북미주체사상연구회 1990. 78쪽) (가로 안은 필자의 첨가) 

 이 배경에는 김일성 자신이 어렸을 때, 외가 특히 어머니 강반석 집사의 영향 아래 교회를 다녔으며 아버지 김형직 또한 기독교학교인 숭실중학교를 졸업했다. 김형직 사후, 그의 절친인 손정도 목사 가정에서 양아들로 같이 자라났던 이가 김일성이다. 그리고 김일성의 외삼촌 강량욱 목사는 초기 수상을 지낸 바도 있다. 적어도 김일성에게 있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함께 갈 수 있는 사상이었다. 서구기독교가 세계패권 제국주의와 결별하고 약소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조선의 기독교로 탈바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김주석은 여러 차례 남에서 온 목사님들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민중신학과 주체사상과의 접점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주체사상의 기본 교리는 다음과 같다.  (상게서 78쪽)

 (1) 사람 중심의 사상 (2) 민족 자주성의 신앙 (3) 공산주의사회의 열망 (4) 혁명가적 풍모. 1. 주체사상의 사람 중심의 사상은 기독교의 하느님 중심 사상과는 반대개념으로 들리지만, 불트만이 지적했듯이 ‘신학은 인간학이다’라는 관점에서 얼마든지 접점은 가능하다. 2. 민족 자주성의 신앙 또한 역사적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 관점에서 보면 예수 운동의 실체이기도 했다. 3. 공산주의를 논할 때에 원론적 의미에서 맑스의 유물사관과 주체사상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체를 물질이 아닌 사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초기교회의 모습은 공산주의의 원형이지 않는가? 4. 혁명가적 풍모는 헤롯왕을 여우로 비웃고 유대사회 지배의 근간인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채찍을 휘두르며 상을 뒤집어엎고 종교장사꾼들을 쫓아내고 성전을 장악하는 모습이야 말로 과연 혁명가적 풍모가 아닌가?

 이러한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대화를 만약 문 목사님의 <히브리민중사>의 민중신학과 인민의 삶을 극대화하고자 하여 사회주의로 탈바꿈하고 있는 북조선의 주체신학으로 그 폭을 더욱 좁힌다면 둘 사이의 간극은 훨씬 더 좁아질 것이다. 필자는 목사님께서 지금 살아계신다면 분명 이 작업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의 통일시대를 바라보면서 한신신학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본다. “민중신학과 주체사상 연구소”(가칭)를 설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10년 전 홍근수 목사께서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라는 과목을 개설했을 때, 등록학생 미달로 취소된 바 있지만, 이번의 한신신학의 광맥을 찾아가는 연속강좌가 하나의 행사로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던 김재준 목사님과 송창근 목사님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의 유지를 이어 반드시 이런 연구소가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문 목사님은 ‘역사를 산다는 것은 벽을 문으로 알고 부딪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벽을 문으로 알고 부딪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7) 나가면서

 출애굽의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야웨흐 아세르 야웨흐’라고 답하신다.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되는 이 말을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는 ‘백성들 사이에 거하는 신의 현존성’이고 둘째는 ‘인간의 언어로 규정받지 않는 곧 이름이 없는 신의 자율성’이다. 늦봄 문익환은 이러한 하느님의 본질적 형상을 가장 잘 보여준 분으로 하느님이 이 땅에 보내신 예언자였다. 미국의 퀘이커 봉사회는 1992년 문익환 목사를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천거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의 평생의 반려자 박용길 장로를 언급한다. 그는 남편의 가는 ‘늦봄’ 길을 함께 가겠다는 뜻에서 ‘봄길’이란 아호를 짓고 명동구국선언에서부터 뜻을 같이 하며 십자가 수난의 길을 걸었다. 남편을 대신하여 1995년 김일성주석의 1주기에 방북을 하였고 이로 인해 구속을 당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과 생명의 역사를 한반도에 펼쳐 보인 자랑스러운 부부였다.
  《문익환평전》은 다음의 문장으로 문 목사님의 삶을 정리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잘못된 수치심 없이 저 아득한 21세기의 나날들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분단ㆍ전쟁ㆍ국가폭력 같은 두려운 단어들이 아닌 따뜻한 언어로도 우리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꿈과 사랑을 보여준 그의 업적 덕분에 새로운 세대는 다른 눈으로, 더 잘, 더 자유롭게, 더 정직하게 자기들의 시대를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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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comments


Kil Sang Yoon
FB에서 다 읽기가 힘이 드니 원고를 이메일로 첨부해서 보내 주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이미 이것을 복사해서 문서로 보관을 하였어요. 그러나 저자의 원고를 받는 것도 좋겠어요.
 · Reply · 2 d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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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Hun Jung Cho
Kil Sang Yoon 제 책 '갈라진 땅에 선 예수'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 Reply · 1 d
Young Lee
감사합니다. 목사님. 논문 마무리하는 저에겐, 가장 큰 응원과 격려입니다.
 · Reply · 4 d

Author
Hun Jung Cho
잘 끝내시기 바랍니다
 · Reply · 4 d
Kyong Yong Song
큰 공부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Reply · 4 d
우증청
솰롬 ~
감사합니다. 노고 많으셨습니다
 · Reply · 5 d
오명동
감사 ~ 정확하게 잘 소개해 주시네요
 · Reply · 1 w
Hyunsil Han
애쓰셨습니다.👏👏👏
어제밤..
여기 저기 펌했어요.
고맙… See more
 · Reply · 1 w
Nam Hong Cho
문목사님의 신학과 삶을 잘 정리해 주셨네요... 끝까지 읽었네요. 새롭기도 하고..
 · Reply · 2 d
Hyoungsun Yoo
감사합니다. 귀한글 업고갑니다.(꾸벅)
 · Reply · 6 d
Youngkook Kim
한번 읽어서는 이해의 근처로 가기에 어려울 것 같아 카피해서 파일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이후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 Reply · 6 d
조정필
목사님
정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Reply · 3 d
오미령
조헌정목사님께서
문익환목사님 28주기를 맞아 올려주신 보물같은 글을 공유 드려봅니다.
그리고 소소한 제 느낌도 올려봅니다.… See more
 · Reply · 5 d
조창환
감사합니다 공유할랍니다
 · Reply · 6 d
오미령
새삼스런하루..(주옥같은제목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 입니다(뭘까나? 이 커지는 마음은..)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가능성과 참자유인이 될 용기를 주는 힘이 서린..)… See more

 · Reply · 5 d
신대영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 Reply · 5 d
Young Ok Park
귀한 글 시간내어 찬찬히 읽으려 제 전화기의 ‘메모’로 퍼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