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2

Jae Hyoung Lee - 너 어디 있느냐 2017

(1) Jae Hyoung Lee - 너 어디 있느냐 2017. 10. 15. 이재형 (제주 조이빌) 저는 한 달 전에... | Facebook

Jae H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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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있느냐
2017. 10. 15. 이재형 (제주 조이빌)

저는 한 달 전에 오른쪽 다리를 다쳤습니다. 다리를 다치면 어떻게 되지요? 다리의 기능이 상실됩니다. 발의 기능은 걷는 것인데 걸을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쪽 발이 다쳐서 걷지 못하지만 곧 걷는 방법을 다시 찾게 됩니다. 어떻게? 다른 한쪽 발, 두 손, 겨드랑이, 목발의 도움을 받아서 발의 기능을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렇게 발의 기능을 일부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불편하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두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두 달을 기다리는 동안에 이것을 이렇게 고정시키고 아무런 약도 안 먹습니다. 고정만 시켜두면 우리 몸이 스스로 두 달 동안에 그것을 회복합니다. 그런데 뼈가 붙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발이 제대로 기능을 안했기 때문에 근육이 많이 약화됩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다시 약해진 근육이나 다른 기능들이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얼마간 훈련하다보면 이전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경이로운 것은, 우리의 몸은 이미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바깥에서 치료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우리 몸 자체가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지요. 우리 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몸은 그런데 우리의 마음(mind)은 어떻지요?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몸은 음식과 맑은 물, 맑은 공기가 있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 제대로 성장하고 유지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떤가요? 몸 상태는 우리가 생각을 않더라도 금방 느끼지요? 이렇게 부러지면 금방 느낍니다. 그래서 몸은 쉽게 조치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몸도 쉽게 인지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도 몸과 같이 적절한 음식, 맑은 물, 맑은 공기, 적절한 운동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지식과 진리를 계속 섭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같은 영성적인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내적 성찰이라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 때 우리는 건강한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어떤 것 같습니까? 아주 비정상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대학(大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제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아도 같이 보지 못하고, 같은 것을 들어도 같이 듣지 못합니다. 같은 것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만 보고 듣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고 듣지 못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 따라 시각이 달라집니다. 같은 것도 내가 앉아 있으면 올려다보게 되고, 내가 서있으면 내려다보게 되는 것이지요. 피해자의 자리에 있을 때와, 베푸는 자의 자리에 있을 때, 같은 것을 다르게 봅니다. 사람들이 싸울 때, 싸우는 당사자들과 그것을 중재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상태를 보더라도, 그것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시각이 다릅니다. 어머니의 시각, 언니의 시각, 가족이 아닌 사람의 시각이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이 상대적인 시각입니다. 제자리(Right place)에서의 시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학에 나와 있는 말처럼, (마음이) 제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유진님께서 21세기 젊은이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을 5가지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 5가지 모두가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중 첫째가 ‘하늘에 응답한다.’ 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이 제대로 될 때에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우리는 하늘에 응답함으로써 하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하나가 되어서 하늘의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제자리는 바로 하늘과 땅을 잇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이 현상계에서는 꼭짓점의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꼭짓점의 자리. 그럼으로써 하늘과 연결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가 딱 있을 때, 하늘에 있는 것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몸이 있는 이 현상계로 흘러들어 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Monkey Mind ( 원숭이 마음 )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저기를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는 마음입니다. 보통 사람의 뇌가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때를 제외한 깨어있는 16시간동안, 2만5천 번 ~ 5만 번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70%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일체 유심조 -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산하게 떠도는 마음이 무엇을 창조하겠습니까? 

마음을 제자리에 붙들어 맬 필요가 있습니다. 제 자리에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수행의 필요함을 이야기 합니다. 수행의 핵심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면서 묻습니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어디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가?’ 우리가 우리 마음에 끊임없이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성경 욥기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이 땅에서 여기저기를 다니고, 위아래로 걸어 다녔습니다. 입니다. 사실 왔다 갔다 하는 이 생각이 사탄의 특성입니다. 사탄이 어떠한 존재인지 아십니까? 사탄은 타락한 천사(fallen angel)입니다. 사탄이 원래부터 사탄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입니다. 우리의 이 왔다 갔다 하는 이 마음은 바로 사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왔다 갔다 하는 사탄의 마음을 바라보는 존재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지긋이 바라보아 줍니다. 

그 바라보는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이 존재가 있는 자리가, 나의 참 자리인, 하늘과 땅을 잇는 자리입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그 자리 (cross-over point)입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여호와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나의 존재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왔다 갔다 하는 그 마음을 잡아서, 내가 있는 그 자리에 함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 이 왔다 갔다 하는 사탄적인 마음을 붙잡아다가 그 자리에 나와 함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나의 마음은 하늘의 실체로 채워집니다. 하늘의 실체 라고 하는 것은 사랑, 진리,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내가 있는 자리,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바로 그 자리에 있을 때, 사탄에게 물어보는 바로 그 여호와의 자리에 있을 때, 그 때 나의 마음이 하늘의 실체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불교에 삼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법승’이라는 것인데, 
  • 부처님, 
  •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 그리고 
  • 함께 수행하는 도반인 승려,
 이 세가지를 근본 귀의처인 삼보라고 합니다. 

승(monk)은 승려, 수행자를 말합니다. 승려는 부처님의 말씀인 법을 좇아 수행을 하여 궁극에는 부처가 되는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이 마음을 수행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수행 승려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수행의 핵심은 아까 이야기한 대로 나의 도구인 이 마음을 훈련시켜서, 나와 같이 이 참 자리를 지키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있습니다. 즉 나의 존재는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수행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아서 나와 함께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 같이 머무는 존재, 마음을 부여잡고 그 참 자리에 머무는 존재가 부처입니다. 그 때 나의 마음을 통해서 하늘의 소리가 흘러 나갈 수 있고, 그것이 법이 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자리에 있을 때 하늘에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표현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있는 현상계로 흘러나옵니다. 그러면 이미 현상계로 흘러나온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늘에 아! 그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 표현된 것만큼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렇게 표현 된 것이 하늘의 말씀, 즉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시각의 표현이지요. 참된 시각은 사랑의 시각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시각은 신의 시각입니다. 사랑의 시각은 반사되어 오는 것을 보는 시각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반사되어 오는 시각은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상대적인 시각입니다. 사랑의 시각은 ‘~~이기 때문에’의 시각이 아닙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보고, 저쪽에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위에서 보니까 이렇게 보고, 아래서 보니까 이렇게 보고, 하는 시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기 때문에의 시각이 아닙니다. 사랑의 시각은 ‘~~임에도 불구하고‘ 의 시각입니다. 어떤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디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 시각입니다. 그것이 참된 시각입니다. 제대로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보는 시각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이 다시 그 자리를 찾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가?’ ‘나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느낌을 느끼고 있는가? 그 요인이 무엇인가? ’저 바깥에서 지금 보이는 그것 때문에, 들리는 저 소리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인가? 그리고 또 질문을 깊게 해보아야 합니다. ‘왜 나는 그것을 그렇게 보고, 그렇게 듣는가? 

내가 보고 내가 듣는 것을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고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나만 그렇게 보고 나만 그렇게 듣습니다. 우리 각자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습니다. 
그래서 나는 왜 그렇게 보고 왜 그렇게 듣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어떤 경험, 특히 혹시 상처받은 경험 때문이 아닌가?  또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얄팍한 지식, 앎 때문에 그렇게 보고 그렇게 듣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뼈가 부러지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서 이것을 고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내가 알기 때문에, 아! 부러졌구나 하는 것을 내가 인지했기 때문에. 그런데 물론 우리 몸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지요- 만성병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혹시 만성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마음은 만성병에 걸려있는 마음과 같습니다. 병에 걸려있는 것을 아는 것이 병이 나을 수 있는 시작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이미 병을 치유하는 길에 접어들었지요?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제자리에 있지 않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 치유의 핵심은 내가 어느 마음자리에 있는지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너 어디에 있느냐’ 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떠나서 떠도는 그 마음을 붙잡아서, 나와 같이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한 자리에서 그 마음의 역할- 마음의 참 역할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시각을 드러내는 통로로서의 역할입니다. 원래 마음의 역할인 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며칠 쉬면서 인터넷을 보는데 우리 한민족은 단군왕검의 자손으로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잠재의식에 깔려있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단군왕검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단군왕검은 상제환인이라는 하늘을 다스리는 존재의 손자입니다. 그래서 자고로 우리는 하늘의 존재의 자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늘에서 온 존재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참 제자리를 우리의 마음이 찾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바로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말씀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모든 것이 하늘의 것이 되도록, 하늘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