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2

[인간관계] 공자가 절대 하지 않은 4가지

[인간관계] 공자가 절대 하지 않은 4가지

[인간관계] 공자가 절대 하지 않은 4가지


“자절사(子絶四):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 공자

공자께선 네 가지 일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 네 가지가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이다. 즉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았으며,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았고, 따라서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 모두를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겸손’이다.

1. 함부로 억측하지 마라
상식과 편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모든 일을 조사하며 진행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본인 직감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어떤 것을 예단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과 다름이 없는지 살피고 지나치게 편견에 의존한 판단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애매한 건 귀찮더라도 여러 번 조사하고 신중히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 자신만 옳다고 믿지 마라
옳고 그름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세상에 100% 한쪽만 진리인 건 없다. 설령 맞더라도 조건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걸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믿고 내세우면 주위에 적이 많아진다. 특별히 대단한 사안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과 의견 충돌은 ‘다름’으로 풀어나가야지 ‘옳고 그름’으로 풀어선 안 된다. 유연한 태도로 대처하는 게 좋다.

3. 끝까지 고집부리지 마라
자기 주관을 관철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특히 리더의 위치라면 더 그렇다. 그런 순간에 책임감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까지 굴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 자기 뜻대로 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웬만한 건 적당히 넘어가고 중요한 것만 취할 줄 아는 요령이 중요하다.

4. 자신을 내세우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우리 사회는 전면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그 사람이 잘나서 나선 거면 잘난 척한다고 욕하고 그냥 나서면 나댄다고 비하한다. 적극적인 사람을 자신감보단 자만감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으니 나설 땐 늘 조심해야 한다. 가식적이란 평가를 들어도 좋으니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자절사’의 절사는 ‘네 가지를 끊다’라는 의미다. 위 네 가지는 절대 하지 말란 얘기다. 공자께서 오랜 경험과 통찰을 통해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했을 만큼 중요한 부분인데 그래도 굳이 하겠다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얼마나 해악이 많으면 절사로 뽑았겠나. 겸손한 태도는 시대를 불문하고 중요한 처세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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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무필무고무아(毋意毋必毋固毋我)
강정민
승인 2020.01.02


논어(論語) 자한(子罕)편 4장에 “자절사(子絶四) 무의무필무고무아(毋意毋必毋固毋我)”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으니, 사사로운 의견이 없고, 반드시 이러해야 된다는 것이 없고, 고집하는 것이 없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성인군자(聖人君子)로 불리는 공자가 도달한 경지가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공자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서 무아(無我)의 경지로 나아간 석가모니, 자기(自己)를 부인(否認)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예수와 함께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무의무필무고무아는 무아(毋我)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설명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의(毋意)는 자기 생각으로 사물을 판단하거나 추측하지 않는 것, 무필(毋必)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틀림없다고 우기지 않는 것, 무고(毋固)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 무아(毋我)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공자는 소인(小人)에서 군자(君子)로 나아간 사람입니다. 소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의견이 강하고,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매우 고집스럽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천명(天命)을 깨달은 군자는 이러한 네 가지 삶의 태도를 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인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군자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의무필무고무아를 다른 말로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 안연이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가 인을 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논어 안연편 제1장, 안연 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顏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극기복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것 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예(禮)는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석가모니의 표현을 빌리면 천상천하유아독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극기(克己)이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복례(復禮)입니다. 예수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극기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복례입니다.

논어 이인(里仁)편 제10장에 나오는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는 문장도 무의무필무고무아와 같은 표현입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으니 오직 의를 따를 뿐”이라는 말입니다. 소인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우기고 또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깁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무의무필무고무아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의 기준은 천명(天命)입니다.

무의무필무고무아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을 기준으로 분별한다는 의미입니다.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스승들은 한결같이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나섰고 진리를 찾은 분들입니다. 공자는 하늘의 명령, 즉 천명을 찾았고 천명 앞에서 개인의 사사로운 의견을 버렸습니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태도를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국법을 따라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절대적 진리 앞에 자신을 해체시키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인들의 경지입니다.

문제는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천지만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찾아 들어갔고, 석가모니는 인간 본성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인간의 이성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찾았습니다. 공자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 들어가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진리는 절대 불변의 것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가치상대주의의 시대, 많은 사람들이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각자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의무필무고무아의 가르침을 읊조리며 불변의 절대 진리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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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論語: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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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나』의 주관이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주간적인 판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재고 가늠하는 판단의 잣대는 누구에게서나 믿을 만한 것인가?

주관에는 의문이 늘 따라다닌다.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자세한 관찰, 다양한 정보의 리믹스, 최선의 분석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판단의 주관으로부터 이르는 마지막 결단은 보다 객관적이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노력을 거치지 않고 주관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에 연연해 있다면 반드시 그릇된 판단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은 자기의 생각을 강력하게 펼침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자기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남들로부터 반감을 산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는 한 가지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판단의 정확성은 실천 과정에서 증거로 확인되는 것이다. 실제 주변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자신의 판단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유기적인 대처는 실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한 가지 생각은 시대의 조류에서 도태되게끔 한다.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는 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하고, 자아의식이 강하여 자신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권익을 침해하게 된다. 혼자만의 탐욕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결국은 인간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며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린다. 조화는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시켜 준다.

힘든 생활은 사람에게 좌절을 가져다 주며 극단적인 인격을 형성케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고는 도리어 역경 속에서 즐거움을 취하고 아울러 적극적인 생활관으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이러한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생활 태도는 바로 오늘날 우리 독립군이 배워야 할 삶의 지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