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알라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알라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개정판 
김영민 (지은이)어크로스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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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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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추석이란 무엇인가,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일상 속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서울대 김영민 교수. 일상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자극을 주고받고 사회에서 부조리를 목도하고 영화를 통해 질문을 움틔우고 대화에서 스스로를 발견한 김영민 교수의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5주년 개정판이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출간되었다.

개정판은 북 디자이너 석윤이의 정제된 그래픽과 과감한 색 활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기에 더해 개정판 서문 ‘나는 왜 아직 살아 있는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에 대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과의 인터뷰, ‘김영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한 문화일보 나윤석 기자와의 대담이 추가되었다.


목차


개정판에 부쳐 나는 왜 아직 살아있는가 4
프롤로그 아침에 죽음을 생각한 이들의 연대기 8

1부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21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26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 30
교토 기행: 무진 기행 풍으로 35
성장이란 무엇인가 39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44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주례사 48
자식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 58
추석이란 무엇인가_ 명절을 보내는 법1 64
추석을 즐기는 법_ 명절을 보내는 법2 68
무신론자의 추석_ 명절을 보내는 법3 72

2부 희미한 희망 속에서
수능 이후 79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 83
이른바 엘리트가 되겠다는 학생들을 위한 격려사 둘 87
만화책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92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요 97
레이디 버드와 소공녀 102
아이 캔 스피크 107
K교수의 국가론 111
유학생 선언 115
2월의 졸업생들에게 119
적폐란 무엇인가 123
노예가 되지 않는 법 127
서울대학교의 정체성 131
위력이란 무엇인가 135
졸업의 몽타주 140
마지막 수업의 상상 144

3부 고독과 이웃하며
6월의 냄새 151
응답하라 1988 155
희망을 묻다 159
광장으로 163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자세 167
공화국 찬가 172
대선 후보와 토론하는 법 176
어떤 자유와 존엄을 선택할 것인가 180
참사는 오래 지속된다 185
보이지 않는 나라 189
사라지는 사람들 193
하데스와 시시포스 197
개돼지 사태와 관련하여 교육부가 할 일 201
소반과 숟가락 206
여름에 생각하는 중세의 겨울 210
광복의 의미 214
소변의 추억 218
단군에서 근대화까지 222
뱃살이 꾸는 꿈 226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230
그들은 올 것이다 234
호두주먹이라 불린 사나이 238
칼럼을 위한 칼럼 242

4부 이 세상 것이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하여
내 인생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249
설원에 핀 장미 아닌 꽃: 홍상수의 초기 영화 271
박식하고, 로맨틱하고, 예술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282
반영웅으로서 영웅, 관념론자로서 유물론자, 죽은 자로서 살아 있는 자: 고스트독 302

5부 찰나의 행복보다는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 <도무스 코리아domus korea> 송길영과의 인터뷰 314
행복보다 소소하게 불행한 삶을 꿈꾸는 이유 _ <신동아> 송화선 기자와의 인터뷰 351
김영민이란 무엇인가 _ <문화일보> 나윤석 기자와의 대화 372

에필로그 책이 나오기까지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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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노을을 보며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술잔을 앞에 놓고 죽음에 압도되는 것은 좋 지 않다. 천장을 바라보며 죽음의 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단련된 마음의 근육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 다. 프란츠 카프카는 “사람들이 무언가 사진 찍는 것은 그것을 정 신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 함으로써 죽음을 삶으로부터 몰아낼 수 있다. 삶을 병들게 하는 뻔 뻔한 언어들과 번쩍이는 가짜 욕망들을 잠시 몰아낼 수 있다. <나는 왜 아직 살아 있는가> 접기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접기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라고.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라고.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 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접기
애써 시험공부를 해서 기왕에 대학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지식을 통해 머리에 전구가 들어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루에 갇혀 있다가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그러한 사치스러운 지적 경험을 찾아 캠퍼스를 헤매야 한다. 그리고 입시를 위해 보내야 했던 그 지루했던 시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그 환한 앎에서 얻어야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있음을 영원히 모른 채로 죽지 않기 위해서. <수능 이후> 접기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2월의 졸업생들에게> 접기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떤 자유와 존엄을 선택할 것인가> 접기
P. 33 살아가다 보면, 자기 안의 관광객이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깨달음을 얻는 곳, 금각사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기 안의 고지식한 안내자가 천천히 답을 생각하고 길을 가르쳐주려고하면, 그 관광객은 이미 서둘러 떠나고 없다. 그래서 삶에 대한 진짜이야기는 대개 허공에 흩어지게 된다. 허공에다 이야기하다가 죽는 게 인생이지. 그러나 이것도 사치스러운 생각일 거야, 병원에 누워 있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지. 이처럼 건전한 생활철학에생각이 미치자,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이 보였다. ˝당신은 교토를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17.11.19) 접기 - 귤



저자 및 역자소개
김영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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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브린모어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서로 중국 정치사상사 연구를 폭넓게 정리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7)와 《중국정치사상사》(2021)를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2018),《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2019),《공부란 무엇인가》(2020),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2021),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2022)...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한국이란 무엇인가>,<[큰글자책] 가벼운 고백>,<한국이란 무엇인가>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대하게 삶을 관조하다”
10만 독자가 사랑한 김영민 교수의 대표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출간 5주년 개정판 출간!

추석이란 무엇인가, 성장이란 무엇인가, 위력이란 무엇인가.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일상 속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서울대 김영민 교수. 일상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자극을 주고받고 사회에서 부조리를 목도하고 영화를 통해 질문을 움틔우고 대화에서 스스로를 발견한 김영민 교수의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5주년 개정판이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출간되었다. 개정판은 북 디자이너 석윤이의 정제된 그래픽과 과감한 색 활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기에 더해 개정판 서문 ‘나는 왜 아직 살아 있는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에 대한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과의 인터뷰, ‘김영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한 문화일보 나윤석 기자와의 대담이 추가되었다.

“나는 왜 아직 살아 있는가. 뜨거운 열기 속으로 지구는 자전 중이고, 오늘도 빙하는 녹아 사라지고, 사회의 폐허는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고, 인류의 분노는 조용히 폭주 중인데,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이 희박해진 이곳에서, 삶을 구원하겠다는 선전이 판치는 이곳에서, 타인의 삶을 넘겨짚어 증오하기 바쁜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가족만 애처롭게 생각하는 이곳에서. 갈수록 아이 낳기 꺼리는 이곳에서 나는 왜 아직 살아 있는가. 아침에 죽음을 생각했기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이 책에 대한 찬사

이 책을 읽고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 유시민
원래 위트는 좀 차가워야 제대로 맛이 난다. - 이동진
내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글. - 오상진
덤으로 얻은 오늘을 열심히 살다가 죽음은 내일 아침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 소유진
연말에 읽기 좋은 책, 근심을 버리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씨네21 김혜리 기자
마치 소진된 나에게 우주가 보내는 독려 편지 같다. - 알라딘 독자평

그의 글은 위트를 타고 삶의 미시(微視)와 거시(巨視) 사이를 활강한다. - 조선일보
그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비트는 데 독보적 감각을 자랑한다. - 매일경제
허무를 넘어 본질에 다가서는 글쓰기, - 중앙일보
인생의 길을 몇 걸음 더 걸어간 선배의 따스한 조언. - 시사인

‘추석이란 무엇인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인생 허무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본질적이되 지루하지 않은 질문과 명쾌하되 가볍지 않은 대답으로 우리 시대를 독창적으로 읽는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반문과 비틀기, 날렵한 유머와 자유로운 사유로 일상의 진부함을 타파하며 본질을 향해 다가가는 김영민 글쓰기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김영민 교수가 일상과 사회, 학교와 학생, 영화와 독서 사이에서 근심하고 애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을 매개로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 떠들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불문율을 깨뜨리는, 비판적 인식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 삶의 반대편에 있는 죽음을 통찰하여,
현재 우리의 삶의 의미를 드러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부터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주례사’, ‘추석이란 무엇인가’까지. 김영민 교수의 이야기는 신선한, 동시에 묵직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는, 당신이 믿고 있거나 당연하게 여기던 사실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인지 질문하는 데서 본질로 다가가는 틈새가 열린다고 믿는다. 책 전면에서 거듭된 반문을 통해 김영민 교수는 삶과 세상, 학문의 핵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인식의 쇄신에 이르게 되고 현재 자기 자신이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유머: 기존 에세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통쾌함과 참신함을 느끼게 하는 글쓰기

에세이스트 김영민이 독보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주제도, 메시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존 신문 칼럼이나 한국 에세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리듬감과 유머, 해학이 깃든 단단하며 유연한 글에 있다. 엄격한 영역으로 여겨져 온 신문 칼럼에서 장난기나 유머, 혹은 공격성이나 신랄함을 일정 수준 이상 담는 건 금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김영민 교수의 글은 그 장벽 너머에 있다. 그는 유머를 활용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되, 그게 ‘장난’을 넘어 품격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끔 절묘한 리듬감을 글에 불어넣는다. 그의 유머는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끔 바라볼 기회를 만들고, 엄격, 근엄, 진지함이라는 굴레 바깥에서 취향을 과감히 드러내며, 어찌 보면 어린이의 질문같이, 모두가 목에 힘주고 있을 때 핵심을 찌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필력, 감각, 지식, 경험 등이 한데 어우러져 벌이는 줄타기에 수많은 독자들은 통쾌함과 참신함을 표현했다.

“저는 재미없는 글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굉장히 폭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지루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봅니다. 맛없는 디저트를 먹기에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시선: 근거 없는 희망을 판매하는 스승이 아니라
제자와 함께 배우는 도반으로서의 선생의 면모

일상과 사회,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까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또한 돋보이는 것은 선생으로서 김영민 교수의 위치와 그가 내보이는 시선이다. 그는 가르치는 자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글들 속에서 우리 사회 학생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지금, 이 시대 청춘에게 그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이야기하면 그만인 시대는 지나갔다. 청춘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언제든 이겨낼 수 있다고 가짜 희망을 이야기한들 어떤 소용도 있을 리 없다. 세상 어떤 존재보다 학생들을 아끼는, 사려 깊은, 하지만 조심스레 염려하는 선생 김영민은 다양한 형식을 통해 (졸업식 축사, 주례사, 대화) 이야기한다. 졸업식 축사를 통해 기성세대의 세계에 입성하는 이들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맞아주며 담담한 소회는 그래서 뭉클한 인상을 남긴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태도: 우리 모두가 불확실성을 삶으로 받아들이며
찰나의 행복보다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총 56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일상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 그가 만나고 경험한 이야기들은 차라투스트라와 전도연 배우의 대화로 끝을 맺는다. 김영민 교수가 극화한 이 에필로그에서 그는 읽고 싶은 것을 읽는 게 독자의 특권이라지만, 되도록 이 책에서 너무 그럴싸한 메시지를 읽어내지 않기를 염려한다.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많은 것들에 확신이 없지만 그런 주장들에는 더욱 확신이 없다는 김영민 교수. 그는 이 책이 다만 우리 모두가 불확실성을 삶으로 받아들이며, 큰 고통 없이 살아가는 데 좀 더 즐겁고 풍요로운 만남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는 그의 바람처럼.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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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란 무엇인가 를 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샀는데,
시니컬한 말장난이 가득했던 것 같다
좀 웃기는 아저씨의 만담을 듣는 느낌인데 읽다보니 좀 지친다
윤날이 2019-01-03 공감 (9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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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지 않는 문장은 문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이런 말을 350쪽에 걸쳐 몸소 증명하고 있는 책.
zandi 2018-12-05 공감 (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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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생활하면서 느낀 점 등을 모아놓은 수필집.
머리말에서 잔뜩 기대감을 불어넣다가 본문에선 여지없이 바람이 빠진다. 교수들이 쓴 책은 생각보다 퀄리티가 높지 않다.
바다7 2019-02-19 공감 (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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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고있는 중인데 글귀 중간 중간 센스있는 어휘에 풉 하고 터지고, 했는데 뒤에는 시대적 향수를 이야기하는 흐름으로 별로 감흥이 없습니다.
조윤주 2019-01-02 공감 (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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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긋다가 말았다.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판이라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훌륭한 답이 되어주는 책이다.
stayhere 2018-12-13 공감 (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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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번주 온라인 독서모임 선정도서라서 읽었다!
사전 정보가 없이 제목만 보고 구매한 터라 죽음에 관련된 철학사상이나 에세이형태의 글 인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다룬 칼럼을 모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유쾌하게 읽을수 있어 좋았다!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컬럼버전 같기도 하고, 컬럼계의 코트 보니컷이 쓴 블랙코미디 같은 씁쓸하며 후련한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컬럼은 모아보기 보다는 컬럼의 연재 당시에서 나오는 시의성과 결합되는것이 파괴력은 더 있는것 같다!

아니면, 오늘 신문속 마지막 부분에 실려 건빵속 별사탕을 먹는 느낌을 줄 때가 맛난 컬럼으로 다가오는것 같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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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08 공감(45)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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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과 비틀어 쓰기 속에 숨은 진심을 읽기까지



이 책은 우리주변에서 접하고 한번쯤 생각해본 명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비틀어 꼬집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고착되었던 사고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생각의 전환을 갖는 방법으로 사유를 확장시킨다.



나는 그동안 일반론을 당연시하며 세상을 살아온 구태의연한 사람이어서인지,

처음진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차차 적응되어 그의 문체에 익숙해지자,

반어법과 비틀어 쓰는 그의 깊숙한 진심이 읽힌다.



일상에서, 학교에서,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 라는 소단락의 주제에 맞게 묶인 내용들이 하나 같이 재밌게 읽혔다.

어느 하나 구태의연하지 않았고, 예상된 결말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체도 통통 튀는 것이 경쾌했다.

다만 그의 모든 글들이 반어법을 사용하고 비틀어 애기하는 기법으로 쓰여 있어,

나도 그렇게 삐딱하게 읽은 것일테지만,

세상을 그렇게 읽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정도이지,

나도 강하게 동의한다고 하긴 힘들었다.



'영화에서' 코너가 좀 잘 읽혔는데,

홍상수의 그것은 좀 불쾌했지만, *표 주에 2003년 9월 '현대문학'에 실린 글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맨헌터', '양들의 침묵', '한니발'로 이어지는 한니발 렉터에 대한 글은 흥미로웠다.

난 이 시리즈를 책으론 읽었는데 영화로는 보지 못해서 이 영화평에 호의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프롤로그의 이 구절이 인상 깊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꺘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8쪽)

마찬가지로 에필로그의 이 구절 또한 여운이 길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야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와 닮은 전도연 씨. 이건 불장난이 아니라 오독을 피하려는 구마 의식이랍니다. 글에서 읽고 싶은 것을 읽는 것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는 독자만의 특권일 터. 책을 출판하면, 둑자들이 너무 그럴싸한 메시지를 책에서 읽어낼까 두렵습니다. 전 인생의 확고한 의미에 대해서 설파하는 책이나, 한국을 부흥시킬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나,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해 확실한 예측을 하는 책 따위는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많은 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없죠. 저는 차라리 불확실성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큰 고통 없이 살아가기를 원해요.(340쪽)



책의 마지막에 '신동아(2018년 11월호)' 송화선 기자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본다.

각자 다르게 사유를 확장시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책을 읽는 이유만은 나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그게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만화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극장을 찾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질까. 한국 사회의 고통스러운 단면을 조명한 영화를 본 뒤라 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적어도 각자의 삶은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아니, 즐겁기보다는 풍요로워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적어도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김교수의 답이다.(338쪽)



거침이 없지만,

나와는 생각이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던,

그래서 고여있던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게 해준 자극적인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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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9-01-21 공감(4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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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 생각 그만하고 죽음도 생각해 보려고



요 며칠 머리가 묵직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엊그제는 잠들었다가 밤중에 설핏 깼는데, 문득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평소 이런 생각 잘 안하고 사는 MBTI 'S'인 자..) 아래 사진의 부둣가로 가서 새우깡 얻어먹으려는 갈매기가 바로 나다. ㅋㅋㅋ












아 힘들어.. 힘들다.. 하며 뒤척이던 내게, 문득 요즘 듣고 있는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시시포스 이야기('하데스와 시시포스')가 떠올랐다.

시시포스는 잘 알다시피 하데스에 의해 형벌을 받아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고역을 치르게 된다. 김영민 교수는 시시포스의 이 형벌은 단순한 노고도, 단순한 덧없음도, 단순한 끝없음도 아니고, 이 세가지가 합쳐져 만들어지는 가공할 괴로움이라고 한다. 이 3요소 중 하나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괴로움은 훨씬 덜어질 것이므로, 어떤 이들은 노고를 제거하고자 하고(다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 어떤 이들은 덧없음을 제거하기 위해 보람을 찾고, 어떤 이들은 이 힘들고 덧없는 삶이 적어도 당대에서 끝나리라는 위안을 찾는다고.

김영민 교수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 괴로움에서 탈출하기 위해 번식하지 않는 걸 택하게 된 사람들에게, 정부가 할 일은 '가임기 여성지도' 따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무의미한 노역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일침이지만- 한밤중 뒤척이던 내게 이 이야기는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느꼈던 감정이 '덧없음'을 제거한 결과였구나. 아이를 낳은 후 나는 절대 아이가 다 자라 독립하기 전에는 죽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이게 다짐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운전 중 너무 졸릴 때면 다리를 꼬집고 뺨을 때리며 내가 죽으면 엄마를 찾으며 울 아이들을 생각하곤 한다. 내 시간이 훌쩍 줄어들고 고난은 늘어났지만, 허무는 자리할 곳을 잃게 되었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올리브는 80살이 넘어도 여전히 봄에 새로 피어나는 생명들과 햇빛에 감동하며 또 한해를 살아낸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달라지는 생명을 곁에 두고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허무주의를 날려버릴 에너지를 충전하는 거나 다름없다. 다만 에너지 충전이고 뭐고 고난이 너무 크면 소용없을지니, 한 아이를 키워내는 데 엄마 한 사람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환경이 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산업부 장관 후보인 모 인사는 2010년도에 '출산 기피 부담금'을 도입하자는 칼럼을 썼다는데.. 개인 책임주의를 논하기 전에 사회의 책임을 논해주길 바란다.




엊그제는 세월호 8주기였다. 김영민 교수의 책에 나오는 이 세월호 이야기를 듣다가 울컥,,





2년 전 봄, 남쪽 바다에 어떤 참사가 닥쳤을 때, 그 참사는 미증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배는 여전히 바다 위에 떠있었고, 참사가 본색을 드러내기까지 배에 탄 사람들은 걷거나 멀미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화장실에 갔다. 그들은 이동중인 일상을 살고 있었고 그 일상이 물에 잠겼으며 그 과정은 전국으로 생중계 되었다. 퇴근 중인 직장인이 교통법규를 무시한 트럭에 받치는 모습이 스팸을 구워먹던 가족들에게 느리게 생중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비극은 우리의 안방으로 무심히 걸어 들어왔다. - '참사는 오래 지속된다' 중




'참사는 오래 지속된다'와 '하데스와 시시포스'를 듣고 나니 아무래도 이 책은 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묵직하고 현실과 직접 닿아있는 책이다. 저자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니 당연한 건가. 아직 끝까지 듣지 못했지만 일단 별다섯 주고 나머지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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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4-18 공감(38) 댓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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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한다면 모순일까



하루중 죽음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침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제 밤 눈 감고 잠이 든 이후로 다시 살아있음을 깨닫는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 책의 저자가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근거는 죽음을 적어도 두가지 종류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고 했다. 육체적 죽음은 아직 맞지 않았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은 상태, 즉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를 '사라지는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는 죽음을 개인 차원에서만 본 것이 아니라 사회, 국가, 공동체, 제도, 사상 등에도 적용하였다. 개인의 육체는 살아있을지라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적 죽음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독특하고 예리한 관점은 계속된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23쪽)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잠깐 기분 좋음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새해 목표로, 인생 목표로 계획하고 바라게 되면 그 덧없음을 깨닫고 났을때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할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독특하나 공감 못할 바도 아니다. 아니, 내가 말로 표현 못하던 것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목적을 이렇게 달성시켜주고 있다.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일에 대해 썼는데, 처음으로 논문 심사를 받던 날, '해탈에 재차 실패한 부처 지망생들처럼' (이 표현을 보시라) 앉아 있던 심사를 맡은 교수들의 첫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자, 자네 논문을 한번 간략하게 요약해보게."


요약이 끝나자 몇 가지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했고, 난 곧 깨달았다. 이 선생님들께서 내 논문을 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선생이 논문을 채 다 읽지도 않고 심사를 하려 드는 것은 학생이 논문을 채 다 쓰지도 않고 심사를 받으려 드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웃는 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국권 피탈의 순간에도 시간은 유유히 흘렀던 것처럼. 나는 목례를 하고 걸어 나왔고 마침내 논문은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날의 일은 오랫동안 수치의 기억으로 남았다. (130쪽)

'아무튼 논문은 통과했으니' 라고 안심하기 보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수치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공간이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을 더는 삼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이 책을 읽기 전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저자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한 글이 있었나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지난 해 인터넷과 SNS에서 유명해진 칼럼이라고 한다. 이 책에도 실려있어 읽어보니 이 책의 다른 글들에 비해 특별히 더 튀는 편도 아니다.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집어치워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 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 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 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61쪽)

저자의 글쓰는 공력이 벌써부터 평범한 에세이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은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경력으로도 짐작되거니와 실제로 이 책에 실려있는 그의 영화평론 글들을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 깨달음은 깨달은 자를 한층 더 좌절케 하는 종류의 깨달음이다. 그는 햄릿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인식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심오한 통찰에 근거하여 행동의 불가능성을 확인한 이에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재량하여 성취해나가는 기획자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인생의 심오한 인식에 이른 자는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다. 성격의 우유부단함이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는 자는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자는 돌진한다. 이것이 인생 아니던가? (296, 300쪽, 영화 '고스트독' 평론 중에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위의 인용문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마음에 남을 문장 같다.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사는 것의 모순,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면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모순. 죽음을 생각하여 살 힘을 얻는다는 모순. 모순이 진리가 되는, 이 또한 모순이라고 해야할까?

뭐니뭐니 해도 극점은 전도연과 짜라투스트라를 등장시켜 쓴 '책이 나오기까지'라는 후기 아닐까?

사회과학 교수로서 인문과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김민정 시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논어>를 새로 번역하고 있다고 하더니 얼마전 새로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전 중의 고전인데, 나와있는 여러 판본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새로이 번역할 생각을 했다니, 누가 시켜서 할 일은 아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양분된 의견 중 한쪽을 택하고,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여 살던 중 이런 논객들의 튀는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즐거운데서 그쳐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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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10 공감(3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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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침에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가



아침은 하루를 여는, 즉'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김영민 교수는 이런 아침에'끝'을 의미하는 '죽음'을 생각하면 좋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발상의 전환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왜 김영민 교수는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인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을까? 책에 있는 구절을 통해 알아보자.




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비누를 가득 칠한 채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도 이미 죽었다"라고. 무슨 말이지? 나는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세수를 하고, 정부는 어김없이 세금을 걷어가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변함없이 그다지 질이 높지 않은 쇼가 상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 17~18p




고도성장을 통한 중산층 진입, 절대악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과거 수십 년간 이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했던 두 약속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낯설어하게 되었다. 이것이었던가, 우리가 열망했던 것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구호가 낯설게 느껴지게 된 이 공동체의 선택은 이제 무엇인가?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을 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 19~20p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은 매순간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이는 아침에도 예외 없이 일어난다. 아침은 하루를 여는 시간이지만, 이런 아침에도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 죽어간다.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 머리를 감을 때, 아침 뉴스를 볼 때, 출근길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어간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면 좋을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 봤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제시한 내용을 삶과 죽음에 관해 끊임없이 고뇌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저자의 글을 곱씹어보면 좋을 듯하다.

끝으로 우리 모두는 죽기에 아침에만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밝혔듯 우리는 아침에도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의 모든 순간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침을 포함해 틈이 날 때마다 우리 존재와 공동체의 죽음을 생각하고 추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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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o99 2019-06-23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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