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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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진작에 만났더라면...
예전에 강의 중에, 때로는 설교 중에 #칼뱅(John Calvin, 1509-1564)에 대해 종종 인용하곤 했다.
개인의 신앙과 성서를 개인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선구적인 종교개혁가로...
그런데 그것은 칼뱅의 <기독교강요>에 담긴 일면이었다.
프랑스 출신 칼뱅은 교회 설교자로 스위스 제네바 시당국에 의해 고용된 뒤 차가운 불도저와 같은 자세로 제네바를 기독교(개신교)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남들의 신앙의 자유를 옥죄고,
새로운 기독교국을 만들기 위해 초지일관 강력하게 쥐어짜고 처형까지 했다.
한 마디로 '광신적 주지주의자'(69)였다.
교회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양심을 앞세우는 사람은 추방했다.
삼위일체를 부정했던 신학자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했다.
그 처형은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인에 지나지 않는다'며 세르베투스를 변호하던 온건한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취직을 방해하고, 모든 글의 출간을 금지했다. 카스텔리오가 오늘까지 잘 알려지지 않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다.
#카스텔리오(1515-1563)는 '정열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망설이는 사람, 내면에서 진심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천천히 결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189)
그는 지상의 진리와 신적인 진리는 모두 다양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남긴 <의심의 기술>이라는 책도 이런 관점을 반영한 글로 보인다. 그는 제네바가 신앙의 자유를 얻는 듯 하더니 다시 신앙이 더 강력하게 구금되는 암울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5)
저자 #츠바이크는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관계를 독단과 관용, 간섭과 자유, 인문주의와 광신주의, 개인주의와 기계화, 양심과 폭력의 도식으로 말한다(16). 지나치게 이 둘을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칼뱅이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카스텔리오가 어떤 사람인지 수려한 글솜씨로 잘 보여준다.
확실히 책만 봐서는 사람을 전부 알 수는 없겠다...
나는 성정상 칼뱅보다는 카스텔리오에 가까운 듯...
이 책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일부라도 칼뱅에 대한 과장된 강의는 하지 않았을텐데...쩝....
그리고 궁금한 것 한 가지 더...
츠바이크는 이렇게 적는다:
"이웃나라에서 온 관세징수인의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형제와 친척들을 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불러들이더니, 이제는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시민들에게 수치를 안겨주고 책망을 한다. 자신들이 고용한 이 망명자(칼뱅)가 이제 와서 누구는 제네바에서 살아도 되고 누구는 안되는지 결정하고 있다니!..."(51)
유대인인 츠바이크(1881-1942)는 자신이 죽고 나서 건국된 이스라엘(1948~)이 진작부터 그 땅에 뿌리박고 살던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말살하며 스스로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대한 결정자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의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을 했을까?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다른_의견을_가질_권리
Philo Kalia
신학대에서 칼뱅의 신학보다 카스텔리오를 가르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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