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Living Without Worries
[eBook]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은이),배명자 (옮긴이)다산초당202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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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파일 형식 : ePub(22.28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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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148쪽, 약 4.6만자, 약 1.2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9113066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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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편집장의 선택
"츠바이크의 마지막 에세이들"
이 책은 알라딘 펀딩으로 세상에 먼저 소개되었고, 나는 직업 덕분에 운 좋게 펀딩 전 미리 원고를 읽었다. 첫 에세이에서 츠바이크는 안톤이라는 남자를 소개한다. "자신만을 위한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한,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며"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은" 남자. 자신의 삶을 살며 존재하는 모습만으로도 타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의 자장 안에서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 삶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츠바이크는 안톤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고, 그걸 썼다. 안톤을 몰랐던 나는 이제 츠바이크 덕분에 그의 존재를 안다. 그를 안 이후로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안톤이 나 또한 그의 자장 안에 품고 있다.
첫 에세이의 여운은 끝까지 이어진다. 츠바이크는 이 에세이들에서 주로 그를 놀라게 한 사건이나 사람들에서 찾아낸 통찰을 들려준다. 그것들은 대단히 새롭진 않다. 그보다 어쩌면 단순한 진실에 가깝다. 삶과 세상을 받치고 있는 명징한 진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잊었거나 간과하고 있는 진실. 그의 온화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과 잘 정돈된 문장으로 읽는 이 진실에 관한 이야기들은 잠든 정신을 깨운다. 텅 빈 목적을 향해 눈 가리고 뛰느라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는 시대에 이 책은 진정 인간적인 미덕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날을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깊은 마음으로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는 뜻이다.
- 인문 MD 김경영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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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활동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로 이름을 떨친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공개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어제의 세계』의 저자이자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영감을 준 작가로 익숙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6000만 부 이상의 책을 팔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브루노 발터 등 세계 석학들에게 큰 영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마지막 에세이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독일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떠난 시절에 남긴 기록이며 지금껏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상 가장 어둡고 야만적이었던 시절에 남긴 글임에도 이 에세이는 인간에 대한 희망이 가득하고 우리에게 살아갈 용기를 건네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목차
걱정 없이 사는 기술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나에게 돈이란
센강의 낚시꾼
영원한 교훈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를 위한 추도사
거대한 침묵
이 어두운 시절에
하르트로트와 히틀러
후기
출처
책속에서
P. 22 나는 종종 안톤을 생각한다. 그토록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을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접기

P. 33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P. 44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P. 57 그러므로 전쟁 첫해 말에 우리가 더는 전쟁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P. 74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30분,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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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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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1901년 첫 시집 『은빛 현』을 출간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하여 군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고, 전쟁 종식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세 거장』 『악마와의 투쟁』 『세 작가의 인생』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발표했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통찰하는 심도 있는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무엇보다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감정의 혼란」 등, 프로이트의 영향하에 욕망하는 인간의 내면과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완성도 높은 중단편들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금서 탄압과 압박에 시달리다,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1939년 소설 『초조한 마음』을 발표했고, 1941년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와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1942년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로 우울증을 겪다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접기

최근작 : <감정의 혼란>,<아메리고>,<아메리고> … 총 157종 (모두보기)
배명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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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8년간 편집자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 학교를 졸업하고, 2008년부터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아비투스》, 《이토록 위대한 장》, 《호르몬은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자들의 생각법》 등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이건 무슨 새일까?> … 총 17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보다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한다.”(지그문트 프로이트)
“그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작가들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마지막 ‘미공개’ 에세이
활동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로 이름을 떨친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공개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우리에게는 『어제의 세계』의 저자이자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영감을 준 작가로 익숙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6000만 부 이상의 책을 팔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브루노 발터 등 세계 석학들에게 큰 영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마지막 에세이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독일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떠난 시절에 남긴 기록이며 지금껏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상...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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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 마지막 2년의 기록인 아홉 편의 에세이 속에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와 자유. 공감의 용기. 돈보다 귀한 삶의 기쁨. 연속성인 자연의 의지. 영원한 교훈. 체념하지 않는 존재. 끔찍한 침묵. 어두운 시절의 의무. 폭력 等의 주제가, 아직 살아 있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따뜻한 희망을 전해준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appletreeje 2024-11-18 공감 (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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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두운 시절에 츠바이크의 이 문장들이라니...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과 작가로서 의무감, 그럼에도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을 역설하는데 어찌 수긍하지 않으리. 역시 츠바이크다!


은하수 2024-12-20 공감 (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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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8 츠바이크가 독자에게 건네는 인생에 대한 조언들. 돈에 초연하고, 힘든 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으며, 섣불리 단정짓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어두울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새파랑 2025-01-30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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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우왕좌왕 갈피를 잡기 힘들 때 이 책을 정독해 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문장 속에 혜안이 깃들어 있어 절로 숙연해진다.


책읽는나무 2025-04-17 공감 (2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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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첫 번째로 완독한 책이 이 책이라서 다행이다. 아주 막막하던 시절 과거를 회상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고찰한 것 같은 책. 츠바이크의 최후를 생각하면 맘이 아프다.


transient-guest 2025-01-07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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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를 통해 다시 배우는 삶의 진심

이 책을 읽다가 뭔가 이상하고 믿기지 않아 책의 처음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실려 있는 아홉 편의 글이 츠바이크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쓴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작가 소개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알려진 대로 유대인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브라질까지 갔었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희망적이고도 따뜻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 특별한 사람을 세상 끝으로 내몬 집단적이고도 말이 안 되는 폭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하느님은 먹을 것을 주시니, 하물며 인간인 너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이 있다. 미래를 걱정하다가도 이런 구절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실 효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츠바이크의 말마따나 세계의 어느 지역에 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빵 한 조각, 맥주 한 잔, 잠잘 방 한 칸, 옷 한 벌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돈은 절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서 성경 구절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을 사는 안톤은 한국의 홍반장(영화 ‘홍반장’,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주인공)같은 사람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사람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츠바이크가 거주했던 작은 도시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에 나타나 생색내는 일 없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안톤은 정직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하루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원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츠바이크는 안톤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배운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적 속성만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강남에 있는 한강뷰의 아파트를 받고 싶다는 초등학생의 대답이 현실과 세태를 반영해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그 학생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톤을 통해 그 초등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1923년 독일-오스트리아 통화인플레이션(3년이나 계속되었다.)으로 물가는 엄청나게 올랐고, 돈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츠바이크는 1년간 작업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인세를 받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그 금액은 원고를 보낼 때 썼던 우편요금보다 가치가 적게 되었다. 전쟁을 치르고 그 후로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강했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힘들지만 일상을 유지하려는 집중을 했고,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29개월 동안 계속된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시기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도서관에 모여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을 때,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꼈지만, 그것은 특수성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츠바이크는 《나에게 돈이란》에서 그런 나의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닫는다는 말의 진심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 ‘나에게 돈이란’, 중에서]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날, 그곳(콩코르드 광장)에서 가까운 센강에서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보통 때와 같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군중의 환호와 왕의 목이 바구니 안으로 굴러들어가는 역사적 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에 떠 있는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화에 대해 츠바이크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극적인 날에 낚시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 뒤 츠바이크 역시 파란만장한 역사적 흐름을 몸으로 체험하고서야 그들의 일상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비극이 계속될수록,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수록 사람들은 그 자체를 잊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에 공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삶에 대한 인간적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소망인 것이다. 고통과 참담함에 대해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인간은 피곤해지고 그것을 감당할 여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난국의 시대에 일상에 충실한 사람을 너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용되지 않을 허구의 단어라고 여긴 ‘계엄’이라는 말이 선포되었다. 몇 시간 만에 그것은 철회되었지만 충격적이었다. 그 말은 나라를 완전 두 쪽으로 나누었고, TV 뉴스를 여전히 장식하고 있으며 해결된 일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기함한 국민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채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읽은 《센강의 낚시꾼》은 지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고 매일, 매시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츠바이크가 말한 이 내용은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고 의미가 깊다. 다만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폐허를 등지고는 새로운 것을 건설할 수 없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문제를 안겨주는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처럼 어두울 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거대한 침묵》, 《이 어두운 시절에》, 《하르트로트와 히틀러》에서도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나치의 모든 죄악과 폭력에 의해 강요된 침묵, 자유의 억압, 굴욕, 소설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적용되는 사례들을 언급한다. 츠바이크가 조국에 대해 실망하고 억지로 그곳을 떠났지만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와는 갈라설 수 없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그러나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독일어로 나치의 자기 신격화에 맞서 줄곧 싸워왔고, 바로 이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입니다.
- ‘이 어두운 시절에’ 중에서]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내용은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이었다. 빈에서 츠바이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모든 학생들이 신뢰하고 좋아했던 동급생이 있었다. 어느 날, 대형 금융회사 대표였던 친구의 아버지가 사기범으로 체포되었고, 2주 동안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3주째에 접어들어 그 친구는 학교에 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고개도 들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 끝으로 가서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10대의 아직 어린 그들은 친구가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뜻 다가가 위로해 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방법을 몰랐던 것이고 누군가 대신 먼저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그 친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뒤 빈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떤 종류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고 나의 위로가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주저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이 부분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위로뿐만 아니라 사과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별 것도 아닌 일에 좋은 사람을 잃는 경우도 많다. 츠바이크는 이 경험을 통해 쉽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하라고 말한다.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다.
츠바이크가 로댕을 만나 그에게서 받은 《영원한 교훈》은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이미 아는 것임에도 새로웠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으며 다양한 감정이 들었고,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줄 수 있는 직접적인 힘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슴에 새기고 전환시켜 바로 실천해야 하는, 나에게 주는 화두도 있었다. 무엇보다 츠바이크의 글은 항상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가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책은 짧은 에세이를 수록한 것이라 더 그랬다. 그의 글 한 편 한 편이 완벽해서 내가 쓰는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은 사족에 불과하다.
츠바이크의 글은 그저 읽기만 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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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1-13 공감(51)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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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세상에 이런 책이 다 있나 그래. 정말 오래 전에,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나서 오랜 시절 그의 책들을 읽어 왔다. 하지만, 다른 전작주의 작가들처럼 그렇게 강렬하게 매달려서 죽어라고 츠바이크의 책들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기회가 닿는 대로 그의 책들을 꾸준하게 읽어왔다. 그리고 어제 중고서점에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두 9편의 짧은 에세이들로 구성된 이 책을 그만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가히 츠바이크를 지난 세기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롭고 조용했던 19세기 말에 태어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세기를 살다가 간 오스트리아 출신 양심가의 저술들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래도 히틀러라는 제목 때문에 맨 마지막 에세이부터 읽었다. 과학과 철학의 나라 독일을 그야말로 야만국가로 만들어버린 희대의 독재자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그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작품에 등장했던 모양이다. 책을 불살라 버리고,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인종주의로 무장한 파시스트의 등장은 어쩌면 대공황의 위기가 휩쓸던 지난 세기 불가피한 그런 현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더 암울한 장면은, 불행하게도 지난 세기의 그런 불행한 과거가 다시 한 번 되풀이될 것만 같은 세계사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인류는 도대체 과거에서 배우는 게 없다는 말일까. 현자 츠바이크의 지적들이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상상이려나.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글은 바로 첫머리에 배치된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다. 그리고 보니 이 편은 나중에 수록된 <나에게 돈이란>과 어쩌면 묘하게 공명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노동을 팔아 하루를 먹고 사는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한 시간의 노동을 금전으로 환산해서 일용한 양식과 주거 그리고 필요한 잡다한 것들 마련하고, 삶을 영위해 간다.
모두가 그런 걸까? 아마 이 편에 등장하는 안톤이란 사나이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잠자리와 먹거리 그리고 기타 필요한 것들을 얻어 살아간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일말의 걱정이나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부러웠다. 그도 물론 다양한 노동을 제공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지만, 당장 필요한 이상은 절대 받지 않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마 ‘하늘이 무너지지 않나’ 싶을 정도의 걱정과 불안은 아니겠지만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안톤은 자신의 필요 뿐 아니라 타인의 필요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안톤에게 도움을 츠바이크 박사가 그가 필요 없는 따뜻한 외투 하나를 요구하자, 그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물품들을 모두 내준다. 그러자 안톤은 자신에게 필요한 외투를 하나 챙기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한다. 아니 이런 이타적인 삶을 사는 다 있다고? 아무리 20세기 이야기라지만, 아마 안톤은 철저한 반자본주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만의 필요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기주의자로 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과연 안톤처럼 사적 이익 대신 이타적인 사고를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는가. 바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군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구름 같은 군중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런 역사적 대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센강에서 한가롭게 낚시질을 즐겼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4년차에 민중들은 하도 많은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새 국왕의 처형이라는 경천동지할 사건조차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닐까.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지난겨울의 계엄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격변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츠바이크 작가에 의하면 우리의 가냘픈 심장은 일정한 분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아니 그러한 불행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불행의 도래를 사전에 감지하고 감당할 수 없다면 피하고 싶은 그런 감정 상태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지도.
청년 츠바이크가 노년의 위대한 작가 로댕을 만난 일화에서 배운 교훈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대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청년을 무시하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아니 나라도 너무 황송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의 작업장에 방문한 츠바이크는 손님을 앞에 두고, 예술 창조의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 로댕의 진면모를 마주하게 된다.
근 한 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손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이 만들고 있던 예술 작품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모습을 목격한 츠바이크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지고 만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로댕은 청년 츠바이크에게 정중하게 사과한다. 하지만 츠바이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인간이 자신의 목표하는 바와 목적을 상실하고, 오로지 도달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완벽을 추구하는 지고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독서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탈출하기 위해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이나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의 <핫라인>을 읽곤 했었다. 이제 한 권 더 예의 목록에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다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지만, 상대적으로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곁에 두고 오래도록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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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5-09 공감(29)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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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마지막 이야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었단다. 이번에는 신간으로 나온 그의 에세이 모음집이야.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야기를 해서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하는 건 이제 다 알겠지? 신간 코너의 그의 책이 나와서 예전에 나온 책이 재출간된 것인가 봤더니 그의 미공개 에세이를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제목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이고, 부제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적혀 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유대인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갔고, 우울증에 걸려 그 곳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고 했잖아.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망명 간 브라질에서 쓴 글들이라고 하는구나. 암울한 시절, 모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의 망명 생활. 나치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모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점점 꺾이는 어려운 시절에 쓴 글들이란다. 그의 글들을 모아 이 책을 출간한 이들이 제목을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로 뽑은 이유가 당시 그의 상황을 고려했던 것 같구나.
이 책에 실린 <이 어두운 시절에>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그 에세이의 내용에서 책 제목을 뽑은 것 같더구나.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잘 모르고 있던 것이 어두운 시절에 그것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취지로 글을 썼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어. 평상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줄 몰랐는데, 계엄 사태, 내란 사태를 겪고 보니 민주주의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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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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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많은 걱정을 하면 살곤 한단다. 걱정에 대한 격언들이 참 많은데 대부분이 걱정은 쓸데 없다는 내용으로 그 격언들을 공감하게 된단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살다 보면 또다시 걱정은 마음 한 켠에 쌓여 간단다. 이 책에서 안톤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이야기를 한단다. 핵심은 돈을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으면 걱정이 줄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욕심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커지게 되는 법이지.. 그래도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구나. 그 시절 브라질에서나 가능하겠지? 이런 핑계 같은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사랑을 위해 일한다는 점은 마음에 새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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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히 그를 존경하는지 알아보려면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 코트 차림에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 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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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슈테판 츠바이크 또한 돈을 멀리하지는 못한다면서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는 않는다고 했어. 그래, 바로 이 자세… 돈을 너무 멀리하지도 않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는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집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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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는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잊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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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서는 당대 유명한 미술가인 로댕과 만남을 적은 글도 실려 있단다. 지인을 통해 슈테판 츠바이크는 로댕을 만났단다. 로댕에게 집중력이란… 손님으로 온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는지는 모른 채 작업에 몰두하여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의 집중력.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로댕을 훌륭한 조각가로 만든 것은 이런 열정과 집중력이 아닐까 싶구나. 주의 산만한 아빠로서는 정말 불가능한 집중력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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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5)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30분,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그의 육중한 몸이 가볍게 움직였고, 어떤 깨달음이 흡사 술에 취한 듯한 그의 존재를 감쌌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치 천지창조 첫날의 신처럼 홀로 창조 작업에 전념했다.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젊은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손님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지만,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고,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위대한 대가 뒤에 숨을 죽이고 주변의 대리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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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츠바이크를 망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자살하게 만든 히틀러라는 작자. 그는 광기가 그 이전에 소설 속의 주인공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더구나.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로부터 20여 년 후 실제에 그런 일어 벌어졌을 때 더 놀랐을 것 같구나. 그 소설을 쓴 소설가 블라스코 이바녜스는 그 소설을 통해서 독일 국민 속 마음을 대변하려고 했던 것일까? 광기의 소설은 광기의 현실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지옥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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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1)
오늘날 히틀러가 전 세계에 강요하려는 이 모든 계획은, 너무나 진짜 같은 허구의 인물, 하르트로트에 의해 고안되었다. 우리는 세계 지배의 꿈이 독일 국민의 무의식 속에 이미 늘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히틀러는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25년 전에 하르트로트의 입을 빌려 예언했던 것이 그의 광기를 통해 실현되었을 뿐이다. 고립된 몇몇의 개인이 사악한 꿈에 불가했던 것이 이제는 수백만의 소망이 되었고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었다. 플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은, 작가가 정치학 교수보다 당대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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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5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으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담겨 있는 글들은 커다란 메시지를 남겨 묵직함마저 들었단다. 책을 덮으면서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생각이 들었어. 바쁘지만 않다면 책을 필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 독서 편지로 써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 필사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고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오로지 폭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종종 완톤을 생각한다. 그토록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옷차람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를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들어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 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 P22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른 말을 못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작품 첫 번째 충동의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P32
자연의 의지는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떤 중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히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우리가 때때로 시대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 피조물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연의 잘못이다.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재생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뒤로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 P60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P61
그는 자살하기 직전이 1942년 초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신을 방문한 동료 이민자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무의미한 파괴가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자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창작은 뭔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악의적인 파괴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뭔가를 만들 수 있겠어요!"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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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5-02-14 공감(2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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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고통스러워함으로써 내게 세계를 보여준다.

츠바이크 글의 강점은 무엇보다 상황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글의 대상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관찰하고 생각하고 되새겼다는 말일 것이다. 그 상황 속에 온 몸이 잠기도록 깊게 침잠해들어가며 마치 자신이 그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될 때 츠바이크와 같은 묘사가 나오는게 아닐까?
이 책에 실린 단편 <거대한 침묵>은 츠바이크가 당대 유럽의 상황에 대해 쓴 에세이다. 그는 그의 장기를 여지없이 발휘해 나치당이 점령한 유럽의 친구들과 친척, 동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묘사한다. 그 고통을 짐작하고 묘사하는 과정은 작가가 지금 바다 건너 안전한 미국이 아니라 폭력의 한 가운데 유럽에서 그것을 자신이 직접 겪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에는 고통과 비명이 소리들, 저항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 앞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침묵이 들려온다. 그 끔찍한 침묵을 츠바이크는 이렇게 표현한다.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내 귀와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어떤 소음보다 견디기 힘들고, 천둥보다, 사이렌의 울부짖음보다, 폭발음보다 더 끔찍하다. 그것은 비명이나 흐느낌보다 더 신경을 찢고 더 슬프다. 수백만 사람이 이 침묵 속에서 억압받고 있음을 나는 매 순간 깨닫는다. 그것은 고독의 정적과 전혀 다르다. -101쪽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브라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도망쳐 온 곳에서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저렇게 되새김 한다면 이 지독할만큼 예민한 작가의 정신이 버텨내기가 힘들었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뛰어난 작가의 글을 읽는 다는 것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곳을 보게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학술서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츠바이크의 여기 실린 글들이 주는 울림의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이가 나에게 세상이 더 많은 면들을, 다른 면들이 이렇게 많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더 많이 본다고 해서 삶이 무조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명백하다.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무심함으로 인해 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잘못으로부터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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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21 공감(27)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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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가 주는 교훈

츠바이크의 마지막 글이라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책으로 엮어 나온 글들이다.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 나치의 광기를 피해 라틴아메리카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츠바이크다.
참으로 어두운 시대, 그 어두운 시대에서도 빛을 발견하려고 했던 사람이니 그의 글을 읽으면 어떤 위로를 받는다. 지금 시대에 그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이 시대 역시 어두운 시대임을 반증하겠지만.
나치의 광기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어둡게 만들었다면 지금 우리 시대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대두하는 신나치들... 이와는 다르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우리들 생활을 잠식해서 자본으로 인한 무역전쟁과 국가간의 전쟁까지 일으키려 하는 모습, 그리고 여전한 종교 갈등. 당시에는 유대인이 약자였다면 지금은 유대인이 강자가 된 세상. 강자와 약자의 처지는 바뀌었지만 어두운 시대는 사라지지 않았으니...
처음에 실린 글은 자본주의 시대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물론 이 글은 대놓고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필요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안톤이라는 사람을 통해 츠바이크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을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모두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22쪽)
처음에 만나는 글부터 따스하게 다가온다. 어둠보다는 밝음이 먼저 우리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다 다음 글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이라는 글이다.
용기, 이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용기, 잘못을 잘못이라고, 잘못이 아님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나중에가 아니라 바로 그때에.
그런 용기가 한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어두운 시절에'라는 글이다. 어두운 시절이 그때만이 아니고 지금도 어두운데, 여기서 우리는 별을 찾아야 한다. 그 별을 찾아 보여주고, 별과 같은 삶,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용기이기도 하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몸과 숨을 분리할 수 없듯이 영혼과 자유를 분리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위해 먼저 어둠의 시간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야 했습니다.' (116쪽)
어둡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빛나는 별을 보고 자신의 삶을 그쪽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는 말. 명심해야 한다.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느 글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특히 마지막 글은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미래를 선취하고 있음을, 그래서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미래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가 언급한 빈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쓴 [묵시록의 네 기사]를 읽지는 않았지만, 츠바이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소설에 등장한 하르트로트라는 인물이 히틀러의 전신임을 보여주면서 '작가가 정치학 교수보다 당대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보여주었다'(130쪽)고 하고 있으니,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현실의 세상을 바꿔갈 수 있음을 생각한다.
이처럼 이 책은 어두운 시대 빛을 보여주는 츠바이크의 글들을 모아놓아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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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25-03-04 공감(2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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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하반기에 좋았던 책

2024년 하반기 결산 페이퍼를 써달라는 요청을 지난 12월 마지막 날에 은곰탱이로부터 받았으나, 그날은 연차라 작업실에 출근하지 않았고, 1월 1일은 빨간 날이라서 집에서는 노트북을 켜지 않는 관계로 작업실에 출근한 오늘 이 페이퍼를 정리해본다. 2024년에는 이런저런 일로 책을 많이 못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상반기에 90권 조금 넘게 읽고 하반기에는 100자평 남긴 책 위주로 대충 세어보니 80권쯤 읽었더라. 그래서 모두 170권쯤 읽은 한 해. 아마도 ‘밀리의서재’ 때문에 출퇴근길에도 책을 읽게 되어서 권 수가 조금 늘어난 듯.
2024년 하반기에 좋았던 책들....(되도록 2024년에 출간된 책에서 골라보려고 애썼다) 상반기 리스트를 보고 싶은 분은 클릭.
문학
2023년에 이어 여전히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다. 읽어도 크게 감흥이 남은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중에서 골라보자면.

사강, <엎드리는 개>
어떤 이들(프랑스식 연애 안 좋아하는 다락방 같은 ㅋ)에게는 그다지 공감가지 않을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 사랑이야기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24년에 출간된 책은 아니고 2023년 11월에 나온 책. ‘밀리의서재’에서 읽었는데 종이책이 갖고 싶어서 나중에 종이책으로도 구매했다. 엎드려서 복종하는 개의 자세와 떨쳐내려고 해도 끝끝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번번이 무너지고 마는 인간의 심리를 비교해 탁월하게 묘사했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중년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이야기로, 최근에 읽은 <셰리>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만..... 솔직히 콜레트보다는 사강이 훨씬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강 책은 웬만해서는 읽고 되파는 편인데, <엎드리는 개>와 <패배의 신호>는 갖고 있다. 누군가 사강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그 유명한 <브람스....>보다는 나는 이 두 책을 권할 것 같다.
이 작품 읽을 때 여주/남주 이미지를 상상해서 읽었는데 루이 말 감독의 <도깨비불 Le Feu Follet>(1963)의 ‘잔느 모로’와 ‘모리스 로네’가 정말 딱 어울릴 것 같았다.


마리아 역할에는 잔느 모로를... 물론 이때의 잔느 모로보다는 좀 더 늙고 약간 더 살집이 있어야 할듯하고.

게레 역할에는 ‘모리스 로네’ 딱 어울려!


이 책, 읽은 분들은 공감할 것 같은데... 아닌가효?

스콧 피츠제럴드, <바질 이야기>
우앙. 너무 낭만적이야. 너무 재밌어 >_< 내가 스콧 피츠제럴드 작품에 기대하는 모든 게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마틴 맥도나, <필로우 맨>
마틴 맥도나를 올해의 발견이라고 부르겠다. 이 작품 때문에 그가 만든 영화들도 다 찾아보고 싶어졌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최근에 나는 또 한 번 ‘이야기의 힘’을 느끼고 극장에서 주책맞게(?) 전혀 울 장면이 아닌데도....(아닌가?) 울컥해서 울어버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더 폴: 디렉터스 컷> 때문이다. 이 작품은 2006년에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개봉했었는데 최근에 재개봉했다(예전보다 감독 추가 장면이 많다고).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병원에 입원한 꼬마에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ㅠㅠ


크리스토프 하인, <호른의 죽음>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작가 같다. 이대로 묻히기는 좀 많이 아깝다. 책값이 무지막지하게 비싼데도 내가 지만지 출간 목록을 계속 훑는 이유는 이런 작품을 종종 소개해주기 때문. 호른이라는 이름의 한 사나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어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좌절된 욕망, 이루지 못하는 사랑 등등 모두가 운명에 굴복당하고 살아가는, 그 하나하나의 쓸쓸한 사연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우리나라에서도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키건. 이 책 역시 좋았는데, 단편 모음집이라 더 좋았다(키건의 그간 국내 소개 작품들은 대부분 너무 짧지 않았는가). 아일랜드 특유의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단편들. 2024년 상반기의 베스트 단편 모음집으로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을 꼽는다면 하반기에는 이 책을.

에드나 오브라이언, <8월은 악마의 달>
에드나 오브라이언 또한 아일랜드 작가이다. 여성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 작품들로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회에서는 일찌감치 금서 처분을 여러 번 당했다는데, 작품 수위는 사실 그렇게까지 적나라(?)한 것 같지는 않은데 작품들이 발표된 시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인(?) 내용보다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문체가 기억에 남는다. <소녀들>도 얼른 읽어봐야지.

안톤 체호프, <낯선 여인의 키스>
2024년은 체호프 타계 120주기라서 이런저런 체호프 책이 새롭게 소개되었다. 그 덕분에 다시 읽어본 체호프 단편모음집. 이 책은 만듦새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처음 읽는 ‘낯선 여인의 키스’가 인상 깊었고 다른 단편들도 역시 체호프! 를 외치게 했다. 그리고 역자가 ‘승주연’인데 이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빅토리아 토카레바 <티끌같은 나>를 번역한 이다. 그때부터 이 이름을 눈여겨보는 중이었는데 읽으면서 으음 역시 좋구나...! 했던.
비문학

이브 앤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 책의 추천사 중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모든 페이지가 다 강력하고 아름다운 책이다.”라는 문장에 격하게 공감한다. 믿고 읽어보시라, 아름답다. 그런데 주의하시라. 참혹하다.

아리안 샤비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이 책 좀 많이들 읽어보시라. 일단 재미있다. 통쾌하다, 지적으로 명민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짜릿짜릿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주제에 이성적으로 차분히 조근조근 따지면서 반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만 저는 워낙 화가 나면 비논리적으로 구는 인간이라 실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이성적인 당신은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밀리의서재’에도 있습니다)

울리케 헤르만, <경제학 천재들의 자본주의 워크숍>
이 책도 일단 재밌다. 경제학! 어려울 거 같아! 머리 뜯지 마시라- 경제학하고 담 쌓고 사는 나 같은 이도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책은 도끼”라는 역할에도 충실한 책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와장창 깨뜨려주기도 하는데 ‘아담 스미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사회가 아담 스미스를 오독하거나 자기들 입맛에 맞는 부분만 이용하는 것 같기도.

알랭 드 보통, <현대 사회 생존법>
내가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불안> 때문이었는데 그 이후 읽은 여러 권의 책은 실패를 거듭하다가(주로 연애 관련 글들), 이 책으로 다시 보통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글들이 많은데 그래서 더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읽기를 권함! 비싸지만 비싼 값을 함!

캐스린 슐츠, <상실과 발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여덟 달 전, 결혼하게 될 여자를 만났다.”라는 문장에서부터 사로잡혔다. 이 문장을 쓴 작가의 젠더가 여성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저 문장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사랑하고,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떠나보내는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그런 생의 기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어진다. 캐스린 슐츠의 글이 더 읽고 싶다.

슈테판 츠바이크,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분량에 비해 가격이 매우 쎄다...! 그럼에도 ‘밀리의서재’에서 읽고 난 뒤 종이책을 사려고 몇 번이나 고심했다. 소장각. 필사각. 츠바이크만세각. 이 책을 읽고 나서 ‘안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으나... 참 나는 비루한 인간이라 그러지 못하는구나.

에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이 책을 읽음으로써 레비나스 철학의 세계에 매료되었고 앞으로의 10년은 레비나스를 파고들어보기로 결심했다. 타자를 타자, 그 자체로 존중하는 레비나스의 사상. 전 세계적으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시대에 그의 이 철학은 더 필요하지 않은가.
올해의 배신상

제이슨 베일, <술의 배신>
지금 생각해보니, 이 작가 혹시.... 알코올 몰래 몰래 먹으면서 쓴 글 아닐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이거 주정뱅이 특유의 증상인데?!
올해의 밉상


<편지 교실>의 미시마 유키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의 윌리엄 해즐릿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인간적으로 좋아지거나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좀 정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인간적으로 좋아한 적은 없지만 작품은 그래도 그놈의 문장 때문에 외면하지 못하고 읽어왔는데, <편지 교실>의 미시마 유키오는 정말이지 적나라하게 자기의 밉살스러운 면을 다 보여주는 것 같다. 남자 캐릭터고 여자 캐릭터고 하나같이 밉상 미시마 유키오의 대변자 같다. <혐오의 즐거움>은 잘 쓴 에세이가 여럿 실려 있다. 윌리엄 해즐릿이 왜 뒤늦게 조명받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 곁에 두면 왠지 피곤할 것 같다. 뒤돌아서서 신랄하게 내 욕할 거 같달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해의 늙은이상


작가들에게는 분명 그런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늙은 자기가 젊은이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판타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잦을 것 같기도 하다. 콜레트도 사강도 그랬을 거야. 그런 경험을 통해서 작품을 쓰기도 하겠지. 안드레아 애치먼 <파인드 미>, 콜레트 <셰리> 둘 다 중년 이상의 남녀들이 한참 어린 젊은이들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대단한 이 늙은이들에게 올해의 늙은이 상을..........수여합니다.
올해의 굿즈상

<세일러와 페카 삼부작>
유아/어린이/청소년 책 사면 주는 고양이 후드 담요가 탐이 나서 이 책을 샀는데!! 내가 읽고 나서 조카 줘야지! 했다가 책 그림이 너무 예뻐서 내가 갖기로 했다. 게다가 이 책 굿즈로 주는 에코백도 예뻐! >_< 크하하....


후드 담요는 이렇습니다.....

에코백은 이렇구요......... >_<

그나저나 이 고양이 담요 정말 따뜻하고 귀엽습니다. 노랑고양이 네 마리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특히 내 사랑 3호하고 막냉이가 노랑고양이니까 나도 노랑고양이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에 노란색 후드 담요로 받았따.... 이걸 쓰고 고양이들 앞에서! “밤비야!(막냉이 이름) 나도 드디어 고양이 됐어! 이거 봐 나도 귀 달렸어!!!!” 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혐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양이 귀가 저렇게 마징가 귀가 되면 싫어하는 거라능...)
3호는 이미 도망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너무나 귀엽습니다. 이걸 쓴 저는 제가 봐도 귀엽습니다. (자기가 자기보고 귀엽다고 하는 거 극혐인 거 알지만 내가 봐도 내가 귀여운 걸 어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에 이걸 뒤집어쓰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려니 집사2가 귀엽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냐웅냐웅냐웅.......” (번역: 고양이가 커피 내려주는 카페입니다. 커피에 털 떠다녀도 몰라요)
집사2가 귀엽다고 좋아하면서도 자기도 탐나는 거 같아서 회색 담요도 또 주문했다........ 집사2랑 나랑 둘 다 이거 뒤집어쓰고 있으면 우리 집은 이제 고양이 여덟마리......................................
올해의 원픽

샹탈 자케, <계급횡단자들 혹은 비-재생산>
상반기에도 이 책을 꼽았는데, 이 책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책을 하반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정도가 견줄만...?! 두 권 모두 다른 의미로 저마다 아름답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기도 한다. 모두 그런 기쁨을 느껴보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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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1-02 공감 (53)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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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눈을 감아봐야 알까.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어쩌면 마음의 평정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보고 잠언 비슷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제목 때문에 에밀 시오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에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모두 9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940년~1941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80년 전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건 결국 다 같은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절망과 비탄이 가득한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실패와 좌절 대신 웃음과 사랑을 바라보며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이 짧은 9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맨 처음 만나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물질만능주의를 살면서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봐도 초라한 행색의 청년 ‘안톤’은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안톤은 걱정이 없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타인에게 나누고 돈이 아닌 필요한 것들로 받는다. 아름다운 순환이라고 할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은 최악의 인플레 사태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나에게 돈이란」으로 연결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깨닫게 한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나에게 돈이란」, 42쪽)
3년은 편히 살 수 있는 거액의 돈뭉치를 내고 빈 오페라 티켓을 샀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슈테판 츠바이크. 석탄 부족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코트를 입고 따닥따닥 붙어 앉은 관람객. 음악가의 훌륭한 연주와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전하는 감동. 돈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알려준다. 돈을 좇는 삶이 아니라 돈에서 자유롭고 돈이 아닌 삶의 가치를 생각하라고.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돈이란」, 44쪽)
존경하는 로댕의 작업실에 방문하고 그의 집에서 본 로댕의 놀라운 작업 열정에 반한 「영원한 교훈」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 발견한 사소한 일화에 대한 것이다. 루이 16세가 콩코르드광장에서 처형되는 극적인 날, 광장과 지척인 센강에서 수많은 낚시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낚시를 하고 있는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만드는 역사. 삶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인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센강의 낚시꾼」, 53쪽)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센강의 낚시꾼」, 54쪽)
슈테판 츠바이크의 완벽한 문장으로 빛어낸 훌륭한 이야기는 짧고 강렬한 글에 담긴 심오한 울림은 오래 곁에 머문다. 그래서 한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좋아서 두번 읽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으면서 히라오 마시히로의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가 생각났다. 닮은 듯한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다 같지만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를 혼란에 빠진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 무질서한 사회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학습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윤리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도덕과 윤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눈에도 안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딱히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린 바로 죽을 것입니다. 도덕이 없으면 바로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도덕, 윤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2~32쪽)
윤리는 무엇이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막연하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개인의 윤리는 자유, 사회의 윤리는 정의, 친밀한 관계의 윤리는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강의한다. 윤리의 기본 원리를 12개이며 3개의 영역에서 세분화하여 4개로 설명한다. 정의와 윤리철학에 대해 이론적 내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험, 소설, 게임, 정치에서 어떻게 윤리가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이고 강렬한 사고실험은 이렇다. ‘버튼을 누르면 1억 엔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면 버튼을 누르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1억 엔인데 누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모른척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다른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고 그 누군가의 죽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모두 개인이고 내 위치에서만 생각하면 끝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윤리이고 정의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도 할 수 있고 상대가 해도 되는 일은 나도 해도 된다는 것, 바로 상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사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나 개인으로 존재하면 그만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개인고 개인이 연결된 사회에서 개인은 나이면서 동시에 상대이고 결국은 우리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명제다.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는 권리가, 남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모두 해당하니 남에게는 권리가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나의 권리는 타인의 의무와 세트입니다. 의무를 지키면 나의 자유는 제한되지만, 그것은 나의 권리를 즉,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124쪽)
8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서 전하는 긍정과 사랑이 정의와 윤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하는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모인 사회의 윤리는 그럴 수 없다. 사회 윤리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하니까. 저자는 그것을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말한다. 개인, 사회, 친밀한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 어렵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정의 자체가 윤리의 일부이며 사랑과 자유도 윤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윤리는 이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에 하나가 튀어나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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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11-12 공감 (4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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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라


노동은 결코 상품일 수 없는데도 상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미 밝혀냈던 구조와 마주하게 된다. 곧 불가능한 어떤 것이 Wirklichkeit[현실성] 안에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의 가능성은 우리로 하여금 부재하는 원인을, 생산관계를 참조하게 한다. 직접생산자를 생산수단에서 분리한 원시적 축적 이후, 직접생산자는 자기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도록 강제된다. 그들의 노동은 임금노동이 되며, 그리고 자본가는 그들의 노동력이 아닌 노동에 대가를 지불한다는 겉모습이 생겨난다. 노동가치라는 범주 뒤에 감춰진 노동력의 가치라는 범주를 드러내는 일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결정적 성격을 드러내는 일이다.
-루이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 중에서
2025년이 시작 된 지 5일이 지났다.
불과 5일 전인 2024년의 시간이 이미 역사가 되었다.
2025년의 첫 시작을 알리자 마자 나는 모닝 페이지를 썼다.
2023년 1월 22일 부터 매일 모닝 페이지를 써서 2025년 1월 5일까지 매일 모닝페이지 노트를 발행 했다.
글을 쓰는 걸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글을 쓰는 걸로 새해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의 오랜 시절부터 이어졌던 열정이였고 맹렬한 소명이였다.
꿈을 열망 할 때도 글을 썼고 좌절감과 우울감이 덮쳐도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하는 감정의 파고가 수시로 밀려 온다.
수 많은 이들이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며 새해 새로운 결심을 했을 것이고 새해를 맞이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https://tobe.aladin.co.kr/s/2724
2023년 1월 12일 부터 매일 두편씩 꾸준하게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썼다.
하루 반 나절은 꼬박 국가의 세금 루팡으로 살았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 와서는 오로지 내 안의 열정을 쏟아 붓는 창작 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진화 하면서 한 해 한 해 심도 있게 책을 읽고 그 책의 양이 학교 생활을 끝마치고 나서 만권,사회인이 되고 나서 만권 , 늦은 밤 창작 노동자로 글쓰는 인간으로 진화해서 만 권을 읽었다.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고 창작 소설을 쓰고 번역을 하고 여러 다양한 문화와 예술 인문학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다.
-2025년 1월 1일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n/304076
-2025년 1월 2일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n/304368
-2025년 1월 3일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n/304684
-2025년 1월 4일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n/304899
-2025년 1월 5일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n/305179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츠바이크
밤 새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였고 내란 수괴범은 몇 일 동안 국민을 볼모로 삼으며 법과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사이 이 모든 국난의 어려움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물가는 무섭게 치솟고 있고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희망 퇴직을 권고 하고 있고 번화가 거리마다 텅 빈 가게, 폐업한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생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원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기도 하고,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소소한 손해를 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삶에 타격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세상 탓, 상사 탓, 부모나 조상 탓 그고 내 탓이다.
암울하고 암담한 세상이 지옥의 문처럼 활짝 열려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매일 쓰는 삶이 이 험난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면 돌아서서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 발을 내딛고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다음 발을 내딛고,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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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5-01-05 공감 (4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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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된 글과 당선되지 않은 글 사이에서

알라딘에서 이달의 페이퍼나 리뷰로 당선되어 적립금을 받는 일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물론 세 번뿐이라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히 처음 당선되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은 상상하지 못한 보너스와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정 기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무엇이 이 글들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세 차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다른 글보다 더 신경을 쓴 글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글들이 당선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신경을 썼던 '똥'에 대한 글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썼던 '고요한 읽기'에 대한 글이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신경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고, 계획 없이 흘러나온 글이 뜻밖의 반응을 얻기도 한다. 이는 내 경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 과정에서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앤 라모트(Anne Lamott)는 『쓰기의 감각』에서 커트 보니것의 말을 인용하며, 글쓰기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즉흥적인 과정인지를 강조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입에 크레용 하나를 물었을 뿐 팔도 다리도 없는 사람처럼 느낀다.' (p. 80)
이 말은 글쓰기가 때로는 서툴고 어설프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고 즉흥적인 감각에서 시작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완벽한 계획 없이 쓰여진 글이 더 강한 울림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p. 92)
그녀는 머리로 문장을 완벽하게 다듬으려 하면 글이 경직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글쓰기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란 단순히 흘러가는 대로 쓰는 것일까? 즉흥성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좋은 글이 나오는 걸까? 애트우드는 글쓰기의 또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글쓰기가 단순한 표현의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는 『Negotiating with the Dead: A Writer on Writing』(한국어 제목으로 『죽은 자들과 마주하는 글쓰기』정도가 좋을 것 같다.) 에서 글쓰기가 단순한 표현의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Possibly, then, writing has to do with darkness, and a desire or perhaps a compulsion to enter it, and, with luck, to illuminate it, and to bring something back out to the light."
(아마도 글쓰기는 어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 어쩌면 강박과도 연관이 있다.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 어둠을 밝혀내고, 다시 빛 속으로 무언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즉, 글쓰기는 단순히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과정일 수도 있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 들었던 『The Source of Self-Regard』(『자존의 근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검색해보니 제목은 책의 목차 중 하나인 Invisible Ink(‘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따온 것이었다.)에서 글쓰기가 단순한 내면 탐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What I needed was imagination to shore up the facts, the data, and not be overwhelmed by them. Imagination that personalized information made it intimate, but didn’t offer itself as a substitute. If imagination could be depended on for that, then there was the possibility of knowledge.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과 데이터를 보강해 줄 상상력이었고, 그에 압도되지 않는 것이었다. 정보를 개인화하고 친밀하게 만드는 상상력, 그러나 그것이 대체물로 제공되지는 않는. 만약 상상력이 그것에 의존할 수 있다면, 지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이 말은 글쓰기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독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글은 즉흥적으로 흘러나올 수도 있고, 내면의 어둠 속에서 길어 올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독자와의 연결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핵심 아닐까?
여담이지만, 생각나는 대로 인용하고 보니 흥미롭게도 언급한 작가들이 모두 여성이다. 단순한 우연일까? 어쩌면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섬세한 탐구가 여성 작가들에게서 더욱 자주 발견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그렇다면 독자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리슨은 글쓰기에서 자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신뢰할 때, 비로소 글이 독자에게도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나치게 애쓰며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맡길 때 진정한 창작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다른 작가들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글, 애써 꾸미지 않은 문장이 때로는 더 깊이 있는 울림을 남긴다. 독자와 교감하는 글이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그런 신뢰 속에서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알라딘에서 당첨된 내 글들도 그러했다. ‘잘 써야지’라는 의식 없이, 어떤 순간에 밀려오는 감각을 따라 쓴 글들이었다. 계획하고 쓴 글이 아니라, 어느 날의 생각과 감정이 저절로 흘러나온 글. 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단순히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내적 필연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신과의 대화이자, 독자와의 조용한 교감인지도 모른다.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고르며, 가끔은 망설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저 글이 스스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렇게 나온 글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글이 아닐까.
글을 쓰는 동안,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는 작가들과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도 아닌 내가 쓴 글을 일부러 찾아와 읽어주는 몇 안 되는 알라딘 친구들에게. 그렇게 글은 흘러가고, 문장은 이어진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렵다. 결국, 글쓰기가 어렵다는 게 결론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머릿속의 그것이 아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사이, 말하고 싶었던 본래의 감각은 희미해지거나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어쩌면, 완벽한 문장은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 읽고, 또 누군가의 문장에 답하듯이, 그렇게 읽고 쓰는 일이 연결되고, 또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읽는다.
그리고 적립금으로 책을 샀다.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대국』, 그리고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유행열반인 님, blueyonder 님, 서곡 님께 각각 ‘Thanks to’를 했다. 알라딘에서 몇 안 되는 친구분들께 작은 감사를 전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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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데이터 2025-02-07 공감 (35)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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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슬하

어느 영상에서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다는 젊은 시인의 얘기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네가 죽음을 알 나이가 아니니까."
그 시인의 다감한 인상에 나는 어떤 냉소를 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명재 시인을 잘 몰랐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인이 얘기하는 죽음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고 짙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할 수 있다. 자신을 키웠다는 비구니의 이야기에 무심결 집어 든 그의 책은 나를 많이 울렸다.

나이듦은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는 일과 가깝다. 어떤 선의에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지혜도 경험지도 아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옅어지는 일은 서글프다. 그러나 나는 이미 받은 무한사랑의 기억을 잊고 있었다. 고명재 시인이 이 책을 헌사한 비구니가 그에게 베풀어 준 사랑의 시어들을 읽으며 나는 잊었던 그 사랑들을 기억해 냈고 그 기억의 복원에 압도됐다. 지금의 나에게도 어린 시절 그런 사랑을 퍼부어 준 사람이 있었다. 무조건적인 사랑.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 사랑으로 견딜 것이다.
반드시 요동치고 심장 뛰고 들썩여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 마음과 존재를 아래에서부터 떠받친 채로 기둥처럼 지속되는 사랑도 있다. 사시사철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것. 은은한 지속. 그 기쁨, 놀라운 세계. 창호 너머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만물이 견고하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바로 거기 있구나.
-<너무 보고플 때 눈이 온다> 고명재
너무너무 가난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동생과 할머니에게 맡겨진 시인이 또 어느 한 시기 절의 비구니와 함께 한 유년은 눈물겹도록 애잔하고 아름답다. 작디작은 비구니는 시인에게 무한정의 사랑과 무소유의 고결한 삶과 그것의 존엄한 마지막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인이 시인이 되게 한다. 그러니 이 시인이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구나. 숨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사랑이 있구나. 한 어린 아이를, 부모와도 헤어져 자라야 했던 그 가난하고 작은 아이에게 무한의 사랑과 미래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구나. 세상에 대한 냉소로 온마음을 꽉꽉 채울 수도 있었을 아이가 자라 사랑을 노래하는 좋은 시인이 될 수 있게 하는 그런 빛나는 사랑이 있었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슬픈 최후를 우리는 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그의 마지막 이야기들은 그러니 절망과 체념과 세상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오히려 반대다. 그는 여전히 사랑과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연민을 노래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믿음들이 빛난다. 어떤 사람이 위대해지는 것은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거나 이룩해서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그 지점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그 불굴의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그 여린 구석이야말로 가장 짓밟기 힘든 인간의 고결한 실재가 아닐까 한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서 돈이 없이 그저 자신이 가진 기술과 도움을 타인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살아가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 최악의 인플레에서도 여전히 일상을 영위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는 <나에게 돈이란>, 혁명이 지척에서 일어나는데도 무감하게 낚시를 하는 방관자의 역사가 사실은 우리들의 지금의 모습 그 자체라는 통찰이 인상적인 <센강의 낚시꾼>, 젊은 시절 우연히 방문하게 된 로댕의 작업실에서 배운 무아지경의 몰입의 순간에 대한 교훈을 얻은 <영원한 교훈> 등 짤막한 이야기 하나하나하가 가지는 심오한 메시지에 절로 공명하게 됐다. 짧아서 아쉽고 또 그만큼 농밀하게 압축된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의 여운이 길다.
그러니까 우리의 두려움에 이기는 건 여전히 진부한 사랑이다. 그런 걸 믿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쉽고 내 존재 자체가 그 사랑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하는 건 어려운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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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11-07 공감 (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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