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오구라 기조.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오구라 기조. Show all posts

2023/09/21

동양포럼(58) /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2 < 가타오카 류 - 동양일보 2018

동양포럼(58) / 동양포럼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2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58) / 동양포럼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8.01.14 

청주와 안동과 센다이의 사이에서 생각한다
성스런 동경’에 의한 이어짐

가타오카 류(片岡龍) 일본 토호쿠대(東北大) 교수

‘연애’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최근에 거의 사어(死語)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어떨까? 여기에서 말하는 연애란 단순히 이성과의 연애뿐만 아니라, 좀 더 막연하게 뭔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그리움, 사모를 말한다.

괴테가 노래한 ‘성스러운 동경’(서동시집)이라고까지 하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이 시에 나오는 “머나먼 여정도 힘들다 하지 않고/뭔가에 홀린 듯이 날아와서/마침내 빛을 갈망하여/나비여, 그대는 불처럼 타올랐다”라는 구절은 역시 ‘연애’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이런 ‘연애’가 사어가 된 세계, 이런 ‘연애’조차도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할인되는 세계, 인간은 이런 세계에서 정말로 살아갈 수 있을까?

2017년 8월에 청주와 안동에서 개최된 일련의 동양포럼에 참가한지 5개월이 지났다. 저 눈부셨던 여름의 빛은 아련해지고, 생명감에 충만한 신록은 빨강과 노랑으로 물든 후에 지금은 푸석한 낙엽이 됐다.

태평양연안의 도시에서 쓸쓸한 겨울의 풍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여름의 한반도를 생각한다. 이 생각도 ‘연애’이다. 센다이, 청주, 안동.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성스러운 동경’에 의해 이어져 있다. 그런 세계가 공창(共創)되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아직 겨울의 추위에 닫혀 있지만 -.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는 센다이(仙台)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동승한 사람은 카네비시 키요시(1975~) 교수와 오오사와 시노부(大澤史伸·1966~) 교수. 카네비시 교수는 ‘영성의 재난학’이라는 책으로 단숨에 일본사회의 주목을 받은 신진 사회학자이고, 오오사와 교수는 사회복지학이 전공으로,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두 명 다 센다이의 유서 깊은 그리스도교대학(東北學院大學)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카네비시 교수는 주로 이론 쪽을, 오오사와 교수는 주로 실천 쪽을 맡은 공저도 간행하였다.

센다이는 2011년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사고에 의한 대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보이는 건 온통 건물 잔해의 황야뿐. 세상의 끝을 보는듯한 광경을 눈앞에 두니 기존의 모든 언어가 허위로 느껴졌다. 청주행 비행기를 함께 탄 세 사람은, 그 때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이 근원적인 경험이 이후의 세 사람의 연구 활동의 근저에 있게 된다.

2016년 9월에 ‘동일본대지진과 세월호사건 이후의 사람들의 연대’를 테마로 한 센다이포럼에서 세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 때 기조강연자로 초대한 분이 동양포럼의 김태창 주간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올 여름에 청주에 가게 된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 공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북청주의 숙소에 도착한 때는 이미 날이 바뀌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택시로 ‘꽃동네영성원’으로 향했다. 심산(深山)에서 뿜어나오는 생기가 차안에까지 흘러들어 온다. 이 산의 청정한 고지대에 영성원이 있었다. 거대한 여름 구름이 주위에 떠다니는 것이 마치 천상세계에 온듯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공공하는 영성’을 둘러싼 논의가 3일 동안 진지하게 오갔다.

꽃동네시설 견학을 포함한 포럼의 전체 모습은 ‘동양일보’ 2017년 11월 12일자에 실린 조성환의 ‘다시 개벽을 찾아 나선 열흘간의 공공여행-공공영성·외천활리·탈식민지 포럼에 다녀와서’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나 나름대로 깨달은 점만을 말하면 ‘영성’을 반드시 종교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영성을 종교가 독점에 온 것이 오히려 영성을 소원하게 하거나 역으로 물신화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영성은 우리에게 보다 가까이 있는 우리 삶에 필요한 그 무엇이다. 또한 우리의 삶이 각자가 다른 이상, 영성도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이 있어서, “이것은 A, 이것은 B”라고 딱 잘라 나눌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영성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지진을 경험한 카네비시·오오사와 교수의 생각과도 상통한다. 카네비시 교수는 생과 사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행방불명자(사자)와 유가족(생자)을 어어주는 것을 영성이라고 보았고, 오오사와 교수는 그러한 이분법적 가치고정화(서열화)에 동반되는 차별과 편견이 사회복지의 실천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오오사와 교수는 ‘사랑’이나 ‘영성’이라는 말조차 고정화로 이어지기 쉽다는 입장이다. 꽃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있는, 강자도 약자도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풍요로운 연대, 그것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모든 언어는 가치 고정화(서열화)를 낳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실천도 그때, 그 장소에 한정된 덧없는 현상으로 지나가 버린다. 위험은 있지만 현장의 실천이 파급되기 위해서는 모종의 이론화도 필수불가결하다. 카네비시 교수와의 이인삼각(二人三脚)의 활동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성에 개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김태창 주간이 일본적 영성을 습합적 영성, 중국적 영성을 동화적 영성, 한적 영성을 ‘접화군생’이라고 분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습합’이란, ‘신불습합(神佛習合)’과 같이 일본이 외래의 고도의 문명을 수입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에 근거하고 있다. ‘동화’가 모든 것을 중국문명 속으로 흡수하는 것에 대해서, ‘습합’은 일본적 핵심을 남기면서 외래의 고도의 문명을 도구화하여 최대한 이용한다. ‘화혼양(한)재’(和魂洋(漢)才)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에 반해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접’은 양자의 중심이 진실하게 ‘접(接)’한다고 하는 직접성을 의미하고, 그것에 의해 삶의 방향으로의 변‘화(化)’가 생기며, 그것이 파급되어 다수의 타자(群)의 ‘삶(生)’이 활성화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불교·유교·그리스도교 등의 수용 방식에는 그런 특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심과 중심이 진실하게 접한다”, 이 말은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말이 가치고정화(서열화)되기 쉬운 것도 그 말이 “중심과 중심이 진실하게 접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영성’을 하나의 정의에 수렴시키고 고정화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성’이라는 말을 공통화제로 삼아서 각자 개성있는 영성체험을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대화한 것이다.

그런 대화중에서 역시 나의 혼을 강하게 요동치게 한 것은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영미 선생이 소개한 정지용의 ‘향수’였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포럼이 끝난 후에, 이번 포럼에 참가한 최다울 학생과 함께 김영미 선생의 안내로 옥천에 있는 정지용 생가에 다녀왔는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경과 너무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향수’는 나에게 쓰나미로 모든 것이 휩쓸려가기 이전의 토호쿠(東北)의 해안가 마을의 정경을 떠올리게 하였다.

꽃동네에서 직접 인천공항으로 향한 카네비시 교수, 오오사와 교수는 무사히 센다이에 돌아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창동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이미 김태창 주간과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이 기다리고 계셨다.

버스 안에서는 ‘동양일보’ 8월 7일자에 실린 유성종 운영위원장의 ‘조명희 선생의 아호, 포석(抱石)의 뜻’을 둘러싸고, 포석이라는 호의 함의, 그리고 포석과 마찬가지로 ‘석(石)’ 자가 호에 들어 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본명은 킨노스케金之助)의 호의 의미 등이 화제가 되었다.

안동의 포럼에 이어서 청주대학에서 개최된 포럼에서는 한국의 포석, 일본의 소세키와 중국의 루쉰을 다루었다. 루쉰(이것은 필명. 본명은 쪼우슈런周樹人)은 140개가 넘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석(石)’이 들어간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조사해보니 흥미로웠던 것은, 루쉰이 토호쿠대학의 전신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유학했을 때의 경험으로부터 자신은 의학이 아니라 문학으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뜻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애초에는 지질학을 공부하려고 일본으로 유학왔다는 사실이다. 루쉰이 센다이에 오기 전의 동경시대에 쓴 ‘중국지질학약론(中國地質略論)’(월간 ‘浙江潮’ 제8호, 1903년 11월)에서는, 자국의 과학이 뒤쳐져서 망국의 위기(외국이 광산자원을 노려 중국의 분할을 꾀하고 있는 것)가 초래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떤 문명이든 ‘강석화’(=화석화) 되면 멸종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만년의 글에서도 “혁명은 끝이 없다. 만약에 이 세상에 진실로 ‘지선(止善)에 이르게’ 되는 일이 있다면, 인간세계는 곧바로 응고되고 말 것이다”(‘而已集’ 黃花節的雜感), “불만은 향상의 수레바퀴다. 자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를 태우고, 사람의 도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 자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종족은 영원히 전진하면서 영원히 희망이 있다. 다른 사람을 탓할 뿐 반성할 줄 모르는 많은 종족은 반드시 화가 미친다(‘熱風’ 隨感錄六十一)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자신에 만족하여 반성할 줄 모른다고 한다면, 중국은 과거의 망념을 완전히 끊고 영원히 전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는 안동에서의 포럼에 참가하게 되었다. 회의장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고, 주최는 영남퇴계학연구소(후원은 동양포럼)이며, 테마는 ‘외천활리(畏天活理)의 인문학’이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지금까지도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과거가 현재에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과거가 화석화되어 현재에 남아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가 미래를 향해 현재를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영남퇴계학연구소의 이동건 이사장은 이퇴계의 제15대 후손으로, 대구의 삼화건업 회장이기도 하다. 이동건 이사장은 퇴계의 성학(聖學)을 ‘자기혁신’(Self-Innovation) 사상으로 재해석하였다. 이 ‘자기혁신’은 과거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천활리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에는 일부러 ‘영성’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 공자 이래의 유교의 전통을 존중하여, 안이하게 유교와 신비주의를 연결시키려는 논의로 흐르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것이다. 나도 16세기 한반도와 이베리아반도를 공시성(共時性)이라는 관점에서 대조해 보는 모험을 시도했는데, 이광호 연세대 명예교수로부터 그 위험성을 지적받고, 발표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여 오해를 피하는 배려가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대항해시대에 예수회의 신대륙 등에 대한 포교가 얼마나 폭력적인 식민지지배와 맞물려 있었는지, 아울러 동시대의 한반도의 평화가 일본이나 중국의 군대에 의해 유린당한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다만 ‘영성’이라는 관점에 한정시키면, 퇴계의 ‘리발(理發)’과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동(靈動)’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공시적 유사성이 있고,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다산 사상의 ‘종교성’을 반드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만한 ‘종교성’이 한반도에는 이미 있었다는 것으로, 그것이 그리스도교와 같은 ‘종교’와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보다 중요하다. 인문학과 영성은 공존할 수 있다. 위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영성을 종교가 독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해명해 둔다.

‘외천활리’라는 주제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것은 퇴계의 ‘리발(理發)·리동(理動)· 리도(理到)’의 문제이다. 로고스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 실로 인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리’라는 말에서 영성적 요소를 읽어내려고 한 점,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젊은 학자와의 오랜 시간에 걸친 공개토론을 거친 결과이고, 더 나아가서 그 과정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는 점은 16세기 한반도의 놀랄만한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리’가 사리(死理)가 되어 영성을 잊으면 그것은 ‘하늘(天)’도 ‘두려워하지(畏)’ 않는 인간의 소행이 될 것이다. 원전사고에 의한 재해는 그것을 경고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외경을 넘어 공포가 되어 버리면, 비합리적인 힘(폭력·권력·금력)의 논리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만다.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외천활리의 인문학’의 의의가 아닐까?

이번 포럼에서는 퇴계의 ‘천’이나 ‘리’를 서양의 신화나 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고찰하는 젊은 여성연구자들의 발표가 여럿 있었다는 점도 인상에 남았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신과 ‘시경’, ‘서경’, ‘논어’ 등에 나오는 고대 중국의 ‘천’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서 퇴계의 ‘천’을 고찰한 장영란 교수(한국외국어대), 스피노자나 플라톤의 우주론과의 비교를 통해서 퇴계의 ‘리’를 고찰한 이원진 박사(국민대)의 발표가 그것이다. 또한 퇴계의 “사단(四端)을 통한 리자도(理自到)”를 일상의 영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사회를 성화시키는 사회적 영성, 공동체적 영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 황상희 박사(성균관대)의 발표는, 명시는 하고 있지 않지만 17세기 감리교운동의 사상 등과의 연관성이 의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안동포럼은 꽃동네포럼과 청주에서의 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 포럼의 일환이다. 언젠가는 퇴계의 영성을 사회복지나 근대문학 등에서의 영성과 연결시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과거의 학문전통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과 중심이 진실로 접하면 과거의 학문전통도 다시 그것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안동에서 청주로 돌아올 때 줄기차게 내렸던 비도 점차 맑게 개였다. 청주포럼의 테마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다. 지금까지의 포럼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포럼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만의 대화섹션이 마련된 점이 특징적이다. 이퇴계는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의 대화소재로는 무거운 감이 있다. 젊은 감성들이 자유롭게 발상하기 쉬운 한중일을 대표하는 20세기 문학가를 테마로 선택한 것에서 미래공창을 바라는 포럼 주최자의 염원이 느껴진다.

포럼 내내 한쪽 벽에는 신진여성화가인 김선우씨가 조명희·나츠메 소세키·루쉰의 작품을 읽고 얻은 인상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세 사람의 문학의 개성, 즉 한중일의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에 대한 이미지가 멋지게 형상화되고 있다. 그래서 참가자는 이것을 보면서 대화하면 된다. 작품의 세세한 문헌적 고증 따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발제도 논문을 읽는 형식이 아니라 각자가 동양일보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기만 하면 된다.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태창 주간은, 그런 진행방식과 포럼취지를 설명하면서, 이 자리에서의 모든 발언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고, 포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개의치 않으며, 다만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 새로운 것을 함께 시작하는 데에 주안점이 있다는 결의를 피력했다. 그러자 회의장의 분위기가 단숨에 조여졌다.

그 긴장감은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와 같은, 처음으로 동경하던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와 같은, 처음으로 이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실제로 나는 포럼의 서두에서 조명희의 ‘낙동강’에서 영감을 얻은 김영미선생의 시를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가 밤새 일본어로 번역한 손글씨 원고(안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김태창 주간으로부터 건네받았다)를 낭독하는, 인생의 첫 경험을 했다.

센다이, 청주, 안동을 잇는 ‘성스러운 동경’, 이런 말을 첫머리에 쓴 것도 청주포럼에서의 긴장감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면이 다했기 때문에 청주포럼의 내용은 다른 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꽃동네, 안동, 청주에서의 포럼을 관통하는 테마는 ‘영성’인데, 여기에서의 ‘영성’이란 괴이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이 불타는 것에 대한 자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과 열이 3.11 대지진 이후의 태평양 연안의 어두운 겨울밤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 번역:조성환(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박사

2023/09/19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박규태 /Park Kyutae 2014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비교일본학

2014, vol.31, pp. 37-79 (43 pages)

UCI : G704-SER000001507.2014.31..012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일본문학 > 일본문화학
박규태 /Park Kyutae 1


1한양대학교

초록 열기/닫기 버튼


본고는 2천년대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년 4월 사사키 다케시(佐々木毅) 전 동경대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대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경영, 건강, 의료, 세대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대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대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키워드열기/닫기 버튼
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박규태**

2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 학교 교수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Key words :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26)

들어가는 말 : 김태창은 누구인가

  <주간 동양경제>라는 일본의 표적인 경제전문지에서 2003년 신년특 집호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위기에 처하는 23명의 현자의 지혜라는 주제하에 한 한국인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김태창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일본의 개혁방법에 관한 청사진 가운데 일본이 포스트 경제 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국가전체보다는 개개인이 정신적/문화적으 로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 요컨 키워드는 민의 힘을 살리는 활사개’(活私開公)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공창’(幸福共創)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김태창, 2012_11b:15󰠏16) 여기서 말하는 활사개공이나 행 복공창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일 지식인들이 타자와의 사이()를 연 인(大人)”(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4), “공자가 말하는 인 유학자 (大人儒)”(야마모토 쿄시, 2013:5), “끊임없이 화하는 철학자”(오가와 하루히사, 2013_11:2), “탁월한 지식경 인”(최재목, 2013_12:13) 등으로 극찬해 마지않는 김태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극찬은 일본에서 가장 한국에 정통한 철학자로 말해지는 오구라 키조의 다음 수사에서 하 나의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악보가 없는 강렬한 생명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와 사상에 한 생명적인 항이다. 한국과 일 본의 틈새에 이와 같은 철학적 생명 그 자체가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분 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 한 사건이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일본 인은 전율과 함께 까칠까칠한 위화감, 그리고 소리치고 싶은 듯한 고양을 느낀다. 그는 일본이라는 이국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무수한 화를 거듭하고, 한국을 정신적 토 로 삼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견실한 노력을 20년 이상이나 계속해왔다. 과연 누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이루어냈을까?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의 인간이 그것을 가한 나라의 인간과 철학 화를 계속하고, 그것을 공공철 학이라는 개념으로 가꾸어낸다고 하는 활동을 그 누가 해낼 수 있었을?”(오구라 키조, 2013:10󰠏12. 필자의 윤문)

  다수의 문저서[1])와 일본어로 간행된 20여권의 공공철학 시리즈물[2])을 포함하는 놀랄만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현 교토 소재 <장래세 총합연구 소> 소장, 오사카 소재 <공공철학 공동연구소> 소장, <수복서원> 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김태창은 1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3)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 인에 다름 아니다.4) 사실상 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통해 종래의 멸사봉공(滅私奉公)적 공공성뿐만 아니라 멸공봉사(滅公奉私)적 미이즘 (meism)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 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침투5)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슬람, 인도, 일본에서의 공사에 관한 사상사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학적, 경제학 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공사 역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2(2004) 5권 및  3(2006) 5권에서는 자치/법률/도시/리더십/문화와 예술/종교/지식인/조직과 경

/의료와 건강/세 간 관계 등으로부터 생각하는 공공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1980),인간  세계 그리고 신󰡕(1985),정치철 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1989),현 정치철학: 탐색과

전망󰡕(1989),21세기에의 지성적 응󰡕(1993),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2010),(일 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 등 다 수의 국내저술이 있다.

3)   <장래세 총합연구소>의 모태인 <장래세 국제재단> 이사장이자 <교토포럼> 사무 국장. <장래세 국제재단>1992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지구정 상회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회의>가 개최된 다음 달인 19927월에 미국 에서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전신이 바로 1989113(문화의 날, 이전의 메이지 절)에 교토에서 발족한 <교토포럼>이다. 이 제1회 교토포럼에서 향후 1990년부터 2 개월에 한 번씩 학제간 화를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추진자로서 김태창이 동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2년 김태창은 <장래세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4)   김태창은 이 두 사람과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공공철학 교토포럼>이 가능 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일본에 와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룰 수 있 었던 가장 귀중한 농사다고 토로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44󰠏45)  

5)   현재 일본을 표하는 사전에서 공공철학시민적 연 감이나 공감 그리고 비판 적인 상호토론에 기초하여 공공성의 부활을 지향하고 학제적인 관점에 서서 사람들 에게 사회적 활동에 한 참가나 공헌을 촉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廣辭苑󰡕 6 )으로 정의되어 나온다.


1934년 청주의 이른바 ‘다문화가정’6)에서 출생한 김태창은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그 후 한국인이 된 인간이다. 유소년기는 일본어라는 국어 상용이 의무화된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본문화를 알고 일본역 사를 배웠다. (중략) 나는 일본인임을 의심한다든지 분명한 위화감을 가 지는 일은 없었다.”(金泰昌, 2002b:199)고 식민지 소년의 아이덴티티를 술회한다


6)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란 반일적 성향이 강한 주자학자 던 할아버지와 친서구 적인 독실한 기독교신자 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이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김태창은 이 세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것이 어릴 때의 가장 큰 바람이었 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이’와 ‘상생’과 ‘공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김태창 편저, 2010:99)


해방 뒤 연세 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어, 독일어, 불어 등을 가르치면서 학원 과정을 마쳤다(정치학박사). 젊었 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결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국제관계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충족될 수 없었 던 김태창의 학문적 열정은 그로 하여금 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스 칸디나비아 반도, 동유럽 등 5년에 걸쳐 56개국을 돌며 인간학적 체험을 추구하는 방랑자로 만들었다.7) 


7)   이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했다그것은 과거에 일본이 한 국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침략한 것에 한 반동에서. “한국의 지식인의 한 사람 으로서 일본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일본에 이기기 위 해서는 일본보다 더 나라를 발전시켜서수준 높은 학문을 닦고 일본 학자보다 뛰어 난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겼다.(야마모토 쿄시, 2013:3) 8) 김태창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泰昌, 2002b) 및 (김태창 편저, 2010:98󰠏99) 참조.


귀국 후에는 충북 사회과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 호적이라고 비난받고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한때 체포 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본으로 간다. 더 이상 방황할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어서 앞으로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 을 왕래하면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어떤 모델이라도 제시하고 싶다는 생 각을 하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시민들끼리 만들 수 있는 좋은 사회를 꿈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8)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김태창이 주창한 공공철학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그리고 그의 비전이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 지를 되물으면서 현 일본사회에 있어 그의 공공철학 담론이 가지는 의 의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물론 일본의 공공철학 또는 공공성 담론은 비 단 김태창이 주도해온 <공공철학 교토포럼>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이 와 전혀 무관하게 일본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공공철학 담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이하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로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 <공공철학 교토포럼> : 왜 일본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4])19984월에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 약 17 년 이상 거의 매달 한번 꼴로 개최되었는데, 매회 3일에 걸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 주제당 발표 20분에 토론 40분이 주어지고 종합토론에 있어 철저한 화 위주의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 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 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 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공의 관점에서 학제간 토 론이 이루어져왔으며, 전술했듯이 그 내용의 3분의 1정도가 동경 학출 판회를 통해 <시리즈 공공철학> 20권으로 나왔으며, 기타 <시리즈 이 야기론> 3권 및 관련 단행본들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1회 포럼의 논의는 공과 사의 사상사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기조 는 공공은 공에 친 성이 있고 사의 반 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는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 본에는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관료사회의 특징인 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있었다. 이와 함께 전전, 메이지, 에도시 로의 회귀를 꿈꾸는 향 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김태창은 활사 개공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 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 긍정적인 측면을 점차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를 살아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 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 반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로서 의 일본을 송두리째 탈구축하려는 듯한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적 성향이 강한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해서 충돌과 불화가 적지 않았지만, 김태창은 역사상 이 일원적으로 민을 짓눌러온 일본에서 공공민과 함께 하는 공공으로 의미변용하 기 위해 공공철학을 동아시아삼국의 범위에서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전략

을 선택하게 된다.(야마모토 쿄시, 2013:4󰠏5)

  김태창은 이와 같은 포럼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을 네 세 로 구분하고 있다

  1. 예컨 제1세 의 미국 및 유럽 전문가들, 미조구치 유조를 비롯한 제2세 의 중국사상/철학/문화 전문가들
  2. 다나카 쇼조(1 841󰠏1913)민중적인 공공성 담론을 개발한 3세 의 일본사상/철학/문 화 전문가들,[5]) 
  3. 그리고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주자학 연구, 야규 마코 토(柳生眞)의 최한기 연구, 가타오카 류(片岡龍)의 한일비교연구 등 현재 공공철학 담론을 주도하는 제4세 의 한일 비교사상/철학/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다.(김태창, 2013_7:8󰠏9)

  이 가운데 특히 철학, 윤리학, 역사학, 사상사,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과학론, 공공정책론 등 다양한 학문적 입장에서 21세기에 알맞는 공공성 을 추구한 제1회 포럼에 즈음하여 김태창이 밝힌 취지에 주목해 보자. 그는 이때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공공철학의 기본 과제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중간적인 매개 역의 활성 화, 건전화, 성숙화에서 찾으면서 특히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공공성과 국가를 넘어선 공공성의 지평이 결합된 글로컬한 공공성의 창출을 제 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어 공사 관계의 규명 및 서구 공사관 계와의 비교를 통한 재구축의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김태창에 의하 면,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는 공사 담론은 의 문제에 편중되어 예컨 종래의 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책이라는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포럼은 철저히 화정신에 입각한 의미생성적 화공간12)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金泰昌, 2001a:ⅳ󰠏ⅺ)    이처럼 포럼 초창기부터 공공철학을 화로서의 철학으로 규정했던 김태창의 인식론적 태도는 그의 서구 경험에서부터 배양되었다. 그는 특 히 노르웨이에서 자기와 타자 사이에있어 립/갈등/분쟁하는 당사자 쌍방의 주장/요구/의도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입각한 재조명/재평가/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023/09/14

오구라 기조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코지마 츠요시 <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8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8.01.28 
한국 사상 통사通史 그려낸 가치있는 저술
코지마 츠요시 일본 도쿄대 교수

동양일보가 연중 펼치고 있는 ‘동양포럼’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온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 책 두 권을 펴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현대 한국 사회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리’와 ‘기’로 해부한 독창적인 한국론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출간됐지만 ‘조선사상전사’는 아직까지 일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조선사상전사’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교·불교·도교 등의 사상과 철학을 넘어 신화·역사·종교·정치까지 모두 담고 있다.

오구라 기조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조성환 <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8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8.01.28 

한국학의 새로운 지평 연 오구라 교수의 철학서
조성환 원불교사상 책임연구원


내가 생각하기에 이 땅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대략 1940년생 세대로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형효나 김경재 세대). 그 이후의 세대들은 이른바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거나 ‘근대화’의 세례를 받아서 ‘한국’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전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중국’이나 ‘서양’의 시각에서 한국을 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라진 이 전통이 일본 땅에서 일본학자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것도 단순히 이어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한국학의 지평을 열고 있다면 더더욱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 단절된 한국학의 계보를 잇다

1998년에 초판이 나온 오구라 기조 교수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조성환 역, 모시는사람들, 2017)는 ‘한국’ 전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세대의 한국학 연구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전통(조선)과 현대(한국)를 별개로 연구해 왔던 종래의 방식을 뒤집고, 현대 한국 안에 작동하고 있는 유교적 사유방식의 흔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국학의 지평을 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을 타자화 할 수 있는 ‘경계’에 서 있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한국은 ‘경계’나 ‘사이’에서 조망되기보다는 ‘외부’나 ‘내부’의 시선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중국철학이나 서양철학을 기준으로 한국철학이 서술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한국철학 안에서만 이해되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낯선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늘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지적을 받아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그런 ‘무의식의 한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역이 바로 유학이다. 종래의 한국유학 연구는 ‘조선’이라는 공간과 ‘학파’라는 영역에 제한되거나, ‘철학’이라는 분야와 ‘근대’라는 시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주리(主理)나 주기(主氣) 또는 퇴계학이나 율곡학과 같은 학파를 중심으로 연구되거나, 사단칠정논쟁의 철학적 함축이나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찾는 연구(‘실학’)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그 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동양포럼’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오구라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 유학에 대한 통념을 뒤집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학은 전근대적인 것”이고 “한국은 근대화된 국가”라는 등식이 암암리에 깔려 있어서, 이미 근대화된 한국에서 조선시대 유학이 작동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유학의 역할”에 주목하지 못하게 만든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철학의 대상을 철학자의 텍스트로 한정시키고 있는 한국학계의 학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철학이란 항상 철학사에 나와 있는 철학자들의 개념이나 체계를 이해하는 작업으로 여겨져 왔지, 그것을 가지고 현실을, 그것도 ‘한국’이라는 사회 전체를 분석하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철학과 정치와 사회가 일체화된 사회였다. 지금처럼 철학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치가나 행정가 또는 법률가나 과학자 할 것 없이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철학(주자학)에 대한 기본 소양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였다.

그런 조선에서 한국으로 전환된 지는 아직 10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주자학이 해체되어 버린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새로운 방법론의 도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이러한 허점을 찌르고 있다.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무시되고 잊혀져왔던 ‘주자학’의 영향력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종래의 분석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종래에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론은 거의 대부분 서양의 학문이론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학, 사회학, 여성학, 문학이론 등이다. 이것을 저자는 “외과수술적인 언설”(252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저자는 조선왕조가 실제로 채택한 통치이념인 리기론으로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즉 ‘내재적 방법론’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종래의 주자학 연구서나 한국사회 연구서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이와 같은 ‘내재적 방법론’과 더불어 이 책이 사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방법론은 ‘한일비교사상’이다.

이 책은 일본사상의 눈으로 본 한국사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이 작업은 최근에 나온 ‘조선사상전사’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종래에 비교철학이라고 하면 주로 중국과 서양의 비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간혹 가다 동아시아 삼국의 유학 등을 비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비교의 대상이 대부분 철학자들의 언설에 나타난 사상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 그것으로 한중일의 사회까지 비교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일 두 나라에서 중국의 주자학이 수용되고 토착화되는 양상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한일 양국의 사회적 모습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두 나라의 비교가 효과적인 것은 한일 양국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나라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거기에 자신을 투영시킴으로써 감추어진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사상으로서의 한국 연구

한편 최근에 나온 ‘조선사상전사’는 다루는 시간적 범위나 학문적 영역에 있어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 ‘조선’은 남북한을 아우른 ‘한국’을 가리킨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을 모두 대상으로 삼고 있고,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 등도 다루고 있으며, 학문 분야에 있어서도 철학을 넘어서 신화, 역사, 종교, 정치까지 포괄하고 있는, 말 그대로 “(문고판) 한국학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현대 북한의 사상과 인물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이 책의 제목이 ‘조선’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온 두 작품은 저자의 한국학 연구의 발전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가 ‘리’ 중심의, 그런 의미에서 ‘이성’ 중심의 한국론이었다고 한다면, ‘조선사상전사’는 거기에 ‘영성’의 요소까지 가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원효의 불교와 신라의 화랑과 퇴계의 유학과 수운의 동학을 ‘신라적 영성’으로 묶어내고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종래의 한국철학사나 한국종교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종래의 철학사는 철저하게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사를 기준으로 하거나, ‘학파’ 중심의 중국철학사를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의 풍류나 수운의 동학은 철학사에서 배제되기 마련이고, 설령 한국종교사에서 다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퇴계의 유학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과 종교라는 서구적 학문 분류를 넘어선 ‘사상’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틀을 적용하여, 일견 무관하게 보이는 사상가들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고 있다.



● 서구중심적 사관에 대한 경계

또한 저자는 방법론상에 있어서도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사용한 내재적인 방법론과 한일비교사적인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

먼저 한국사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사상의 순수성 확보”(제1장 ‘조선사상사총론’)에서 찾고 있는 점은, 저자 나름대로 한국사상사 전체를 조망한 결과 내려진 내재적 방법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결론이 일본사상사의 전반적인 특징과의 비교를 통해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교사상사적 방법론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상사’에 대한 평가를 신중히 하고 있는 점 역시 서구 중심적 사관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한국사상사 자체의 맥락에서 한국사상을 조망하고자 하는 저자의 신중한 사상사 서술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각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부분은 동학에 대한 서술이다. 흔히 한국근대사상사를 논할 때에는 ‘개화’ 부분이 압도적인 양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반대로 동학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개화와 척사를 합친 분량보다 더 많다), 이 점은 저자의 사상사 서술 관점이 한국사상의 독창성에 기준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저자는 “19세기는 ‘암흑시대’라는 인식은 오류일 수도 있다,” “이 시기는 극히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자나 문학자가 배출되고 있다”(240쪽)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사용되었던 한일비교사의 영역도 한일비교사상사에서 한일비교문화사 내지는 한일문화교류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고사기’나 ‘일본서기’, 또는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들을 활용하여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일교류사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가령 백제와 일본의 왕실 간의 인적 교류사나 한일 양국가의 불교교류사 등).

이 외로도 원효를 장자나 도겐(道元) 등과 같은 ‘메타 메타피지스트’(메타 형이상학자)로 위치지우는 독특한 해석이나, 조선과 일본을 왕조교체와 계급교체로 보는 문일평의 조선론이나 만해 한용운의 진보주의적 세계관 소개, 일본의 양명학과는 달리 한국의 양명학은 분석적이라는 비교 등등은, 한국인들이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발상이나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 다음 세대를 위한 한국학 지침서


이상의 여러 가지 점에서 나는 이 두 권의 책이야말로 장차 한국학을 하려는 소장학자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한국을 ‘철학적으로’ 또는 ‘사상적으로’ 알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 이 두 권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철학적 사유와 비교사적 시각은 물론이고, ‘한국’이라는 연구대상에 접근하는 진지한 태도와 깊은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오늘날 한국학계에서 이러한 식견과 열정을 가진 한국학자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앞 세대의 한국학의 정취와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미래의 한국학을 열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기자명 박장미 기자
입력 2017.10.23 

김태창 주간 삿포로 특별강연
민중 속으로 뛰어든 이들의 공통점
탈식민지화, 탈영토화 위해 온몸바쳐
일본제국주의 '천황 따르라'주입교육
폭력 아닌 '정답'논리로 인민들 지배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에서 열린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초영사관 초청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에는 훗카이도 지방정부인사, 학계, 기업관계자, 재일동포 등 3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동양일보)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 삿포로 3층 로이톤홀에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을 초청,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와 한국의 포석 조명희를 소재로 한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 내용을 야규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가 정리해 보내왔다. <편집자>

10월 1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호텔 로이톤삿포로(ロイトン札幌)에서 주 삿포로 대한민국총영사관 주최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조명희(趙明熙)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를 통해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하다’가 개최되었다. 바깥에서는 한반도나 일본의 혼슈(本州)보다 먼저 첫겨울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강연 장소인 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홀이 곽 찼고,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시작하기 전 홀에는 5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10여 년 동안 혼자서 살다가 세계적 가수가 된 최성봉 소년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그리고 존 레논의 ‘이메이진(Imagine)’,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의 ‘꿈의 끝(夢の涯て)’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모두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고 계속 꿈을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부른 노래들이다.
또 2시간의 강연을 마친 후에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려고 하는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김 주간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주최자 쪽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김 주간, 영사관 관계자와 미래공창신문 야마모토(山本恭司) 교시 편집인과 필자만이 경식을 취하면서 야심한 시각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아탑을 떠나서 ‘민중 속으로’
이 강연에 즈음하여 김 주간은 지금 왜 오늘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라는 한일의 대표적인 작가를 이야기하느냐에 대해 밝혔다. 포석 조명희(抱石趙明熙)는 잘 알다시피 1894년 마침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난 한반도 역사가 대전환된 해 충북 진천(鎭川)에서 태어났다.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석방 후 그는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로 유학하면서 재학 중에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1920년에는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로 창작극작가로 데뷔했다. 다음해 고국에 돌아온 그는 1920년대에 대표작인 ‘낙동강(洛東江)’을 비롯하여 많은 시, 희곡,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독립운동·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식민지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러시아의 한인촌에 가서 고려인 문학과 교육에 힘을 기울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말았다.
소세키도 역시 어린 시절은 불우하고 여러 번 입양되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젊은 소세키는 한시문(漢詩文)을 즐겼으나 문명개화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제국대학(帝國大學·뒤의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에히메(愛媛)와 구마모토(熊本)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문부성(文部省)의 명을 받아서 영국 런던에 국비유학생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신경쇠약을 앓고 귀국명령을 받게 되고, 귀국 후에는 도쿄대학 교수와 제일고등학교 강사를 했지만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의 신분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김 주간은 그들의 삶이 30대에 한국을 떠나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유학하고 또 50대에서 대학총장의 지위도 다 놓아두고 단신 일본에 가서 도쿄대학에서 공공철학 운동을 시작한 자기 인생과 겹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소세키와 조명희가 조금 스스로를 굽히기만 하면 상아탑 안에서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과 신분 보장, 그리고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문학자로써 민중 속으로 뛰어들고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위해 활명연대(活命連帶)하려 했다는 점이다.
젊은 소세키는 영어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본인으로서 무엇 때문에 영문학을 공부하는가? 문명개화(文明開化)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니 하기 위해 영문학자의 설을 일본에 수입하고 짝퉁 영국인이나 되자는 것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게다가 실제로 대영제국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살아보니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대제국을 건설해본들 거기에 사는 영국인들은 별로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당시의 제국 일본의 밝지 않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 것이다.
‘산시로’에서 주인공 산시로(三四?)가 도쿄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콧수염을 기른 (소세키의 분신과 같은) 남자와 같은 자리에 앉으면서 러일전쟁 후 “앞으로는 일본도 점차 발전하겠지요?” 라고 말하자 그 남자가 “망할 거야”라고 딱 잘라버리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말로를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엘리트 교원의 자리를 내던지고 소설가가 되었으며, 근대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에 분주하면서 내면이 ‘식민지화’된 지식층의 모습을 비판적 또는 풍자적으로 많이 그렸다.
한편 조명희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구체적으로 한반도 땅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소설에 많이 묘사하고 ‘낙동강’에서는 제국주의 권력에 의한 고문으로 빈사상태로 석방되는 독립운동·사회운동 지도자를 등장시켰다. 그 작품에는 경찰 측 인물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비록 놓인 상황은 다르지만 조명희도 소세키도 식민지화·영토화된 영혼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든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정답 없는 물음’을 계속 물어야
강연 중 김태창 주간은 김선우 화가가 소세키 작품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행인’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리고 조명희의 작품세계를 그려낸 ‘아무르 강의 생명수’, ‘낙동강’을 소개하고, 김영미 시인의 시 ‘낙동강이 흐른다’(일본어 번역: 오구라 기조 교수)를 낭독했다. 또 나츠메 소세키, 조명희,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루쉰(魯迅)의 세 사람에 대해 김태창 주간이 직접 지은 시 ‘정답 없는 물음’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정답 없는 물음’과 관련해서 김 주간은 일찍이 어느 고등학교 교장 연수회에서 강연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떤 교장선생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디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김 주간은 “고등학교까지는 정답이 있는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삿포로의 청중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강연 후의 만찬회 때 한 여자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로 들어갔는데 정답이 없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 정답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뒤에 영사관 직원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을 때에도 어느 직원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답’이야말로, 달리 말하면 재빨리 정답을 얻고자 하는 심리야말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로 이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막강한 군사력만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서양화가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세계를 농락했고, 일본제국주의는 “천황폐하를 신으로 받들고, 천황의 정부의 법을 따르고, 천황의 백성인 일본인과 같이 돼라.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식민지(본국도)를 지배했다. 히틀러의 나치스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답이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정답이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정답이고,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정답이다.
이처럼 모든 제국주의·전체주의는 폭력·통제·감시보다 오히려 ‘정답’을 가지고 인민들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시민이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계속 생각하는 백성(思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에의 뜻을 굳게 지키는 백성(志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배 권력이 내놓는 가짜 정답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뜻과 생각으로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두음을 가리고 항상 밝음(哲)을 선호하는 백성(哲民)이 되어야 한다고 김태창 주간은 강조했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는 모두 뛰어난 지성을 가지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안정된 지위와 생활을 내던지고, 여러 가지 병이나 관헌의 탄압과 싸우고, 시민들과 함께 문학작품을 통해 사민(思民)·지민(志民)·철민(哲民)이 되고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 주간은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기계에 의한 식민지화라고 경계한다. 사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치되고 장래 없어지는 직업이 거론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The Goldman Sachs Group)는 이미 서기 2000년 당시 600명 있었던 금융투자가를 현재 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또 2016년 3월에는 이세돌 기사(棋士)와 AI의 알파고(AlphaGO)가 대전하고 4패 1승한 일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승리라는 문맥에서 거론될 경우가 많지만 김 주간은 오히려 이세돌이 거둔 1승에 주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정보처리·분석능력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인공지능이라도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묘수(妙手)를 인간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철학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정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물을 줄 알아야 된다. 하지만 혼자서 그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벗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야규마코토(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 / 생각하는 노년, 수양하는 사회
기자명 박장미
입력 2018.09.11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조성환 원불교사상 책임연구원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말이 없는 스승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였다: “나는 이제부터 말이 없고자 한다(予欲無言).” 이에 놀란 수제자 자공이 반문한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후대에) 무엇을 전술합니까[述]?” 그러자 공자는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성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논어>‘양화’)

이 대화는 내용상 공자의 노년의 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이란 젊었을 때는 혈기왕성하여 자기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다가도 나이를 먹고 인생을 알아갈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사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제로 나를 키워주신 노년의 고모님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 모습을 공자는 하늘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의 대화는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년상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이 만물을 운행하고 생성하는 작용은 동아시아의 사상언어로 말하면 ‘덕’에 해당한다. ‘덕’이란 기본적으로 ‘힘’ 또는 ‘작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도 “자연의 가장 큰 덕은 생성하는 작용이다”(天地之大德曰生)고 하였다. 그런데 공자가 보기에 자연은 인간처럼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유덕무언(有德無言)의 존재이다. 공자는 이런 하늘의 덕, 자연의 덕을 닮고 싶다고 어느 날 제자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자가 선생이라는 점이다. 후학을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하는 스승이 어떻게 말이 없을 수 있는가! 노자식으로 말하면 “말하지 않는 가르침”(不言之敎)인 셈인데, 이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자공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영성과 성학(聖學)

대개 ‘말’(言)이란 남에게 자기를 표현하거나 지식을 전달할 때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말을 하는 유언(有言)은 이성과 감성의 차원을 말한다. 흔히 철학이란 이성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고(서양철학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문학이란 감성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자와 같이 정치나 교육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철학과 문학에 탁월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이 논리적이고 감동적이어야 듣는 이들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무언’(無言)은 어떤 차원을 말하는 것일까? <주역>에서 말하는 생성작용으로서의 ‘덕’이 말이 없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이성이나 감성과는 다른 어떤 차원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으로 어떤 세계에 해당하는 것일까? 여기에서는 그것을 ‘영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영성은 무언가를 생성해내는 힘을 말한다. 가령 만물을 생성하는 하늘의 덕은 가장 큰 영성의 힘을 가리킨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영성은 고전어로 바꿔 말하면 덕 또는 덕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것을 기르는 학문은 성학(聖學)에 해당한다.

물론 고전어의 덕(성)이 단지 영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덕목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성학 또한 철학과 문학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학문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성학은 “이성과 감성과 영성을 포괄하는 덕성을 기르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만 문학(文學)이나 리학(理學)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성학(聖學)이라고 할 때의 ‘성(聖)’에는 영성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칠게 말하면 ‘성학’은 ‘영성학’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영성의 가장 큰 차원이 하늘의 생성의 덕이라고 한다면, 성학=영성학은 하늘의 영성을 닮고자 하는 ‘하늘학’ 또는 ‘천학(天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는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성이 발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영성의 힘은 마치 하늘처럼 말이 없어도 조직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길러준다. 영적으로 성숙한 인간, 하늘을 닮아가는 사람,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생각한 바람직한 노년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전술하고[述] 싶었던 것은 이성이나 감성이 아닌 영성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노년의 공자의 학문세계는 이성교육이나 이성철학 또는 이성정치에서 영성교육과 영성철학, 영성정치로 중심이 이동한 것이 아닐까?



없는 듯 있는 존재

공자의 “말이 없는 하늘”에서 ‘없음’(無)이 단지 언어의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면 다석 유영모의 “없이 계신 하느님”이 될 것이다. 유영모가 보기에 하늘은 “없는 듯 있는” 존재이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애태타가 아무런 존재감이 없지만, 그를 한번 보는 사람은 평생 그를 잊지 못하듯이, 하늘 또한 가시적인 존재감은 없어 보이지만 만물은 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일종의 ‘없음’(無)의 존재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없는 듯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나 다석이 하늘을 닮고자 했다면 이런 ‘없음’의 존재방식을 닮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이러한 ‘없음’의 존재방식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없음’(無)의 존재방식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인들은 그것을 ‘비움’(虛)이라고 보았다. 즉 자기를 비우고 비워서 자기가 없는 영역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애태타가 사람들에게 주는 편암함은 여기에 있다. 자기를 비우니까 그 자리에 상대가 들어오는 것이다. 장자는 이것을 “나는 나를 상실했다”(吾喪我)거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기가 없다”(至人無己)고 하였다. 공자식으로 말하면 ‘자기’의 자리에 텅 빈 ‘하늘’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나는 말이 없고자 한다”는 “나는 하늘처럼 텅 비어 있고자 한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

하늘이 만물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없다는 것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텅 빈 그릇이나 거울과 같다. 그릇은 자기를 비워서 상대를 포용하고, 거울은 텅 빈 상태에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비추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릇에 자기가 들어 있다면 배제되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거울에 자기가 묻어 있다면 자기 의도대로 상대가 비춰질 것이다.

그래서 영성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수양이 요구된다. 자기 고집과 자기 주장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자기 부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수양이 쌓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성의 힘은 약해질지 몰라도 영성의 힘은 강해진다. 즉 덕이 축적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덕은 쌓는다/길러준다”(德畜之)고 하였다.

이 축적된 덕의 힘은 지금 세대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미친다. 공자가 “과거 세대를 잇고 미래 세대를 열었다”(繼往開來)고 평가받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래서 영성은 “미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이 미래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지옥이 된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의 기성세대의 영성의 약화를 꼬집는 젊은이들의 비판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를 세종은 “시후지도”(示後之道)라고 하였다(세종실록 24년 6월 16일). “시후지도”는 “후세에게 보여주는 도”라는 뜻으로, 세종이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정치를 했는지를 말해준다. 즉 그에게 있어서 정치란 단지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일종의 영성의 활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세종의 성학(聖學)이자 영성의 정치였다.

영성없는 근대

한국말의 ‘생각’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의미한다. 가령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니?”라고 할 때에는 전자에 가깝고, “너 평소에 그 사람 생각하니?”라고 할 때에는 후자를 말한다. 그래서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면 “생각은 배려가 동반된 사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령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할 때의 ‘생각’은 “자기 인생이나 세상에 대한 고려가 동반된 사유”를 말하듯이 -.

함석헌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을 때의 ‘생각’은 상식적으로는 철학적인 사유를 말하지만, 그리스도교적인 배경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전자를 이성적 차원의 생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영성적 차원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세종의 “생각하는 정치”는 이 두 차원이 결합된 정치이다.

흔히 “잘 살아보세!”로 대변되는 한국의 근대화는 영성보다는 이성이 강조되는 시기였다. 일단 배가 고프니까 배를 채워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도구적 이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이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다. 즉 한 방향의 ‘생각’만 사용한 셈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성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원불교처럼 “이성이 발휘되었으니 영성을 추구하자”는 운동이 사회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원불교의 슬로건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문제는 그 영향이 다음 세대에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앞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시후지도”라고는 이성적 생각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 차원에서만 사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헬조선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젊은이들. 우리는 이 곤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이 생각의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노년세대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상적으로는 사회가 영성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생각의 균형이 잡히는 것을 말한다. 젊은이들의 이성 중심의 생각을 노인들의 영성 중심의 생각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인들만이 만들 수 있는 공공세계의 모습일 것이다. 이 ‘공공’(함께 한다)의 범위에는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가 모두 들어 있다. 영성의 힘을 가진 자라야 이 보이지 않는 세대까지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는 도덕

영성으로 충만한 이들은 설교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설교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을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라고 부른다. 이런 비판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신호를 보내 왔다. 다만 어른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1994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교실이데아’라는 노래는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학생들의 ‘생각’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선생들의 ‘가르침’만 주입하려는 답답한 교실의 풍경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방탄소년단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사회 전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왜 해보기도 전에 죽여 걔넨. enemy enemy enemy.”(‘쩔어’) 이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실이기 때문이다. 오구라 기조 교수식으로 말하면, 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도덕지향적” 교실이기 때문이다(

오구라 기조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21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07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오구라 기조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오구라 선생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받은 것은 12월 10일의 한 모임에서 김태창 박사를 통해서였다. 그분의 신간이 반갑고 고마웠다. 집에 들어와 이내 그 책을 폈다. 그리고 하루에 다 읽었다. 읽히는 글이었다.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의 나쁜 버릇인 노루글(노루가 껑충껑충 뛰듯 책을 읽는) 이른바 적독(摘讀)을 하지 않고, 드물게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모두를 읽었다. 기쁘고 즐겁고 가슴이 후련하게 트임을 느끼면서.

오구라 선생과의 만남은 나에게 또 하나의 배움의 계기가 되었고 큰 가르침이었다. 글(文章)로써는 2016년 5월 9일자 동양일보의 동양포럼(5)에서부터, 대면(對面)한 것은 2016년 10월 1~3일의 동양포럼의 국제학술회의Ⅱ로 시작해 4번, 일본에 가서 1번이며, 그분의 저작(著作)에서는 <韓國은 하나의 哲學이다>(1998, 개정판 2011. 조성환 번역서 2017), <새로운 論語>(2013), <朝鮮思想全史>(2017), <京都思想逍遙>(2019),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2020)을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圖書)이다.

오구라 선생의 모든 저술과 발표 내용이,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많은 경우 ‘00은 이렇게 말했다’ 류(類)인데, 그분은 ‘00은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라, 참다운 ‘자기의 학문과 그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예지(叡智)와 온축(蘊蓄), 양심(良心)과 덕조(德操), 청빈(淸貧)과 열정(熱情)’의 학자 세분 중의 한분이라고 생각하여 달리 보고 있다.

오구라 선생은 위와 같은 풍도(風度)의 학자인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연 국제회의마다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여러 국적의 대학원박사과정 학생들을 국제 감각에 익숙하게 하려고 여비를 마련하여 데리고 왔고, 세션이 끝날 때나 휴식시간에 그들을 불러서 찰찰히 귀띔해주는 것을 보고 나는 참교육자의 모습이라고 감탄하면서, 그분의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하고 우리의 교육풍토를 반성하였었다.

여비를 보상하려고 항공료 영수서를 청하면 대학의 출장비로 왔다면서 발표 사례비조차 받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나오면 누구에게나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하고, 결코 일본말을 일언반구도 쓰지 않는다는 배려로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



Ⅱ.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은 제1장서부터 제9장까지의 내용이 첫째는 그 언설이 독특하고 예리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상과 주장이 참신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인격과 지향이 청랑(淸朗)하고 고상(高尙)하기 때문에 매료(魅了)된 것이다.

그 제1장에서 2장까지를 방법론과 개념규정으로 보고, 제3장에서부터 7장까지를 생명론, 특히 제3의 생명론으로 보며, 제8장은 경제론이고, 제9장을 코로나 재화 이후의 전망으로 매듭짓는 것으로 나누어 적어본다.

방법론에서 문명/ 문화/ 사상을 비교 조명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문화민족주의를 배제하고, ①문명/ 문화/ 사상을 어떤 국가와 본질적으로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은 기본적으로 배제한다. ②문명/ 문화/ 사상을 국가나 민족 등으로 틀을 짜지 말고, 그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성에서 이해하는 시좌를 구축한다. ③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저의 부분으로 항상 되돌리면서, 그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결말의 상호관계를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비교문명적·비교문화적·비교사상적 사고는 텍스트의 내부만을 탐색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역사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의 많은 지혜와 교감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들 사상과 철학을 만들어낸 하부구조에의 이해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가르침이다.

그 다음에 ‘군도문명과 대륙문명’의 개념인데, 군도문명을 해양문명과 굳이 구별하는 것은 일본이 독특한 문명과 사상성을 이룬 것이, 자연과의 조화라는 지정학적인 요구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やまと(大和=일본의 다른 이름)의 화(和)로서, (중국)대륙의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합(合)의 이념과 구별하려는 것이라, 합당한 비교라고 보았다. 일본을 ‘자연재난의 보고’라서 중국시스템에 동화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특히 우리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얼마나 은유적인 것인가? 역시 동아시아를 통(通)하고 통하게 하는 혜안(慧眼)이고 시각(視覺)이라고 생각하였다.





제3장 군도문명과 ‘논어’의 애니미즘, 제4장 제3의 생명, 제5장 세 가지 생명으로 문명을 해독함, 제6장 세 가지 생명으로 일본사상사를 해독함, 제7장 일본문화와 미의식인데, 이것들을 통틀어 핵심은 ‘제3의 생명’이라는 오구라 철학론의 가장 독특한 개념이다. 내가 그 ‘제3의 생명’론을 들은 것은 3년 전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었다.

이번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에서 ‘애니미즘과 제3의 생명’을 4개장에 걸쳐서 곡진하게 논술하고 있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공자(孔子)의 인(仁)도 제3의 생명이 빚어낸 보람이며, 맹자(孟子)는 공자의 사상을 역전시켰다고 하는 것 등은 얼마나 참신한 탁견인가?

애니미즘·샤머니즘·일신교를 세 가지 생명론으로 풀이하고, ‘제1의 생명’은 인간과 보통 우리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 곧 육체적 생명과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이다. ‘제2의 생명’은 인간이 유한한 육체적 생명에서 오는 허무감이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절대적 생명의 비원(悲願)에서 비롯된 절대적 생명에의 동경과 소망으로, 인간은 어느 민족이든 종교로서 정신적(spiritual) 생명, 영(靈)의 생명, 제1의 생명의 유한성에 대하는 영생(永生)의 생명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새로운 논리인 ‘제3의 생명’이란, ‘개인적 육체적 생명’도 아니고, ‘영생하는 영적인 생명’도 아닌 것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인류의 사상사(思想史) 종교사(宗敎史)에서 거의 무시되어 왔고, 혹은 주제화 초점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어떤 경우에는 물건과 물선 ‘사이’에 우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생명’, 그것을 ‘제3의 생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가엽다’나 ‘화기애애하다’로 표현하여온 ‘상태’,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미(美, 아름다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문화의 미의식에서 ‘もののあはれ=가여움’, ‘わび=스며드는 정취(情趣)’, ‘さび=한적(閑寂) 또는 청한(淸閑)’ 등은 우리가 말하는 ‘느꺼움’의 차원이다.

그분이 자신 있게 구사하는 한국어의 ‘아름답다’를 어근·어간·어미의 어원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의 미의식을 말하는데, ‘아름답다’에서 아람(實⟶球)·알다(知)·알(卵)-알차다(充實)-차다(滿) -참(眞)으로 연상하고, 그래서 우리의 ‘아름답다’는 생명, 완벽, 공(球), 진리, 지식 등의 관념이 있다고 설파한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의 미의식에는 보편성에의 강력한 지향성이고, 그와 함께 현저한 도덕지향성이라는 추리에, 나의 의식세계를 그분이 이렇게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서 흠신(欠身)했다.

또 ‘くはし’와 ‘곱다’가 ‘예쁘다’는 뜻으로 동근(同根)이라고 하면서, ‘곱다’를 섬세한 미를 나타내는 말이며, ‘くはし’의 어근을 kuph라 하고 ‘곱다’의 어근 kop와의 유사성을 들고 있는데, 그것의 개별성과 시간성의 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에서 본 ‘아람’과 ‘알’의 형상인 둥근꼴의 공(球)은 일본어에서는 ‘たま(玉)’인데, 그것은 일본의 고대어에서는 사람과 사물의 안에 있으면서 그 본질적인 생명력에 내장하는 ‘정령(精靈)’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언령(言靈)/ 진혼(鎭魂)=영혼(靈魂)을 예거(例擧)한다.

그리고 ‘たま’는 ‘-しい(←ひ)’라는 접사를 붙이어 ‘たましい’가 되어서 ‘혼(魂, soul+spirit)’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아름답다’의 ‘알’이 음성(陰性)모음으로 전성하면 ‘얼’이 된다고, 그러면 일본어의 ‘たましい’와 한국어의 ‘얼’은 뜻에서 근접성을 가지게 된다고 해석한다.





제8장의 경제론을 열었을 때에서는 의아해했다. 이분이 경제까지 관심하고 계신가? 학고.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철학적으로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일본경제의 침체를 보고, 소련의 붕괴를 보고 논단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두 가지 축을 물(物)자본주의와 돈(貨幣)자본주의로 보면서, 물물교환의 가치시대에는 생명유지라는 애니미즘 곧 ‘제3의 생명’이 존중되었는데, 돈의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생명유지가 아니라, 잉여(剩餘)의 활동과 나아가서 선진국에서는 취미나 여가를 위하여 대량생산과 유통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여기에서 일본 경제의 침체는 당연한 것이라는 본다.

공산주의는 왜 실패하였는가를 다루어서, 유물론(唯物論)이 생명도 물건도 물질이고, 모든 것은 물질적 기반으로 환원되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다. 권력은 그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생기고, 그 정신이야말로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제2의 생명’으로서, 권력에 무한정의 힘을 부여하게 된다. 그 가장 성공한 나라가 북조선인데, 김일성이 국민에게 준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 ‘제2의 생명’이 비대하여진 까닭으로 국민의 ‘제1의 생명’은 피폐하고 마모하여서 국민의 생명유지라는 점에서 실패하여 붕괴직전이지마는, 국가의 생명은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간의 의욕=성취욕을 간과(看過)한 데’서 보아왔는데, 오구라 선생은 국민의 ‘제1의 생명’ 유지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제2의 생명’을 강화하여, 그 근본인 ‘제3의 생명’을 철저하게 멸시 내지 도외시한 데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물신숭배(物神崇拜)라는 말로 ‘제3의 생명’을 적대시한 일이 실패의 연원이라고 한다. 섹스피아의 큇프로쿠(quid pro quo=something for=되갚음/ 대상물)를 나쁜 것으로 비판했는데, 그것이 곧 ‘제3의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는 지금 ‘가진 자는 더욱 더 소비하지 않고, 안 가진 자는 더욱 더 싼 것을 산다.’는 20년의 풍토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곧 우리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 해결책은 오직 하나, 경제활동과 생명과의 관계를 재정의(再定義)하는 일이라 하고, 일본경제의 지난 잃어버린 30년의 결점은 ‘물(物)에 대한 감성의 상실’이니, 이제는 생(生)/ 생명이 빛나는 경제를 위한 두 가지로—하나는 물의 생생한 단면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間)철학’에서, 사(私, 제1의 생명)도 아니고 공(公, 제2의 생명)도 아닌 공(共, 제3의 생명) 곧 공공(公共)하는 경제행위— 가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를 근원적으로 부활시키는 것은 물의 생생함을 느끼는 것과 교환/ 보수의 순간에 ‘제3의 생명’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경제에서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젊고 어린 세대들이 지금 물건 아까운 줄을 모르고 자라고 살고 있지 않는가?





이제 코로나 사태라는 지구촌 미증유의 환난을 격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 이후의 정세를 살펴나간다. 그 환난을 겪으면서 모든 나라들이 ‘제나라’라는 경계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국경을 개폐(開閉)하는 고민, 또 하나는 UN이나 EU나 WHO 등 주권국가를 넘는 조직이 무력함을 드러냈다는 자각에서, 주권국가만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변화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강대국도 선진국도 그 허울과 너울이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말았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이란 무엇이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더는 그 허망에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영향력 있는 국가’란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비전인 ‘soft power’ 곧 ‘제3의 생명’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3의 생명’만으로는 안 되고, 개별적인 군사력 곧 ‘제1의 생명’과, 보편적인 이념적 파워 곧 ‘제2의 생명’과,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사이’의 힘 곧 ‘제3의 생명’을 모두 강대하게 갖춘 주권국가라야 영향력 있는 국가라고 말한다.

이제는 ‘붉은 시대’도 지나갔고,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라는 구도는 동일화할 수 없으며, 세계가 중국적인 강권과 초월적 이념에 의하여 통어(統御)된다면, 일본은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의 귀납주의적 경험주의적 반초월주의적 세계관의 존속‧ 갱신을 짊어지고, 몸을 던져서 군도성(群島性)을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 결코 일본의 민족주의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명을 일본이 이끌지 않고 어쩌겠는가라는 것이다.

(이웃에 한국이 있어서) 한국은 어찌되고 있는가? 한국은 군도이면서 해양국가라는 말을 하지만 군도국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의 문정권은 주체성을 북한에 접근하려 하기 때문에 점점 군도성에서 멀어져 간다. 문명론적인 의미에서도 지금의 한‧ 일은 떨어져 가는 중이라고 본다.

한국은 ‘절대적인 진리’를 희구하는 니라이다. 한국의 정치방법은 중국의 ‘하달(下達)’식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아래에서 위로 저항한 것이나, 그것도 애니미즘은 아니었다. 한국은 미국중심의 세계적 가치를 자국에 가져오는 인재가 힘을 얻고 있다. 왕년의 한국 지성인은 보편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주체들이었고, 패권주의나 부정의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정신을 가진 참다운 지성이었으나, 지금의 주체들에게서는 그러한 비판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는데, 이것을 ‘동아시아의 위기’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구라 선생은 ‘공창하는 동아시아의 연대’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고, ‘논어’도 새로운 각도에서 본 것처럼, 미래도 어디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고, 도덕도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며, 참다운 논어의 방법은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진리’나 ‘생명’만이 아니라, ‘자아’라는 것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논어와 군도문명이라고 생각이라고 한다. 이 4반세기 동안 일본에서 ‘공공철학(公共哲學)’을 제창하고 있는 김태창 박사는 ‘내발(內發)’이 아닌 ‘간발(間發)’이라고 하는데, ‘진리’와 ‘공공성’과 ‘도덕’과 ‘생명’과 ‘나(自我)’는 내면이나 외면이나 초월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제부터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방향성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이의 철학’이라는 것은 ‘사이의 생명’인 ‘제3의 생명’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철학이다. 곧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에 이 ‘사이’의 가치가 인식될 때, 그 선구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임이 일본에 있지 않겠느냐고 맺고 있다.



Ⅵ 맺음—오구라 선생을 위한 기도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

타의에 의하여 이 졸고를 폈으나, 나의 소졸함으로 오구라 선생의 넓고 크고 높고 깊은 학문적 서술이 오독-오판-왜곡으로 손상될까 두려운데, 제발 그런 착오가 적었기를 바라면서, 그분의 구도적 탐구의 전도가 더욱 탄탄하고 그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지도자라는 위인(爲人)들이 사람을 잡고 질서를 파괴하는 풍랑(風浪) 속에서, 양심과 진리로 인간사회의 정도(正道)를 찾아 깨우치는 오구라 선생의 거조(擧措)에 건강한 정진만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오구라 선생의 저술의 행간(行間)에서 넘치는 에너지를—그 은유와 함축이 무엇인지 폭발할 것 같은 힘— 보는데, 오구라 선생의 연구와 봉사가 ‘미래공창(未來共創)하는 동아시아에’의 소망 그대로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이상이 내가 오구라 선생의 신간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읽은 소감인데, 꼭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책에는 방법론으로 시작하여 끝까지 시종일관 한국과 한국인 학자의 주장을 비교 인용한 것이 적지 않다. 우리 학계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여겨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나와 널리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오구라 기조의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오오하시 켄지·< 동양일보 2021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21 

글 오오하시 켄지·
야규 마코토

[동양일보 동양포럼 기자]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와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서평을 동양포럼에 보내왔다. <편집자>
오호하시 켄지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鈴鹿醫療科學大學 강사)

약간 옛날의 이야기가 되는데 세계적으로 큰 화두를 던진 새뮤얼 P. 헌팅턴 <문명의 충돌>(1996년)은 세계의 주요 문명들을 여덟 개로—서구· 이슬람· 라틴아메리카· 힌두· 러시아정교회· 아프리카· 중화· 일본─ 분류했다. 세계 8대 문명 중 하나로 ‘일본문명’이 손꼽힌 것으로, 위대한 일본문명이 드디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줄 알고 기뻐한 덜렁이 보수파 논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본문명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본문화는 “고도로 배타적”이며, 여기에는 타국과 공유될 만한 보편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그것을 전달해주어서 공통된 문화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없는 특수적이고 배타적인 ‘고립문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대문명으로서의 ‘대륙문명’과 비교하면서 일본문명을 ‘군도문명(群島文明)’으로 형용하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이 책은 일본의 ‘고립문명’을 상대화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에서 일본문명의 본질과 가치 해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한국철학· 사상의 전문가이자 비교문명학회 회원으로도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일본 비교문명학의 선구자인 야마모토 신(山本新, 1913-80)은 1960-70년대에 발표한 논문집 <주변문명론(周邊文明論)>(刀水書房, 1985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근대 서양적 ‘대문명’ 대 비서양적 ‘주변문명’이라는 것이 비교문명학의 기본적인 틀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와 같이 ‘대문명’을 우월적인 것으로 보고 ‘주변문명’을 일방적・ 일원적으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된다. ‘근대 서양-비서양’=‘중심-주변’이라는 서양 중심주의의 개념 틀로 문명을 고찰하는 ‘수직적인 축’ 이외에 서양 이외의 주변문명들끼리 비교하는 ‘수평적인 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대륙의 문명’과 ‘군도(群島)의 문명’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한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서양문명에 흠뻑 빠진 일본과 한국이라는 ‘주변문명’ 즉 일본-한국이라는 ‘수평적인 축’에서 일본문명을 비춰보고 고찰한다. 이와 같은 고찰에 있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세기 최대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문명을 집합심성적인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것은 일련의 사회· 경제를 큰 변화 없이 계속 살아가며 때때로 파란만장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고 했다.(<문명의 문법Ⅰ 세계사 강의(文明の文法Ⅰ 世界史講義)> 1987년). 표층의 사회적 변동과는 별도로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부동· 불변한 것으로 문명에는 당연히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을 살펴보자. 저자는 일본의 문명· 문화· 사상의 본질이 ‘애니미즘’적인 생명관, 정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일본의 독특한 ‘미적 생명’=‘제3의 생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제1의 생명: 생물학적· 육체적 생명=개별적· 객관적· 상대적· 물질적 생명.

제2의 생명: 영적 생명=보편적· 절대적· 종교(정신)적· 비물질적· 집단적 생명

제3의 생명: 미적 생명=간주관적· 우발적· <사이>적 생명, ‘지금·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

제1의 생명은 그렇다 쳐도, 제2의 생명인 ‘영적 생명’이라는 말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지만,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국의 연구자에게 흔히 보이는 일이다.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죽음의 철학'을 강의하고 일본 생사학의 제1인자로 2020년 9월에 서거한 아르폰스 데켄(Alfons Deeken)도 일본에는 ‘삶의 미적 측면’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세계가 ‘유용가치와 도구가치’를 ‘생명가치와 유기체적 가치’의 상위에 두는 ‘공리주의적 문명의 에토스’로 뒤덮여버린 것을 데켄은 몹시 개탄했다. 한편 아시아가 가지는 고유한 에토스, 특히 일본에서 뚜렷한 ‘미의 에토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일본의 미적 에토스는 서양문화에서는 대부분 잠자고 있는 인간의 풍요로운 잠재적인 능력을 구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인간성의 가치를 찾아서(人間性の価値を求めて)> 아우치 마사히로(阿內正弘) 옮김, 春秋社, 1995년).

데켄이 말한 것은 감각적· 예술적인 ‘미’=미적 감수성인데, 저자는 한국어로 우주적· 보편적인 미를 나타내는 영적이고 생명적인 ‘아름답다’와의 대비로,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중기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서 사용된 ‘오카시(をかし)’와 ‘아와레(あはれ)’, 혹은 ‘유현(幽玄)’ ‘와비(わび)’ ‘사비(さび)’ ‘이키(いき)’ 등을 미적 생명적인 <제3의 생명>을 언어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저자의 특유한 세계관에 의한 것이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이 ‘제3의 생명’인데, 이것은 “사람들과의 ‘사이’나 사람과 사물과의 ‘사이’에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명’”을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 등 대문명 ‘대륙문명’에 대표되는 군사적 힘 같은 ‘제1의 생명’이나, 보편적 이념의 힘 같은 ‘제2의 생명’은 타자를 압도하고 지배하에 두려는 경향을 면치 못한다. 이에 대해 자기와 타자(사람· 사물)와의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을 핵으로 하는 일본적인 ‘군도문명’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월(包越; 포섭하고 뛰어넘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협한 내셔널리스트’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세계를 ‘대륙문명’형으로부터 일본적인 ‘군도문명’형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문명을 일본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논자는 학자· 연구자의 테두리에 박히지 않는, 시대 구제의 뜻을 가진 사상가로서의 저자의 뜨거운 정열을 본다.

한편 ‘제3의 생명’을 ‘영원의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으로 단정하고 강조하는 그러한 ‘지금· 여기’ 개념은 도겐(道元) 스님이 말하는 ‘이금(而今)’, ‘전후제단(前後際斷)’과 같은 선종(禪宗)의 핵심으로 절대현재에 사는 동양적인 깨달음의 도달점이지만, 반면에 모종의 찰나적,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함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제3의 생명’의 참뜻이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공공철학의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제창하는 ‘사이의 철학’과─김 주간의 정확한 표현에 따르면 ‘사이로부터의 철학’─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철학은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를 잇고 맺고 뛰어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머니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지배 아래, 격차사회에 따른 분단과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불관용이 만연하는 현대 세계에서, 군도적(群島的)인 ‘제3의 생명적’, ‘사이적’ 문명을 일본이 앞장서서 세계에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창(共創)하는 동아시아로’라고 호소한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신형코로나바이로스로 가로막히고 먹구름이 드리우는 나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세계 사람들, 거대한 재앙에 신음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다.

번역: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

야규 마코토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오구라는 이 책의 벽두에서 비교문화의 방법론을 심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보통 ‘대륙’과 대비되는 것은 ‘해양’이다. 하지만 대륙·해양의 분류는 안보 또는 국제정치상에서 주권국가의 세력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오구라가 말하는 ‘군도(群島, archipelago)’는 바로 바다 위의 섬들에게 인간이 살고 문화나 문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태를 나타낸다. 즉 대륙·군도라는 구분은 문명론적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오구라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오구라는 나름대로의 문명론을 전개함에 앞서서 그 방법론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의 비교문명론이 범한 오류들에─문화 내셔널리즘, 문화 본질주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에의 의존, ‘인간’이라는 근본에 대한 자각의 결여 등─ 대해 경계한다. 이와 같이 철저한 방법론적 반성과 ‘제2의 생명’ 및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은 오구라 문명론을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유성종(劉成鍾),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두 분 선생님이 먼전 논평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먼저 그것을 살펴보고 나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유성종은 이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요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또 오구라가 논어도 새로운─‘제3의 생명’이라는─각도에서 다시 읽은 것처럼, 미래도 도덕도 어디 있는 것을 찾거나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어야 하며,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다,라는 메시지를 도출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유성종은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오구라의 논고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오하시 켄지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군도의 문명/ 대륙의 문명’이라는 틀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하면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 발의 글러벌리즘에 흠뻑 빠진 ‘주변문명’으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비교・ 고찰이라는 ‘수평적인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 이와 같은 고찰에서 저자와 견줄 만한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오구라가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봄과 동시에, ‘제3의 생명’이라는 생명론적인 축을 도입한 데에도 독자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오하시는 오구라가 강조한 ‘제3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인데, 이것은 중세 일본의 대표적인 선승인 도겐(道元, 1200-1253)이 말한 ‘이금(而今)’ ‘선후제단(先後際斷)’과 같은 선(禪)의 핵심이자 절대현제에 사는 동양적 깨달음의 도달점과도 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한 현실주의로 타락하거나 모종의 찰나적(刹那的),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오하시는 그것은 기우(杞憂), 즉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군도의 문명이─구체적으로는 일본문명─ ‘제3의 생명’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오구라의 참뜻은 마지막 장에서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결코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 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제3의 생명에 기초하면서 타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 ‘사이’를 잇고 맺고 넘어서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과 더불어 밝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제1의 생명(물질적・ 육체적・ 생물학적인 생명)이나 제2의 생명(영적・ 보편적・ 영생적인 생명)과 다른, 덧없고 순간적이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 사이에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에서 ‘문화’와 ‘문명’을 다시 읽으려고 한 오구라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것은 중화문명・ 서양문명과 같이 제2의 생명에 입각한 이른바 ‘보편문명’의 시각에서 비하된 제3의 생명을 복권시키고 다시 빛을 바라게 했을 뿐, 만약에 제3의 생명(과 거기에 바탕을 둔 군도문명)이 고급하고 제1, 제2의 생명(그리고 대륙의 문명)은 저급하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오구라는 불교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일본적 영성’론에 의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의 도읍지인 헤이안쿄(平安京)에 살던 귀족들은 섬세한 ‘제3의 생명’의 기미에는 민감하게 정신을 집중시켰으나, 그 ‘생명’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음은 있어도,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아직 ‘대지(大地)’를 모르고 ‘영성’을 몰랐다. 그런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에 오면 헤아안쿄에서 멀리 떨어진 동국(東國)에 살던 무사, 농부, 승려들이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영성’과─오구라에 의하면 ‘제2의 생명’─ 만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 안에서도 제2와 제3(그리고 당연히 제1)의 생명은 서로 상관연동하면서 삶의 영위와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제1, 2, 3의 생명’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제2와 제3의 생명의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군도의 문명에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제3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구라의 생명론적 문명론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문명・ 문화의 개별성의 양쪽을 아우르는 것이다. 만약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오구라의 주장을 ‘제3의 생명’ ‘애니미즘’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군도문명=일본문명이 주도권을 잡고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대륙=해양문명이 좌지우지하는 세계를 바꿔보자는 신종의 문화적 패권주의의 주장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논자가 보기에 ‘제2의 생명’과 ‘제3의 생명’은 원래 그 원천이 다르다. 저자가 밝혔듯이 덧없이 살다 죽는 한계(제1의 생명)를 가진 인간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하나(1)’라는 관념을 극도로 추구한 결과 도달하게 된 것이 ‘제2의 생명’이다. 이에 대해 ‘제3의 생명’은 개별성, 순간성, 감각성을 지닌 것이고, 또한 어린 아이가 철들기 전에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나날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고 다루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가 아끼는 인형과 말하고 역을 떠나는 열차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바로 그때 그(녀)와 인형이나 열차 사이에는 ‘제3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도 ‘다오야메부리(たおやめぶり)’ 즉 “덧없고 아녀자(兒女子)같은 것”이며 여성적이고 유약하고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것이 인정(人情)의 본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라고 말했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무사적인 “올곧고 씩씩한” 마음가짐은 오히려 ‘가라고코로(漢意)’ 즉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꾸며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약함이 곧 일본의 원래 정신이라는 노리나가의 주장은 무사사회 일본에서는 아주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은 오구라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새로운 복지와 교육, 리얼리즘도 설계주의도 아닌 외교 방식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저자가 ‘아니미즘’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에 의해 변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구라 생명론과 문명론이 장차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