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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4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환단고기 콘서트 영상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글로벌대한 천부경2 0 349 2019.06.03 19:38
14 https://www.youtube.com/watch?v=vzL6vb8h73s10 https://www.youtube.com/watch?v=Lrp2_Lc6IUs




HD 환단고기 북콘서트 - 천부경, 인류원형문화를 열다


천부경은 인류 제일의 진리 원전, 우주 조화사상의 원류
道紀 148. 5. 31(목), 세계환단학회,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
결론은 동북아 역사문화 주도권 대전쟁이고 인류의 시원 창세 역사, 원형문화를 복원하는 새로운 전쟁입니다. 이것을 동력원으로 하여 앞으로 남북 통일시대를 넘어 지구촌 동서 통일 문명권 시대, 즉 개벽시대를 맞이합니다.

오늘 살펴볼 「천부경」은 ‘우주 수학의 원전’이고, ‘우주 신학의 원전’이며 동서의 종교, 과학, 철학사상의 ‘인류 문화 원전’입니다. 우리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원, 그 진리의 근원을 밝혀주는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고 하늘의 영원한 이법을 드러내는 경전이며, 이 하늘과 땅을 노래한 진리 원전입니다. 「천부경」을 보통 상경上經, 중경中經, 하경下經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경 내용 중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은 우주 창조의 근본 본체인 ‘하나’는 시작인데 그것은 창조의 시원 본체인 ‘무’에서 비롯된 하나다. 그리고 하나가 갈라져서 우주의 현실적인 3대 궁극자인 ‘삼극三極’,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타났는데 그렇게 나눠져 있는 삼극의 바탕은 다함이 없다는 우주 생명의 영원성, 항존성을 나타냅니다.

그 다음에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존재 정신을 정의하는 것인데, 하늘은 양의 근원으로서 일이요, 어머니 땅은 음의 근원으로서 이이며, 사람은 천지와 합일 되어서 우주의 꿈을 완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삼입니다. 이 삼극의 변화 모습이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櫃化三’인데, 하나의 기운 ‘일’이 축적되고 쌓이는 선천 변화를 거쳐서 ‘십’으로 커지고 열리는 후천 변화를 한다는 겁니다.

중경에서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은 삼대 궁극자에 대한 정의로서 하늘도 땅도 인간도 음양운동(二) 3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는 우주의 궁극자 하늘과 땅과 인간이 삼합을 하면, 육이 되고, 이 ‘육’을 근본으로 해서 ‘칠팔구’가 생한다는 것입니다.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삼과 사의 구성원리로 운행되는데, 그 순환운동에 대한 수가 ‘오칠’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것은 오행과 칠성으로 우주의 순환 체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경에서 ‘일묘연一玅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은 이 ‘하나’가 현상세계에서 오묘히 확장되고 발전해서 수없이 오고가도 작용이 변해서 부동의 근본, 우주의 진리 본체 세계로 화해 버린다는 겁니다.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昻明’은 근본은 마음인데 태양의 광명에 근본해서 앙명, 한없이 밝다는 것이고,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은 사람이 천지의 중심을 관통해서, 천지를 꿰뚫어서 궁극의 하나가 되는 것인데 이게 태일이에요. 마지막 구절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은, 하나는 마침이며 그 하나는 무에서 끝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상경은 ‘삼극’이 핵심이고, 중경은 ‘삼합’이 핵심인데, 이 ‘삼극’이라는 게 천일 지일 태일입니다. 그리고 하경에서 말하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이 우주의 새로운 탄생이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우주의 진리의 주제, 도통과 기도, 깨달음과 역사의 근본 주제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로 그 꿈의 주인공 우리 인간에 대해서 깨닫는 ‘삼극’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삼극은 ‘삼합’을 통해서 영원히, 새롭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인생 공부, 수도, 기도 공부, 진리 공부라는 것은 삼합입니다. 천지부모와 내가 진짜 삼합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것이 진정한 서양의 삼위일체 문화의 원형사상인 것입니다.

우주와 나의 문제를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 ‘다시 개벽’을 외친 근현대사 출발점 동학입니다. 이 ‘다시 개벽’을 참동학 증산도에서 후천개벽 사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천부경」이 ‘제일의 인류 시원문화 원전’인데, ‘일적십거’에서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성부 아버지가 오십니다. 동학에서 말하는 천주를 만나고 천주를 모심으로써, 우주의 열매 진리가 나옵니다. 그 책이 바로 지난 백 년 역사에 걸쳐서 나온 『도전道典』입니다. 『도전』은 ‘가을 우주의 제일 경전’입니다.

「천부경」은 ‘우주의 조화사상 원류’이고, ‘동서의 정치 또는 역사문화 원형문화의 원전’입니다. 또 ‘유·불·선 모든 종교사상의 제1의 원전’이고, ‘우주의 지존자, 우주 통치자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록’입니다. 또한 앞으로 십무극 시대, 대우주 조화 인존시대가 열린다는 미래 경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지구촌 동서문화 시원사상 경전


오늘 주중에 하루 종일, 잃어버린 우리 시원 역사 문화정신을 복원하는 데 함께해 주신 데 대해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 소중한 연구 결과를 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감동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우리의 역사 전적들을 다시 한 번 깨어나서 꼼꼼히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 문화, 철학, 소중한 성자들의 말씀, 종교, 그 속에 담겨 있는 창조관, 인간관, 세계관 이런 모든 가르침의 원본, 문화의 원본이 『환단고기』입니다. 『환단고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문화 원전 의미가 복합돼 있다고 봅니다.

오늘 준비한 것은 많지만, 그 골수만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결론은 역사전쟁입니다. 동북아 역사문화 주도권 대전쟁입니다. 인류의 시원 창세 역사, 원형문화를 복원하는 새로운 전쟁입니다. 이것을 동력원으로 하여 앞으로 남북 통일시대를 넘어 지구촌 동서 통일 문명권 시대, 즉 개벽시대를 맞이합니다.

공공철학公共哲學을 전공하신 충북대학교 김태창金泰昌(1934~ ) 명예교수님이 「어느 철학자의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글에서, 자신이 국내는 물론 해외를 다니면서 학문 활동을 해보면 철학의 빈곤을 아주 뼈저리게 절감하고, 참담한 심정에 빠질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명한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朴鍾鴻(1903~1976) 교수가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의 초청을 받았을 때 있었던 일화를, 어떤 신부님의 회고담에서 읽었다면서 소개했습니다.

평생을 ‘존재Sein’를 화두로 해서 인류의 밝은 정신의 빛을 복원하려 한 하이데거가 그때 박종홍 교수에게 뭐라고 했는가? ‘나는 중국철학도 좀 들어봤고 일본철학도 들어봤다. 그런데 한국철학은 근원철학radical philosophy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문서가 「천부경」이라 하더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천부경」을 직접 내놓고 ‘이것을 좀 해석해 달라’고 했는데, 박종홍 교수는 서양철학만 공부하고 한국의 시원 역사와 철학 공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해석해 주지 못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인구에 회자하는데, 하이데거가 과연 「천부경」을 읽었는가? 저 유명한 20세기의 대표적인 하이데거 대철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무사상無思想을 실제로 「천부경」에서 가져왔습니다. 「천부경」은 이미 20세기 초엽에 서양에 건너가서 유럽문화 정신사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것입니다.



「천부경」은 우주 진리 경전


그러면 「천부경」은 어떤 경전인지, 세 가지로 간단히 정리를 해 봤는데요.

첫째로 「천부경」은 ‘우주 수학 원전’입니다. 인간과 우주의 수수께끼를 수로써 정의한 거예요. 1에서 10까지 열 개의 숫자를 가지고 진리를 정의한단 말입니다. 이 얼마나 신나고 놀랍고, 진리를 탐구하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열 개의 숫자로써 그동안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의 근본 명제,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향하는 근대사의 진리 중심 주제 ‘개벽’에 대해서 이미 약 1만 년 전에 인류문화 원전 「천부경」에서 놀랍게 정의를 한 것입니다. 대개 한 글자 내지 두 글자, 많아야 네 글자로 너무도 간명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암송을 하면서 어느 날 「천부경」의 그 진리 맛을 제대로 알면 나름대로 크게 느끼는 정서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주 신학 원전’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신을 삼신이라 한 것은, 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이고 구도적이며, 신의 실상에 어울리는 명쾌한 정의라고 봅니다. 여기서 삼신을 우주관의 언어로, 삼극사상三極思想으로 전개하는데, 이건 정말로 놀라운 거예요.

셋째로 「천부경」은 동서의 종교, 과학, 철학사상의 ‘인류 문화 원전’입니다.

「천부경」의 전수 내력


「천부경」은 일찍이 동서 문화의 고향인 환국에서부터 입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국구전지서桓國口傳之書’라 했으니, 그때도 어떤 형태이든 언어가 있었을 겁니다. 아마 환국의 시원언어를, 그 당시 살던 인류의 조상들이 천상에 다 있으니까 앞으로 채널링 같은 것으로 그 조상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복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후에 환국 문명이 동서 문명으로 분화되던 6천 년 전에 커발환 시조 환웅께서 동방 태백산에 오셨는데, 그때 역사를 기록하는 문자 담당 사관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는 문자, 녹도문鹿圖文으로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뒤 신라 때 최고운崔孤雲(857~?)이 이것을 찾아서 한문으로 기록을 했어요. 묘향산 바위에 새겨진 것을, 20세기 초엽에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1864~1920) 선생이 약초 캐러 산에 들어가서 기적적으로 발견하여 탁본을 떴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적은 편지 내용이 있어요.

그리고 단군조선 시대 때 제왕들이 봄가을에 천지의 원 주인이신 아버지 천주님에게,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상제님이라 하는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에게 천제를 올리고 나서 온 백성들과 더불어서 술 마시고 노래했는데, 그때 11세 도해道奚 단군이 ‘논경연고論經演誥’ 즉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론하셨다는 기록이 『단군세기』에 있습니다.

그 뒤 고구려 때 「천부경」의 핵심 사상이 들어 있는 ‘다물흥방지가多勿興邦之歌’를 불렀고, 대진大震 소위 발해라는 나라에서 4세 문황제文皇帝가 태학太學을 세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게 하셨어요.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363~419) 은 『징심록澄心錄』에서 「천부경」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고려 말에 이색李穡(1328~1396)과 범세동范世東(1342~1396)이 각기 「천부경」 주해서를 썼어요. 또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에게 ‘천부와 인’이 무엇인지 물었다는 내용이 『태백진훈太白眞訓』에 있는데, 이암이 무인시대를 종결시킨 류경柳璥(1211~1289)이라는 분의 가장구전家臟舊傳을 인용하면서 천부와 인을 설명했어요. 여기서 「천부경」에 대해 정의한 대목이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정조正祖(1752~1800) 임금이 천제를 올릴 때 이 「천부경」을 언급합니다. 또 서양의 노스트라다무스에 비견되는 세기적인 영능력자로 유명한 남사고南師古(1435~1493)도 「천부경」을 진경眞經이라고 했어요. ‘진리 자체를 담고 있는, 진리의 원형 경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천부지리天符之理’, ‘천부지법天符之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반으로 넘어와서 『환단고기』를 책으로 묶는 준비를 하면서 운초 계연수가 「천부경」에 대한 주해서를 내고, 20세기 넘어와서 여러 분들이 여기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천부경」을 가지고 자기 사상의 근본 주제, 무사상無思想을 심화시켰습니다. 이 우주의 진리 원액, 우주 진리의 바다에서 대우주의 존재의 근원을 추구한 무사상을 가져왔어요. 1920년대에는 「천부경」을 세계화한 조선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1907년, 50세 때 중국에 망명한 저 유명한 전병훈全秉薰(1857~1927)이라는 도인입니다. 이분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벼슬을 지냈는데, 중국에서 원세개袁世凱, 여원홍黎元洪 총통이 성인으로 추앙했어요. 원세개의 아들 원극정元克定도 ‘조선에 이런 거유巨儒가 있었나?’ 하고 찬탄했습니다.

전병훈은 광동성 나부산羅浮山에 있는 아주 유명한 신비의 도인 고공섬古空蟾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고, 『도장道藏』 2천 권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서 공부하면서 수행을 했습니다. 신선 공부를 하며 한 소식을 듣고 나와서 『도진수언道眞粹言』(1919) 열 권을 짓고, 「천부경」이 발굴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마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를 전병훈이라는 철인, 도인이 직접, 간접으로 접한 것도 같은데, 당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1920)을 인쇄할 것을 중단하고 「천부경」을 책 서두에다 넣었어요. 전병훈은 이 책을 29개국 150개 대학에 보냈습니다. 『정신철학통편』은 시원 사상을 담은 「천부경」을 머리에다 놓고 유·불·선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사상사까지 정리한 책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독일 선교사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1873~1930)이 당시대에 중국에 와 있었는데, 중국어에 정통해서 주역을 번역했어요. 이 번역이 아주 잘됐고 책이 영어로도 나왔습니다. 또 여동빈呂洞賓 신선의 책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도 아주 잘 번역했는데, 칼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이 해설한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요약해서 이 책 뒤에 붙였어요. 리하르트 빌헬름은 귀국했다가 1920년대에 다시 북경에 와서 『정신철학통편』 속의 「천부경」과 놀라운 내용을 읽고 독일 정신철학계와 지인들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 융이라든지 하이데거 이런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천부경」을 분명히 접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 대철인이 박종홍 교수에게 「천부경」을 내놓고, ‘당신이 한국의 유명한 철인이라 하시니 이걸 좀 해석해 주세요’라는 말을 했던 겁니다.



「천부경」 연구 현황


지금 우리 학계에서 「천부경」을 연구한 결과로 단행본이 130여 종 나왔고, 학술논문이 한 2백 편 나왔어요. 그리고 석박사 논문은 한 80편 정도 됩니다.

중국이나 일본 이런 해외에서도 여러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요. 실제 제가 뉴욕에서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끝내고서 나오니까, 거기서 영어로 밥 먹고 사는 사람과, 「천부경」을 가지고 책자를 세 권 쓴 분이 왔길래 책을 선물로 주니 아주 좋아했어요. 「천부경」을 숨겨놓거나 가슴 속에다 깊이 새기면서 공부하는 이들이 사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 역사학계가 시원 역사를 싹 부정하기 때문에, 「천부경」의 출처가 잘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동서양의 대철인들이 ‘나는 「천부경」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지금 이 순간도 자랑스럽게, 떳떳하게 학계에 말하지 못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어떤 경전인가


「천부경」은 실제 어떤 경전인가? 작년 올해, 우리 연구소에서 원어민들과 함께 「천부경」을 해독하고 제가 강독하면서 번역을 주관해서 오늘 나눠 드렸어요. 나눠 드린 카탈로그 가지고 계시죠? 「천부경」을 ‘The Scripture of Heavenly Code’라고 번역했어요. 천부天符는 하늘 천天, 부적이라는 부符 자를 썼는데, ‘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간 세상에서 쓰지 않는 마치 암호 같은 부호sign language입니다. 이 「천부경」은 우리 인간과 우주의 존재 근원, 그 진리의 근원을 밝혀주는 말씀을 기록한 경전입니다.

주위에리朱越利(1944~ ) 중국 사천대학교 교수가 천부의 뜻을 한 열 가지로 정리했어요. 「천부경」에서 ‘천부’는 ‘제왕의 명령 또는 실제 천상에 있는 천주님, 천주 아버지, 우주 절대자의 명령’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천도天道, 천의天意’라는 기막힌 뜻이 있고, ‘천성天性’ 즉 하늘의 본성, 하늘의 본래 마음이라는 뜻도 있어요.

그래서 「천부경」은 하늘의 법칙, 하늘의 영원한 이법을 드러내는 경전입니다. 「천부경」은 그냥 순수한 진리의 마음이 되고, 진리의 정서에 동화되고,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이 하늘과 땅을 노래한 진리 원전입니다. 「천부경」을 보통 상경上經, 중경中經, 하경下經으로 나누는데, 어떤 이들은 천경天經, 지경地經, 인경人經이라고 합니다.

다음 내용 보기>>
천부경에 상경-중경-하경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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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세밀하게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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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인문학 특강 8-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17

동양 인문학 특강 8-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 인문학 특강 8-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7.05.21 

동학을 ‘시천기화侍天氣化’의 인문학으로 새밝힘 한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지난 19일 동학농민혁명 123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사진·최지현>

동학농민혁명 123주년 기념 학술대회(주최 청주시, 주관 동학학회·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가 지난 19일 오전 10시 충북대 개신문화회관 1층에서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충청도 청주’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기조강연을 했다. 강연은 동학농민혁명의 새밝힘인 동시에 동양포럼이 지향하는 바와도 상통하고 있어 그 내용을 요약,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여러분, 충청북도 청주시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명분과 실천이 아우러지는 형태로 발동되었던 민중이 주도하는 영혼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 운동을 겨레와 나라와 누리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간다는 뜻과 얼로 새밝힘 하는 학술대회를 충북 청주에 있는 충북대학교에서 개최하게 된 것을 아주 뜻 깊고 귀한 계기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 모임에서 기조강연 하게 된 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영혼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는 제 스스로가 지난 30년 동안 나라 밖에서 줄곧 전개해 왔던 공공하는 철학대화 운동의 핵심주제였으며 그것의 사상적·철학적 연원을 동학의 철학·사상·운동에 연결시켜 왔던 저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았고 여러 훌륭한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기본적인 인간형성이 이뤄졌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약 30년 동안 충북대에 몸을 담고 젊은 세대들과 함께·더불어·서로 미래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데 온 힘을 쏟았던 것이 저의 너무도 소중한 이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충북대의 건학정신은 ‘개신(開新)’입니다.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새로운 차원, 지평, 세계를 연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라틴어로 ‘Nova Aperio’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연다’는 뜻입니다. 이미 열려 있는 길을 잘 살펴보고 막힌데가 있으면 새로 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뜻은 아직 길이 없는 곳에 새로 길을 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젊은 학생들과 함께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읊으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저는 1989년 12월 31일 일본 도쿄로 갔습니다. 1990년 1월 1일부터 일본인 학자들과 사상과 철학과 문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주로 서양에 가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한국에 돌아와서 충북대 학생들에게 전하고 그들과 함께 인식과 실천을 공유함으로써 우리고장과 우리나라와 우리겨레의 오늘과 내일의 보다 나은 삶을 이뤄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바가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대로 뜻있는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속에서는 무언가 미흡하고 답답하고 안타까움이 더해가기만 했습니다. 나이 오십이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들을 들었지만 왠지 견딜 수 없는 좌불안석의 상태가 매일 계속되어 급기야 과거와 현재를 일단 접고 오직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별로 인연이 없는 곳에 가서 안면도, 학연도, 지연도 없는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길을 열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충북대의 건학정신이 어느새 제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바탕까지 스며들어서 이제 남들이, 그리고 스스로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서 그냥 걸어가기만 하는 것에 권태와 피로를 느끼고, 신도 안나고, 흥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지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꿈에 젖어 있었고 시류에 역행하는 철부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가 아무리 소중하고 안락하더라도 그곳에 머무르고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저의 떠돌이=노마드 기질이라면 그것 또한 저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선 철학에 새로운 길을 열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일본의 지성과, 지식과 학문을 대표한다는 도쿄대학에서,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엘리트를 제일 많이 배출했다는 도쿄대학 법학부에서, 그들로부터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서로 진지하고 활발한 대화를 하고 공동(共?=힘을 합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함)하고 개신(開新=새로운 길을 열고 깊은 뜻을 새밝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특히 ‘개신한다’는 쪽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함께 더불어 서로 마을을 열고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일본인 쪽에서 보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배우러 오는 사람=유학생 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르친다는 의식이 습관화된 형편이었고 어쩌다 특별한 경우에 일본인 학생들에게 특수분야에 관해서 한국인 전문가가 가르침을 주는 일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함께 더불어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는 체험, 경험, 증험이 없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런대로 성과도 있어서 애초에는 2~3년정도 해볼 계획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 차례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결국 공공(하는)철학 교토포럼이라는 공식명칭으로 낙착됐고 누군가가 자기 혼자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 철학 -자가철학· 사제철학·사(私) 철학-도 아니고 어떤 제도권에서 공인된 철학- 제도철학, 관변철학, 공(公)철학-도 아닌 새로운 철학 -개개인의 일상생활이 구체적으로 영위되는 생활세계에서 사(私)와 공(公)의 사이를 잇고 맺고 살리는 철학 -공공(公共)하는 철학을 낳고, 기르고, 키워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영어권에서 유학·수련·연구·교수했던 분들이 주축이 되어 소위, 선진공공사상을 번역·수입·적용하는 단계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중국에 가서 수학·연구·교수했던 분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적 공사관을 소개·소화·음미하는 단계를 거쳐서 일본사상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서 일본사상사를 재조명하는 가운데서 일본적 공사인식을 재정립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 자신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언론계나 사회전반에 그 영향이 적지않았습니다. 명문대학에 공공철학 강좌가 설치되었고 공공철학을 필수로 하는 인문사회계 대학원이 신설되었으며 새로 개발된 어휘나 사고방식이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에도 자주 나오게 되었고 제 자신이 개인자격으로 국가공무원 교육과정에 특별강사로 초청받아 각급 공무원들과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그 결과가 행정기관의 공적 매체를 통해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가 바로 배용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겨울연가’ - 일본에서는 ‘겨울의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음-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일본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저의 일본인 친구 학자들도 부인들의 강요에 할 수 없이, 또는 자진해서, 정기적으로 방송되는 겨울연가를 보면서 그야말로 일본사회가 한류에 휩싸였던 시기이기도 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을 위한 인식조정과 실천과제가 전에 없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한일간의 학자중심의 공공찰학 대화가 추진·유지·발전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한국적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의 문제도 재인식·재정립·개선발전의 모색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미국과 유럽 여러나라를 돌면서 그쪽에서의 공공논의를 섭렵·선별·정리하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그 이외의 이른바 제 삼세계의 나라들을 돌면서 그 쪽의 형편을 살펴보고 나서 얻은 인식지도에서 한국적 공사인식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그 발전 가능성과 장애요인을 가려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공통과제 중 대단히 중요한 일환으로써 우리의 철학, 우리의 사상, 우리의 역사적 체험 등을 다시 한번 근본에서부터 살펴보고 거기서 세계와 더불어 공감할 수 있는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의 기본과제를 도출할 필요와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고독한 고뇌 가운데서 암중모색하였습니다. 때로는 함께하는 귀중한 동료들의 충언과 제안에 격려와 위로와 활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는 동안에 잠정적으로 깨달은 바를 요약해서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 나름의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의 기본과제는 중앙(=서울)에서 누군가가 또는 어떤 집단이 규정해서 지방에 하향 전달하는 식으로 정립, 보급, 확인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지방간 상생의 인문학적 상상력의 상극·상화·상생의 역동적 발전·향상·성취의 과정을 통해서 형성·개선·성숙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나름의 공사인식과 실천과제는 현재 세대위주로 현재 세대의, 현재 세대를 위한, 현재 세대에 의한,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의 일방적 중시경향을 탈피해서 세대간 상생의 인문학적 상상력의 상극·상화·상생의 역동적 발전·향상·성취의 과정을 통해서 형성·개선·성숙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나름의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은 제도권이 주도하는 제도지, 관이 주도하는 관지(官知), 전문가 집단이 주도하는 전문지에 편향 의존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생활세계에서 자생하는 생활지, 시민이 주도하는 민지(民知),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생명지를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름의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을 서양이나 일본이나 심지어 중국에서도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데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데 비해서 역사적 체험으로써나 현재의 과제의식으로써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일상생활이나 업무수행을 통해서 실지·실행·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이 있어서 공공(인식의) 철학에서 공공(하는)철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깨달음에 더해서 우리의 지성사, 사상사, 생활사를 심층성찰 해본 결과의 하나로 동학이 가진 뜻 깊은 현실개신성(現實開新性)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동학의 내재적 심층이해는 그 동안 정말 각고의 노력으로 그 정수를 밝혀내고 그것을 다른 많은 관심 공유자들에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제시했던 선배학인들의 업적을 존중하고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오늘 모임의 주제인 동학농민 혁명의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에 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의 실증 연구의 성과에 기대를 걸기로 하면서 저는 농민혁명에까지 이를 수 밖에 없었던 동학의 사상적·철학적인 뜻과 얼을 새밝힘 해보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주에서 이 모임을 갖게된 취지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제 자신이 개인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개신의 도시 청주에서 있음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을 전제로 하고 그 터전 위에서 제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마는 오늘의 우리 젊은 세대가 ‘이게 나라냐?’라고 소리 높이 외치고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자기의식, 자국인식, 세상인식으로 스스로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상황에 대해서 그것의 형성과정과 거기서 빚어진 결과에 대한 책임의 일단을 자책할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써 간절한 심정으로 함께 ‘이게 나라라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고 당장 ‘파라다이스 조선’까지는 가지 못한다고 해도 거기로 가는 새 길을 함께·더불어·서로 열어나가자고 호소하고 지방과 세대가 함께하는 희망을 키워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철학을 세워나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입장과 견해와 취지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동학을 개신하는데 필요한 인식과 실천의 토대구축과 방향전황의 사안(私案)을 말씀드리고 여러분과의 화쟁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더 없이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씁드립니다마는 이것은 어디까지 제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동안 일본을 거점으로 세계를 상대로 함께 전개해온 공공하는 철학 교토포럼을 통해서 통산 26년간 2000명 이상의 일본 국내외의 전문가, 사회지도자, 민간인, 경영인, 관료, 학생들과 대화, 공동, 개신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때로는 제 자신이, 때로는 동학의 전문가를 모시고 함께 공구공론(公究共論)했던 문제 관심을 다시한번 제 나름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구태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만 모든 것은 여러분의 기탄없는 반론·이론·신론·반박·비판·변경에 활짝 열려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동학을 ‘시천기화’의 인문학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오늘과 내일의 시대적, 상황적 요청에 능동적으로 적정대응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발상전환의 핵심만을 추려서 제시하려고 합니다.



1. 동학의 ‘동(東)’은 서학의 ‘서(西)’와 대비되는 것으로부터 개념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를 중심으로 잡고 그것과 비교, 대조, 평가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동이(東夷)를 동쪽 오랑캐로 해석하고 그것을 한국 또는 한국인으로 폄하하는 것으로 중국인은 물론 한국인까지 자조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의미 이해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의 경향이 그렇게 흘러온 것도 그와 같은 의미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의 철학대화를 통해서 체득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東)’이란 중심부(세계적으로나 일국 내로나)에 의한 주변부의 영토화·식민지화(정복, 동화, 평정)에서 벗어난 외각지대를 중심부적 발상으로 규정, 차별, 폄하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東)’의 독자적 자리매김과 뜻매김을 새밝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그 글자 모양이 나무사이에 떠오르는 햇빛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새로운 빛=차원=지평=세계=미래가 열리는 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東)’이란 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 태동, 태생, 성장, 성숙 할 수 있는 역동성이 고밀도로 농축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서세동점 하던 시대상황에서도 서(중국이나 서양)의 식민지화에 맞서서 끝까지 저항했고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말미암아 정복, 동화, 평정된 와중에서도 민족의식의 최심층에 잠류하고 있다가 때를 만나면 집단적으로 폭발하곤 했던 탈식민지화의 운동에너지가 저장된 현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겨레와 우리나라의 지철학(地哲學)적 위상을 냉엄하게 새겨볼 필요가 있음을 여러번 직감했습니다. 중국의 철학적 동력은 ‘문화(文化=文德感化=문화의 힘으로 주변 세계와 거기서 사는 인간들을 감화시킨다)력에 의한 ’중화화‘로 나타나고 일본의 철학적 세력은 ’습합(習合=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일체의 것을 취사선택해서 철저하게 자기것으로 바꿈)‘에 의한 ’일본화‘로 표출되는데 그 사이에 놓여져서 중국 쪽의 외향적 동화력과 일본 쪽의 내향적 흡수력을 동시에 중화 조절하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확보,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국이나 강국의 논리와는 다른 중간국의 생존전략을 역사적 체험을 통해서 체인, 체득, 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문화’와 일본의 ‘습합’과는 다른 우리 나름의 내외조정의 철학적 원동력은 무엇이겠습니까?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깨달은 것은 신라말기의 최치원이 비슷한 지철학적 위기상황에서 생각해낸 우리 고유 사상으로써의 풍류도의 핵심지향으로써의 ‘포함삼교’와 ‘접화군생’을 오늘과 내일의 시대상황에 맞추어서 새밝힘 하는데서 도출될 수 있다는 자각, 각성, 인식입니다. 제 나름의 재해석은 ‘포함삼교’를 ‘삼차원상관연동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접화군생’을 ‘활명연대(活命連帶)적 상상력’으로 새밝힘 한다는 것입니다. 삼차원 상관연동적 상상력이란 모든 이원대립적 분쟁상태를 그 사이로부터 양쪽을 함께 살리는 길을 찾아 거기서 스스로도 살 수 있는 새차원, 새지평, 새세계를 열어간다는 것이 기본인 전략적 구상력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종래의 ‘공(公)’=전체주도의 사상, 철학 문화와 ‘사(私)’=개인중심의 사상·철학·문화와의 극단적 이분대립상황에서 오는 폐단, 병리, 모순을 그 사이로부터 공사공진화(公私共進化)를 제대로 이루도록 한다는 뜻에서 개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접화군생’에 관해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험, 경험, 준험, 효험의 과정을 거쳐서 터득한 바에 의하면 중국의 ‘문화’와 일본의 ‘습합’에 직접 대비되는 한사상, 한철학, 한문화의 근본적 지향은 ‘접화’라는 것이며 거기서 빚어지는 결과가 ‘군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자와 자기가 만나게 될 때 자기에 의한 타자의 동화, 회수, 통합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자에 의한 자기의 동화·회수·통합도 아닌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엶으로써 타자와 자기가 함께, 더불어, 서로 살리고 사는 길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생존사고를 자타상생적사고로 바꾼다는 사고전환으로 새밝힘 한다는 것입니다.

만남이 타자말살의 계기나 자기소멸의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타상존(自他相存)을 통해서 자타상화, 상생, 공복(共福)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는 뜻에서 개신한다는 것입니다.

2. ‘시천(侍天)’은 일단 ‘시(侍)’와 ‘천(天)’으로 따로따로 떼어서 각각의 뜻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다시 합쳐서 그 깊은 뜻을 새밝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는 ‘모시다’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모시다’라는 것은 신분이 높은 분이나 내게 귀하고 소중한 분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 뜻을 이루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천’은 하늘인데 인격적으로 이해할 때는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이 되며 비인격적으로 파악할 때는 지기(至氣) 즉 가장 순수하고 가장 생명력이 충만한 기-원기(元氣), 영기(靈氣), 생기(生氣)를 뜻합니다. 저는 이때까지의 종교적 의미 해석에서 생명론적 재해석으로 해석전환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 드리면 근원적, 내재초월적 생명력, 생명에너지의 눈뜸이며, 깨달음이고 그것의 기질화, 체질화, 습관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의 개체생명-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똑같은 생명현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개개물의 개체생명-을 바쳐주고 지켜주고 어느 기간이 지나면 나중에는 거기로 돌아가도록 마련돼 있는 보다 큰, 보다 근원적인 생명- 우주생명이라고 부르도록 함-의 역동적 임재를 체감, 각성, 인식하고 그것을 타인, 타자, 타물과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너도 그도 그녀도 모두가 하늘=우주적·근원적 생명에너지를 속 깊이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뜻에서 상호존중이 필수불가결이며 우주적, 근원적 생명에너지를 분유(分有)·공유(共有)·공육(公育)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평등=무차등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타가 함께 더불어 서로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 해야 할 근거가 도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경(敬)’이란 다름 아닌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껏 모신다는 뜻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학과 만남이전의 공공하는 철학은 한마디로 ‘공사공공(公私公共)’의 철학이었다면 동학과의 만남으로 새밝힘된 공공하는 철학은 한마디로 ‘천인공공(天人公共)’의 공공하는 철학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천’이란 다름 아닌 ‘천인공공’으로 새밝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이제 ‘기화(氣化)’를 새밝힘 할 차례입니다. 기화도 ‘기(氣)’와 ‘화(化)’를 따로 고찰한 다음에 다시 합쳐서 그 뜻을 새롭게 심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기(氣)’인데 그것은 앞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근원적 생명력, 생명에너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개체 생명의 근원적 생명에너지와 우주생명의 근원적 생명에너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보태서 개체적·근원적·생명에너지와 우주적·근원적 생명에너지를 그 사이에서 때로는 상극하고, 때로는 상화하고, 때로는 상생하는 매개적·관계 형성적 생명에너지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의 여러 언어의 어원학적 고찰의 결과를 상고해보면 기=공기=영 또는 혼 또는 영혼=호흡=생명에너지라는 의미연관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때 어느 분야의 인식패러다임이 주도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그에 상응한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인식적 우위에 서는가가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줄곧 변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화라고 하면 영화(靈化=이성 또는 지성·감성·의지를 함께, 더불어, 서로 아우르는 근원적 생명에너지로서의 영성을 활성화·생활화함)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간변혁, 사회변혁, 세계변혁의 원동력을 인간주체의 이성이나 감성, 의지에 관련지어서 이해, 파악, 주장했던 종래의 변혁이론에서 인간과 만물이 공유하는 근원적 생명에너지로서의 ‘영성(靈性)’ 동원의 적정화·적합화·시중화(時中化)를 가장 중요시하는 변혁이론으로의 근본전환을 뜻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제 자신의 문제관심과 결부시켜서 말씀드리면 동학은 민중의 근원적 생명력=영성을 최적동원(最適動員)함으로써 개인적·민족적·국가적 영혼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겨냥하는 데서 새로운 공공인식과 공공실천의 개념정립과 실천방향의 재조정을 시도하는 민중철학 대화운동이라고 뜻매김하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종래의 반침략·반봉건의 민중궐기에서 한발짝 전진한 의미부여라고 생각합니다.



4. 원래 우리의 고유사상, 철학, 문화의 근저에는 ‘화(化)’가 핵심적 지향(志向), 정향(定向), 향향(響向)으로 끈질긴 저류를 이루고 있어왔습니다. 우리의 건국신화에도 ‘원화위인(願化爲人=간절히 바라건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라든가 ‘재세이화(在世理化=이 세상이 하늘, 땅, 사람의 이치에 따라 제대로 좋게 바뀌어지도록 함)’가 중심가치로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젊은 세대가 ‘이게 나라냐?’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제 나라를 두고 ‘생지옥’이라고 말하고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제목의 책이 널리 읽히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모습이 바뀌어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라는 우리세대만의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이어야할 세대간 공공물=공공재=공공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세대의 인식, 의식, 지식으로는 그런대로 살만하다고 해도 다음세대의 입장, 처지, 관점으로는 못살겠다면 그 차이, 격차, 모순을 세대간 공평성, 공정성, 공명성의 균형있는 판단으로 세대간 상생쪽으로 변경, 변혁, 개혁해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실행에 옮겨야 할 책임이 제일차적으로 기성세대 쪽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특히 동학에서는 이점에 착안해서 ‘개벽(開闢)’이라는 말을 썼고 그것도 ‘다시 개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학자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서는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벽’이란 일본이라는 나라가 처음 세워질 때 아마테라스여신(天照大御神)에 의해서 성취된 위업으로 기억할 뿐 그 이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개벽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본인들의 사상, 철학, 문화의 기조음으로 계속되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 나라의 모습이며 기본틀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소위 만세일계의 천황제에 의해서 변함없이 보존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어쩌면 조선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鄭道傳·1337~1398=이씨 조선의 개국공신 ‘조선경국전’의 저자)이 생각하고 제시했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의 구상을 일종의 개벽적 사건으로 정당화하고 나서 그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개혁까지는 허용하되 ‘개벽’은 금기시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숱한 정쟁(政爭)이 있었고 그때마다 개혁이 거론, 실지되었지만 개벽이라는 어휘로 최재우가 그리고 동학운동이 명시적으로 제창할 때까지는 역사의 무대에 뚜렷한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바꾸고 땅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어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과 새로운 사람이 새롭게 어우러지는 총체적 개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쉽사리 입에 올리거나 쉽게 시작할 수 잇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5.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세대간, 지방간, 계층간, 분야간 공통인식이 널리 펴져있는 것 같습니다. 세대간, 지방간, 계층간, 분야간 행복격차, 희망격차, 기회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현실인식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와 같은 위치에 놓여있고 장래세대는 기성세대의 과도한 이기주의에 의해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지도자와 대중은 극심한 동상이몽에 집착할 뿐이며 태어날 때 금수저를 가질 수 있었던 인간들은 세계적 수준의 호사를 만끽하는데도 불만으로 가득 차있는데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에게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안보인다는 것이 현실상황입니다. 적어도 대다수의 젊은 세대의 현실인식입니다. 그래서 다시 개벽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질개벽이 필요하다는 것은 몇십년전에 제창되었던 시대선언이었습니다. 정신개벽이 필요하다는 시대선언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제 자신의 개인적인 감각으로는 앞선 두가지 개벽에 보태서 생명개벽, 생활개벽, 생업개벽이 필요합니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체격이나 용모나 성격은 지난날에 비해서 월등하게 개선, 개량, 개진된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인 생명력, 생활력, 생업력은 약화, 퇴화, 열화(劣化)된 것 같이 느껴지는데 저만의 착각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된 개인적, 정치, 사회, 문화적 원인이 기성세대의 무책임, 무감각, 인식부족에서 연유한 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저만의 과잉자책입니까?

세계를 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세대간, 지방간, 계층간, 분야간 공공하는 철학 대화운동을 전개해 오는 가운데서 절실하게 체감하게 되었던 것은 장래세대에 대한 현재세대의 책임의식과 배려가 상대적으로 희박한 우리의 현실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저의 무식의 소산입니까? 물론 자기자신의 아들 딸에 대한 책임과 배려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의식화의 수준에서 아직도 후진국형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합리적인 반론을 펴기가 어려웠던 것이 숨김없는 사실입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기화가 필요한 시대상황입니다. 인간과 사회와 국가가 생명개벽, 생활개벽, 생업개벽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동학이 촉발한 민중의 원기력, 영기력, 생기력이 집합적으로 적정화·적합화·적시화 될 때 생명개벽, 생활개벽, 생업개벽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방향으로 동학연구와 동학실천이 이루어지면 ‘이것이 바로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으며 헬코리아가 파라다이스 코리아로 근본변혁 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드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6. 한가지 더 잘살펴보아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정도전이 구상하고 조선왕조 500년동안 계속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이후 역대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바깥모습은 여러모로 크게 변화되어 왔으나 속은 공천하국가=공적질서 최우선 국가사회=국민(의 삶과 행복)보다는 국가(의 체제와 이익)가 앞서고 위에 있는 짜임새였습니다.

이제는 시대적 요청이나 국민적 요망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의 자유로운 추구와 그 구체적인 실현이 우선하는 나라 모양을 제대로 갖추는 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국가 중심적 공의 가치보다 국민중심적 공공의 가치가 더 중요시 되는 근본적 가치전환이 이루어지기를 국민의 절대다수가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동학은 공(전체)이 사(개인)를 필요하면 배제시키고 희생키시는 제도를 거쳐서 마침내 사와 사, 공과사, 공과 공을 그 사이로부터 함께, 더불어, 서로 매개하고 활성화시키고 상조·상보·상생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을 도모하기 위해서 민주도로 시발된 사상·철학·세계관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은 새로 싹트기 시작했던 민주도의 공공 하는 가치지향을 대한제국과 일제의 공권력=체제권력=국가권력이 통제·진압·말소하려는데 대항해서 궐기했던 생명·생존·생업의 권리투쟁이었습니다.

그때는 창시자 최재우와 조직자 최시형의 처형 그리고 종교이념으로 정착시킨 손병희의 병사와 함께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역사적으로 망각될 처지로까지 내몰렸지만 끈질긴 민중운동의 마그마로 지하에서 용트림치다가 때때로 여러 다른 형태로 폭발되곤 했으며 그 결정적인 분출은 3.1운동이었고, 광주민주화운동이었고 최근에 일어난 촛불집회의 평화적 시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유념해야 될 것은 동학의 뜻과 얼이 그 이념과 운동이 일부 정치가들의 정권획득의 정당화 또는 부당성 논리에 편승하거나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타국은 물론 자국의 공천하국가적 이데올로기 조작이나 공권력의 자행을 통해서 영혼의 영토화, 식민지화를 획책하는 일체의 폭력지배에 대항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과감하고 치열하게 궐기할 수 있는 민주도의 탈영토화, 탈식민지화 운동의 참모습이라고 해석하는데 개신의 도시 청주에서 새밝힘하는 미래공창적 뜻매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동학은 지속적인 민주도의 영혼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통해서 자타상생·상화·공복(共福)의 미래공창을 실현시키려는 자생적 사상·철학·문화운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상과 철학의 경계를 벗어나서 예술과 종교와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인문학 운동이라고 뜻매김·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가늠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박장미/사진·최지현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조명희·소세키의 인생작품이 현대사회 미래 그려”
기자명 박장미 기자
입력 2017.10.23 

김태창 주간 삿포로 특별강연
민중 속으로 뛰어든 이들의 공통점
탈식민지화, 탈영토화 위해 온몸바쳐
일본제국주의 '천황 따르라'주입교육
폭력 아닌 '정답'논리로 인민들 지배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에서 열린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초영사관 초청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에는 훗카이도 지방정부인사, 학계, 기업관계자, 재일동포 등 3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동양일보) 주 삿포로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로이톤 삿포로 3층 로이톤홀에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을 초청,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와 한국의 포석 조명희를 소재로 한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 내용을 야규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가 정리해 보내왔다. <편집자>

10월 16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호텔 로이톤삿포로(ロイトン札幌)에서 주 삿포로 대한민국총영사관 주최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특별강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조명희(趙明熙)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가를 통해 한·일 관계를 다시 생각하다’가 개최되었다. 바깥에서는 한반도나 일본의 혼슈(本州)보다 먼저 첫겨울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강연 장소인 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홀이 곽 찼고,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시작하기 전 홀에는 5살 때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10여 년 동안 혼자서 살다가 세계적 가수가 된 최성봉 소년이 부른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그리고 존 레논의 ‘이메이진(Imagine)’, 고바야시 사치코(小林幸子)의 ‘꿈의 끝(夢の涯て)’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모두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고 계속 꿈을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부른 노래들이다.
또 2시간의 강연을 마친 후에는 만찬회가 열렸는데,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하려고 하는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김 주간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주최자 쪽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김 주간, 영사관 관계자와 미래공창신문 야마모토(山本恭司) 교시 편집인과 필자만이 경식을 취하면서 야심한 시각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상아탑을 떠나서 ‘민중 속으로’
이 강연에 즈음하여 김 주간은 지금 왜 오늘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라는 한일의 대표적인 작가를 이야기하느냐에 대해 밝혔다. 포석 조명희(抱石趙明熙)는 잘 알다시피 1894년 마침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난 한반도 역사가 대전환된 해 충북 진천(鎭川)에서 태어났다.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석방 후 그는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로 유학하면서 재학 중에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1920년에는 희곡 ‘김영일(金英一)의 사(死)’로 창작극작가로 데뷔했다. 다음해 고국에 돌아온 그는 1920년대에 대표작인 ‘낙동강(洛東江)’을 비롯하여 많은 시, 희곡,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독립운동·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식민지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러시아의 한인촌에 가서 고려인 문학과 교육에 힘을 기울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말았다.
소세키도 역시 어린 시절은 불우하고 여러 번 입양되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젊은 소세키는 한시문(漢詩文)을 즐겼으나 문명개화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제국대학(帝國大學·뒤의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에히메(愛媛)와 구마모토(熊本)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문부성(文部省)의 명을 받아서 영국 런던에 국비유학생으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신경쇠약을 앓고 귀국명령을 받게 되고, 귀국 후에는 도쿄대학 교수와 제일고등학교 강사를 했지만 결국 교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자의 신분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김 주간은 그들의 삶이 30대에 한국을 떠나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유학하고 또 50대에서 대학총장의 지위도 다 놓아두고 단신 일본에 가서 도쿄대학에서 공공철학 운동을 시작한 자기 인생과 겹친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보다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소세키와 조명희가 조금 스스로를 굽히기만 하면 상아탑 안에서 그런대로 안정된 생활과 신분 보장, 그리고 명예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문학자로써 민중 속으로 뛰어들고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위해 활명연대(活命連帶)하려 했다는 점이다.
젊은 소세키는 영어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일본인으로서 무엇 때문에 영문학을 공부하는가? 문명개화(文明開化)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니 하기 위해 영문학자의 설을 일본에 수입하고 짝퉁 영국인이나 되자는 것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게다가 실제로 대영제국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살아보니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대제국을 건설해본들 거기에 사는 영국인들은 별로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당시의 제국 일본의 밝지 않는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 것이다.
‘산시로’에서 주인공 산시로(三四?)가 도쿄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콧수염을 기른 (소세키의 분신과 같은) 남자와 같은 자리에 앉으면서 러일전쟁 후 “앞으로는 일본도 점차 발전하겠지요?” 라고 말하자 그 남자가 “망할 거야”라고 딱 잘라버리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말로를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엘리트 교원의 자리를 내던지고 소설가가 되었으며, 근대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에 분주하면서 내면이 ‘식민지화’된 지식층의 모습을 비판적 또는 풍자적으로 많이 그렸다.
한편 조명희의 경우는 보다 직접적·구체적으로 한반도 땅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소설에 많이 묘사하고 ‘낙동강’에서는 제국주의 권력에 의한 고문으로 빈사상태로 석방되는 독립운동·사회운동 지도자를 등장시켰다. 그 작품에는 경찰 측 인물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비록 놓인 상황은 다르지만 조명희도 소세키도 식민지화·영토화된 영혼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든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정답 없는 물음’을 계속 물어야
강연 중 김태창 주간은 김선우 화가가 소세키 작품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행인’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그리고 조명희의 작품세계를 그려낸 ‘아무르 강의 생명수’, ‘낙동강’을 소개하고, 김영미 시인의 시 ‘낙동강이 흐른다’(일본어 번역: 오구라 기조 교수)를 낭독했다. 또 나츠메 소세키, 조명희, 그리고 중국을 대표하는 루쉰(魯迅)의 세 사람에 대해 김태창 주간이 직접 지은 시 ‘정답 없는 물음’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정답 없는 물음’과 관련해서 김 주간은 일찍이 어느 고등학교 교장 연수회에서 강연했을 때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떤 교장선생이 “선생님께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은 어디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김 주간은 “고등학교까지는 정답이 있는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삿포로의 청중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강연 후의 만찬회 때 한 여자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 대학교로 들어갔는데 정답이 없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 정답은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뒤에 영사관 직원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을 때에도 어느 직원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답’이야말로, 달리 말하면 재빨리 정답을 얻고자 하는 심리야말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로 이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서구제국주의는 막강한 군사력만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은 ‘서양화가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세계를 농락했고, 일본제국주의는 “천황폐하를 신으로 받들고, 천황의 정부의 법을 따르고, 천황의 백성인 일본인과 같이 돼라.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논리로 식민지(본국도)를 지배했다. 히틀러의 나치스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답이었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정답이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정답이고,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정답이다.
이처럼 모든 제국주의·전체주의는 폭력·통제·감시보다 오히려 ‘정답’을 가지고 인민들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시민이 자유로움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계속 생각하는 백성(思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에의 뜻을 굳게 지키는 백성(志民)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뜻을 지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배 권력이 내놓는 가짜 정답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뜻과 생각으로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두음을 가리고 항상 밝음(哲)을 선호하는 백성(哲民)이 되어야 한다고 김태창 주간은 강조했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는 모두 뛰어난 지성을 가지면서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안정된 지위와 생활을 내던지고, 여러 가지 병이나 관헌의 탄압과 싸우고, 시민들과 함께 문학작품을 통해 사민(思民)·지민(志民)·철민(哲民)이 되고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 주간은 영혼의 식민지화, 영토화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기계에 의한 식민지화라고 경계한다. 사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치되고 장래 없어지는 직업이 거론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골드만삭스(The Goldman Sachs Group)는 이미 서기 2000년 당시 600명 있었던 금융투자가를 현재 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또 2016년 3월에는 이세돌 기사(棋士)와 AI의 알파고(AlphaGO)가 대전하고 4패 1승한 일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인공지능의 승리라는 문맥에서 거론될 경우가 많지만 김 주간은 오히려 이세돌이 거둔 1승에 주목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정보처리·분석능력이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인공지능이라도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묘수(妙手)를 인간은 생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생각하고 뜻을 세우고 철학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정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물을 줄 알아야 된다. 하지만 혼자서 그 험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벗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조명희와 나츠메 소세키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야규마코토(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오구라 기조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21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138)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을 읽고서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07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오구라 기조 교수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



오구라 선생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받은 것은 12월 10일의 한 모임에서 김태창 박사를 통해서였다. 그분의 신간이 반갑고 고마웠다. 집에 들어와 이내 그 책을 폈다. 그리고 하루에 다 읽었다. 읽히는 글이었다.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의 나쁜 버릇인 노루글(노루가 껑충껑충 뛰듯 책을 읽는) 이른바 적독(摘讀)을 하지 않고, 드물게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모두를 읽었다. 기쁘고 즐겁고 가슴이 후련하게 트임을 느끼면서.

오구라 선생과의 만남은 나에게 또 하나의 배움의 계기가 되었고 큰 가르침이었다. 글(文章)로써는 2016년 5월 9일자 동양일보의 동양포럼(5)에서부터, 대면(對面)한 것은 2016년 10월 1~3일의 동양포럼의 국제학술회의Ⅱ로 시작해 4번, 일본에 가서 1번이며, 그분의 저작(著作)에서는 <韓國은 하나의 哲學이다>(1998, 개정판 2011. 조성환 번역서 2017), <새로운 論語>(2013), <朝鮮思想全史>(2017), <京都思想逍遙>(2019),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2020)을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圖書)이다.

오구라 선생의 모든 저술과 발표 내용이,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많은 경우 ‘00은 이렇게 말했다’ 류(類)인데, 그분은 ‘00은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라, 참다운 ‘자기의 학문과 그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예지(叡智)와 온축(蘊蓄), 양심(良心)과 덕조(德操), 청빈(淸貧)과 열정(熱情)’의 학자 세분 중의 한분이라고 생각하여 달리 보고 있다.

오구라 선생은 위와 같은 풍도(風度)의 학자인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연 국제회의마다 당신이 가르치고 있는 여러 국적의 대학원박사과정 학생들을 국제 감각에 익숙하게 하려고 여비를 마련하여 데리고 왔고, 세션이 끝날 때나 휴식시간에 그들을 불러서 찰찰히 귀띔해주는 것을 보고 나는 참교육자의 모습이라고 감탄하면서, 그분의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하고 우리의 교육풍토를 반성하였었다.

여비를 보상하려고 항공료 영수서를 청하면 대학의 출장비로 왔다면서 발표 사례비조차 받은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 나오면 누구에게나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하고, 결코 일본말을 일언반구도 쓰지 않는다는 배려로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



Ⅱ.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은 제1장서부터 제9장까지의 내용이 첫째는 그 언설이 독특하고 예리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상과 주장이 참신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인격과 지향이 청랑(淸朗)하고 고상(高尙)하기 때문에 매료(魅了)된 것이다.

그 제1장에서 2장까지를 방법론과 개념규정으로 보고, 제3장에서부터 7장까지를 생명론, 특히 제3의 생명론으로 보며, 제8장은 경제론이고, 제9장을 코로나 재화 이후의 전망으로 매듭짓는 것으로 나누어 적어본다.

방법론에서 문명/ 문화/ 사상을 비교 조명해야 하는데, 거기에서 ‘문화민족주의를 배제하고, ①문명/ 문화/ 사상을 어떤 국가와 본질적으로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은 기본적으로 배제한다. ②문명/ 문화/ 사상을 국가나 민족 등으로 틀을 짜지 말고, 그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성에서 이해하는 시좌를 구축한다. ③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저의 부분으로 항상 되돌리면서, 그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결말의 상호관계를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비교문명적·비교문화적·비교사상적 사고는 텍스트의 내부만을 탐색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역사학, 경제학, 법학, 사회학 등의 많은 지혜와 교감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들 사상과 철학을 만들어낸 하부구조에의 이해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가르침이다.

그 다음에 ‘군도문명과 대륙문명’의 개념인데, 군도문명을 해양문명과 굳이 구별하는 것은 일본이 독특한 문명과 사상성을 이룬 것이, 자연과의 조화라는 지정학적인 요구조건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やまと(大和=일본의 다른 이름)의 화(和)로서, (중국)대륙의 합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합(合)의 이념과 구별하려는 것이라, 합당한 비교라고 보았다. 일본을 ‘자연재난의 보고’라서 중국시스템에 동화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특히 우리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얼마나 은유적인 것인가? 역시 동아시아를 통(通)하고 통하게 하는 혜안(慧眼)이고 시각(視覺)이라고 생각하였다.





제3장 군도문명과 ‘논어’의 애니미즘, 제4장 제3의 생명, 제5장 세 가지 생명으로 문명을 해독함, 제6장 세 가지 생명으로 일본사상사를 해독함, 제7장 일본문화와 미의식인데, 이것들을 통틀어 핵심은 ‘제3의 생명’이라는 오구라 철학론의 가장 독특한 개념이다. 내가 그 ‘제3의 생명’론을 들은 것은 3년 전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었다.

이번의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에서 ‘애니미즘과 제3의 생명’을 4개장에 걸쳐서 곡진하게 논술하고 있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공자(孔子)의 인(仁)도 제3의 생명이 빚어낸 보람이며, 맹자(孟子)는 공자의 사상을 역전시켰다고 하는 것 등은 얼마나 참신한 탁견인가?

애니미즘·샤머니즘·일신교를 세 가지 생명론으로 풀이하고, ‘제1의 생명’은 인간과 보통 우리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 곧 육체적 생명과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이다. ‘제2의 생명’은 인간이 유한한 육체적 생명에서 오는 허무감이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절대적 생명의 비원(悲願)에서 비롯된 절대적 생명에의 동경과 소망으로, 인간은 어느 민족이든 종교로서 정신적(spiritual) 생명, 영(靈)의 생명, 제1의 생명의 유한성에 대하는 영생(永生)의 생명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새로운 논리인 ‘제3의 생명’이란, ‘개인적 육체적 생명’도 아니고, ‘영생하는 영적인 생명’도 아닌 것이 우리에게는 있는데, 인류의 사상사(思想史) 종교사(宗敎史)에서 거의 무시되어 왔고, 혹은 주제화 초점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어떤 경우에는 물건과 물선 ‘사이’에 우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생명’, 그것을 ‘제3의 생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가엽다’나 ‘화기애애하다’로 표현하여온 ‘상태’,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미(美, 아름다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문화의 미의식에서 ‘もののあはれ=가여움’, ‘わび=스며드는 정취(情趣)’, ‘さび=한적(閑寂) 또는 청한(淸閑)’ 등은 우리가 말하는 ‘느꺼움’의 차원이다.

그분이 자신 있게 구사하는 한국어의 ‘아름답다’를 어근·어간·어미의 어원적으로 분석하면서 일본의 미의식을 말하는데, ‘아름답다’에서 아람(實⟶球)·알다(知)·알(卵)-알차다(充實)-차다(滿) -참(眞)으로 연상하고, 그래서 우리의 ‘아름답다’는 생명, 완벽, 공(球), 진리, 지식 등의 관념이 있다고 설파한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의 미의식에는 보편성에의 강력한 지향성이고, 그와 함께 현저한 도덕지향성이라는 추리에, 나의 의식세계를 그분이 이렇게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서 흠신(欠身)했다.

또 ‘くはし’와 ‘곱다’가 ‘예쁘다’는 뜻으로 동근(同根)이라고 하면서, ‘곱다’를 섬세한 미를 나타내는 말이며, ‘くはし’의 어근을 kuph라 하고 ‘곱다’의 어근 kop와의 유사성을 들고 있는데, 그것의 개별성과 시간성의 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다’에서 본 ‘아람’과 ‘알’의 형상인 둥근꼴의 공(球)은 일본어에서는 ‘たま(玉)’인데, 그것은 일본의 고대어에서는 사람과 사물의 안에 있으면서 그 본질적인 생명력에 내장하는 ‘정령(精靈)’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언령(言靈)/ 진혼(鎭魂)=영혼(靈魂)을 예거(例擧)한다.

그리고 ‘たま’는 ‘-しい(←ひ)’라는 접사를 붙이어 ‘たましい’가 되어서 ‘혼(魂, soul+spirit)’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아름답다’의 ‘알’이 음성(陰性)모음으로 전성하면 ‘얼’이 된다고, 그러면 일본어의 ‘たましい’와 한국어의 ‘얼’은 뜻에서 근접성을 가지게 된다고 해석한다.





제8장의 경제론을 열었을 때에서는 의아해했다. 이분이 경제까지 관심하고 계신가? 학고. 그러나 이내 수긍했다. 철학적으로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일본경제의 침체를 보고, 소련의 붕괴를 보고 논단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두 가지 축을 물(物)자본주의와 돈(貨幣)자본주의로 보면서, 물물교환의 가치시대에는 생명유지라는 애니미즘 곧 ‘제3의 생명’이 존중되었는데, 돈의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생명유지가 아니라, 잉여(剩餘)의 활동과 나아가서 선진국에서는 취미나 여가를 위하여 대량생산과 유통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여기에서 일본 경제의 침체는 당연한 것이라는 본다.

공산주의는 왜 실패하였는가를 다루어서, 유물론(唯物論)이 생명도 물건도 물질이고, 모든 것은 물질적 기반으로 환원되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제2의 생명’이다. 권력은 그 물질적 기반으로부터 생기고, 그 정신이야말로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제2의 생명’으로서, 권력에 무한정의 힘을 부여하게 된다. 그 가장 성공한 나라가 북조선인데, 김일성이 국민에게 준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 ‘제2의 생명’이 비대하여진 까닭으로 국민의 ‘제1의 생명’은 피폐하고 마모하여서 국민의 생명유지라는 점에서 실패하여 붕괴직전이지마는, 국가의 생명은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간의 의욕=성취욕을 간과(看過)한 데’서 보아왔는데, 오구라 선생은 국민의 ‘제1의 생명’ 유지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제2의 생명’을 강화하여, 그 근본인 ‘제3의 생명’을 철저하게 멸시 내지 도외시한 데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물신숭배(物神崇拜)라는 말로 ‘제3의 생명’을 적대시한 일이 실패의 연원이라고 한다. 섹스피아의 큇프로쿠(quid pro quo=something for=되갚음/ 대상물)를 나쁜 것으로 비판했는데, 그것이 곧 ‘제3의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경제는 지금 ‘가진 자는 더욱 더 소비하지 않고, 안 가진 자는 더욱 더 싼 것을 산다.’는 20년의 풍토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곧 우리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 해결책은 오직 하나, 경제활동과 생명과의 관계를 재정의(再定義)하는 일이라 하고, 일본경제의 지난 잃어버린 30년의 결점은 ‘물(物)에 대한 감성의 상실’이니, 이제는 생(生)/ 생명이 빛나는 경제를 위한 두 가지로—하나는 물의 생생한 단면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이(間)철학’에서, 사(私, 제1의 생명)도 아니고 공(公, 제2의 생명)도 아닌 공(共, 제3의 생명) 곧 공공(公共)하는 경제행위— 가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를 근원적으로 부활시키는 것은 물의 생생함을 느끼는 것과 교환/ 보수의 순간에 ‘제3의 생명’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경제에서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젊고 어린 세대들이 지금 물건 아까운 줄을 모르고 자라고 살고 있지 않는가?





이제 코로나 사태라는 지구촌 미증유의 환난을 격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서, 그 이후의 정세를 살펴나간다. 그 환난을 겪으면서 모든 나라들이 ‘제나라’라는 경계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국경을 개폐(開閉)하는 고민, 또 하나는 UN이나 EU나 WHO 등 주권국가를 넘는 조직이 무력함을 드러냈다는 자각에서, 주권국가만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변화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강대국도 선진국도 그 허울과 너울이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말았는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이란 무엇이며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더는 그 허망에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영향력 있는 국가’란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비전인 ‘soft power’ 곧 ‘제3의 생명’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3의 생명’만으로는 안 되고, 개별적인 군사력 곧 ‘제1의 생명’과, 보편적인 이념적 파워 곧 ‘제2의 생명’과,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사이’의 힘 곧 ‘제3의 생명’을 모두 강대하게 갖춘 주권국가라야 영향력 있는 국가라고 말한다.

이제는 ‘붉은 시대’도 지나갔고,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라는 구도는 동일화할 수 없으며, 세계가 중국적인 강권과 초월적 이념에 의하여 통어(統御)된다면, 일본은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의 귀납주의적 경험주의적 반초월주의적 세계관의 존속‧ 갱신을 짊어지고, 몸을 던져서 군도성(群島性)을 발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 결코 일본의 민족주의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명을 일본이 이끌지 않고 어쩌겠는가라는 것이다.

(이웃에 한국이 있어서) 한국은 어찌되고 있는가? 한국은 군도이면서 해양국가라는 말을 하지만 군도국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의 문정권은 주체성을 북한에 접근하려 하기 때문에 점점 군도성에서 멀어져 간다. 문명론적인 의미에서도 지금의 한‧ 일은 떨어져 가는 중이라고 본다.

한국은 ‘절대적인 진리’를 희구하는 니라이다. 한국의 정치방법은 중국의 ‘하달(下達)’식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아래에서 위로 저항한 것이나, 그것도 애니미즘은 아니었다. 한국은 미국중심의 세계적 가치를 자국에 가져오는 인재가 힘을 얻고 있다. 왕년의 한국 지성인은 보편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주체들이었고, 패권주의나 부정의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정신을 가진 참다운 지성이었으나, 지금의 주체들에게서는 그러한 비판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는데, 이것을 ‘동아시아의 위기’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구라 선생은 ‘공창하는 동아시아의 연대’에 희망을 가지는 것이고, ‘논어’도 새로운 각도에서 본 것처럼, 미래도 어디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고, 도덕도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며, 참다운 논어의 방법은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진리’나 ‘생명’만이 아니라, ‘자아’라는 것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논어와 군도문명이라고 생각이라고 한다. 이 4반세기 동안 일본에서 ‘공공철학(公共哲學)’을 제창하고 있는 김태창 박사는 ‘내발(內發)’이 아닌 ‘간발(間發)’이라고 하는데, ‘진리’와 ‘공공성’과 ‘도덕’과 ‘생명’과 ‘나(自我)’는 내면이나 외면이나 초월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제부터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방향성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이의 철학’이라는 것은 ‘사이의 생명’인 ‘제3의 생명’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철학이다. 곧 ‘공창(共創)’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세계에 이 ‘사이’의 가치가 인식될 때, 그 선구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임이 일본에 있지 않겠느냐고 맺고 있다.



Ⅵ 맺음—오구라 선생을 위한 기도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

타의에 의하여 이 졸고를 폈으나, 나의 소졸함으로 오구라 선생의 넓고 크고 높고 깊은 학문적 서술이 오독-오판-왜곡으로 손상될까 두려운데, 제발 그런 착오가 적었기를 바라면서, 그분의 구도적 탐구의 전도가 더욱 탄탄하고 그 결실이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지도자라는 위인(爲人)들이 사람을 잡고 질서를 파괴하는 풍랑(風浪) 속에서, 양심과 진리로 인간사회의 정도(正道)를 찾아 깨우치는 오구라 선생의 거조(擧措)에 건강한 정진만이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오구라 선생의 저술의 행간(行間)에서 넘치는 에너지를—그 은유와 함축이 무엇인지 폭발할 것 같은 힘— 보는데, 오구라 선생의 연구와 봉사가 ‘미래공창(未來共創)하는 동아시아에’의 소망 그대로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이상이 내가 오구라 선생의 신간 ‘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읽은 소감인데, 꼭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책에는 방법론으로 시작하여 끝까지 시종일관 한국과 한국인 학자의 주장을 비교 인용한 것이 적지 않다. 우리 학계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여겨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나와 널리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유성종 동양포럼 운영위원장

 

오구라 기조의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오오하시 켄지·< 동양일보 2021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21 

글 오오하시 켄지·
야규 마코토

[동양일보 동양포럼 기자]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와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서평을 동양포럼에 보내왔다. <편집자>
오호하시 켄지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鈴鹿醫療科學大學 강사)

약간 옛날의 이야기가 되는데 세계적으로 큰 화두를 던진 새뮤얼 P. 헌팅턴 <문명의 충돌>(1996년)은 세계의 주요 문명들을 여덟 개로—서구· 이슬람· 라틴아메리카· 힌두· 러시아정교회· 아프리카· 중화· 일본─ 분류했다. 세계 8대 문명 중 하나로 ‘일본문명’이 손꼽힌 것으로, 위대한 일본문명이 드디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줄 알고 기뻐한 덜렁이 보수파 논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본문명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본문화는 “고도로 배타적”이며, 여기에는 타국과 공유될 만한 보편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그것을 전달해주어서 공통된 문화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없는 특수적이고 배타적인 ‘고립문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대문명으로서의 ‘대륙문명’과 비교하면서 일본문명을 ‘군도문명(群島文明)’으로 형용하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이 책은 일본의 ‘고립문명’을 상대화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에서 일본문명의 본질과 가치 해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한국철학· 사상의 전문가이자 비교문명학회 회원으로도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일본 비교문명학의 선구자인 야마모토 신(山本新, 1913-80)은 1960-70년대에 발표한 논문집 <주변문명론(周邊文明論)>(刀水書房, 1985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근대 서양적 ‘대문명’ 대 비서양적 ‘주변문명’이라는 것이 비교문명학의 기본적인 틀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와 같이 ‘대문명’을 우월적인 것으로 보고 ‘주변문명’을 일방적・ 일원적으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된다. ‘근대 서양-비서양’=‘중심-주변’이라는 서양 중심주의의 개념 틀로 문명을 고찰하는 ‘수직적인 축’ 이외에 서양 이외의 주변문명들끼리 비교하는 ‘수평적인 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대륙의 문명’과 ‘군도(群島)의 문명’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한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서양문명에 흠뻑 빠진 일본과 한국이라는 ‘주변문명’ 즉 일본-한국이라는 ‘수평적인 축’에서 일본문명을 비춰보고 고찰한다. 이와 같은 고찰에 있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세기 최대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문명을 집합심성적인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것은 일련의 사회· 경제를 큰 변화 없이 계속 살아가며 때때로 파란만장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고 했다.(<문명의 문법Ⅰ 세계사 강의(文明の文法Ⅰ 世界史講義)> 1987년). 표층의 사회적 변동과는 별도로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부동· 불변한 것으로 문명에는 당연히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을 살펴보자. 저자는 일본의 문명· 문화· 사상의 본질이 ‘애니미즘’적인 생명관, 정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일본의 독특한 ‘미적 생명’=‘제3의 생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제1의 생명: 생물학적· 육체적 생명=개별적· 객관적· 상대적· 물질적 생명.

제2의 생명: 영적 생명=보편적· 절대적· 종교(정신)적· 비물질적· 집단적 생명

제3의 생명: 미적 생명=간주관적· 우발적· <사이>적 생명, ‘지금·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

제1의 생명은 그렇다 쳐도, 제2의 생명인 ‘영적 생명’이라는 말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지만,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국의 연구자에게 흔히 보이는 일이다.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죽음의 철학'을 강의하고 일본 생사학의 제1인자로 2020년 9월에 서거한 아르폰스 데켄(Alfons Deeken)도 일본에는 ‘삶의 미적 측면’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세계가 ‘유용가치와 도구가치’를 ‘생명가치와 유기체적 가치’의 상위에 두는 ‘공리주의적 문명의 에토스’로 뒤덮여버린 것을 데켄은 몹시 개탄했다. 한편 아시아가 가지는 고유한 에토스, 특히 일본에서 뚜렷한 ‘미의 에토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일본의 미적 에토스는 서양문화에서는 대부분 잠자고 있는 인간의 풍요로운 잠재적인 능력을 구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인간성의 가치를 찾아서(人間性の価値を求めて)> 아우치 마사히로(阿內正弘) 옮김, 春秋社, 1995년).

데켄이 말한 것은 감각적· 예술적인 ‘미’=미적 감수성인데, 저자는 한국어로 우주적· 보편적인 미를 나타내는 영적이고 생명적인 ‘아름답다’와의 대비로,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중기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서 사용된 ‘오카시(をかし)’와 ‘아와레(あはれ)’, 혹은 ‘유현(幽玄)’ ‘와비(わび)’ ‘사비(さび)’ ‘이키(いき)’ 등을 미적 생명적인 <제3의 생명>을 언어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저자의 특유한 세계관에 의한 것이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이 ‘제3의 생명’인데, 이것은 “사람들과의 ‘사이’나 사람과 사물과의 ‘사이’에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명’”을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 등 대문명 ‘대륙문명’에 대표되는 군사적 힘 같은 ‘제1의 생명’이나, 보편적 이념의 힘 같은 ‘제2의 생명’은 타자를 압도하고 지배하에 두려는 경향을 면치 못한다. 이에 대해 자기와 타자(사람· 사물)와의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을 핵으로 하는 일본적인 ‘군도문명’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월(包越; 포섭하고 뛰어넘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협한 내셔널리스트’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세계를 ‘대륙문명’형으로부터 일본적인 ‘군도문명’형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문명을 일본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논자는 학자· 연구자의 테두리에 박히지 않는, 시대 구제의 뜻을 가진 사상가로서의 저자의 뜨거운 정열을 본다.

한편 ‘제3의 생명’을 ‘영원의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으로 단정하고 강조하는 그러한 ‘지금· 여기’ 개념은 도겐(道元) 스님이 말하는 ‘이금(而今)’, ‘전후제단(前後際斷)’과 같은 선종(禪宗)의 핵심으로 절대현재에 사는 동양적인 깨달음의 도달점이지만, 반면에 모종의 찰나적,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함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제3의 생명’의 참뜻이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공공철학의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제창하는 ‘사이의 철학’과─김 주간의 정확한 표현에 따르면 ‘사이로부터의 철학’─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철학은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를 잇고 맺고 뛰어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머니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지배 아래, 격차사회에 따른 분단과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불관용이 만연하는 현대 세계에서, 군도적(群島的)인 ‘제3의 생명적’, ‘사이적’ 문명을 일본이 앞장서서 세계에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창(共創)하는 동아시아로’라고 호소한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신형코로나바이로스로 가로막히고 먹구름이 드리우는 나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세계 사람들, 거대한 재앙에 신음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다.

번역: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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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규 마코토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오구라는 이 책의 벽두에서 비교문화의 방법론을 심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보통 ‘대륙’과 대비되는 것은 ‘해양’이다. 하지만 대륙·해양의 분류는 안보 또는 국제정치상에서 주권국가의 세력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오구라가 말하는 ‘군도(群島, archipelago)’는 바로 바다 위의 섬들에게 인간이 살고 문화나 문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태를 나타낸다. 즉 대륙·군도라는 구분은 문명론적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오구라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오구라는 나름대로의 문명론을 전개함에 앞서서 그 방법론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의 비교문명론이 범한 오류들에─문화 내셔널리즘, 문화 본질주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에의 의존, ‘인간’이라는 근본에 대한 자각의 결여 등─ 대해 경계한다. 이와 같이 철저한 방법론적 반성과 ‘제2의 생명’ 및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은 오구라 문명론을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유성종(劉成鍾),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두 분 선생님이 먼전 논평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먼저 그것을 살펴보고 나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유성종은 이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요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또 오구라가 논어도 새로운─‘제3의 생명’이라는─각도에서 다시 읽은 것처럼, 미래도 도덕도 어디 있는 것을 찾거나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어야 하며,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다,라는 메시지를 도출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유성종은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오구라의 논고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오하시 켄지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군도의 문명/ 대륙의 문명’이라는 틀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하면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 발의 글러벌리즘에 흠뻑 빠진 ‘주변문명’으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비교・ 고찰이라는 ‘수평적인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 이와 같은 고찰에서 저자와 견줄 만한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오구라가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봄과 동시에, ‘제3의 생명’이라는 생명론적인 축을 도입한 데에도 독자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오하시는 오구라가 강조한 ‘제3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인데, 이것은 중세 일본의 대표적인 선승인 도겐(道元, 1200-1253)이 말한 ‘이금(而今)’ ‘선후제단(先後際斷)’과 같은 선(禪)의 핵심이자 절대현제에 사는 동양적 깨달음의 도달점과도 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한 현실주의로 타락하거나 모종의 찰나적(刹那的),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오하시는 그것은 기우(杞憂), 즉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군도의 문명이─구체적으로는 일본문명─ ‘제3의 생명’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오구라의 참뜻은 마지막 장에서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결코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 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제3의 생명에 기초하면서 타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 ‘사이’를 잇고 맺고 넘어서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과 더불어 밝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제1의 생명(물질적・ 육체적・ 생물학적인 생명)이나 제2의 생명(영적・ 보편적・ 영생적인 생명)과 다른, 덧없고 순간적이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 사이에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에서 ‘문화’와 ‘문명’을 다시 읽으려고 한 오구라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것은 중화문명・ 서양문명과 같이 제2의 생명에 입각한 이른바 ‘보편문명’의 시각에서 비하된 제3의 생명을 복권시키고 다시 빛을 바라게 했을 뿐, 만약에 제3의 생명(과 거기에 바탕을 둔 군도문명)이 고급하고 제1, 제2의 생명(그리고 대륙의 문명)은 저급하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오구라는 불교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일본적 영성’론에 의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의 도읍지인 헤이안쿄(平安京)에 살던 귀족들은 섬세한 ‘제3의 생명’의 기미에는 민감하게 정신을 집중시켰으나, 그 ‘생명’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음은 있어도,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아직 ‘대지(大地)’를 모르고 ‘영성’을 몰랐다. 그런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에 오면 헤아안쿄에서 멀리 떨어진 동국(東國)에 살던 무사, 농부, 승려들이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영성’과─오구라에 의하면 ‘제2의 생명’─ 만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 안에서도 제2와 제3(그리고 당연히 제1)의 생명은 서로 상관연동하면서 삶의 영위와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제1, 2, 3의 생명’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제2와 제3의 생명의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군도의 문명에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제3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구라의 생명론적 문명론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문명・ 문화의 개별성의 양쪽을 아우르는 것이다. 만약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오구라의 주장을 ‘제3의 생명’ ‘애니미즘’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군도문명=일본문명이 주도권을 잡고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대륙=해양문명이 좌지우지하는 세계를 바꿔보자는 신종의 문화적 패권주의의 주장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논자가 보기에 ‘제2의 생명’과 ‘제3의 생명’은 원래 그 원천이 다르다. 저자가 밝혔듯이 덧없이 살다 죽는 한계(제1의 생명)를 가진 인간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하나(1)’라는 관념을 극도로 추구한 결과 도달하게 된 것이 ‘제2의 생명’이다. 이에 대해 ‘제3의 생명’은 개별성, 순간성, 감각성을 지닌 것이고, 또한 어린 아이가 철들기 전에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나날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고 다루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가 아끼는 인형과 말하고 역을 떠나는 열차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바로 그때 그(녀)와 인형이나 열차 사이에는 ‘제3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도 ‘다오야메부리(たおやめぶり)’ 즉 “덧없고 아녀자(兒女子)같은 것”이며 여성적이고 유약하고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것이 인정(人情)의 본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라고 말했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무사적인 “올곧고 씩씩한” 마음가짐은 오히려 ‘가라고코로(漢意)’ 즉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꾸며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약함이 곧 일본의 원래 정신이라는 노리나가의 주장은 무사사회 일본에서는 아주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은 오구라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새로운 복지와 교육, 리얼리즘도 설계주의도 아닌 외교 방식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저자가 ‘아니미즘’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에 의해 변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구라 생명론과 문명론이 장차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 > 자유게시판 - 사단법인 대한사랑 - DaehanSarang (Daehan History & Culture Assoc.)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 > 자유게시판 
- 사단법인 대한사랑 - DaehanSarang (Daehan History & Culture Assoc.)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

대산

글주소
2017-11-28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대산 신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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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 충북대 명예교수는 공공철학과 미래학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흥미를 갖고 지난 30여 년 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조사 연구해 온 원로학자이다.
김태창 선생이 주창한 공공철학(公共哲學)은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공철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생성돼 큰 피해를 낳았던 ‘멸사봉공(滅私奉公)’이나 그것의 안티테제인 ‘멸공봉사(滅共奉私)’가 아닌 ‘공’과 ‘사’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철학을 말한다.
‘공공철학(公共哲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공공하는’ 철학을 말하는 것으로 서양의 ‘Public Philosophy’와는 다르다. ‘모두가 함께한다’라는 의미의 ‘공공(公共)’에 김 박사는 ‘대화’와 ‘협력’ 등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 되고 글로벌화 된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새로운 ‘공공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김태창 박사는 최근 한국사상의 원형인 천부경(天符經)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국내에서 활동할 때 보다 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것을 알고 그것을 자신 있게 제시하고 설명할 필요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철학적 빈곤에서 오는 좌절감과 패배의식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의 일화를 소개해 드리면,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초대교수였던 박종홍씨가 세계적인 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초청을 받고 자택을 방문하게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초청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게다가 하이데거가 집에 직접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하이데거가 하는 말이, “일본학자들과 대화를 해서 일본철학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철학자들과의 얘기를 통해서 중국인의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인의 독자적인 철학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인의 철학이야말로 근원 철학(radical philosophy)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한 문헌이 ‘천부경’이라는 말을 들었다”라면서, 직접 ‘천부경’을 보여주더니 “이것을 좀 해석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종홍 교수가 그때까지는 서양철학만 하고 한국철학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천부경’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한국인의 철학을 알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말을 어떤 신부님의 회고담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천부경’은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천부경’ 해설서들은 너무 아전인수 적이고 견강부회적인 것이 대부분이어서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이해와 납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해석과 저 나름의 이해를 정리해둔 바가 있습니다만은 오늘은 한 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고 설명하는데 좋은 문헌적 자료의 하나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말씀만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위서논란이 끊이지 않고 학술적 신빙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이 팽배하는 현상입니다만 저 자신은 다른 문헌들과 함께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은 방법과 관점을 제대로 세우고 접근한다면 한(인·민) 철학의 새로운 공동구축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자료로써의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부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
그런데 천부경은 아직까지 한국철학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아 일부 한국 국민들만 그 존재를 알고 있고, 천부경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과 가치를 알고 있는 한국 국민은 극히 소수에 불과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공철학을 주창한 김태창 선생은 193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충북대 교수, 충북대 사회과학대학장, 충북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일본동경대 객원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객원연구원, 호주 시드니경영대학원 객원교수, 공공철학공동연구소장(오사카) 등을 거쳤다. 또 세계미래연구협회 국제집행위원, 일본 장래세대종합연구소장, 일본 오사카 공공철학 공동연구소장, 중국 인민대학 초빙교수, 홍콩대학 객원교수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 그는 카네다 세이치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그는 김태창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구 선생, 김좌진 장군과 같은 안동 김씨 가문에 속하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병약했던 소년 김태창은 15세 때 치유불가능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상에 누워 지냈다. 극심한 병고 속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언어능력뿐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살아남는다면 자신의 언어능력으로, 말로써 세상에 이바지하겠다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청년이 된 김태창 선생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인간철학과 정치철학, 사회철학을 공부한다. 김태창 선생은 국내로 돌아와 명강의로 대학 내외에서 유명해졌다. 충북대 사회과학대 학장이 된 그는 대형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열정을 담아 강의했다. 하지만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호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반대로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았으며, 한때는 체포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 격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고뇌하고 신음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 무렵 나중에 동경대 총장이 된 사사키 카케시 교수의 초청으로 김태창 교수는 199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 법학부 객원연구원이 되었다. 일제하에서 식민지를 겪은 그는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다.

김태창 교수는 일본을 무시하고,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학문을 닦아 일본 학자보다 뛰어난 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에 머무르면서 일본의 참모습을 탐구했다. 김태창 교수가 느낀 것은 ‘언어 경시’와 ‘타자 부재’의 일본이었다. 그 두 개의 일본상은 결국 ‘닫혀진 일본’이었다. ‘일본인’이라는 동질의 이웃 이외에는 모두 경원과 제외의 대상으로서의 ‘이질적인 타자’였다. 김태창 교수는 그런 일본을 타자에게 열린 사회로 바꾸기 위한 철학 대화를 시도했다.

김태창 교수는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公)’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사(私)’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고 ‘사’를 살아 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반이라고 역설했다. 그 과정에서 공적 성향이 강한 일본의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공공(公共)’보다도 ‘사공(私共)’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태창 교수는 교토포럼을 기획하고 이끌면서 세계 각국에서 각 분야 최고 전문학자들과 철학적 논의를 계속해 나갔다. 그의 ‘공공철학’은 일본을 넘어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까지 확대되는 가운데 《공공철학》 시리즈(전 10권) 중국어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의 철학은 상대를 수용하고 깊이 이해함으로써 상생하는 데 있다. 서로 매개하고 계발하여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타자를 살리는 것이 곧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는 철학이다.

그는 말한다. “타자를 세우는 것이 동시에 자신도 서는 길이라는 것은 이미 공자도 말한 바 있습니다. 공자는 자기가 서고 싶으면 먼저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먼저 남을 이루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한 말이지만 이 말을 깨닫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김태창 교수는 80세 생일을 앞두고 20년 넘게 이끌어온 교토포럼에서 물러나 현재는 동양일보의 동양포럼 주간으로 활동하며 현대인들이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철학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 30여 년 간 글로벌 장래세대포럼(40회), 공공철학 교토포럼(120회), 재일본외국유학생포럼(30회), 일본 내 유명대학 순회 교토포럼(10회) 등 50여개 국이 넘는 나라에서 수천명의 학자들과 철학대화를 갖기도 했다.

그는 최근 미래는 혼자 만드는 독창(獨創)이 아니라 함께 일으켜가는 공창(共創)이라는 의미에서 ‘미래공창’ 개념을 생각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면서, 한·중·일이 함께 더불어, 서로서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저서로는『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7) 등 다수가 있다.
김태창 선생은 청주시 문화상, 충북도 문화상,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과 미래학회가 주관하는 제정한 2회 미래세대상 등을 수상했다.

부끄러운 것은 한국 전통철학의 원형인 천부경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인 김태창 박사의 존재를 많은 한국 사람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2) 김태창, 야마모토 쿄시, 카마다 토지 |2018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by소걸음Jan 24. 2018

개벽신문 제67호, 2017.9


[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할 수 있었다. 김태창 선생과 야마모토 쿄시 편집장에게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2.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 :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만남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카마다 토지 선생님의 [강좌...댓글0Jan 24. 2018by소걸음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의 개신(開新)을 통해서 신천신지신인(新天新地新人)의 상관연동적 혁신을 실천하는 영도(靈道)·영통(靈通)·영변(靈變...시각에서 보면 ‘분열상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적 영성의 측면에서 보면 견고한 일원 통합지배가 아닌 고차기능적인 유연한...댓글0Jan 28. 2018by소걸음





다시 두 왕국론?: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김진혁

[원문]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교회를 위한 신학이야기/사회•환경과 신학
[원문]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by 데오스앤로고스 2016. 1. 5.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2018 김태창, 야마모토 쿄시, 후카오 요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by소걸음,  Jan 18. 2018

1
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편집실 주 : 이 글은 2017년 8월 14~16일에 동양포럼 주최로 열린 한·중·일 철학·문학 대화를 위한 사전의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그해 3월 1일 오후 일본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에 있는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선생의 자택에서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의 사회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후카오 선생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라는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을 미래공창신문 재외기자 겸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 연구원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
  • 김태창 : 동양포럼 주간
  •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 오사카대학 준교수

시간 : 2017년 3월 1일

장소 :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

片岡 龍 카타오카 류 | 도호쿠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카타오카 류 | 도호쿠 대학 대학원 문학 연구과 ·
教授
片岡 龍
KATAOKA Ryu





교수카타오카 류카타오카 류


사상사란
다리를 잡는 것


사상사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다른 문화를 살던 사람들과의 시공을 넘은 대화입니다.
또, 문학·역사·철학 등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사이, 나아가 문계와 이계의 울타리도 극복해, 다양한 학문 영역의 기간이 되어, 학문과 사회의 교대에도 적극적인 것이 사상사의 맛입니다.
 정해진 방법은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간절한 질문을 찾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나의 경우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조선과 일본 사이, 또 일본 중에서도 오키나와나 동북 등의 변경에 나타난 현대적 과제를 의식하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사상·문화·종교적인 전통 를 검토하려고합니다.
공공이란, 생명이란, 영성이란, 평화란, 그 문제를 자신의 말씀으로, 친밀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현재의 내 과제입니다.
동시에 다른 과제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더욱 더 문제 관심을 넓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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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ring the history of thought is like building a bridge

The history of thought helps cover the gap in time and space between our contemporaries and those who lived in the past, as well as people who belonged to a different culture. Another specific characteristic of the history of thought is that it seeks to link scientific research with society, as it breaks down the barriers between human sciences and humanities such as literature, history, or philosophy, and transcends the gap between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s, serving as a lynchpin for various disciplines.

There is no template for this research. The first step is to determine the most urgent question for oneself. Personally, I strive to develop a new look on specific ideologies, cultures, and religious traditions of the East Asian countries, especially Japan and North and South Korea. In doing so, I also address issues that emerge between those countries today, as well as problems that characterize the frontier areas of contemporary Japan ― Okinawa and Tohoku.

My current aim is to master the vocabulary that will allow me to talk about the concepts of public sphere, life, spirituality, and peace in my own terms, as well as discuss them with people around me.
On the other hand, I am always willing to listen to issues raised by others, since doing so helps me expand my awareness about different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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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약력
저서·논문 등주요 담당 과목일본사상사개론약력1965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동양 철학을 전공. 한국·숙명여자대학 강사 등을 통해 현재 동북대학 문학연구과 교수. 전문은 일본 사상사 동아시아 비교 사상. 최근에는 동아시아발 공공철학·생명사상에 관심을 깊게 하고 있다.

편저서에 「일본 사상사 핸드북」(신서관, 2008), 
「공공하는 인간 1 이토 닌사이」(도쿄 대학 출판회, 2011), 
「공공하는 인간 2 이시다 우메이와」(도쿄 대학 출판회, 2011) 등 .

학위박사(문학)

연구분야 
  • 일본사상사, 
  • 동아시아 비교사상연구과제유교를 중심으로 한 근세 동아시아 사상사(1995~) 
  • 동아시아로부터의 공공 철학·생명론의 탐구(2009~)
  • 근대 동아시아의 영성론·평화 사상의 재검토(2015~)

연구 키워드유교, 실학, 공공, 생명, 영성, 평화

소속 학회 등일본사상사학회, 중국사회문화학회, 일본유교학회 등연구자 소개 DBhttp://db.tohoku.ac.jp/whois/detail/7e380965111118071e55a531baf653f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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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藤仁斎―天下公共の道を講究した文人学者 (公共する人間) 単行本 – 2011/1/1
片岡 龍 (編集), 金 泰昌 (編集, 原名)


「道なるものは天下の公共、人心の同じく然るところ」----17世紀の京都、「武」に偏した時代に抗し、一市井人として『論語』と『孟子』というアジアの古典に立ち向かった仁斎。「公共的な対話」の場を重視した仁斎は、人間社会を、そして人や自然の「生命」のつながりをどう見ていたのか。
「길이 되는 것은 천하의 공공, 인심의 똑같은 곳」
----17세기의 교토, 「타케」에 편향한 시대에 저항해, 이치이이인으로서 「논어」와 「맹자」라고 하는 아시아의 고전에 맞서는 인사이. 「공공적인 대화」의 장을 중시한 인사이는, 인간사회를, 그리고 사람이나 자연의 「생명」의 연결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320 페이지 

320 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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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社からのコメント
「愛」、人口に膾炙したこの言葉を、ひとかけらの諦めや蔑み無しに語る大人は現代の日本にどのくらいいるだろう。朱子学を徹底的に学び、いつしか疑いを抱き、孔孟の原点に立ち返った伊藤仁斎は、日常的な他者との関わりの中に道を見出す。人を赦すこと、人を忖度すること、人を愛すること。それらの言説の背後には、精密な学究と切実な苦悶があった。まずは原点に辿り着き、そして原点から出発する。本書はその困難と意義を問う。【担当編集者】
=== 출판사로부터의 코멘트 「사랑」, 인구에 췌장한 이 말을, 한사람의 포기나 멸치 없이 말하는 어른은 현대의 일본에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주자학을 철저히 배우고 언젠가 의심을 품고 공묘의 원점으로 돌아온 이토 닌사이는 일상적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길을 발견한다. 사람을 용서하는 것, 사람을 학대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 언론 뒤에는 정밀한 학구와 절실한 고민이 있었다. 우선은 원점에 도착해, 그리고 원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은 그 어려움과 의미를 묻습니다.


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片岡/龍
1965年生れ。東北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准教授。日本思想史、東アジア思想史

金/泰昌
1934年生れ。公共哲学共働研究所長。1990年来日。政治哲学・比較社会思想(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登録情報
出版社 ‏ : ‎ 東京大学出版会 (2011/1/1)
発売日 ‏ :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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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共する人間2 石田梅岩―公共商道の志を実践した町人教育者 単行本 – 2011/10/14
片岡 龍 (編集), 金 泰昌 (編集)


「士農工商は天下を治めるたすけとなる」――江戸期,都市化・経済化の流動的な波の中で,人々の生のつながりの公共的意義を説いた梅岩.広範な影響を及ぼしたその心学は,人々に希望を与え,世界のすべての存在が共に幸福になることをめざす創造的・運動的な営みであった.

長さ300ページ


商品の説明

出版社からのコメント
自己を利する,自他双方を利する,天下を利する――江戸期,商人蔑視の風潮の中で,「心学の祖」とされる石田梅岩によって,利益追求の新たな可能性が拓かれた.しかしその道は険しい.「我」の心と「天」の心を重ねることは,本当に可能なのか.そして,その道を庶民にも広げることはできるのか.彼が見出した方途は,学を実践し,それを庶民に開くことだった.「倹約」と「正直」,聞き慣れたはずの言葉は,新たな響きを帯びる.【担当編集者】

자기를 승리, 자타 쌍방을 승리, 천하를 승리한다. 열렸다. 그러나 그 길은 험하다. 「나」의 마음과 「하늘」의 마음을 거듭하는 것은,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그 길을 서민에게도 펼칠 수 있는가. 그가 발견한 방도는 학을 실천하고 그것을 서민에게 여는 것이었다. '계약'과 '솔직', 익숙해져야 할 말은 새로운 울림을 띤다. 



内容(「BOOK」データベースより)
「士農工商は天下を治めるたすけとなる」―江戸期、都市化・経済化の流動的な波の中で、人々の生のつながりの公共的意義を説いた梅岩。広範な影響を及ぼしたその心学は、人々に希望を与え、世界のすべての存在が共に幸福になることをめざす創造的・運動的な営みであった。
「사농공상은 천하를 다스리는 죽음이 된다」―에도기, 도시화·경제화의 유동적인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연결의 공공적 의의 를 설득한 매화 바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그 심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세계의 모든 존재가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창조적·운동적인 행위였다.

著者について
片岡 龍:東北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准教授
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片岡/龍
1965年生れ。東北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准教授。専門は日本思想史、東アジア思想史

金/泰昌
1934年生れ。公共哲学共働研究所長。1990年来日。専門は政治哲学、比較社会思想(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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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録情報
出版社 ‏ : ‎ 東京大学出版会 (2011/10/14)
発売日 ‏ : ‎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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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文

  85

MISC

  67

書籍等出版物

  16

講演・口頭発表等

  50

その他

  17

종이

  85

기타

  67

도서 및 기타 출판물

  16

강연·구두 발표 등

  50

기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