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8

류시화 Shiva Ryu -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연습

(1) 류시화 Shiva Ryu -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연습 나는 힌디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인도를... | Facebook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연습
나는 힌디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인도를 여행하며 길거리에서 배운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그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 더 가깝게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고, 다양한 음식을 먹고, 성직자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많은 대상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이긴 하지만, 현지어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친밀한 소통이 가능하고 나아가 복잡한 감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기에 밤에 졸음과 싸우면서 단어와 문장을 외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뻐기듯이 써먹었다.
“아름다운 해가 떴네. — 예 순다르 수리야 헤.”
“빠깔루, 나한테 힌디어 가르쳐 줄 수 있어? — 빠깔루, 캬 압 무제 힌디 시카 삭테 헤?”
그러자 빠깔루가 명랑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당신한테 시간이 있으면 내가 가르쳐 줄게. — 자루리! 아가르 압코 사마이 헤, 메 시카웅가.”(‘메’에는 코감기 걸린 것처럼 비음이 살짝 섞임.)
‘빠깔루’는 ‘삶은 감자’라는 뜻이다. 별명이 아니라 이 인도인 친구의 실제 이름이다. 태어날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고모가 ‘감자 삶는 것처럼 더디다’고 해서 이름이 ‘삶은 감자’가 되었고 그대로 호적에 올렸다. 나중에 이 친구가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신붓감이 내세운 단 하나의 조건은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람(라마신)의 아내’나 ‘시바(시바신)의 아내’가 되고 싶지, ‘삶은 감자의 아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적에 등재된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설령 아자이나 산자이로 바꾼다 해도 모두가 죽을 때까지 ‘빠깔루’로 부를 게 뻔했기에 결혼식 후 그 약속은 없던 일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삶은 감자의 아내’로 살아갈 운명이었다. 이 빠깔루가 주로 나의 힌디어 연습 상대가 되었다.
“나마스테, 빠깔루. 나는 삶은 감자를 무척 좋아해. — 무제 빠깔루 바홋 파산드 헤.”
“빠깔루, 나는 너의 이름을 먹고 싶어. — 빠깔루, 메 압카 남 카나 차하타 훙.”
그러면 빠깔루는 또 천연덕스럽게 감자를 삶아다 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더 놀라운 것은 빠깔루의 동네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이름이 빠깐다였다. 그래서 문장 연습할 겸 “너, 소금 가지고 있어? — 캬 압케 파스 나막 헤?” 하고 물으니까 빠간다는 없다(“나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왜 갑자기 소금을 묻느냐는 표정이길래 “빠깐다, 나는 너의 이름을 먹고 싶어. — 빠깐다, 무제 압카 남 카나 차하타 훙.” 하고 말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진짜로 자신의 이름을 소금 찍어서 먹어 치운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빠깐다’는 ‘삶은 달걀’이라는 뜻이다. 멀쩡하게 잘생긴 청년인데 대체 어떤 탄생 설화와 관련된 이름인지 궁금했으나 자존심 상해 할까 봐 더 묻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사물의 이름과 사교에 필요한 일상 용어들을 암기한 것에 불과했고, 문법을 조금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문장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힌디어는 한국어와 문법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단어들을 조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힌디어는 불어, 독일어, 폴란드어 등과 마찬가지로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 구분이 있고, 주어의 인칭에 따라 동사 변화가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일인칭이고 빠깔루는 삼인칭이다.
“나는 결혼을 원한다. — 메 샤디 카르나 차하타 훙.”(어디까지나 문장 연습임.)
“빠깔루는 결혼을 원한다. — 빠깔루 샤디 카르나 차하타 헤.”(실제로 간절한 상황.)
“나는 결혼할 것이다. — 메 샤디 카룽가.”(문장 연습!)
“빠깔루는 결혼할 것이다. — 빠깔루 샤디 카레가.”(실제 상황.)
여성의 경우는 “샨티는 결혼할 것이다. — 샨티 샤디 카레기.”가 된다. 불어나 독일어를 배울 때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인칭에 따른 동사와 조동사 변화가 흥미 있어진 나는 빠깔루에게 발음 교정을 받으며 목소리도 낭랑하게 열심히 연습했다.
“나는 빠깔루와 함께 삶은 감자를 먹는다. — 메 빠깔루케 사트 빠깔루 카타 훙.”
“빠깔루는 자기 이름을 먹는다. — 빠깔루 아프나 남 카타 헤.”
하루는 길모퉁이에 누워 있는 초췌한 남자를 보았다. 더운 나라여서 그런 광경이 흔하기 때문에 누워 있는 것인지 쓰러져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옆에 있는 개가 그의 상처난 발을 핥고 있었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길 옆 가게로 달려가 소리쳤다.
“무제 마다드 차히예! 무제 마다드 도!”(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내게 도움을 줘요!)
가게 안에 있던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무제 마다드 도!” 하고 외쳤다. 그는 “무슨 일이야? 어디 다쳤어?” 하고 물으며 내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길모퉁이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해. ‘운코 마다드 차히예. 운코 마다드 도.’ 당신이 외친 것은 저 남자가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어. 그리고 저 남자는 날마다 저곳에서 낮잠을 자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일 이후로 나는 모든 문장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연습을 했고, 나 자신에 관련해서도 삼인칭으로 말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이것은 그 어떤 명상법보다도 나의 문제를 제삼자의 문제로 객관화하는 연습에 유효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감정과 쉽게 동일시되지 않고 거리를 두는 데 효과적이었다(이것을 전문 용어로 ‘탈동일시’라고 한다).
‘나는’이라고 말하는 것에 확고해진 언어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외국어 초보 학습이기 때문에 더 가능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종종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듯이 나는 빠깔루를 부르며 말했다.
“시화가 지금 배가 많이 고파. — 시화코 아비 바훗 부크 라기 헤.”
“시화는 삶은 감자와 삶은 달걀을 좋아해. — 시화코 빠깔루 오르 빠깐다 파산드 헤.”
“시화가 아파. 시화가 슬퍼. 시화가 조금 화가 났어. — 시화 비마르 헤. 시화 우다스 헤. 시화 토라 구쎄 메 헤.”
시화가 문장 연습을 한다는 걸 모르는 착한 빠깔루가 놀라서 묻는다.
“왜 그래? 아침 안 먹었어? 감자 삶아다 줄까?”
시화는 천연덕스럽게 삶은 감자를 세 개나 얻어먹으며 즐겁게 말한다.
“시화가 노래를 부른다. 시화는 웃고 있다. 시화는 시원한 물을 마신다. — 시화 가나 가테 헤. 시화 한스 라하 헤. 시화 탄다 파니 피타 헤.”
“시화는 내일 아침에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아침을 먹을 것이다. — 시화 칼 슈버 순다르 라르키케 사트 나스타 카레가.”
빠깔루가 수상쩍은 눈을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볼 때, 내가 다시 말한다.
“항상 미소 짓고 있는 너는 — 툼 이트나 조 무스끄라 라헤 헤
어떤 슬픔을 감추고 있는가? — 캬 감 헤 지스코 추파 라헤 호?
눈에는 눈물, 입술에는 웃음. — 앙콘 메 나미, 한시 라본 파르.”
빠깔루는 갑자기 유창해진 나의 힌디어 실력에 놀라지만,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인도 최고의 가수 자그짓 싱이 부른 노래 가사이다. 무엇을 감추기 위해 나는 그토록 웃으며 힌디어를 연습하고 있는가? 무슨 아픔과 후회의 감정을 잊으려고 삼인칭으로 자신을 묘사하며 이국의 거리에서 애써 웃을 거리를 만드는가? 나의 서툰 힌디어 실력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내면의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내가 타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다 보여진다. 강렬한 태양 때문일까,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적당히 가려져 있는 고독, 상처, 마음의 병 등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삼인칭화시키는 문장 연습이 그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것들로부터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게.
벌의 짧은 침처럼 단순한 문장만큼 자신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없을 때가 있다. 자의식적인 언어를 나열해 복잡한 문장으로 자신을 분석할 때 오히려 미궁에 빠진다. 많은 문제의 출발점이자 근본 원인인 일인칭 주어에서 벗어나 삼인칭으로 자신을 묘사하면 자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문법이 서툴더라도 나는 매년 인도에 가서 내 좌뇌의 언어중추에 삼인칭 문장들을 심어 나갔으며, 축복과 힘든 노동이 공존하는 빠깔루의 인생도 해마다 변해 갔다.
“빠깔루는 딸이 한 명 있다. — 빠깔루코 에크 베티 헤.”
“빠깔루는 예쁜 딸이 두 명 있다. — 빠깔루코 도 피야리 베티양 헤.”
“빠깔루는 셋째 딸이 가장 예쁘다. — 빠깔루키 티스리 베티 삽세 피야리 헤.”
“빠깔루의 넷째 딸들은 쌍둥이다. — 빠깔루키 초티 베티양 주르바 헤.”
“시화는 어제도 오늘도 웃는다. — 시화 칼 오르 아즈 무스크라 라하 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