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길] 인문학공동체에서 불교학교를 연 까닭은
입력2022.09.01
인문학 공동체에서 하는 공부는 이른바 문사철과 외국어가 주류입니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를 시작하고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피아노 연주, 작곡, 드로잉, 연극, 집짓기, 풀과 나무, 목공, 심지어 수학이나 과학 공부 모임도 꾸리고 싶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깊이 공부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결국 신학자를 모셔 희랍어 히브리어 성서 읽기를 하는 한편 스님을 모셔 도심 속의 불교강원을 개설했지요. 성직자나 수행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우리도 공부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불교강원에는 당시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이던 원철 스님을 비롯해 화엄학림 학장을 지냈던 법인 스님 등 쟁쟁한 스님들이 참여하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큰 꿈을 안고 닻을 올렸으나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지속성이었습니다. 유명 스님들은 생각보다 바빴고 직장인이 긴 공부를 이어가는 것 또한 예상외로 어려웠습니다. 처음 강의를 맡았던 스님들이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으면서 교수진이 바뀌자 참여자들도 빠른 속도로 흩어졌습니다.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만난 분이 명법 스님이었습니다. 해인사 국일암에서 출가한 수행자이자 운문승가대학 명성 스님에게 전강을 받은 학승, 서울대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였지요. 서울대, 홍익대, 동국대에서 미학과 불교를 강의하며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꾀하고 21세기 불교의 새 역할을 모색하고 있었으니 공동체 선생으로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유마경>을 시작으로 <미란다왕문경> <중론> <금강경> <능엄경> 등의 경전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스님 강의의 특징은 수행을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토론하는 공부가 머리를 채우는 것이었다면 수행은 삶을 변화시키는 공부였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경전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나무는 보되 숲을 보기가 어려웠지요. 고심 끝에 현대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책으로 불교 전반을 빠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2년 과정의 ‘명법 스님 불교학교’를 열었습니다.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이어지는 불교사를 통사적으로 공부하면서 불교의 다양한 수행과 실천, 이론의 발달 과정을 읽고 사유하고 토론하는 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책상머리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외에서 생성된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며 스스로 사유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노력이었습니다. 목적이 이렇다 보니 스님 한 분이 강의와 학문 지도, 수행 모두를 담당하는 융합적·통전적·전인격적 공부 방식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1인 학교는 또한 초기불교, 중관, 유식, 천태, 화엄, 선, 티베트 불교 등등을 각각의 전통이나 이론에 따라 분리시켜 이해하는, 불교학의 분과성을 극복하기에 좋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사이, 서울에 머물던 스님은 화엄탑사 구미 불교대학으로, 해인사 국일암으로 수행처를 옮겼지요. 하지만 강의는 놓지 않았습니다. 매주 금요일 상경해 밤늦게까지 강의한 뒤 이튿날 산사로 복귀하는 강행군을 이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닥친 코로나19는 큰 위기였지만 또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반화한 온라인 강의 덕에 스님은 산사에서, 참여자는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국내외 각지의 사람들이 매일 새벽 온라인으로 만나 동안거, 하안거를 진행한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습니다.
공동체의 공부가 대개 그렇듯이 이 학교의 목적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읽고 토론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성찰은 실천까지 포함합니다. 결국 이 학교의 목적은 ‘지금, 여기’ 우리의 마음과 몸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세계를 만드는 일에 나서는 겁니다.
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명법 스님과 몇몇 분들에게 이번 가을은 제2기 불교학교를 새로 시작하며 마음을 다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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