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4

이병철 - -서울 나들이, 한살림·사상계 심포지엄 인사말

이병철 - -서울 나들이, 한살림·사상계 심포지엄 인사말/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다. 지난번 실크로드 순례를 다녀오며... | Facebook

한살림·사상계 심포지엄 인사말/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다. 지난번 실크로드 순례를 다녀오며 잠시 들른 뒤 처음이다. 가능하면 서울행을 삼가며 지내는데, 이번에는 뜻밖의 일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한살림 40돌을 맞아 한살림과 사상계가 공동으로 특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사상계 편집고문 자격으로 인사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무슨 발제자나 토론자가 아니라 그저 인사말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실 나는 사상계를 대표할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라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고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장원 편집인이, 내가 오랫동안 한살림과 함께해 왔으니 한살림과 사상계를 잇는 가교의 마음으로 인사말을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제 아침 마산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살림운동 40년 특별기획 심포지엄'의 주제는 '한 사람, 살림운동, 울림과 열림'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대강당에는 족히 200여 명이 함께한 것 같았다. 요즈음 보기 드문 큰 모임이었고, 그 자리에서 오랜 인연들과도 다시 만날 수 있어 서울 나들이가 모처럼 뜻깊고 반가웠다.
심포지엄 내용은 다른 곳에서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여기에는 어제 내가 했던 인사말의 대강만 나누고자 한다.
인사말에는 40년 전 한살림운동의 시작을 함께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감회와, 사상계가 내게 내심으로 기대했을 '홍보와 연결'의 역할을 함께 담고자 했다. 한살림 40년에 대한 내 소회는 인사말 몇 마디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인사말은 길지 않아야 한다기에 아쉬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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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류입니다.
저는 오늘 사상계를 대신해 이 자리에 섰지만, 사실 사상계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사상계를 대표하려면 발행인이나 편집인이 와야 할 텐데,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잘 아시는 것처럼 제가 한살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40년 전 무위당 선생을 모시고 인농 박재일 형님과 함께 한살림운동을 시작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또 한살림연합 감사를 가장 오래 맡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문득 초창기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인농 형님, 노겸 김지하 시인 등 여러 선배들과 함께 한살림 공부 모임을 하고, 한살림 선언문을 만들면서 '죽임의 문명을 넘어 살림의 문명으로'를 꿈꾸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한살림 40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살림 40주년의 의미는 한살림만의 기념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생명운동이 걸어온 40년을 돌아보고, 문명 전환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살림운동을 다른 말로 '문명 전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살림 선언은 반생명의 문명, 그  죽임의 문명을 넘어 생명의 살림 문명으로 나아가자고 분명히 천명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이 생명운동인 까닭도, 문명 전환 운동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문명 전환의 열쇠말이 바로 '모심과 살림'일 것입니다. 밥상 살림, 땅 살림, 생명 살림은 모두 모심과 살림의 구체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한살림 40주년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어떻게 문명 전환을 이루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모심과 살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40년 전에는 문명의 위기를 예감하며 대응을 모색했다면, 지금 우리는 이미 문명 대전환의 거대한 혼란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의 질문이 '어떻게 제대로 살 것인가'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어떻게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되는 모든 주제 역시 문명 전환의 대혼란 속에서 그것이 함께 살아남는 길인가 하는 물음 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모심과 살림'을 새로운 시대의 실천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살림에 회자되는 말 가운데는 '우리는 모심으로 살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새삼 생각합니다.
오늘 사상계가 모심과살림연구소와 함께 '살림운동 40년'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여는 것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상계 역시 문명 전환과 모심·살림을 중심 가치로 삼는 담론지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살림 식구들이 사상계에 함께 참여하여 생명 문명 전환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한살림 백만 식구가 사상계의 독자이자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말씀입니다.
사상계가 강제 폐간된 지 55년 만에 장준하 선생의 뜻을 이어 다시 창간된 것도 그 시대의 민주화 못지않게 지금 문명 전환이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을 함께 모으기 위한 담론지가 오늘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살림과 사상계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한살림과 사상계가 문명 전환의 대격변기 속에서 모심과 살림을 바탕으로 '생명의 연대, 생존의 연대'를 이루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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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심포지엄에서 했던 인사말은 지금 소개한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첫머리에서 나는 먼저 40년 전, 제기동 한살림농산의 쌀가게를 기억하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신지 물었다. 아마도 당시 인농 형님과 함께 실무를 맡았던 이상국 선생(전 한살림연합 대표)뿐인 것 같았다. 이상국 선생은 당시 한국가톨릭농민회 홍보부장을 맡고 있다가 인농 형님을 돕기 위해 한살림 실무를 맡았던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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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운동 40주년.
이 한살림운동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함께했던 스승과 선배들은 이제 거의 모두 떠났다. 그리고 어느새 그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1세대도 몇 사람 남지 않았다.
앞으로 이 세상이, 이 문명이,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40년 전 우리가 품었던 '죽임의 문명을 넘어 살림의 문명으로'라는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살림 40년을 오늘까지 지탱해 온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손길에 새삼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한살림의 새로운 40년이 모심과 살림의 정신으로 우리 시대의 희망을 이어 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202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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