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 비교종교학자의 열린 종교 특강
오강남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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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교수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첫걸음으로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우선 이 책은 평생을 바친 대가만이 다룰 수 있는 넓고 깊은 ‘세계 종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리한 균형 잡힌 그리스도교 입문서다.
동시에 다양한 종교를 두루 섭렵하면서 그 심층을 깨친 선각자가 ‘이웃 종교’에 비춘 그리스도를 친근한 말투로 쉽게 풀어주는 이야기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입장 차이와 상관없이,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에 품은 신앙이 무엇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손 내밀 수 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목차
독자들께
들어가면서
1부 역사로 보는 그리스도교
1장 그리스도교의 발생
2장 그리스도교의 형성과 발전
3장 중세, 동방교회의 분리
4장 개혁, 개신교의 등장
5장 근대, 근본주의의 등장
6장 20세기, 새로운 신학의 등장
2부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
7장 예수의 가르침, 성경
8장 고백의 언어, 더 깊은 의미
9장 깨달음의 언어, 도마복음
10장 새로운 가능성, 그리스도교의 오늘과 내일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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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오강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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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비교종교학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등 세계 각 종교를 섭렵하고 종교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에 천착해온 비교종교학계의 석학.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10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학을 공부했고, 비교종교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70년대에 캐나다로 건너가 동서 종교와 철학에 몰두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 더보기
최근작 :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종교란 무엇인가>,<오강남의 시선> … 총 79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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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읽고 읽고 말하다>,<2026 변리사 시험용법전>,<무한 그 너머로>등 총 472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5위 (브랜드 지수 140,981점), 음악이야기 8위 (브랜드 지수 20,843점), 불교 12위 (브랜드 지수 49,54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종교간 평화 없이는 한국 사회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가 살펴본 그리스도교,
균형 잡힌 이해 속에서 함께 사는 길벗으로 거듭나다
그리스도교는 세계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신도 수가 가장 많은 종교다. 2012년 통계(‘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글로벌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의 종교 인구 55.1퍼센트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32.6퍼센트(가톨릭 10.1, 개신교 22.5)다. 불교인(22.1)보다 무려 10퍼센트나 더 많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어떤 의미로든, 한국인 누구에게나 익숙한 종교다. 그런데 최근 일부가 보여준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로 인해 한국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정말 그리스도교는 갈등과 반목의 씨앗인가? 과연 우리는 익숙한 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한국 종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교수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첫걸음으로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우선 이 책은 평생을 바친 대가만이 다룰 수 있는 넓고 깊은 ‘세계 종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리한 균형 잡힌 그리스도교 입문서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불교 / 힌두교 / 도교 등 다양한 종교를 두루 섭렵하면서 그 심층을 깨친 선각자가 ‘이웃 종교’에 비춘 그리스도를 친근한 말투로 쉽게 풀어주는 이야기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입장 차이와 상관없이,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에 품은 신앙이 무엇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손 내밀 수 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 비교종교학자의‘열린 종교’특강, 그리스도교 입문 편
― 그리스도교의 발생에서부터 새로이 등장하는 그리스도교까지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표층과 심층을 한눈에 보여주는 입문서이자,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제안서이다. 1부 ‘역사로 보는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발생과 성장, 분리와 개혁 과정을 통해 어떻게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특징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의 현재적 의미도 짚어본다.
그리고 2부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교 이해의 열쇠가 되는 성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보여줌으로써, 무수한 교단과 교파가 가지는 의미를 살핀다. 특히 종교의 심층적 의미를 강조하는 저자는 성경을 ‘고백의 언어’와 ‘깨달음의 언어’로 바라본다. 문자주의적인 해석을 극복하여 예수의 가르침이 주는 더 깊은 의미를 제시하는 학계의 이론들을 총망라하고 교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도마복음>까지 끌어안았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선 ‘종교신학’까지 소개하고 ‘새로이 등장하는 그리스도교’의 다원주의적이고 수용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학자가 아닌 비교종교학자의 치우침 없는 시선은 다양한 독자를 포용한다. 다른 종교의 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어떠한 종교인지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교인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낳은 표층을 뚫고 들어간 심층에서, 갈등과 오해를 벗고 소통의 접점을 도모하는 그리스도교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이 될 책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의 경우 이웃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그리스도인들도 여러분의 대화상대이며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길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인 경우에는 그리스도교를 좀 더 역사적으로,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나의 뿌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본문 240~241쪽 <나가면서> 중에서
■‘성경’으로 그리스도교‘깊이 읽기’
― 문자주의를 깨고 심층을 향해 이해의 폭을 넓히다
흔히들 ‘창시자 예수’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따지면 예수는 그리스도교를 창시하지 않았다. 엄격히 말해 그는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교’니 ‘그리스도인’이니 하는 말도 모른 채 어디까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살다가 유대인으로 죽은 셈이다. 다만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에 기초한 종교이기에 예수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
그리스도교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에서 벌어진 일종의 ‘예수 운동’으로 생겨났다. 무자비한 철권으로 ‘팍스 로마나’를 이룬 로마 제국이 유대뿐 아니라 지금의 유럽과 중동 대부분, 심지어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출현해서 로마 제국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이 와중에 예수가 등장했고,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들의 종교가 바로 그리스도교인 셈이다.
그렇기에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도 물론 중요하지만, 오늘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을 꼴 지우고 또 이끌어 가는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된다. 그냥 ‘책’이라는 뜻을 가진 ‘바이블(the Bible)’은 크게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인 유대교의 경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고, 신약은 그리스도교가 생기면서 그리스어로 쓰인 그리스도인만의 문헌이다. 다만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은 ‘구약’이 유대인들에게는 완전한 경전이기에, ‘신약’과 대비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 세계 학계의 흐름과 발맞추어 ‘히브리어 성경’ 또는 유대인들의 표현에 따라 ‘율법(Torah)과 선지자(Nevi’im)와 문서(Kethubim)’의 첫 자를 따서 ‘타나크’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한 용어 하나에도 이처럼 세심한 눈길을 던지는 학자는 성경을 어떻게 바라볼까?
불경이든 성경이든 경전의 ‘원본’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수많은 필사본들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성경이나 불경에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본문을 두고는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 본문 166쪽 <7장 예수의 가르침, 성경> 중에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요 ‘계시’의 책이라 믿기에, 보수주의 그리스도인 특히 근본주의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는 한 점의 오류도 없다는 ‘성경무오설’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엿새 만에 창조되었다든가, 인류의 죄 때문에 하느님이 홍수를 보내 온 세상이 물에 완전히 잠기고 노아와 그 가족만 살아남았다는 <창세기> 등의 이야기를 모두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믿는다. 이러한 ‘문자주의’는 전능의 하느님을 믿는다면 성경의 이야기를 모두 문자적으로 믿어야만 진짜 믿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은 가장 충실하게 성경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상충하는 점을 지적한다. 인식 능력의 특성상 인간은 각자가 가지는 역사적?사회적?심리적 조건에 따라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창세기> 첫 부분에 보면 인류의 첫 여인 하와가 뱀의 꼬임을 받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통칭 선악과를 따서 자기도 먹고 또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아담이 먹었다고 되어 있다. 여성 비하 시대,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라면,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 말 하나 틀릴 게 없지’ 등으로 이해하고, 이것이 ‘성경대로’ 읽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훈과 진리라 주장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성차별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이 이야기를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을 떴다. 하와는 아담이 아직도 뭐가 선인지 뭐가 악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헤매는 것을 보고 그도 선악을 알도록 선악과를 먹게 도와준 거지’ 하는 식으로 읽기도 한다.
켄 윌버 같은 초인격심리학자는 “인간이 선과 악, 상대 세상과 나라는 것도 분간하지 못하던 ‘미이분법적’ 의식 상태에서 ‘이분법적’ 의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읽는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타락이 아니라 한 단계 Up되었다는 주장이다. ― 본문 171~172쪽 <7장 예수의 가르침, 성경> 중에서
물론 모든 해석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해석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에 앞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곧 해석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나면, 같은 성경을 보고 왜 저마다 다른 주장을 해왔는지 또 각기 다른 해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면 좋을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되 나를 비우고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 읽고 해석할 수 있다면 저자가 그간 저작들에서 한결같이 열변해 온 ‘종교간 대화’도 분명 먼일이 아닐 것이다. 내 속에서 새로운 의식을 일깨우는 이른바 ‘환기식 독법’이 특히 와 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종교간의 대화는 서로 상대에게 ‘거울을 들어 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불교인과 그리스도인이 대화를 할 경우, 그리스도인은 불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교인 역시 그리스도교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일부를 볼 수 있다. ― 본문 27쪽 <들어가면서> 중에서
■‘이웃 종교’에 비춰 본 그리스도교
― 쉬운 이야기로 만나,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길벗이 되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저자는 평생을 바친 대가다운 지식의 광범함을 바탕으로 ‘종교간 대화’를 강조한다. 이론에 그칠 수도 있을 주장이, 유독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실생활의 변화까지 꿈꾸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 깨우친 저자가 주는 울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종교들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먼저 마음을 열었고,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 ‘자체’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는데, 어느 한 종교의 심층에서 그 참된 의미를 찾은 것만큼이나 깊은 깨달음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아닐까? 더구나 이 심오한 진리를 ‘중학생 필독서’(<도덕경>, 2010)로 꼽힐 정도로 쉬운 이야기로 풀어주니 많은 독자들이 오강남 교수의 책을 읽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고백하면서 그를 ‘인생의 반딧불’로 여기는 것이 과장된 찬사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어려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 어릴 때 받았던 보수주의적인 그리스도교의 영향 때문에 불교나 다른 이웃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 박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로 유학을 갔습니다. … 한국에서 개론 정도를 배운 데 그친 동양 종교에 대한 지식으로는 비교종교학을 올바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동양 종교를 한번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고 동양 종교 과목을 택했습니다.
처음 택한 것이 중국인 교수가 가르치는 <법화경> 강의와 인도인 교수가 가르치는 <중관론>, 또 다른 인도인 교수가 가르치는 힌두교 베단타 사상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이어서 도가 사상, 선사상 등도 접하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종교의 세계가 눈앞에 새로이 전개되는 것을 보았고, 필자가 종래까지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도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 본문 9~10쪽 <독자들께> 중에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라는 대담집에서도 <종교, 심층을 보다>에서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음’만을 강조하는 표층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나 예수의 말씀 속에 감춰진 ‘비밀’을 깨닫자며 ‘이웃 종교’에 비춘 그리스도교의 참뜻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비밀을 깨달아 아는 것을 ‘그노시스’라 불렀다. 한문으로 이를 보통 ‘영지’라고 번역하고 영어로는 ‘knowledge’라 옮긴다. 그노시스는 앎이긴 하지만 남이 가르쳐 주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눈이 뜨여 사물의 깊은 차원을 봄으로써 ‘아하!’를 외치게 하는 앎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말로 ‘깨침’ 또는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원뜻에 가깝다. 그노시스는 불교의 ‘반야’, 곧 혜(慧) /명(明) / 지혜(智慧), 현대어로 통찰, 꿰뚫어 봄, 직관 등에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 본문 204쪽 <깨달음의 언어, <도마복음>> 중에서
이 같은 해석은,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여러 복음서들 특히 <도마복음>을 통해서 더욱 탄탄해진다. 주류 교단에서는 여전히 이단 문서처럼 취급하기도 하지만, 도마가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오인될 정도로 그 가르침이 주는 심오함이 깊기에 22세에 옥스퍼드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저술가 앤드루 하비는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을 가리켜, 같은 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졌다고까지 언급한 바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깨침’을 강조하는 <도마복음>이기에 지금껏 표층 신앙만 가능하고 심층 차원은 없는 게 아닌가 싶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증거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으로 익숙한 예수의 ‘천국 복음’ 즉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웠느니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선보인다. 이 구절은 예수가 제일 처음으로 선포한 기별이자, 전 생애에 걸쳐 끊임없이 외친 핵심 기별이다. 일반적으로 회개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의 뜻이 ‘의식을 바꾸라’, ‘보는 법을 바꾸라’임을 일깨우며 그리스도인도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일하”는 길벗이 될 수 있음을, 새로 나온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그 이해의 첫걸음이 되기를 역설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말은 그러니까 “눈을 떠서 천국이 가까이 있음을 알라” 또는 “정신 차려라. 천국이란 여기 있느니라”라는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를 좀 더 깊이 해석해서,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 우리의 의식 자체를 바꾸라. 그러면 천국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 본문 183쪽 <8장 고백의 언어, 더 깊은 의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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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깨달음을 그리스도교가 수용한다면 더 나은 종교로서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다.
니체 2021-10-22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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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책은 믿을수 있다. 도덕경과 장자의 역만 보아도, 이분은 우선 깨달은 분이라는 느낌을 준다. 도덕경의 강해는 현존하는 것중 최고수준이다. 지식의 깊이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깨달은 경지라는 것이다.
winwin 2014-01-0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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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이해와 학생들에게 종교교육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책
나의추억 2014-12-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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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이야기
비교 종교학자 오강남의 책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내가 유일하게 읽은 그의 저작은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였는데, 불교라는 종교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그후 그의 작업들이 많이 책으로 나왔지만 딱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라면 이땅에 절반 가까이가 교회와 성당을 다니고 개인적으로 여러 경험을 통해 남들만큼은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의 책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설 연휴를 맞아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개론으로써 의미를 가진다고 보인다. 나를 비롯해 모든 이들이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와 다양한 교파들이 가지고 있는 특색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 종교로써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한국이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뿐아니라 전세계를 무대로 살아가야 하는 후대들이 종교라는 측면에서 고민했으면 하는 부분을 잘 짚어준 글이다.
다들 알고 있지만, 거기서 뭔가 더 나은 모델을 찾고 싶었지만 마땅히 그게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현재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 위해 필요한 대안을 쉽게 풀어서 정리한 책이다 싶다. 그리스도교 신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거나 혹은 종교가 없는 이도 한번쯤 종교가 이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하는지 하는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다면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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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14-02-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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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이 책을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인을 위한책이 아니라 비그리스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 교양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이 책에 대해 쉽게 파악하려면 '독자들께' 와 '들어가면서' 책의 첫 부분을 먼저 읽어보는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을 통한 발전을 논지로 펴고 있고 불교평론에서 연재한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1부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로 각 장마다 1장 발생, 2장 형성과 발전, 3장 중세와 교회분리 4장 개신교의 등장 5장 근대 6장 20세기를 다루는 6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간간히 불교와의 비교 비슷한점등을 설명하고 있다.
2부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과 논지가 있는 부분으로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 라는 제목으로 7장 성경 8장 믿음 9장 도마복음 10장 새로운 가능성 이란 주제로 자신만의 견해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이해와 상호보완과 발전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교양서적으로서의 볼 만한 지식과 알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오류와 저자의 주관에 따른 한계 역시 보인다.특히 기독교인이나 전문종교인이 본다면 그것은 더욱 명확할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어쩔수 없는 점 도 있겠지만 저자의 사상이나 종교발전에 대한 논지는 진보적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만 보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전반적인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종교간의 상호 이해와 보완 발전의 견해를 볼 수 있음에도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를 더 힘들게 할 수 도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되려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평소 비판적인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점을 가지거나 별로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국 그리스도교가 구시대적인 관점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기 매우 쉽다.
또한 저자 오강남이 말하는 방법으로의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이 가진 이상적 측면으로 인하여 그것이 옳은 길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저자는 그것이 옳다의 관점이나 의도가 아님은 책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저자 오강남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라 한국적인 관점에서의 충분히 일어나는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도마복음과 그에 관련한 깨달음에 대한것으로 저자 오강남은 도마복음의 내용을 바탕으로 불교의 깨달음과 도마복음에서 꺠달음이라는 것을 통한 공통분모를 찾고자 하였다. 다만, 이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에는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는 영지주의가 본 책의 1부에서도 나오듯이 오래전에 이단으로 분리된 현실에서 도마복음을 공통분모로 보고 하나의 방안으로 가는 것은 무리하다고 볼 수 있다. 비그리스도교인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그 점을 쉽게 설명하자면 비구승과 대처승 그리고 중국화 되기 이전의 불교가 예시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승려가 고기를 먹거나 결혼을 한다면 파계승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승과 대처승의 갈등이 생기기 전만해도 한국에서도 승려가 결혼이 가능하였고 이를 대처승이라 부른다. 지금의 경우 대처승은 거의 없다. 중국화된 불교 특히 중국 남북조시 말기 이전에는 승려가 고기를 먹는것 자체로 파계가 되지 않을 뿐더러 종파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 한국의 불교도 승려가 고기를 먹고 결혼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일반적인 불교인이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물론 이것은 워낙 대중적인 인식인지라 비불교인도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저자 오강남이 바라보는 도마복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깨달음을 말하고 도마복음이 단지 영지주의에 복음서가 아니라는 주장은 앞서 말한대로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특히 도마복음에 있어 77절을 3가지를 검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강남의 주관적인 견해이다.
첫째는 우주적인 나 모든 사람속에 내재한 신성 천도교의 '향아설위' 개념과 궤를 같이하며 '시천주', '인내천'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초개인적인 자아 즉 불성
둘째는 빛이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로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와 불교의 아미타 유대교의 조하르의 문자적 의미 그리스도교의 '신의 영광' 이란 빛이신 신의 특성을 이야기 함을 말하며 신비주의 전통에서의 순수의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주는 보편적상징
셋째는 범재론적 신관을 통한 나 또는 신성이 어디에나 발견 될수 있다고 한것을 통한 장자가 도는 '없는데가 없다.' 를 인용하며 도의 '주편함'적 특성과 '편재성' 불교적으로는 '이사무애'나 '사사무애'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세가지 검토가 저자 오강남의 논지이다. 비그리스도교인이 볼 때 언뜻보면 모든 종교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넘어 갈 수있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난해한 점 역시 존재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이 본 다면 불쾌할 수 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저자의 의도와 책의 내용은 무의미하거나 곡해한 내용을 담았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분명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종교간의 화합과 상호존중 발전을 생각하여 글을 썼으며 그 방안으로 도마복음의 해석을 통한 깨달음을 통한 종교간의 공통성 내지는 비슷한 점을 찾아 내고자 했다.
비록 그 방안과 방법에 있어 본 독자는 문제가 있고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저자 오강남이 생각하지 않은 본 책으로 인한 오해와 저자의 의도가 훼손할 수 있는 실수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유의하며 책을 읽는다면 교양서로서 접하기에는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와 같이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을 위한 종교서적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단순히 도마복음에서 종교간의 공통분모를 추구하자는 것이 아닌 종교간의 공통성과 상호보완 그리고 이해를 추구하는데에 있다.
저자 오강남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라는 제목으로 대화와 협력의 관계 추구를 위하여 두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함께 일하는것' 시대의 도전에 협력하고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하여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
둘째 '함께 생각하는것' 사회, 윤리적인 공동 과업에서 건설적으로 함께 힘을 합치는것
이 두가지가 저자 오강남이 책을 쓴 의도이며 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위해 도마복음을 통하여 서로간에 이해와 보완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도마복음을 통하는 방법은 무리하며 오해를 부르기 쉽다.
저자가 바라는 상호 존중과 보완의 관점을 가지면서 도마복음과 같은 방안이 아닌 다른 현실적이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방안을 다음 저서에서 써주기를 바란다.
전체적인 감상은 일부 오류나 저자의 논지인 도마복음은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양서로는 괜찮다고 보인다. 다만, 비그리스도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책이 불교적 시선이 강하고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하며 불교인들 역시 그 점을 주의하며 읽어야지 오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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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ktta 2014-01-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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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오강남 박사는 최근 펴낸 '그리스도교 이야기'에서 기독교의 근본주의, 문자주의에 대해 심층 종교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됨을 비판하고 있다. 우선, 근본주의는 책에서 나온 것처럼 성격에 따라 '성경무오설', '대속설' 등 다섯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으나 근본주의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이 책 이외에 변론과 옹호의 입장을 서술한 입장도 들어본 연후에 판단하는 것이 옳다 사료되므로 이와 관련한 내용은 서평에서 담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둔다.
1) 종교간 대화와 평화
p.16 한국의 종교 인구 통계가 보여 주는 사실은 한국의 그리스도인 숫자가 불교인의 수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이다. 200여년 전에 들어온 가톨릭 그리고 100여 년 전에 들어온 개신교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종교 지형에서 불교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큰 줄기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p.17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나 전쟁의 대부분이, 물론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종교적인 요인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 틀릴 것이 없다.
p.19 "종교간의 평화 없이는 사회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이제 한국 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로 들린다. 한국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상호 이해와 협력은 한국 사회의 계속적인 안정과 번영을 위해 추구해야 할 필요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73 이제 21세기 탈근대 세계에서 다원주의적인 태도가 크게 대두되며 그리스도교도 등한시하거나 배격했던 깊은 차원의 가르침을 회복함으로써 스스로의 종교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불교나 기타 이웃 종교들과의 대화와 협력도 더욱 원만하고 활발하게 펼쳐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 한국 종교의 축, 개신교와 카톨릭교, 불교를 설명하면서 종교가 사회 갈등적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일러두고 있다. 지금도 정치적, 사회적 현상에 따라, 유불리에 의해, 혹은 입장차에 의해 한국 사회는 갈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 갈등까지 더해진다면 한국 사회를 향한 갈등의 파고는 더욱 드세질 것이다. 앞서 책에서 사회 갈등과 종교를 이야기 선상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사회 갈등 해법이 종교에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 것이라 평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종교간 화합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당장 개신교만 하더라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교파가 나눠지며, 또 개신교 자체의 교리를 부정하고 메시아의 성격을 뒤바꾸는 신흥 이단 종교가 드센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본주의로 점철된 한국 개신교에 변혁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바로 한국 개신교의 내부 상황적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2) 종교개혁
p.101 루터는 진리가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만으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성경의 권위를 확고히 했으며, 루터는 교회 안에 철통처럼 자리 잡고 있던 권위와 위계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현대성'의 문을 연 셈이기도 하다.
p.102 칼뱅의 가르침은 주로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우리가 구원을 받을지 멸망할지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의 직업은 '소명'이라는 것, 하느님의 동역자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일한 대가를 받고, 그 돈을 함부로 쓰지 말고 좋은 일에 쓰든가 남에게 빌려 주고, 그 이 자를 받는 것도 좋다는 것, 이렇게 근검절약하는 자주적인 삶이 선택받은 자의 표시라는 것 등이었다.
- 영국교회(성공회)도 종교개혁의 3대 축 중 하나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루터와 장 칼뱅의 이야기를 싣는다. 갈등 봉합에 화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갈등을 야기시키는 '불합리함'에 대한 항거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에는 교황의 세속화와 교회의 타락, 성직 매매의 일반화, 성직자의 무너진 독신주의 원칙, 술집과 도박장으로 수입을 충당하는 교구, 일반신도들의 처벌을 면제해줄 수 있다는 인덜전스의 판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이러한 불합리성에 대해 항거를 택하고 순수한 종교의 회복을 추구했다. 책에서 아쉬운 점은 화합, 대화 등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도 물론 중요하겠으나, 불합리성에 대한 타도, '할 말은 해야 한다'의 태도 견지가 당장의 갈등은 야기할지언정, 결국 갈등을 마무리짓고 체제적 측면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사회를 만들고 그곳에서 종교적 발전을 일궈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반성
p.224 현재 종교에 속한 젊은이라도 종교적 가치가 실생활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미국 어느 통계를 인용하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청소년들과 비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을 비교한 결과,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없거나 일상적인 윤리 생활에서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 누구나 죄를 짓는다.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종교적 교리와 대치되는 위선적인 삶을 지양하고자 적극성을 띄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외부의 시선에서 그리스도인에 실망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도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인의 생활 습관도 교리에 맞게 긍정적으로 변화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평을 쓴 나도 물론 이에 동참해야 한다.
본인 블로그에도 게재 : http://kodongwan.tistory.com/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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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맨 2014-01-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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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비교종교학자의 열린 종교 특강
오강남 저
현암사 출판
한국사회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사회이다. 더욱이 전통종교인 불교, 유교, 무속신앙과 더불어 비교적 최근에 전래된 그리스도교가 큰 분쟁없이 공존하고 있는 드문 사회이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이웃 종교에 대한 무관심, 적개심, 두려움등이 상당히 퍼져있다. 이러한 종교간의 부정적인 인식 이면에는 타 종교에 대한, 잘못된 정보, 교리에 대한 몰이해, 각종 유언비어가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인들이 스스로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화의 목적은 이웃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하기 위한 전도하기 위함에서 부터, 이웃종교의 우수한 점을 자신의 종교로 벤치마킹하기 위함도 있고, 종교간 분쟁과 갈등을 막기 위한 이해도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타 종교 수련 모임 참여등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타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종교를 보다 풍부하게 가꾸고자 하는 노력도 전개 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신자나 비종교인이 타 종교에 접근하기에는 어렵고 낯선 부분이 많다. 오강남 박사의 이번 저서는 그런 의미에서 뜻 깊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불교신자를 위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교의 지향점 제시가 주요 흐름이다. 책은 크게 두 단원으로 나뉘는데, 1부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교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로 보는 그리스도교"이다. 2부는 저자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그리스도교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아울러 이웃종교와 공존점을 이야기하는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이다.
본 인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는 표피적인 수준으로 "1부 역사로 보는 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개론서적인 관점에서 매우 유용하였다. 다만, 본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인식 수준이 한계가 있기에, 신학자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접했을때 어느정도 공감을 형성할 수 있을지는 장담을 하지 못하나, 큰 틀에서는 문제없이 공감되리라 여겨진다.
이 책의 중요 쟁점이 되는 부분은 "2부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로써, 1부에서 간략히 언급되었던 도마복음을 통해서 저자가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분석하고, 나아가 그리스도교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도마복음은 저자가 밝혔듯이 1945년 12월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전통의 복음서이다.(p68) 특히 저자는 여러 복음서 중에서 도마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p207) 도마복음의 여러 예수의 말씀을 통해 심층단계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복원하고, 이를 불교나 인도의 전통 종교와 비교를 통해서 "깨달음", "의식의 전환"등의 공통적인 종교적인 인식을 도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밝혔듯이 도마복음은 2천년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이단시되었고, 잊혀진 복음서이다.(p205) 저자는 도마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나, 저자의 인식대로 현 그리스도교에서는 영지주의 전통의 상당수 사라진지 오래이다. 더욱이 현대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문화를 이루는 성경에는 도마복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천년이 넘게 제외되었다. 따라서 현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도마복음을 통한 저자의 작업들이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교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할지는 미지수이다. 저자는 도마복음의 서술방식등으로 미루어 볼때 성경의 다른 복음서 보다 선행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나(p207) 도마복음 역시 다른 복음서와 마찮가지로 예수 사후에 작성되었고, 도마복음이 왜 제외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점을 비추어 봤을때,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다. 본인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마복음이 동양의 신비주의적 종교의 영향을 통해서 형성될 가능성도 분명 있는 만큼, 이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였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 있다. 물론 본인이 도마복음을 전문적으로 다룬 저자의 다른 저서 『또 다른 예수』를 접하지 않았기에 저자의 근거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도마복음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 본다면, 이책은 불교등 수행을 중시하는 종교적 관점에서 최대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산물인듯 하다. 저자는 종교를 표층, 심층으로 나누고 있다. 표층종교는 경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반해, 심층종교는 문자넘어 깨달음의 세계, 참나와 절대자의 합일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p201~202) 결국 저자는 그리스도교에서 심층종교적 특성을 제시하고, 그리스도교인 스스로 심층종교적인 전통을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는 불교학을 전공한 전문 종교학자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다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불교적 전통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앞선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 열반 이후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아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전들과 종파들이 나뉘어 왔다. 이는 깨달음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특성 때문에, 굳이 석가모니의 음성이 아니어도, 거기에 준하는 깨달음을 말하는 경전이라면 이를 기꺼이 수용하여 왔다. 그리하여 각 불교문화권 마다 방대한 경전과 논서들이 전해져 오고, 이는 깨달음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가는 다양한 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유일신을 믿는 신앙 중심의 종교로써 신앙을 위해 오르는 길은 결국 한정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차이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관용, 자비, 사랑으로 평화롭게 유지 될 수 있겠지만, 저자가 바라는 바와 같이 심층적 차원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본인으로써는 확신하기 힘들다.
그 러나 저자의 이런 노력은 분명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타종교, 특히 불교를 비롯한 수행중심의 종교인들에게 상호이해의 폭을 높이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상대 종교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인식(미신이라던가, 마교라던가)에서 벗어나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 고등종교로써 서로를 아름답고 풍족하게 하는 종교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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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atman 2014-01-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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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이 서평의 필자는 글에 앞서 소개를 한다면, 현직 중고등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써 평소에 종교에 관한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본인은 그리스도교인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궁금증과 역사를 그저 전공으로만 공부하는 것도 시험문제의 지식인 것 같아서 해답을 잘 찾아내지 못하는 답답함도 섞여있었다.
그러다가 오강남교수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처음 책을 받기전에 생각으로 그저 기독교인이 쓴 단순한 종교이야기일뿐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한국의 그리스도교 그리고 불교인에 보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보이는 가를 중점적으로 쉽게 풀어써서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같게 하였다.
특히나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근본주의적인 성향과 보수적인, 타 종교에 관한 극단적인 배제를 주류를 삼고있는 곳이 많다. '오직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표어아래 행하는 소수 극단적 이기주의의 종교적인 성향도 심심치 않게 뉴스나 정보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왜 이렇게 한국에서만 유달리 심한가를 알 수 있게 설명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해서 비교적 주관적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감동을 받았다.
이 서평의 필자는 그리스도교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꼭 한번 읽어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특히나 그리스도교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맹신적인 그리스도인들도 한번쯤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가지의 비관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새로운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는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는 한 날개로만 날아갈 수는 없다.' 특히나 한국에서 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종교적 마찰이 개인이든 가족이든 사회든간에 일어나는 것을 볼 수있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종교적인 믿음과 이해, 포용, 더 나아가서는 건강한 사회건설에 이바지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펜을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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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8 2014-01-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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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죽었는가
크리스마스용 책을 따로 구입하거나 읽는 편이 아니지만, 올해는 그렇게 할 만한 책이 생겼다.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가 공저한 <예수는 왜 죽었는가>(문학동네, 2014). '신화가 아닌 역사'가 부제.



폭스 뉴스의 시사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빌 오라일리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유명 언론인이라는 것과 '꼴보수'라는 것인데, 모르던 사실은 십여 권의 책을 쓴 저자라는 점. 그런데 마틴 두가드와 공저로 쓴 책들은 모두 '죽이기(killing)' 시리즈다. <예수는 왜 죽었는가>도 원제는 <예수 죽이기>이고, 이미 <킬링 링컨><킬링 케네디><킬링 패튼> 등의 베스트셀러를 합작한 바 있다.



책의 내용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써야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독서 포인트(오라일리의 책으론 '오릴리'란 저자명으로 <좋은 미국, 나쁜 미국, 멍청한 미국>(서울문화사, 2001)아 출간됐었다). 소개는 이렇다.
아마존 역사 분야 1위,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이미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종교화된 예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 당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복원해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고대 유대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유대 사회의 갈등과 모순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역사도 함께 그려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통쾌한 역설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두 저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다.



아마도 '역사적 예수'를 다룬 책으로 분류될 수 있을 듯한데, 이 분야의 책으론 <역사적 예수 논쟁>(새물결플러스, 2014)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 2012)와 영화감독 폴 버호벤의 <역사적 예수의 초상>(영림카디널, 2012) 등은 예전에 구입해놓은 책들이지만, 이사를 하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크리스마스 전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국내서로는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의 저자 오강남 교수의 <그리스도교 이야기>(현암사, 2013)와 <유대인 이야기>(행성B잎새, 2013)의 저자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행성B잎새, 2014)도 참고할 만하다. 그래, 크리스마스용 독서라는 걸 올해는 해보기로 하자...
14. 12. 14.



P.S. 당연한 일이지만 책장을 둘러보니 예수 관련서는 한참 더 꼽을 수 있다. 조철수의 <예수 평전>(김영사, 2010)과 올해 나온 책으로 조반니 파피니의 <예수 이야기>(메디치, 2014), 그리고 레자 아슬란의 <젤롯>(와이즈베리, 2014)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손에 들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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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4-12-14 공감 (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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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할 대로 부패해 버린 한국교회, 출구는 없다!
부패할 대로 부패해 버린
한국교회, 출구는 없다!
칼빈이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넘어 더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신자는 없고, 예수를 믿는 이들을 많지만 따르는 이들이 없다. 근심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생각하기를 넘어 행동할 때가 되었다. 거침 없이, 막힘 없이 정의와 공의를 향하여 손을 들어야 한다. 김근수의 <행동하는 예수>가 출간 되었다. 저자는 2013년에 이미 <슬픈예수>를 통해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지 말했다. 이제 행동하는 예수를 통해 몸으로 혁명을 몸으로 살아가야함을 설파한다.






두 권도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신광은의 <천하무적 아르뱅주의>와 부쉬의 <칼바르트>평전이다. 밀양에서 살인자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으니 피해자의 용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 뜨거웠던 <밀양>이 <도가니>란 괴물이 되어 돌아왔고, 불사조처럼 조를 먹고 부패와 멸망을 토해내고 있다.
과연 '천하무적'이다. 누군가 괴물이 된 한국교회의 깔뱅주의를 초토화할 아서왕과 신탁의 기사들이 필요하다. 간통하다 현장에서 들켜 에어컨 붙잡다 떨어져 죽은 한기종 전 대포 모목사는 천국에 갔을까? 한심한 작태다. 삶은 없고 이론만 있다. 몸은 없고 머리가 있는 괴물이 아니던가.


옥성호의 등장은 신선한 바람이었다. 이젠 외로운 혁명자가 되었다. 홀로 거대한 S 교회와 싸운다. 왜? 싸울까? 영혼중심을 벗어나 권력을 탐하고 탐욕스런 아르뱅주의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법이라도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선이되고, 누군가 아파하고 죽는다하여도 교회성장에 좋다면 마셔도 되는 독배를 들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인간들이 어디있단 말인가.
오강남 교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모호한 경계선을 가진다. 그러나 이젠 눈여겨 보고 있다. 분명한 선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른 종교가 아닌 개신교를 말한다. 삶이 부재한 현대 한국교회를 조준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다. 그토록 존경받은 초대의 한국교회는 다 어디가고 이젠 지탄의 대상이요,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다시 김근주다. 예레미야에게 한국교회의 길을 묻는 두 권의 책이다. 반드시 읽어야할 책들이다. 예레미야는 유대의 종말을 고한 비탄의 선지자다. 스스로 자승자박하여 유다의 미래를 몸으로 보여 주었다.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쁘다고 죽이려 들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의 위력을 보였다. 뽑고 다시 심으리라고 했다. 유대가 뽑히듯 한국교회는 뽑힐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전심으로 회개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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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4-02-27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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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요약 및 평론
1. 개요 및 책의 배경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2013년 저작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저자가 평생에 걸쳐 연구해 온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교리, 그리고 심층적 영성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종합적으로 정리한 '열린 종교 특강' 형태의 책이다. 이 책은 <길벗들의 대화>, <예수는 없다>, <또 다른 예수> 등 전작에서 꾸준히 제시해 온 핵심 메시지—문자주의와 배타주의를 넘어선 심층 신앙으로의 전환—를 그리스도교 전체의 역사적·통합적 맥락 속에서 다룬다. 저자는 서구 문명을 지배해 온 그리스도교의 참모습을 밝히고, 21세기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2. 핵심 요약: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발전 과정과 비판적 성찰, 그리고 미래 지향적 대안을 세 가지 주요 주제로 다룬다.
<1> 그리스도교의 두 얼굴: 표층과 심층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핵심 틀로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구분을 재차 강조한다. 표층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교리, 경전의 문자적 맹신, 문자 그대로의 기적과 속죄론, 그리고 자기 집단만 구원받 받는다는 배타성에 집중한다. 반면 심층 그리스도교는 교리의 껍데기를 넘어 참된 자아의 발견, 이기심(에고)의 죽음, 그리고 궁극적 실재(하나님)와의 일치를 지향한다. 저자는 표층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교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외면받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2> 역사적 맥락과 교리의 형성
책은 정통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제도화되었는지를 비판적 역사학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그리스도교는 제국의 통치 수단이자 강제적인 교리 체계로 변질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영적 해석(영지주의, 도마복음 등의 전통)이 이단으로 매장되었고, 하나의 교리만을 강요하는 독선적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교리라는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3>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열린 영성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다원주의 시대에 "우리 종교만 절대적 진리"라는 독선은 종교 간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야기한다. 심층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은혜는 불교의 자비와 깨달음, 도교의 무위자연 등 타 종교의 보편적 진리와 상통한다. 예수는 특정 종교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신성적 본성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기 위해 왔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3. 평론: 그리스도교의 재해석과 보편적 사유
<1> 대중적 통섭과 통합적 성찰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저자의 입문서적 성격이 강한 노작으로, 복잡한 비교종교학적·역사적 개념들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한 문체로 풀어냈다. 종교의 역사적·철학적 흐름을 대중 강연 형식으로 엮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신앙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좌표 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지적 이정표를 제공한다.
<2> 배타주의를 깨는 보편적 시각
이 책의 가치는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나 국가적·교파적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 열린 시야에 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독점적 구원관이 아닌 인류 공통의 영적 자산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신앙인뿐만 아니라 비신앙인에게도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교리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삶의 변혁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지적·영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3> 한계와 과제
저자가 제시하는 '심층 그리스도교'의 비전은 기독교의 윤리적·영적 본질을 잘 짚어내고 있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공동체를 유지해 온 제도권 교회의 사회적·역사적 기능을 다소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내면적 깨달음과 영성에 집중한 나머지, 역사적 예수가 가졌던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현실 정치·사회적 구조 개혁에 대한 윤리적 실천 차원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대목이다.
4. 결론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교리의 문자주의에 빠져 길을 잃은 현대 그리스도교를 향해 던지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경종이다. 집단적 독선과 배타적 교리를 넘어, 참된 깨달음과 보편적 사랑이라는 종교 본연의 길을 모색하려는 모든 길벗들에게 사유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는 통찰력 넘치는 길잡이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 비교종교학자의 열린 종교 특강>(2013)은 오강남의 기독교 이해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예수는 없다>가 역사적 예수를 중심으로, <또 다른 예수>가 <도마복음>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면, 이 책은 기독교의 탄생부터 현대 신학까지를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설명하는 '기독교 입문서'이자 '비교종교학 강의록'에 해당한다. 저자는 기독교를 내부자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비교종교학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조망하면서도, 그 영적 핵심은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따라서 이 책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기독교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1,000단어 요약·평론
이 책은 "기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오강남은 먼저 '예수의 종교'와 '예수에 관한 종교'를 구별한다.
예수의 종교는 예수 자신이 살고 가르친 삶이다.
예수에 관한 종교는 예수 사후 초대교회가 형성한 신앙 체계이다.
저자는 이 둘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교회는 예수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책은 먼저 역사적 예수의 삶을 설명한다.
예수는 갈릴리의 유대인이었으며, 로마 제국의 식민지 사회에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그는 기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비판했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으며, 율법보다 사랑을 강조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뒤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의 질서였다.
이러한 예수의 메시지는 정치적·종교적 권력 모두에게 위협이 되었고, 결국 십자가형을 당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저자는 초대교회의 형성을 설명한다.
예수 사후 제자들은 그의 죽음을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울은 예수 운동을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세계 종교로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강남은 바울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예수와 바울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이 차이가 기독교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어 교회의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로마 제국의 공인을 거쳐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영적 공동체에서 제도 종교로 변화하였다.
니케아 공의회,
칼케돈 공의회,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과 인성,
원죄,
속죄,
구원 등 주요 교리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비교적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교리들이 역사 속에서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리가 절대화되면서 살아 있는 영성이 약화되었다고 본다.
중세 교회에 대해서는 양면적인 평가를 한다.
한편으로는 권력과 결탁하여 종교재판과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란체스코, 에크하르트, 아빌라의 테레사와 같은 위대한 신비가들을 배출하였다.
오강남은 기독교의 생명력은 항상 교리가 아니라 신비주의에서 되살아났다고 본다.
종교개혁도 중요한 부분이다.
루터는 인간이 행위가 아니라 은총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고,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역시 새로운 교리를 만들었을 뿐 종교적 배타성은 크게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 성서학을 소개한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틸리히의 존재의 근거,
판넨베르크,
라너,
존 힉,
한스 큉 등의 사상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특히 존 힉의 종교다원주의는 오강남 자신의 입장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소개된다.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라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비교종교학적 해석이 중심이 된다.
예수의 가르침은 불교,
힌두교,
노장사상,
이슬람 신비주의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사랑,
자기 초월,
자비,
겸손,
하나됨,
궁극적 실재와의 일치는 여러 종교가 공유하는 영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종교를 세 층위로 설명한다.
첫째는 제도이다.
둘째는 신화와 상징이다.
셋째는 영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층위이다.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으면 근본주의가 되고,
제도만 남으면 권력기관이 된다.
영성이 살아 있을 때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교회 성장 경쟁,
배타주의,
목회자의 권위주의,
축복신앙,
교리 중심 교육은 예수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고 본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믿으라고 가르치지만 예수처럼 살라고는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미래를 전망한다.
미래의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과학과 대화하며,
영성을 회복하고,
타 종교와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사회적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평론
이 책은 오강남 기독교 이해의 가장 성숙한 정리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저작인 <길벗들의 대화>가 종교 일반을 다루었다면,
<예수는 없다>는 역사적 예수를,
<또 다른 예수>는 도마복음을,
그리고 이 책은 기독교 전체를 하나의 역사 속에서 조망한다.
특히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압축해 설명한 점은 큰 장점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균형감이다.
이전 저작들에서는 교회 제도에 대한 비판이 다소 강하게 드러났지만, 이 책에서는 교리 형성의 역사적 필요성과 신비주의 전통의 가치를 함께 인정한다. 교회를 단순한 권력집단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영성의 갱신 운동에도 주목한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 종교다원주의가 다소 규범적 전제로 제시된다. 저자는 존 힉의 다원주의를 가장 설득력 있는 모델로 소개하지만, 기독교 내부에는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이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처럼 종교의 고유성을 강조하면서도 타종교와 대화를 모색하는 다양한 입장도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
둘째, 비교종교학적 접근이 각 종교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기독교의 은총, 불교의 연기, 힌두교의 브라만, 이슬람의 타우히드(Tawhid)는 서로 만나는 지점도 있지만, 그 차이 역시 각 전통의 핵심이다. 오강남은 공통의 영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는 만큼 이러한 차이는 다소 약하게 다루어진다.
셋째, 사회적·정치적 차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처럼 기독교가 사회 정의와 정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간략하다. 이는 저자의 관심이 역사나 사회보다 영성과 의식의 변화에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수준 높은 기독교 교양서이다. 내부 신앙교육서도 아니고, 반기독교 비판서도 아니다. 비교종교학자의 거리감과 영성 탐구자의 공감을 함께 유지하면서 기독교를 해석하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오강남의 사상을 시간순으로 보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드러난다. <길벗들의 대화>에서는 종교의 보편성을 이야기했고, <예수는 없다>에서는 역사적 예수를 회복하려 했으며, <또 다른 예수>에서는 도마복음을 통해 내면의 영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기독교 전체의 역사와 사상 속에 체계적으로 배치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오강남의 기독교 이해를 집약한 대표작이자, 그의 비교종교학과 종교다원주의 사상의 가장 완성도 높은 종합서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