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 상 | 열린책들 세계문학 88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지은이),서정록 (옮긴이)열린책들2009-12-20원제 : Что делать (1863년)



목차
상
프롤로그
제1장 베라 빠블로브나의 소녀 시절
제2장 첫 번째 사랑과 결혼
제3장 결혼과 두 번째 사랑
하
제3장 결혼과 두 번째 사랑(계속)
제4장 두 번째 결혼
제5장 새로운 인민의 출현과 대단원
제6장 장면의 전환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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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Николай Гаврилович Чернышевски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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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는 19세기 러시아 사상계를 대표하는 급진적인 정치적 사상가이며, 문학 비평가이자 과격한 혁명가이고 소설가에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다. 체르니솁스키는 1828년 7월 28일 볼가강 근처의 중부 도시 사라토프의 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그 유명한 페트라솁스키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서 출판된 많은 사회학 서적을 섭렵했으며 1853년 당대의 급진적 문학잡지인 《동시대인》에 기고하며 문학적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1860년대의 급진주의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과격한 진보주의적 사상과 미래에 다가올 이상적 사회와 인간상,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삶의 목표와 실천해야 할 점 등을 설파했다.
1862년 혁명적 사상을 고취하던 잡지 《동시대인》은 8개월간 출판 정지를 당하고, 과격한 선동 정치의 선봉에 서 있던 체르니솁스키는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형무소에 투옥된다. 1863년 이 감옥 생활 중 그의 대표적인 사회·정치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동시대인》에 연재한다. 기나긴 복역과 유배 끝에 188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체르니솁스키는 지금까지도 러시아 과격파와 공산주의자들에게 숭배와 영감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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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살림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 큰 가르침을 얻었다. 그 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화사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우리 고대사와 동북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연관지은 《백제금동대향로》와 몽골 고원에 남겨진 칭기즈칸의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 북방 역사를 우리 시각에서 조명한 《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를 썼다. 이 책 《코즈모폴리턴 칭기즈 칸》은 그 어떤 사회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했던 분열된 몽골 고원을 통일하고 세계 제국을 건설할 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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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영혼의 왈츠 2>,<영혼의 왈츠 1>,<제책 매뉴얼>등 총 912종
대표분야 : 과학소설(SF) 1위 (브랜드 지수 1,058,092점), 고전 2위 (브랜드 지수 1,349,347점), 추리/미스터리소설 11위 (브랜드 지수 316,11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레닌을 감동시키고 뜨로츠키를 움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원형
러시아의 정치사회 소설의 대표 작가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의 대표작이다. 저자가 수용소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사회주의 이념을 최초로 구현한 소설일뿐만 아니라 레닌, 스딸린, 뜨로츠끼 등의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유명하다. 레닌은 자신의 책 제목을 이 책의 제목에서 따와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책은 러시아의 혁명적인 인텔리겐찌야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비합리적인 아버지 세대에게 '누구의 죄인가'라는 무력한 비판의식이, 아들 세대에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전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당대 지식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을 움직이게 했던 체르이셰프스끼의 진정한 힘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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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괜찮네요. 처음에 제목이 좋아서 사게 되었는데 읽어보니까 참 좋아요.
sevenrosekim 2011-04-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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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 당시 여자의 삶은 단순했다. 탄생, 결혼, 죽음.. 여기서 자유와 행복을 외치고 밖으로 나선 여성을 그린다는 것은 혁신임에 틀림 없다. 읽어 볼 만한 책이지만 번역이 영 신통치 않다 마치 기계가 번역한 것 같음.
ock9014 2015-10-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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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후반의 의식화 교재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1828년 사라토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하고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역사, 철학, 언어학을 배운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물론에 빠져, 자연스레 자유사상과 혁명에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이로 인해 1862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수용소에 투옥되고, 이 때 수용소에서 대표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집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1889년까지, 러시아가 얼마나 넓은지 감안하시기 바라는데, 전국의 수용소를 전전하며 무려 27년간 수용생활을 하다가 61세에 석방이 되고, 곧바로 죽는다. 수용소에서 무슨 병이 들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급사를 했는지는 책 뒤에 쓰인 연보만 가지고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당연히 19 세기 중반, 로마노프 왕조 치하에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의식화 교재다. 이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모르겠으나 내 의견으로는 소설이 아니다. 소설을 빙자해 독자로 하여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만드는 전향 권유 책자다. 그래 이 책의 열혈 독자를 꼽아도 목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프로 혁명꾼 플레하노프를 위시하여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미야코프스키 등등. 심지어 레닌은 책꽂이에 체르니셰프스키의 전집을 장만해놓았을 정도라니 소련에서는 아마 대를 이어 필독서 목록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소설의 외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소설로 읽어도 차라리 19세기 초반, 야박하게 얘기하자면 18세기 후반에나 어울릴 서사구조와, 등장인물의 정형화된 성격을 가졌다(라고 나는 읽었다).
물론 스토리 자체는 재미있다. 역자가 번역을 하면서 스토리 라인의 시간적 공간을 헷갈렸는지, 원작 자체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날짜 자체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 한 날짜와 장소가 뒤에서 다시 얘기하는 때와 곳이 다르기도 하고, 연도가 다르기도 한데, 이 정도는 봐주자. 작가가 다른 곳도 아니고 수용소에서 썼다니까 낮엔 노동하고 밤에 틈을 내서 끼적이는데 완벽한 퇴고는 불가능했을 수도 있으니.
그럼 이야기의 시작 부분만 좀 들춰보자.
프롤로그. 첫 문장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1856년 7월 11일 아침 모스끄바 철도역 근처에 있는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큰 한 호텔의 종업원들이 약간 겁을 먹은 듯 부산을 떨고 있었다.”
종업원들이 기겁을 한 날이 1856년 7월 11일 아침이 아니라 7월 21일 임은 421쪽 부근에 가면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프롤로그니까 아직 독자는 그런 건 눈치를 챌 방법이 없고, 다음 구절을 보면 ‘모스끄바 철도역 근처에 있는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큰 호텔’이라면 호텔이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호텔 근처에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위한 역이 있다, 따라서 호텔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다고 확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저 뒤로 가면 모스크바 철도역 부근에 있는 모스크바에서 제일 큰 메트로폴 호텔(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다음 문맥상 호텔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행 역이 맞다. 왜냐하면 호텔에 숙박한 신사가 새벽 두시 반 경 (당시의)임시다리 리찌야나 교에서 권총으로 머리통을 쏜 뒤 (네베로 보이는) 강에 빠져 북해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 젊은 신사가, 평소 안하던 짓인 최고급 호텔,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큰 호텔에 들어 룸서비스로 저녁을 거하게 차려 먹고, 물론 마지막 만찬이었겠지만, 새벽에 자신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은 채 네바 강에 빠져 죽은 건, 일단 ‘공식적으로’ 사실이다.
다음날, 페테르부르크 상류층의 여름별장이 밀집해 있는 바실리예프스키 섬, 까멘노이 오스뜨로프에 있는 방 셋짜리 작은 별장. 어떤 분위기의 집인지 궁금하시면 도스토옙스키의 역작 <백치>를 읽어보시면 단박에 짐작을 하실 수 있을 터인데, 이 집에서 여자 주인공 베라 빠블로브나가 페테르부르크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고 기겁을 한다. 죽은 남자에게서 온, 그러나 아직 그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받은 편지.
“내가 당신 마음의 평안을 해쳤나 보오. 나는 이제 그만 무대에서 사라지려고 하오. 나의 결정에 만족해하고 있소. 당신들 둘을 변함없이 사랑하오. 안녕.”
이 편지를 옆에 선 젊은 남자가 집어 든다. 그러니 프롤로그에서 딱 봐도 이건 두 남자와 한 여자 간의 삼각관계.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것 세 개만 고르라면, 불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삼각관계.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주제 중의 하나에 관한 책이구나, 라고 김칫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겠습니까, 안 들이켰겠습니까? 일단 프롤로그만 읽은 상태라고 가정을 하면 말씀입니다.
이어서 본문이 나온다. 첫 번째는 우리의 주인공 베라 빠블로브나. 어려서부터 독한 엄마의 치마 아래 겁나게 고생만 하다가, 엄마가 보기에 꾸미기만 괜찮게 꾸미면 그래도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불어, 독일어 교습에다가 피아노 레슨에 괜찮은 성악적 재질까지 두루 갖추어 놓고, 점점 자라 열일곱 살 되매, 최고급은 아닐지언정 근사한 드레스에 비싸지 않은 보석으로 치장을 해놓고 보니, 아파트 관리인을 하면서 무급 공직자를 하던 아버지가 근무하는 부서의 늙은 장관이 침을 흘리며 껄떡대기 시작했고, 이어 옆 부서의 또 다른 늙은 장관까지 눈독을 들이는 걸로 봐서 잘 만 하면 한 식구 팔자 고치는 건 시간 문제였단다. 그리하여 가장 괜찮은 배필을 골랐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돈 많은 소유주의 아들이자 (작가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1860년 기준) 현재에는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미하일 이바노비치 스또레쉬니코프.
그런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유와 혁명에 관한 꿈을 꾸다가 수용소에 처박힌 유물론자인데 주인공을 이런 룸펜 부르주아한테 엣다, 여기 있다, 건네줄 수 있나, 어디. 그리하여 사달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어디서 책 한 권 변변한 거 읽어본 적도 없고, 관련 수업 한 번 들어본 적도 없지만 구태의연한 여성차별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태생적으로 공동생산, 공동소비, 이익분배 같은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신기한 뇌구조다. 게다가 베라 빠블로브나와 연결이 되는 인텔리겐치아들은 모두 선하고,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키가 크고, 완력이 대단하고, 빠짐없이 사회주의 혁명 사상에 푹 절어 있다. 베라에게 처음 접근하는 인물이 드미트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이어서 역시 대단한 인내심과 천재적, 아니, 수재 이상의 능력을 지닌 의사 알렉산드르 마뜨베이치 끼르사노프. 단호한 성격과 대단한 결단력, 도라이 수준의 집행력을 지닌 엄격주의자 강철 사내 라흐메또프 등등.
그.러.나. 내가 자주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르크스의 가장 큰 오류는 그가 인간을 과하게 선한 집단으로 전제한 것. 이 책의 작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체르니셰프스키는 사회주의적 공동생산과 공동생활과 이익의 공동분배라는 과정이 극단적인 유토피아 적 결과물로 나타나리라고 상상했다. 1권 까지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읽기에 재미가 작지 않았지만, 2권으로 들어가서는 베라 빠블로브나의 개꿈 이야기로 스토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기색이 보여 언짢기 시작하다가, 심지어 소설의 형식을 깨고 의식화 자료에 준하는 공상적 설명문으로 채우려 한다. 독자는 벌써 21세기도 20년이 지나 까질 대로 까졌는데 말씀이다.
하나 더. 이 책을 읽으라 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중요한 이유는, 교정, 교열. 이제 글자 좀 틀리고 맞춤법 어긋나고 그런 거 가지고 시비하지 않겠다. 문장이 개떡인 것이 자주 눈에 띈다는 거. 개떡이라는 게 어떤 개떡 수준이냐고? 여태 A는 a의 대문자다, 라고 주장하다가, 주장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다음 문장에 A는 b의 대문자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불행하게 여기서 b가 a의 오식이어서 왜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왔는지, 이게 무슨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렇게 쓴 건지 오리무중일 경우도 몇 번 생긴다. 간단히 얘기해서, 독후감을 읽는 당신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만수무강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 굳이 돈과 시간을 써서 이 위대한 사회주의자의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으리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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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4-03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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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 사랑
1.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한권짜리 신판 양장, 분권된 세계문학판을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갖고 있던 거'지 읽진 못했다. 제목이 왠지 인문서를 연상시켜서 '지루하지 않을까'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책은 읽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남녀 간 사랑, 삼각관계, 우정과 갈등 등이 마치 주말연속극을 보는 듯 흥미롭게 이어진다. 이 때문에 1800년대 텍스트를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2.
프롤로그에 이어, 이야기는 '베라 빠블로브나'(베로치카)의 소녀시절부터 시작된다. 베로치까의 가족은 아버지(빠벨 콘스탄찌노비치 로잘스키), 어머니(마리아 알렉세예브나), 베로치카, 남동생 표도르 이렇게 4식구인데, 아버지는 관청 서기보이며 어머니는 전당포를 운영하고 금전대여를 한다. 어머니의 관심은 베로치카를 돈 많고, 힘있는 집안에 시집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부잣집 장교 '미하일 이바노비치 스토레쉬니코프'가 베로치카를 원하자, 어떻게든 그와 딸을 결혼시키려 안달을 한다.
하지만, 베로치카는 미하일 이바노비치의 청혼을 거절(p.77)한다. 그러자, 마리아 알렉세예브나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딸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너 정신이 나갔구나, 이 바보 같으니? 감히 순종하지 않고,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봐!"(p.77) / "짐승 같은 년! 베르까!(베르까는 베로치카를 경멸하듯 부르는 명칭임) 그가 네 얼굴에 미쳐 너를 원하는 것만 아니라면 피가 나도록 흠씬 때려 줬을 거야! (중략) 이 지긋지긋한 바보 같은 년!"(p.78) 마리아 알렉세예브나가 어떤 성격인지,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 믿는다.
그러던 중, 남동생 표도르의 가정교사로 '로뿌호프'(드미트리 세르게이치)가 들어오고, 베로치카와 로뿌호프는 서로 묘한 감정을 느끼는데...과연 베로치카는 마리아 알렉세예브나의 압박에서 벗어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3.
구성상 주목한 것은, 작가가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직접 개입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뿌호프의 독백장면 바로 뒤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미리 경고해 두고자 한다. 로뿌호프의 이 독백이 장차 로뿌호프와 베라 빠블로브나의 관계이 미칠 어떤 중요한 동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미리 넘겨짚지 말라는 것이다."(p.206)라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프롤로그의 [서론을 대신하여](p.21)에서는 무려 5페이지 가까이 개입하는데 마치 [작가후기]를 땡겨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점이 불만요소는 아니다. 크게 작품흐름을 끊지도 않았고, 작가와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도리어 좋았다.
4.
<무엇을 할 것인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지만, 사실 저런 걸 몰라도 상관없다. 베로치카가 봉제조합을 설립하는 p.274이전까지는 그냥 남녀 간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로 읽어도 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점에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느낌도 받았다. (물론, 봉제조합 설립이후, 조합운영이나 이익분배 장면은 사회주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아니, 처음에 우정, 갈등, 삼각관계도 있다면서 왜 이야기 안하지?"라고 궁금해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른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살짝만 던지고 가겠다. 로뿌호프의 베스트프렌드, '끼르사노프'란 인물이 있다. 어느 정도 절친인가 하면, 베로치카가 하루 종일 붙어다니는 둘을 (반쯤 장난식으로) 질투할 정도였다. 그런데, 끼르사노프는 로뿌호프, 베로치카 커플을 보고 점점 심한 마음의 갈등을 일으킨다. 왜? 아시죠? ^_^ 그런데, 또 그런 끼르사노프를 짝사랑하는 '나스쩬카'란 아가씨가 있으니, '아, 사랑은 어렵군.'
5.
생소한 작가, 1800년대 작품, 엄청난 분량, 분명 <무엇을 할 것인가>의 첫인상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생소한 작가의 1800년대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소개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걸작이니 뭐니 상관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냥 읽어서 재미있고 즐거운 소설이다. 대충보고 절대 겁먹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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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3-09-1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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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세기 혁명적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 <무엇을 할 것인가?>
[서평]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Chernyshevksy, Nikolai) 저, 서정록 역 <무엇을 할 것인가? (상,하)>를 읽고 / 2009. 02., 748쪽, 열린책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러시아의 정치사회 소설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1828-1889)의 대표작이다. 소설 작품임에도 저자는 단락마다 독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주인공과 이야기 전개 흐름에 대해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별로 접해보지 않은 색다른 방식이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소설은 ‘자유’를 향한 베라 빠블로브나의 당찬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그녀가 처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다.
성년이 되었으나 가난하고 비천한 대저택 관리인의 딸,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그런 여성에게 허락된 삶이란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기다리거나 하급 노동자가 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진 삶만이 강요되는 곳, 누구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곳, 베라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지하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하실’에 ‘사랑’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랑’이 곧 그녀를 구속하는 지하실의 정체다. 흔히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
베라의 어머니가 ‘사랑’을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딸에게 강요하고, 부잣집 아들 이반이 오로지 헌신적으로 남편을 보필해줄 여성을 배우자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관계와 억압상태가 지속되는 한 베라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라는 이 ‘지하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베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자 로뿌호프와 끼르사노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유물론자'들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과 ‘유물'은 화폐적 척도로 계산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를 충만하게 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선택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하는 것들의 ‘무게를 하나씩 달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동정, 연민, 희생으로 점철된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게 한다. 그러니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일하고, 관계하는 이 이기적 계산법에 따라 베라는 집을 나오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노력하는 신청년, 로뿌호프와 결혼을 한다.
베라와 로뿌호프의 사랑은 그 자체가 ‘지하실’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아주 파격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방을 썼고, 각방에서도 서로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립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한 베라는 자신의 꿈을 살려 가난한 여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봉제공장’을 만든다. 구성원 모두가 공장의 주인이기에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소비조합, 공동주택, 배움터 등의 새로운 관계와 생활들을 조직해 간다. 공장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관계와 실험 속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삶을 바꾸고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베라와 로뿌호프는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행보들이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바꾸고 외쳤던 바로 그 혁명의 실천이 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혁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사회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고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베라와 로뿌호프의 결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랑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저자가 짜르 치하의 수용소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사회주의 이념을 최초로 구현한 소설’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레닌, 스딸린, 뜨로츠끼 등 20세기 초반 소련의 혁명가들이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레닌은 자신의 책 제목을 이 책의 제목에서 따와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살벌한 짜르 체제에 의해 옥중에서 감시와 검열이라는 처지에서 저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체르니셰프스끼는 자신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을 소설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 책은 1860~70년대 러시아의 ‘인민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니셰프스끼는 베라와 로뿌호프, 끼르사노프와 라흐메또프(그는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데,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도 민족과 사회를 위해 사히적 책임을 다하려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등 러시아의 혁명적인 인텔리겐찌야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모델-새로운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적인 인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른 이들의 삶을 함께 변화시키는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모델인 것이다. 또한 비합리적인 아버지 세대에게 '누구의 죄인가'라는 무력한 비판의식이, 아들 세대에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전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새로운 인민의 출현'에 대한 확신은, 당대 지식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을 움직이게 했던 체르이셰프스끼의 진정한 힘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1828년 7월 28일 볼가 강 근처의 중부 도시의 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서 출판된 많은 사회학 서적을 섭렵했으며 1853년 당대의 급진적 문학잡지인 <동시대인>에 기고하며 문학적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1860년대의 급진주의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진보주의적 사상과 미래에 다가올 이상적 사회와 인간상,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삶의 목표와 실천해야 할 점 등을 설파했다.
1862년 혁명적 사상을 고취하던 잡지 <동시대인>은 출판 정지를 당하고, 진보적 사상 전파의 선봉에 서 있던 체르니셰프스끼는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형무소에 투옥된다. 1863년 이 감옥 생활 중 그의 대표적인 사회·정치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동시대인>에 연재하게 된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애초부터 예술적 형상화라든가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것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삶(生)을 능가하는 예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예술의 기능은 인간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을 주는 '생의 교과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인간관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개선시키는 것이었고, 그 실천의 일환이 바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기 위한 소설쓰기였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책은 아닌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이 소설이 높은 명성을 누려 온 것도 쟁쟁한 혁명가들의 칭송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당시인 1860년대부터 기존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코자 햇던 젊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환영을 받았다. 이는 이 책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도한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민들의 삶이나 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필자는 작품의 주인공 베라와 로뿌호프의 말과 행동이 당시 청년들이나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미쳤는지 느끼기 어렵다. 다만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여러 자료들은 '유럽의 산업화가 가져온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참한 모습과 귀족과 소시민들의 이기적이고 부패한 사회’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큰 파장을 일으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에 만연한 비참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부정부패와 이기주의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많은 부분 닮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지배층과 기득권 세력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진보와 개혁을 주창해왔던 많은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베라와 로뿌호프 정도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체르니셰프스끼는 기나긴 복역과 유배 끝에 188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까지도 전세계 청년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숭배와 영감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 2015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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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 사랑
1.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한권짜리 신판 양장, 분권된 세계문학판을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갖고 있던 거'지 읽진 못했다. 제목이 왠지 인문서를 연상시켜서 '지루하지 않을까'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책은 읽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남녀 간 사랑, 삼각관계, 우정과 갈등 등이 마치 주말연속극을 보는 듯 흥미롭게 이어진다. 이 때문에 1800년대 텍스트를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2.
프롤로그에 이어, 이야기는 '베라 빠블로브나'(베로치카)의 소녀시절부터 시작된다. 베로치까의 가족은 아버지(빠벨 콘스탄찌노비치 로잘스키), 어머니(마리아 알렉세예브나), 베로치카, 남동생 표도르 이렇게 4식구인데, 아버지는 관청 서기보이며 어머니는 전당포를 운영하고 금전대여를 한다. 어머니의 관심은 베로치카를 돈 많고, 힘있는 집안에 시집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부잣집 장교 '미하일 이바노비치 스토레쉬니코프'가 베로치카를 원하자, 어떻게든 그와 딸을 결혼시키려 안달을 한다.
하지만, 베로치카는 미하일 이바노비치의 청혼을 거절(p.77)한다. 그러자, 마리아 알렉세예브나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 딸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너 정신이 나갔구나, 이 바보 같으니? 감히 순종하지 않고,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봐!"(p.77) / "짐승 같은 년! 베르까!(베르까는 베로치카를 경멸하듯 부르는 명칭임) 그가 네 얼굴에 미쳐 너를 원하는 것만 아니라면 피가 나도록 흠씬 때려 줬을 거야! (중략) 이 지긋지긋한 바보 같은 년!"(p.78) 마리아 알렉세예브나가 어떤 성격인지,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 믿는다.
그러던 중, 남동생 표도르의 가정교사로 '로뿌호프'(드미트리 세르게이치)가 들어오고, 베로치카와 로뿌호프는 서로 묘한 감정을 느끼는데...과연 베로치카는 마리아 알렉세예브나의 압박에서 벗어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3.
구성상 주목한 것은, 작가가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직접 개입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뿌호프의 독백장면 바로 뒤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미리 경고해 두고자 한다. 로뿌호프의 이 독백이 장차 로뿌호프와 베라 빠블로브나의 관계이 미칠 어떤 중요한 동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미리 넘겨짚지 말라는 것이다."(p.206)라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프롤로그의 [서론을 대신하여](p.21)에서는 무려 5페이지 가까이 개입하는데 마치 [작가후기]를 땡겨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점이 불만요소는 아니다. 크게 작품흐름을 끊지도 않았고, 작가와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도리어 좋았다.
4.
<무엇을 할 것인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지만, 사실 저런 걸 몰라도 상관없다. 베로치카가 봉제조합을 설립하는 p.274이전까지는 그냥 남녀 간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로 읽어도 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쟁취한다는 점에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느낌도 받았다. (물론, 봉제조합 설립이후, 조합운영이나 이익분배 장면은 사회주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아니, 처음에 우정, 갈등, 삼각관계도 있다면서 왜 이야기 안하지?"라고 궁금해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른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살짝만 던지고 가겠다. 로뿌호프의 베스트프렌드, '끼르사노프'란 인물이 있다. 어느 정도 절친인가 하면, 베로치카가 하루 종일 붙어다니는 둘을 (반쯤 장난식으로) 질투할 정도였다. 그런데, 끼르사노프는 로뿌호프, 베로치카 커플을 보고 점점 심한 마음의 갈등을 일으킨다. 왜? 아시죠? ^_^ 그런데, 또 그런 끼르사노프를 짝사랑하는 '나스쩬카'란 아가씨가 있으니, '아, 사랑은 어렵군.'
5.
생소한 작가, 1800년대 작품, 엄청난 분량, 분명 <무엇을 할 것인가>의 첫인상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생소한 작가의 1800년대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소개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걸작이니 뭐니 상관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냥 읽어서 재미있고 즐거운 소설이다. 대충보고 절대 겁먹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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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13-09-14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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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세기 혁명적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 <무엇을 할 것인가?>
[서평]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Chernyshevksy, Nikolai) 저, 서정록 역 <무엇을 할 것인가? (상,하)>를 읽고 / 2009. 02., 748쪽, 열린책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러시아의 정치사회 소설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1828-1889)의 대표작이다. 소설 작품임에도 저자는 단락마다 독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주인공과 이야기 전개 흐름에 대해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별로 접해보지 않은 색다른 방식이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소설은 ‘자유’를 향한 베라 빠블로브나의 당찬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그녀가 처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다.
성년이 되었으나 가난하고 비천한 대저택 관리인의 딸,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그런 여성에게 허락된 삶이란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기다리거나 하급 노동자가 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진 삶만이 강요되는 곳, 누구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곳, 베라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지하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하실’에 ‘사랑’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랑’이 곧 그녀를 구속하는 지하실의 정체다. 흔히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
베라의 어머니가 ‘사랑’을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딸에게 강요하고, 부잣집 아들 이반이 오로지 헌신적으로 남편을 보필해줄 여성을 배우자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관계와 억압상태가 지속되는 한 베라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라는 이 ‘지하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베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자 로뿌호프와 끼르사노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유물론자'들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과 ‘유물'은 화폐적 척도로 계산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를 충만하게 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선택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하는 것들의 ‘무게를 하나씩 달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동정, 연민, 희생으로 점철된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게 한다. 그러니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일하고, 관계하는 이 이기적 계산법에 따라 베라는 집을 나오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노력하는 신청년, 로뿌호프와 결혼을 한다.
베라와 로뿌호프의 사랑은 그 자체가 ‘지하실’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아주 파격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방을 썼고, 각방에서도 서로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립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한 베라는 자신의 꿈을 살려 가난한 여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봉제공장’을 만든다. 구성원 모두가 공장의 주인이기에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소비조합, 공동주택, 배움터 등의 새로운 관계와 생활들을 조직해 간다. 공장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관계와 실험 속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삶을 바꾸고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베라와 로뿌호프는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행보들이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바꾸고 외쳤던 바로 그 혁명의 실천이 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혁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사회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고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베라와 로뿌호프의 결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랑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저자가 짜르 치하의 수용소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사회주의 이념을 최초로 구현한 소설’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레닌, 스딸린, 뜨로츠끼 등 20세기 초반 소련의 혁명가들이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레닌은 자신의 책 제목을 이 책의 제목에서 따와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살벌한 짜르 체제에 의해 옥중에서 감시와 검열이라는 처지에서 저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체르니셰프스끼는 자신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을 소설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 책은 1860~70년대 러시아의 ‘인민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니셰프스끼는 베라와 로뿌호프, 끼르사노프와 라흐메또프(그는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데,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도 민족과 사회를 위해 사히적 책임을 다하려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등 러시아의 혁명적인 인텔리겐찌야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모델-새로운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적인 인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른 이들의 삶을 함께 변화시키는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모델인 것이다. 또한 비합리적인 아버지 세대에게 '누구의 죄인가'라는 무력한 비판의식이, 아들 세대에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전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새로운 인민의 출현'에 대한 확신은, 당대 지식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을 움직이게 했던 체르이셰프스끼의 진정한 힘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1828년 7월 28일 볼가 강 근처의 중부 도시의 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서 출판된 많은 사회학 서적을 섭렵했으며 1853년 당대의 급진적 문학잡지인 <동시대인>에 기고하며 문학적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1860년대의 급진주의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진보주의적 사상과 미래에 다가올 이상적 사회와 인간상,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삶의 목표와 실천해야 할 점 등을 설파했다.
1862년 혁명적 사상을 고취하던 잡지 <동시대인>은 출판 정지를 당하고, 진보적 사상 전파의 선봉에 서 있던 체르니셰프스끼는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형무소에 투옥된다. 1863년 이 감옥 생활 중 그의 대표적인 사회·정치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동시대인>에 연재하게 된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애초부터 예술적 형상화라든가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것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삶(生)을 능가하는 예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예술의 기능은 인간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을 주는 '생의 교과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인간관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개선시키는 것이었고, 그 실천의 일환이 바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기 위한 소설쓰기였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책은 아닌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이 소설이 높은 명성을 누려 온 것도 쟁쟁한 혁명가들의 칭송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당시인 1860년대부터 기존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코자 햇던 젊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환영을 받았다. 이는 이 책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도한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민들의 삶이나 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필자는 작품의 주인공 베라와 로뿌호프의 말과 행동이 당시 청년들이나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미쳤는지 느끼기 어렵다. 다만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여러 자료들은 '유럽의 산업화가 가져온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참한 모습과 귀족과 소시민들의 이기적이고 부패한 사회’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큰 파장을 일으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에 만연한 비참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부정부패와 이기주의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많은 부분 닮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지배층과 기득권 세력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진보와 개혁을 주창해왔던 많은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베라와 로뿌호프 정도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체르니셰프스끼는 기나긴 복역과 유배 끝에 188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까지도 전세계 청년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숭배와 영감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 2015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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