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 평전 -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
한상봉 (지은이) 삼인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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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교육자, 사회운동가, 서예가이며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한살림운동의 숨은 주역, 무엇보다 우리나라 생명운동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무위당 장일순(1928~1994)에 대한 새로운 평전이다.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장일순 평전』(김삼웅 지음, 두레 발행)이 출간된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것으로 장일순의 서거 30주기에 즈음하여 그간에 발굴된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쓴 책이다.
목차
머리글 ‘장일순’은 누구인가?
1부 공경하는 마음
원주/ 가족/ 학교/ 전쟁/ 교육사업/ 결혼
2부 혁신 정치
정치/ 구속/ 옥바라지/ 옥살이/ 석방/ 난초
3부 교회로 우회하라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평신도 중심 자립교회/ 교회와 세상의 교차로/ 김지하/ 원주문화방송-부정부패추방운동/ 금관의 예수
4부 사회참여
남한강 홍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성서/ 지학순 주교 구속/ 주교와 시인, 석방 운동/ 원주캠프/ 장일순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
5부 따뜻한 혁명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청강靑江의 서화/ 글씨로 말하다/ 겨울에 찾아온 봄/ 혁명은 따뜻하게 보듬는 것/ 교회를 넘어서/ 김지하의 표연란
6부 생명운동
원주보고서/ 원주사변/ 김지하의 밥/ 정호경의 농민교리서/ 이현주의 마음공부/ 판화로 마음공부, 이철수/ 한살림운동
7부 생명사상
동학의 발견/ 천지 만물은 더불어 하나/ 모월산에서 배우다/ 나를 비우고 한울님을 모신다/ 바닥으로 기어라/ 생명에 대한 감각/ 밥 한 그릇에 담긴 우주/ 밥상공동체-한살림/ 장일순 주변, 덧붙이는 이야기
8부 돌아온 일상
유월민주화운동 그 후/ 그림마당 민 서화전/ 노자를 공자처럼/ 서화로 말 걸기/ 장 선생 댁/ 아내에게 부채질/ 일본 여행
9부 인생 갈무리
한 살림선언/ 해월 최시형 추모비/ 생명공동체운동/ 죽음의 굿판/ 녹색평론
10부 이승을 떠나다
사리암/ 노자 이야기/ 지학순 주교를 기억하며/ 장일순 선종/ 장일순, 그 후
무위당 장일순 연보
접기
책속에서
P. 42 장일순은 1·4후퇴 시기에 군 입대 적령기여서 군속으로 징집되었다. 영어를 잘해서 미군들이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었다. 포로로 잡혀 온 인민군들을 미군이 심사할 때 영어 통역을 하였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시대를 잘못 만나 징집되어 동족끼리 전투를 하고, 다수가 죽거나, 더러는 포로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 또래의 인민군 포로들이 겁에 질려 미군 앞서 진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장일순은 다시는 어떤 명분이나 이데올로기로도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뼛속 깊이 새겨 넣었다. 접기
P. 96 감옥에서 지낼 때 정부 관료 가운데 한 사람이 장일순을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었다. 하지만 장일순은 고민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히 거절했다. “한번 생각해 보자”는 식으로 뜸 들이는 일은 없었다. 당시 박정희는 1963년 2월에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각계의 유망한 인물들을 포섭하였다. 강원도 지역의 유력한 인물로 알려진 장일순에게도 그런 요청이 따라온 것이다. 만일 그때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장일순은 그날로 옥살이를 마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접기
P. 223 원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운동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원주 지역은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었으나 민주화운동 세력에게는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였다. 원동성당과 가톨릭센터, 그리고 장일순의 봉산동 집은 그들을 언제든 품어주는 공간이었다. 장일순을 존경하고 따르던 이들은 이 집을 ‘장 선생 댁’이라고 불렀다. 그를 친형처럼 따랐던 고향 후배들은 ‘형님 댁’이라고 부르고, 이웃 사람들은 소탈한 성격의 그이를 닮은 이 집을 ‘장씨네 집’이라 불렀다. 접기
P. 260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음식점에 써 붙여 놓은 곰탕 얼마, 칼국수 얼마란 글씨가 더 좋아. 뒷골목에 가면 말이야. 작은 판자에다 조그맣게 써놓은 글씨 있잖아? 초라하지만 단정하게 쓴 글씨 말이야. 그런 글씨가 난 한없이 좋아. 겨울 길거리에 군고구마 장수가 작은 판자때기에다 ‘군고구마’라고 쓴 글씨 있잖아? 그 글씨를 볼 때마다 ‘난 언제 저렇게 써 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글씨가 생활에 쓰이지 않으면 그 글씨는 이미 생명력을 잃고 마는 거지. ‘군고구마’라고 쓴 그 글 속에는 살려는 진한 생명력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겠어? 접기
P. 282 정치가 사람을 살리지 않고, 사람 사는 길로 가지 않고 어떻게 잘 될 수 있습니까? 그건 거짓 정치죠. 우리 사회에는 국민을 갈라놓고 지배당하고, 지배하는 쪽으로 붙어먹는 패거리들이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서 어떤 개인의 명예라든지, 시선을 잡는다든지, 그런 따위의 망상은 버려야 된다 이 말입니다. … 문제는 뭐냐 하면 내면의 생활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서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접기
P. 411 해월 선생님 말씀 중에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우주 일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어. 우주 만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거야. 밥 한 그릇이 곧 우주라는 얘기도 되지. 잡곡밥 한 그릇, 김치 한 보시기 같은 소박한 밥상도 전 우주가 참여해서 차려 올리는 밥상이라는 거야.
사람도 마찬가지야. 요즘 출세 좋아하는데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출세야. 나, 이거 하나가 있기 위해 태양과 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이 지구 아니 우주 전체가 있어야 돼.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 돼. 그러니 그대나 나나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가.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도 위대한 한울님인 게지.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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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상봉 (지은이)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천주교 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간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을 지냈으며, 전북 무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예술심리치료사로 일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하고, 현재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와 〈가톨릭일꾼〉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지상에 몸 푼 말씀』, 『연민』,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내가 너희에게 그랬듯이』, 『생활 속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너에게 가고 싶다』,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행동하는 사랑』, 『내가 그 사람이다–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그래요 그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나와 리영희>,<장일순 평전>,<그래요 그대> … 총 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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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연에게,>,<기적처럼, 채은이>,<사랑으로 가는 길>등 총 284종
대표분야 : 한국시 30위 (브랜드 지수 23,37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 단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이 어디를 가던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아침 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의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꼽았던 사람….
많은 이들과 함께 걸어온 길, 서거 30년에 즈음하여 펴내는 새 장일순 평전
『장일순 평전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교육자, 사회운동가, 서예가이며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한살림운동의 숨은 주역, 무엇보다 우리나라 생명운동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무위당 장일순(1928~1994)에 대한 새로운 평전이다.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장일순 평전』(김삼웅 지음, 두레 발행)이 출간된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것으로 장일순의 서거 30주기에 즈음하여 그간에 발굴된 새로운 자료와 시각으로 쓴 책이다.
무위당 장일순의 생애를 정리한 글을 간추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 원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장경호 밑에서 한학을 익혔고 우국지사 박기정에게서 서화를 배웠다. 194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고향 원주로 내려가 줄곧 원주에서 살았다. 1954년 지인들과 함께 원주에서 대성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운동에 힘썼다. 1960~70년대에는 지학순 주교,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경기, 충북 일대의 농촌 광산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협동조합운동을 펼쳤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반독재 투쟁을 지원하면서 사상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80년대에는 원주에서 ‘한살림 운동’을 열어 산업문명으로 파괴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살림’의 문화를 만드는 생명사상(운동)을 펼쳤다.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불교와 유학사상 및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걷는 동학’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일순의 일생이 곧 격동의 우리 현대사였던 셈이다. 그 파란만장한 시대의 불의에 온몸으로 맞서면서 늘 사색하고 쉬지 않고 행동했던 사람, 장일순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작고한 언론인 리영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놀라워요. 철저하면서도 조금도 철저하지 않은, 그저 일상생활이 되어버리는 이런 인간의 크기 말입니다. 그런 크기를 지니고 사회에 밀접하면서도 사회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속에 있으면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시키면서도 본인은 항상 그 밖에 있는 것 같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밖에 있으면서 인간의 무리들 속에 있고, 구슬이 진흙탕에 있어도 나오면 그대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이제 없겠지요.
장일순은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며 ‘죽임’의 세상을 ‘살림’의 세상으로 바꾸고자 했던 사람, 나와 맞선 상대까지 ‘보듬어 안는 따뜻한 혁명’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자신에 관한 단 한 권의 책도 세상에 남기지 않았다.
그런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의 지은이 한상봉은 서문에서 ‘장일순 선생님의 그릇이 너무 크고 가늠하기 어려워’ 이 책을 쓰기까지 십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한다.
‘집단적인 인격’으로서의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따라 함께 걷다
지은이는 무위당 장일순의 평전을 쓰기로 하고 나서 생각에 생각만을 거듭하며 십여 년을 뒤로 물러나 앉아 있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구술 자료들이 쌓이고 〈무위당사람들〉과 2019년 두레판 『장일순 평전』등에 힘입어 자신의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이 책, 『장일순 평전 –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지은이 개인의 성과물이 아니라 ‘그동안 장일순 선생님과 호흡을 나누었던 많은 분들이 함께 지어낸 공동 저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일순을 이해하려면 장일순 한 사람의 이야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원주가 민주화운동 의 성지聖地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추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돌보고 기르는 일에 매진해 온 수많은 분들과 그분들 사이의 관계가 있고, 이를 토대로 하나의 공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며 “아우들이 날 무등 태워 가는 거지. 난 아무것도 아냐”라고 했던 장일순의 말을 되새겨보아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위당이 온몸으로 살아왔던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단순히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술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장일순을 ‘둘러싼 운동 역량과 대중과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분’이라는 김지하 시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지은이는 결국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함께 일했던 많은 이들이 민중과 더불어 시대적 과제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옳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장일순과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들의 많은 일화들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분명 주연은 있으나 조연들 역시 각자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과 개성이 살아 있는 드라마가 연상되기도 한다.
서예가이기도 했던 장일순은 생전에 2,000점이 넘는 서화 작품을 남겼지만 한 점도 돈을 받고 서화를 판 적이 없었다. 1980년대 초반, 원주 옛 시청 사거리에 있던 합기도장 ‘흑추관’ 관장인 김진홍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도장을 열었지만 관원이 없어 형편이 어려워 지인들에게 생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다들 장일순 선생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김진홍이 봉산동 집에 찾아가 “선생님, 저 좀 먹고살게 해주세요.” 부탁했더니, “내가 백수인데 무슨 수로?” 하면서 합기도장이 어디냐고 물어본 뒤에 돌려보냈다. 다음 날부터 장일순은 날마다 흑추관에 찾아가 아무 말 없이 도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러니 봉산동으로 장일순을 찾아왔던 이들이 이젠 합기도장에 가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장일순은 그네들에게 “우선 도복부터 입어!” 하였다. 그렇게 도복으로 갈아입고 장일순 주변에 앉아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스무 명 남짓 되었다. 그렇게 합기도장이 살아났다. 이때 김진홍에게 장일순이 써 준 글이 ‘눈물겨운 아픔을 선생이 되게 하라, 진홍아, 이렇게 가보자’였다고 한다.
『장일순 평전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보통의 평전들과 조금은 다르다. 장일순 평전임에도 그의 가족, 친구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분량이 많은 편이다. 이 책에는 장일순과 관계 있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 속의 알 만한 인물들의 이야기들과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범부들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우화처럼 섞여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장일순의 삶과 사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마디로 장일순은 ‘참 착한 사람’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 끝에, “개문유하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 하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을로 흘러가 ‘착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아름답고, 그래서 거룩한 마음이 발생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라고 썼다. 접기
<장일순 평전 -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 요약 및 평론
1. 요약
한상봉이 집필한 <장일순 평전 -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2024)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그간 발굴된 새로운 자료와 입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한 최신 평전이다. 저자는 장일순의 삶을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동학'으로 정의하며,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관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일상의 삶과 현장의 운동으로 구현해 낸 궤적을 8부에 걸쳐 치밀하게 추적한다.
이 책은 장일순의 일생을 급진적 사상가이자 밑바닥의 실천가로서 재조명한다.
특히 저자는 장일순이 지녔던 동학적 영성에 주목한다. 장일순에게 동학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천지 만물은 더불어 하나'라는 생명 세계관이자 '나를 비우고 한울님을 모시는' 하심(下心)의 철학이었다. 그는 정치적 권력 투쟁 중심의 변혁이 지닌 한계를 넘어,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깨닫고 도시와 농촌,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따뜻한 혁명'을 제시했다. 책은 그가 남긴 서화와 글씨, 그리고 그와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민중과의 관계를 통해 '나락 한 알에서 우주를 보았던' 스승의 삶을 다각도로 복원해 낸다.
2. 평론: 관념의 동학을 현실의 생명학으로 불러낸 노작
한상봉의 <장일순 평전>은 김삼웅의 기존 평전이 보여준 민족주의적·정치사적 기록의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장일순이라는 인물의 영성적·사상적 깊이를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린 뛰어난 평전이다. 서거 30주년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문명사적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장일순의 사상이 왜 다시 호출되어야 하는가를 설득력 있게 밝혀낸다.
이 평전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장일순을 <동학의 현대적 체현자>로 명확히 정립했다는 데 있다. 19세기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이 제시했던 동학의 생명 사상이 20세기 후반 군사독재와 자본주의 광풍 속에서 어떻게 '한살림 운동'과 '신협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제도적·생활적 실천으로 번역되었는가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또한 이 책은 장일순을 독단적 영웅으로 그리지 않고, 그를 둘러싼 <인간적 관계망과 공동체> 속에서 조명한다. 지학순 주교라는 가톨릭과의 사상적 연대, 김민기나 이철수 같은 예술가들에게 미친 영향, 그리고 이름 없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울여 듣던 그의 일상이 평전 전체에 촘촘히 포개져 있다. 선생의 글씨 하나에도 받는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고 적어 넣었던 그의 '모심의 태도'를 조명한 대목은, 사상과 삶이 완벽히 일치했던 한 인간의 크기를 느끼게 한다.
다만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 장일순과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일화와 배경사가 세밀하게 수록되어 있다 보니, 장일순 개인의 핵심 사상적 뼈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서사의 호흡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위만 무성하고 삶의 실천이 부재한 현대 사상계에 커다란 울림을 준다.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는 부제처럼, 장일순은 사상을 책 속에 가두지 않고 자신의 걸음걸이와 밥상,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눈빛 속에서 온전히 살아내었다. 한상봉의 평전은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분열이라는 파국을 맞이한 21세기의 우리에게, 스스로를 낮추고 만물을 생명으로 섬기는 '따뜻한 혁명'의 길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는 소중한 지평을 제공한다.
<장일순 평전―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 요약 평론
한상봉의 <장일순 평전―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무위당 장일순의 생애를 민주화운동가나 한살림운동의 창립자로만 설명하지 않고, 동학의 생명사상을 20세기 한국의 현실 속에서 실천한 인물로 재구성한 평전이다. 2024년 장일순 서거 30주기를 맞아 삼인에서 출간되었으며, 556쪽에 이르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저자는 장일순의 생애뿐 아니라 그와 관계를 맺었던 지학순 주교, 김지하, 리영희, 김민기, 이현주, 김종철, 박재일, 이철수 등의 이야기를 함께 배치하여 ‘원주 공동체’와 한국 생명운동의 계보를 복원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해석은 부제에 들어 있는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는 표현이다. 장일순은 동학을 연구하고 해설한 사상가인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동학의 ‘모심’, ‘공경’, ‘살림’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협동조합운동, 농업과 소비생활 속에서 구현하려 했다. 그에게 동학은 19세기의 민족종교나 농민혁명의 이념이 아니라 산업문명과 생태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현재적 사상이었다. 한상봉은 장일순의 삶을 이러한 동학의 현대적 부활 과정으로 해석한다.
장일순은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서화가 박기정에게 글씨와 동양사상을 익혔다. 동시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유교와 노장사상, 불교와 동학, 그리스도교가 겹쳐 있는 정신적 환경은 훗날 그의 종교적 개방성을 형성했다. 그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절대화하지 않고, 여러 종교 전통에서 자기 비움과 생명 공경이라는 공통된 지혜를 발견했다.
해방 후 경성공업전문학교에 다니던 장일순은 국대안 반대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다. 전쟁 후 원주로 돌아온 그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대성학원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그에게 교육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거나 개인의 출세를 돕는 과정이 아니었다. 사람이 자기 존엄성을 깨닫고 공동체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장일순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는 제도정치에도 참여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냉전적 남북 대결을 넘어서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약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그는 권력을 장악하여 위에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치의 한계를 성찰하게 되었다. 목적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권력은 집중되는 순간 사람을 억압하고 조직을 관료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장일순이 정치적 현실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출옥 이후 그는 중앙정치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활현장으로 들어갔다. 1960년대 중반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만나 농민·노동자·도시빈민의 자립을 위한 신용협동조합과 생활협동운동을 추진했다. 이때 형성된 원주 지역의 인간관계와 조직망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1971년 원주에서는 문화방송 운영을 둘러싼 부정부패 규탄운동이 일어났다. 장일순과 지학순, 김지하 등은 이 운동을 계기로 전국의 종교인, 지식인, 학생운동 세력과 연결되었다. 한상봉은 이를 원주 지역운동이 전국적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장일순의 원주 봉산동 집에는 수배 중인 학생과 활동가, 지식인, 종교인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의 부인 이인숙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방문객들에게 밥을 내주었다. 장일순의 사상은 강연장보다 이 밥상공동체에서 먼저 실천되었다.
장일순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중심이었지만 공식적인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고 필요한 조언과 지원을 한 뒤 자신은 물러났다. 그는 운동이 특정 지도자에게 의존하면 구성원의 자립성이 약화되고 조직이 지도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변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노자의 무위와 동학의 모심이 결합된 장일순식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한상봉은 장일순이 정치운동에서 생명운동으로 ‘전향’했다고 설명하기보다, 민주화운동을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확장했다고 본다. 1970년대 후반 장일순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 농촌 공동체의 붕괴, 도시 소비문화의 확대를 보면서 정치적 독재만큼이나 산업문명의 지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발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해 자연과 농민의 생명을 희생시켰다. 그러나 기존 진보운동도 생산력 발전과 산업성장을 당연시했다는 점에서 개발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장일순이 보기에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는 서로 대립했지만, 자연을 자원으로 보고 생산을 무한히 확대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따라서 진정한 사회변혁은 정권교체나 소유제도의 변화만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인간이 자연과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바뀌어야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생산과 소비, 농업과 밥상,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민주화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980년대 한살림운동으로 이어졌다. 한살림은 단순한 유기농산물 직거래사업이 아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는 새로운 경제관계를 만들려는 운동이었다. 농민은 도시인의 생명을 먹을거리로 살리고, 소비자는 농민의 생활과 농토를 살린다.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을 둘러싸고 대립하지만, 한살림에서는 양자가 하나의 생명공동체가 된다.
장일순은 “밥 한 사발을 알면 모든 것을 안다”고 말했다. 밥에는 농민의 노동뿐 아니라 흙과 물, 햇빛과 바람, 미생물과 곤충, 계절과 우주의 운동이 들어 있다. 밥을 먹는 것은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천지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한상봉은 이러한 장일순의 밥 철학을 동학의 ‘이천식천’, 곧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가르침과 연결한다.
장일순이 특히 존경한 동학 인물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었다. 그는 해월의 가르침 가운데 경천·경인·경물의 ‘삼경’을 중시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며, 사물까지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일순은 해월이 체포되기 전에 머물렀던 원주 송골의 집터를 찾아 추모비를 세우고 직접 삼경의 뜻을 새겼다. 그가 ‘걸어 다니는 동학’ 또는 ‘살아 있는 해월’이라 불린 것은 동학을 말로 설명해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실제로 공경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장일순에게 공경은 추상적인 종교 감정이 아니었다. 상대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든 이름 없는 농민이든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찾아온 사람의 말을 오래 들었고, 답을 명령처럼 제시하기보다 그 사람이 스스로 길을 찾도록 기다렸다. 풀 한 포기와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존재의 가치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로 판단하는 산업문명의 태도를 거부한 것이다.
한상봉은 가톨릭 사회운동과 노동사목에 오래 참여한 저자다.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천주교 사회문제연구소,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그는 장일순의 천주교 신앙과 지학순 주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원주교구의 사회운동을 비교적 상세히 다룬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와 동학의 만남은 중요한 주제다. 장일순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교회의 제도와 교리를 절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자기 비움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노자의 무위, 불교의 무아, 해월의 모심과 연결했다. 한상봉 역시 장일순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서양의 교리체계에 갇히지 않고 한국의 민중적·생명적 종교전통과 만날 수 있다고 본다.
이 평전의 가장 큰 장점은 장일순의 사상을 그의 인간관계와 운동의 역사 속에서 풍부하게 복원한다는 점이다. 김삼웅의 <장일순 평전―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이 민주화운동가이자 생명사상가로서 장일순의 도덕적 품격을 강조했다면, 한상봉의 평전은 훨씬 더 방대한 자료와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장일순 사상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장일순 한 사람만이 아니라 지학순, 김지하, 박재일, 이현주, 김종철 등이 얽혀 형성한 사상적·운동적 네트워크가 드러난다.
또한 이 책은 장일순의 생명운동을 정치적 후퇴나 낭만적 자연주의로 보지 않는다. 생명운동은 민주화운동을 포기한 결과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범위를 인간사회에서 자연과 모든 생명으로 확장한 결과다. 국가의 독재만이 아니라 자본, 기술, 성장주의, 인간중심주의가 행사하는 지배까지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근본적인 정치운동이었다.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다. 동학은 흔히 1894년 농민전쟁이나 민족종교의 역사로만 다루어진다. 그러나 장일순은 동학의 모심과 삼경, 이천식천을 협동조합, 유기농업, 도농 직거래, 생태문명론으로 번역했다. 한상봉은 이를 통해 동학이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생태붕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할 사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첫째, 책 전체에 장일순에 대한 깊은 존경이 흐르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비판적 거리가 충분하지 않다. 장일순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지혜롭고 겸손하며 포용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의 판단 착오나 인간적 갈등, 운동 내부에서 제기된 반론, 가족이 감당한 희생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난다. 평전이 역사적 인간의 복합성을 분석하기보다 성인의 행적을 기록한 전기처럼 읽히는 순간이 있다.
특히 장일순의 집이 수많은 활동가와 방문객에게 열려 있었다는 사실은 아름답지만, 그 환대의 실질적인 노동을 부인 이인숙이 감당했다는 점은 더 깊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성 사상가의 공적 활동 뒤에서 여성 가족구성원이 수행한 식사, 돌봄, 가사노동은 쉽게 보이지 않게 된다. 밥상공동체를 말하려면 그 밥을 누가 준비했는지도 물어야 한다.
둘째, 장일순의 생명사상과 동학의 관계가 강조되면서 다른 사상적 원천의 독자성이 줄어들 수 있다. 장일순에게는 가톨릭 신앙, 노장사상, 불교, 화엄사상, 간디의 비폭력, 협동조합사상도 중요했다. 그를 ‘걸어 다니는 동학’으로 부르는 것은 강력한 해석이지만, 그의 복합적인 사상을 하나의 전통으로 지나치게 수렴할 위험도 있다.
셋째, 생명과 모심의 윤리가 구조적 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더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기업의 독점, 토지와 금융자본, 노동착취, 국가폭력과 같은 문제는 개인의 겸손과 생활협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 노동조합, 정당정치,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 장일순의 생명운동을 계승하려면 생활운동과 제도정치를 대립시키지 않고 결합해야 한다.
넷째, 무위와 비폭력, 화해를 강조할 때 억압받는 사람에게 먼저 양보와 자기 비움을 요구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힘 있는 사람이 권력을 내려놓는 것은 해방적이지만, 권리를 빼앗긴 사람이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무위가 아니다. 장일순의 무위는 불의에 침묵하는 태도가 아니라, 저항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지배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성찰하는 원리로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장일순 평전―걸어 다니는 동학>은 현재까지 나온 장일순 평전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저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장일순 개인의 전기에 머물지 않고 원주 민주화운동, 가톨릭 사회운동, 협동조합운동, 한살림, 동학의 현대적 계승을 하나의 역사적 흐름으로 연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민주화에서 생명민주주의로 나아간 장일순의 사상적 전환을 산업화와 개발독재의 현실 속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오늘날 장일순의 의미는 단순히 검소하고 겸손한 어른의 모범에 있지 않다. 그는 민주주의를 인간들 사이의 권리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까지 확대했다. 자연과 동물, 농토와 미래세대는 선거권을 갖지 않지만 인간의 결정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다. 장일순의 생명민주주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까지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요구다.
책 제목의 ‘걸어 다니는 동학’은 결국 사상이 책 속에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동학은 강연에서 시천주와 사인여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고 밥 한 그릇과 물 한 방울을 귀하게 여기는 데서 살아난다. 장일순은 거대한 이론체계를 남기지 않았지만, 자신의 집과 밥상, 협동조합과 농민운동, 서화와 대화를 통해 동학을 생활 속에 드러냈다.
한상봉의 평전은 장일순을 모방하거나 숭배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오늘의 상황에서 ‘살아 있는 동학’이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돌봄의 붕괴와 정치적 적대가 깊어지는 시대에 모심과 공경은 단순한 마음가짐이 아니다. 경제와 정치, 농업과 소비, 조직과 지도력의 방식을 다시 구성하는 사회적 원리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장일순의 위대함은 많은 업적을 자기 이름으로 남겼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관계와 공간을 만들고, 일이 이루어지면 뒤로 물러났다. 하늘을 먼 곳에서 찾지 않고 사람과 밥, 흙과 풀 속에서 발견했다. 한상봉의 평전은 다소 이상화된 서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일순의 삶이 왜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생태문명과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오늘의 사상적 자원이 되는지를 풍부하게 보여준다.